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화 우리 시대의 평화(2)
“이걸 뭘 어떻게 할 거요?”
밉상스런 얼굴이다. 워싱턴은 최소한의 존중도 내팽개친 채 화를 내었다.
행정부 수장이 된 그로선, 이렇게 앞뒤 없이 막말을 질러 넣고 뒷수습을 당수에게 떠민 의원이 좋게 보일 리가 만무했다.
“제가 당수와 당에게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하지만 죄지은 놈이 오히려 뻔뻔하다고, 권남도는 목을 빳빳이 치켜들었다.
워싱턴은 계급장 다 떼고 주먹다짐을 해도 늙은 자신이 이 새파란 놈을 충분히 두들겨 팰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그렇게 한다면 지금 이상으로 뒷수습이 피곤해질 테니 그만두기로 했다.
이놈이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은, 뭐 그간의 정치구조가 그에게 웃어주고 있기 때문일 터다.
권남도가 괜히 목록을 들이밀며 막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전과 암살 시도 이후, 국민들은 극단주의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권남도는 그러한 틈을 타, 상대방의 정당에 한 방을 먹이려 하는 모습이다. 중서성 개편 이후부터 발생해온 좌익과 우익, 교―경의 유구한 다툼에 마침내 크게 승리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할 터였다.
“그런 건 관심 없지? 안 그렇나?”
“예?”
“권 의원, 솔직히 말해보게. 원내총무가 탐나는가?”
“…….”
이해는 한다. 원래 정치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은 도리어 비웃었다.
“권 의원, 오직 그대의 당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잿밥에만 관심이 있고 당의 이익과는 완전히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봐야 하겠나?”
“당의 이익엔 관심이 없다니요! 말씀이 너무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당의 행보에 제동을 거는 미치광이 짓을 하면서도 당수인 나에게, 시중인 나에게 보고를 하나도 하지 않았지? 말해보게!”
워싱턴의 노여움은 상상 초월이었다. 이런 일 처리를 하는 것을 당수로서 묵인해야 하는가? 그는 워싱턴과 더 나아가 교당 그 자체에게 똥을 흩뿌리는 것과 같았다.
“감히 황상 폐하를 시해하려 든 역모의 주동자와 비슷한 논리를 지닌 놈들입니다. 잘 엮으면 이번 일로 경당은 적어도 십 년은 정권에서 이탈할 것입니다.”
“경당이 교당의 적인가?”
“그럼 아닙니까?”
“아니야!”
워싱턴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혈압이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젠장, 내가 이것까지 설명해줘야 하나? 교당의 적은 고려의 국익과 반대되는 자들이 적이다. 중화주의, 공산주의, 기타 고려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많은 적들. 그들이 적이야. 그대는 거국적 정치엔 별 관심이 없구만?”
중서성에선 실컷 싸우다가도, 국밥집에 가면 서로 술 따라주고 그 말은 좀 심했니 하며 친한 척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이 구도를 박살 내겠다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이었다.
“그대의 그런 행보 때문에 고려는 대리 침공에 대응할 방도가 하나도 없네! 귀당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해밀턴 당수를 설득해야 뭐가 되었을 텐데, 이제는 아예 방문을 걸어잠그고 있어. 시중인 나에게도 말이야. 자넨 지금 이 상황이 제대로 인식이 안 되지?”
중서성, 즉 의회의 권한은 계속 강해져 왔다.
다만 사회도 그만큼 발전하여, 이전과는 달리 의원들에게 엄청난 행정적 능력을 요구했다.
예전에야 기껏 농지 개혁법, 상업법, 무역법 같은 비교적 단순한 법안이 주로 다루어졌다.
농지개혁법이 단순하냐면 사실 그것도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지금 나오는 법들은 복잡해지는 회사법과 세법, 해양법과 철도교통법, 도로교통법, 항구와 관세, 환경법 그리고 기술 발달 등으로 새롭게 탄생한 통신과 무전 등의 기존 사회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어야 했다.
하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아 중서성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의원들이 그들의 기대만큼 일 처리를 훌륭하게 할 만큼 전문성이 있느냐면 그건 또 장담하지 못했다.
때문에 중서성에는 초당파적인 네 조직이 생겨났다.
4대 입법보조기관인 예산처, 조사국, 감사원, 평가원은 중서성의 입법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에서 차츰 증대되어 이제는 법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조사국이나 평가원 휘하의 정책연구소들에는 대학교수나 기타 수많은 전문가들이 포진하여 있었고, 그 밖에도 풍부한 연구 용역이 존재했다.
이들의 보고서는 몹시 전문적이고 객관적이라 의원들의 모자란 전문성을 채워주었으며, 그렇게 경제나 군사, 환경과 문화 등의 정책 입안에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감사원과 예산처는 말 그대로 그 법안이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정치인들은 사실 이런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여당이 돼서도 중서성 눈치를 보는 구도가 되어버리니.
하지만 이 체제를 설계한 자는 집권여당의 입맛대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나 보다.
특히 이 네 보조기관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곳은 예산처였다.
모든 것은 돈으로 귀결된다. 특히나 중서성의 동의가 필요한 중대한 국가정책에 대해선 행정부도 중서성 예산처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예산처장은 중서령이 임명하고 황제의 재가를 받았다.
전 집권정당이었던 경당이 국가 예산에 대해 귀당과 협력할 당시 경제침체의 부양책을 대가로 예산처의 자리를 놓고 협상한 바람에 현 예산처장은 귀당 출신의 김소일이었다.
굉장히 까다로운 인물이며, 꼼꼼하기가 대학원생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보다 심했다. 실제로 김소일은 영서대학 경제학부 교수였으니 말을 다 한 셈이다.
그 사람을 설득하느니, 차라리 경당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더 나았다. 그래서 워싱턴은 해밀턴 당수와 연락을 하며 의견 조율을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이놈이 전부 망쳐버렸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본론만 말하지. 야당 인물들을 만나 사과하시오. 기자도 불러다 놓고. 알아들었소? 그렇지 않으면 내 직접 그대를 당 차원에서 처벌할 테니까.”
“과도하신 처사입니다! 의원들이 동의할까요?”
권남도는 씩씩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고 보십쇼, 당하. 당의 이익이 무엇인지, 또한 진정한 당론이 무엇일지. 그리고 국익이 무엇일지!”
― 쿵
거친 소리를 내며 집무실 문이 닫혔다. 워싱턴은 이마를 감싸 쥐다, 문득 주먹 자국과 갈라진 자국이 있는 오래된 원목 책상을 만지작거렸다. 오 젠장, 자신도 가끔은 가면시중처럼 되고 싶었다.
* * *
‘권남도주의’의 발흥을 위해선, 크게 네 가지 집단의 지지가 필요했다.
정치인들, 즉 교당이나 귀당 사람들.
또한 노동자 계층의 권익 향상을 색안경 끼고 볼 수밖에 없는 기업인들.
무신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유물론을 주장하며 온갖 횡포를 놓는 공산주의를 경계할 수밖에 없는 종교인들.
자극적인 것들을 쓰고 나를 수밖에 없는 운명인 언론인들.
이들에게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
권남도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개 의원이 당수이자 시중의 집무실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40번째 고려 시중이 된 조지 워싱턴은 출신부터 국가에 봉사한 고려 육군 장교 출신이라 군부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군납비리에 관해서는 명실공히 일등공신으로 여겨졌다. 군내 사조직을 적극적으로 혁파하는 것에 앞장서기도 했으니 군부를 제외한 곳에서의 지지도 충분히 높았다.
호경당 사건의 수습에 대해서도 그러했고, 조금씩 경제를 제 궤도에 올려놓고 있다는 측면에선 국민들의 지지도 높아지고 있었다.
여전히 그는 임기가 많이 남아있었고 재선도 가능할 테니 현시점에선 단연코 고려 제일의 거물 정치가였다.
하지만 권남도는 그게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워싱턴을 좋아하지 않았다. 워싱턴이 주장하는 경제 신정책이 터무니없이 국가개입적이고 사회주의적이라 믿었다.
워싱턴의 경제 신정책은 크게 세 가지의 기틀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로 꼽히는 경제법은 예전 경당의 기조와 동일했다.
전 구준찬 시중이 금본위제를 중단한 뒤 금의 유출을 막는 정책은 변동이 없었다. 아렌다호논 체제의 파기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세 당이 모두 동의한 바였다.
워싱턴은 전 정부의 기조를 더 강경하게 이어나갔다.
그는 원석유결제대금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하며, 새롭게 산유국이 되는 나라를 이 체제에 가입하도록 압박했다.
즉 산유국들이 잠재적 고려의 적성국, 즉 소련과 중화제국, 강화, 잉글랜드 등에 석유를 팔지 않게 만든 것이다.
원석유결제체제하에 있는 기존 국가들은 어차피 그럴 것이지만, 워싱턴은 직접 아샨티나 콩고, 하우사, 알제리 등 새롭게 유전을 탐사하고 있는 아프리카계 국가들에게 압박하여 고려가 신경 쓰는 4개국의 지원을 받고 개발하거나 석유결제체제마냥 원을 받지 않는다면 석유 수출을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체제 안으로 들어오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평상시 고려의 어조를 생각해본다면 이는 대단히 강압적인 말이었다. 수출이야 해당 국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
하지만 경제침체로 고통받는 고려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평상시 제아무리 인격이 좋아도 건강이 나쁘다면 예민해지듯, 모든 것엔 때와 상황이 고려되어야 했다.
[우리의 선행이 끊기게 만들진 마시오. 수상.]
[……알겠습니다. 당하.]
아프리카와 같은 국가들에게 고려가 얼마나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던가. 이미 지어준 대형 둑과 철도들에 대한 값을 매기는 횡포는 부리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기부’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볼 순 있었다. 호의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세계를 편 가른다면, 이들 국가가 선택해야 하는 진영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여기까진 좋다. 권남도도 교당으로서 이런 외교적 경제정책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했다.
반면 다른 두 정책은 어떤가.
경제침체 이후, 많은 고려인들이 공장과 일터에서 일자리를 잃고 낙향했다. 몇 개의 기업들은 끝까지 버티고 지금 서서히 회복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경제위기 속에서는 그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나마 낙향이라도 가능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농촌은 이럴 때 비빌 언덕이 돼주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농업인구의 증가로, 북려와 남려의 농산물이 과잉생산되기 시작했다.
화산이 불러일으킨 전 지구적 기온 위기는 해소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십 년이 지나고 있었으니 농업생산물은 이미 과거의 수준을 완전히 회복한 것이다.
국제적 식량사태로 촉발된 경제위기는 초반에는 식량부족과 경제침체가 동조화(커플링)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터져 나오고 경제침체가 가속화된 이후에는 탈동조화(디커플링)된 상태였다.
오히려 이젠 고려 내에선 과잉생산된 잉여농산물 문제가 대두되었다.
농산물과 같은 물건들이 공산품에 비해 공급측면에서 비탄력적이라 폭등과 폭락이 일상적이라 하더라도, 이 상황은 굉장히 위험했다.
그러니 워싱턴은 ‘농업조정법’을 통해 일자리가 다시금 재조정될때까지 국가의 농산물 전량매수를 약속했다.
그의 정책은 곡창을 새로 짓고, 잉여농산물을 쌓아놓는 것이었다. 또한, 대체 어디다 쓸 것인지 모를 군사용 비상식량도 쟁여놓기 시작했다. 이게 다 나랏돈임을 생각해보면 뻘짓도 이런 뻘짓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세 번째 정책은 완전히 미친 수준이었다.
전려국토개발국, 이름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돈이 나갈 것이 분명한 이 경제신정책 담당 국책부서는 무려 남파주 열대습지를 개척하여 고려의 남북을 철도와 육로로도 이어버린다는 계획을 들고 일어났다.
남파주 열대습지의 면적은 거의 유럽 소국의 면적과 같았다. 만만히 볼 곳이 아니었다. 즉, 광대한 태수 열대우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정도 수준의 열대우림에 습지를 더한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정부는 고려의 토목기술력이 이미 여러 대공사를 통해 충분히 많이 성장했고, 열대습지의 모든 면적을 전부 다 메꾸고 평탄화하는 것은 아니라 누누이 설명했지만,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돈이 지출될 것이 뻔했다.
‘나랏돈이 어디서 나온다고. 대중주의자들과 행동하는 것이 똑같군.’
웃기는 건 워싱턴의 정책은 진정한 대중주의자,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이도 저도 아니라 비판받는 것들이었다.
대중주의자들은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사탕 하나 더 물려주게 해달라고 어린 애처럼 울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빙독처럼 경제를 박살 낼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약쟁이들처럼 당장 눈앞의 것만을 갈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 그래. 당신도 이제 어린애처럼 중서성 예산처 앞에서 나랏돈을 달라고 울먹이겠구만. 하여간 우파의 탈을 쓴 좌파라니까.’
권남도는 거칠게 자동차에 올랐다.
기업가들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다음은 종교인들, 언론인들과 만날 예정이었다. 이렇게 차근차근 여론을 손에 쥐고 간다면, 원내총무가 무어냐, 당수가, 시중이 눈앞에 있었다.
권남도는 자동차에서 만년필과 엄선된 빨갱이 목록을 꺼냈다.
그리고는 목록의 맨 마지막에 워싱턴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때마침 역청도로가 파인 곳을 지났는지 자동차가 덜컹거려 유먹이 손에 묻어 지저분해졌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