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화 탐라 공습
중화제8제국
청도항군사기지.
어두침침하고 습한 방.
한 사내가 모진 고문을 받았는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 앞에서, 중화제국의 화 자 완장을 찬 사내가 빈정거리고 있었다.
“하, 날고 긴다는 고려 정보요원이 이렇게 붙잡히다니. 마치 썩은 생선처럼 악취를 풍기며 이렇게 대롱대롱 걸려있다니. 우스꽝스럽지 않나? 네놈도 그리 생각하지?”
사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미 의식이 반쯤 흐려진 상태였다.
“일어나!”
중화국 장교가 물을 끼얹자, 고려 정보요원이 비로소 푸 하는 한숨을 뱉으며 의식을 차렸다.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
삼도천에서 끄집어내어진 고려 정보요원은 그 말을 듣고 삐뚜룸하게 입을 씰룩였다. 온몸의 고통은 이미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지만, 아직 그의 의지는 단 1할도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나어로 빈정거렸다.
“기… 기대가 되는구나. 어디 한…번… 해보거라….”
“이 쓰레기 같은 자식이 어디서 혀를 놀려!”
중화제국 요원이 성질을 냈다.
그는 불에 지진 인두를 치켜들며 피부에 가져다 대었다. 매캐하게 나는 연기와 살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고려의 정보요원은 비명 한마디 지르지 않고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중화제국 요원마저도 그 모습에 기가 질린 듯 인두를 내려놓았다.
다행스럽게도 때마침 문밖에서 소리가 났다.
“팽 중교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운 좋은 줄 알라. 이놈 다시 독방에 가둬. 한눈팔지 말고 똑바로 감시해!”
“예!”
소비에트와 중화제국 모두 자국 내의 첩보력은 무시할 바가 아니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몇 수 먹고 들어가는 법이다.
그렇기에 정보요원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사실 평상시 같았으면 아무리 그래도 충분히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긴 했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최고의 정보요원이라 불리는 그였으니.
하지만 고급 정보에 대한 욕심이, 조금 더 세밀한 내용을 파고들려는 욕심이 화를 자초했다.
이젠 마흔이 넘은 나이도 나이기도 했고.
덕분에 몹시 중요한 정보를 캐내긴 했지만 붙잡힌 탓에 아직 보고하진 못했다.
요원은 안타까움의 한숨을 삼켜야 했다.
‘빌어먹을, 이걸 알려야 하는데.’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다.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았다. 특히나 자신이야말로 호랑이라면 더더욱.
그는 의식을 잃은 척 병사 둘에게 질질 끌려가며 주변의 지리를 다시금 탐구했다.
‘제대로 된 감옥이 아니다. 기껏해야 군사기지 안의 수감소 같은 곳이야. 병한테 징계를 내릴 때나 쓰는.
날 멀리 이송하진 못한 모양이구나. 하긴, 공습 준비로 바쁘겠지.’
― 쿵
그는 감옥 바닥에 나뒹굴었다. 차가운 한기가 상처를 타고 올라오는 듯해 온몸이 떨렸다.
그럼에도, 그는 병사들이 나가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해.’
대외국 요원으로서,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는다면 그동안 쌓아올린 불굴의 요원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주변 사물들을 고찰했다.
― 꺼흑, 끅
마침내 그는 몸도 성치 않은데 혼자 여러 도구로 배관을 자르고, 간수를 기만하여 죽이고, 몸을 비틀어가며 수감소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수감소를 빠져나와 본 광경은 참담했다.
“젠장, 젠장! 늦었다…!”
이미 활주로에는 수많은 비행기들이 도열해 있었다.
수는 엄청나게 많았다. 중화제국의 저력을 무시하는 자들이 봤다면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물론 기술력은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목재와 천으로 만들어진 옛 대전쟁 시절의 비행기라니, 코웃음을 칠 정도였다. 누군가는 저것들이 공장이 아니라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것들이 아니냐, 그렇게 질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누구보다 저것들을 잘 알고 있는 요원은 이를 갈았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자신은 저것들이 무엇인지 알았다.
“어서 빨리 알려야 해!”
그는 서둘러 몸을 옮겼다. 하지만 수감소보다도 위에 있는 병력들이 더 많았다. 그는 이리저리 장애물을 피해 가며 자리를 옮겼지만, 안타깝게도 고문의 흔적이 꼬리를 남기고야 말았다.
“……음? 뭐야, 이 핏물은?”
‘소음기 달린 베레타 9, 아니 5 한 자루만 있었어도….’
가진 건 오로지 적에게 빼앗은 소총과 대검 한 자루. 사방이 적인 마당에 총을 쓸 순 없으니, 사실상 대검이 전부였다.
세 명의 순찰조가 병진단총을 치켜들며 핏물이 이어지는 경로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요원은 끝까지 도움 안 되는 자신의 육신을 욕했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근육을 팽팽히 곤두세우며 마지막 칼춤을 출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 픽
보통 제아무리 소음기를 장착했더라도 총소리는 시끄러웠다. 방방곡곡에 들리지 않는다 정도였지, 저렇게 억눌린 소리가 나오진 않았다.
요원은 잘 알았다. 저건 아주 특수하게 개발된 특수전용 권총이다. 정윤―007 소음권총은 약실과 소음기가 일체화된 권총으로 무시무시한 소음 감소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고려 첩보부만 사용하는 무기였다.
“이런 썩을 놈들. 내 분명히 날 신경 쓰지 말라 했을 텐데?”
그의 투덜거림에, 바로 근처에서 고려어로 대꾸가 날아왔다.
“선배를 놔두고 어딜 갑니까?”
호시탐탐 기지를 살펴보며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간을 보던 사내들은, 기어코 혼자 힘으로 반쯤 빠져나온 선배를 보고 감탄하다, 결국 그를 무사히 탈출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보고는?”
“공습에 대한 정보 전달은 이미 했습니다.”
탈출한 요원이 발을 동동 굴렀다.
“저 빌어먹을 것들이 자살폭탄 항공기라는 것은 보고했나? 폭탄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이런 공세가 몇 번이 더 기획되어 있다는 것도?”
“…그건 처음 듣는 소립니다만….”
“이런 젠장, 빨리 가자!”
그들이 온 방면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곧 군 기지 내에서 사람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수감자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전파된 모양이다.
“근처에 탈출선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건 잘했군.”
― 타타타타
탈출하는 길도 험난했다. 세 명의 요원은 엎치락뒤치락 싸우며 탈출선까지 자력으로 헤쳐 나가야 했다. 군사기지인 만큼, 적은 수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화력도 권총과 기관단총의 싸움이다.
“어디까지 가야 해!”
“연삼도까진 가야 합니다!”
“시팔!”
그들은 빗발치는 총탄을 넘나들었다. 슬슬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연삼도 탈출지점에 가까워지자 붙잡힌 요원을 구하러 온 다른 요원들이 급하게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뭐 하는 짓이야? 아주 나 여기 있소 그러지 그래?”
“괜찮습니다!”
― 탕 탕
바로 앞에서 검은 복장을 하고 있는 사내들이 스르르 일어났다. 눈에는 무겁고 둔해 보이는 이상한 것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어둠 속인데도 그들의 총은 결코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추격하던 중화제국의 병사들이 마치 허수아비 쓰러지듯 쓰러졌다.
“제3특수전술대대 합상혁 정윕니다. 모두 무사하십니까?”
“거 존나게 반갑구만.”
대외국 요원조차도 눈을 떡 벌릴 만큼 완벽히 위장한 사내가 다가왔다.
“빨리 가시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은 컴컴한 고무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저 멀리 완전 소등을 한 위장작전용 고기잡이 배 한 척이 위태롭게 떠돌고 있었다.
모든 인원이 탑승하자, 배가 시동을 걸고 부랴부랴 해역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모두는 웃을 수 없었다. 그제서야 밀려오는 통증도 통증이지만, 대외국 요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저 멀리 적의 공항을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중화제국의 비행기들이 활주로를 이륙했다. 그 숫자는 엄청났다. 눈대중으로 대충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몇백 대?
몇몇 전투기들은 그래도 나름대로 잘 만들려 애쓴 단엽기들이 있었다. 대화의 신식 전투기인 히죠(ひちょう)―1식 전투기의 모습도 보였다. 면허생산인지 기술이전인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공중전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들었다.
하지만 절대다수는 형편없어 보이는 목제 복엽기들이었다. 저것이 지금 중화제국의 기술력 수준이었다. 황조롱이 하나만 있다면, 빙빙 돌면서 몇 차례나 낚아챌 수준의 허섭쓰레기에 불과했다.
원래라면 항속거리도 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착륙장치도 허술했다. 나무로 만든 착륙장치가 제대로 되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애초에 귀환할 생각이 없다면? 착륙할 생각도 없다면?
그런 사소한 흠결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셈이다.
대화의 기술과 중화의 산업력으로 만든 츠루기(剣)라는 비행기들이 단 한 개의 고폭탄, 혹은 독소폭탄을 매달고 여명이 떠오르는 하늘에 수도 없이 이륙하는 것을 보며 요원들은 입을 앙다물었다.
* * *
탐라.
당산봉 군사기지.
이곳은 말은 군사기지지만 서귀포 해군기지마냥 거창하고 대단한 기지는 아니었다.
해군 소속의 육상 근무 요원 십여 명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병력 규모완 달리 기지의 시설은 대단했다.
엄청난 크기의 철골 건물들이 몇 개나 서 있었다. 일반적인 주민들은 저게 대체 뭔가 하며 궁금해하겠지만, 기밀시설이라 알려줄 수 없었다. 철책도 엄중하게 두 겹이나 쳐져 있었다.
물론 탐라에 있는 고위급 장교들은 대부분 알았다.
이것은 전파탐지기이며, 저 잠재적 적국인 중화제국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지어졌다.
무슨 원리인지 관심 없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곳에 복무하는 병사들은 상급자로부터 그들 부대의 중요성을 누누이 설파받았다. 이 전파탐지기는 견시가 불가능할 정도의 먼 곳까지 탐지를 해낼 수 있다고 들었다.
지구는 둥그니 높이 올라갈수록 탐지할 수 있는 거리가 높아졌다. 당산봉은 해발고도 백오십여 미터였고, 백 미터의 철골이 세워져 있으니, 거진 오륙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범위 내의 이상을 탐지할 수 있었다.
탐라의 반대편, 우도 소머리오름에도 마찬가지의 설비가 있었다. 물론 그곳은 중화제국을 감시하는 대신, 대화제국 쪽을 감시하도록 만들어놨겠지만 원리는 비슷했다.
“에이 씨. 재수없는 새끼.”
정교 하나가 그렇게 말을 했다. 본부의 상황장교로부터 마침내 이곳저곳을 들쑤시던 당직함장이 퇴근했다는 소리가 들려온 직후였다.
모든 군대가 그러하듯, 항상 원리원칙에 집착하는 지휘관은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병사들이나 중간 간부가 욕을 하는 것을 막진 못했다. 아마 그 지휘관들도 자신이 욕을 먹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나도 자러 갈랜다. 너희들도 잘하고 있어라. 저런 사람 한둘이 아니니까.”
“예. 쉬십쇼.”
정교도 밤을 지새웠기에 퇴근 준비를 했다. 하지만 후임 부교가 갑자기 그를 불러세웠다.
“저, 신효섭 정교님?”
“응?”
“이거… 이거 뭡니까?”
전파탐지기의 화면에서 미약한 신호가 보였다. 이게 새인지 뭔지 구분이 안 되었다. 신 정교는 처음엔 새라고 대답하려 했다. 고려의 철제 단엽기들이 훈련할 땐, 이것과는 명백히 다른 신호들이 보였다.
그러나 어제 들은 말이 있었다. 어제 신 정교는 넬슨에게 탈탈 털렸다. 왜 중화제국이 금속 단엽기로 공격하는 것만 상정하느냐는 말이었다. 목재와 천으로 이루어진 단엽기가 전파탐지기에서 어떻게 관측되는지 왜 염두에 두지 않느냐는 꾸지람이 있었다.
‘아니 시발, 걔네가 만드는 그 구시대적 목제 복엽기로 여기까지 어떻게 날아오느냐고. 터르노보 항공전도 아니고. 돌아가지도 못할 텐데.’
차라리 강화, 아니 대화의 전투기가 오는 것이 더 현실성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 징조는 서쪽이 아니라 우도 소머리오름에 있는 기지가 먼저 발견할 것이고.
하지만 지금 신 정교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철새는 확실히 아니었다. 사실 군 생활 내내 철새가 지랄하는 것만 봐 왔기에 이번에도 철새라 하고 싶었지만, 철새는 저렇게 똑바로 오지 않았다. 저렇게 많지도 않았다.
화면에는 소름이 끼칠 만큼 많은 무언가가 있었다. 정교는 부교에게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크고 빨간 단추를 눌렀다. 미친 듯이.
― 와아아아앙
귀를 찢는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몇 초 뒤 상부와 연결된 전화선에 불이 났다. 방금 막 상황을 인수인계받은 상황장교는 대체 무슨 일이냐 물었고, 신 정교가 더듬거리며 보고한 내용을 듣고는 자리를 비웠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굵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누군진 몰라도 장군이었다. 그건 확실했다.
― 확실해?
“그… 그… 모르겠습니다?”
사실 확실한 것은 세상에 없었다. 자기의 군 생활 내내 통신상태 점검이나 훈련 상황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눌리지 않았던 단추였다. 군 생활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눌러놓은 것은 눌러놓은 것이다. 빌어먹을 넬슨 새끼. 그 새끼가 어젯밤 내내 지랄만 안 했어도 훨씬 더 여유롭게 대처했을 텐데.
신 정교는 그제서야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쓴 느낌이 들었다. 어, 이거 어떡하지?
신효섭 덕에 탐라 서귀포 해군기지는 난리가 났다.
꽤 오랜 시간 동안의 평화였다. 사실, 탐라전단도 제대로 된 전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현세대의 군인들이 다들 그렇듯.
― 공습 경보! 실제 상황!
그러니 실제 상황이라는 말이 너무 어색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공을 차거나 혹은 해변의 풍경을 즐기며 독서를 하던 사람들은 훈련 덕에 본능에 새겨진 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저 멀리 북서쪽 방면의 하늘에서 엄청난 수의 항공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완벽한 실제 상황이다. 거리상 몇 분 내로 다가올 것이다.
어제 당직을 선 승리함은 수병들이나 장교들이 모두 안에 있었다. 넬슨도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 승리함은 곧바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항공 공습경보다. 항구에 처박혀 있으면 위험하다. 일단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
너무나 많은 전함들이 정박한 탓에, 항구가 포화지경이다. 이곳에 있다간 멍청하게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다. 도움 되는 것이라곤 전함에 있는 대공포였는데, 그 대공포를 쓸 바엔 해군기지 내의 다른 대공포를 쓰는 것이 더 맞았다.
해안으로의 공습도 대비해야 했지만, 일단 보이는 것처럼 항공 공격이 주공격인 듯했다. 승리함은 빠르게 빠져나갔다. 어제 굴려진 함정들도 대체로 빨리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완편이 아닌 전함들은 몹시 굼떴다. 넬슨은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저 항공기들의 목표가 어디일지 삼척동자도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공군은 어디에 있는 거야?”
넬슨의 그런 외침에 응답하듯, 동쪽에서도 상당한 수의 전투기가 날아왔다.
“와! 이 새끼들아, 너희는 다 뒤졌어!”
수병들이 방방 뛰며 환호했다.
황조롱이들이 기관총을 긁어대자 복엽기들이 하늘에서 폭발했다. 황조롱이도 맹금류다. 날카로운 발톱은 일반 새들이 버틸 수 있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황조롱이를 모는 해군 항공대는 죽을 맛이었다.
“조심해! 들고 있는 폭탄의 위력이 무식하게 강하다! 너무 근접해서 싸우지 마!”
적 표적을 긁어버리는 것은 숨 쉬듯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적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시간 낭비 없이 근접해서 해치우고 싶었지만, 폭발에 휘말리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천천히 잡자니, 이 폭격기의 의도가 너무 선명했다.
뒤 없이 폭격할, 아니 자폭할 비행기다. 비행기가 어찌 이렇게 악랄하게 설계되어 있는지, 고려군 조종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래에 있는 전우들이 받으리라. 조종사들은 애가 달아올랐다.
“한 놈만 더, 한 놈만 더!”
허나 그 와중에도 그들을 막는 무리가 있었다.
히죠 1식. 대화의 전투기가 츠루기의 파도 뒤에서 한 박자 늦게 다가왔다. 엄밀한 말론 대화의 전투기도 아니었다.
중화제국의 화 자가 칠해진 히죠라니. 해군 항공대는 비로소 이 공습이 철저하게 계획된 거대한 작전의 일부라는 것을 파악했다. 하긴 그래야 탐라기지를 공격한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겠지. 들은 바가 없으니, 선전포고도 안 했을 것이었다.
“발목 잡지 마, 이 새끼야! 네놈들이 우리를 상대하려면 삼십 년은 이르다!”
황조롱이들이 격노하며 히죠를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목제 복엽기를 찢어버리는 바람에 총탄의 대부분을 사용한 황조롱이들이 그보다 두 체급은 아래의 전투기들에게 격추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조종사 지휘관이 눈물을 머금고 후퇴 명령을 내렸다. 탄과 연료를 다시 채우고 와야 했다.
그리고 그사이에도 츠루기들은 천천히,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황조롱이 한 대가 그 옆을 지나가며 문득 비행기에 탄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어 눈을 끔벅였다.
안에 탄 사람은 고려군 조종사를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정신이 확실히 이상해 보였다.
평범한 사람도 일류 조종사처럼 만들어주는 최고의 각성제, 빙독(메스 암페타민)에 취한 중화의용공군 소속의 병사는 죽음 앞에서 초연했을 뿐만 아니라 실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항구에서 목표한 전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직하게 그곳으로 향했다. 다른 동료들도 뒤따랐다.
사실 비행 연습을 따로 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저 이론적 설명만 몇 번 듣고, 복좌기에서 간이로 체험해본 적이 전부였다. 하지만 비행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이륙이나 비행이 아니라 착륙이었다. 어차피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전투 기동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부분들을 과감히 생략했으니 중화조종사들은 모두가 능력이 있었다. 자신의 묫자리를 잘 보고 죽을 능력이.
사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방공포였다.
하지만 이미 이들은 해군기지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날개가 터지는 것도 상관없었다.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저 땅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었다. 격추당한 비행기는 더 빨리 떨어진다. 실로 감사할 일이다.
― 쾅
마침 그의 비행기도 불길에 휘감겼다. 대충 만든 천과 목재, 그리고 기름을 타고 화염이 번졌다.
만능의 약이라 부르는 빙독도 불타 죽는 고통을 막아주진 못했다. 그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하늘에서 이승을 하직했다.
하지만 그 덕에 무거운 폭탄은 자연스럽게 본체와 떨어졌다. 그리고 그 폭탄은 전함의 갑판으로 향했다.
* * *
― 남쪽으로 기동하여 빠져나가라. 넬슨 함장은 준비된 함정으로 적 공격을 피하고 추후 다가올 수 있는 적 해상 병력을 경계하라!
― 확인.
함 내의 다른 이들과 같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넬슨은 명령을 받으면서도, 일단 대공용 무기가 충실하게 편제되어 있는 순양함 두 척을 이용해 최대한 비행기들을 격추하려 했다.
애초에 저 기지에 꼬라박는 것 자체가 목적인 비행기들을 뭘 어떻게 하겠는가. 저들은 넬슨의 함대에는 별 관심도 없었다. 사실 방공을 위해 기동하는 함대에게 꼬라박는 것을 주문한 중화장교도,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진 의용대도 없었다.
― 이런 씨…!
― 콰앙
기동이 불가능한 함대사령부는 폭탄에 직격당했다. 아니, 목제 폭탄비행기가 와서 들이박았다.
그 덕에 철근강회 건물이 박살이 났다. 저들이 눈이 있다면 사령부가 어디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곧바로 함대사령부가 침묵했다. 그 안에 있던 전단장과 탐라기지사령관 등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이 명백했다.
넬슨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멍하니 최선임자가 된 자신을 쳐다보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침착하게 전 함대에 무전했다. 어딘가엔 그보다 선임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고려군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지시였다.
― 전투준비가 되지 않는 함선에 탄 수병들은 전부 이함하라.
반발성 무전이 빗발쳤다.
모두가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 분노에 차 있었다. 하지만 넬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다시 한번 전파한다. 아직까지도 항구에 있는 함선 수병들은 이함하라. 대공포를 운용하지 않는 병사는 방공호로 향하라.
넬슨의 망원경으로 정박한 전함에서 수병들이 빠져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폭 비행기가 뒤늦게 전함에 와서 들이박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항구 내에 정박한 전함들은 사람은 물론이고 탄약도 별로 없었다.
어쭙잖게 전함 대공포를 쓰며 항거한다고 더 늦었다면 모두 불타 죽을 뻔했다. 지금은 전함 대공포로 뭘 할 단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원래 탐라전단 소속의 명성급 전함 하나가 유폭되었는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다행스럽게도 방금 무전으로 부랴부랴 빠져나온 수병들은 크게 다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공세는 수그러들었다. 전력을 다 긁어모은 해군 항공대가 재출격했다. 한 대의 전투기도 다시 황해를 건너가지 못했다.
물론 저들의 자폭비행기는 전부 없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작전을 성공했다.
넬슨은 해상에서 어떤 위협도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곤 기지로 돌아갔다.
“피해는? 인적 피해부터 보고해.”
“사망자 백삼십일 명, 부상자 오백육십오 명, 민간인 사망 아홉 명입니다.”
“물적 피해는?”
“전함 열다섯 척 침몰, 두 척 좌초, 순양함 다섯 척 침몰, 구축함 일곱 척 침몰, 황조롱이 전투기 다섯 대 격추. 이상입니다.”
적의 공세는 보고할 필요 없다. 저들은 전부 죽었다. 그건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넬슨의 허무함은, 공세를 격퇴해냈다는 것으로 위안받을 것이 아니었다. 공습이 꽤 빨리 알려진 덕에 피할 시간이 있어 사상자가 생각보다 적었다는 것으로 위안받을 것도 아니었다.
하늘, 적의 공격은 하늘이었다. 그리고 집요하고, 섬뜩했다.
군 수뇌부는 공세가 있을 거라는 첩보를 받았고, 경계태세도 격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태만한 경계를 질책한 것이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이 피해는 훨씬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군사와 무기체계가 강군을 담보한다. 하지만 긴 평화는 강군조차도 나약하게 만들었다.
넬슨은 고려군이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고려군은 아니었다. 정신적인 면에서 중화제국은 강했다.
중화제국은 국내외적인 수많은 분쟁을 통해 경험치를 축적했다. 고려군 내에서 그 정도의 경험을 지닌 부대는 외인부대밖에 없었다.
특히, 그 이상한 약물은 더더욱 그랬다. 빙독을 복용한 중화제국군은 마치 귀신 들린 놈들마냥 싸워대곤 했다 들었다. 그러니 이 미친 짓을 가능케 했으리라.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닌 모양이었다.
[작가의 말]
히죠1식은 나카지마에서 만든 91식 전투기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중화제국의 교급(영관급) 계급은 고려제국의 교급(부사관급) 계급과 다릅니다.
571, 572화 부제가 변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