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16화 (516/653)

516화 하늘눈(2)

“아이고,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사내들은 제각각이었다. 무뚝뚝한 인간, 악수하며 겸양과 너스레를 떠는 사람, 느긋하고 태평해 보이는 사람, 존재감도 잘 없는 사람.

하지만 이 모두가 정보계에서 오래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허투루 볼 사람은 전혀 없었다.

이제 열강 중 꽤 많은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제대로 된 방첩국 혹은 더 나아가서 정보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전쟁 이후 첩보전의 중요성은 전차와 전투기, 불공급 전함의 중요성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특히나 이곳에 있는 나라들 중 몇개국은 고려가 정보국을 통해 자신을 지원했던 전적이 있는 나라들이었고, 그 가공할 능력을 목도했던 자들이었다.

사국동맹의 한 자리를 차지하던 나라에 참수작전을 성공시켜 이탈시킨 사례는 충격적이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그러니 이들은 고려가 만드는 하늘눈(天眼) 계획에 참여하길 간절히 원했고 참여를 허락받자 뛸 듯이 기뻐했다.

대항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대항할 일이 없으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늘눈 계획은 정보동맹이지만 정치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고려 정보총국]

[도이치 비밀경찰]

[네덜란드 왕실정보국]

[에이레 수호감시단]

[조선 국가정보원]

[백제 왕립정보조사실]

[옥저 기무처]

고려를 빼고 먼저 회의실에 도착한 여섯 명의 정보 수장들은 제각기 자기가 이끄는 조직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위치한 자릴 골라 앉았다.

본래 정보계 사람들의 신원은 극도의 비밀이라지만, 진급하여 국장급의 수장이 된 순간 얼굴은 의회나 정부에 오가면서 어쩔 수 없이 팔리게 되어 백색요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엔 꽤 오랫동안 정보를 다뤄 온 노련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이 상황을 어색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이곳에 자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무자 시절에 서로를 눈치챈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몇 명은 모이자마자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거참, 또 배치가 이렇게 되어 있네.”

“어이, 박가. 그냥 앉지?”

자리는 중대사항이다. 고려가 다른 국가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사항 중 하나였다. 큰 외교적 관습이라, 고려의 몇 개 부처에는 연회나 국가행사의 자리 배치를 담당하는 조그마한 부서가 따로 있었다.

이번 정보 모임 회의실의 탁자는 원탁이었다. 보여주기식이라지만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잘해 보자는 의도였다.

그럼에도 모두가 고려의 바로 옆에 앉고 싶었다. 지금 비어있는 고려의 옆에 조선이 있는 것이 아니꼬웠던 옥저는 심지어 그 조선의 옆자리에 백제가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속상해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랴. 옥저는 오기의 난 때 이미 약간 눈 밖에 났기에 환태협도 나중이 되어서야 참여할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올 수 있는 것이 행운이다.

옥저 기무처장은 조선 국가정보원장의 말에 투덜거리며 백제와 에이레 사이의 의자를 빼어 앉았다.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에이레 감시단장이 차를 홀짝이며 고갯짓을 했다.

백제 조사실장도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지만, 득의한 웃음을 흘렸다. 사실 백제 정보전의 전통은 삼국 중에서도 가장 길었다. 지금은 긴장 상태가 많이 완화되었지만 바로 옆에 국운을 걸고 치고받던 나라가 있으니, 현대적인 정보기관인 왕립정보조사실이 제대로 생기기도 전에 백제와 강화는 암중으로 시노비와 닌자를 보내며 오랫동안 싸워왔던 것이다.

― 달칵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주인공이 다소 늦게 등장해 자리에 앉으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정보총국장은 주변을 둘러보며 신원을 빠르게 파악하고 확인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의 기준은 간단했다.

이 세상에 고려의 우방국은 많았다. 당장 북대동양 조약기구인 타수나 환태협을 꼽아봐도 다 고려의 우방국들이었다. 태평양의 다른 나라에도, 아랍에도, 아프리카에도 우방국들이 많았다. 고려는 패도 대신 왕도를 추구했기에, 사실 소련과 같이 특이한 나라를 제외하곤 모두 고려와 친해지길 꿈꿨다.

심지어 그 소련마저도 위원장 모렐리가 몇 번 먼저 사절을 보내 혁명의 정당성과 소비에트가 인류를 위해 보여줄 수 있는 여러 가치를 주절주절 토해낸 적이 있었다. 마치 세계 군주정의 가장 드높은 곳에 자리한 창천궁에서 변명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만 제대로 친해질 수 있는 나라는 한정적이었다.

고려는 동맹국들을 5개의 등급으로 분류했다. 여태까지 이어져 내려온 역사적 관계와 국가안전성, 체제, 국민감정, 문화나 언어의 동질성 등을 모두 고려했다.

당연히 이 분류는 기밀이었다. 유출되면 몹시 곤란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왜 자신이 더 높은 등급이 아니냐고 서운해하고 항의할지도 몰랐기에, 이 등급분류는 특급 기밀에 속했다.

의외로 1급은 한 나라밖에 없었다.

루밀 키치파닐. 고려의 동맹국이라 불러야 할지, 혹은 그냥 연방의 구성원이라고 봐야 할지 어딘가 모호한 국가였다. 혈통으로서, 종교로서 맺어진 동맹이다. 이 관계는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예전 중려 병합 시, 카롬테령이 된 루밀 키치파닐은 시민권을 받은 이후에는 고려의 자치령 비슷하게 취급되고 있었다. 루밀 키치파닐의 사람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려를 입국허가증명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나라 사람들이었다.

반대로 고려는 자국 내에서 관리하기 조금 꺼려지는 정치망명자나 혹은 눈을 떼고 싶지 않은 특별관리대상을 제국이 아닌 곳이라는 명목으로 루밀 키치파닐에 보냈다. 눈 가리고 아웅이었지만, 엄연히 별개의 국가였으니 명분은 있었다.

쫓겨난 옛 왜왕과 고려로 망명 온 정여립의 후손이 대표적으로 그러했다. 지금은 그들의 후손도 시간이 한참 흐르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려 관리대상에서 해제된 지 오래였지만.

루밀 키치파닐은 독특한 나라였다.

일단 남태평양의 바다 한복판에 있는 나라였기에, 주변에 적성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와 비슷한 나라는 이스라엘이 있겠다.

가장 교류가 많은 나라는 좀 많이 떨어져 있긴 했지만 식량과 여러 물자들을 수입하는 고려였고, 그다음이 바로 옆의 누아 에린, 즉 에이레였다.

그다음은 네덜란드 파푸아였으며 잉글랜드 뉴펀들랜드가 마지막이었다. 누산타라는 아직 유의미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기에 별 교류가 없었다.

세 나라 모두 루밀 키치파닐과 사이좋게 지냈다. 그야말로 적 없이 사는 아름다운 꽃동산과 같은 국제관계였다. 이 세상 아무도 루밀 키치파닐에 큰 관심이 없었고, 반대로 루밀 키치파닐의 사람들도 세상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제국만 멀쩡하면 그들은 만사형통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군대도, 정보국도 거의 없었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조직만 좀 있었을 뿐이었다. 솔직한 말로 뭔가 일이 생겼다 싶으면 남태평양의 치안을 담당하는 제국 4함대가 알아서 올 텐데, 굳이 해군을 만들 필요도 없었고 육군을 유지할 이유도 없었다. 독실한 쿠쿨칸교 국가였기에 범죄율은 제국보다도 훨씬 낮았다. 집 대문을 열고 돌아다녀도 벌레를 제외한 침입자는 발생하지 않는 동네였다.

루밀 키치파닐 사람들이 먼 과거엔 심장을 꺼냈던 마야인들과 아즈텍에 가려졌지만 전투민족으로 유명하고 식인을 했던 탕아타 훼누아(마오리)인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교육과 계몽이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지 몇 번이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물론 선주인들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억울함을 토할 것이 분명했지만.

나머지 주요 동맹국들은 2급과 3급에 놓여 있었다. 2급은 에이레와 네덜란드, 조선과 백제였다.

에이레와 네덜란드는 고려와 동맹한 기간이 예맥한계보다도 길었다. 고려는 건국부터 지리적 한계상 대동양에 먼저 진출했고 한참 뒤에야 태평양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 유럽의 동맹국들은 그동안 딱히 고려를 배신하고 적대한다는 선택을 내린 전적이 없었다. 그럴만한 동기도 없는 나라였다.

비록 인종과 문화, 언어는 달랐지만 이들의 전통적 유대감은 굉장히 높았고 국민 관계도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그러니 이들은 당연히 2급에 위치할 것이 분명했다.

조선과 백제도 2급에 어울렸다. 려조관계는 처음 다소 험악한 분위기에서 시작했지만, 재조지은과 부육지은을 모두 거치며 단번에 바뀌었다. 려제관계는 건국부터 무난히 상승했다.

이 둘은 특장점이 있었다. 언어, 문화적 동질성이 다른 나라보다는 높았다. 특히 언어의 동질성이 컸다. 자국 언어가 따로 있는 유럽의 나라들과는 달리, 이들은 고려어와 고려글을 국어로 채택했다. 이는 서로 문화와 정보를 교류할 때 큰 장점이 될 것이었다. 물론 고려어는 국제어였고 모든 관리와 요원, 지식인들의 기본적 소양과 같았지만, 모국어냐 아니냐는 무시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었다.

물론 국가마다 사투리는 심했다. 말끝을 독특하게 길게 늘이는 백제는 양반이었다. 그 작은 땅에 대체 왜 그렇게 심하게 사투리가 나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조선도 있었다. 사투리를 억제하고 여러 교통과 통신 수단을 빠르게 정비한 고려는 그 넓은 땅에도 그렇게까지 큰 언어적 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루나 시미같이 원주민어에서 유래한 고려 단어가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퍼지긴 했지만 그건 다른 궤의 언어진화였다.

3급은 도이치와 옥저, 이라크와 아랍 연방이었다. 이들은 중요하고 능력 있는 우방국이지만 아직까지 그 관계의 역사가 미비했다. 그래도 이들은 4급에 위치한 이탈리아와 그리스, 프랑스와 스웨덴 등에 비해서는 더 높은 등급인 사실로 달래긴 충분했다.

고려는 2급과 3급 동맹국들 중에서 첩보전 능력이 괜찮은 나라들 여섯을 추려 정보공동체를 만들기로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동맹 등급과 정보전 능력은 완전히 달랐다. 제대로 된 정보전을 수행할 수 있는 국력과 경제력이 강한 나라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고려는 자신이 또 손해를 감수하며 남에게 베풀기보다는 이번에는 무언가 얻고 싶었다. 독자적인 정보국을 돌리는 다른 국가들과 정보자원을 공유하며 영향력을 넓히길 원했다. 정보동맹에서 무임승차는 사절이었다. 그리스는 아직까지도 고려의 앞에서 배를 까뒤집고 꼬리를 흔드는 충실한 개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불가했다. 각 구성원들은 엄격하게 일인분, 아니 일국분 이상을 해주어야 했다. 차라리 불가리아가 더 튼튼해지면 불가리아를 넣을 생각은 있었다.

“모두 이 정보동맹의 목적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눈은 불교의 오안에서 따온 용어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꿰뚫어 보는 마음의 눈이었다.

물론 기독교계 국가가 참여한 마당에 굳이 용어의 어원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진 않았다. 그냥 단어 뜻 그대로 카엘룸 오큘러스(Caelum Oculus, 하늘의 눈)라고 생각해도 됐다.

이 일곱 개국의 정보동맹은 말 그대로 서로 최고한의 기밀을 제외한 많은 분야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특정한 사건에 대해 공동 대응하자는 의미였다. 이렇게 된다면 국가 전복사태와 같은 끔찍하고 불길한 것도 예방할 수 있었다. 고려는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정보동맹의 구성원들만 건재하다면 환태협과 북대동양조약기구를 언제든지 다시 재건할 수 있다는,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다시금 국제사회를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들 모두가 공동의 적이 필요했다.

최근 소비에트의 등장 이후 국내에서 암약하는 불순분자들의 기세가 크게 올랐다.

이들 중에는 정말로 소비에트의 지령을 받은 공산주의자들도 있었지만, 시대가 만들어낸 혁명가들도 많았다.

사회가 발전하며 사상도 발전했다. 유럽과 동아시아에서도 국민교육의 시대가 밝아옴과 더불어 지식인들은 쏟아져 나왔고 혁명가와 지도자들도 범람했다. 노동조합주의, 사회민주주의, 혁명조합주의(생디컬리즘), 아라곤에서 등장한 아나키즘, 민족해방주의, 그냥 혁명가와 진도자 이름을 대충 붙여 만든 정체불명의 주의까지.

어떤 것은 타협할 만한 것도 있어 실제로 타협한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타협이 아예 불가능한 것이 있었다. 모두 공통적으로 골치가 아픈 것은 동일했다.

사회 모순이 심할수록, 이런 운동들은 강해질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었다. 개천 507년, 즉 1782년은 여전히 호황기였고, 풍족하고 번영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사회운동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골치 아픈 놈들이 시끄럽게 골치 아픈 말을 하는 길거리 풍경으로만 여겼을 뿐이다.

실제로도 고려를 제외하고 여기 초대된 6개국의 정보 수장들 중 지금 사회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사회와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저 불순분자들은 목이 쉰 상태로 지쳐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고려 정보총국장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 그였으니, 정보동맹을 만들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도 소비에트의 등장과 위협은 사실이지 않은가, 정보총국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크레믈에는 마가 씌었나 봅니다. 차르의 손에서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더한 놈이 웅크리게 되었군요. 어쨌든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는 앞으로 면밀히 협조하며 공산주의자의 확장을 방어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요.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두 명의 정보수장은 그나마 애간장이 타 있었다. 폴란드만 빼면 소련과 가까운 도이치, 그리고 아예 하북의 중국공산당과 접하게 된 조선이 그 대상이었다. 둘 모두 러시아와 중국공산당 자체를 두려워하진 않았다. 도이치는 지금 당장 소련과 드잡이질하더라도 위대한 대왕 아래에서 러시아를 박살 낼 수 있었다. 조선 또한 근래 들어 다소 친밀해진 중화민국과 협력해 언제든지 봉명관을 열고 중국공산당을 박살 낼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그들의 논리에 부화뇌동하여 설쳐대는 자국민들을 더 경계하고 있었다.

둘 모두 산업화와 공업화가 빠른 나라들이니 더더욱 그랬다. 대표적으로 도이치는 고려를 제외하면 전차 개발에 가장 발전된 나라였고, 반대로 조선은 고려를 제외하면 조선 분야, 즉 함선 건조에 가장 발달된 나라였다. 그럼에도 두 나라 모두 고려만큼 노동자 권리가 증진되어 있진 않았다. 뱁새가 황새 따라 하려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소리는 현실을 너무 잘 표현했다.

나머지 국가들은 딱히 애간장이 타진 않았다. 이들은 지금 이 방에 속하게 된 것에 의미를 두는 정도였다.

설마 공산주의자들이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소비에트? 루테니아부터 넘고 와야 할 것이다.

그들도 자국 내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생겨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공산주의자라 해도 다 포악하고 음흉한 것은 아니었다.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젊을 때 혈기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바꾸길 원했다. 어쩌면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실제로 사회를 바꾸는지도 몰랐다.

에이레 감시단장은 자신이 실무자였을 때 리머릭에서 시위하던 머리가 덜 굵은 젊은이들을 포박한 뒤 간단한 진술서만 받고 귀가조치시킨 적도 있었다. 그 애들은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회초리를 실컷 맞은 뒤 평범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 것이다.

어쨌든 하늘눈은 결성되었다. 정보 수장들은 소소히 자축했다.

서로 소포주를 마시며 이때를 기념하고 있을 때, 백제 조사실장이 정보총국장에게 다가왔다.

“아, 풍마 실장님.”

정보총국장은 무슨 할 말 있느냐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일황자 전하께서 강화에 가시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별 비밀은 아니니… 백제와는 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조사실장은 여전히 초조한 얼굴이었다.

부여씨 왕실과 조정 모두 황비 부여씨의 아들 해안이 고려의 황태자가 될 확률이 높아지자 만면에 웃음을 흘렸다. 주제만 넘지 않으면 알아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데, 아예 꿀단지를 깨트린 멍청한 강화 놈들을 비웃기도 했다.

하지만 해완이 강화를 방문한다는 소리는 몹시 불길했다. 물론 그들이 감히 고려 황자에게 뭘 하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어차피 가만있으면 이기는데 뭘 하겠는가. 반대로 들키면 나라가 박살 날 판이다.

그러나 강화는 지금 요괴의 굴이었다. 해완이 그곳에 가서 뭔가 해를 당한다면, 반대로 동정여론이라도 생길지 몰랐다. 백제가 나서서 구해주기도 좀 그렇지 않은가.

물론 덕천씨가 해완을 해할 리는 절대 없었다. 도와주었으면 도와주었겠지. 하지만 덕천씨는 지금 완전히 그 기세를 잃었다. 강화의 공산당과 야쿠자들, 불량한 패거리들, 그리고 그들을 조종하는 군부의 파벌들이 극명하게 대립한 상태였다. 어떤 꼴이 날지 대체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가장 좋은 선택은 아예 해완이 강화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외가에 방문하는 것을 대체 어떻게 말리겠는가. 조사실장은 다시 목구멍에 튀어나온 말을 삼켰다. 그리고 어색한 얼굴로 다시금 소포주 잔을 들었다.

평화로운 한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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