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화 준동(3)
* * *
잉글랜드도 상률주의적 공장을 운영했다. 그러니 그들도 경제침체를 직격으로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에게는 고려에게 없는 단점들도 있었다.
고려는 이미 한참 전의 과거부터 노동자 인권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나라였다. 그 지침은 위에서부터 내려오기도 했지만, 밑에서부터 개혁 요구가 올라오기도 했다.
반면 잉글랜드는 완전히 달랐다.
이들 잉글랜드 사회는 고려는 물론이고 유럽 대륙과도 분위기가 좀 달랐다.
프랑스 혁명 이후 많은 부분에서 인권적 진보를 이루어낸 유럽 대륙과 달리, 이곳은 여전히 계급적이고 귀족적이고 봉건적인 사회 구조가 강했다.
지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긴 했지만, 만약 잉글랜드가 어떠한 계기로 열강의 수좌로 올라가 세계 수많은 곳에 식민지를 펼쳤다면 어쩌면 잉글랜드 사회는 계급적이면서도 꽤나 역동적인 사회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셰피 해전에서 고려와 싸운 이후 대양영향권을 철저하게 거세당하는 바람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일류 열강에 들어 보지 못했다. 이후 카디스 조약에 따라 잉글랜드의 처음이자 유일한 식민지, 뉴펀들랜드를 하사받긴 했지만 그곳도 처음에는 정말 쓸모없는 식민지였다. 그 옆의 누아 에린과는 달리.
잉글랜드 본토는 그야말로 꽉 막혀 정체되어 있었다.
귀족과 젠트리 요먼이 존재했고, 대부분의 농지는 그들 소유였다. 대부분의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거대 기업인들, 거대 지주들이 잉글랜드 사회를 꽉 쥐고 있었다.
심한 계급사회였다. 돈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적어도 출신 계급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제 거의 드물었다.
상류층들은 계급 이동을 하려는 이들을 혐오했고, 배척했다.
억양과 언어, 관습, 행동이 모두 세분화되어 그들끼리의 향유 문화를 만들어냈다. 동화에 집착한 고려인들이 사투리를 억제하고 표준어를 통일하는 것에 필사적이었다면, 잉글랜드는 정반대로 상류층들이 일부러 억양의 변주를 주었다. 천박한 것들이 따라 하는 것은 별로였다.
오히려 뉴펀들랜드가 훨씬 더 진보적일 것이다.
그곳은 척박하여 살기 좋지 않은 땅이라 처음엔 범죄자들의 유배지로 쓰였지만, 그래도 광산이 많이 개발된 지금은 나름대로 도전해 볼 만한 땅으로 변모된 상태였다.
심지어 뉴펀들랜드 사람들은 극도로 보수적이며 계급적이고 꽉 막힌 본국 잉글랜드인들과 자신들을 구분 지어 뉴펀들랜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본국보다는 오히려 바로 옆의 누아 에린과 상당히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이 지경이니 괜히 깨어 있는 잉글랜드 지식인들이 자국에 환멸을 느끼며 고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려는 황실이 있는 곳이었지만, 군주정인 주제에 황가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평등했다.
계급 이동은 자연스러웠다. 황제의 누이동생이 미천한 신분의 재봉사와 결혼한 일은 미담으로 여겨졌다. 그 일이 잉글랜드에서 일어났다면 추악하고 끔찍한 소리로 여겨졌을 터였다.
그러니 잉글랜드 인재의 열이면 아홉은 성공하면 에이레를 거쳐 고려로 가는 것을 원했다. 안 그래도 고려에는 잉글랜드 출신의 여러 석학이 많았다. 로크 선생, 뉴턴 선생을 미루어보면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이렇게 인재들이 무더기로 빠져나가는 잉글랜드는 겉보기에는 멀쩡히 굴러가는 열강이지만, 속은 완전히 곪아가고 있었다.
노동자 처우는 훨씬 더 심각했다.
계급화된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천민이었다. 공산주의가 발호하고 공산주의의 나라가 만들어진 지금에도 이들의 대우는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단지 공산주의를 탄압하는 손길이 극심해진 것 빼곤.
심지어 지체 높은 몇몇 사람들은 식량 위기 당시 노동자 숫자가 줄어야 사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했었다.
상률공정은 대단히 뛰어나고 효율적인 공정이지만, 반대로 노동자들의 일을 반복적이고 강도 높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또한 비인간적이었다. 잔혹하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마치 공장에 있는 하나의 부품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이라는 기계 속의 부속물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예전 같았다면 변소를 가랴 담배를 피우랴 이렇게 저렇게 이유를 대며 자리를 비울 수 있었던 근무 여건이, 이제는 업무시간엔 한시라도 무한궤도 앞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엄격한 근무조건은 주항자동차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만큼 보상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힘들어지고 따분해진 노동으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몫을 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지루한 노동도 충분히 보람찬 결과가 될 수 있었을 터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공장주들은 전혀 그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상률공정 도입으로 인한 이윤을 회사도, 노동자도 아니라 바로 자신의 몫으로 돌렸다.
그러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가혹해진, 비인간적이게 된 노동환경밖에 없었다.
불만이 차곡차곡 누적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기업가들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제를 알아야지….”
타수의 다른 나라들이 고려의 강권으로 노동자복지법을 도입하며 숙소와 식사요건을 개선하자 잉글랜드도 눈치를 보아 몇 가지를 개선하긴 했다.
밧줄과 관 숙소에서 좁지만 이층 침대로. 점심시간엔 텁텁한 빵이라도.
대륙에서 불어오는 이런 바람이 아니었다면 잉글랜드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프랑스 대혁명시기 노동자들의 처우에서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어쩔 수 없었던 개선을 제외한다면, 노동자들을 달랠 수 있을 만한 유의미한 정책은 많이 없었다.
하향식 개선이라도 개선의 의지가 보이면 불만은 많이 가라앉는다. 신민들은 보통 그들의 왕과 여왕을 사랑했다.
그들이 네덜란드나 도이치 왕처럼 직접 공장에 가서 처우개선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연민만 보여준다면.
* * *
이런 암울한 잉글랜드의 상황 속에서 비웃음거리였던 네드 러드의 일화는 조금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네드 러드가 구타를 당하고 공장에서 쫓겨난 뒤, 레스터보다 한참 북쪽에 있는 큰 공업도시 맨체스터의 어느 공장에서 누군가가 기계를 또 고장을 낸 일이 발생했다.
고려에서 수입해온 신뢰성이 높고 꽤 값비싼 기계라 했다.
하지만 네드 러드와는 달리, 그 공장에서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사장은 노동자들에게 대충 덤터기를 씌우려 했지만, 공장의 노동자들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기계의 가격이 너무 비쌌다. 덤터기를 당하면 인생이 개박살 날 것이 확실했다.
또 마침 기계가 망가진 것도 교회에 가야 할 휴일에 나와 억지로 일하는 근무 환경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당연히 잔업에 대한 보수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불만과 불안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은 연대했다. 만국의 노동자여, 연대하라! 공산주의의 구호는 항상 그들 옆에 있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라도 뭉치면 강했다.
“우리가 안 했습니다. 모르지요, 네드 러드가 이곳까지 와서 기계를 부숴 먹었을지도.”
노동자들은 맨체스터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 앤스티에 사는 네드 러드가 또 하나를 더 해 먹었다고 공장주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엄한 곳에 사는 네드 러드의 이름이 맨체스터까지 퍼져 나가게 된 것은 아마 앤스티의 방직 공장과 맨체스터의 조면 공장이 같은 회사의 소속이었던 것이 컸을 테다.
“이런 개새끼들이!”
네드 러드가 마술사도 아니고 텔레포트 기술이 있겠는가. 당연히 조롱의 의미였다. 공장주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남의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일이었다. 만약 당사자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불쾌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드 러드의 이름이 가진 의미는 조금씩 바뀌었다.
경제침체 이후, 고려로부터 금태환에 성공해 한숨 돌린 잉글랜드는 자국 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고유가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갔다. 침체가 장기화되었고, 더 심해졌다.
당연히 회사는 문을 닫고, 심지어 기존에 밀렸던 노동자의 임금들도 체불하기 시작했다.
돈도 안 주면 더 이상 상전으로 대우할 필요가 없었다. 노동에 대한 합당한 보수를 등쳐 먹고 자신의 배만 불리는 자본가 계급에겐 응당한 벌이 필요했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사보타주를 벌였다.
집단 파업과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사람들이 뭉쳐 다녔고,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기마경찰들도 바쁘게 돌아다녔다.
이런 행동들이 이어지는 사이 네드 러드의 이름은 조롱의 의미에서, 어느 순간 저항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
― 우리 공장도 네드 러드 장군이 공작기계를 파괴했다!
― 돼지 같은 공장주들에게 철퇴를 내리는 러드 장군 만세!
사태가 이렇게 되자, 잉글랜드 당국에서는 정말로 네드 러드라는 반체제 혁명가가 크게 위세를 불리는 것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경관들이 네드 러드를 찾기 위해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들에게 체포당한다면 러드는 런던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교수형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었던 네드 러드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몸을 피했다.
‘왜… 왜 이렇게 됐지? 나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기계를 부수고 싶지도 않았고, 흠씬 두들겨 맞고 싶지도 않았고, 이렇게 쫓기는 처지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고!’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고향 앤스티는 물론이고 근처 레스터나 레스터셔는 이제 얼씬도 못 했다.
러드는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야 했다. 기차역에 도착한 그는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관을 피해 아무 기차의 화물칸 안에 몸을 숨기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는 대체 왜 이렇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를 그저 보잘것없는 잉글랜드의 소시민으로 살아가던 네드 러드의 이름은 졸지에 흉악한 공산주의 수괴가 되어 있었다.
기차역 이곳저곳엔 자신의 얼굴 사진이 찍힌 수배지가 나붙었다. 자신의 사진은 아마 공장주가 저번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러드를 경찰서로 보냈을 때 찍힌 머그샷이었다.
그 밑에는 Dead or Alive라는 문구도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화물칸에서 둥글게 몸을 말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가난한 그가 믿고 의지할 만한 다른 친척이나 친구들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지금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도, 도움을 구하기는커녕 그들조차도 위험하게 할 수 있었다. 흉악한 공산주의 수괴의 가족들은 분명히 심한 감시를 당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피곤했다. 그는 깜빡 잠이 들었다.
[맨체스터 해영 역]
‘아뿔싸!’
러드가 자신이 탄 화물차의 목적지를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레스터셔를 떠나려고 했던 것이 전부였다. 경관의 눈길이 없었다면 조금 더 신중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졸지에 맨체스터에 오게 된 것은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
맙소사, 맨체스터라니.
런던, 버밍엄과 함께 잉글랜드 3대 도시로 꼽히는 맨체스터는, 공업적인 면에서도 바로 서쪽의 리버풀과 함께 양대 공업도시로서 잉글랜드 제조업을 책임지고 있는 도시였다.
당연히 이곳에서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지금 반자본가, 반정부, 공산주의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인 셈이다.
자신이 왜 이 지옥으로 걸어들어왔을까.
네드 러드는 후회하며 북쪽 스코틀랜드로 올라가는 화물차를 알아보려 했지만, 역에서는 정보를 구할 수 없었고, 인근의 주점에서 이미 화물차 노동조합이 철도를 부수고 돌아다녀 북쪽으로 올라갈 화물차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만 듣게 되었을 뿐이었다.
주점 주인에게서 이 같은 답변을 듣고 망연자실한 채로 싸구려 술을 들이켜고 있던 네드 러드에게,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험상궂은 사람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쑥덕였다.
“그나저나 당신, 굉장히 익숙한데?”
“그래,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단 말이야. 우리 만난 적이 있나? 이름이 뭐지?”
“…에드워드입니다. 만난 적은… 없을걸요? 아마?”
네드 러드는 위축된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덩치가 왜소한 그는 예전에 일을 참 못한다고 다른 노동자들에게 두들겨 맞은 적이 몇 번 있었다. 노동자들이라고 모두 다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다.
러드는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무언가 묘해짐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술값을 지불하고 주점을 빠져나온 러드는 때마침 석유등과 몽둥이를 든 채 순찰하던 경관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 경관들은 주점에 있던 사람들과는 달리 곧바로 네드 러드의 얼굴을 알아챘다.
“어… 어!”
네드 러드는 심장이 떨어져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경관들도 얼빠진 소리를 내며 놀랐다. 단지 평범한 순찰이었을 뿐인데.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단단히 각오했는지 경관들은 곧바로 몽둥이를 부여잡고 러드에게 달려왔다.
“잡아라! 네드 러드가 여기 있다!”
그 흉악한 공산주의 수괴다.
잡으면 포상이고 진급이었다. 대체 속내가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는 몰라도, 몽둥이 앞에서는 얄짤없으리라.
순찰하던 경관들의 숫자가 많으니 죽을 때까지 두들긴 다음 서에 데려가면 될 것이 분명했다.
― 퍽
불쌍한 네드 러드는 또 맞았다. 공장주에게 맞은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 두들겨 맞았다. 이제는 정말 죽을 정도의 고통이 그의 몸을 엄습했다.
이렇게 가는 것인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는 억울함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때, 주점의 문이 열리며 건장한 노동자가 두셋 나왔다. 아까 네드 러드에게 그의 이름을 물어봤던 사람들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
“에드워드…… 네드 러드가 맞았군.”
노동자들은 콧김을 뿜었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그동안 쌓여 온 분노가 억눌려 있었다. 당연히 노동자들의 분노는 경관들을 향하고 있었다. 네드 러드는 저렇게 허무하게 죽어선 안 되었다.
“네드 러드 장군이 여기 있다!”
우렁찬 고함. 분명히 경관이 외쳤던 내용과 비슷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과 함께, 주점에서 노동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관들은 당황했다.
“뭣들 하는 거냐, 물러서! 공무 집행 중이다!”
하지만 그들은 네드 러드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다. 앞으로도 경찰들, 그리고 높으신 분들, 자본가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러드를 위해!”
거센 고함과 함께 주점에 있던 모든 노동자들이 경관에게 달려들었다.
* * *
맨체스터의 폭동은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수준으로 치달았다.
맨체스터 시경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 사태를 내전에 준하는 정도의 사태로 인식했다.
또 한 차례 경관들에게 두들겨 맞은 러드는 이번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길게 요양해야 했다. 아직 예전의 상처들도 아물지 않았으니.
러드는 주점에서 그를 구원해준 한 노동자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 그는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소시민적이었다. 자신의 안위가 가장 컸다. 신체에서 쿡쿡 쑤시는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그의 결심은 확고해졌다.
만약 상처가 다 나으면 그는 한밤중에 몰래 도망갈 것이라고.
“오늘은 좀 괜찮아요?”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여인, 샬럿이 그의 상처를 보살폈다. 그를 도와준 노동자의 딸이었다.
“당신이 엄청난 영웅이라는 것은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당신이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한 줄은 잘 모를 거예요. 당신은 참 강한 사람이군요.”
그녀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은 네드 러드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조금씩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러드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감정, 자존감과 편안함.
샬럿은 러드의 인격과 인간성, 가치관을 서서히 바꾸었다.
샬럿은 공산주의자였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과 같이 그들도 앞장서서 행동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다면 가족의 목숨도 생계도 위험했다.
샬럿에겐 네드 러드는 영웅이었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용감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렇게 왜소하고 썩 매력적이지도 않은 외모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외견이 전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짧고 굵은 아름다운 추억은 금방 끝났다.
샬럿의 집에는 곧 화가 찾아왔다.
러드의 목숨을 구한 노동자는 경관을 집단으로 폭행한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었다.
맨체스터의 경관들이 그녀의 집을 습격했다. 러드의 은인은 그 와중 맞아 죽었다.
기존의 결심대로라면 러드는 그때 도망가야 했을 것이다. 몸이 거의 다 완치된 상황이었으니까 육체적으로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소시민은 영원히 소시민으로 남지 않았다.
사람은 정말 변하기 어려우면서도, 또 어떤 면에선 변하기 너무 쉬운 존재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또한 샬럿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위해서라도 러드는 필사적으로 샬럿과 그녀의 어머니를 구하여 도망갔다.
겨우겨우 경찰들의 추격을 피한 그들은 샬럿의 인도하에 맨체스터에 위치한 잉글랜드 공산당 조직에 의탁했다.
‘네드 러드 장군’이 마침내 잉글랜드 공산당의 희망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 * *
이후 러드는 많은 조력자를 얻었다.
이제부터 남은 인생을 함께할 샬럿은 그의 인생과 가치관에서 가장 큰 조력자가 될 것이었다.
또 내부와 외부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자들도 있었다.
“바뵈프 서기장 동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시오.”
“물론입니다. 러드 동지.”
모스크바에서 온 친절한 친구들이 전달해준 물건들을 통해, 러드는 러다이트 운동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았다.
공산당 내부의 또 다른 조력자도 러드를 지원했다.
잉글랜드 공산당원들도 러드의 소심하고 찌질한 면모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러드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매료된 상태였다.
‘시대의 행운아’ 러드는 단지 존재만으로도 이미 지금까지 행동했던 어떠한 잉글랜드의 운동가들보다도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몇 가지는 개인에게 있어서 비극이었지만, 혁명운동에 있어선 대체할 수 없는 성과였다.
특히 열성적 공산당원인 아서 콜리는 러드를 몹시 흠모하고 따랐다.
그는 군사적인 면에서 러드를 가장 크게 보좌했다.
아서 콜리는 젊었음에도 대단히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듣기로는 장교로 교육을 받다가 잉글랜드군 특유의 매관제도와 처우에 실망하여 그만두고 나온 젊은이라 했다.
아서 콜리가 자신만만해하며 칼끝을 런던으로 돌렸다. 이미 공산당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동지의 영도하에, 잉글랜드는 이제 더 이상 잉글랜드 왕국으로 불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러드는 떨리는 속내를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드 러드의 이름을 딴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마침내 잉글랜드를 영원히 바뀌게 할 것이다.
[작가의 말]
아서 콜리는 원역사의 아서 웰즐리입니다.
원래 콜리 가문은 헨리 8세 시절 로버트 콜리(1470)가 Masters of the rolls 직책을 맡으며 잉글랜드―아일랜드계 귀족이 되기 시작했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