579화 팔장도 해전
“저들은 깡패와 같다.”
전 2함대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그 자리에 새로 보임한 해군 제독, 민승주는 실로 화끈한 불같은 인물이었다.
“나라 전체가 깡패 집단이라는 소리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대화 놈들의 군국주의 수뇌부들은 해남도에서 마약 팔아먹던 해남파 놈들의 직계 후손이니까.”
보임하자마자 하와이에서 각 제독들, 함장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는 자리에서 민승주는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저 깡패 놈들은 오포항 공습은 물론이고 탐라 공습, 아니 개성 공습에도 책임이 있다. 저들의 전투기, 자폭기 설계가 고스란히 중화에 전달되었고, 한날한시에 같은 전술을 써 고려와 백제 양국의 수병들을 피 흘리게 했으니 당연한 소리다!”
대답은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눈빛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 깡패 놈들에게는 매가 답이다.”
민승주는 작전지도를 가리켰다.
“우리의 목표는 대화가 가진 모든 군함을 바닷속에 가라앉히고, 또한 항구를 포격해 해군의 제 기능을 상실시키는 것이다. 즈그들이 바다의 민족 어쩌구저쩌구하는 헛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닥치게 만들라는 말이야. 알아들었나? 질문.”
“4함대의 지원이 있습니까?”
“애석하게도 4함대는 지금 꼰바웅의 아유타야, 말레이반도 침공을 막기 위해 가 있다. 우리 몫은 우리가 해야 한다.”
어차피 4함대는 같은 함대구성이긴 했지만 2함대 전력의 절반, 혹은 항공대 전력을 고려하면 삼분의 일밖에 안 되었다. 5함대가 3함대의 전력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듯.
“그건 오히려 다행이군요.”
지원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몫을 다른 함대에게 빼앗길까 봐 투덜대는 것임을 확인한 민승주 사령관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부하들의 투쟁심이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전함 개장수리를 전부 보낸 것도 아니다.
지금도 전력은 적지 않았다. 전함 몇 척 가라앉은 게 대수인가. 배야 또 만들면 되는 것을.
특히나 항모는 단 한 척도 침몰하지 않았다. 해상전력에서 항모가 가지는 의미를 저들은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백제 해군은 탐라에서 한 대 맞은 우리보다도 더 크게 한 대 맞았으니 걔네한테 도움받을 건 없다.”
“기대도 안 했습니다.”
“그래, 예맥한 삼국이 아주 번갈아 똥을 쫙쫙 싸 재끼는 중이지. 우리는 부모 된 마음가짐으로 그 갓난아기들의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 애들 똥 싸지르는 것에 불평불만하는 건 오직 부모밖에 할 수 없다. 다른 놈들이 우리 애들 괴롭히는 건 못 참는다, 알간?”
사령관의 적나라한 말에 그 중후한 제독과 함장들이 실소를 지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자식은 물론이고 어쩌면 손자까지도 볼 나이였으니 그 심정을 잘 알았다.
“알겠습니다, 사령관!”
“자! 넬슨 제독! 앞으로 나오시게.”
눈이 퀭한 넬슨이 앞으로 나왔다. 탐라전단은 중화 해안 공세 작전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대가 현 탐라전단의 제독이지. 그래서 이번 공격의 첫 시작은 그대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이의 있는 사람?”
당사자가 손을 들었다.
“승리함은 당장 수릴 받아야 합니다. 과도한 포격으로 포신이 마모되었으며, 해안포에 여러 번 피탄당해 장갑 손상이 심하며….”
“그건 됐고. 다른 사람?”
“없습니다!”
“그럼 시작하자고. 아, 자넨 이따 내 방으로 와. 세밀한 보고를 들어야겠어.”
* * *
“태평양 방어선이라고?”
민 사령관의 방으로 들어간 넬슨은 자신이 확보한 정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습니다.”
“이거, 확실한 정본가? 자네 눈으로 본 건.”
“산동반도는 이미 요새화가 많이 진척되어 있었습니다. 해군정보국에서는 그들의 군사시설이 밀집한 지역인 만큼 일반적인 요새선이라고 생각했지만, 태평양 방어선이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겁니다.”
넬슨은 자신의 다짐을 이행했다. 탐라전단의 즉각적인 보복으로 중화는 해군 병력을 많이 소실했다. 항구포격으로 인해 그들의 군함과 무기고, 탄약고 등이 박살 났다. 수송선도 침몰했으며, 잠수함도 가라앉았다.
또한 그는 막내 의동생이 이끄는 특수전 병력과 함께 해안 근처에 있는 중화 자폭기 공장을 부쉈다. 그리하여 당분간은 중화의 자폭전투기 공세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탐라전단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군함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복했다. 기름과 탄약 등을 지칠 때까지 소모한 그들은 이제야 한숨 돌리고 하와이로 입항했다.
워싱턴도 그 보고를 받자마자 곧바로 조선 대도시들에 대한 추가적 공세에 대한 근심을 버리고 선전포고를 했으니 그 공이 굉장히 컸다.
항공기 기술이 완전히 소실된 것은 아니니 내륙에 따로 공장을 생산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항속거리를 신경 써야 하는 자폭기는 황해를 넘어오기 힘들 것이었다.
다만, 넬슨은 공세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중화의 바닷가에는 긴 요새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직 미완성이었지만 인적 자원을 끊임없이 투입할 수 있는 그들의 역량으로 볼 때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중화는 전함 개발을 어찌어찌 시도했으면서, 자신들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해안가에 해안포들을 짓기 시작했다.
이를 속칭, ‘태평양 방어선’이라 했다. 육지에선 배수량이나 배의 건조 기술과는 상관없이 얼마든지 무거운 포대를 올릴 수 있다 보니, 배로서는 접근하기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배를 건조하는 것보다 육지에 요새선을 짓는 게 훨씬 쉬웠다. 육지의 요새는 침몰할 수도 없다. 전함과 같은 무기체계를 만들지 않아도 해안가에 불침전함이 나타나는 것이다.
유럽 소국처럼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다른 나라라면 모를까, 중화는 그런 문제에 한해선 세상에서 제일 자유로운 나라 중 하나였다.
“완전히 6세기 해금령이 따로 없군.”
민승주는 고개를 저었다. 짜증이 났지만, 효과적인 전략임은 부인할 수 없었다. 이로써 전함이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그건 항모에게 맡기라고.”
“대공포 전력도 많이 있을 겁니다.”
넬슨의 우려에 무언가 들은 것들이 있는지 민 사령관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곧 걱정할 사항이 아닐 걸세. 일단 따라 나와 봐.”
사령관의 부름에 넬슨이 그의 뒤를 따랐다. 가까운 곳을 갈 줄 알았건만, 그는 오히려 지휘부에서 나와 자동차를 타고 항구로 가기 시작했다.
“자네 전단 기함, 승리함. 명성급이지? 그 함도 너무 오래됐어.”
“아직 쓸 만한데 말입니다.”
“명성급은 내 함장 현역 때에도 최신형 함선이 아니었다. 그때야 진노가 안 나온 데다 평정급이라고 만들어 놓은 건 설계부터 불량 덩어리였고. 격노는 막 생산 중이었지만….”
어차피 가까운 거리라, 자동차는 곧 항구에 도착했다. 넬슨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승리함 함장에게 지시해 놓은 게 있으니 전단 기함은 하와이 건선거에 들어가 긴급 수리를 받고 있을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 아까 회의 시작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함선 한 척이 군항에 입항해 있었다.
까마득한 마천루를 눕혀놓은 것처럼 거대한 함선.
강철의 거함은 오연하게 바다에 떠 있었다. 근처의 여러 군함이 모두 고기잡이배로 보일 지경이었다.
“방금 도착했다더군.”
“저… 전율급입니까? 저렇게 전율급이 컸습니까?”
“당연히 크지. 하지만 저건 전율급이 아니네.”
그럴 것이다. 생산하고 있는 전율급 제원은 제독들이라면 어느 정도씩은 알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굴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저 함선은 그 모든 규격과 상식을 뛰어넘어 있었다. 넬슨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군림급입니까?”
민승주 함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국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군림급 전함이 갓 하와이에 도착했다.
“아직 전율급도 두세 척밖에 전력화가 되지 않았는데… 아니, 애초에 함선 건조에 착수한 지 지금 반년도 되지 않았잖습니까?”
“그래서, 주포는 400미리야. 다른 시설과 설비들도 전율급에 쓸 것들을 빼서 빠르게 올려놓았다더군.
다른 함들은 계획대로 450미리로 건조할 거고. 나중에 이 함도 개장할 계획이라지만,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네.”
넬슨은 어이가 없었다.
함포는 다른 함급을 쓰더라도, 덩치만으로 이미 비할 함선이 없었다. 애초에 400미리조차도 이미 과한 감이 있었다. 다른 나라 함선이 이를 받아낼 수 있을 리가.
그가 기가 찬 것은 지금 왜 여기에 벌써 초중전함이 있느냐는 그 사실 자체였다.
전함은 나라의 국운을 걸고 만들어야 하는 해상 최대의 무기였다. 하지만 고려는 몇 년 전에 계획한 초중전함을 전쟁 선포 몇 달 전에 건조에 착수했으면서도, 고작 반년이란 시간 안에 만들어냈다.
“반년도 아니지. 5개월하고 보름 정도 걸렸네. 그것도 처음엔 생산시설이나 여러 공작기구들이 확충되지 않아서 그랬다더군.”
민승주 사령관이 그렇게 말했다.
“이게 군림급이 아니라 전율급이라면, 그 기간은 한 삼 개월? 어쩌면 정말로 한 달에 한 척씩 뽑아낼 수도 있겠지. 거기서 더 줄어들 수도 있고.”
넬슨이 반박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표준화공정이니, 간소화니, 집약공정이니, 나도 잘 몰라. 어쨌든 석정에서 이렇게 만들어냈어. 남파주열대습지의 개간 이후 부설된 전려수송철도는 조선소 관련 부품만 끔찍하게 자주 날랐다더군.”
철도가 완성되며, 고려의 잠재력은 비로소 하나로 모일 수 있었다. 미주에서, 앙주에서, 진주에서 만들어진 핵심 부품들이 끊임없이 철도를 타고 석정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철도와 해운으로 옮겨진 물건들은 전부 협동일관용기(컨테이너)에 담겨 있었다. 무거운 짐들의 보관과 관리, 하역 등이 모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하고 빨랐다.
또한 공정의 단계도 훨씬 더 정밀해졌다.
공학 기술자들은 더 이상 그들의 머리만을 맹신하지 않았다. 일전이 만들어낸 훨씬 더 진보된 연산기는 이런 설계도나 공정 단위에서 무서울 정도의 효율성을 담보했다.
반도체, 그런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실로 생소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물건은 진공관을 빠르게 대체했다.
기존에 있던 진공관은 이제 가변시한신관(VT신관)으로나 쓰일 예정이었다. 진공관이 하도 많이 생산되어 있어서 원래 비싸야 했을 가변시한신관의 가격도 굉장히 저렴해졌다.
효율은 탁월했지만 부담스럽게 큰 초기형 연산기들은 덩치가 빠르게 작아졌다. 빠르게 작아진 만큼, 많은 산업 현장에서 쓰일 수 있게 되었다.
산업역량이라 함은, 비단 한 분야에서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이 모두 담보되어야 했다. 그전까지 군사 준비에는 다소 소홀했던 고려였으나 이 모든 체계의 조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확실히, 나나 자네나 우리나라의 역량을 과소평가한 모양이구만.”
“제가 저걸 타도 되겠습니까?”
“물론. 함대의 자랑은 쓰라고 함대의 자랑이지, 묵혀놓는 건 아니야. 어차피 작전권은 제독에게 있으니 그대가 쓰게.”
함대 사령관은 보통 작전엔 나가지 않았고, 굳이 탄다면 항공모함을 탔다.
“더군다나 그대에겐 해야 할 복수가 있지 않은가? 전율급이나 군림급은 갑판 방호설계도 충실하니, 이제 저들이 미친 짓을 하더라도 갑판에 흠집 좀 나는 수준에 불과해질 거야.”
“…감사합니다.”
“저놈들이 했던 말 중 몇 가지는 맞아.”
뜬금없이 민 사령관이 그런 말을 했다.
“공포가 필요하다는 것. 그거 말일세.”
넬슨의 미간이 좁혀지자, 민승주 사령관이 덧붙였다.
“내 말 곡해하지 말고 들어. 나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정치인들, 인권운동가들은 평화로만 모든 것을 논할 수 있다고 믿어. 하지만 이후에 따라온 것들이 뭔가? 여러 협잡질들이 아니던가? 우리를 등쳐먹기 위한. 그리고 이제는 아예 폭탄과 독소를 뿌려댔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거야. 제국은 너무 관대했어. 이참에,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보여주게.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게. 우리의 우아함은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행사하지 않았던 사실에 있었다고. 너희가 그토록 원한다면, 공포를 주겠노라고.”
바라 마지않는 일이다. 넬슨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리고, 그는 새 함대장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럴… 이럴 수가!”
팔장도의 앞바다, 대화해군과 고려 2함대의 함대결전이 벌어진 지역은 불타는 함선과 기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대화가 자랑하는 전함은 모두 여섯이었다.
항공모함 전력도 한 척이 있었다. 톤수는 최초 항공모함이었던 투투테펙급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였다. 대화는 항모 전력에 대단히 많은 자원을 투자하지 않았다.
다만 주포를 과도하게 늘린 순양함을 포함한 순양함 전력은 열한 척으로 상당히 많았다.
어떠한 군축 없이, 오로지 해군 전력증강에 박차를 다한 덕에 대화 함대의 규모는 백제 함대를 능가하고 있었다. 자금은 신민들이 더 굶으면 그만이다. 고려에게서 뜯은 금도 꽤 있었다. 금방 다 쓰긴 했지만.
백제 함대가 고려의 퇴역 예정함들을 싸게 구매하려던 것도 일단은 숫자는 따라잡아야 한다는 그런 배경에서 이루어졌었다.
2함대에서 동원한 전력은 전함 7척과 항공모함 4척이었다. 백제 해군도 긴급수리를 동원했는지, 비록 제 성능은 내지 못해도 전함 두 척과 기타 함선을 보내왔다. 이미 파괴함 등 기타 함대전력으로도 이미 많은 차이가 났다.
대화는 2함대 전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에 충격을 먹었다. 처음 오포항 공습과 동시에 탐라 공습에 성공한 중화가 요란하게 떠들면서 자축하니, 대화도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고려를 비웃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두 국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중화는 무너뜨렸다 생각한 탐라 전단에게서 즉각적인 보복을 받았고, 대화는 이제 아예 대대적 해전을 준비해야 했다. 이럴 거면 대체 탐라 공습은 무슨 의미가 있었단 말인가?
― 젠장! 작전을 실행에 옮긴 것은 중화고 우리는 그저 기술력만 전달해 줬을 텐데! 왜 우리부터 공격하는 것인가?
자기 눈만 가리면 남들도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특유의 초식동물과 같은 생각으로, 대화의 수뇌부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러한 변명은 피해자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내린 대가는 컸다. 모 아니면 도에서 도가 나왔으면 더더욱 그랬다.
고려는 선전포고를 했으며, 중화의 행동에 협조한 그들의 행동은 단죄받아야 하는 것이 맞았다. 적어도 백제 공격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대화는 그 특유의 낙관적 분위기를 유지했다. 아직 함대결전은 희망이 있었다.
다른 함은 아니더라도 비대칭전력인 잠수함과 어뢰의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한 결과, 대화는 상당히 유의미한 전력 강화를 이룰 수 있었다.
실제로 백제 해군과 2함대는 대화 잠수함 전력에 큰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이 결전은 고려도 의도한 셈이다. 자꾸만 잠수함에 휘둘리면 피곤해졌다. 수송선을 보호해야 하는 고려는 대화의 잠수함 작전부터 막아내야 했다. 중화는 대화를 상대한 뒤 요리하는 것이 옳았다.
고려는 하치조지마라 불리는 팔장도를 공격했다. 대화의 해상 방어선에서 아주 큰 중요성을 가지는 섬이었다. 섬 전체가 완전히 요새화되어 해안포와 공군 기지 등이 있었다.
그만큼 투자한 것들이 많았기에, 고려가 이곳을 공격하자 대화는 작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 잠수함들로 덫을 쳐 놓은 뒤, 어뢰로 격살한다. 전함도 어뢰엔 꼼짝하지 못해!
하지만 넬슨은 적의 발버둥을 전부 알고 있었다. 적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면 뭘 할지 눈에 선히 보였다.
그는 민감한 음파탐지기를 장착한 파괴함을 적당한 거리로 배치해, 잠망경을 볼 때마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잠수함을 관측하도록 했고 언제든지 폭뢰를 던질 수 있게 했다.
최근 해군이 도입한 직승기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대화도 항공을 체류하는 저 괴상한 무기의 존재를 해안 황제 즉위 전의 수도 내전에서 소문으로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떠 있는 것이 신기했긴 했지만, 날틀은 빠르게 움직여야 제맛이었다. 저래서야 대공포의 먹이가 아닌가.
하지만 직승기의 개발은 해전사를 비롯한 소수의 분야를 완전히 바꾸었다.
방호순양함에 탑재된 직승기는 바닷물 속에 음탐기를 담그며 돌아다녔고, 이젠 오히려 적 잠수함이 역으로 사냥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졌다.
대화가 자랑하는 잠수함 전력은 애초에 해군정보국 등에 의해 사전에 너무 쉽게 파악된 전력 중 하나였다.
함대전 전력에선 이길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자기네 앞마당에서 모의전을 꽤 했는지, 근처의 청도니 팔장소도니 하는 지형을 이용해 함대를 뇌격기와 전파탐지기에서 숨기고 매복한 뒤에 빠르게 우회하여 넓게 펼쳐진 구축함들을 뚫고 함대함 결전을 건 결단은 참 과감하고 빠르며 효율적이었다.
솔직히 칭찬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성공했다면.
하지만 애초에 고려가 함대함 결전을 꺼릴 리가 있었겠는가. 멀찌감치에서 뇌격기로 공격하는 것은 아군 피해가 거의 없기에 선호하는 전략이었을 뿐이다.
군림급과 다른 전함들도 대화의 함대결전에 응수했다. 그러곤 옛 중세의 기사가 그리했듯, 두꺼운 철갑을 쓴 채로 마주해 검을 휘둘렀다.
가냘픈 왜도를 화려하게 휘두르던 사무라이의 칼날이 단번에 부러졌다. 이후 왜인은 다음 참격에 목이 베이고, 피보라가 치솟았다. 기사는 무덤덤하게 검신의 피를 닦고 칼을 수납한 뒤, 도쿄로 걸어갔다.
모든 것이 개전 3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