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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70화 (570/653)

570화 속죄를 전구하다(4)

해안과 나란투야가 제도로 도착했을 땐, 이미 엔케바토르의 시신은 염습이 끝나고 입관 중이었다.

나란투야는 겨우 할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겐 다행스럽게도 할아버지의 얼굴은 고요한 평화와 미소가 내려앉아 있었다. 최후의 순간에 텡그리를 뵙고 모든 것을 끝낸 홀가분한 마음을 짐작하긴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아주 잠깐은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엔케바토르의 시신은 생전의 뜻에 따라 화장되었다. 유골과 함을 고려의 땅에 안치하진 않았다.

나란투야가 이를 잘 보관했다. 언젠가는 다시 저 고향의 땅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그곳의 초원에 묻힐 수 있도록.

장례가 끝나고 단둘만이 남은 곳에서, 해안은 애달프게 물었다.

“…갈 거라고?”

“모든 일이 끝나면 가야죠. 내 땅, 내 고향인데.”

나란투야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해안은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를 이 땅에 있게 만드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그들이 가족이 된다면, 또한 새로운 가족이 태어난다면 그녀는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해안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창천궁 태묘.

태묘는 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였지만 완전히 밀폐된 공간은 아니었다.

해찬의 시기부터 황궁개방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태묘와 사직, 원구단 등이 그때 외부의 국민에게도 공개되어 많은 이들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방되지 않은 평소에는 출입이 거의 뜸하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장소가 장소다 보니 창천궁 내에서 가장 엄숙한 곳이기도 했고 분위기 자체도 항상 차분히 가라앉아 있기도 했다.

건물은 만들려면 더욱 화려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건물의 성격상 엄숙한 절제미, 전통이 더 중요시되었다. 시대가 지날수록 칸수를 늘린 적도 있었지만 억지로 다른 기능을 증축하진 않았다.

모든 것이 현대화되는 와중에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기 마련이었으니.

부지도 원체부터 꽤 거대했다.

궁성 내부에 있었지만 창천궁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 근처에 있는 사직, 원구단 등의 부지도 그리 작진 않았다.

특히나 제실에 역대 황제들의 신주가 배치된 정전(正殿)은 그 건물의 크기가 상당했다. 때문에 좌묘실과 우묘실까지 모든 모습을 다 담으려면 정전의 입구에 가서 사진을 찍어야 할 정도였다.

현 해씨 고려의 태묘는 옛 왕씨나 동고려(건양)의 종묘에서 그 형식을 많이 따랐다.

대부분 석제 건물이라는 점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 양식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과거의 것과 비슷했다.

다른 것이라곤 제후국의 5묘제나 천자국의 7묘, 9묘제를 따르지 않고, 해씨고려 특유의 제도가 적용되었다.

현재는 10묘제를 따르고 있었다. 허나 후대에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이 독특했다.

정전에도 황제의 위계상 위치가 서로 달랐다. 위대한 황제―불천지위라 불렀다―는 정묘실에 있었고, 덜 중요한 황제는 좌묘실과 우묘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현재 총 열 명의 황제가 정묘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불천지위 8명과, 현 황제의 직계 2대조까지였다.

불천지위 황제는 정묘의 중앙에 안치된 태조와 그 주변의 태종, 세종과 성종, 무종과 예종, 명종과 강종을 뜻했고, 2대조는 인종과 열종을 뜻했다.

상민은 정전의 중앙계단의 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주변의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불경스러운 행동을 지적하거나 간섭하지 못했다.

물론 있다고 하더라도 정체를 알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제실 주인이 자기 묘실 앞에 앉아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왔느냐.”

해안이 다가오기도 전에, 상민이 불쑥 입을 열었다.

“먼저 와 계셨군요.”

해안은 조심스럽게 그의 옆으로 가 섰다.

상민은 계단의 먼지를 툭툭 쓸고는 그 자리를 두드렸다.

“앉거라.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소손이 어찌….”

주변에 뫼신 분 중 달리 살아계신 분은 없으시더라도 실로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상민의 강권에 해안은 눈을 질끈 감고는 그의 옆에 주저앉았다. 속이 후련했다.

선조를 찾은 해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할아버님께서 엔케바토르를 불러들이셨습니까?”

“그래, 청이와 내가 했지.”

상민은 선선히 긍정했다.

어찌 보면 엔케바토르는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 상민에게 놀아난 것도 꽤 많았다. 그의 죽음마저도, 어쩌면 상민이 의도한 바대로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엔케바토르도 기꺼워했을 것이다. 상민이 내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에.

그리고 그 행동은 헛되지 않을 것이었고.

광장에서의 함벽여츤은 그 파장이 그리 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금 당장 무언가 크게 바뀐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변화한 것은 있었다.

이번의 일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동안 신문에 쓰였던 남의 나라 일과, 직접 두 눈으로 본 일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늙은 노인의 고행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소신연비처럼 단기간에 화려하게 불태운 그런 것도 아니었으나, 그 오랜 기간 동안 고행한 노인의 인내심과 간절함 속에서 사람들은 숭고함을 찾았다.

그 고행은 이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고 있었다.

그가 다른 곳도 아니고 제도의 광장에서 그리했던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두에게 분명한 경종을 울렸다.

엔케바토르 덕에, 국민들은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해묵은 감정이 완전히 풀린 것도 그렇지만,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조금씩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그랬군요. 그럼 혹시….”

“그 손녀 말이냐? 그 아이는 존재조차 몰랐다.”

상민은 해안을 흘깃 바라보며 표정과 속내를 읽어보았다. 그러곤 문득 미간을 좁혔다. 태후가 황제 후사 문제로 그렇게 안달하는 이유는 알고 있었지만 해안에겐 따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은 여전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최근 국혼을 꺼렸던 이유는 따로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호라. 그렇구만.”

“…….”

상민의 미간이 풀어졌다. 그는 나지막이 웃기 시작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거라.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하란 말이다. 나도 네 아비의 문제에서 몇 가지를 깨달은 것이 있으니, 너에게 강요하진 않을 것이다.”

의외로 상민은 선선히 승낙의 표시를 했다. 그 또한 해청과 해완의 사례에서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해안은 나란투야와 결혼하는 가장 큰 난관이 해결되자 어안이 벙벙했다. 태조께서 허락하면, 황가의 어떤 어른의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었다.

허나 상민은 그의 오해와는 달리 정말 괜찮았다.

삼별초 시절부터 살아온 몸의 기억엔 몽골에 대한 감정이 존재하긴 했었지만, 이미 아득한 옛날에 삭아 바스러진 종류의 감정이었다. 오죽하면 서벌론도 처음엔 반대했겠는가. 그에겐 그 무엇보다도 국가적 이득이 우선이었다.

해안이 제대로 된 가정을 통해 행복을 누리고 후사를 보는 것이 훨씬 더 보기 좋았다.

국민들은 뭐라고 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은 그녀의 조부에 대한 약간의 애도 분위기까지 있었으니.

또한 망국 혹은 소국의 공주를 반려로 맞아들이는 기풍은 꽤 예전부터 있었다. 헬레나도 그랬고, 나디야도 그러했었다. 이미 익숙한 일이다.

몇몇 극소수의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황제가 사적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으며 전쟁을 촉진시켰다고 비방할 수 있겠지만,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애초부터 설득 불가능한 반전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놈들이라면 그걸 못 참고 꼭 한번 지랄을 할 것 같단 말이지.’

자신이 아는 그놈들이라면, 고려의 황실에, 고려라는 국가에 도발을 할 자들이 분명했다.

기분은 나쁘지만, 오히려 바라 마지않은 일이 아니던가.

* * *

사실상의 허락을 받은 해안은 나란투야가 슬픔을 회복하길 기다린 다음 곧바로 국혼을 준비했다.

지금까지의 미적거리는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전폭적인 행보였다.

부여씨 태후가 국혼 상대방이 나란투야라는 것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자포자기하며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도 열정적이니 둘 사이에서 그나마 빠르게 손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녀의 희망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이미 그분께서 허락하신 이상, 태후가 반대할 근거도 없었다.

사정상 국혼은 조용하게 치러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국혼날이 다가오자 분위기는 예상보다도 좋았다.

세상이 우중충할수록 축제가 필요할 때였고 대부분의 국민은 휴일로 지정된 날을 틈타 여러 가지 행사를 치르기도 하며 오랜만에 즐겁게 나들이를 나갔다. 황제가 가진 공휴일 지정권은 의외로 민간에게 굉장히 잘 먹히는 정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중화제국이 그새를 못 참고 시비를 걸었다.

― 더러운 몽골 유목민과 국혼을 올리다니, 고려의 국격에는 실로 어울리지 않는 미개한 혼사.

처음 외무부가 이 짤막한 외교 전문을 들었을 땐, 상서와 시랑 모두 넋이 나간 채 한동안 눈을 끔벅여야 했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아주 황제 얼굴에 금칠을 하는 축전을 보냈다. 관용의 미덕, 평화를 수호하는 어쩌고저쩌고하는 말들이 꼬박꼬박 들어가 있기도 했다. 특히 이번 일로 고려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길 원하는 나라들은 온갖 미사여구를 쥐어짜 내어 축전을 보냈다.

심지어 공산당이 들어선 잉글랜드에서도 괜찮은 축전을 보냈다.

소비에트는 침묵을 지켰지만, 그래도 시비를 걸진 않았다.

하지만 중화제국의 외교 전문은 외교적 용어로는 전혀 해석할 수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날것 그대로의 욕이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접수해야 하는가. 그동안의 외교 전문은 대체로 멀쩡하게 보냈던 중화제국이었던 만큼 그 충격은 배가되었다.

중화제국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고려 황제의 국혼은 아무리 당사자들이 조용하게 지낸다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사건 중 하나였다. 아주 큰 결과를 낳았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다른 세계가 옛 구적마저도 품에 안는 고려의 관대함을 감탄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때, 중화제국만큼은 웃지 못했다.

그동안 습진균이 했던 대부분의 정치이념적 측면에서의 중화주의란 명백한 적을 지정한 뒤에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그 명백한 적에는 유목―멘셰비키가 있었다.

그 멘셰비키라는 말은 중소불가침조약이 체결되며 의도적으로 약간 희석되었더라도, 여전히 그 앞에 있는 유목이라는 말은 미천한 자, 버러지 같은 자와 동의어로 쓰였다.

그런데 고려 황제가 몽골 수괴의 손녀와 결혼한다 한다.

황금씨족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발작하는 중화인들은 지금까지 고려가 자신들과 비슷한 감정을 유목민들에게 품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고려인들은 이미 그들을 용서했고, 과거의 일을 과거로 보냈다. 역사의 승리자인 그들이 몽골인들을 용서하지 못할 이유는 단 한 개도 없었다.

반면 역사의 패배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눈을 돌리고 증오로써 힘을 키운 중화제국은 유목민을 포용하지 못했다. 그리한다면 지금껏 해온 모든 정책과 이념이 물거품이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습진균의 치하에서는, 이미 호랑이를 탄 것과 다름없었다. 국민들을 그토록 세뇌시킨 까닭에, 이제는 과거로 갈 수조차 없었다. 이젠 국민들 스스로가 유목민들, 소수 부족들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습진균은 조용히 침묵할 수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강경하게 나가야 했다. 그래야 중화제국민들에게 일관성 있는 증오를 보여줄 수 있었다. 고려에게도 고개를 빳빳이 치켜드는 긍지와 자부심 또한 보여줄 수 있었다.

세상에 어떤 나라가 그럴 수 있겠는가? 오로지 과거의 러시아 제국과 지금의 중화제국만이 가능했다.

아직은 시간이 이른 듯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습진균은 전문을 더 보내진 않았다.

하지만 이후부터 자국 연설에서도 고려를 향한 비난의 어조가 담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화제국의 이런 행동은 고려를 완전히 자극했다.

몽골에 대한 감정이 희석되지 않았는지 황제의 국혼을 찬성하지 않은 극소수의 사람들조차도 아주 불쾌해했다.

고려 황제의 행사에, 고려 제국 내의 행사에 그러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완전히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이었다.

제국 황실을 무시하는 행동이었고, 또한 제국의 주권을 모욕한 행동이었다.

엔케바토르의 희생이 고려인들에게 당위성을 부여했다면, 습진균은 스스로 고려인들에게 분노를 부여했다.

차가운 이성과 들끓는 감정 모두가 충족되자 고려 내에선 드디어 뜨거운 불길이 피어올랐다.

마침, 워싱턴 시중의 신경제정책은 큰 효과를 보고 있었다. 곳간에 곡식이 들어차면, 사람들은 더 나은 것들을 원하기 마련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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