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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26화 (526/653)

526화 웅크림

개천 513년이 되어서도 고려의 경제는 여전히 침잠하고 있었다.

외부의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장기적 불황, 침체로 들어섰을 확률이 높았다.

냉해와 식량 기근은 얼추 해소가 되었다. 각국의 식량 사정도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경제위기는 여전히 심각했다.

방만한 운영을 하던 많은 회사들이 박살 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작은 회사들도 많았지만, 고려인들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큰 회사들도 있었다.

속칭, 대마들은 정부에 긴급 자원을 수혈해 달라고 떼를 썼다. 하지만 정부는 들어주지 않았다.

정오섭 시중의 뒤를 이어 39번째 시중이 된 구준찬 시중은 국제구호로 인한 예산의 빠듯함과 방만한 기업에 대한 구제가 별 효험이 없을 거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미 상민이 구안회의에서 한 선언처럼, 이 결과도 기업이 가져가야 했다.

도덕적 해이가 자리잡기 전에 모든 기업이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되어야 했다.

이 선택은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뒤로 풀썩 넘어가 버린 회사들은 쓰러지면서 다른 기업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고, 연이어 위기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시장경제하에서 한 회사는 다른 회사와 굉장히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으니, 각 회사들의 도산은 일파만파로 커져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다소 반등하던 주가는, 고려 정부가 지원이 없다는 선언을 하기가 무섭게 4월 19일, 후대에 ‘검은 수요일’이라 불릴 날부터 이튿날 금요일까지 역사적인 규모로 폭락했다.

이삼 일 동안만 종합금융지수가 무려 1할 5푼이 내려갔다.

식량 기근이 있던 초반의 길고 완만한 하락장까지 전부 고려해보면, 제국연방의 시가총액은 전고점 대비 거의 절반 수준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국내 총생산도 확연히 꺾였고,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등 모든 거시적 경제지표가 최악을 달렸다.

제국은 휘청였다.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앉았고, 신문에서는 비관적인 말을 찍어내고 있었다.

고려인들은 그들이 누렸던 부유함과 찬양해왔던 진보된 문명이라는 것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에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뭐든지 영원한 것은 없었다. 인생의 굴곡처럼 경제에도 그러한 굴곡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광기가 만들어낸 거품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 * *

물론 폭풍 속에서도 몇몇 거대 기업들은 건재했다.

광명회 소속의 큰 기업들은 상황에 대해 대비해 둔 상태였다.

심지어 이들 기업들은 이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대부분 고용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했고, 더 나아가 오히려 사세를 확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덕분에 경제침체의 장기튀김은 폭주하지 않고 가끔 멈추어 설 때가 있었다.

이런 건실한 기업들이 없었다면, 모두가 공황상태에 빠져버렸을지도 모른다.

큰 규모의 기업뿐만 아니라 내실있는 중견, 중소기업들도 좋은 기회를 잡았다.

“이… 이 시점에 투자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것은 딱히 필요 없고, 지금 이 상황에 맞추어 경영을 계속해 나가시면 되겠습니다. 경영권에 대한 간섭은 없을 예정입니다. 하지만 만약 경영에 자신이 없으시다면, 전문 경영인을 추천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째서죠?”

사장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모두가 난리법석이 난 이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 수혈이라니.

게다가 조건도 회사를 날름 집어삼킬 그런 조건도 아니라 너무나 이상스럽게도 관대한 조건이다. 지분을 가져가는 것을 감안해 보아도 그랬다.

“공작기계에 관해선 화천의 기술은 대체 불가하지 않습니까? 일전도, 종동도 화천에서 공작기계를 사서 쓴다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큰 기업들도 거리에 나앉는 수준이라면서요. 일전과 종동은 상당히 멀쩡한 모양이지만…….”

“혹시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사장은 놀라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하며 부정했다.

그는 갑자기 눈을 훔쳤다. 여러 가지 감정이 북받쳐 갑자기 터진 모양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직원들을 자르니 마니, 회사나 기술을 매각하니 마니 하며 밤새 퀭해진 눈으로 하염없이 칠판만 바라보고 있었던 처지였을 터.

“그 전문 경영인…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제가 지금 와서 생각해본 건데 저는 아무래도 경영에는 썩 소질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냥 경영은 일임하고 제 본업인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사장은 시장 상황에 대응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박제가는 그를 다독이려다 그만두었다. 그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그래도 이런 사장 정도면, 인격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대단히 훌륭한 지도자임은 틀림없었다. 그와 이 회사가 ‘목록’에 들어 있는 것만 해도 그랬다.

고려엔 발에 치일 만큼 회사가 많았으니 이 목록에 드는 것조차 굉장히 어려웠다.

“알겠습니다. 그 건에 관해선 나중에 한번 다시 이야기합시다.”

계약이 순조롭게 체결되자 제가는 곧바로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그 또한 수면부족으로 눈그늘이 짙게 깔린 두 눈을 비볐다.

어제만 일곱 개의 회사 사장과 면담을 했고, 곧바로 기차를 타고 이곳에 와 다시금 여러 사장과 면담을 하는 처지이다.

금전을 관리하는 11사도는 가장 꿀보직인 줄 알았는데,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지금 와서는 가장 할 일이 많았다. 어쩌면 보안을 관리하는 3사도보다도 일이 많아보였다.

용께선 건실한 중산층을 많이 늘리려는 자신의 사회 구조 계획처럼 재계에서도 건실한 중간 기업체들의 수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이런 회사들은 나름대로 대비를 해 놓았던 광명회 소속의 회사가 아니었다.

하루 하루가 빠듯한 처지이니 현금을 확보해 침체를 대비할 수 있는 회사 규모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러니 도산한 회사들과 투자은행들에게 큰 악영향을 받았다.

해당 회사가 잘못한 것은 별로 없었지만, 거래처로부터 정당한 대금을 받지 못하면 위기가 초래되니.

하지만 이런 회사들이 다 폭풍에 쓸려 사라진다면 폭풍이 끝난 이후의 평온한 미래도 장담할 수 없었다.

지금은 필연적으로 고려라는 거인이 웅크려야 하는 시기.

하지만 나중에 더 많은 거리를 도약하기 위해선 크고 중요한 핵심 장기뿐만 아니라 이런 힘줄과 인대, 혈관들에 대한 관리도 필요했다.

평소에는 잊혀지기 쉽더라도 뛰어오를 때가 되면 이런 존재의 공백은 여실히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분께선 금괴를 아낌없이 써서 이러한 기업들에 자금을 수혈하고 경영권을 위협하지 않는 수준에서 지분을 확보하고 계셨다.

자금과 금괴는 아직도 한참 남았다.

그 말인즉, 제가도 할 일이 엄청나게 남았다는 소리였다. 제가는 어쩌면 자신의 업무와 중요도가 거의 제국 재무상서와 비견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운전요원에게 목적지를 알려주고는 짧은 시간의 잠에 빠졌다.

* * *

고려의 경제는 각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고려가 거의 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은 폐쇄경제를 자청한 소련뿐이었다.

전 세계는 침체가 들이친 고려보다도 훨씬 더 크게 흔들렸다.

고려는 복통을 얻어 끙끙 앓는 환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다른 나라들은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처지가 된 셈이었다. 심지어 의식불명에 빠져버린 나라들도 생겼다.

고려의 주식에 투자한 왕귀족들의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들도 치명타를 입었다. 전 사회가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위기가 닥쳐오자 고려의 경제주체들은 자연스럽게 외부에 있는 그들의 자금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고려의 자금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지금의 국제적 상황 속에서 이런 현상은 거대한 파장을 보였다.

그나마 잘 사는 국가들에서도 경기 침체가 아니라 공황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큰 경제 후퇴가 일어났다. 아니, 오히려 경제 체급이 어느 정도 있는 나라들일수록 더더욱 큰 위기를 맞았다.

다른 나라들의 겨울은 고려보다도 훨씬 더 혹독했다.

고려는 어떻게든 민간에 끼치는 영향을 줄여보고자 애를 썼고, 실제로도 많은 지원을 통해 상업은행의 기능 방어에 성공했다.

또한 고려는 애초에 산업 구조가 나름대로 견고했다.

물론 투기자금이 막대하게 몰려 거품이 꼈고 그렇기에 이 사달이 난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사회 전반으로 보면 회사의 경쟁력이 건실한 편이었다.

과도한 자금의 집중이 없었다. 엄격한 금산분리도, 반독점법도 이를 거들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딱히 대응할 방법도, 돈도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또한 경제체제 자체가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는 곳도 많았다.

각국의 내밀한 속사정은 상당히 복잡했지만, 비금융회사와 금융회사가 밀착해 있는 곳도, 문어발식 과확장이 기본인 곳도 많았다. 이런 곳에서는 하나의 문제가 열 문제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걸 독식한 거인이 하나 쓰러지는 것이 두 사람 중 하나가 쓰러지는 것보다 큰 충격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기업은 파산했고, 은행은 대량예금인출사태를 막지 못했다.

사람들은 목숨을 끊거나 굶어 죽기 시작했다. 거대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여기에 강화와 잉글랜드가 공격한 고려의 금태환 문제도 더해졌다.

고려는 국가 신용문제상으로 두 나라의 금태환을 들어주긴 했지만, 그 이후에는 아예 아렌다호논 체제, 즉 금본위제를 폐지하는 수순을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두 국가의 추태가 아렌다호논 체제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고려에게 금본위제를 폐기할 동기를 부여한 셈이었다.

이 충격은 가히 대침체와 비견될 만했다.

한양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조선의 아주 큰 대기업 회장이 아렌다호논 체제의 종말이 담긴 신문 기사를 읽다가 졸도해버린 일이 민간이 느끼는 충격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당연히 고려도 아렌다호논 체제의 폐기로 인한 혼란을 마냥 두고 보진 않았다.

변동환율제를 선언하긴 했더라도, 적어도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배신하지 않은 나라들에게는 더더욱.

고려는 일단 동맹국들에게 서로의 화폐를 교환하는 통화교환협정을 맺으며 동맹국들의 혼란을 최대한 방지했다.

그러면서 금태환 이후에도 고려 원의 신뢰도를 계속 보호해 나갈 방법을 찾았다.

고려가 가진 무기는 금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고려는 이제 어떤 물질로 화폐를 직접 태환하는 짓을 다시 하진 않을 테지만, 여전히 무언가 신뢰성을 담보할 최소한의 방법이 필요했다.

이용할 것은 석유였다.

많으면서도 필수적인 자원.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더욱 커져갈.

고려는 석유가 이제는 연료뿐만 아니라 다른 무언가, 즉 고분자중합체(플라스틱)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인지했다.

이 고분자중합체들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였다. 어쩌면 먼 미래엔 석유가 가진 연료로서의 잠재력보다도 더 클지도 몰랐다.

그러니 고려는 원으로만 석유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사실 고려는 남중북려 전부에서 석유가 나오는 천혜의 땅이었다. 황 성분이 적은 원유도, 많은 원유도 있었다. 그야말로 산유국 중 단연코 으뜸이었다. 혼자서도 이 체제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런 체제는 산유국들이 많이 참여하면 많이 참여할수록 좋았다.

그러나 지금 제국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 누가 참가를 간절히 원하겠는가?

하지만 실무자의 그 같은 물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산유국들은 앞다투어 참여를 원했다.

‘대체 우리나라는 어떻게 중동의 나라들과 이렇게 친해진 거지? 알다가도 모르겠군. 박성민이라는 자가 그렇게 대단했던가?’

책상에 잔뜩 쌓인 업무를 처리해 나가던 외무부의 한 관리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외교관의 자리에 앉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던 그 또한 방대한 양의 국사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국사를 공부해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것이지만, 이라크와 아련은 고려의 외교 관계에서 하루아침에 뚝 생겨버린 고향 친구와 같았다.

자신은 어색해하는데 친한 척은 유별나게 하는 친구.

실무자의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아련, 오만, 고려, 조선, 옥저, 누산타라 등의 주요 석유 산유국들은 두바이에서 다시 한 차례 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고려의 강력한 우방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조선과 옥저는 고려와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나라들이었다. 석유의 매장량으로 볼 때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조선은 요동 방면에서 발견한 석유 매장량은 아직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기본 기술이 뛰어났고, 옥저는 땅덩어리 하나는 원체 큰 나라라 자원이 많았다.

보잘 것 없는 황무지에서 엄청난 양의 석유가 펑펑 나오는 축복 받은 땅이 된 아련과 이라크는 혈통과 종교에 대한 신념이 친고려의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두 나라만 제대로 참여해도, 고려는 체제의 성공을 장담할 수 있었다.

오만은 고려와 친했고 누산타라는 고려에서 독립한 지 백 년도 되지 않아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여전히 작은 해적 문제에 있어서도 태평양함대들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이들 산유국 모임은 석유를 거래할 때 오로지 원만을 사용한다는 협약에 동의했다. 이로 인해 탄생한 체제를 원―석유대금결제체제라 불렀다.

원―석유대금결제체제는 아렌다호논 체제를 대신하여 원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방안으로 채택되었다.

이후 원은 다시금 신뢰도를 되찾기 시작했다.

거품이 꺼지며 생긴 경기침체는 여전했지만, 아렌다호논 체제 붕괴의 여파는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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