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32화 (532/653)

532화 준동(6)

처음, 습진균이 경사에 상경했을 때만 해도 그는 별 볼 일 없는 청년에 불과했다.

진사당이 물려준 유산 덕에 돈은 꽤 있었다.

하지만 막 상경했을 때 그는 태평천국의 유산을 제대로 발굴할, 혹은 발굴해서 그 존재를 보호할 정도의 영향력도 없었다. 난세에 보물을 가진 일반인은 너무나 비참하고 허무한 최후를 맞게 되니.

그렇기에 진균이 정치 무대에 나선 초창기에 경사에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한 자신의 능력 덕이었다.

당시 경사나 상해 등은 비교적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있었다. 류용은 건전한 토론을 장려했고, 지식인들이 스스로 생각하길 하길 원했다.

물론 국공내전이 터지고 황전겸이 취임한 이후엔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되었지만, 적어도 반공산주의를 표명하는 연설자들에 대해선 약간은 봐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진균도 몇 차례 당국에 끌려갔지만, 사상검증에 통과된 뒤 훈방조치를 받았다.

습진균은 곧 빠르게 인지도를 얻었다.

극장에서, 주점에서, 광장에서.

낭중지추라고 여러 번의 연설로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된 그는 그를 미행하는 경관의 추천으로 곧 황전겸의 눈에 들었다.

그 이후에는 탄탄대로였다.

습진균은 민족사회주의 중화인민당을 창설한 뒤 본격적으로 세력을 불렸다. 그때부턴 유산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고 당규삼을 비롯한 지식인들도 끌어당길 수 있었으니 하루하루 그의 세력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지금, 마침내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도약을 할 시기가 닥쳐왔다.

수없이 많이 대중들 앞에 섰던 진균에게도 특히 세 번의 연설은 아주 큰 의미를 지녔다.

그것들은 전부 다 명연설로 기록될 것이다.

중화당 창설 때 동지들을 불러놓고 한 연설.

국민당 참사 때, 겁에 질린 국민당 간부들에게 한 연설.

그리고 지금 개천 516년(CE 1791), 진균이 권력을 잡고 대총통의 자리에 앉기 직전에 군중에게 할 연설까지.

진균은 말로써, 뜻으로서 동지들에게, 권력자들에게, 또한 대중들에게 차례로 지지를 받을 것이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귀인이 아니었다.

인민들이 직접 그를 지지해 만든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는 시대의 정신이었다. 중화가 바라고,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상이었다.

국민당의 모든 간부들을 휘어잡은 진균은 마침내 대중들 앞에 나아갔다.

활짝 열린 광장 연설이었다.

중화의 지도자들을 암살하는 것은 이제 놀랍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화신이 사방에 선봉대들을 깔아 두니 진균의 안전은 담보되었다. 또한 완장을 차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으니, 몰려든 다른 군중들도 이에 영향을 받았다.

이제 저 사람의 시간이 온 것이구나. 대중들은 위축되면서도, 새로운 지도자의 연설을 듣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섰다.

듣기로는 습진균은 입을 열 때마다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 대중들은 요즘 들어 사방에 흉흉한 소식이 오고가더라도 굳이 이곳에 모여 그의 연설을 들으려 했다.

마침내 진균이 유래없는 규모의 군중들의 앞에서 입을 열었다.

“오늘은 뜻깊은 날입니다. 신사년에 일어난 중화의 혁명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내부혁명은 우리가 모순적이고 부패한 구체제에서 벗어나 중원이 누구 하나가 소유한 봉건적 황조가 아닌 정말로 인민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진균이 류용을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진균은 류용을 정말로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중원은 명의 껍데기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황조가 들어서 명의 이전 행보를 똑같이 답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민국가, 혹은 국민국가. 류용은 중화가 발전할 수 있는 가장 큰 동기를 준 사람이다. 진균은 그렇기에 석암릉을 참배하면서도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신사혁명 직후의 짧은 몇 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바닷가에는 공장이, 내부에는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지식인들이 비로소 입을 열었고, 우리를 혼미하게 하던 약은 많이 사라졌으며, 또한 세계는 우리 중원을 다시금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식민지배의 종말은 대전쟁 이후 고려가 구축한 국제연합의 노력 덕이었고 마약 근절 또한 고려와 예맥한 국가들의 강경한 마약단속행동으로 인한 것들이었지만 지금 그것을 밝힐 이유는 없었다. 중원인들은 스스로 해낸 것이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진균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 뒤 재차 물었다.

짧은 번영 뒤엔 지루한 내전이 일어났다.

아직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류용의 개혁은 그의 죽음으로 미완에 그치며 사실상 실패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그래도 근래를 통틀어 가장 살기 좋았던, 희망적인 시절은 맞았다.

류용 세대를 조금이라도 겪어 본 사람은 동의할 것이다.

“신사혁명 이후 그토록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오히려 퇴보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뜻을 품고 있는 변절자들과 사악한 공산주의자들, 음흉한 유목민들, 그들의 비열한 협잡질에 우리의 힘과 뜻은 빛이 바랬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석암 선생은 총탄에 별세하셨습니다. 또한 이번에도 우리의 지도자는 원인 미상의 흉계로 사망했습니다.”

진균은 주먹을 연단에 내리쳤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우리가 무언가 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방해를 받습니다.”

진균은 불안을 부추겼다.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과 증오의 눈으로 바라보길 원했다.

그것이 다스림의 철칙이다. 모든 정치인들은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상대방의 편을 죽이길 원했다. 생명적으로 죽일 수 없다면 정치적으로 죽이길 원했다.

그로 인해 국가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자신이 권력을 향유하기만 한다면 인민들의 삶, 그까짓 게 무슨 상관인가.

물론 그 정도까지만으로 멈추었다면, 그 지도자는 황전겸 같은 일개 지도자일 뿐이었다.

대국의 지도자에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니 위대한 대총통에 자리에 오를 습진균은 달라야 했다. 그는 한 발을 더 나아갔다.

“허나 나는 선량한 한족이 처음부터 그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형제와 친척, 이웃이 하루아침에 사특한 존재가 되어 우리의 등에 칼을 찔러넣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배후에 있는 자들은, 우리가 원래부터 증오해 마지않았던 존재입니다.”

― 유목 멘셰비키!

광장에 있던 누군가 크게 외쳤다. 습진균은 아주 살짝 미소를 머금다가 빠르게 지웠다.

저자는 분명히 예전부터 자신의 연설을 유심히 듣던 자였을 것이다. 이미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많았다.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군중이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운집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저런 추종자들은 이미 인민의 틈바구니 사이사이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공격한 두 부류의 사람들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유목―멘셰비키!”

어쨌든 누군가 말해주어 고마웠다.

“유목민들은 지금껏 중화 역사에서 너무나 많은 패악질을 저질러 중화의 잠재력이 세계만방에 떨쳐 일어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중화민국 이전에 들어섰던 일곱 개의 한족 제국들을 기억합니다.”

일곱 한족 제국이라 함은, 진(秦), 한(漢), 진(晉), 수(隋) 당(唐), 송(宋), 명(明)을 일컬었다.

모두 중화당 내부에서 한족이 세운 나라라 인식되는 나라였다.

이 중에서 사마진은 조위보다 정통성이 밀려 아직도 중화당 내부에서 위로 바꾸어야 하는지 왈가왈부하는 대상이었고, 수와 당은 아예 황실이 한화된 선비족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런 사소한 논의는 상관없었다.

수와 당은 옛 고씨 고려를 몰아붙이고, 심지어 멸망시키기까지 한 강력한 중화의 모습을 상징하는데, 위대한 중화제국의 명단에서 빼버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나라들은 제각기 그 시기에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나라였습니다. 만약 이때 중화의 일곱 제국이 조금 더 길게 번영했다면, 아마 세계를 주도할 산업혁명의 씨앗은 중화에서 꽃피울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잃어버린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안타깝고 씁쓸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연설을 듣던 사람들이 탄식했다.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유목민들의 참혹하고 비열한 공격으로 몰락했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명나라까지 우리의 삶과 우리의 터전은 더럽혀졌습니다.

지금 이 상황은 중화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평화와 번영, 진보를 원했을 뿐이었지만, 못살아 비루한 유목민들의 탐욕 어린 공격은 매번 우리의 진보를 가로막았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은 중화인들의 무능력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배후에서의 순수한 악의로 인한 것입니다.”

예전 진사당의 주장에 습진균은 큰 충격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지금 광장에 운집한 군중들도 그런 충격을 느꼈다.

사람들이 습진균의 논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균은 그들이 가진 상처의 이유를 찾아주었다.

그들은 길 가다가 부끄럽게 혼자 헛디뎌 넘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리를 걸었기 때문에 억울하게 넘어진 것이다. 그들의 잘못은 없었다. 잘못이 없다는 사실은 그들을 안도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유목민들은 단순히 말을 탄 북방의 이민족들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북방 유목민들뿐만 아니라 서쪽과 남쪽의 이민족들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토번의 사례를 기억합니다. 그들이 서쪽에서 얼마나 패악질을 부렸는지 역사는 너무나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대리국의 사례처럼 엄연한 한족 생활권에서의 분리와 분열을 추구한 자들도 기억합니다.”

다행인 점은, 진균이 지금 이 자리에서 동쪽의 이민족들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는 것일 터였다. 동이를 칭하기에는 그 파급력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자중할 때였다.

진균은 연설 도중 손을 뻗어 북쪽을 가리켰다.

“우리의 또 다른 문제인 멘셰비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북의 많은 공산주의자들은 대체로 유목민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연운 16주는 오랫동안 북원의 지배하에 신음했고, 여전히 지금도 그 유목민계 후예들이 남아 있습니다. 연운 16주에 사는 선량한 한족 동포들은 그들에게 신음하고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손짓에 따라 북쪽을 바라보았다.

“유목민적 생활은 누구보다도 계급화된 사회의 표본이지만 겉보기에는 부족 내의 평등을 말하며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꼬드깁니다.

그들은 자연을 공유하는 초원에서는 모두가 형제라 말하지만, 기근 때마다 정주민들을 공격해 살인하고, 납치하고, 강간하며 재물을 빼앗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원시 공산주의의 한 형태라고, 미덕이라고 말합니다!”

습진균은 머리와 손을 격렬하게 흔들며 강력한 부정의 뜻을 보였다.

“아니요, 이것은 미덕이 아니라 역병입니다!

이미 한참 전부터 대동주의의 원래 본질을 벗어난 유목 멘셰비키 공산주의는 이제는 단지 추상적인 이론에 불과합니다.

대신 그들은 서로 사랑해야 할 가족과 형제가 서로 다른 생각으로 증오하게끔 선동합니다. 세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할 자랑스러운 전통에 대한 파괴를 조장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단지 그들의 이념에 맞지 않는 봉건주의의 잔재라는 소리로 깨부수고, 합법적인 양 무덤을 도굴합니다. 사당을 파괴하고, 관제묘를 박살 냅니다.

그들은 그들의 추악한 탐욕을 공공의 대의로 포장하면서 실체 없는 인민의 공리에 부응한다고 주장합니다.

누구보다 많은 분열을 통해 중화인들이 서로 총을 겨누고 피 흘리게 한 당사자임에도 그렇게 지껄입니다. 그들에게 진실성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지도자를 맞이할 때마다 죽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지도자들을 죽이기 위해 거지들을 동원하고, 또한 내부의 세력을 포섭했습니다. 석암 선생이 그렇게 가셨고, 황 대총통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지도자의 죽음 배후에 유목―맨셰비키주의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법도 하다. 지금 그들은 내전 중이었고,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 반감을 가지지 않고 찬양하는 이들은 진작 황전겸이 전부 수용소에 집어넣었으니 당연한 소리였다.

“그들이 이룰 수 없는 헛된 이상향을 제시해 한족의 민족성을 훼손하는 것은, 다시금 그들이 중화를 제멋대로 주무르고 한족과 비한족의 전통적 경계선을 무너뜨려 지배토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한족에게 또다시 식민지배를 당하라고 강요하는 끔찍한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저 멀리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놈들과 그들의 조종을 받는 화북 유목민 공산주의자들에게 굴욕적인 지배를 당하고 싶습니까?”

― 아니오!

우렁찬 부정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실 기윤도 모스크바의 멘셰비키들에게 한족 중심의 반동적 민족관으로 좋지 않은 취급을 당했지만, 그것도 알 바가 아니었다.

“중국인이 누리는 피폐하고 혼란한 삶은 단순한 정부의 교체만으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중원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모순과 암약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변화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설령 우리가 변화를 꾀한다 하더라도 개혁은 정체될 것이며, 우리 민족의 실제 생활은 다시금 옛날로 원상 복귀될 것입니다.

인민들이여!

그렇기에 나는 이 자리에서 당신들에게 묻습니다. 다시금 옛날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어떠한 개혁 의지도 없이 비루한 삶을 연명해가던, 민족성을 거세당해 외부에 유린당하는 그런 삶으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 아니오!

― 그러고 싶지 않소!

사람들의 절규가 터져나왔다. 진균은 손을 쥐고 주먹을 흔들었다.

“의회민주주의는 한계가 있습니다. 위급한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 경우에도 의회의 구성원들은 여러 사람의 허울 좋은 말로 변죽을 울려댈 뿐, 본질을 해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말합니다.

정치적 투쟁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혁명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민족사회주의 혁명을!

이 모든 것은 기존 위정자들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내전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져 내려왔던 것도, 위대한 영도력의 부재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없습니다. 한족은 더 빨리, 더 위대하게 발전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인데 근시안적인 권력 쟁탈로 모든 것이 뒤처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위정자들에게 분노했다. 진균의 등 뒤에 있는 국민당 간부들은 모두 고개를 내리깔고 있었다. 사람들의 분노한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대체 이 지경까지 너희는 무엇을 했느냐? 권력다툼?

하지만 반대로 이제 민중은 습진균에게 물었다.

너는 다르냐?

너는 대체 우리 중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네가 말하는 위대한 영도자가 너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너로 인해 우리의 개혁이 다시금 정체된다면 어찌할 셈이냐?

그렇기에 습진균은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대의와 포부를 밝혀야 했다.

“중화인민당의 민족사회주의 혁명은 공산주의자들처럼 기존의 가진 자들에게서 무언가를 뺏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기존에 가지지 못했던, 소외되었던 자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주는 혁명입니다.

우리는 유목―멘셰비키가 그러했던 것처럼 유산자들의 권리와 재산을 압류하여 그들을 무산자들로 만들고, 그렇게 무산자들이 다시금 음지에서 증오를 누적해 새로운 피와 증오를 준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계속 분열을 조장하게 하진 않을 것입니다.

반면 우리는 모든 사람을 자랑스러운 중화의 인민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민족사회주의는 국가와 인민 전체의 공리를 목적으로 하지 특정한 계층에 특혜를 주는 이념이 아닙니다.”

국공내전을 통해 공산주의자들과의 전쟁일 치러지고 있고, 중화민국 내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가 커져 가더라도 여전히 중화민국의 대다수 인민은 형편없이 못살았다. 그렇기에 공산주의는 이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니 민족사회주의는 어떤 면에서는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선 필연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다만 이들은 전통적 유‧무산자의 구분 대신 국가 아래에서의 평등함을 논했다.

다양한 계층을 하나의 국가로 묶는 것이 진균에게 놓인 우선적 과업이었다. 물론 그를 위해선 하나의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나는 분열 따위보다 더욱 전통적인 가치를 말하고 싶습니다.

가족과 전통, 민족은 이 민족사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중화란 순수할 때 가장 빛나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다시금 위대해지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순수성을 보존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또한 공동체에 대한 가치를 말하고 싶습니다.

국가는 일개 사람과 개인의 권리, 개인의 재산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우리가 개인의 사리사욕에 집착할 때, 어김없이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러한 틈을 없애기 위해, 국가는 전폭적으로 강력한 법을 통해 혼란과 분열을 없애고 모든 정책을 모든 한족을 위해서만 집행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분열을 막기 위해선, 전체 중화 인민들의 모든 권력은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야 합니다.

또한 인민의 의지는 오로지 하나의 당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또한 인민의 법을 입법할 기관도 하나여야 할 것이며, 집행 기관도 동일한 기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습진균은 쉴 틈 없이 몰아쳤다.

격렬한 어조에 목이 아파 왔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연설에 완전히 심취해 있는 상태였다. 여기서 그만둘 순 없었다.

보라, 군중들도 그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그의 모든 행동과 어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광을 되찾을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력하에 인민의 순수성, 인민의 번영, 인민의 풍요, 인민의 생활권이 모두 회복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중화공영권(大中華共榮圈)!”

진균은 두 손을 넓게 펼쳤다. 중화인들 또한 자신들의 가슴이 그 손짓에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맥동하고 손에 땀이 났다.

“나는 이 나라가 예전처럼 광대하고 아름다워지길 원합니다.

국공내전을 포함한 모든 분쟁은 종결될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소멸할 것이고 순나라와 기타 지방 군벌들은 다시금 우리의 그늘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강역은 옛 한족 7제국의 전성기 시절을 수복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비단 우리 고토의 수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와 우리 위대함의 수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말에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로 저 젊은 지도자가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정말로 위대한 과업을 이룰 것만 같았다. 어조와 행동에서는 넘쳐흐르는 확신과 강렬함이 쏟아져 나왔다.

이 순간 그와 공명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두 부류밖에 없었다. 중화인이 아니거나, 혹은 공산주의자거나.

“그러니 나는 이 자리에서 요구합니다.

우리 민족의 구원을 위해, 모든 권력은 하나의 대표자에게 집중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그 대표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이 위대한 연설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한두 명은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주 찰나의 시간에, 군중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 모든 권력을 대총통에게!

습진균은 아까처럼 작게라도 웃지 않았다. 지금의 선동은 미리 주문한 사항이다.

“그러니 중화민국의 폐허 속에서 새롭게 중화제8제국이 탄생할 것입니다.

중화제8제국은 봉건주의의 제국이 아닙니다. 일곱 한족 제국의 기상을 잇는 위대한 민족의 국가입니다.

황제는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중화인민이며, 나는 단지 대총통으로서 그 권리를 위임받아 집행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자리에서 천명합니다.

본인은 모든 인민을 대변하는 수탁자로서, 더 강력하고 더 자발적인 인민의 의지를 통해 새로운 체제를 통해 중화의 번영을 추구할 것입니다.

중화8제국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강력한 국가로 거듭나 더 이상 우리 인민들을 고통과 기근 속에서 신음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강력하고 위대한 당이 당신들을 지켜낼 것입니다!”

사람들이 열화와 같이 박수를 쳤다.

당신들을 지켜내겠다.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중화의 역사 속에서 이 정도의 의지를 표명한 자들이 있었는가. 이 정도로 인민을 신경 쓴 자들이 있었는가?

인민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말에 담긴 진심을 간파할 능력은 충분했다.

그러니 그들은 습진균의 진심을 알아차렸다. 그는 정말로 순수한 존재였다. 류용과 같이 순수하게 한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도자였다. 조금 다른 길을 보여주었지만.

강력하고 지도력 있는 군주에 대한 선망은 항상 존재했다.

시대가 힘들수록 그랬다. 어쩌면 중화 인민들에게는 류용보다도 습진균의 존재가 훨씬 더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중화는 위대했고, 앞으로도 위대해질 것이다. 이런 미래를 제시한 자에게 어찌 감동하지 않는단 말인가?

― 와아아

이것이 선동인지 불분명할 정도로 동시다발적으로 거대한 박수의 파도가 밀려왔다.

사람들은 손수건을 흔들었다.

손에 쥔 것들을 하늘로 던져올렸다.

거센 환희의 파도가 그들을 압도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우리의 영도자가, 우리의 지도자가, 우리의 대총통이 이제 오셨다.

이 분께서 우리에게 오셨다.

한족들 사이에 존재하던 분노와 자괴감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습 대총통의 인도 하에, 중원은 다시금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었다.

* * *

기념비적인 연설이었다.

습진균 치하의 중화민국이 중화제8제국, 줄여서 중화제국이라고 국호를 바꾼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이름일 뿐이었다.

숫자 8은 중국인들에게 상서로운 의미를 가졌다. 재물을 번다는 말과 발음이 비슷했다. 그렇기에 습진균이 제시한 위대한 중화제8제국의 이름도 그저 상서롭게만 느껴졌다.

유심히 봐야 할 것은 정치구조였다.

중화제국은 사법부와 입법부의 기능을 사실상 폐지하고 행정부에 그 기능을 이양했다.

국민당 또한 소멸했다. 대신 중화당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국민당의 기존 인물들은 사실상 습진균의 휘하에 들어왔다. 진균은 이미 당내 연설로 강력한 지지를 확보한 상태였다. 지지하지 않은 자들은 이미 중화의 땅을 기름지게 하는 거름이 되었다.

진균은 동시에 행정부 최고 지도자 대총통이자 중화당의 당수가 되었고, 이전까지 중화에 존재했던 어떠한 권력자들보다 강력한 권한을 손에 쥐었다.

심지어 옛 봉건주의의 황제들도 그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지진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 대가로 습 대총통은 그의 약속을 지켜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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