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화 루테니아
루테니아 왕국
키이우.
현 루테니아의 강역은 수도 키이우를 다소 치우친 북쪽에 두고 몰도바와 폴란드 국경선부터 드니프로 강의 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동쪽 일부도 차지하고 있긴 했다. 남동쪽으로 고고하게 흐르던 드니프로강이 급하게 방향을 돌리는 급류 부분의 주변, 즉 자포르자 코자키가 기원한 자포리자 지역과 남쪽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강한 크림 공국의 영역까지 가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상당한 넓이는 분명했다. 땅도 비옥했으니 잠재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 영토가 그가 알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거의 절반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라면 우크라이나의 땅이었을 르비우(르부프)와 그 일대는 지금 폴란드의 땅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루테니아는 카르파티아산맥과 인접한 영역이 하나도 없었다.
또한 몰다비아도 몰도바와 달리 흑해와 완전히 접해 있는 상태라 오데사가 남단의 국경선이었다.
하지만 이게 한계였다. 이 이상 땅을 확보하는 것은 고려로서도 불가능했다.
원래 우크라이나의 영역이었을 체르니히우나 폴타바 등의 고도시들은 지금은 이미 러시아의 혼란기에 완전히 황폐화되어 가치가 없어진 도시들이었고, 흡수할 기반이 없었다.
드니프로강을 넘어가 영토를 확보하면 방어선을 구축하기가 어려웠다. 화기의 시대가 와도 강은 여전히 방어에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이 지역은 창강대평원마냥 산 하나 보기 힘든 끝없는 평야였기에 사실 강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방어선 구축이 거의 불가능하기도 했다.
맨땅에서 한 나라를 창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고려할 변수가 너무 많았다.
다행히 이 땅은 일말의 가능성이 있었으니 원역사에서 잠시나마라도 코자키 헤트만국(Cossack Hetmanate)이 들어섰을 것이었다.
물론 그만큼 지금 이 러시아의 혼란기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
키예프 루스와 모스크바 루스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도 봉합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벌어졌으면 벌어졌을 것이다. 이들이 전쟁을 한답시고 남부의 수많은 물자를 억지로 공출해낸 것이 얼마던가.
루테니아의 사내들은 차르의 탐욕이 불러온 전쟁에 동원되어 죽어 나갔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도 반은 불구였다. 남아있던 여인들도 철이 없어 땅을 갈 때 목재 농기구를 써야 했을 정도였다.
이곳의 사람들은 공산당에도 썩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놈들도 수괴는 프랑스계에다가 대체로 북쪽 놈들이었다. 또 노동자니 뭐니 하면서 농부들의 삶에는 별 관심 없는 놈들이었다. 모스크바가 남쪽 지역에 해준 것이라곤 공물 강출이 전부였다. 소비에트 연방이 들어서도 대체 뭐가 바뀔까.
자포르자 코자키들은 러시아의 혼란을 틈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전후 러시아는 전 국토가 너 나 할 것 없이 공평하게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기에, 자포르자 코자키들도 실제로 독립운동을 실행하기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러니 그들은 외부의 도움을 원했다.
고려가 손을 먼저 건넸고, 그들이 잡았다.
하지만 이렇게 루테니아가 설립되고 올가가 차리차에 앉게 될 예정이 되자 코자키들은 불만을 품었다.
사람은 본래 뒷간에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의 마음가짐이 달랐다.
이 땅에도 다닐로부터 계승된 류리크의 정통성이 있었다. 그것을 의심하는 바는 아니나, 왕조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는 달랐다. 그녀는 코자키들이 증오하는 블라디미르 1세의 후손이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2세가 더 증오스럽긴 했지만, 1세 역시도 패권경쟁 당시 남부에 온갖 패악질을 부린 당사자였다. 좋게 보일 리가 만무했다.
가장 좋은 것은 분명히 코자키 헤트만(총사령관)이 루테니아의 왕으로 올라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려는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너무한 것 아니오?”
상석이 빈 회의장에 사내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었다.
깃털이 꽂혀 있는 털모자(쿠반카), 색과 문양이 호화롭고 매듭과 고리가 빽빽한 코자키들의 전통적인 복식(카프탄) 그리고 그 독특한 외투인 체르케스카까지.
그리고 그 속에 품고 있는 손잡이와 날이 모두 구부러진 기병도와 고풍스런 권총이 있을 터였다. 전형적인 카자크들이었다.
물론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전시엔 저렇게 입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카자크인들은 전통을 소중히 여겨 중한 날엔 옛 복식을 따로 입었다. 이는 피는 러시아의, 문화는 고려의 것을 가진 이방인 여왕에게 무언으로 항의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이방인이면 이방인답게 눈치를 챙기고 우리들의 뜻에 따르라고.
“뜬금없이 고려에서 자랐다는 차리차라니.”
“나탈리아가 얼마나 답답하고 무능했는지 몰라서 그랬나? 그년은 줄곧 모스크바 귀족들에게 휘둘렸지. 뭐 하나 제대로 한 적이 없어. 모두가 힘들어할 때 궁궐 안에 들어서서 착한 척만 했잖나.”
여성 차리차에 대한 불만은 애교 수준이었다.
누군가는 다른 위험한 말도 꺼냈다.
“그녀의 류리크 혈통, 증명된 바가 있소?”
하지만 그런 말까지 들리자 코자키 지휘관들이 서 있는 부하들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주둥이를 조심하라. 잘려 나가기 싫으면.”
“…송구합니다, 헤트만.”
키릴로 라주모프스키가 미간을 찌푸렸다.
코자키 우두머리이면서 독립운동가였던 그는 반대로 나탈리아에 의해 임명된 러시아 백작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허울뿐인 백작위에 집착하지 않았다. 노골적인 회유 시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모스크바와 독립한 이 위태로운 시기에도 당장 이런 분열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는 루테니아의 모습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이런 갈등이 표면화된다면, 어쩌면 고려가 지원을 끊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어찌 되겠는가. 소비에트가 곧바로 남하할 것이 분명했다. 그도 이제는 소비에트가 자랑하는 수보로프라는 장군을 익히 들어 알았다. 코자키들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류리크가 아니면 누가 된다고. 하물며 흐멜니츠키 헤트만께서도 예전부터 타협을 제시하셨을 뿐, 차르의 권위를 인정하셨다.’
키릴로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그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키릴로는 가만히 있으라는 자신이 말이 먹혀들어 간 것을 인지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때, 늙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페트로 칼니셰프스키. 키릴로에 뒤이어 가장 존경받는 원로이자 코자키 지휘관 중 하나였다. 벌써 나이가 여든 살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놀라울 정도로 정정했다.
“이 사람은 차리차의 권위를 존중합니다. 그 혈통 또한 증명되었지요. 고려와 도이치, 불가리아 삼국이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 말인즉, 설령 그녀가 류리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게요.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지금 코자키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키릴로도 그의 말에서 미묘한 억양을 읽어내었지만,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차리차께서도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최우선적으로 중요시하셔야 할 겁니다. 이곳은 모스크바가 아니라 키이우고, 키이우에는 키이우만의 법도가 있으니까요.”
텃세였다. 이방인 여왕은 통치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 말엔 키릴로도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 차리차께서 드십니다!
코자키들은 차리차가 들어와 앉을 때까지 단 한 명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까닥하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었다.
노골적인 무시였다. 여왕의 부군이자 고려가 점령하던 크림 대공국의 대공으로 즉위한 해대헌이 격노했지만, 올가는 가까스로 남편을 막아 세웠다.
“모두 자리에 앉았군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사항이 있어요.”
하지만 올가는 금방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전하, 실례지만 북쪽에서 너무 많은 유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들을 먼저 처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행보가 제한될 것입니다.”
올가는 북쪽 러시아 난민들을 최대한 루테니아로 흡수했다. 루테니아의 인구 확보가 중요했고, 또한 백군 잔당 중 그녀가 흡수를 결정한 자들은 그녀의 지지자가 될 것이었기에 몹시 중요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기존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게 보였다. 흑토지대라고 해서 배불리 먹고사는 곳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쟁기가 나무인데 대체 어떻게 배부르겠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네 할아비의 업보란 말이지.
코자키들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해대헌이 꾹 참으며 앞으로 나서겠다고 의사 표현을 했다. 조금은 진정되어 보이는 남편의 모습에 올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코자키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여인은 허수아비다.
고려인 크림 대공이 루테니아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코자키들이 비록 모스크바를 적대하나, 그렇다고 지금까지 줄곧 적대해온 고려인들을 딱히 우호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토착민들은 외세를 배척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저들이 얼마를 제시하든 코자키들은….
“크림 대공국은 루테니아의 영광과 발전을 위해 일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오.”
코자키들은 입을 벌렸다. 그들은 서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그런 행동이었다.
해대헌은 순조롭게 크림을 장악했다. 크림 칸국이 무너진 이후부터 크림반도는 다시금 예전의 그리스적 문화권을 되찾은 상태였다. 이 문화는 두 명의 블라디미르 차르 시절에도 유지되었고, 해대헌이 대공으로 즉위한 지금도 그러했다.
그리스인의 해씨 사랑이란 실로 대단했다. 물론 해대헌은 팔레올로고스의 핏줄을 잇지도 않았고 심지어 쌍용지손도 아니라 제왕지손이었지만, 그럼에도 크림반도 사람들은 두 팔을 벌려 환영했었다.
하지만 크림 대공국이 부자면 얼마나 부자였다고 그런 거금이 있겠는가. 이곳은 흑해 내에서는 환상적인 위치였지만, 그래도 부국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다 고려가 크림을 통해 루테니아에게 원조자금을 주겠다는 소리였다.
1650년대, 프랑스 혁명을 유발한 그 유명한 보석, 스페렌자 블루의 가격은 고려원 기준 삼만 원이었다.
그로부터 백 년 하고도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문명 발전에 따른 물가 상승에 따라 원의 가치는 세월에 걸맞게 거의 이십분의 일로 떨어진 상태였다. 앞으로는 더 가파르게 떨어질지도 몰랐다. 고려의 금본위제는 이미 한참 전부터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아무리 원 가치가 하락했다 하나, 그래도 일억 원이라는 금액은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옛 이자윤과 솔빈의 고사가 생각나지 않던가, 코자키들은 두 눈을 멍청하게 끔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자금은 유민 수용과 정착, 그리고 앞으로의 정책을 펼치는 데 쓰일 것이오.”
차리차가 말을 받았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 한 가지 협조해주실 것이 있어요.”
차리차는 이들에게 양해받아야 할 것을 떠올렸다.
자포르자 코자키들은 몽골에 의해 키예프 루스가 멸망한 뒤 그 공백 속에서 유민들로부터 생겨난 슬라브계 군사집단이었다.
유사시엔 전쟁에 기병으로 복무했고 평시엔 반농반목적 생활을 영유하는 자들이었다.
이 드넓은 스텝 지역은 스키타이와 사르마티아, 알란과 몽골계 킵차크, 쿠만과 페체네그 같은 수없이 많은 유목민들이 피었다 진 땅이었다.
인종은 다르지만 자연스럽게 코자키들도 그런 비슷한 문화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사회도 정주민적으로 바뀌었다. 유럽의 봉건제도가 뒤늦게 들어왔다. 폴리투 시절에 이들은 독자적인 체제를 구축했고 러시아에 흡수된 이후에도 그랬다. 지금 이들은 대부분 대지주들로 변모한 상태였다.
그것도 너무나 큰 땅을 소유한.
올가는 명확하게 알았다. 지금 루테니아는 시작부터 거대한 위협에 직면하여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은 토지개혁을 실시하며 러시아의 모순을 해치우고 있었다. 루테니아가 그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엔 모스크바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들고 이곳에도 공산주의가 번져나갈 것이 분명했다. 토지개혁은 필수적이었다.
* * *
개혁을 원하는 이방인 차리차와 원래 있던 원주민 간의 다툼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차이점에, 그들은 서로 대립했다.
“일단 크림 대공부터 도모하는 것이 좋겠소.”
“동의하오.”
일부 코자키들은 마침내 이 건방진 차리차와 그 남편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편을 죽인 뒤, 차리차에게 코자키와 새로 결혼하라 하면 모든 갈등이 완화될지 모른다. 새 차리차도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었다.
“미쳤소? 저 뒤에 고려가 있는데? 저들은 러시아 제국을 철저하게 짓뭉갰소.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거지. 우리가 저들에게 대항한다면 저들은 손가락 하나조차 제대로 쓰지 않고도 우리를 짓뭉갤 거요!”
“약해빠진 소릴! 그럼 자네는 빠져 있게!”
현실을 직시한 자들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눈이 벌게진 이들은 기어코 암살을 시행했다. 해대헌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테오도로 대신 크림 대공국의 수도로 삼은 케르키니티다(Kerkinitida, 예프파토리아)로 이동할 때 일을 저질렀다.
“이놈이 올 때가 되었는데?”
하지만 매복한 자들은 도리어 다른 곳에서 날아온 총탄들에 의해 허무하게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채, 매복한 모습 그대로 대지에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해대헌은 신변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가 화를 참지 못해 자기가 놈들을 직접 두들겨 패야겠다며 성질을 내다가 발등에 유먹병이 찍힌 것 빼고는.
올가는 더더욱 분노했다. 가족을 건드리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이었다.
올가는 다음 날 코자키를 소집한 뒤, 그에 응한 자들 앞에 암살자들의 머리를 던졌다. 왠지 썩어가는 머리통과 올가는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너희들을 다 죽여야 성이 풀리겠나? 내 이름은 올가다. 키이우의 올가라는 말이다!
나는 전 러시아의 차리차이지, 코자키의 차리차가 아니다. 나는 내 땅에 살아가는 그리스인들도, 폴란드인들도, 리투아니아인들도, 몰다비아인들도, 동방의 유목민들도,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모두 포용할 것이다.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네놈들의 알량한 허수아비가 될 생각이 없다. 나에게 대적할 것이라면 지금 남자답게 내 앞에서 말하라! 그렇다면 내가 직접 너희들에게 드레블랴의 운명을 선사해 주겠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직 올가는 세력이 변변치 않았다. 개똥도 자기 앞마당에서 한 수 먹고 들어간다고, 코자키들은 키이우에서 절대다수였다.
하지만 도리어 분노하며 핏대를 드러낸 올가의 모습에, 오히려 소집에 응한 코자키들이 매료되었다. 극도의 남성적 사회에서 여인의 카리스마는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지만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특히나 그 이름의 기원을 고려해본다면 더더욱.
“키이우의 올가… 정말로 폐하께서는 그 말을 영원토록 지키실 것입니까?”
키릴로가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이름에 어울리는 전 러시아를 수복하였을 때, 당신은 여전히 키이우의 올가로 남을 것입니까, 아니면 모스크바의 올가로 바꾸실 것입니까.”
그는 재차 물었다. 조금은 진정한 올가가 대답했다.
“맹세하건대, 나는 키이우의 올가로 남을 것이다. 예전에 내 조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에 헤트만 키릴로는 무릎을 꿇었다. 다른 코자키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심지어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던 페트로조차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키이우에 적법한 주인이 돌아오셨으니, 저는 마땅히 황금문을 열어놓겠습니다.”
[작가의 말]
코자키(우크라이나어) = 카자크(러시아어) = 코사크(영어)입니다. 작중에선 혼용해서 쓸 것 같습니다.
작중 나온 1억 원은 지금 시대로 환산해보면 대략적으로 30조 가치가 될 것 같습니다. 물가를 정리하고 있는데 정신이 혼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