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66화 (566/653)

566화 중화는 어떻게 강국이 되었나

당규삼은 화학자였다. 화학자로는 실로 중원 제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또한 그는 생물학자, 의학자이기도 했다.

천재적인 머리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규삼은 다른 분야에서도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곤 했다.

특히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더더욱.

원래부터 과학자란 사람들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 받을수록 대단히 훌륭한 성취를 내곤 했다.

당규삼은 그동안 습 대총통의 신뢰와 총애를 얻었다.

그가 개발한 여러 화학무기들은 산업이라는 것이 미천한 중화제국에게 군사적으로 엄청난 효율성을 주었다.

중화제국이 만들려는 어떤 재래식 무기도 이 효율성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더구나 전후 이 화학공장들이 언제든지 비료공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 말해 무엇 할까.

그러니 지금까지 국공내전을 종결짓고, 비료공장을 세우고 대리를 병합하는 등의 습진균의 찬란한 업적에 당규삼의 공로도 어떻게든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 규삼이 중화과학원장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기술과학총장 정도의 고관에 오를 수도 있었건만 그것은 오히려 당규삼이 고사했다.

규삼은 정치적으로 이리저리 불려갈 시간에 더 많은 연구 시간을 원했고, 진균도 이를 존중해 주었다.

입지가 확고해지자 당규삼은 늘어난 총애와 더불어 더더욱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진균은 규삼의 연구를 위해서라면 꽤 많은 것들을 해줄 수 있었다.

규삼은 그의 포부를 총통에게만 드러내었다.

[십 년 내로 중화제국을 최고의 화학적, 생물학적 강대국으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

처음 습 총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규삼이 중화가 배출한 희대의 천재임은 확실하지만, 목표가 너무 허황된 것 같기도 했다. 유능한 지도자란 항상 자신감에 차 있어야 하긴 했지만, 냉철하게 조국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기도 했다.

[…그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당규삼은 정말 자신이 있었다.

그가 고려와 다른 선진국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도 유럽에 유학을 갔다 온 처지였으며, 다른 나라들의 기초과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높게 쌓여있는지 잘 알았다.

중화제국이 이를 따라잡으려면, 아마 적어도 반세기는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며 기초과학 발전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시간에도 경쟁국들은 앞서나가겠지만.

허나 지금은 기초과학을 의미하는 바가 아니었다. 기본 기술과 기초공학도 의미하지 않았다.

자동차, 제철, 조선과 같은 공업적 분야에서의 차이와 생물학적, 의학적, 화학적 차이는 조금 달랐다.

중화가 아무리 10년 동안 애를 써서 어느 정도의 기술적 기반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그 격차는 고려는커녕 예맥한 삼국 중 가장 기술적으로 낙후된 옥저에게도 밀리는 상태였다.

옥저는 중원이 명나라였던 시절부터 기술을 받아들이고 바뀌어 온 나라였다.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 했다.

하지만 ‘특정 분야’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독소처럼 군부가 쓸 수 있을 만한 특정 분야라면, 여전히 중화제국은 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고려는 너무 경색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맥한과 유럽도 마찬가지지요. 조금 더 도덕적 기준을 유하게 적용한다면, 앞으로 아국은 효율성이란 무궁무진한 이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좋아, 대신 성과를 내놓게.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대총통 만세! 중화 만세!]

“크흠.”

짬 나는 대로 의자에 앉아 잠깐 쉬던 규삼은 머리를 흔들어 사념을 지웠다.

지금은 이럴 시간이 없었다. 대총통에게 호언장담한 만큼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 보여주어야 했다.

그는 가운을 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사무실을 떠나 연구병동으로 향했다.

대현공공의학연구소는 최근 지어진 곳이다. 나름대로 중화 기술력이 집적되어 있었다.

감옥같이 생긴 병동, 규삼은 한 칸 한 칸을 손수 확인했다. 엄선된 자료들이 안에 수감되어 있었다. 모두가 그의 연구를 도와줄 훌륭한 표본들이었다.

‘멍청한 놈들.’

규삼은 갑자기 씰룩 웃었다.

세계에서 과학을 선도하는 고려는 의학과 생물학적 분야에서 특수한 표본들을 썼다. 자신이 알기론 특별하게 품종을 개량한 쥐나 돼지를 사용한다 들었다.

이는 다른 국가들도 비슷했다. 쥐만큼 번식이나 관리에 효율적인 동물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허나 이는 필연적으로 부정확했다.

학자들 중엔 쥐나 돼지가 인간과 비슷하다고 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저 자신들의 한계를 포장하려 드는 말일 뿐일 터.

살아가는 수명, 장기의 크기, 지적 능력, 그 모든 것이 한낱 미물과 영장류 최고종을 비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인류도 나름이라 중화제국민과 유목민들을 동일선상에 놓을 순 없지만, 적어도 후자의 인종들은 과학적으로 쓸모가 있었다.

‘그리하여 너희들이 필요하단다.’

보다 더 효율적이고 직관적인 자료를 수집하려면 도덕이라는 가치관은 조금 접어두어도 되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희생이 필요했고,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했다.

중화제국의 번영이라는 결과는 모든 과정을 정당화했다.

규삼은 411호라 쓰여있는 곳에 멈췄다. 그리고 쇠창살 안을 면밀히 살폈다.

안에 힘없이 누워 있는 인영은 어린아이임이 분명했다.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대규모 연구소에는 남자도, 여자도, 어린아이도, 늙은이도 모두가 있었다. 규삼에겐 낙원이었으며, 무릉도원이었다.

“3실험실에 보내라.”

“예.”

문이 열리고, 연구원들이 아이를 침대째로 끌고 나왔다. 사슬에 단단히 결박된 아이가 몽골어를 몇 마디 하려다, 이내 입까지 틀어막혔다. 소년이 처량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규삼은 자애로운 미소를 띤 채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만 했다.

“중화를 위해 네 운명을 받아들이거라.”

병동을 돌며 몇 차례 더 실험체들을 실험실로 내려보낸 규삼은 밖에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이윽고 지하에 위치한 생화학 실험장으로 향했다.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실험장 바로 앞 관찰실엔 휘하의 연구자들이 모두 대기하고 있었다.

“실시해.”

규삼이 낮은 목소리를 내었다.

밀폐된 실험장에는 아까 내려보낸 소년과 다른 소녀, 성인 남녀와 노인 부부 한 쌍이 있었다.

운명을 직감했는지 노인 부부가 어떻게든 서로 손을 잡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단단히 고정되었기에 그 안타까운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실험장에 갑자기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과 관련된 연기는 아니었다. 흰색 분말과 같은 것이었다.

안에 있는 실험체들이 제각기 콜록거렸다.

그것을 바라보던 연구원들이 빠르게 필기를 시작했다. 실험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이번에는 좀 성공했으면 좋겠군.”

* * *

“서…성공입니다!”

문 두드림과 함께, 수석연구원이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왔다.

실험은 고려시간 기준 일주일 정도 걸렸다.

잠복기와 병의 발현을 모두 고려해야 했다.

그동안 다른 일에 열중하던 규삼은 드디어 환호성을 질렀다.

“빨리 가보자!”

그는 뛰다시피 관찰실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방독면과 방역복을 착용하곤 즉시 실험실로 들어갔다.

여섯 명의 실험체는 모두 죽어있었다. 죽는 것은 당연히 예상된 일이나,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아야 했다.

실험체가 죽은 시간이 빨라 희망이 있었지만, 그래도 철저한 확인이 필요했다. 규삼은 그동안 기록된 자료와 자신이 틈틈이 관찰한 바를 토대로 얻게 된 수확들을 짚어나갔다.

― 직접사인은 패혈증입니다.

― 다행이다.

증상은 의도한 바였다.

― 소화계나 피부 접촉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훨씬 빠르게 전파되는구나. 다행이야.

당규삼은 곧바로 수술 도구를 가져와 실험체의 배를 갈라보았다.

폐에 물이 차 있는 것이, 자신이 처음 사용한 독소와 비슷했다. 이 어린 실험체는 이 건조한 환경 속에서도 마치 익사하듯 죽었을 것이다.

여러 실험체를 골고루 검사하던 그는 이윽고 실험실을 벗어났다. 그는 방독면과 옷을 소각기에 넣고는 서둘러 자료를 살폈다. 환희로 손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좋아! 좋다고! 총통 각하께 보고해도 되겠어!”

마침내 원장이 사실상 연구 목적을 달성했다는 함성을 지르자, 연구원들도 모두 서로 껴안고 기뻐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던가. 마침내 그 결실이 다가온 것이다. 대총통께서 분명히 축하금을 내리실 것이고, 나중엔 더 많은 지원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 분명했다.

사무실에서는 중화의 소망을 이룬 것을 소소하게 자축하는 자리도 열렸다.

당번 연구원이 투덜거리며 실험실 내부의 청소를 위해 들어갔다. 그는 시신과 분비물들, 나무 가구들을 모두 옆의 큰 구멍에 밀어 넣었다. 연구원들의 옷과 방독면까지.

― 털썩

구덩이에 떨어진 몽골 사람들은, 아래에 쌓여 있는 백골들을 부수며 땅에 닿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들이 어두컴컴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불꽃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매캐한 냄새와 함께,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 실존했다는 마지막 증거조차 남기지 못한 채 연소하기 시작했다.

부하들과 어울리는 대신 보고서를 작성하러 간 규삼은 다섯 시간 만에 마침내 보고용 문서를 완결짓고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랫것들이야 이 순간을 즐기지만, 규삼은 이제부터 다시 일거리에 떠밀리는 처지다.

하지만 그는 계속 웃고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이러한 것들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곤 했다.

이 무기가 적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우리의 군부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적을 도살할까. 중화가 패권을 쥔다면 마침내 어떠한 미래가 펼쳐질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이 문서와 함께라면, 그런 장밋빛 미래도 허언은 아닐 테다.

[탄저연구록(炭疽硏究錄)]

* * *

습진균 대총통이 정권을 잡은 지 11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습 총통의 국가개발8개년계획도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중화의 일인까지 모두 국가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음은 틀림없었지만, 그중 가장 노력한 자는 대총통 바로 자신이었다.

진균은 연설 능력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업무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옛 류용과 황전겸 등의 계획에 더해 중화제국만의 정책을 빠르게 집행시켰다. 일 년이 십 년과 같아, 도시와 시골은 불쑥불쑥 바뀌곤 했다. 명의 무능함과 중화민국의 부패와 내전 탓에 그렇게 지지부진했던 철도도 비로소 중화제국의 시절에야 깔리기 시작했다.

잡음이 하나도 없는 압도적인 정치력은 이런 과감한 개발엔 긍정적 면모를 낳았다.

반대하는 자가 없다면 그저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

불만을 가진 자들은 전부 죽이니, 찬성하는 자들만 남았다.

찬성하는 자들 중에서도 비관하는 자들을 쳐내니, 오로지 할 수 있다는 열의와 확신만 가득한 자들이 중화 사회에 남아있는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로지 인민의 힘과 의지, 단결력에 있었다.

누가 이들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예상했겠는가.

진균의 시대에 위대한 중화제국은 이미 옛날의 그 비루한 명과 중화민국의 껍데기를 반쯤 벗어던지고 있었다.

국가는 부강해졌고, 과학과 기술력은 진보했다.

많은 인구 덕에 당규삼과 같은 재능 넘치는 과학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학문과 기술을 중요시하는 진균 덕에 좋은 자리를 차지해 전권을 휘두르고 있었다.

또한 진균은 화교와 화인을 이용해 사방에서 기술을 긁어모았다. 중화인 이민을 받지 않는 탓에 한 차원 높은 고려의 기술을 직접 빼 오긴 어렵지만, 그 번국은 어렵지 않았다. 주나라와 유럽의 기술은 더더욱 쉬웠다.

엄선되어 훈련된 자들이 고려말과 고려어를 쓰며 다가가면 유럽인들은 크게 반기며 학문교류를 시도했다. 정체가 들통나기 전에 알맹이만 먹고 빠져나오면 그만이었다.

이런 것들은 순수하게 진균의 큰 업적 중 하나라 해도 무방했다. 갈 길이 멀지만, 지금껏 중화의 지도자였던 자들 중 습진균만큼 중화의 기술력을 끌어올린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중화엔 지금 공장들도 많았다.

물론 이 공장의 대부분은 외국 공장이었지만 그것의 주인이 계속 유지되진 않을 것이었다.

중화대총통으로서 진균은 마땅히 자신들의 땅에 지어진 공장들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화의 땅에 지어졌고 중화인민들에 의해 굴러가는 공장이니 마땅히 중화의 것이 아닌가?

다만 통보 시점을 면밀히 조정해야 할 터. 그건 나중에 일어날 일이다.

하지만 진균의 가장 큰 성공적 계획정책은 따로 있었다.

[계획생육정책]

말 그대로 인구수를 더 늘리려는 계획이었다.

중화의 인구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진균은 이 정책을 중화에서 제일 우선시하는 국책으로 꼽았다.

내전 이후 중화는 많은 인구를 잃었다.

원체 많은 인구가 숱하게 누락되는 것이 중원 땅이라지만, 몇 년, 몇십 년에 걸친 내전에 인구가 증가할 린 없었다.

원래부터 죽는 만큼 다산하는 것이 중화인들의 관습이라지만, 황전겸이 집권하며 중화민국이 우위를 점해 어느 정도 치안이 확보되기 전까진 인구는 줄곧 감소했었다.

습진균은 이 인구수가 더 성장하길 원했다. 어떠한 무기도, 병기도, 결국 인간이 다루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의 용맹무쌍한 중화 사나이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었다. 심지어 전차도 부술 수 있었다.

총통과 중화를 위한 정신무장이 충분하다면.

그러므로 인간은 가장 효율적인 무기였다. 진균은 내전 시 그것을 깨달은 장본인이었다.

식량문제는 의외로 괜찮았다. 시대가 바뀌며 질소고정법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땅 넓은 국가는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가며 부양할 식량을 뽑아낼 수 있었다. 기후가 도와주면 충분히 가능했다. 특히나 쌀 문화권이라면 더더욱.

부패는 항상 존재했지만 관에서 철저한 배급제(이는 소련과 비슷했다)를 실시하여 식량을 강하게 통제하니 이를 빼돌리려는 자들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러므로 습 총통은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중화의 모든 가정에 의무를 부여했다.

그 의무는 병역과 납세, 노역 등의 일반적 의무뿐만 아니라 출산까지 강제했다.

모든 중화 여성은 일정 나이 이전에 혼인해야 했고, 이를 어길 시 심각한 처벌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결혼한 중화 여성은 무조건적으로 두 명, 그리고 중간에 한 번 개정된 계획생육정책에선 세 명을 장정이 될 때까지 키워내야 했다.

영유아사망률이 다른 지역보다 아직 한참 높은 중화의 여건상 적어도 다섯 명은 낳아야 가능한 목표였다.

동시에 다산에도 이득을 주었으니, 중화의 인구가 삽시간에 엄청나게 상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젊은 층이 비대하게 커졌으니 이 어찌 청신호가 아니겠는가.

습진균 대총통의 치세에 중화는 명실공히 강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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