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18화 (518/653)

518화 강화의 위기(2)

― 달칵

문이 열리고, 주강화 고려 대사와 주재무관이 나왔다.

둘의 얼굴은 굉장히 복잡하고 심란했다.

“어쩌고 계십니까?”

“드디어 안정을 찾으셨습니다. 처방된 진통제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눈을 뜨실 때마다 비명과 고함을 지르시니…….”

“이게 다 제 불찰이고 제 죄입니다. 마땅히 죽음으로 사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해완의 호위를 담당했던 송평융맹은 병실 밑바닥에 꿇어앉아 할복을 준비했다.

본래 할복이라 하면 왜의 전통 관습이었지만, 도쿠가와 왕조는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며 이를 거의 금했다. 지금은 대체로 사문화되어 부채를 쥐고 죽는 시늉을 하거나, 혹은 문서로만 죽었다고 하는 경우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벌어진 일은 장난이 아니었다. 도쿄가 불바다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황족 암살 미수라니, 그리고 크게 다쳤다니.

다른 열강국 왕족이라도 엄청난 외교적 위기였는데 대상은 다른 나라가 아니라 고려였다.

이 소식이 전해진 혼슈에서는 여러 의미로 난리가 났다. 전쟁이 일어날 거라며 울며불며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사람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듣기로는 백제군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인다니,

누군가 결단을 해야 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설령 그의 주군 덕천원심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도 그의 행동을 말릴 수 없었을 것이다.

칼날은 배의 살을 파고들었다. 송평융맹은 신음을 참았다. 그의 뒤엔 무사 하나가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모습을 아연실색한 채 바라보던 고려인들이 송평융맹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대체 뭘 하는 겁니까?”

대사는 학을 떼었다. 자칫하면 정말 죽을 뻔했다. 이미 융맹의 복부에선 핏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환자의 안정을 요구하는 병실 앞에서 이 짓거리를 하는 강화인들이 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화는 기술적으론 같은 6세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문명화되어 있지만, 어떤 면에선 정말 아니었다.

“내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그대들은 황자 암살이 미수로 그쳤다, 그리고 황자 전하께서는 크게 다치지 않으셨다 정도만 말을 해야 하는 게요. 당연히 이상한 소문은 잠재우고. 아시겠소? 지금 이 행동은 너무 과하오.”

당신의 죽음으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사가 그렇게 뇌까렸다.

“하지만 다치신 것이 분명한…….”

“이보시오!”

대사가 송평융맹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에서 비수가 떨어졌다.

“황자 전하의 명예가 달린 일이오. 전하께선 크게 다치시지 않으셨고, 그저 작은 상처와 마음에 대한 요양을 위해 병원에 계신다 그 말이외다. 알아들으셨소?”

분명히 암살 시도를 당해 크게 다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강화와 고려는 당사자인 해완 황자, 그리고 강화 왕실과 고려 황실의 명예를 위해 벌어진 일을 모두 축소해야만 하는 아주 묘한 위치에 놓였다.

다른 부위라면 크게 다쳤다고 말을 해도 괜찮겠지만, 지금 해완은 상처의 후유증보다도 수치스러워 죽으려 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크게 다쳤다면 어디를 다쳤느냐는 말이 나올 터였으니까. 지금은 단지 허벅지 쪽에 작은 상흔이 있었다 정도만 발표한 상태였다.

“하지만 명심하시오. 당신들은 이 사태에 대한 처리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오. 전하께서 진노하셨소. 또한 폐하께서도…!”

송평융맹은 대답 대신 병실 방면으로 꿇어 엎드렸다. 대사와 주재무관은 복잡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더니 병실을 신속히 빠져나갔다.

정확한 상황을 알리고 일단 양 국가의 무력 충돌을 피해야 했다. 일방적이긴 했지만, 아직은 피를 흘릴 이유는 없었다.

* * *

전소의차는 명백히 당혹해하고 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 노괴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

분명히 그가 해완을 지극히 경계한 것은 사실이었다. 사람을 보내 멀찌감치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도 있었다.

덕천원심이 해완을 이용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것은 상당히 불안한 일이었다. 강화 왕실 그 자체는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전소의차가 아무리 날뛰어 봤자, 그들이 고려 황실을 뒷배로 들면 항거가 불가능했다.

시조부터 그러하지만 덕천은 외세에 의존하는 경우가 잦았다.

참으로 비겁한지고. 전소의차는 혀를 차며 그들을 욕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해완이 유람 차 교토를 들를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밀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엄청난 비밀도 아니었다. 일정만 자세히 모를 뿐 해완은 대놓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더군다나 강화 조정은 이왕 해완이 유람을 결정하자 그의 방문을 축하하기 위해 기간이 아닌데도 교토의 불대문자(고잔노 오쿠리비) 전통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각의 수장으로서 전소의차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황태자도 되지 못할 황자에게 아양을 떠는 꼴이 굉장히 우스웠지만 전소의차도 딱히 반대하진 않았다.

그것을 알게 된 날 밤, 그의 측근 일부가 전소의차에게 다가와 그의 의중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해남파 핵심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전소의차는 성을 내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런 미치광이 술수를 쓰겠느냐 하며.

칼밥만 먹어온 놈들은 드세기만 했다. 현실을 알지 못했다. 의기니 대의니 하는 것들을 보여주면 남들도 자신을 비슷하게 존중하거나 혹은 공포에 질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가며 해야 했다. 조정의 일을 맡으면 몇 가지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동맹관계인데 비교가 좀 이상하기도 하고 예산을 더 타내려는 해군부에서 하는 말이라 어느 정도 속내를 헤아려야 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건함을 열심히 했더라도 여전히 강화의 해군 전력은 고려 2함대, 북태평양 함대의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군사뿐만 아니라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전통적인 석고의 단위에 빗댄다면, 아무리 그와 덕천원심이 천만 단위의 강화 석고를 두고 다투고 있다 하나, 고려는 몇십억, 아니 짐작조차 가지 않는 석고를 가지고 있었다.

대항할 수 없는 것이 자명했다.

그러니 전소의차는 이 사건을 지시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뜻을 곡해하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무리가 없었는지 장담하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부 단속을 해야 할 시기가 아니었다.

지금은 방어해야 할 때였다.

“군부는, 군부는 뭘 하고 있느냐?”

“응답이 없습니다!”

아뿔싸, 그 순간 전소의차는 탄식을 내뱉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군부는 전소의차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군부엔 전소의차의 해남파 파벌도 존재했다.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해남파도 또 크게 둘로 갈렸다.

전소의차의 내각파와 비내각파가 있었다. 해남파 본류는 내각파로 분류되었다.

해남파는 단순한 야쿠자계 정치조직이 아니었다.

해남도 야쿠자가 끈질기게 살아남아 전소의차의 휘하에 들어온 것도 많지만, 애초에 해남파엔 기존 왕도파에 반발해 참가한 사람들도 많았다.

강화에도 어김없이 공산주의가 불어왔다. 이들의 준동을 막아내기 위해 왕도파는 군벌과 재벌 해체 등을 주장하며 귀족원 약화와 왕권 강화를 천명했다.

하지만 강화는 애초에 덕천씨의 것이라기 보기엔 좀 애매했다.

그들이 전 덴노 일가를 몰아내고 왕이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숙명이었다. 덴노는 몽골 침입 이후에 신성성이 훼손되었고, 지금은 백제와 강화 모두에게서 탄압당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덕천씨도 기존의 다이묘들과 여러 무사계급의 지지를 얻어야 했다. 그들은 나중에 신분제를 정리하며 화족, 즉 기득권이 되었다. 군벌과 재벌도 따지고 보면 화족이 대부분이었다.

이 화족들은 강화가 옆동네마냥 유교적 왕의 나라로 바뀌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들은 문민통제의 기치를 들고 있지만, 귀족원에 의한 왕권의 통제를 천명하여 ‘통제파’라 불렸다.

통제파는 귀족원 중심주의를 천명하며 왕권을 견제하는 전소의차의 뜻에 공감하여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태가 지금 이런 식으로 돌아가자, 통제파들은 수상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일단 최고 지휘권자인 왕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다 마침내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왕은 모든 군인에게 행동금지령을 내린 상태였다. 그는 빠르고 과감한 결단이 생명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옥저 내전처럼 사건이 진행되지 않으려면, 왕은 강력한 지도력을 보여야 했다.

반대로 전소의차는 그러지 못했다.

또한 그의 부하들은 이 전례 없는 국가 위기 속에서 과연 침몰할 것이 분명한 배에 같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전소의차가 고려 황자 암살을 명령했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군부의 장교들은 이 사건에 얽힐까 봐 몸을 사렸다. 미친 늙은이, 혼자 죽으려면 혼자 죽지, 대체 왜 그런 짓을?

“쳐라!”

― 와아아!

전소의차가 판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을 시각, 덕천원심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준비된 근위대로 전소의차의 세력을 공격했다.

덕천원심은 일을 저질러 놓은 주제에 깜짝 놀라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전소의차의 행동에 약간의 이상함을 느꼈으나, 그럼에도 이미 상황은 기호지세였다.

짧은 시간 동안 전소의차는 덕천원심의 뒤에 고려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그렇게 계산할 동안 그는 대응할 틈을 잃어버린 채 속수무책으로 내몰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오쓰 사태’가 벌어진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전소의차는 체포되었고 도쿄의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이번 황자 암살 사건의 배후로 기소되었다.

형식적인 재판 끝에 사건의 담당 판사는 왕족에 대한 시해를 대역으로 규정한 강화 법률에 따라 전소의차를 사형에 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구형된 대역죄는 고스란히 인정되었다.

본래 강화의 법률엔 자국 왕족에 대한 살해 시도를 대역죄라 규정했지만, 외국 왕족에 대한 살해 시도는 규정된 바가 없었다.

따라서 외국의 다른 왕족 같았으면 일반 살인죄가 적용되어, 사형이 판결되지는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해완은 아니었다. 그는 강화 왕실 친족법으로만 따져도 근친족이라는 확고부동한 명분이 있었다. 전소의차는 교수대에 매달릴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형장의 유리 창문 너머엔 참관자들이 앉아 있었다.

교수대 위에 선 전소의차는 죽음을 앞두고 재갈이 풀렸다.

강화 특유의 사세구 전통에 따라 유언을 남길 시간이었다. 일반인이라면 이런 배려 따위 해 주지 않았겠지만, 전소의차는 그래도 화족이었다.

전소의차는 유리창 너머로 덕천원심을 쏘아보았다. 그러고는 문득 비웃음을 흘렸다. 죽기 전의 모습은 초연해 보였다.

“해를 소매에 넣고 장난을 친다면, 반드시 화를 입으리라.

새벽이 끝난다면 이슬같이 세상 떠날 몸임을 자각하라.”

그 말을 끝으로 전소의차에겐 검은 두건이 씌워졌다.

* * *

죄인의 사형이 끝나고, 고려는 공식적으로 오쓰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당사자도, 고려도, 강화도 모두 이 일을 더 들먹이고 싶지 않았다. 5등급이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동맹관계였다.

게다가 진범이 사형을 선고받아 죽었으니, 더 이상 뭘 할 수도 없었다. 연좌제를 폐지한 나라에서 나라 단위로 연좌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완은 곧바로 도쿄항에 정박한 군함을 타고 고려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이 외가의 땅에 남아있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 땅은 좋지 않은 기억만 남아있는 땅이었다. 그는 고려가 그리웠다.

해완은 덕천원심도 만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군함에 오르기 전 송평융맹을 불렀다.

“배는 괜찮소?”

“괜찮습니다.”

해완의 표정은 이상했다. 그는 고갯짓을 했다.

“피까지 보였다는데. 어디 봅시다.”

남정네가 옷을 벗으라 요구했다. 송평융맹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벗어 보였다. 배에 비수 자국이 찍혀 있었다. 더 들어갔다면, 내장이 상해 죽었을지도 모른다.

“명하신다면 지금 여기서 제 속을 꺼내드릴 수 있습니다.”

배에 난 상흔을 보고서야 해완은 입을 다물었다. 송평융맹은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해완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는 이제 송평융맹에 대한 것을 물어보진 않았다.

“그놈의 사세구, 정말 그렇게 말한 것이 맞소?”

“그렇습니다. 어찌 제가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알겠소.”

그 말을 끝으로 해완은 그와 짧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태평양으로 사라졌다.

* * *

강화를 제 손에 넣고 주무르던 권신은 실패했다.

하지만 시대가 왕의 시대라는 것은 아니었다.

강화는 왕의 시대가 오지 못할 것이다. 백제처럼 엄청난 사회 갈등을 견뎌내고 아예 문화의 근본을 바꾸어 버리지 않는 이상, 왕은 끊임없이 도전받을 것이고, 휘하의 무사들은 자신이 쇼군이 되는 것을 꿈꿀 것이었다. 막후정치, 그림자 정치는 강화의 사회에서 이미 너무 일반화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민중의 시대가 오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화족들이 강화를 지배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해남파가 몰락했다고 왕도파가 그 자리를 전부 채울 거라는 생각은 웃긴 생각이다. 이미 이들은 이념부터 합치될 수 없었다.

“궁금하니 하나 물어보자. 네가 했느냐?”

도쿠가와 모토무네와의 대담에서, 마쓰다이라 타카타케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정말로 죄송하다는 투였다.

“송구합니다, 전하. 하지만 저도 상해를 입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능력 좋은 놈을 골라 일부러 목숨에는 지장 없을 약한 마비독으로 급소를 피해 던지라 하였는데, 갑자기 몸을 뒤트시는 바람에…….”

“네… 네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하느냐?”

하지만 타카타케는 그 말에는 당당했다.

“속하의 판단으로, 그것 이외에는 주군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고려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전소의차는 막을 방도가 없었나이다.”

모토무네는 부들부들 입을 떨었다. 형용할 수 없는 배신감이 그의 마음을 채웠다.

송평융맹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원심의 가신이었지만, 지금보니 야심이 있고 은근히 무언가 꿈꾸고 있는 사내였다.

이곳 사내들의 특징이 그러했다.

동아시아의 사람들이 유럽 사람들에 비해 겸양과 겸손의 특성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나라들도 제각기 특성이 달랐다.

예맥한이나 제국의 사내들은 아니면 아니다 맞으면 맞다 확실히 말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직언(直言)은 미덕이었고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관은 오히려 소인배 취급을 당했다.

반대로 강화의 사내들은 대체로 자신의 속내를 숙이고 본심을 감추었다가 기회가 되면 꺼내 보였다. 곡언이 미덕인 사회에서 직언이란 실로 날붙이 같은 말이었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표면적으로 좋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지만, 사이가 깊어질수록 내부적으로는 조금씩 불만이나 기타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내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곡언이 직언이 되는 순간이 가장 껄끄러웠다.

또한 부하가 자체적인 판단을 내리는 순간이 제일 위험했다.

하나를 쳐내니 다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이것이 강화의 정치였다.

모토무네는 타카타케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해완이 용서했는데, 지금 와서 자결하라느니 뭐라느니 할 순 없었다. 그렇다면 고려는 다시 의문을 품을 것이고, 어쩌면 모토무네를 의심할지도 몰랐다. 이 사건은 지금 여기서 마무리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타카타케와는 더 이상 한배를 탄 처지가 아니었다.

마쓰다이라 타카타네는 모토무네 휘하였지만 그냥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그는 아이즈 번과 관련되어 있었다. 어쩌면 번주가 될지도 몰랐다.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결단력으로 미루어 볼 때, 그러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돌이켜보니 그는 섬뜩할 정도의 야심가였고, 유능했다.

이제 통제파는 그를 중심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해군 장교의 대다수는 동해안파, 소위 말하면 아이즈 번과 쿠와나 번, 센다이 번의 출신이었는데 이들은 왕도파가 대다수인 육군(가가 번과 아키타 번 등의) 서해안파와 대립하고 있었다.

번의 성격과 위치, 왕실과의 관계가 그들의 입장을 정의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왕도파가 그래도 우위를 되찾았다는 점일 터다. 이제 조정의 세력은 5 대 5 이상으로 덕천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해남파 잔당을 숙청하고 통제파를 조금씩 조이다 보면, 강화는 마침내 화족과 번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강화는 다시금 위대해질 것이었다.

때마침 아버지가 병사했기에 도쿠가와 모토무네는 왕의 지위에 오르고 연호를 텐메이(天明, 천명)이라 선포했다.

하늘의 밝음이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