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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45화 (545/653)

545화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4)

왕씨 고려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해씨 고려의 국가례는 반도에서 기원한 풍습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바뀌어, 이제는 반도의 국가인 조선의 예법과는 상당 부분 다른 것이 있었다.

국상(國喪)도 마찬가지였다.

황제 해청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시간이 다했음을 깨달았는지 곧바로 황후와 내관들, 심복들을 호출하고는 몇 마디 말을 남겼다.

이후 그는 대략 12분 만에 붕어하였고, 황제의 환후를 돌보던 태의가 청진기와 기타 정밀한 의학 도구로 황제의 맥을 짚어 붕조(崩殂)를 확인했다.

그 뒤로 곧바로 국장도감이 설치되었고, 행정부나 입법부, 사법부와는 관계없이 추밀원장이 이를 맡았다.

의전 서열은 상서령급이지만, 평시엔 오히려 아랫사람인 정보총국장보다도 훨씬 실권이 없어 그저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던 추밀원장은 황제의 붕어 시에는 그 책임과 권한이 막중해졌다.

황제와 거의 항상 붙어 있기에 평상시 황제가 작성해 놓은 유서뿐만 아니라 복심과 유언 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추밀원장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비슷한 처지의 국새상서(상서급의 지위)로 하여금 모든 황제와 황가의 공적 명령을 일시로 중단시키고 황제의 시신과 옥새, 황궁의 보물들을 엄중히 수호했다. 심지어 최상위 후계자를 제외하면 종통들조차 이에 절대 접근하지 못했다.

이때 그의 명령을 받는 이들은 근위여단장, 근위함대장, 근위비행단장의 세 장성과 정보총국장이 있었다.

또한 추밀원장은 군 최고 통수권자가 빈 상황 속에서 전 군의 경계태세를 점검하고 1순위 승계자, 즉 황태자가 즉위를 하여 권한을 인수할 때까지 사실상 황제를 대리했다.

이 권한은 시중과 상서성보다도 높았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 일은 국상 중에도 멀쩡히 돌아가지만, 어쨌든 황제와 황실, 군사(주로 근위대였지만)의 일에 대해선 추밀원장의 명령이 시중의 명령보다 높았을 정도였다.

복잡한 행정처리를 하는 와중에, 국장도감은 장례 절차를 착실하게 준비했다.

황제의 육신을 목욕하고 염습하는 과정 뒤엔, 방부처리를 하는 과정이 추가되었다. 동맥을 비롯한 주요 혈관에서 피를 빼고 대신 방부액을 채워 넣는 방식의 보존처리였다.

이는 근래, 즉 열종대제 해원의 국상부터 실시된 일이었긴 했는데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을 꺼리는 고려의 전통적 문화를 미루어보면 꽤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려의 영토가 워낙 넓으니 조문객이 장례식장에 오려면 한참이 걸렸다. 일반적 조문객이라면 모를까, 모자지간이니 부자지간이니 하는 가장 가까운 혈족들은 기다려주는 것이 예의였다. 제도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아들도 미주에 사는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참석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하지만 제도에서 미주까지는 물리적으로 가는 시간만 해도 적어도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이것도 여객용 쾌속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니 전통과 달리 민간의 관습은 이미 많이 바뀌어 있었다. 민간에서는 시신을 염습하고 방부처리를 하는 관행이 팽배했던 것이다.

또한 군과 관에서도 보존처리기법은 많이 쓰였다. 대전쟁 당시 고려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스러졌기에 전사자들의 시신을 무사히 본국으로 운반하기 위해 시신방부처리는 필수적이었다.

황실의 국상은 더욱 중요했고, 훨씬 더 많은 조문객들이 참배할 수밖에 없었기에 국상의 절차에 보존처리가 추가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아무리 꼼꼼하게 염습을 하고 방부처리를 하더라도 상온에서 보관하면 조금씩 부패했기에 황제의 시신은 국상 절차가 끝날 때까지 특수 제작된 저온 관에 안치되기까지 했다.

해청도 죽음을 준비하며 적극적으로 이를 원했다.

그는 고려의 황실과 정부가 자신의 죽음마저도 국제정치적으로 이용하길 원했다.

조문외교라 함은 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예맥한 삼국과 유구 등의 나라에서 천조 황제의 국상이란 군주, 혹은 후계자나 가까운 왕족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중대한 일이었다.

유럽이나 중동,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군주나 후계자, 혹은 최소 외무상서를 보낼 만큼 엄중한 일이었기에 고려 황실에서도 이들의 조문을 나름대로 배려해 주어야 했다.

또한 지금과 같이 황태자를 비롯한 승계권자들의 귀환을 기다리는 의미도 있었다.

북려에 있는 황태자는 최선을 다해 빨리 돌아오겠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렸다.

황태자가 온다면, 이후의 절차는 일반적으로 국상 절차를 밟았다.

신위를 만들고 태묘에 황제의 죽음을 고하는 등의 절차 등이 지나면 황태자는 사위(嗣位, 황제가 사망한 뒤 황위를 잇는 의식)를 고하고 처음으로 조칙(詔勅)을 반포함으로써 계승의 의식과 국상의 마무리를 이어나갔다.

이후 황태자는 사위의 고려 국법에 따라 한 달여간의 국상을 치르며 도중에 즉위식을 하는데, 아무래도 국상 중인 만큼 양위로 인한 즉위식보다는 검소했다.

해씨 황가는 대체로 그동안 양위에 의한 즉위식이 사위에 의한 즉위식보다 많았기에 더더욱 슬픔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컸다.

다만 국상 기간은 태조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일역월제를 엄중히 지켜 한 달 미만(27일)으로 짧게 지냈으며, 국상 동안 사회 전반적으로도 음주는 자중하더라도 음식(특히 고기)을 금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즉위한 뒤의 황제는 일단 내빈들을 접견하여 국제사무를 돌보고, 근위대의 경계태세를 해제하며 또한 군대를 위무하는 식으로 서서히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 * *

이러한 과정 속에서, 손원호는 틈을 잘 노려야 했다.

제도로 귀환하는 비상특급열차 속에서 그는 자신의 심복들과 토론했다.

“우리가 비상특급열차로 제도로 가는 시간은 대략 사흘 정도 걸린다. 2황자보다는 시간이 많아.”

손원호는 대놓고 해안을 황태자가 아닌 2황자로 불렀지만 그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황제의 죽음 이전에 이곳에 와 있어 소식이 빨랐지.”

사실 황제의 붕어는 국가기밀로 취급되지만, 소문을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창천궁 내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또한 얼마나 많은 이목이 궁에 쏠려 있는지를 보면 더더욱 그랬다.

특히나, 소문에 민감한 청해 담쟁이거리 같은 곳은 이런 소식을 가장 빠르게 듣는 곳들 중 하나였다. 이번에도 황제의 붕어 직후 주가가 요동쳤던 것을 보면, 금융인들이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호의 수하들 또한 정재계에 여러 끈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소식을 간파했고, 빠르게 태동산맥에 있는 1황자의 별장에 소식을 전했다. 그 소식을 받고 곧바로 장례에 참석하러 가는 중이니 시간은 그들 편이었다.

“예상컨대 2황자는 소식이 전달되는 것도 우편기로 받았을 것이고, 달려오는 것도 배 혹은 비행기로 움직일 것이다.”

안전을 위한다면 배를 타고 오겠지만, 생각이 있다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비행기를 타고 올 것이다. 군인이니 아마 그렇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현시점의 항공기란 승객용으로 쓰기엔 여전히 한계가 있어, 단번에 니타시난에서 남려 제도까지 도달할 수 없었다. 몇 번 착륙하여 연료를 보충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올 것이니 시간은 오히려 검증된 경유기관을 쓰는 특급열차보다 느릴 수 있었다.

정말로 황태자보다 일찍 도착한 해완과 원호는 곧바로 움직였다.

해완은 마치 황태자가 온 것마냥 상주 노릇을 하기 시작했으며 주변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부여씨 황후가 이를 최대한 제지하려 했지만, 전 덕천씨 황후의 여러 사건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황후의 힘은 꽤 약해졌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녀의 아들이 빨리 돌아오지 않는 이상에는.

다행스러운 것은 추밀원장은 꼿꼿이 해청의 유지를 받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손원호는 이 꼬장꼬장한 늙은이를 당장이라도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근위여단과 근위함대, 근위비행단들의 충성심은 강철벽과 같아 흠집도 나지 않았다. 괜히 고려 최고의 정예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죽어서도 황제를 따를 자들이었으며, 지금은 황제의 유지를 수호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파고들 틈은 전혀 없었다.

종교계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국은 국교가 없어 각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어떠한 정치적 실권이 존재하지 않으나 그들의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다.

해완은 제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국교와 쿠쿨칸교, 고려 성공회와 정교회, 불교계 등을 모두 만났지만 어떤 성과도 얻지 못했다. 심지어 제국교와 쿠쿨칸교는 그를 만나 회유를 당하자마자 곧바로 대노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까지 했다.

현 제국교 교주는 잉글랜드 이민자 1.5세대 출신의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는데 격분을 금치 못했다.

“헤러시! 신성모독! 이단이오! 실로 끔찍하고 참담한 일이니 내 귀를 자르고, 고막을 파내야겠구려!”

무엇에 대한 이단인가? 태조신에 대한 이단? 자신만이 태조의 뜻을 이룰 사람인데도? 하지만 해완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선택지는 오로지 하나로 좁혀지고 었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군대를 동원해야지요.”

“그렇게까지 해야 하오?”

국상을 위해 제도에 올라온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의사를 떠보는 자리에서, 손원호가 그렇게 말했다. 해완은 큰 거부감을 느꼈다. 고려국사에서 처음으로 군사반란을 꾀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지금 이렇게까지 하시고 있는데, 이제 와서 발을 빼실 요량이십니까? 이미 전하께서는 물속 깊이 잠기셨습니다. 옷이 마르길 바라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 아닙니까?”

해완은 성을 내려 했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그만두었다. 황실 사무에서 손을 떼라는 선황의 유지를 어기고 이미 본격적으로 황자로서의 행보를 하고 있는 이상, 해안이 제위에 오르면 해완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한결같은 충성심을 자랑하는 근위대는 어쩔 수 없다지만, 고려 군부는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고려엔 워낙 많은 군인들이 있다.

게다가 그중에서는 선대 황제에게 많은 불만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이 사건은 꽤 한참 전으로 올라갔다. 고려 사회에 경종을 울린 홍진 사건 이후, 고려는 여러 가지의 악폐습을 근절해 나가기 시작했다.

고려 군부 개혁도 그것들 중 하나였다.

모든 조직은 덩치가 커지는 와중에 부패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고려 군부도 마찬가지라, 군 내에 사조직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는 굉장히 좋지 않은 신호였다.

모든 군대는 황제와 제국에게 충성해야 함이 마땅한데, 선배와 사조직에 충성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이들은 당연히 큰 탄압을 받았고, 많은 장성들이 좌천되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가 아니었다. 군 내 사조직 척결 이후에는, 고려 특유의 문화가 또 걸림돌이 되었다.

군 방산비리, 군납비리가 적발된 것이다. 한두 건이 아니었다. 마치 감자 줄기마냥 하나를 캐니 다른 하나가 우수수 뽑혀 나와, 당시 해청이 자신의 아버지마냥 극대노하다가 뇌전증 증상이 도지는 바람에 위태로웠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원체 거대한 군대에 물품을 납품하는 것이니만큼 비리가 아예 없기는 힘들겠지만 방산비리는 고려 특유의 문화, 즉 전관예우와 결부되어 있어 그 문제가 심각했다.

굉장히 공동체적이고 향토적이며 서로 신경 써 주는 아름다운 전통문화라 하더라도, 이렇게 변질될 수 있는 법이었다.

중요한 무기체계들, 즉 전함이나 전차, 비행기에 대한 것들은 의외로 적었다.

병기개발단에서 만드는 전함과 군함 등은 애초에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 비리를 저지르기 힘들었다. 또한 전차는 종동사에서, 비행기는 부익사나 충천사에서 개발 중이니 그곳에서 장난질을 했다간 용의 한 끼 점심 식사로 전락할 것이 분명했다.

소총과 개인화기 등은 여러 무기회사들이 서로 경쟁하며 발전 중이니 괜찮았다.

다만 이런 무기들 말고 소소한 것들이 문제가 되었다. 예를 들면 군대에서 쓰이는 공구류들, 건축에 쓰이는 자재들, 식료품 같은 것들이 승냥이들의 주 먹잇감이 되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별로 닿지 않으면서도 적잖은 규모라 해먹을 건 많은 것들.

이러한 것들은 보통 퇴역한 군 장성이나 영관급 고위 장교들이 취직하여 있는 군납업체가 주로 선정되었는데 당연히 납품 품목의 품질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세 치 혀와 그동안의 끈끈한 정을 이용해 부실한 품질을 눈속임하여 납품하곤 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비밀이 없다. 행운이 자신의 편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정작 그들의 목숨이 음식물쓰레기에 꼬이는 날파리와 비슷할 정도로 연약하다는 것을 잘 몰랐다. 화염 숨결 한 번에 불타버릴 것들.

만약 이들이 알았다면, 부정을 저지르기보다는 정석으로 돈을 벌었을 테다.

결국 이 사건들은 내부자고발 덕에 세상에 드러났다. 연대장이었던 조지 워싱턴 대령은 자신의 장성 진급 문제가 걸린 시점에서 상관이자 사단장인 장성에게 부당한 권유를 받아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예 이 사실을 황제에게 상소로 알렸다. 당시에 그는 군단장도 믿을 만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하루에 어마어마한 상소를 읽어야 하는 황제였지만, 대체로 시간이 허락하는 하에서 거의 다 읽어보던 해청은 당연히 이 사실을 파악했고, 노기를 다스리며 사실관계를 철저하게 확인하라 황립보안국과 육군정보국에 지시했다.

비단 군 통수권자로서의 권한뿐만 아니라 황제는 이런 사건에 목청을 높일 근거가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황실 자금이 군인복지에 쓰이고 있으니 당연했다.

심지어 대전쟁 시기에는 황명으로 후식을 보급하는 선박이 돌아다녔으니까.

그 뒤에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었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사조직과 군납비리에 관련된 별들과 영관급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은 최고위 군징계인 즉각파면은 물론이고, 민간인 신분에서도 모두 구금되어 형사상 처벌을 받았다. 해청이 붕어한 지금도 수감되어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농후했다.

게다가 해청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아예 고려 제국의 모든 분야에서 앞으로 전관예우의 ㅈ이라는 글자를 쓰는 순간 훨씬 더 엄중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 조칙을 내렸다.

물론 입헌군주국인 만큼 조칙만으로 무언가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입법부와 사법부가 움직여야 하겠지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국민들이 당연히 속 시원해하며 황제의 뜻에 지지를 표명하여 입법부를 움직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군대뿐만 아니라 공무원계나 법조계에 모두 적용되는 일이었다.

생계형 비리라는 망언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고려는 군 복지와 연금 등으로 지금껏 상당한 수준의 군인 대우를 유지했으며 공무원 봉급과 법관들의 봉급도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으니, 과도한 탐욕과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에야 은퇴한 이후에도 충분히 중산층으로서 먹고살 수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줄줄이 별들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당시 그렇게 깊게 연루되지 않았기에 화염을 피해간 자들이 있었다. 다만 이들도 자신이 해 처먹을 시대가 오기 전에 상황이 뒤바뀐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마침 선황이 죽었으니, 이제 다시 아름다운 옛 풍습으로 돌아갈 때였다.

이 일부 군인들은 대부분 호경당을 지지했다.

군인의 정치적 중립성은 엄중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모든 인간이란 존재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의견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모든 사람들은 속내에 특정 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속내에 정치적 관점이 있는 것은 딱히 나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군인도 나중에 전역한 뒤에는 정치인이 될 수 있었으니, 그런 측면에서 군부와 친한 정당을 알아차리긴 쉬웠다.

본래 군부는 보수적이라 우파의 성향을 띠었다.

하지만 고려의 두 우파정당 중 귀당은 성격이 조금 달랐다.

이들은 애시당초 경제적 관점상 불필요한 세금을 줄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특히 매년 엄청난 양의 국방비를 유지하는 고려의 군 감축을 원했다. 경기침체 국면에서는 더더욱.

이런 측면은 오히려 나름대로의 개입주의를 지지하고 있는 경당보다도 심할 정도였다.

그러니 군부 출신의 정치인들은 귀당과 약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경당과 친해지기도 그랬다. 경당은 세상 온 동네에 혼란을 불러오는 끔찍한 공산당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보수적이었지만, 그래도 좌파정당이었으며 집권 시기마다 군 내 감찰이니 인권이니 하며 시끄럽게 떠드는 놈들이니 좋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니 군부는 원래부터 교당과 성격이 잘 맞았다. 많은 군인들이 전역한 뒤 교당의 정치인들이 된 것이 이를 증명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군납비리를 통해 한탕 해먹고 싶은 자들에게는 교당도 선택지가 아니었다.

조지 워싱턴, 그 천인공노할 내부고발자가 당수로 있는 지금은 더더욱.

그 와중 신성과 같이 호경당이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호경당이 주장하는 바는 오히려 교당보다도 훨씬 더 군인들에게 매력적이었다. 권위주의적 철권통치하에선 군인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의 폭도 굉장히 넓었다. 부패군인들에겐 괜히 손원호가 구세주가 아니었다.

“전하, 여기, 베네딕트 아놀드 부장입니다.”

―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폐하가 아니라 전하요. 입 좀…!”

― 소… 송구하옵니다.

얼굴을 보지 않고 단지 전화 통화 중인데, 해완은 그의 교활한 목소리만 들어도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손 당수가 서둘러 그를 변명했다.

“아놀드 부장은 상당히 유능한 장군입니다. 아놀드 부장이 수도와 가까운 곳에서 복무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겐 천운과 다름없지요.”

물론 손원호는 진작부터 거사를 위해 모든 정치력을 동원해 필사적으로 아놀드 부장을 수도 가까이에 있는 4사단의 사단장으로 보임시켰지만, 군사 반란에 굉장히 거부감이 들어 보이는 해완에게 그런 것까지 알려주진 않았다.

‘허나 네놈도 나중에 제위에 오르면 나의 권한에 떨게 되겠지.’

그때가 되면 근위대도 장악할 것이라, 원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놀드 부장과의 접촉을 통해 거사의 가능성을 보여준 손 당수가 재차 설명을 이어갔다.

“김현수 부장은 13사단에, 오동성 부장은 14사단에 있습니다. 거리는 약간 떨어져 있지만, 곧바로 움직여 작전에 가담할 수 있습니다.”

“작전명 환도의 밤이라….”

“2황자가 수도에 오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합니다. 근위대가 확실한 명령 체계하에서 먼저 움직이면, 아무리 4사단이라고 해도 결단코 이길 수 없습니다.”

해완의 눈꺼풀이 세차게 떨렸다.

수도에서 총격전이라니, 자신이 아무리 미쳐 있다 한들 이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저 중화민국의 습진균이라는 자가 중화제국을 선포한 지 불과 이 년이 흘렀다. 자신도 저런 천박한 자칭 제국과 비슷한 방법으로 제위를 얻어야 한다니, 그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자괴감에 몸을 떨었다.

“전하. 여기, 알약입니다. 전하의 명료한 판단을 도와줄 것입니다.”

얄궂은 운명이다.

해완은 자신이 마약에 처음으로 접촉했을 때를 기억했다. 강화에서 습격을 받았을 때, 그는 아편 추출물을 이용한 진통제가 없으면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큰 상처와 그보다 더 큰 가슴의 상처 때문에.

이제 그 육신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심신의 상처는 여전했다.

여전히 그는 알음알음 약에 손을 대었다.

마약의 섬 해남도 때문인지 강화는 이런 약들이 많았다. 아편류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마약도 많았다.

아편류를 제외하면 빙독(氷毒)이 가장 유명했다.

이 악마의 약을 처음 겪어본 해완은 대단한 충격을 느꼈다. 이 약은 자신의 능력을 증진시키는 것과 같았다. 잃어버린 자신감이 충만해졌으며, 머리가 날카로워지고 각성효과가 빼어났다. 글을 써도 술술 잘 써지고, 불필요한 잠도 줄어들었다.

듣기로는 이 약은 이미 강화와 중화제국에 상당히 많이 퍼져 있었다. 그들 군인들도 광범위하게 사용한다는데, 신체 능력을 대단히 훌륭하게 증폭시킬 수 있다고 들었다.

이토록 쓸모있는 마약인데 그저 끔찍하다고 치부하는 제국의 관점은 어쩌면 선입견이 아닐까, 해완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의 중독을 아셨다. 아시고, 설득하셨다. 혼내기도 하셨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었다.

― 제위에는 안이가 어울리니, 안이에게 더 신경 쓰시지요. 어차피 황제가 되지 못할 운명, 제가 뭘 하든 무슨 상관이십니까!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의 강권(명령) 덕에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칩거하여 몰래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해청을 제외하면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다. 동생조차도.

하지만 이놈은 아는구나.

해완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투명한 알약 앞에서, 그동안 조금씩 느껴왔던 아버지의 사랑은 전부 사라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알약을 삼켰다.

그 즉시, 전신이 각성했다. 머리는 명료해졌고, 자신감이 넘쳤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이미 황제가 된 해완은 그제서야 알았다.

머릿속에는 그동안 치료를 받으며 읽어왔던 많은 책들이 뒤섞이고 융합되었다.

고통과 불안, 불행과 긴장, 파멸의 앞에서 이를 즐기는 자신이 오로지 초월자였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자신이 초월자다.

― 형님…!

천진난만한 소년이 자신에게 뛰어오는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웃음을 지어 보이는 와중에, 입매를 뒤틀었다. 그는 안이를 들어 올려 껴안고, 곧바로 단검을 꺼내 그의 심장에 비수를 박았다.

환상은 곧바로 깨졌으나, 신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황제의 자리는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아버지의 실패는 자신이 고쳐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제국이 한 번 불타오르는 것도,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혼란과 위협, 공포 속에서 세상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작가의 말]

사실 해청의 죽음은 아주 예전부터 그려놓은 것들 중 하나인데, 마침 공교롭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네요.

빙독 : 메스암페타민, 즉 필로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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