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화 속죄를 전구하다(3)
며칠 전의 일이다.
창천궁에 걸려있는 황제의 깃발은 내려가 있었고 그 자리를 국기가 대체해 있었다.
황가가 자리를 비운 것을 의미했다.
그 주인 없는 궁 앞에서, 한 노인이 멈추어 섰다. 짐을 들어준 청년 둘이 손바닥을 탈탈 털었다.
― 쿨럭, 쿨럭
기침을 겨우 진정한 엔케바토르가 고개 숙여 감사함을 표시했다.
“고맙소.”
“별말씀을요.”
노인은 제 하나가 들어갈 작은 오동나무 관을 끌고 있었다.
두 청년은 이 할아버지가 뭘 하려는지도 모른 채 어쨌든 무거워 보이는 짐을 옮기기에 거들어주었다.
이 모습에 순찰하던 경관 몇 명이 다가와 관 안을 수색했지만, 안이 텅 비어있고 별 이상한 건 들어있지 않았기에 딱히 제지하진 않았다.
특이한 노인이라 그리 생각했을 뿐.
어차피 황실 인원도 없었으니,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면 될 일이다.
― 이상 없음. 정위치로 와서 대기한다. 황성과 더 접근하면 보고하도록.
― 근위여단이 제지하겠지. 그때까진 냅 둬.
대외엔 비밀이지만 황성에 심각하게 접근한다면, 어딘가에 철저하게 은폐해 있는 근위여단의 저격수도 그를 주시할 것이 분명했다.
다행인지 노인은 더 이상 창천궁 문에는 접근하지 않고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온 길의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궁이 아닌 사람들을 향해서. 정부청사 거리와 도심지를 향해서.
궁성 앞은 일반차량이 올라올 수 없는 광장지역이었다. 분수대도 있었고, 동상도 있었다.
옛날엔 하나도 닮지 않은 태조상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신성모독이라는 쿠쿨칸교의 끊임없는 철거 요청에 결국 철거되었다. 그 뒤로는 태조황제 시절의 핵심 신하들이 한데 모여 있는 동상이 제작되어 배치되었다. 황제들의 동상은 길거리에 없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은 커피잔을 들고 거리를 오갔다. 때마침 점심시간인가 보다.
광장의 앞에는 지하철역이 있는 큰 대로가 있었다.
듣기로는 16차선이라고 했다. 그 거리는 한참 쭉 뻗어 내려갔다.
번화한 마천루들과 그들 뒤에 있는 고옥의 거리가 그 대로의 양 측면에 마치 계곡을 형성하듯 서 있었다. 황가와의 거리가 조금씩 떨어질수록 건물의 높이가 높아지는 것이 보기에도 재미가 있었다.
창양 자체가 굉장히 오래전부터 존재한 도시임에도, 끝도 없는 평야인데다가 태초부터 아주 철저한 계획도시였기에 현대와의 공존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토지구획은 백 년 이상의 대계를 위해 심사되었으며, 정권에 따라 입맛대로 바뀌지도 않았다. 일관성은 도시계획에 참으로 중요했다.
엔케바토르는 이 광경을 한눈에 담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앞날을 상상하며 정주민이 세울 수 있는 문명 중 가장 위대한 문명을 두 팔 벌려 받아들였다.
“체조하는 건가?”
“그런가 봐.”
여인 한 명이 커피를 들고 걸어가다 흠칫 놀라며 옆 사람에게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엔케바토르는 천천히, 경건한 태도로 관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옥과 밧줄은 남아 있었다.
그는 밧줄을 관에 묶었다. 그리고는 그 끈을 목에 감았다.
“이봐요!”
그를 주시하던 경관 하나가 헐레벌떡 다가왔다.
“무얼 하시는 겁니까?”
“일인시위요.”
경관은 이마를 짚고는 말했다.
“그, 자결하거나 그런 건 아니시죠?”
노인은 작게 끄덕였다. 경관은 자리에 돌아가지 않고 그의 곁에 머물며 감시했다. 행여 이 사람이 자살하려고 한다면, 곧바로 밧줄을 쏘거나 잘라버릴 수 있게끔.
경관의 든든한 지원을 업은 엔케바토르는 계속 할 일을 이어갔다. 그는 입을 가득 채우는 구슬을 물곤 목을 결박한 밧줄을 손에도 감았다.
원래는 자기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굉장히 어색했지만, 몇 번 연습해 보았기에 충분히 가능하기는 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로 포박의 목적으로 손을 결박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 * *
노인의 행위는 곧 완성되었다. 추레한 노인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손을 결박하고, 구슬을 물고, 긴 줄을 목에 감았다. 자신이 누울 만한 크기의 관을 뒤에 매단 채로.
그 기괴한 행위는 금방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아까부터 노인을 보던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심지어 아까도 짐을 옮겨주며 노인을 도와준 청년들 또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저… 저 어르신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 거랍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경관님께선 제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인시위라 해서… 하, 이거 골치 아프네.”
일인시위는 무작정 탄압할 수 없다. 경관도 이를 알았다. 동료가 확인해본 결과 시경에도 이미 계획이 있던 시위였나 보다. 경관은 옆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차라리 몰려드는 군중에게서 노인을 지키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도, 노인은 자신의 행동을 그만두지 않았다. 단순히 서 있는 것이지만, 자세와 모습상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노인의 모습은 객관적으로 추했다. 구슬 덕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지, 자꾸만 침이 흘러나왔고, 옷은 꾀죄죄했다.
그동안 제대로 된 변발을 하지 못했는지, 안 그래도 보기 흉했던 노인의 머리카락은 완전히 풀어 헤쳐져 더욱 흉했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광인, 실로 광인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끔벅이는 것도 힘들어 눈을 감는 때가 많았지만, 엔케바토르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삶의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노인의 눈동자는 맑고 흔들림 없었다. 관 앞으로 위태로이 몸이 쏠렸어도 끝내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행위 예술인가?
사람들은 눈을 뗄 수 없었다. 당장 그 모습의 의미를 모르면서도.
인파는 서서히 늘어났다. 역사에 밝은 누군가가, 이 모습이 옛 조선의 왕이 강화도 앞에서 바투뭉케에게 한 굴욕적인 모습의 재현이라고 한 이후에는 더더욱 많이 늘어났다.
“저깁니다!”
외무시랑 이산이 황급히 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온 중수국 요원과 함께 시경을 찾았다. 창양시경도 이 상황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가, 책임을 질 시랑이라는 고위 관료가 등장하니 그제서야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가 뜬금없이 말을 하기 전까진.
“내버려 두시오.”
“예? 아니 대체 저자가 누굽니까?”
“신원은 보장 가능하오. 그리고 잠재적으로 국내에 가할 위협은 없다는 것도.”
“외무시랑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허나 저러다 저 노인네 진짜 죽습니다.”
한 노인이 병원을 탈출했다는 신고도 예전에 들어왔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이산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 * *
구슬 덕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추하게 침이 자꾸 흘러내렸다. 갈증이 나 타들어 가듯 목이 말랐다.
애초에 몸도 뜨거웠다. 노인은 기침이 자꾸 터져나왔다. 얼마 서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핑핑 돌고 어지러웠다.
서 있는 것만으로, 마치 고문과 같은 고행이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헐떡거리며 쉬고 싶었다. 몸의 장기들도 이를 애원했다.
허나,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시원했다. 청량했다.
마치 그때처럼.
소년, 엔케바토르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말의 등에 타 있었다.
앞에는 거센 바람이 불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따가웠지만, 그럼에도 엔케바토르는 계속 말을 타 조부의 등을 뒤따랐다.
그리고 마침내, 널따란 초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고원의 위에서 조손은 탄성을 터트렸다.
― 와아!
― 할 말이 있느냐. 엔케바토르.
조부가 그렇게 물었다. 그분께선 손자의 불만을 알고 있으셨다.
엔케바토르의 독립운동 전에도, 조부 또한 여러 가지로 부족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어린 엔케바토르는 그러한 조부의 고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손을 포함한 가족들이 해야 하는 고생의 의미도.
― 그냥요. 세상이 이다지도 드넓은데…….
어린 손자의 푸념에 조부가 씁쓸하고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 아이야, 우리는 초원의 사람이다. 말과 바람만이 우리의 재산이다. 우리는 땅을 바닥으로, 하늘을 지붕으로 여기며 살았다.
조부는 그렇게 말했다.
― 남들은 우리가 궁핍하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불경하지만, 선조들보다도 부유하다. 재물이 아닌 더 큰 것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엔케바토르가 반문했다.
― 그게 무엇인데요?
― 자유.
조부는 사자처럼 웃었다.
―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때는, 하북에 있었을 때가 아니었다.
정주민의 문화 속에 있었을 때, 우리는 강력하고 또한 부유했지만 자유롭지 않았다. 우리는 초원의 사람이고, 초원에서 진정한 사람이 되었다. 그 누구도 초원을 오롯이 소유하지 못한다. 여기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며, 모두가 자유로웠다.
― …….
― 나는 대원대몽골국의 역사를 흠모하지 않는다. 또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 아이야. 그럴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인과가 있고, 우리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땅을 달릴 수 있다면. 그것이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과거는 과거의 일일 뿐이다.
조부는 엔케바토르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아직도 그 부근이 얼얼한 느낌이 있었다.
― 허나, 엔케바토르, 내 작은 손자야. 이 태고의 땅이 침범받는다면 그 무엇보다도 분노하거라. 그들이 너희의 재물을 빼앗아가는 것은 참더라도, 너희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참지 말거라.
― …그러면 우리가 남들에게 빼앗은 것들은요?
조부는 인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미안하지만 그것은 네게 부탁한단다.
* * *
‘제가 훌륭하게 해냈습니까? 할아버지?’
그리고 그의 물음은 죽음 직전, 한 방문객을 보며 응답받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또다시 병원이었다. 달라진 것은 병실, 그리고 이제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날 정도로 끔찍한 폐의 고통과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정도.
하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없었다. 노인네의 투정을 잘 받아주었다고 감사함을 표할.
아니, 한 사람이 있었다. 문득 옆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사내가 자신의 옆에서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의 덩치만큼이나 그 기세는 넓고 광활했다. 초원을 달린 테무진의 환생을 보는 것일까.
또 한 번 바라보니 그는 시중의 비행기 위에서 바라보았던 바다와 닮았다. 어쩌면 초원의 텡그리와도 같았다.
“하… 할아버님?”
엔케바토르는 아이처럼 질문했다.
누굴까. 한 번도 보지 못한 조상들일까. 자신의 몸에 흐르는 황금의 피를 세운 사람들일까.
쿠빌라이일까, 테무진일까.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다. 내가 너를 이 자리에, 이 순간으로 인도하였다.”
“텡그리… 다… 당신이었군요. 나를 부른 분이.”
사방은 고요했다.
그렇게 시끄럽던 다른 환자들도 없었다.
마치 침묵만이 내려앉은 것 같아, 엔케바토르는 자신이 정말로 영원의 땅으로 안내된 것 같기도 했다.
“요…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자신의 행동을. 엔케바토르는 물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인영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미 눈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마치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온몸이 노곤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대답을 바랐다. 그것을 듣기 위해, 억지로 엔케바토르는 눈을 뜨려고 발악했다.
거인이 대답했다.
“내가 너를 불렀더라도, 너의 행동이 많은 것을 불러오게 만들었다.
참으로 잘해주었다. 아이야. 너의 행동으로서 너의 백성들과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이다.”
노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액체가 주름을 타고 떨어졌다.
“하, 하아… 하!”
웃음인지, 울음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엔케바토르는 그 단말마의 외침을 마지막으로 고개를 떨궜다.
최후의 삼별초는 천천히 엔케바토르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려다, 문득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김상민 낭장이라 불렸던 시절의 기억 한참 저편에 있는 몽골어를 헤집어 이름의 의미를 불러주었다.
“안식에 드시게, 평화의 영웅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