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21화 (521/653)

521화 금본위제의 종말

“그러니,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는 이원석의 법칙은, 금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노교수가 칠판에 분필로 판서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미듯이 따라 적기 시작했다. ㅇ과 ㅁ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노인의 꼬부랑글씨가 헷갈렸지만, 지금 이 자리엔 그 정도 맞춤법을 모르는 학생, 문맥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기에 괜찮았다.

― 미주 대금광 발견, 누아 에린 대금광 발견.

금이 은을 구축하기도 하고 은이 금을 구축하기도 하는 이 복본위제는 광산개발과 조폐 비율의 변화에 따라 너무나 혼란스럽게 바뀌어 오래가지 못할 운명이었다.

포토시 은광에 더해 이와미 은광의 은까지 거의 독점하여 채굴량을 조절하고 있는 고려도 불가능했다.

애초에 실물경제나 화폐경제, 신용경제에 상관없이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면 대부분 시장왜곡이 일어난다. 노교수는 그렇게 진단했다.

“그리하여 금은복본위제는 종말을 고했지요. 완전히 금본위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교수의 말 자체에 의문을 가진 학생들은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신 말씀에 따르면 교수님께선 결국 금본위제도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의미하신 것입니까?”

노교수는 안경을 고쳐 썼다. 그는 학생들을 둘러보다가, 저 뒤편에서 손을 들고 있는 작은 체구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학생은 나이가 상당히 어렸다. 열다섯 정도였다.

하지만 어색하진 않았다. 노교수도 처음에는 열네 살에 글래스고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기에. 게다가 청해 대학은 세기의 천재들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자석과도 같기에 어마어마한 인재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왔다. 위대한 지성(知性)은 그런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학생의 이름이 뭐지요?”

“데이비드 리카도라고 합니다. 교수님.”

“내 은사하고 이름이 같군요. 그래요, 데이비드 군. 일단 학생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학생은 이원석의 법칙이 적용되는 조건에 대해 인지하고 있습니까?”

“예 교수님. 두 종류 이상의 화폐가 그 가치를 보존할 수 있고 유통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두 화폐 간의 법적 교환비가 존재해야 합니다.”

“잘 알고 있군요. 특히나 학생이 말한 두 번째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원석의 법칙과는 완전히 다른 황수일 효과가 일어나니 참고해 주세요. 도이치 오스트리아 전쟁 이유 중 하나인 라이히스탈러가 굴덴그로셴을 대체한 사건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교수는 한 가지를 짚은 이후 본격적으로 리카도의 질문을 생각했다. 약간의 침묵 이후, 그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지금까지의 화폐경제에 대한 간단한 요약을 하고 들어가야 하겠군요.”

몇몇 학생들은 속으로 탄식을 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리카도가 한 질문은 다른 이들의 머릿속에도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은 최고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온 자들이다. 머릿속에 무언가를 넣는 것은 즐거웠다.

또한 시대적 시기상, 지금의 이 강의는 몹시 유익했다. 이런 수업은 돈 주고 들을 수도 없다. 노교수는 다른 대학에 가서 강의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 세계적 석학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면 정식으로 대학과 교수에게 청강을 허락받아야 했다.

“화폐 제도의 역사는 깊고 오래되었지요. 고려는 아주 먼 옛날부터 금은은 물론이고 상평보 같은 동전을 주조했습니다. 이후 금은복본위제를 정립해 한동안 사용했지요.

시장에서 금과 은, 구리와 같은 귀금속들의 액면가치와 실제가치가 괴리되는 상황은 흔했기에 복본위제는 한계가 있었다는 게 지금까지의 강의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적 금본위제가 시작되었죠.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 체계가 어쩌면 예전의 대전쟁을 초래했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국가의 부가 보유한 금의 수량에 정비례하는 고전적 금본위제의 하에선, 각국은 보유한 금의 수량을 늘리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다. 각국 정부들은 제한된 금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해외 식민지 팽창도 금광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었다.

고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자국에 엄청난 자원이 내재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아대륙자원보호법 덕에 다른 국가의 것을 탐내어 기존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바꾸어버릴 동기도 있었다.

잘 포장된 ‘도덕’이라는 무기를 앞세운 이들은 보다 더 세련되고 우아하고 원활하게 세계의 금을 흡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세계대전은 고전적 금본위제의 한계에서 촉발했을 수도 있었다. 금을 더 먹고 싶은 자들의 추악한 다툼일지도 모른다.

카디스 조약이라고 하는 열강들의 땅 갈라먹기는 일시적인 처방제에 불과했다. 곧 이들은 금본위제가 촉발한 ‘필요 없고 무의미한’ 갈등에 전쟁 상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노교수가 생각하기에 대전쟁은 필연적이었다.

세계대전은 이런 고전적 금본위제를 완전히 박살 냈다.

전쟁에서 승리한 고려는 사국동맹에 속한 나라들의 배상금을 대부분 금으로 받아냈다. 배상금의 규모를 줄이고, 지급 기한을 늘려주었음에도, 금으로 배상받는다는 것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프랑스가 괜히 금 모으기 운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고려는 식민지를 해방하면서 비로소 그곳의 광산들을 구매할 권리를 얻었다. 고려가 가진 독보적인 외교적, 경제적 위상은 전후 세계 금 생산량의 9할을 자국으로 끌어들일 정도였다.

그러니, 전후에 금본위제를 제대로 실시할 수 있는 나라는 오직 고려밖에 없었다.

금환본위제는 고전적 금본위제를 대체해 현대 시대를 이끌고 있었다.

세계대전 이후, 고려는 구제금융기금을 통해 프랑스 경제에 간섭했다. 전후 프랑스는 그들의 통화인 프랑을 고려의 원과 일정한 비율로 고정시켜야 했다. 낙후된 경제체제를 뜯어고치는 명목이었다.

이는 프랑스에게 엄청난 호재였다. 얼핏 보면 국가재정의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게 주는 치욕스러운 일이었지만, 오히려 프랑스 경제가 안정화될 수 있는 큰 요인으로 꼽혔다.

대전쟁은 각국의 금본위제를 일시적으로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전쟁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각국은 돈을 찍어냈고, 그렇기에 전후 통화팽창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물가상승을 겪었다. 이는 승전국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극심한 내전을 치른 도이치가 가장 심했다.

게다가 각 열강은 전후에도 국민들의 신뢰를 곧바로 회복하지 못했다. 그들 중앙은행의 불안정한 유동성과 금태환의 일시적 폐기는 그들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니 그들은 가장 신용도 높은 화폐와 고정된 프랑의 사례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의 화폐도 프랑처럼 고려 원과 결속되길 원했다. 탈러도, 파운드도,

고려도 이를 받아들였다.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이 독점적으로 금태환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누가 거부하겠는가.

고려 원은 모든 화폐의 으뜸으로 군림했고, 대신 다른 나라들은 고려 원이 가진 압도적인 신용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고려 중앙은행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가지고 있었고, 고려는 가장 많은 금광을 소유한 나라였다. 금본위제의 하에서, 원의 신용도를 감히 어떤 화폐와도 비교할 순 없었다.

덕분에 각국의 경제는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또한 고려는 국제정치적 위상뿐만 아니라 국제경제적 위상도 누렸다. 구제금융기금의 영향력도 강해졌다.

이 체제를 회담이 열린 지역, 북려 오지브웨주 아렌다호논 스키 휴양지의 이름 따서 아렌다호논(Ahrendarrhonon) 체제라 칭했다.

아렌다호논 체제하의 금환본위제란 각국이 금본위제를 직접 시행하는 대신 국제금융을 이끄는 나라 즉 고려의 화폐를 각국 중앙은행이 매매를 통해 보유함으로써 금 보유와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고려의 금본위제에 고정적(주기적으로 변동되긴 했다.) 환율로 고정시킨 타국 통화들은 직접 금으로 바꿀 순 없게 되었다. 불태환 지폐라 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이는 한계에 달했습니다.”

아주 큰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에 동의했다.

더 이상 금은 세계 경제, 즉 고려의 경제를 대변하지 못했다.

고려의 실물경제는 금의 매장량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세계 9할의 금을 가지고 있어도, 세계 경제는 그것보다도 훨씬 크게 성장했다. 겨우 금, 혹은 금속 따위로 기술가속이 되는 인류 문명의 진보를 전부 보증할 순 없다는 소리였다.

통화정책이 금의 채굴량에 좌지우지되는 것도 큰 문제였다. 화폐공급이 금의 채굴량에 달려 있다면, 통화정책도 금의 채굴량에 달려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인공지능을 가진 강철괴인이 나타나 하루 종일 금을 채굴할 수 있게 되지 않는 이상, 금의 채굴량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

제국중앙은행은 전통적 금본위제하에선 마음껏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다가오는 경기 침체 속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은 체제 자체의 문제점이었다.

― 땡 땡

수업 종이 쳤다. 노교수는 말을 잘랐다. 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지만, 다음 수업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예전의 젊을 적 자신은 약간 오만방자하고 배려심이 없어 계속 수업을 이어나갔지만, 지금의 그는 다른 분야의 공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교수들의 수업도 존중받아야 한다.

리카도는 아쉬운 듯 수업을 끝낸 노교수에게 다가왔다.

“교수님, 나중에 연구실에 들러도 되겠습니까?”

노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생들은 항상 보기가 좋았다.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소년이 재빨리 짐을 챙기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 * *

하루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노교수는 강의실에서 빠져나왔다.

날씨는 흐리고 당장이라도 비가 올 듯했다. 하지만 흐린 날에도 경치는 여전히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흐린 날이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대학을 꼽아보라면 한 손에 꼽힐 청해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에 있으면서도 교정 자체는 굉장히 오래되었다.

낡음과 고풍스러움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지만, 대학의 건물은 후자의 미덕을 지키면서도 전자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었다.

노교수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원래는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글래스고 대학에 있다가 그의 은사인 데이비드 흄 교수를 비롯한 석학들의 권유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동안 망설였던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민을 온 지 삼십 년이 되자, 그는 청해 대학 교정이 마치 자신의 집 같이 느껴졌다. 이 아름다운 대학은 사립대학임에도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상아탑이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노교수에게는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이 시장 이전에 청해를 지배했다는 통령 가문의 후손이라는 대학의 이사장이 엄청난 부자라는 사실 덕인 것 같았다.

문득 그는 멀리 교정의 서쪽으로 보이는 거대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꺼지지 않는 문명을 상징하는 거대한 마천루들의 도시, 하늘을 찌를듯한 바벨탑들. 보험사와 증권사 건물들.

건물들은 그동안 매년 세계 최고의 초고층 건물들의 기록을 자신들이 경신하겠다는 듯 갈아치웠다. 덕분에 청해 신도심은 무지막지하게 발전했으며, 담쟁이 거리의 재건축도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노교수는 그 광경을 삼십여 년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황금기를 온전히 누렸음에도 마음 한편에 불안감을 내비쳤다. 오늘의 강의에서 그러한 말들을 한 것은, 근원 모를 불안감의 말로였을 것이다.

노교수가 그러한 생각을 하며 교정을 걸어 다닐 때,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낯익었다. 학생? 아니 학생이었던 자였다.

“스미스 교수님, 스미스 교수님!”

노교수는 갑자기 익숙한 발음에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은 많았지만, 그도 사람이니 기억하는 수는 그렇게 많진 않았다. 허나 저 목소리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자신이 젊은 교수 시절에 가르친 학생들은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그때는 그도 학문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아 학생들과 거의 끝장토론식으로 언쟁을 벌였다. 그 언쟁을 벌인 당사자가 눈앞에 와 있으니 재미있는 일이었다.

사회의 일이 바빠 은사를 잊어버리는 일이 흔한 지금의 시대에는 흔치 않은 일이기도 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약속을 잡으려고 했는데…….”

“이 군, 괜찮아요. 나랏일이 바쁜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나는 상대적으로 덜 바쁘고.”

이덕무는 한숨을 쉬었다. 작은 키, 낯가림이 심하고 까칠했던 교수도 이제 나이가 지긋해지자 훨씬 부드럽고 유해졌다.

덕무는 과거 교수와 함께 하루 종일 경제학을 두고 토론한 그 시절이 그리웠다. 물론 학계에 남는 것은 그의 적성이 아니었기에 지금의 진로를 택했지만.

지금 그는 학생의 처지로 온 것이 아니었다. 미시와 거시를 통틀어 경제학에 관해선 고려 제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저명한 교수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당장은 학생의 인연을 빌리고 있지만, 그가 제국연방중앙은행 소속, 그것도 통화위원회의 위원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한 나라, 더 나아가서 세계의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거대한 단체의 일원이 이곳에 왜 왔는지는 뻔했다.

그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혜안을 얻기 위해서였다. 다소 경파(온건파)적 강준표 제국연방은행장과는 달리, 이덕무는 대표적인 교파(강경파)였다.

이덕무, 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지금 체계 자체를 뜯어고치길 원했다.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절개를 통해 고름을 제거해야지 앞으로의 화근을 고칠 수 있다 생각했다. 어떤 병들은 항생제로도 한계가 있었다.

덕무는 주저하며 본론을 꺼냈다.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각 열강이 금태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보았지요.”

사제는 천천히 걸었다.

“치명적인 정치―금융적 공세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외국을 미워해 본 적이 없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 강화와 잉글랜드라면 치가 떨립니다. 그들은 이 금융사회가 고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국 내의 이권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교수의 이름을 딴 ‘스미스의 양도논법’에 따르면 준비통화(원)가 국제 경제에 원활하게 쓰이기 위해선, 발행국의 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발행국이 흑자를 본다면, 준비통화가 덜 풀려 국제경제가 원활해지지 못하는 역설이었다.

고려는 지금 자신들의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냉해 이후 절망적일 정도로 상처 입은 국제경제를 위해 준비통화를 많이 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려의 그런 노력을 배신했다. 오히려 고려 원을 들고 고려에게 금태환을 요구했다. 이는 금융을 아는 사람들이 볼 땐 끔찍할 정도의 배신이었다. 들어주면 고려는 엄청난 금을 주어야 하고, 들어주지 않는다면, 고려의 원엔 그보다 더 큰 신용적 상처가 생긴다.

“하하… 이해가 완전히 안 가는 것은 아니에요. 경제주체들은 그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요. 다만 그 행동이 전체적으로 볼 때, 상당히 좋지 않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밖에… 으음…?”

노교수는 갑자기 침음을 흘렸다. 무언가 생각이 날 듯 말 듯 한 개념이 떠올랐다. 하지만 제자가 방해를 해버리고야 말았다.

“금본위제를 완전히 끝낼 생각입니다.”

노교수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덕무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듯합니다. 금본위제는 이미 한계에 달했습니다. 교수님도 그러셨지 않습니까? 세계 경제는 변동환율제로 개편되어야 합니다.”

“상당한 충격이 있을 거예요. 더군다나 실물경제가 이 상태가 된 지금은 더더욱.”

덕무는 고개를 저었다.

“미루어보았자 피해만 더욱 커질 것입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

교수는 이론과 학설을 검증하는 자들이지,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정치와 학문은 유리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노교수는 잠시 주저하다, 제자에게 말을 꺼냈다.

“이 군, 그리스어에는 헤게모니아(ἡγεμονία)라는 말이 있습니다. 려말로는 주도권이라고 하지요.”

“예. 교수님의… 친우분이 말한 단어이지 않습니까?”

“맞아요. 친우라기보다는 고집불통 꼴통에 가깝지만.

뭐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말 일부는 들을 가치가 있다 생각합니다. 제국이 어떠한 제도를 하더라도 헤게모니아, 즉 주도권이 없다면 어불성설이라는 말이지요.”

시장주의적, 자유주의적인 기풍을 따르는 청해 경제학파는 정부주의적, 개입주의적 기풍을 따르는 창양학파와 대립하고 있었다.

창양 경제학파의 거두인 박지원은 주도적 안정성 이론을 주장한 적이 있었다. 현 국제체제의 안정성은 강력한 행위자, 즉 고려의 책임하에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의 국제정세를 미루어 볼 때, 고려가 아렌다호논 체제를 스스로 허문다면, 이는 국제사회에 큰 불신과 충격을 선사할 것이 분명했다. 경제질서가 한동안 붕괴될 것이다.

소련은 기뻐할 것이다. 다른 나라 중 행여 흑심을 가진 이들도 기뻐할 것이다. 고려는 크게 흔들릴 것이니까.

이덕무는 한참 고뇌했다. 파생될 수밖에 없는 많은 영향들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관리로서, 그런 것을 고려하는 것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정치의 일은 정치가가 해야 했다. 반면 그는 보다 건전한 고려 경제를 위해 봉사해야 했다. 그것이 중앙은행 관리의 일이었으니.

노교수는 그 옆에서 잠자코 있다 문득 입을 열어 조언했다.

“이 군이 믿는 것을 하세요. 그 자리는 그런 일을, 그런 고민을 하기 위해 있는 자리니까.”

모든 것을 얻을 순 없다. 세상 이치가 그랬다. 당장 금본위제만 하더라도 김민태가 제시한 불가능의 삼각정리를 극복하지 못했다. 무언가 얻는 것이 있다면, 무언가 포기해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이덕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고려의 경제는 건실했다. 고려의 체제도 건실했다. 지금 수많은 곳에서 냉해가 일어나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지더라도 그랬다.

몇몇 청신사들이 진단한 것처럼 제국 경제에 거대한 거품이 들어서 있어, 그것들이 한번에 꺼진다면 앞으로 큰 고통이 따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국은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보여줄 것이다.

헤게모니는 다시금 고려의 손으로 돌아올 것이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불변의 진리가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겠지. 우리는 상처 속에서 성장하니까.

결론을 내린 덕무는 다시 자신의 원래 생각으로 회귀했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그의 눈엔 폭풍우라도 뚫고 갈 만한 자신감이 차 있었다.

그것이 시중도, 황제도 간섭하지 못하는 세계 최고의 금융기관, 중앙은행의 책임이다.

이런 확신을 얻기 위해 이미 거시경제학에서 일가를 이룬 이덕무 또한 옛 은사를 찾아뵌 것이었다. 오늘의 수확은 그 값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감사합니다. 스미스 교수님.”

노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궁금해 물었다.

“아 참, 민태 그 친구는 요즘 뭐 하고 지내는지 알고 있어요?”

이덕무와 함께 그의 수업을 듣고 토론한 제자가 더 있었다. 김민태 박사는 어디서 뭘 하는지 소식이 없었다. 가끔 드문드문 대단히 뛰어난 경제학 논문을 학계에 던지고 그 충격을 즐기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는 그 근육질, 덩치 큰 제자가 그리웠다.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겨서.”

“어쩔 수 없지요. 사는 게 바쁘니까.”

아담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온 제자가 작별을 고하고는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등을 돌려 뛰었다. 몸이 젖는 것은 상관없다는 듯.

[작가의 말]

스미스의 양도논법 : 트리핀의 딜레마

아렌다호논 체제 = 몇 개 조항(예컨대 특별인출권)을 제외하고는 브레튼 우드 체제와 비슷합니다.

이원석의 법칙 = 그레샴의 법칙

강화와 잉글랜드의 행동 : 브레튼 우드 체제를 박살 낸 샤를 드골의 행동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단지 고려는 베트남 전쟁이 아니라, 세계 식량 위기를 위해 돈을 푸는 입장이지만요.

아담 스미스의 포지션은 밀턴 프리드먼, 박지원의 포지션은 킨들버거, 케인즈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주도적 안정성 이론 : Hegemonic stability theory

불가능의 삼각정리(impossible trinity)

― 김민태(김상민) 모형, 즉 먼델 플레밍 모형의 개방경제 하, 환율의 안정, 통화정책의 독립성, 자본이동의 자유화의 개방경제 3가지 목표는 동시에 모두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금본위제 체제하에선 고정환율제라 할 수 있으므로 환율의 안정은 상수로 가져가게 되지만, 자본이동자유화와 통화정책의 독립성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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