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화 우리는 왜 싸우는가(2)
상해공업단지.
“여기서 나가시오!”
무장한 중화군 떼거리가 공장 안에 있던 노동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서 끌어냈다.
눈앞에 들이밀어 진 총구 앞에서 사람들은 무력하게 재산을 내버려 두고 그들이 지시하는 대로 바깥에 손을 들고 설 수밖에 없었다.
비록 쇠로 된 배관을 이리저리 잘라 붙인 중화제국 특유의 싸구려 병진(丙辰) 단총이지만, 어쨌든 비싼 총이든 싼 총이든 총알이 발사되는 원리는 거기서 거기였다.
살살 맞을 수도 없으니 목숨 아까우면 굴복하는 편이 맞았다.
그 와중에도 조선인 사장이 분통을 터트렸다.
“약속과는 다르잖소? 어떤 일이 있어도 상해 특별지구에선 기업들이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무려 류용 때부터 약속된 말이었다. 황전겸을 지나 심지어 습진균까지 이를 보증했었다.
“대총통께선 그런 약속은 한 적이 없다! 입을 다물라! 살려줘서 본국에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은혜로 여겨라!”
‘좆같은 중화 새끼들….’
하지만, 지금의 습진균은 이전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는 이곳에 여러 꿀벌들이 꼬이길 원했다. 벌통의 꿀을 채밀하는 방법과 지금의 이 행동은 딱히 큰 차이가 없었다.
이런 풍경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중화제국은 어느 순간부터 외국계 기업을 국유화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어차피 고려가 대륙봉쇄령을 내렸으니 이들 기업의 공장들은 언제고 철수하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그럴 바엔 이들이 완벽하게 철수하기 전에 기계며 여러 가지 시설들을 점유하는 것이 중화제국에게는 이로웠다. 재산권이라는 개념은 중화인들에게는 국가와 대총통의 명령하에선 충분히 침해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자들은 예맥한계 기업들이었다. 유럽 기업들은 진작부터 중화 땅의 공장을 철수한 상태라 피해가 심하진 않았다. 중화가 이럴 줄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예맥한의 앞마당을 존중하는 행동이었을 뿐이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예맥한, 그중에서도 특히 조선의 물적 손해가 막심했다.
이 중에는 가구나 가발, 종이, 염료 등의 공장도 있었지만, 중공업 공장도 있었다.
조선이 공식적으로 이를 항의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받진 못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흔이 안 되는 나이에 조선 수상이 된 김조순은 뒤이어 고려에 연락을 넣어 어떻게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서도 고려가 뭘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진심으로 이런 결말이 초래될 줄 몰랐던 거요?”
“…….”
언제든지 잠재적 적국이 될 나라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이런 운명이 초래될 것을 모른다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고 너무 안일한 말이 아니던가.
고려의 정치가들은 지금 일부 조선사람들의 행위는 조명전쟁 당시의 온갖 찬란한 일들을 해낸 조선의 위대한 시대에 대한 똥칠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후로도 눈덩이는 더욱 빠르게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초한의 싸움도 그러했지.”
진균은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도, 중화 인민의 의지와 단결력이 함께한다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어쩌면 이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 비슷한 말일지도 몰랐다.
그토록 승승장구하던 습진균도 거사를 앞에 두고 흔들리고 있었다. 자꾸만 미흡한 준비과정과 기타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이 마음에 걸렸다.
통일 중화가 대단한 능력과 더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 그것은 고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실 습진균의 객관적 목표는, 중화 자체가 고려 내에서도 북려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첫 번째였다. 하지만 아직 그것도 요원했다.
자신들은 발전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온전히 그들만의 것이던가. 반대로 지금은 저들이 시간이 필요한 순간일 텐데.
그러니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순 없었다.
고려가 다시금 날아오른다면 중화는 그 그늘 아래에서 한 번도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쥐어뜯길 것이었다. 그도 고려가 최근 엄청난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당장 곧바로 무언가를 만들진 못하겠지만 몇 년 내에 그 증강된 군비는 무기로 되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소비에트가 느끼는 위기의식 이상으로, 중화는 고려를 지극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소비에트는 적어도 공산주의 라는 대체할 수 없는 이념을 지니고 있었지만 중화민족의 최대 우월성을 주장하는 중화주의는 필연적으로 고려의 존재 앞에서 빛이 바래게 되는 셈이었다.
고려라는 절대패권국이 존재한다면 중화주의는 항상 아류였다. 짝퉁이었다. 마치 그들이 함부로 베껴 생산하는 수많은 물자들처럼.
습진균도 알았다. 자신의 집권 시작부터, 고려와의 마찰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러니 필연적으로 벌어질 일이라면 당장 최대한의 이득을 버는 것이 옳았다.
멍청하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주 세고 거침없이 달려 나가야 했다. 중화생활권을 구축하고 수호하려는 중화의 의지가 아주 대단하며, 그것을 건드리면 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불특정한 적들에게 각인시켜야 했다.
비단 군사적 공격뿐만 아니라, 민간에 대한 공격도 시행해야 했다.
인질을 삼아야 했다. 저들이 벌벌 떨며 두려워할 만한.
중화는 예맥한계 국가들―주로 조선―이 이런 인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인민도.
고려도 번국들의 고통과 피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그토록 도덕적으로 대단하고 무결한 고려와 자비로우신(혹은 자비로워야 하실) 황제 폐하께선 더더욱.
습진균은 이 초반의 우위를 기점으로 조약을 체결하길 원했다. 한번 조약으로 고려를 구속한다면 그들이 먼저 어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리고 그렇게 천하삼분지계가 완성된다면, 중화는 귀중한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한다면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화교와 화인들로 하여금 수많은 기술들을 수집하도록 해 바야흐로 중화에 황금기를 불러올 수 있으리라.
습진균의 말에 관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는?”
“동시에 행동을 개시하겠다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쇼군에게 고맙다는 전언을 보내라.”
사실상 한배에 탑승한 마쓰다이라 타카타케는 많은 것들을 해주었다.
소비에트와 잉글랜드의 사이 이상으로, 중화와 대화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중화의 입장에서 대화는 협력할 만한 상대였다. 그들의 제일목표는 열도 재통일이었고, 그 열도는 대중화공영권에는 속하지 않았으니 충분히 눈감아줄 수 있었다. 특히나 그들이 만약 충분한 목적을 이루었을 땐 대화령 해남도를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했을 땐 더더욱.
대신 대화는 주나라의 영유권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는 것이 좋았다. 주나라를 점령하겠다는 말은, 사실상 태평양 방면의 고려 해군을 와해시켜야 가능한 말인데, 그렇다면 작전부터 화려하게 성공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지금은 대화가 제공한 기술을 음미하는 것이 좋았다.
사실 대화의 그런 독특한 기술력이 아니었다면, 중화는 무력을 투사할 수단조차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입수한 정보는 확실한가?”
“예. 탐라에 많은 전함들이 모였습니다. 개성의 방비도 허술합니다.”
다음 달이면 또 예맥한끼리 통합 해군 훈련을 하는 시기다. 고려는 이번에야말로 그들의 힘을 보여주려는지 많은 전함을 끌고 왔다. 첩보력의 한계로 한 척 한 척의 존재를 세밀하게 파악하긴 힘들었다.
다만 화교와 여러 어선을 통해 멀리서 자료는 확보할 수 있었으니, 저들이 2함대의 많은 전력을 탐라에 집결시키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계란도 한 번에 깨지지 않게 나누어 담는 것이 옳으니.
“작전을 승인한다. 그대들은 이번 작전에 중화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것을 유념하라. 실패란 없을 것이며, 오로지 승리만이 허락된다. 알겠는가?”
“예, 각하!”
관료들이 복명복창했다.
중화제국은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확실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 * *
고려.
탐라.
서귀포시.
“오랜만입니다. 형님.”
“오, 나보!”
나보는 아주 오랜만에 뵌 자신의 의형, 넬슨을 보고 경례를 붙였다. 넬슨은 그 경례를 받아주는 대신, 가볍게 포옹했다.
“오랜만이구나, 동생아.”
생도 시절보다도 임관 이후에 오히려 더 자주 만났던 둘이었다. 다만 지금은 정령 계급의 넬슨이 탐라전단 소속의 함장으로 부임한 상태였기에 몇 년간 보지 못했다.
다행히도 나폴레오네도 이번에 개성주둔군으로 가게 되었으니, 두 의형제는 다시금 해후할 수 있었다.
둘은 사이가 굉장히 좋았다.
아주 먼 옛날의 인연도 인연이었지만, 둘 다 동료들에겐 ‘어딘가 성격이 모나고 괴팍하며 독불장군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끼린 상대방의 능력과 인품을 높이 사는지, 정작 대인관계가 좋지 않은 두 명의 사람은 서로 친했다.
친했으니 사과나무 아래에서 의로 맺은 삼형제(합상혁도 껴 있었다)가 되기로 한 것일 테지만.
“이제는 전함의 함장이 되셨다고요?”
“그래. 너도 진급했다며?”
“그렇습니다.”
“영관이 된 것을 축하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군생활 시작이구나.”
“그놈의 맨날 본격적 군생활 시작은….”
“하하!”
두 의형제는 군항을 거닐었다.
수병들이 지나가며 경례를 하는 것을 받아주던 넬슨이 어느덧 저 멀리 보이는 자신의 함선, 승리함을 가리켰다.
“보아라, 멋지지?”
“참으로 그렇습니다, 형님.”
실제로 전함이 참 멋있었다. 심지어 육군 장교도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승리함은 불굴급 다음의 전함으로, 명성급에 해당되었다.
이제는 좀 옛날의 전함이긴 하지만 전함은 전함이라 아직도 굉장히 중요한 전력이었으니, 탐라전단에선 지금도 주력 전함으로 쓰였다.
“탐라항에 이토록 많은 전함이 있는 것은 처음 보는군요.”
넬슨은 기밀을 대답하긴 뭐한지 그냥 웃어 보였다.
자그마치 스무 척이 넘는 전함이다.
물론 겉보기와는 다르게 전부 다 2함대 소속은 아니었다. 이곳저곳에서 가지고 온 불공과 불굴급 전함들이 많았다. 판매 목적이었다. 다음 주면 조선과 옥저, 백제의 관료들과 제독들이 이곳에 와 한바탕 흥정하기 시작할 것이었다.
그리고, 삼국과 고려는 더욱 강력해진 해군력을 과시하기 위해 연합훈련을 함으로써 앞으로의 도발 가능성을 억누를 것이었고.
운행을 제외한 완전편성이 안 된 함들도 많았지만, 굳이 남들에게 기밀을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 아무리 나폴레오네가 친하다 하더라도 타군이니까.
그래서 그는 화제를 돌렸다.
“하하. 전차들이 도열해 있는 것만큼이나, 전함들이 도열해 있는 것은 사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단다.”
오죽했으면 이 전함들이 전부 정박시키기 위해 탐라항을 대대적으로 증축했을까.
그것도 모자라 항구에 자리가 없어서 어차피 전체수리를 할 겸 기존 전단 소속의 함선들은 본국 조선소에 보낸 상태였다.
“술 한잔하고 싶지만… 내가 내일 당직이라.”
“아, 아쉽게 되었군요. 형님. 전 내일 아침 떠납니다.”
“그래? 개성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멀리 있진 않으니 오며 가며 자주 만날 거다.”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몸조심하십쇼.”
나폴레오네는 아쉬움을 삼키며 그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육군이 오래 있을 곳은 아니었다.
다음 날이 되자, 넬슨은 당직함장이 되어 완장을 차고 인수인계를 받았다. 하와이 함대 모항은 지금 벌써 밤일 것이다. 그곳에서 서귀포군항으로 전파한 지시사항들이 있었다.
― 중화제8제국 청도항과 대화국 횡수하항에서 적대적 행동 관찰.
탐라전단과 개성주둔군은 유념할 것. 경계태세 3단계로 격상.
“중화제국의 동향이 이상하다고?”
많은 일을 도맡아 하는 정보총국이나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보안국에게 밀려 존재감이 없었지만, 해군정보국이나 육군정보국 등의 각 군 정보국도 군사적 방면에서는 엄청난 수준의 첩보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중화제국과 대화의 행동이 어딘가 평소와는 다르단 걸 파악해냈고, 곧바로 그 사실을 2함대 모항에 전파했다. 함대에서도 경계태세 격상을 실시했다.
“그렇습니다.”
“흐음… 알겠다.”
넬슨을 지켜보던 상황장교와 상황병이 무서움에 몸을 떨었다. 넬슨의 깐깐한 성격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항구 본부에 있는 통합당직사령도 넬슨을 말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젠장!’
아니나 다를까, 넬슨은 곧바로 용수철 튀기듯 일어나더니, 온갖 곳을 들쑤시며 상황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함 내 휴가자 현황은?”
“여기….”
당직함장이 무언가를 시켜 부랴부랴 해 오면, 또 다른 일거리가 놓였다.
“군항 내 함끼리 무전 연락 점검해. 승리함 기준으로.”
“…알겠습니다.”
“자, 외곽에 있는 함정부터 경계태세를 점검해 보자고.”
하지만 항상 그러하듯, 이렇게 유별나게 무언가를 하는 날에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날 하루 종일 빡센 당직에 시달린 병사들은 눌어붙은 듯한 눈꺼풀을 비비며 다음 날 오전의 근무취침에 들어갔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넬슨의 욕을 실컷 해댄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부디 넬슨 정령이 자신의 꿈에서까진 나오지 않길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