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20화 (520/653)

520화 식량위기(2)

이 양산 현상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개천 508년부터 512년(1787)까지 거의 4년 동안 전 세계적 기근이 닥쳐왔다. 라부아지에의 비료가 없었다면, 아마 세계 인구가 수 할은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도 곳곳에서 아사자가 속출했다.

석탄과 석유, 전기를 쓰는 화려하고 찬란한 인류 문명 속에서 사람들은 굶어 죽어갔다.

런던의 고풍스러운 까페에서 수다를 떠는 부유층과 그 옆에서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 빈민이 함께 담긴 한 장 사진은 지금 상황을 명확하게 상징했다.

이런 식량 위기는 가진 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식료품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해봤자, 그들의 창고에는 몇 년이고 버틸 만한 식량들이 있었으니까.

먹을 게 정 없으면 맛없는 통조림이라도 먹으면 된다. 수중에 돈이 많은 이상 그럴 일까지도 없어 보였지만.

하지만 밑바닥 계층일수록 이런 식료품 가격의 상승, 더 나아가서 이것이 초래한 물가의 가파른 상승은 생계를 크게 위험하게 만들었다.

― 이 모든 것이 봉건 지주와 자본가들, 부르주아의 탓이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공산주의자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던 때도 지금이었을 것이다.

먹을 것이 많고 삶이 풍요로우면 들리지 않았을 아우성은, 먹을 것이 없고 삶이 각박해지자 훨씬 더 선명하고 자세하게 들렸다.

금융시장도 서서히 요동쳤다. 전례 없는 기상악화에 모두가 크게 놀란 상태였다.

언론과 통신수단이 진보한 덕에 이런 소식들은 빠르게 해저전신을 타고 다른 대륙에도 전파되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식시장이 처음으로 보합세로 들어갔다. 약보합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담쟁이거리의 신사들은 부랴부랴 이 사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해 신용평가사는 개천 508년부터 각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극도로 상승했다고 보고했다.

물가는 엄청나게 상승했는데, 생산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동안 잘 관측되지는 않았지만 좋지 않은 신호였다.

양산효과가 극에 달한 509년에는 이런 상태가 이전보다 더 심해졌다. 다음 연도와 다다음 연도도 전망이 마냥 좋지 않았다.

* * *

개천 509년 긴급하게 열린 파남 국제연합의 회의장에서는 도떼기시장이 펼쳐졌다.

회의가 시작되었는데도 그 누구도 자기 자리에 앉아있지 않았다. 대신 고려의 특사를 빙 둘러싸고 긴급식량지원을 요청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려의 지원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리나라의 사정이 좋지 않으니, 부디 헤아려주시고….”

조용한 어투로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특사, 특사! 뭐라 말을 좀 해 보시오. 공산주의자들이 날뛰고 있소!”

“지금 우리에게 지원해 주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겁니다!”

오히려 역으로 겁박하듯 말하는 자들이 있었다.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미치겠군.’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즐거이 여기던 고려였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들로서도 굉장히 힘들었다.

고려의 인구는 개천 508년 기준으로 거의 십억에 육박하고 있었다. 인구는 매년 꾸준하게 증가했다.

그 와중에 지리적 한계가 명백한 남려보다는 북중려의 인구가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대륙의 면적으로만 따져 봐도 남려보다 북중려가 더 넓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번 냉해에 영향을 받은 피해자들의 비중이 높았다.

남려 태수열대우림에 대한 개발 제한은 지금도 유효했다. 그 근처까지 대농장이 들어서긴 했지만, 핵심적 우림자원에 대한 보호는 여전히 엄중했다. 땅이 넓은데 굳이 그곳을 파먹을 이유는 없었다.

남은 곡창지대는 남려 중부 동해안 고원지대.

이곳의 곡식 산출량은 대단히 많았지만, 그 한계가 있었다. 자국 내의 인구를 무리 없이 부양하기에는 충분하지만, 당연히 외국에 대한 지원을 해주는 것은 불투명했다. 몇 개의 국가들은 가능하겠지만, 전부 다 주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이번에도 곡창의 묵은쌀을 풀어야 한다는 말이군. 조선에서 일어났던 경신대기근처럼.”

― 그렇습니다, 당하.

쉬는 시간이 되자 특사는 곧바로 인파를 헤치고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 정녕당에 전화를 걸었다. 자국 내 통화선의 길이가 거의 대륙 간 통화에 맞먹었지만, 그래도 별다른 난관은 없었다.

시차도 얼마 나지 않으니 시중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고려연방제국 38대 민선시중 정오섭은 진작부터 내각의 상서들을 불러 모아 지원안을 펼쳐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개천 263년, 가면시중의 시대가 끝나고 민선시중의 시대가 열리면서 선출된 시중들은 이미 정오섭을 포함하면 서른여덟 명에 달했다. 그중에서는 무난히 자신의 임기를 마치고 내려간 자들도, 제국에 불어닥친 온갖 환란을 수습한 자들도 있었다.

오섭은 문득 자신의 임기 운은 정말 지독하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연임에 접어들었는데.

“농무상서에 의하면, 지원 가능한 곡식의 양은 처음 특사에게 알려주었던 것과 동일해요. 변동사항은 없습니다.”

오섭은 수화기를 든 채로 여러 곡창의 곡물들 양을 재확인했다. 서산, 모하비, 마령, 체로키. 가득 차 있고, 보관된 곡물 상태도 양호하다.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다. 하지만 국가 단위로 볼 때는 충분치 않았다. 특히나 북반구에서 식량 위기를 얻은 나라들을 전부 지원해주기에는 더더욱.

원래는 고도가 낮아 냉해 피해가 없어야 할 곳도 그랬다. 심지어 인도(찰리사 대기근)와 튀니스에서도 기근이 일어났다.

소아시아와 아라비아는 만성적 식량 부족이라 식량 수입국이었지만, 북아프리카와 이슬람 세계의 곡창인 이집트까지 기근에 시달리는 것은 굉장히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문명화된 중앙아프리카의 악숨도 식량 부족을 호소했다.

― 그렇다면….

후우, 정오섭은 한숨을 흘렸다.

“일단, 우리가 최우선으로 살펴주어야 할 곳은 정보동맹입니다. 아시지요?”

― 예. 6개국에 대한 지원안을 우선적으로 보겠습니다.

“그래도 조선이나 백제는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아 보입니다. 두 나라는 우리가 곡창을 지어준 것도 있으니까 미리 대비를 좀 해 놓은 모양이에요.”

―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차순위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특사의 물음에 오섭은 한참 갈등했다.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나라도 이런 상황은 굉장히 힘들었다.

누굴 도와주면, 도움을 받지 못하는 나라는 굉장히 실망할 것이었다. 하지만 평등하게 도와준다면, 기존까지 고려의 말에 협조를 잘한 나라나 혹은 중요한 나라의 경우에는 화가 날 수 있었다.

이런 인도적 지원은 받는 사람의 권리도, 주는 사람의 의무도 아니었으니 도움받은 자들은 알아서 고마워하고 받지 못한 자들은 알아서 납득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사람이라는 존재는 대체로 음흉하고 사악하며, 이기적이기 짝이 없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나라가 과거에 얼마나 도와줬는지는 금방 잊어버렸다. 원수는 수백 년 동안 기억하지만, 은혜는 십 년도 기억하지 않는 셈이었다. 피 흘려 싸운 혈맹도 국익과 정치 논리 앞에선 금방 빛이 바랬다.

고려의 지금 같은 행동은 분명히 호의였다. 하지만 이를 당연히 받아아 할 자신들의 권리라 생각하는 자들이 나올 터다.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외교등급을 따르세요.”

― …반발하는 나라들이 나올 것입니다.

오섭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 편을 챙겨 남의 편의 분노가 없게 하느냐, 남의 편을 챙겨 적을 없애고 우리 편의 불만을 초래하느냐.

이번 식량 위기는 고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우리 편과 그렇지 않은 나라들을 구분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온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고려에게 외교적 비난거리로 되돌아올 수 있어 보였다. 도움을 주는데 욕을 먹는 그런 경우였다.

그럴 바엔 내 편을 챙기는 것이 맞았다. 인류 공통의 역사가 그를 증명했다.

“외교등급이라는 것은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종합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 기준에 충족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책임은 내가 집니다.”

―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전화가 끊기고 오섭은 면도를 하는데도 어느새 까끌까끌하게 자라난 턱 밑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때아닌 회의감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자신도 이럴지언대, 황상께서는 더 그러실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해 황상께선 관여치 않겠다 하셨다. 인종 대제 시절과는 달리, 황상의 치세에는 국제적 관계가 복잡해졌으니 황실 주도보다는 행정부의 주도로 외교관계를 다루는 것이 더 전문적이었다. 물론 지원을 넉넉히 하라는 사륜을 내리시긴 하셨지만.

그럼에도 황상께선 아마 서운해하실지 몰랐다.

고려가 세계 패권을 쥔 지도 굉장히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인류 역사상 가장 관대한 제국,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제국이라지만, 오랜 기간 동안 그 밑에서 있었던 나라들은 익숙함에 젖어 소중한 것의 가치를 잊어버리곤 했다.

오섭은 때아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못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곤여의 사람들도 다른 나라가 패권을 쥐는 것을 한 번쯤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 패권국들이 얼마나 개차반적인 외교관계를 이룰지, 개차반을 넘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며 대량으로 학살하여 이를 정당화할지 한 번쯤 알아두어야 그것이 고려의 치세 우수성을 선전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보기에 어떠한 나라가 패권을 쥐어도, 지금 고려처럼 행동하지 못했다. 소비에트 연방? 조금 말도 안 되는 우스운 말이지만 강화나 중화민국? 그러한 나라들이 세상을 움켜쥔다면 어떻게 될까? 매사에 이기적으로 구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어쩌면 세상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만들 것이었다. 매일매일이 기근이고 위기일 것인즉,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릴 터였다.

물론 못된 망상일 뿐이다.

그는 고개를 털었다. 제국 시중으로서 생각해서는 아니 될 말이었다. 아무리 과로로 지쳤다 한들 우리의 대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 * *

개천 509년 9월, 마침내 고려에서 긴급식량지원에 관한 법안이 중서성을 통과했다.

전례 없는 수준의 지원법안이었다. 이 법안은 북반구를 중심으로 무려 48개국에 대한 식량원조를 담고 있었다.

조선, 백제, 옥저, 주, 유구, 에이레,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포르투갈, 카스티야, 아라곤, 나바르, 이탈리아, 도이치,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아이슬란드, 몰다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세르비아,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크라인, 헝가리, 체코, 스위스, 프랑스, 네덜란드, 콘스탄티노플, 루테니아, 아랍 연방, 이집트, 튀니스, 리비아, 알제리, 마라케시, 튀르키예, 악숨, 이라크, 비자야나가르, 마라타 등의 48개국은 고려산 곡물을 받았다.

물론 이 법안은 일시적이었다.

또한 나라마다 지원 규모가 달랐다. 인구와 상황, 식량 대비 상황에 따라 적게 주기도, 많게 주기도 했다.

한 번 경신대기근을 겪은 조선은 고려의 지원을 받아 태백산자락의 서늘한 곳에 대곡창을 지어 놓았다. 국가 주도의 구휼에 대해 굉장히 신경 쓰고 있는 나라다웠다. 백제도 그러했으니 두 나라는 이번 기근에서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어 보였다.

도이치, 네덜란드 같은 부유한 나라도 잘 버텼다. 냉해 피해는 심했지만 이들도 돈과 저장해 놓은 것들이 많으니 버틸 수 있었다. 현 도이치 왕 빌헬름 1세는 오히려 체코와 폴란드를 도와주기까지 했다.

의외인 점은 냉해 피해가 막심하다는 프랑스도 큰 앓는 소리를 내고 있진 않았다.

아마 라부아지에의 고향이었으니, 비료 산업이 발달해 그런 모양이었다. 원래부터 프랑스는 유럽의 곡창지대였으니 냉해 전에 산출하여 저장해 놓은 것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산업력이 강하고 원래부터 그들의 집 창고에 음식물을 많이 저장해 놓기로 소문난 이탈리아도 잘 견뎠다.

하지만 몇 나라는 그 피해가 극심했다.

리스보아 대지진 이후 카르발류의 주도하에 구휼 체계를 정비하고 여러 재난대비를 확실히 해 놓은 포르투갈과 달리, 카스티야와 아라곤은 상당히 사정이 좋지 않았다. 마드리드에서도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잉글랜드와 에이레, 강화와 불가리아, 이집트, 인도, 스칸디나비아 삼국, 덴마크, 폴란드, 체코 등도 심했다. 이 국가들의 농경은 날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잉글랜드 같은 경우에는 홍수피해도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서너 나라를 빼면 그렇게 부유하지도 않은 나라였다. 식량 지원이 간절했다.

하지만 식량지원 규모가 책정되자, 이들 중 몇 나라는 분통을 터트렸다.

아직은 국제사회에서 거의 영향력이 없던 마라타나 비자야나가르는 둘째 치고 타수에 가입되어 있었던, 그래서 명백히 고려의 우방국으로 간주되었던 나라들도 불만을 터트렸다.

잉글랜드와 강화는 가장 큰 불평불만을 터트렸다.

“왜 우리나라가 바로 옆에 크기도 작은 에이레보다 지원 규모가 작은 것입니까? 말이 되지 않습니다. 특사, 잘못 책정하신 것이 아닙니까?”

“우리 강화는 지금 죽어 나가고 있어요. 심각한 문제란 말입니다…!”

잉글랜드는 같은 재난을 겪었는데, 왜 에이레와 자신이 다른 취급을 받는지 분노했다. 같은 알비온 연합이라는 말이 우스울 정도였다.

하지만 고려가 생각하기로는 에이레의 상황이 더 엄중했다. 또한 에이레는 전통적 2등급의 우방국이자, 정보동맹이었다.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는 나름대로 부유했기에 잉여 생산물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빈부격차가 심해서 문제가 되었다. 같은 잉글랜드인이 잉글랜드인을 극심하게 착취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도 그 지경인데, 만약 잉글랜드인이 에이레까지 지배했다면 에이레에서 거대한 비극―에이레 대기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인성 수준을 고려해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강화도 요란이었다.

냉해 피해를 많이 받은 옥저는 이해하지만, 인구가 적은 데다 분출한 화산에 다소 떨어진 남쪽에 있고 곡창도 있는 백제는 견딜 만할 텐데, 왜 강화와 백제의 지원 규모가 별 차이가 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최근 한 명의 적을 만들었다.

일반적인 적이 아니었다. 치명적인 존재였다.

자신의 혈통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친강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던 해완은, 고국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완전히 혐강화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무서울 정도였다. 해완은 돌이킬 수 없는 심적, 육체적 상처를 입은 순간부터 예전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자각했다.

해완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 강화의 지원안을 축소시켰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 나름대로의 복수였다.

강화는 자신들이 고려가 분류한 동맹 등급에서 5등급, 거의 꼴등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따지고 보면 자신들의 업보였다.

만약 강화가 순순히 해남도를 해방하고 돌아갔다면 해남파가 득세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안정도와 더불어 동맹 등급도 올라갔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강화는 그 순간의 이득을 포기 못 했고, 이번에 크게 상처를 입었다.

―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예맥한계처럼 고려와 가까워질 수 없다.

― 말로만 범고려주의를 주창하고 세계 평등과 화합을 요구하지만 얼마나 모순적이며 위선적인가.

― 우리는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한다. 다른 인연을 찾아봐야 한다. 마냥 제국에 의존할 순 없다.

― 강화는 예맥한계에 의해 포위된 상태다. 이 포위를 해소할 다른 동맹이 누가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위험한 질문까지.

― 현 강화의 왕은 친려파인데 과연 우리에게 합당한 군주인가? 우리에게 어울리는 위대한 지도자(정이대장군)가 언제쯤 나타날 것인가.

섬나라에서는 많은 물음들이 떠다녔다.

지구 반대편의 다른 섬나라에서도 ‘잉글랜드 공산당’이라는 작은 단체가 런던의 한 지하실에서 모임 발족을 소소하게 자축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작가의 말]

역사적 기근 목록을 보면 1783년부터 몇 년간 전세계적으로 굉장히 촘촘하게 기근이 일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무서운 일이네요.

지금도 식량위기란 소리가 남의 나라 소리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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