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화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5)
쿠데타 세력은 과감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모든 이들이 이들의 의도를 인지하지 못할 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다른 이들이 이들의 성공을 의심할 때,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사실상 세상 대부분의 반란이 그러하듯, 반란의 주체는 반란을 할 대상보다 대체로 세력이 작았다.
다만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암중에서 그림자 속에 숨어 공격한다는 이점과 빠르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덕에 그런 것이었다.
그런고로 반란은 반란의 주체가 엄청난 자신감을 가져야 성공했다. 세뇌되었다시피 할 정도로.
빙독을 통해 해완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마침내 같은 배에 승선했다는 뜻을 재확인한 손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가 오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불가능했다.
늙은 황제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준비를 철저히 한 그들은 기필코 성공하리라.
손원호는 4사단, 13사단, 14사단, 26사단 등에게 ‘진정한 황제’의 명을 내렸다.
지금 그들이 비벼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황제의 적통이 가진 권위였다. 그들은 진정한 황제를 위해, 거짓된 황태자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움켜쥐어야 했다.
“거짓된 황태자를 폐하라! 불충한 무리들에게 죽음을! 황상 폐하 만세!”
해완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동공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손원호는 뒤에 있는 사람에게 귓속말을 하며, 황자가 명료한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주기적으로 약을 공급하라 지시했다.
“하지만 당수, 이제 약이 얼마 없습니다.”
마약단속국이 밀수된 빙독의 꼬리를 거의 다 잡아가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그들은 들키기 직전이었다. 여러모로 이번 거사는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오늘 밤만 어떻게 잘 보내면 된다. 모든 일이 끝난다면 더 이상 아무 걸림돌도 존재하지 않아. 빙독이 떨어졌다면 다른 물건이라도 써. 나는 황자가 제대로 결정을 하는 모습을 원한다. 알겠나?”
성공만 한다면, 그런 놈들은 과거의 유물이 될 것이다. 손원호는 그렇게 장담했다.
* * *
하지만 고려는 옥저도, 중화제국도 아니었다.
내전이 일어나는 그런 전근대적인 나라와는 완전히 달랐다.
영토는 두 나라가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컸지만, 국가체계는 차원이 달랐다.
국가의 기반시설도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상태로 진입한 후였다.
내전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관문들이 많았다.
표면상, 해완은 장남으로서 황권을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맞았다.
다만 시대가 어느 때인데, 황실의 명분으로 전쟁을 벌이겠는가. 등 뒤에 과격파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알았다.
붕어하신 황제의 유언, 추밀원장의 명령은 확실했다. 군사적으로 이동하지 말 것. 그것을 어기면 반역이다.
부하들은 평범한 고려인이었다.
제아무리 사단장이라 하더라도, 부하들을 전부 통제할 순 없었다.
호경당의 이념에 동조하는 자는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들은 우리가 왜 반역을 저질러 정치놀음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싸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병들과 장교들 모두.
물론 호경당 세력은 4사단을 비롯한 서너 개의 핵심 사단 지휘부만큼은 꽉 움켜쥔 상태였다. 돈 앞에 장사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을 다 회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이들이 돈의 가치를 다른 것보다 우선시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회유한 사단의 중하급 장교들도 그러했다.
사상 처음으로 고려군 내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총격전을 벌이며 이웃을 학살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은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상관을 오히려 사살하거나, 최소한 탈영을 하면서 저항했다.
“반역자 쓰레기! 네놈은 죽어서도 태조께서 단죄하실것이다!”
장성들과 장교들 또한 모두 부패했을 리가 없다.
애초에 부패하고 정치적 목적을 띤 자들은 그 비율이 이 할도 안 되었다.
나머지 대다수의 군인들은 조국과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모두 두터웠다.
이런 이들이, 헛된 움직임을 꾸미는 자들을 가만히 두고 볼까.
실제로 오동성 부장은 자신의 전속부관에 의해 네 차례 칼에 찔려 사망했다.
아놀드 부장과 김현수 부장만이 나름대로 그런 위협들을 제거하며 무사히 반란을 일으키는 것에 성공했을 뿐이었다.
수많은 장군들에게 자원을 투자한 것과 달리, 오로지 두 개 사단만이 성공했다.
그나마 수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있는 그들의 중요성이 매우 컸으니, 호경당에게는 이들의 성공이 다행스러웠다. 아직까지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최대한 근위여단의 시선을 끌라 전하라. 우리는 그동안 궐을 점령하겠다!”
4사단과 13사단이 수도로 진격해오자 방어를 위해 있던 근위여단도 대응에 나섰다. 이런 사태가 처음 일어난 일이니만큼, 공격자들만큼 방어자들도 당황할 것이다.
예상대로 누가 연루되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만큼, 근위여단은 다른 군대를 호출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근위비행단과 연계하여 저들을 방어해 내기로 했다.
그러니 호경당은 근위여단의 주력을 두 개 사단을 미끼로 돌려놓고 자체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들을 동원해 먼저 범궐을 하려 들었다.
제도는 굉장히 넓었으니 경관들의 이목을 피해 창천궁을 빠르게 넘어 추밀원장을 제압한다면 성공이었다.
종통인 해완은 나름대로 창천궁 구조에 익숙하여, 그나마 경계가 가장 허술한 곳을 골랐다. 정문인 남문과 도개교인 동쪽 문에 비해, 주로 식료품과 관리인들이 드나드는 북서쪽 쪽문을 겨누고 행동한다면 가능성이 커졌다.
모든 것이 끝나고 해완은 정당한 황위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손원호도 당수가 아니라 시중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진작부터 해완과 함께 시중의 명칭도 바꿀 생각이었다. 유서 깊은 고씨 고려의 대막리지는 어떠하냐고, 그렇게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가려 뽑은 인원들을 수송용 화물차에 태운 뒤 빠르고 신속하게 창천궁까지 도달했을 때, 손원호의 꿈은 산산이 조각났다.
* * *
근위여단은 빠져나간 것이 분명했다.
사실 거리는 휑했다. 경찰 병력도 잘 보이지 않았다. 손원호는 그제서야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적어도 조금의 저항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대놓고 야밤에 이런 화물차들이 십여 대가 넘게 움직이는데, 이것을 저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의문은 금세 풀렸다. 엄청난 수의 병력이 창천궁 북서문 앞에 있었다. 마치 그들의 경로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 두두두
하늘 위에선 이상한 소리가 났다. 손원호는 야밤이라 무슨 소리인지 확인해보려다, 이윽고 저 위에서 이상한 비행기 비스름한 것을 발견했다. 이 혼란한 와중에도 대체 어떻게 저 비행기가 저렇게 체공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당수! 어찌할까요!”
하지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육지의 사람들. 손 당수는 다시 시선을 내렸다.
저 병력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몰랐다. 하지만 분명히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사실 그의 추측은 적중했다. 이들은 이미 난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여 한참 전부터 경기 근방에서 즉시 출격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 정당의 당수인 원호의 정보망에 닿지 않을 정도로 기밀을 지킨 것이 놀라웠지만, 제아무리 호경당 당수라 하더라도 해청이 미리 준비한 병력들을 알아차릴 순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의문을 품기 전, 확성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 무기를 버려라!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저 앞엔 커다란 철제 전쟁병기들이 있었다.
전차는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도심에서 전차를 사용하기는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다.
다만 윗부분에 대구경 자우어 기관총이 달린 장갑차들은 전차는 아니더라도 보병의 화력에는 충분히 저항할 수 있는 군용 차량이었다.
전차가 없는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항거불능의 괴물이었다.
위에 탑재되어 있는 대구경 기관총.
저것들이 발사되면, 그들은 모두 피곤죽이 되어 죽겠지. 도로 위에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지막 항복 권유라, 어쩌면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저 권유를 들어야 할 것이다.
허나, 충분히 현명하지 못했기에 손원호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너무 빨리 가려고 했던 그의 선택이 그들의 인생을 빠르게 끝내기 직전이었다.
손원호는 고개를 돌려 승용차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해완의 표정이 선명하게 잘 보였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습니다.”
원호는 이를 갈았다. 어떻게 꾼 꿈인데, 어떻게 오른 지위인데.
“뭐?”
“저 건물에 박아! 당장! 그리고 농성한다!”
“예!”
바로 옆에는 누리은행 본사가 있었다.
고급 승용차가 먼저 움직였다.
― 콰앙
그들은 곧바로 큰 철근강회 건물의 접견층에 박아버렸다. 유리창이 산산이 조각나고 자동차가 건물 안으로 처박혔다. 안의 사람은 이미 대피를 한 것인지, 혹은 날이 이미 한참 늦어서 퇴근을 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만약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비명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해완과 손원호가 탄 승용차를 따라 화물차들도 1층에 머리를 박았다.
항복 권유가 수포로 돌아가자, 장갑차는 사정없이 총탄을 발사했다. 어차피 주요 인사는 선두의 고급 승용차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니, 일반 흉적들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었다.
화물차 짐칸에서 내리려던 부하들이 소총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구경의 총탄에 말 그대로 터져나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자들은 절반에 불과했다. 일 층은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2층을 중심으로 방어 진지를 구축하라!”
“…알겠습니다, 당수.”
원호는 해완을 질질 끌며 승강기로 다가갔다.
격자 모양의 쇠창살 문을 닫은 원호가 위층을 누르자, 승강기는 느릿하게 위로 향했다. 다행히 전력은 계속 공급되는 모양이다.
― 끼이이익
그리고 당연히 곧바로 전력이 끊겼다. 외부에서 차단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딜 가는 거요. 손 당수.”
원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가까운 층에 멈추어 선 승강기의 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층고가 맞지 않아 기어오르다시피 했으나, 어쨌든 그들은 대략 8층의 높이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었다.
평범한 사무실, 밖의 야경이 아름다웠다.
이곳은 황궁 근처라 10층 이상의 고층 건물이 들어서지 못하는 구도심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높이의 건물에서는 지금 상황이 명백히 보였다.
“탈출구를 찾으시오?”
약에서 깨어난 해완이 그렇게 물었다.
그는 이 상황 속에서도 약간의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손원호는 참지 못하고 본색을 보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 닥치라고! 너 때문에, 지금 네가 알려준 경로 때문에 다 좆됐어. 네놈 때문이라고!”
“이미 저렇게 많은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다른 길을 택했다면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었소?”
창밖을 보던 해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번쩍거리는 탐조등이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일 층에서는 가끔 총소리도 나는 것이, 저들이 진입을 시도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보니, 당신도 나도 그릇이 이 정도란 말이지.”
자신감에 차서 명령을 내렸던 놈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축 늘어진 시금치 같은 놈이 되어 있었다.
그 말에 손원호는 이놈에게 약을 물려 조용히 할까 생각하다, 갑자기 격분했다.
“이 약쟁이 꼴통 황자 새끼. 정말 네가 초월자니 뭐니 그렇게 믿었나? 병신 같은 새끼.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놈이 무슨 국가의 지도자! 너는 그저 얼굴마담으로 뒷방에 처앉아 도장이나 찍으면 될 운명이었다. 내가, 내가 우리 제국의 영도자가 되어야 했단 말이다!”
해완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네놈도 결국 다른 이들과 똑같았군. 사의를 대의로 포장하여 행동에 숭고함을 더하는… 그래, 너희들은 그렇겠지. 그럴 수밖에 없지. 정녕당에 들어서는 것을 일생일대의 영광으로 알고, 그러기 위해 온갖 수를 쓰는 것이 너희들이다. 내 잘못 판단했구나. 애초에 신하란,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는 천박한 것들인데.”
“헛소리 말고 생각을 해 봐라. 여기서 살아나갈 생각을 말이다.”
“국민주권? 하하. 웃기는 소리. 대중들이 너 같은 지도자를 원한다면 대중들의 수준은 딱 그 정도라는 이야기지. 국민은 그에 어울리는 지도자를 가질 수밖에 없다.
위대한 초인? 초월자? 표를 행하는 집단이 그 수준이 아닌데 현실과 이상을 어찌 알까? 그저 중우정치를 하고자 하는 정치인을 트로이의 잘생긴 왕자로 여기며 좇았던 망조를 불러오는 헬레네란 계집처럼.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추종할 것이 아니더냐?
이런 현실 속에선 앞으로의 불편한 일을 예언하는 사람은 몰락한 트로이의 왕녀 취급을 당하는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 퍽
해완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나뒹굴었다. 이제 좀 조용해졌구나. 손원호가 주먹의 핏물을 닦아냈다.
“당수!”
아래층에서 몇 명의 부하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저들이 일황자의 신변을 궁금해합니다.”
사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농성을 벌인다고 하나, 이렇게 조용할 리가 만무했다. 이미 적들은 건물을 꽁꽁 포위하고 있었고 전력과 정보를 차단한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도 그들이 염려하고 있는 것은 일황자의 신변인 모양이다. 원호는 크게 웃었다.
“그래! 살아날 방도가 있다.”
그는 해완을 잡아당기곤, 그의 관자놀이에 다혈권총의 총구를 가져다 대었다.
“이놈이다. 우리가 가진 패는 이놈뿐이야.”
해완은 비웃었다. 대역죄를 지은 자신이 인질?
갈 데까지 갔구나. 그렇게 싫어하는 황제의 은혜에 자신의 목숨과 신념을 모두 맡기자는 그런 병신 같은 발상을 스스로 입에 담는다니.
정신이 돌아온 형은 그제서야 쓰게 웃었다. 동생은 여전히 자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실로 부끄러웠다. 아버지의 판단이 이해가 갔다. 자신은 어울리지 않았다.
몸이 약을 원했다. 덜덜 손이 떨렸다. 차라리, 차라리 여기에서 뛰어내리면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닐까, 해완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 순간, 그는 창밖에서 마침내 그가 그토록 바라던 초인을 찾았다.
* * *
― 두두두두
솔직히 말해, 초창기 직승기(헬리콥터)란 굉장히 불안정한 물건이다. 시범으로 만들어진 이 기종도 그랬다.
이것도 자신과 해안이 제도로 귀환할 때 탄 비행체마냥 부익사의 실험적 기체 중 하나였다. 신변의 안전이 의심되지만 딱히 큰 불안을 느낀 적은 없었다. 여차하면 그가 낙하산을 메고 다른 사람들을 껴안고 떨어지면 되는 일이다. 밑바닥이 좀 가깝다면, 어디 근처 고층 건물의 창문으로 뛰어들어도 되었다.
상민은 흘깃 옆을 보았다. 자신의 아들은 어딘가 핼쑥해진 얼굴로 계속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강인한 줄 알았건만, 그럼에도 상민은 상혁의 등을 몇 번 두드려 주었다.
“굳이 여기까지 와야 했느냐? 네 어머니가 걱정하는데.”
직승기의 소음 덕에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부자간의 대화는 마치 싸우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 것이 아님에도.
“황상을 모시라고 절 부른 것은 아버지 아닙니까?”
“아니, 그 말고. 사관학교 입학 말이다. 우린 그 이야기를 아직 하지 않았잖니.”
“…….”
“너는 내 수많은 아이 중에서 유별나게 강하다. 넌 옛날 과트라체 지도자였던 강이보다도 강해.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넌 전쟁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 착해. 스스럼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선다고도 들었다.”
“그게 아버지 아닙니까? 아들이 아빠를 닮고 싶어 하는 건 정상이 아닐까요?”
상혁이 그렇게 말했다.
상민은 아들 좀 어떻게 해보라고 안토니아가 울며불며 매달리는 광경을 떠올렸지만, 아들놈은 다리몽둥이를 하나 부러뜨려 놔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이놈이 뜬금없이 국제사관학교에 가서, 그곳에 있는 나폴레옹과 붕우 관계를 맺었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어떤 운명이 상혁을 부르고 있었다. 상민은 이에 수긍하면서도 이런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폐하!”
“연락이 왔나?”
“예!”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굉음 속에서 무전기의 수신기에 귀를 대고 있던 사도 하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4사단을 제외하면 전부 항복했습니다! 13사단의 지휘관은 저격으로 사살하였습니다.”
“알겠다. 4사단 장병들의 희생도 최소화하라. 최루탄을 중심으로 진압하라고 해. 물론 저항이 격렬하면 사살해도 좋다.”
‘이 정도면 되겠지. 조금의 피는 흘렸지만, 그렇게 많은 피가 흐르지도 않았다. 충분히 교훈을 얻었을 테다.’
하늘 위에서 이들의 행동을 바라보며 비웃기 전에, 상민은 여러모로 불쾌함을 느꼈다.
교훈을 내리기 위해 지금껏 방관했었다. 하지만, 저 싹, 저 암세포는 상민의 지시 없이 스스로 자라난 것은 분명했다.
끔찍하게 불쾌했다. 더러웠다. 모욕적이고 짜증이 났다.
해완의 건도 있었고, 손원호라는 작자가 소수의견이라곤 하지만 현 고려의 대중들의 생각을 대변한다는 것에 불쾌감이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중 가장 역겨운 것은 그동안 해청의 역동적인 개혁에 숨죽여왔던 일부 불충하고 부패한 세력들이 황상의 붕어 이후에 슬며시 준동하는 이 사실 자체였다.
이래서야 마치 자신의 존재가 정말로 고려에 필수 불가결하지 않은가.
만약 자신이 없다면, 어쩌면 원호는 쿠데타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가능성은 1할보다도 낮았다. 해청은 이미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고, 추밀원장과 정보총국장, 근위대장과 보안국장 등에게 유사시의 사건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선황 해청은 딱히 걱정도 안 했다.
어차피 상민의 존재가 있는 이상, 고려의 태묘와 사직이 흔들리는 경우는 없었다. 설령 상민이 본 그 끔찍한 먼 미래에서조차 해씨 종통은 무사했으니 말을 다 한 셈이다.
그럼에도, 상민이 없다면 그 쿠데타의 가능성은 1할이라도 생겨나는 셈이다.
국가의 명운을 걸고 도박하기에는 1할은 너무 터무니없이 가능성이 높았다.
애시당초 자신의 존재가 없었다면, 언젠가는 정말로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지 않겠는가. 내전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그것을 딛고 일어난 나라들은 많아도.
그러니 그는 백신을 주입하고, 경험을 가르쳤다. 지금까지 줄곧.
이번의 경우에도 불주사였다. 흉터는 남겠지만 교훈과 고통은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지 않은데.
“저기 저 건물 옆에 대어 봐라. 느낌상 8층에 있는 것 같으니.”
상민은 사념을 끊었다. 직승기는 건물의 옆에 떠 있었다.
“가자, 아들아.”
새로운 황제에게 줄 선물이 저 안에서 멍청하게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민은 마치 짐승처럼, 날다람쥐처럼 체공하는 직승기에서 펄쩍 뛰어 유리창을 깨부수고 그놈들의 멱살을 잡았다.
― 허억!
한 놈이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었다. 자신이 맞는 것은 딱히 상관없지만, 해완이 문제가 되었다.
― 펑
하지만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육중한 방패를 든 상혁도 무사히 날아들었다. 그는 해완을 껴안고 방패를 들었다.
그것을 흘깃 쳐다본 상민이 마침내 움직였다. 부드럽게 총기를 빼앗고, 적을 격살했다. 그렇게 고된 훈련을 받았음에도 손원호의 부하 넷은 자신이 뭘 상대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책상 모서리에 찍혀 사망하거나, 의자의 다리에 관통당해 죽었다.
손원호는 그의 머리를 잡는 상민의 손을 느꼈다.
“네놈에겐 조금 더 고통을 주고 싶지만… 그래도 장기말로서 고생한 노고를 인정해 주어야 하겠지. 그동안 참으로 잘해 주었다.”
상민은 그렇게 말을 하며 손원호를 창밖으로 던졌다. 그도 따분한 법적 절차를 썩 바라진 않을 것이다. 어차피 최후는 비슷할 테니까.
― 으아아아
“집으로 가자.”
“……당신…….”
거대한 충격을 받은 해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상민은 상혁에게 고갯짓을 했다. 여러모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신을 대신해 관심을 받을 존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용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는 듯, 상혁이 씩 웃고는 방패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