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77화 (577/653)

577화 우리는 왜 싸우는가(2)

개천 530년 3월 26일 저녁 20:00

제국국회의사당.

어수선함과 침묵의 공존 속, 워싱턴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연단 위에서 사람들을 잠시 내려다보던 그는 주머니 안에서 종이를 꺼냈다. 아주 길고 많은 내용이 줄줄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것을 꺼내 펼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정약용이 쓴 명문(名文)은 이미 그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워싱턴은 헛기침을 했다. 소란스러움은 가라앉았다.

이내 모든 의원들과 관리들, 기자들, 여러 사람들이 시중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시중은 늦었다. 하지만 늦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시중은 자신의 앞에 놓인 통신사들의 수화기를 톡톡 두드렸다. 연단 바로 앞에 있는 통신기사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수신 좋다는 의미였다.

저 수화기 너머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실시간으로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제국의 뜻을 전달해야 했다.

분개하는 사람에게 답을 해주어야 했다. 공포에 질린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 줘야 했다.

절망을 느끼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어야 했다.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전쟁이라는 것 자체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정당성을 불어넣어야 했다.

연임 임기의 끝자락, 지금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명이리라.

워싱턴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존귀하신 황상 폐하,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통신 기기를 통해 전파는 모든 제국에 퍼져 나갔다.

국회의사당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사람들은 무전수신기 앞에 모여 시중의 말을 들었다.

길거리는 한산했다.

저녁때였다. 대부분 집에 들어갔으리라.

저녁때가 될수록 사람이 몰리는 가게와 주점, 객원의 일 층 접수처, 기차역, 지하철역에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 멈추어 서서 시중의 연설을 들었다.

마치 이 순간 사회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전례가 없는 이 국난 속에서, 저는 시중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이 자리에 나와 그대들에게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개천 530년 3월 25일, 고려 연방제국은 중화제8제국으로부터 선전포고 없는 갑작스럽고, 또한 고의적이며, 참으로 극악무도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탐라 해군기지의 서귀포항이 적의 비열한 공격에 당했습니다. 또한 백제의 오포항이 공습당했습니다.

우리와 혈맹국의 젊은 청년들의 피가 바다에 퍼졌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함대가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또한, 개성이 독소 공격에 당했습니다.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독소에 중독되어 끔찍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 중화제국은 진효산 외무총장의 회담을 잡으며 그전까지 경색되었던 려―중 관계에 대한 우호적인 대답의 여지를 줌으로써 의도적으로 우리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또한 당면한 위협에 대해 우리의 국론을 분열시켜 군과 관과 민이 기민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일이 있은 후, 소비에트 연방은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루테니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에 대한 공격을 시작함으로써 유럽 안보 조약을 위협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명백히 의도된 전쟁행위이며, 또한 묵과할 수 없는 전쟁범죄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감히 이 자리에 나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께 전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탄식들이 침묵을 깼다. 사람들은 분개하고 있었다.

저들이 우리의 아들을 죽였다. 우리의 함선을 부수었다. 재산을 파괴했다. 마땅한 분노였다.

제국민 일인의 가치는, 존엄하다. 중화인 열을, 중화인 백을 주어도 바꾸지 못했다. 우리는 지성인이며, 문명인이다. 저런 야만인과 견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야만성이, 지성의 도시를, 신성한 도시를 죽음의 도시로 만들었다. 그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불안해했다.

정말로 전쟁이 시작되는가?

우리는 꼭 싸워야 하는가? 다시 피를 흘려야 하는가?

두 번째로 그래야 하는가?

평화가 전쟁보다 좋은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언제든지 그들이 날려 보낼 독소가 무섭지 않은가?

양면전선이 두렵지 않은가?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정직하지 못했다. 그들은 분노로 인해 자신의 머릿속 깊이 있는 그 감정들을 직시하지 못했다. 또래 모임에서, 직장 동료의 모임에서, 사회적 단체의 모임에서 그러한 말을 꺼낼 순 없으리라. 모두가 분개했으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은 죽기 싫어했다. 총을 들고 싸우기 싫어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들었다.

워싱턴 시중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시중은 말을 이어나갔다.

객관적으로 볼 때 워싱턴은 연설에 대단히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습진균과 송평융맹, 바뵈프 같은 동시대 다른 나라 지도자들의 선동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대단했다.

그들 나라의 국민은 박수를 치고 환호하고, 심지어 울면서 그들의 지도자를 찬양했다. 총통 만세! 서기장 만세! 그들은 그 목숨도 초개같이 버릴 수 있었다.

거대한 세뇌 작업의 결과물일 터였다.

하지만 워싱턴이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고려 국민들은 높은 교육을 받았다.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얼마든지 다른 생각과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건전한 사회에서 자랐기도 했다.

그렇기에 워싱턴은 가장 어려운 청중을 앞에 둔 셈이다.

[최근까지 지속되었던 여러 경제적 위기에, 우리가 흔들리길 바라는 적들은 우리의 체제와, 우리의 사회와, 우리의 가치에 대한 의문과 불신을 퍼트렸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황금기가 지났고, 그들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말합니다. 허약한 제국과 중화가 제시한 중화주의와 소비에트 연방이 제시한 공산주의가 세계를 삼분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사악한 동맹이 우리가 그동안 건설한 문명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 말합니다.]

허나 워싱턴은 자신이 있었다.

[그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습니다.]

진실은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누구는 그것에 거짓이 일부 첨가된다면 더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도 사실은 아니었다. 사람은 사람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었다.

가장 진실된 말이 가장 정직했으며, 그것만이 온전히 자신에게 확신을 줄 수 있었다. 적어도 워싱턴은 그러한 확신 속에서 그의 연설을 오롯이 해 나갈 수 있었다.

[이념은, 이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저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들의 이념에 동참하고, 부품이 되길 요구합니다. 그 요구는 너무나 강제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처참합니다.

저들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전체주의적 가치에 매몰되어, 불합리한 명령을 판단하지 못하고 이행합니다.

저들이 자행한 여러 끔찍한 범죄들은 인류 문명이 여지껏 경험해 본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는 상태입니다.

중화주의와 공산주의는 증오를 먹고 자라는 사상입니다. 저들은 그들 체제의 취약성을 보완하고자 끊임없이 증오할 대상을 찾고,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들까지 무자비하고 반인륜적으로 죽이며, 그 잔혹함을 스스로 내보이고 있습니다. 저들은 공포를 보편적 도덕보다 우선시하며 그것을 도구 삼아 그들의 권력을 향유하길 원합니다.

개성 공습 이전에도 40만 명의 민간인이 소비에트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인에 의해 죽었습니다.

또한 270만 명의 민간인과 포로가 극한의 환경 아래 가혹한 노동을 하다 수용소에서 죽어 나갔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말합니다. 명백히, 그들의 사회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의 말은 감히 이 고려가 있는 세상에서 패권국을 자처하는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차분했고, 침착했다. 끓어오르는 감정도 없었다.

오직 담백하고 또렷한 말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국민들은 조용히 깊은 생각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들은 남에게 정보를 주입받는 대신 그들 스스로 판단했다.

연설의 내용은 그들의 이성에 호소했다.

[이념이라 함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이념은 수단이어야 하지, 목적이 될 순 없습니다.

모든 이념의 목적은 오로지 인류의 번영과 행복, 그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에도 불합리한 것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념은 굳건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선조들은 스스로 권력을 나누었고, 우리의 지도자는 스스로 사적 영역을 잘라내며 정치를 했었으며, 우리의 국민들은 스스로 깨쳐 배우고 익혔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갈등을 타협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는 서로의 입장에 서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견수렴의 행동으로 우리는 서로를 적이 아니라 친우로서, 이웃으로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이 아닌 사랑과 우정으로, 또한 동포애와 인류애로써 뜻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대의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신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불안한 조국에서 도망쳐 온 자들, 원래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자들, 유학을 온 자들, 사업을 하러 온 자들.

이 땅에서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축구 경기 한 번과 맥주 한 잔이면 마음껏 토론할 수 있는 것을.

이념이라는 명목으로 사람이 사람을 학살하는 것은 너무 비극적인 일이 아니던가.

[저들의 증오와 폭력은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닥치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공격한 탐라해군기지와 개성이 지구 반대편의 일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명해 보입니다. 저들의 요구에 따른다면, 당장의 공포는 잊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겠는가? 위대한 제국의 사람들이?

[하지만 정신을 차려 어느새 지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성적인 국가, 유일하게 공포와 증오에 잠식되어 있지 않은 국가를 살펴보게 된다면, 그때는 너무 늦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당장의 안온함에 취해 이웃들의 절망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나중에 누군가에게 호소할 일이 생겼을 때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세월 동안 올곧게 길러진 사람들이?

[따라서 우리는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잠재력과, 우리의 의무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국토만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들의 땅에서 이웃들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자유와 생명을 위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웃들의 자유와 생명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그것은 침범할 수 없고, 보장받아야 하며, 피 흘리며 싸울 가치가 있는 성스러운 개인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

그 물음은 오랫동안 고려인들의 머릿속에 있었다.

대의. 보편적 가치. 소외되어 있던 것들. 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

예수, 부처, 해민 같은 성인들도 그러한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그들이 정말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옳았기 때문에 수백 년, 수천 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인류의 이성에 파고든 것이었다.

연설을 듣던 청년들은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들의 연인들은 청년들의 손을 잡고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예전의 사회를 보고 들은 노인들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들의 아버지들, 할아버지들이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웠노라고. 그리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이 얌전해졌다. 지금 시중이 말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엄숙함과 기개로 말미암아 분위기에 민감한 아이들마저도 숨을 죽였다.

연설을 듣는 사람들 전신에 있는 세포가 맥동했다. 강인한 생명력과 의지를 품은 피가 그들의 혈관을 내달렸다.

그것은 각성이라 불러도 무방했다.

삶의 여러 문제에 있어서, 인간은 언제고 공포에 질리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 공포는 직시하지 않는 이상 헤쳐 나가기 힘들었다. 다른 말로 하면, 오로지 대면만이 그것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겁에 질린다고? 우리가? 지금껏 오롯이 정면을 바라보았던 우리가?

그들은 떠올렸다. 먼 과거, 옛 선조의 원수를 갚고자 했던 서벌운동을.

또한 그들은 떠올렸다. 그 서벌로 인해 몰락한 나라의 칸이 벌인 운동을.

그 모든 것이 뭘 의미하는지, 지금 무전기 앞에 서 있는 제국민들 중 모르는 자는 없었다.

[그러니 사서들은 기록할 것입니다.

우리가 쌓아 올린 위대함과 가꾸어 온 지성이 도전받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방패를 든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세상이 공포 속에서 절망할 때, 유일하게 빛나는 자유의 횃불을 든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매달 항공모함을 건조할 것입니다.

또한 보름마다 전함을 건조할 것입니다.

매일 구축함을 건조할 것입니다

매시간, 매분 전차와 비행기를 만들 것이며 매초마다 포탄과 총탄을 만들 것입니다.

우리의 적들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고려의 모든 역량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적들은 똑똑히 깨달을 것입니다.

고려제국의 황금기가 지난 것이 아님을.

우리에겐 아직 단 한 번도 황금기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오늘의 제국은 어제보다 강하며 내일의 연방은 지금보다 강할 것이라고!]

워싱턴은 군인 출신이었다. 성량은 꽤 컸다. 그는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끓어오르듯 감정을 터트렸다.

그는 감정을 토해낸 뒤, 곧바로 연설 실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수인가?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정을 잔뜩 머금은 말은 파도가 되어 모든 이들의 심장을 요동케 했다. 붉게 물든 얼굴, 의원들은 이미 모두 자리에 일어나 있었다.

― 짝짝짝

누가 시작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천둥과도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밖에 선동에 아무리 능한 자들이 있더라도, 그들은 그들이 가진 악의라는 굴레를 영원히 집어 던지지 못했다.

철부지 어린아이의 동화책에나 나오는 권선징악은 사실 세상의 이치였다.

그렇지 않아 보이더라도 사회는 그렇게 발전했다. 선은 악을 이겼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되게 하리라.’

워싱턴은 기립한 의원들을 바라보았다. 박수 소리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소란 속에서도 워싱턴의 마지막 말은 모두의 귓가에, 수화기에 선명하게 울렸다.

[고려 연방제국은 현 시간부로 중화제8제국, 소비에트 연방,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모든 국가와 전쟁에 돌입할 것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선조들이시여, 우리를 보우하소서.]

수신기를 듣고 있던 모두가 일어났다. 주점과 식당, 철도역에서도 박수 소리와 휘파람 소리, 환호성 소리가 들렸다.

전쟁을 선포한다는 말에 이젠 모두가, 정말로 모두가 환희를 느꼈다.

그것은 고려인들이 전쟁광이라서가 아니었다.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앞서서 근심하는 것을 끝내서 그러했다.

또한 그들 사이에 있던 갈등을 해결했기에 그러했다.

이제 의문을 품는 자들은 없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의 연설로 그들이 이제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전쟁광은 아니더라도, 고려인들은 공포에 몸을 움츠리며 흐느끼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적이 잘못된 선택을 내린다면 우린 나아가 그들을 단죄할 것이다.

여태까지 그러했으니 앞으로도 계속.

의사당은 열광적이었다. 워싱턴은 잠시나마 자신이 저기, 영화배우라도 된 것마냥 착각을 느꼈다. 교당의 사람들이 내민 손을 하나하나 붙잡고 악수한 워싱턴은 문득 그에게 악수를 청한 귀당의 수장, 제퍼슨을 바라보았다.

정적마저도 나직하게 웃고 있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이었습니다. 당하.”

“과찬이시오.”

워싱턴은 잠시 뜸을 들였다.

“거국내각을 결성할 생각인데….”

제퍼슨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겠습니다.”

이후 해밀턴도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경당도 마찬가지로 환호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지라도 추구하는 목표는 같았다. 셋은 정적이긴 했지만 완전한 대적자는 아니었다. 고려의 국익과 미래를 위해서 그들은 정쟁을 멈추고 합의할 수 있었다.

워싱턴은 다른 청중들에게도 인사를 나누었다.

함성 소리가 더 커졌다.

제국의 통신을 듣고 있던 외국에서도 그러했다.

파리의 한 카페에 앉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무전을 듣던 탈레랑은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긴장이 탁 풀어져 한숨을 내쉬며 환호하는 프랑스 국민들을 바라보았다. 도이치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환호 소리가 들릴 것이 분명했다.

그는 창가를 통해 동쪽, 모스크바 쪽을 바라보았다. 모스크바를 넘어 우한을 바라보았다. 욕망, 탐심에 가득한 바뵈프 서기장의 얼굴, 증오에 가득한 습진균 대총통의 얼굴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그는 핏빛 와인을 건배하듯 들어 보였다.

‘너희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했지. 제국에 반하다니. 곧 미친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첫 번째 대전쟁에 프랑스는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면, 두 번째 대전쟁, 정말로 세계대전이라고 불릴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올바른 선택을 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