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화 개성 공습
청도항에서 출발한 츠루기는 한 종류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독소폭탄을 가지고 있는 비행기는 탐라가 아닌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그보다 더 북쪽이었다.
중화제국은 잠재적 적국의 인민을 무참히 학살하길 원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공포로 잠식되어 있을 때, 협상하길 원했다.
큰 규모의 ‘테러’였다. 거대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자행하는 공격을 전쟁이 아닌 테러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 그런 개념이었다.
만약 너희 고려인들이 경거망동한다면, 더욱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노라고. 번국의 인구를 인질 삼아 그들은 자신들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히길 원했다.
그러니 사실상 탐라 공세는 탐라에 집결한 적의 함대전력에 찔러나 보자는 식의 공세였다. 물론 공세의 규모와 정성으로 볼 때 조공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은 맞았다.
그렇게 많은 함대가 한곳에 모여 있으니, 중화로서는 도무지 기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원래부터 탐라 해군기지는 중화의 제일 목표이기도 했던 탓에 공격계획과 방법, 무장을 설계하는 것은 그렇게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를 지니는 쪽은 지금 향하는 개성 쪽이 더 컸다.
최후의 만찬 이후 빙독을 몸 안에 집어넣은 중화제국 조종사는 동료들의 뒤를 따라 나아갔다.
하지만 남쪽으로 향한 동료들보다, 북쪽으로 향하는 조종사들 중 몇 명의 표정은 썩 좋지가 않았다. 전자들이 전사로서의 결의를 다지고 행했다면, 후자들 중 일부는 빙독을 먹었음에도 지금 자신들이 행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의심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남쪽으로 향한 비행기들보다도, 개성으로 향한 비행기들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했다.
― 쿠구궁
이곳에서도 대공포가 날아왔다. 창밖엔 그야말로 비도 오지 않는데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치는 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저항은 오히려 탐라 해군기지보다도 낮았다. 중화 조종사들은 몰랐지만, 오히려 군항이 아닌 이곳엔 전파탐지기도 없었다. 그러니 조선 비행전대가 미적거리며 나타난 시간은 이미 그들이 개성 시내에 충분히 도착했을 때였던 것이다.
중화 조종사는 기수를 아래로 내렸다. 교육 시간은 불과 3개월. 많은 것을 배우진 않았지만 충분한 고도에서, 마치 내리꽂듯 꽂으라는 훈련 정도야 기억했다. 빙독은 이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서도 냉정한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만드는 기적의 약물이었다.
하지만 그 냉정함을 품고 떨어지는 사이에서, 중화 조종사는 문득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시민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아국을 두려워하라, 우리의 끔찍함에 몸서리쳐라. 이번의 공격이 한 번이 아님을 살갗과 혈관, 폐부에 각인시켜라. 그것이 너희들이 살 유일한 길이니.’
극렬한 중화당인 부모님에 의해 중화군부에 강제로 징집당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운명을 누렸을 수도 있었던 젊은 청년은 땅이 코앞에 다가오자 눈을 감았다.
충격으로 피와 뇌수, 신체 조각과 함께 눈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가 탑재한 포탄도 같이 터졌다.
― 콰앙
탐라 기지에 간 츠루기들과 달리 츠루기들의 폭발은 대단하지 않았다.
아무리 조악해 보이는 목제 천 폭격기라 하더라도, 그래도 처음 비행기가 갓 발명된 칠십여 년 전보다는 구조적으로 훨씬 진보한 것이 사실이다.
탐라 기지로 향한 츠루기는 폭장량을 최대치로 끌어모으기 위해 생환을 가정하지 않아 연료의 공간을 그만큼 없애고, 조종사를 위한 편의 기능을 대부분 빼는 온갖 짓을 한 덕에 목제 복엽 폭격기로는 기록적인 수준인 380킬로그램의 폭장량이 가능했다.
항공폭탄이 일반적 포병폭탄보다 동 무게 대비 훨씬 더 작약량이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전함이라도 이 폭탄이 갑판에 명중할 시 몸이 성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개성으로 향한 츠루기들은 같은 구조임에도 폭발이 그리 크지 않았다.
뜬금없이 공습경보가 울리더니 방공포탄이 하늘에서 펑펑 터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질린 개성 사람들조차도 그 폭탄이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게 터지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은 알싸한 냄새가 풍기는 것을 느꼈다. 풀 냄새와 겨자 냄새였다.
* * *
개성은 두 부위로 나뉘어 있었다.
본래의 전통적 의미에서의 개성은 고려령이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였다.
이름은 바뀌었다. 개성 총독부라는 이름에서 개성 특별독립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어감이 더 좋아진 것 빼곤 큰 의미는 없었다.
고려의 본토 취급을 받진 않았다. 자체적으로 시장을 선출하긴 했지만 고려 본토라고 부르기 위해선, 현지에서 선출된 의원이 중서성에 있어야 했다. 개성을 대표하는 의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개성시민들은 사실상 고려시민이었다.
따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했다. 독자적인 여권이나 국적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저 고려인으로서 고려인 여권을 가지고 다녔다. 언제든지 본국에 돌아가면 돌아가는 것이었다. 애시당초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은 주선고려군이거나 혹은 여기에 업무상 문제로 해외 파견을 온 사람 등등이었다. 오히려 조선계 사람들이 개성으로 많이 넘어왔다.
오죽했으면 새로운 의미에서의 개성이 생겨났겠는가. 임진강 너머, 원래는 파주군이었던 곳에 조선인들을 중심으로 신개성이 탄생했다.
결국에는 고려령 개성마저도 그곳을 개성시 서원구라 불렀을 정도였다. 여전히 구개성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여권이 필요했지만, 내륙조선인들은 그래도 검문이 형식적이었고 꽤 자유롭게 오갔다.
개성은 그렇게 거대화되었다. 세계사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도시였으니, 많은 기업과 많은 관광객, 많은 순례객들이 이곳을 항상 오고 갔다.
그야말로 조선 반도에서는 한양에 이어 그다음으로, 혹은 한양보다도 더욱 중요한 도시인 셈이었다.
구개성의 주둔군은 완편 전력의 군단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사단보다는 큰 준군단급이었다.
많은 전력이었지만, 국가적 전쟁 규모로 볼 때 크게 대단한 전력은 아니었다. 조선 내부에 있으니, 사실 그곳의 방비도 조선군이 하는 것이 옳았다. 개성을 둘러싼 방공시설도 조선군 소속이 대부분이었다.
나폴레오네는 그곳 본부에 있었다. 개성에서 탐라까지 쾌속선으로 반나절이 넘는 시간이 걸린 탓에 보고가 끝나자마자 쉬러 갈 예정이었지만, 사건이 이렇게 되었다.
어지럽게 울리는 경보음과 보고음, 비명 속에서 나폴레오네는 인수인계도 아직 받지 못했지만 주둔군의 차기 작전장교로서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적 포탄 낙탄! 독소 공격이다!”
낙탄한 것이 포탄인지 비행기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독소 공격은 확실했다. 폭탄이 좋지 않을수록 경계해야 했다. 그가 영관급에 진급한 이후 합동군사대학교에서 배운 바론, 중화제국은 독소에는 정말 대단히 뛰어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얕보면 죽는다.
― 독소, 독소, 독소!
병사들이 빠르게 방독면을 착용했다. 나폴레오네도 곧바로 지휘부 내의 방독면을 꺼냈다. 평소 대충대충 살아왔는지 군장이 충실하게 구비되지 않은 병사들 몇 명이 목을 움켜쥐며 바닥을 굴렀지만, 그것까지 구원해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젠장,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냐.’
그래도 대다수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방독면을 비롯한 물자는 개성주둔군에 충실히 확보되어 있었다.
하지만 민간은?
나폴레오네는 장담할 수 있었다. 중화제국은 개성주둔군을 주로 노리겠지만, 이곳만 노릴 능력도, 그럴 의도도 없을 것이다. 그랬으면 부수 피해가 엄청난 독소 폭탄이 아닌 전통적인 폭탄을 썼을 터.
그러니 지금 이런 미친 짓은 분명히 민간 피해를 의도했을 것이다.
― 방독면과 정화통 위주로 물자 점검하고 최대한 영향 없는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놔! 창문 단속 잘하고!
나폴레오네는 방독면을 끼고 최대한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사태에서 군수를 담당할 군수참모랑 군수장교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아니 우리 참모랑 과장은?
― 작전참모님은… 화장실에서 변을 보시다… 변을 당하셨습니다.
병사들이 뛰어와 보고했다. 군수참모는 어딨는지도 당장 파악을 못 했다. 지금 초동조치는 오로지 그의 몫인 것처럼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예하부대 훈련 시찰에 나섰던 주둔군 사령관이 빠르게 복귀했다.
― 적의 공격은 초살제(포스겐) 등의 질식 작용제와 겨자 독소 같은 수포작용제로 추정됩니다. 확실하진 않습니다. 부대 피해는 집계 중입니다.
― 잘했네, 작전장교. 치장물자 점검해 놓은 건 정말 잘했어.
사령관의 얼굴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비단 휘하 부대가 공격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절망감이 장군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심지어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방독면 너머로도 그 기색이 선명하게 읽혔다.
― 민간의 피해가… 심각하다. 수포작용제에 노출된 군은 곧바로 제독작업을 실시하고, 방호복을 입고 최대한 빠르게 대민지원에 나서도록 하라.
― 적의 후속 공격은 어떻게 합니까?
― 그걸 지금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어차피 지금 상황으로 막지 못한다. 조선 공군을 믿어야 해. 당장은 개성을 구해야 한다. 개성이… 개성이… 죽음의 도시가 되었어.
신체 제독을 마친 개성주둔군 중 일부가 빠르게 대민지원 물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독소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안타깝게도, 당장은 이 독기를 날려줄 바람조차 거세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었다.
독소 포탄의 겨자 독소가 그 안개와 같이 바닥에 깔렸다.
시내는 고요했다. 죽어가는 듯한 낮은 신음 소리, 개가 끙끙대는 소리, 가래 끓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렸다. 그 외의 소음은 없었다. 원래라면 자동차 이동하는 소리, 활기차게 떠들고 웃는 소리, 기타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독면 때문일 것이다.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오로지 방독면 때문일 것이다. 고려군 병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 다… 당신들….
어떤 한 곳에서 고려군 병사가 조선군 병사들이 집단으로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들 모두가 방독면을 쓰고 있었는데, 대체 왜 이렇게 쓰러져 있는지 의문이었다.
겨자 독소가 적절한 제독을 하지 않으면 피부에 큰 피해를 입힌다지만, 지금 당장은 방독면으로 충분히 방호 가능할 텐데?
하지만 이미 거의 죽어가는 조선군 병사는 핏물을 힘겹게 뱉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방독면은 명백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 사람들을 구해주시오… 우리 대신… 제발….
하지만 고려군 병사는 그의 말에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대체 이들을 어떻게 구한다고.
조선군 병사들이 누워 있는 건물과 건물 사이, 그 골목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쓰러져 있었다.
시선을 옮겨봐도 사방엔 시신들밖에 없었다. 고려군 병사도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네놈들,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냐.
* * *
“…….”
넬슨은 마른세수를 하고 있었다.
그의 팔이 살짝 떨렸다. 수전증에 걸린 것마냥.
옆에 서 있던 부관은 그렇게 까탈스럽고 냉정하던 자신의 상관이 저렇게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는지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검은 커피를 타 왔지만, 넬슨은 그토록 좋아하던 커피를 마시지조차 않았다. 마실 수가 없는 것인진 몰라도.
그때, 하와이에서 전화가 왔다.
“호레이쇼 넬슨입니다.”
― 2함대장이다.
별 셋, 2함대장(태평양함대장)이었다. 직접 전화를 한 모양이다.
― 적절한 지휘를 잘해 주었네.
“……아닙니다.”
겸양의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다. 진짜로 넬슨은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할 정도로 자책하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정신을 바짝 차렸다면.
이런 사건에서 살아남은 자는 오히려 훨씬 크게 자책하곤 했다. 그들이 짊어질 무게를 진실되게 이해하는 자는 없었다.
― 자네의 이함 명령이 많은 사람을 살렸어.
“…모두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함대도.”
― 배는 괜찮아.
배는 괜찮기에, 넬슨도 이함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고려는 배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중요했다. 전함 한 척에 타는 수백 명, 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더 소중했다. 한 명이라도 잃는다면, 그것이 더 문제였다. 배는 만들어낼 수 있지만, 수병과, 수병으로 형성된 전통은 단번에 만들어낼 수 없다. 그것이 제국 해군이 최강의 해군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유였다.
― 빈말이 아니야. 배는 괜찮네. 초기 보고론 열다섯 척이 침몰했다 했지? 그중 네 척은 불과 연기만 요란하게 났지 결국 침몰하진 않았으니 됐고.
거기 보낸 기술자들 말로는 상태를 보아하니 다른 열 한 척 중에서도 세 척은 끄집어내기만 하면 거의 곧바로 쓸 수 있다지.
또 침수한 다른 셋도 건선거에서 수리한다면 근시일 내로 충분히 쓸 수 있다더군. 항구 내에서 침수되었고, 규모는 작지만 건선거도 바로 옆이니 충분히 가능해.
공습 이후, 해군 소속이 아닌 기술자들이 옆 조선소에서 몰려와 실시한 피해조사의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서귀포 해군기지의 수심은 평균 15미터, 최대 24미터 정도였다. 착저한 전함을 들어 올리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 게다가 어차피 구시대의 고물일세.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신형 전함이 뽑히는 마당에 갑판 방호력도 약한 구시대의 고물을 수리해서 쓰는 것이 가성비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함대장은 그렇게 넬슨을 달랬다.
지금 고려는 탐라 해군기지의 피해가 문제가 아니었다.
동시에 진행되었던 오포 공습과 개성 공습이 더욱 문제였다.
백제 광도현(히로시마) 오포(구레포)에 있는 백제 해군기지도 탐라와 비슷한 공습을 받았다. 그곳의 공격은 훨씬 더 교활했다.
아무리 백제가 고려어를 쓴다지만, 그래도 전통적으로 화어(왜어)를 쓰는 곳도 많았다.
문화도 비슷했다. 그러니 대화의 첩자들은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무시무시했다. 천 단위가 훌쩍 넘는 백제군이 사망했고, 세토 내해를 통제하던 백제 해군은 치명타를 입었다. 백제 해군뿐만 아니라 왕립정보조사실에게 끔찍한 치욕이었다. 왕립정보조사실은 대화 무기가 중화에 넘어간 것은 파악하여 보고했지만, 정작 국내 방위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옛 관습이 남아있었다면 단체로 할복이라도 해야 했을지 모른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들의 함대 증강―혹은 복원―을 위해선, 지금 여기 가라앉은 배들이 필요할 텐데. 이것도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이었다.
민간인 피해가 엄청났던 개성은 무려 몇천 단위의 시민이 희생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부상자와 2차 피해자까지 합치면 거의 만 단위, 어쩌면 십만 단위에 육박하는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정확한 사상자 집계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실로 끔찍한 일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공습이었다.
해군기지에 대한 공습은 어쩌면 이해할 수 있었다.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 자폭 비행기를 동원하는 등 온갖 미친 짓거리를 전부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공격 대상이 군인이었던 이상, 어쩌면 백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건덕지가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개성 공습은 모든 이의 상식 너머에 있었다.
역대 중화의 지도자들은 백성 알기를 우습게 알았다. 수십만 명의 포로를 생매장하고, 주 하나를 효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도륙하던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오로지 적에게 공포를 불어넣기 위해 그리 행했다.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기 위해 무고한 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습진균은 그들이 그들 내부에 했던 수많은 짓거리를 외국에 한 것이다. 고려와 조선에게. 그들의 국민에게 ‘공포’를 불어넣기 위해서.
이것이 말이 되는가?
세상은 달라졌다. 달라져야만 했다. 그 야만스러운 시대에서 벗어나 지금 6세기엔 더욱 진보한 문명이 되었다고 자신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 꼴을 보라.
누가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2함대장은 이를 악물고 전화 통화를 이어나갔다.
―어쨌든 최초 피해 보고는 열다섯 척으로 올라갔어. 언론에도 그렇게 발표를 할 것이고.
피해를 속이진 않았다. 오히려 가능한 한 과장했다.
위에선 그것을 원했다.
물론 이것은 해군의 불명예가 될 것이다, 2함대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안고 갈 문제다. 네가 아니라.’
늙은 군인은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2함대장으로서 그는 마땅히 모든 책임을 수용할 것이었다. 모든 오욕도 수용할 것이었다. 어쩌면 청문회까지 겪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노장군의 몫이다. 젊은 장교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젊은이에겐 그런 속내가 담긴 말을 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그는 넬슨에게 명령을 내렸다.
― 넬슨 제독, 그대의 탐라전단에게 임무를 내리겠다.
유선상으로 참장의 계급을 받은 호레이쇼 넬슨이 고개를 들었다.
두 눈에는 서서히, 마치 용암 같은 분노가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 그는 승리함의 함장이 아니게 되었지만, 오히려 더욱 많은 것이 가능해졌다.
― 가용한 병력을 이끌고 즉시 보복하라.
적들은 선전포고 없이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니, 고려는 갚아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2함대장은 만족했다.
전례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제도가 발칵 뒤집혔는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시중의 전쟁 선언은 아직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손가락 빨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정도는 어디까지입니까?”
― 모든 수단을 허락한다.
넬슨이 입술을 짓씹었다. 그는 함대장이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았다.
“중화인은 이제 절대로 바다의 아름다움을 감상하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