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48화 (548/653)

548화 위태로운 시대

― 호외요! 호외요!

다음 날 아침, 제국에는 큰 충격이 강타했다.

빠르게 진압당했다고 해도 내전은 내전이었다. 총알이 오가고 피가 터져나왔다.

제도, 특히 사건이 발생된 근처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밤새도록 울려 퍼진 총소리에 공포에 떨었다. 위험한 지역은 이미 대피령이 떨어졌지만, 그것을 자세하게는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그들에게도 눈먼 총알이 날아들지 몰랐다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웠다.

뒤늦게 신문을 받아본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

신문에는 박살 난 은행 본사와 항복한 채 손을 들어 올린 역적들, 4사단과 13사단이 일으킨 기타 참상의 흔적들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출근한 사람들도 흘깃거리며 누리은행 본사를 보았다. 마침 근처가 지하철역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사건 현장엔 총자국이 선명했고, 미처 정리되지 못한 깨진 유리창 조각들이 길바닥에 아직 있었다. 시민들에겐 어제의 일이 절절히 체감되었다.

“썩을 것들, 제국민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 대다니. 지금이 개천 1세기 동고려와의 건국전쟁 시기인가? 정신이 완전히 나갔어!”

“과격파라는 것들은 제국에 도움이 되지 않아. 황상께서 무사히 진압하셨음이 실로 제국의 홍복이다.”

지식인들도 큰 교훈을 얻었다.

“어떤 이상에 완전히 매몰된 사람들이 저지르는 추태를 보아라. 참으로 한심하다.”

비단 자국민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 인사들도 놀랐다. 아직 국상 기간이었고, 외국의 귀빈들 조문하기 위해 창천궁이나 혹은 제도의 큰 객원에서 묵고 있는 상태였다.

이들은 그렇게 굳건해 보이던 제국마저도 내전이 발발했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설령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음에도.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현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해청에 대한 조문도 조문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 이들이 모인 것은 국제정치에 대한 토론을 위해서였다.

거의 대부분의(유의미한 국력을 지닌) 나라들의 고위급 인사가 참석한 상태였으니 그들을 수행하는 많은 외교관들이 상복을 입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국제 정세는 개천 516년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심각하게 바뀌고 있었다. 많은 일이 일어났고, 많은 나라가 바뀌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고려가 중심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고려가 이번 내란의 여파를 헤쳐나가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

그런 와중, 그나마 한 할머니와 한 손자의 만남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있었다.

도이치 왕실 조문단은 현 왕의 모후가 이끌고 온 상태였다. 사실 모후는 연로한 탓에 조문을 한 뒤 딸려온 외교관들의 외교 행동을 자율에 맡기고 객원에서 쉬고만 있었지만, 그래도 이곳까지 온 김에 세 명은 무조건 만나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중 한 분은 만날지 말지 모르겠지만, 일단 안토니아는 바로 옆에서 오랜만에 보는 친정어머니와 해후를 즐기고 있었다.

“글쎄 그이가 정말로 그랬다니까요?”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랜만에 예전으로 돌아온 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제 더 이상 테레지아는 복잡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젠 그저 딸아이가 행복하면 됐고, 그분이 행복하면 됐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 똑똑

“전하, 상혁 백작이 알현을 청하옵니다.”

“들라 하게, 어서!”

테레지아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그녀는 노구를 움직여 직접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를 맞았다.

“아이고, 우리 손자.”

“외할머니!”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상혁은, 그간 보여왔던 든든한 군인으로서의 모습을 삽시간에 버리고 외할머니에게 다가가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언제 이렇게 컸을꼬.”

노년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보다 훨씬 더 덩치 큰 손자를 껴안고 다독였다.

보통 할머니라 함은 손주 앞에서 껌뻑 죽는 존재였다.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 훈계와 사랑이 공존했다면, 할미는 그저 일방적 사랑을 쏟아붓곤 했다.

게다가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딸, 그리고 한때나마 집착하고 사랑했던 사람의 자식이다. 정감이 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테레지아는 외손자를 쓰다듬었다. 강철과 같은 든든함이 느껴졌다.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니. 응? 베를린에 자주 오거라. 빈에 와도 좋아. 할미는 요즘 주로 빈에 있단다. 여기 예술관들이 너무 아름다워. 너도 와서 보면 좋겠구나.”

“네, 할머니. 꼭 갈게요.”

실제로 그간 상혁은 몇 번 브란덴부르크의 무우궁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친가의 혈통은 비밀이라도 외가의 혈통은 딱히 그런 적이 없었으니 다행이었다.

덕분에 그는 도이치로부터 무슨 백이니 하는 작위를 수여받았다.

애초에 어머니 안토니아는 아버지의 수많은 신분 중 하나인 사업가 신분과 결혼한 신세였다.

아직은 폐쇄적인 유럽 왕가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드물게 귀천상혼을 한 경우였다.

도이치 왕실에서는 이 특이한 상황에 골머리를 앓다, 아버지께 백작을 수여했다. 진정한 정체를 모르니 이해는 하겠지만 사실을 아는 자들에겐 참으로 건방진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아버지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그 신분을 적당한 시기에 사망 처리(졸지에 안토니아는 신분상 미망인이 되었다.)하며 정리하자 어쨌든 상혁이 그 작위를 물려받았으니 그 또한 도이치의 귀족이었던 셈이다. 자신은 고려의 군인 길을 가기 위해 이를 거절했지만, 이런 귀족 작위는 거절한다고 떼어내기도 어려웠다.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선 굳이 언급하고 다니지 않아 동기나 그런 애들은 잘 몰랐지만 이젠 모두가 알겠지.

“상혁아, 여기 네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더구나.”

이렇게 신문에도 나왔으니까.

‘이런, 아빠는 왜 이걸 방관하셨지? 자기만 혼자 그늘로 숨고 나는 왜 이렇게 주목받게 만드는데?’

테레지아의 호들갑은 여전했다. 다만 안토니아는 그 옆에서 아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길이 얼마나 매섭던지, 그녀의 옆에 있던 시녀장 이모가 은근히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상혁은 어머니의 분노를 직시했는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집 나간 이후에 어머니는 처음 뵙는 것이다. 불타는 효자는 그제서야 사실을 깨달았다.

할머니와 조금 더 밀착해 있는 것이 좋아 보였다.

“고려 대장? 이게 무슨 말이니? 네가 진급을 했니?”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대장은 사성장군의 계급을 말하는 것만이 아닐 터였다. 그냥 평범한 동네에도 골목대장이 있듯, 그런 의미로 쓰인 것이 분명했다.

이제 겨우 이학년 생도지만, 상혁은 ‘근접전투체계’라는 새로운 분야에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을 쌓고 있었다.

특수전사령관이 괜히 이 풋내기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임관하면 곧바로 낚아채듯 채어갈 것이 분명했다. 다만 황상의 사적 붕우인 것 같으니 함부로 일 처리를 할 수는 없기에 졸업 전까진 손가락만 빨고 있을 뿐이었다.

[고려 대장, 젊은 영웅에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

상혁은 자신을 이렇게 보인 아버지의 생각을 조금 추측해봤다.

당신은 완전히 다른 존재라, 그나마 인간적인 상혁과 같은 이들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고 내란의 여파를 수습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번 사건 때문에 군에 대한 민심이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여전히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하는 군인상을 보여주고 싶었음일까.

아니면 유명해지면 함부로 전장에 나가 헛되게 스러지지 못하니 일부러 이러시는 것일까. 추측은 많았지만 확신은 없었다.

조손의 대화는 길었지만, 결국 끝이 났다. 상혁은 도저히 두려움을 참을 수 없어서 빨리 이 방을 벗어나고자 했다.

“할머니, 제가 빈은 꼭 가볼게요. 임관 휴가가 꽤 기니까 가능할 거예요.”

“알았다, 얘야. 근데 벌써 가니?”

상혁은 빠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안토니아 뒤에 있는 시녀장이 순식간에 이동해 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제 더 이상 상혁도 옛날의 호리호리한 청년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그 손을 뿌리치고 뛰쳐나가려 시도했지만, 결국 안토니아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합상혁, 엄마 좀 봐.”

* * *

황위에 오른 해안은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며 널린 일들을 수습해 나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모자라 호경당과 형이 반란을 일으키고, 심지어 형은 자신의 앞에서 자결하여 죽기까지 했지만 금세 그 충격에서 벗어난 모양이다.

아니면 일로써 그 충격을 잊고 싶어 했거나.

“괜찮으냐?”

“전 괜찮습니다.”

상민은 자신을 바라보는 해안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황제는 지금 처음으로 자신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사이가 좋아지기 위해 해완의 처우를 황제에게 맡긴 것이 의미가 없었나, 상민은 한숨을 쉬었다.

껄끄러운 그놈이 왜 그렇게 죽었는지는 자신도 잘 모른다. 하지만 상민은 그가 죽음으로써, 마침내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미미한 불안감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때가 되면 극복하겠지.’

그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청이의 묘호는 정했느냐?”

“고종으로 할까 합니다.”

“좋지. 어울리는 묘호다.”

고(高)의 묘호는 전통적으로 태(太)와 세(世), 성(聖), 에 비할 만큼 높은 위치의 묘호였다. 그 밖에도 좋은 묘호라면 인(仁), 문(文), 성(成) 등이 있겠지만 특유의 문화로 인해 고려 내에서는 무(武)나 열(烈)보다는 살짝 아래로 취급되었다.

상민은 해청이라면 그 묘호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해안은 역대 군주들의 묘호를 손수 참견하는 태조를 멍하니 바라보다, 참지 못하고 불쑥 말했다.

“이제 다시 떠나십니까?”

“음? 당장은 아니다. 일단 계획도 좀 있고. 슬슬 거품이 많이 걷힌 것 같으니, 조금씩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때가 되었지. 시간이 된 것 같다.”

“경제 신정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상민은 차를 입에 털어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 시중은 복을 많이 받았군요.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없으나, 할아버님이 해 놓은 안배의 덕을 받아 치세의 명시중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닙니까?”

“시대를 잘 만나는 것도 홍복이다. 그리고, 시중이 대단한 일을 굳이 매번 할 이유는 없어. 자신의 대에 집을 바꾸어 보겠다고 빚을 내며 값비싼 가구를 들여놓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배관을 고치고, 깨지고 갈라진 틈을 메꾸는 일이 실제 생활에는 더 도움이 된단다. 설령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할아버님 또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음?”

이상한 어조의 말에 상민의 고개가 갸웃했다. 해안은 화제를 돌렸다.

“그럼 그 일이 끝나면, 다시 떠나십니까?”

“그 뒤엔 떠나야지. 이젠 내가 없어도 네가 잘할 수 있지 않으냐.”

“…그러면 언제 돌아오십니까?”

“음… 기약은 없다만. 그래도 뭐 원하는 것이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거라.”

근데, 하며 상민이 미간을 좁혔다.

“황상, 오늘따라 조금 이상하시오?”

해안은 퍼뜩 놀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대체 자신이 무슨 생각을….

“죄송합니다, 할아버님. 근래에 일이 많아 잠시 생각이 이상한 쪽으로 갔던 모양입니다.”

상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강인한 힘, 그러면서도 근육을 풀어주기에 딱 적절한 힘이 손바닥을 통해 어깨에 왔다. 해안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너희들이 힘든 것은 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버티거라. 이 위태로운 시기가 지나면 마침내 모든 근심과 걱정이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인류가 공통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야. 그때가 되면 너도, 나도 조금은 쉴 수 있겠지.”

“…….”

* * *

내전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진 과격파 정당, 호경당은 당연히 내란죄를 범한 위헌정당으로 전락하며 해산되었다.

구성원들은 모두 즉각 체포되었고, 죄질에 따라 형을 받을 것이었다.

가장 큰 두목인 손원호는 8층 높이의 건물에서 머리부터 땅에 떨어지는 바람에 입을 열거나 어떤 증언도 할 사이 없이 허무하게 가버렸지만, 이미 증거는 차고 넘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잡혔고 나머지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호경당과 연루되었던 군부의 장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군형법이 적용되었다.

병사와 부사관들은 경미한 처벌을 받았지만, 높은 지위에 오른 장교일수록 그 책임을 많이 물었다. 직접 반란을 일으킨 4사단과 13사단의 수뇌부들은 대부분 총살까지 언도받았다.

사회적으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작가의 말]

근접전투체계 : Close Quarters Battle

경제 신정책 : 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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