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00화 (500/653)

역사의 배후(4)

늦은 밤, 프리드리히는 술을 한잔 기울이다가, 비로소 왕비가 야간열차를 타고 베를린에 도착해 무우궁으로 이동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프리드리히는 그제서야 가슴 속 공허함의 원인을 찾았다.

그는 자신이 남자에게 끌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테레지아만큼은 다른 골 빈 여자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자만큼이나 정치력과 강렬한 카리스마가 있었고, 같은 군왕으로서 말도 서로 통해 친구처럼 지낼 수도 있었다.

그녀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자, 프리드리히는 비로소 가까이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가 봐 왔던 이상적인 통치자 부부인 해원과 루이제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었다.

프리드리히는 잠자리에 들지 않고 계속 더 기다렸다. 마침내 테레지아가 새벽에 무우궁으로 들어오자 그는 직접 마중을 나갔다. 예술이나 다른 감성적 측면이 뛰어나고 고려에 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아직 굉장히 마초적이고 무뚝뚝한 프로이센 남성인 그의 성품으로 볼 때,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테레지아도 놀랐는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고생 많았소.”

아내는 자신이 어디로 간다는 얘기를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과 결혼했더라도 엄연히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이니, 일반적인 군주의 결혼 관계에서 가신 취급을 받는 배우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이는 아직 얄팍한 얼음 위를 걷는 도이치와 오스트리아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과 같았다. 물론 아들 빌헬름이 왕위에 오르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두 부부는 잠시 서로를 응시했다. 갑자기 프리드리히가 미소를 지었다. 테레지아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웃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감싸고 있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일단 표정부터가 달랐다.

“안토니아는 그래서 잘 도착했소? 동래미로 갔다고 들었는데.”

“…네.”

“진작 신경을 써야 했는데….”

왕국의 후계자인 아들의 교육은 그가 전담했지만 딸의 교육은 전적으로 테레지아에게 맡겨놓은 상태였다. 그래도 프리드리히는 귀여운 딸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모녀지간엔 무슨 비밀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사실 그가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술이나 같이 한잔합시다.”

테레지아도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발걸음이 가벼웠다.

물론 마음 한편은 여전히 아렸다. 하지만 이제 그 몫은 딸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때였다. ‘그’와의 관계는 이제 사위와 장모의 관계면 족했다. 그런 대접을 받을 생각은 언감생심 없더라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테레지아는 용이 도이치를 향해 바라보는 끈질긴 의심의 눈초리를 끊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상민의 머릿속에 있었던 역사적 죄업이라는 굴레를. 식민제국과 식민제국 간의 전쟁이었던 1차대전, 그리고 진정한 악의 제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 간의 전쟁이었던 2차대전의 업을 모두.

물론 안토니아의 일이 아니더라도, 그 의심은 도이치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서서히 희석되고 있었다. 이는 살아있는 와중에도 대왕(der Große)이라 불리고 있는 프리드리히의 공로기도 했다. 예술과 인문학, 철학의 발전은 극단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이치가 미래에 정말로 완벽히 고려와 발맞추어 갈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명실상부 그녀의 공이었다. 죽을 때까지 숨길 것이지만.

부부는 밤새 이야기했다.

“그 예전 빈에 예술대학을 크게 만들자는 당신의 생각 말이오, 그거 계속 추진합시다.”

빈에 예술대학이 크게 있었으면, 안토니아는 굳이 유학을 갈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말요? 예산이 부족하다고 한 건?”

“뭐, 내 돈을 좀 쓰면 되오. 빈은 당신만큼 아름다운 도시니까 나는 그곳을 예술의 도시로 만들고 싶소.”

테레지아가 밝게 웃었다.

“예상보다 예술대학의 정원을 좀 늘려도 되겠네요. 유럽의 온갖 사람들을 전부 끌어들이려면.”

“…큼, 너무 크게는 말고….”

“위대한 도이치의 대왕이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겠죠? 그곳의 신민들에겐 무언가 마음을 달래줄 것이 필요해요. 많이.”

프리드리히는 테레지아의 말을 이해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수도로서 오랫동안 군림한 도시 중의 도시가 그 기능을 베를린에게 빼앗겼으니, 시민들의 서운함은 굉장히 클 것이었다. 테레지아는 경제와 정치의 수도는 베를린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지만, 도이치 예술과 문화의 수도라는 자리는 빈이 가지길 원했다.

그것을 남편이라는 작자가 지금까지 예산 문제로 반대를 해 왔었을 땐 굉장히 서운했었고.

하지만 프리드리히는 이제 도이치 통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예산이야, 사놓은 고려 주식이 좀 뛰었으니 그것으로 충당하면 좋을 것이다. 사실 지금은 재정 상태도 좋았다.

그는 예전 고려에서 사귄 중학교 동창들 중 몇 명을 가신으로 삼았었다. 도이치 재무부장관 최세환은 현 도이치 경제를 견인하는 총책임자였고, 그는 도이치의 국가 경제를 완전히 재조립하는 것에 성공했다.

전쟁 직전의 도이치가 1이라면, 지금 도이치는 국가 경제적 규모로 보면 거의 10에 해당할 정도였다. 어쩌면 더 클지도 모른다.

다른 많은 나라들도 개천 5세기 말, 6세기 초의 대호황기에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긴 했지만, 도이치가 보여주는 경제성장률은 무시무시했다.

물론 고려는 지금 말 그대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끓어오르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외국 군주나 귀족들조차 그들의 코 묻은 자금을 대충 정앙거래소 어딘가에 묻어두었다. 알아서 불어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투자에 관해선 다소 고지식한 그들의 생각이 바뀐 것은, 자애왕이자 투자왕 아센재웅이 전후 그렇게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유럽 정계에 퍼져있었던 덕이었다. 불가리아는 지금 동유럽 최고의 부국 중 하나였다.

“하하, 참. 알았소.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요. 내 그것도 못 해줄까 봐.”

새벽의 무우궁 정원에서는 드물게 웃음꽃이 피어났다.

분명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었다.

* * *

현 새벽호, 즉 최초로 실전배치된 투투테펙급 항공모함은 기준 배수량 12,000여 톤 규모의 항공모함이었다.

이제는 철이 지난 불공급 전함이 17,200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항공모함이라지만 굉장히 작은 수준이었다.

상민이 아는 기준으로도 이는 경항공모함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더 빨리 나아갈 필요는 없었다.

물론 나중에는 삼사만 톤의 정규항모가 나오겠지만, 지금은 기술축적 및 연막작전의 시대였다. 고려가 전함을 뛰어넘는 항모를 개발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수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항공모함은 내부가 넉넉했다. 전투용이 아니다 보니 함재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작전함들은 대체로 서른 대 안팎을 운용했는데, 이곳은 그 절반 정도가 쓰였다. 다만 확연히 이착함을 자주 하긴 했다.

안토니아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상민의 일과는 굉장히 바빴다. 그는 아이샤가 죽은 이후에는 일부러 일에 몰두했는데 이런 것은 하나의 패턴과 같았다.

또 지금은 그가 한창 바쁠 시기였기도 했다.

아침 여섯 시에 기상한 그는 곧바로 아침을 먹었다. 닭가슴살과 계란, 야채에 이탈리아 궁정에서 쓴다는 발사믹 식초를 버무린 것을 간단히 먹었다. 간단한 식단과 달리 양은 굉장히 많았다. 사람이 어찌 저렇게 먹을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리고 상민은 곧바로 개인 체력단련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체격과 힘에 맞추어 특수하게 제작된 운동기구에서 땀을 빼기 시작했다.

육신은 항상 최고의 상태를 자랑했다. 그럼에도 상민은 대체로 아침 운동을 거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도 잘 몰랐다. 그냥 삼별초 시절부터 몇백 년 하다 보니 그렇게 습관이 되어 내려온 것 같았다.

다만 중량은 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예전의 호리호리한 몸이 아니었다. 그는 근육에 부과되는 더 강렬한 자극을 원했다.

제철기술의 한계인지, 재질의 한계인지 아니면 그냥 물리학적인 한계인지, 부족한 무게를 충당하기 위해 원판을 끼울 때마다 봉이 자꾸만 구부러졌다.

상민은 귀찮아서 아예 특수제작된 중량기구를 사용했다. 봉 대신 굵기가 무슨 옛날 대항해시대에서 썼을 법한 구형 화포처럼 굵은 철 덩어리에 손잡이가 있었다. 상민은 그것을 들 때마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가끔은 궁금하기도 했다. 예전 삼별초 시절에는 일당백의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그의 생각이 맞다면, 아예 일기당천을 넘어 만인지적이나 고금무쌍처럼 완전히 다른 칭호가 되어있을지도 몰랐다.

중량을 한바탕 친 그는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했다. 그냥 간편하게 특수제작된 거대실내자전거를 한바탕 돌리든가 혹은 날이 덥고 왠지 물장구를 치고 싶을 땐 배 뒤에서 밧줄을 매달고 바다 수영을 하든가.

물론 후자는 요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호위를 빙자한 구경을 하기 위해 배 뒤편에서 깔짝대는 번잡스러움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상민은 기어코 한 달에 몇 번은 수영을 직접 했는데, 이유가 따로 있었다.

상민은 지금까지도 일정 거리를 두고 새벽호를 졸졸 따라오는 한 마리의 스토커를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자신이 범고래 무리에게서 구해주었을 때는 사람 한 명 크기의 작은 놈이었건만, 이제는 그 길이가 이십 미터는 훌쩍 넘게 컸다. 앞으로 그보다도 더 커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민은 이 흰긴수염고래에게 심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심청과는 뜻이 약간 달랐지만, 심연의 푸름은 나름대로 이놈과 어울렸다.

흰긴수염고래 암컷인 심청이는 상민이 무리에서 구해준 뒤부터 계속 그의 배를 따라왔다. 심지어 그때는 새벽호가 지금의 투투테펙급이 아닌 시절이었다.

심청이는 잠을 자거나 배 근처에서 주 먹이인 떠살이 생물(플랑크톤)들을 구하기 힘들 때는 잠시 배를 떠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기어코 찾아와 배 옆에서 나란히 헤엄치기를 반복했다.

아마 이놈은 본능적으로 이 배 옆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몰랐다. 상민은 만약 범고래가 자신의 애착동물을 공격한다면 바다에 직접 뛰어들어가 범고래들의 코를 박살 낼지도 모르는 인물이었으니까.

상민이 새벽호를 바꿨음에도 심청이는 어떻게 알았는지 기어코 따라왔다. 해상생물이 자신이 어디에 타 있는지 금방 알아차리는 것이 기기묘묘한 일이었다.

상민은 실험을 한답시고 자신이 없는 구 새벽호와 자신이 탑승한 항공모함 새벽호를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보내보았는데, 심청은 아무런 갈등 없이 금방 새 새벽호로 졸래졸래 따라왔다. 그때 상민은 자신과 이놈 사이에 무언가 유대감이 깊게 생겼음을 자각했다. 심청이는 새끼 두엇과 함께 그녀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있음에도 지금도 계속 새벽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심청이는 어느덧 새벽호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사해를 통솔하는 용의 권능 어쩌고 주절거리는 소리가 대부분이었지만, 함대의 사기는 확연히 올라갔다. 고려에선 전통적으로 고래가 길한 징조로 여겨졌으니, 아예 함대를 졸졸 따라다니는 고래들은 더할 나위 없는 길조가 아닌가.

어쨌든 체단실에서 운동을 하거나, 혹은 바다 수영을 하거나 하여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 여덟 시가 되면 그는 간단히 목욕을 하고는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안토니아가 잠에서 일어난 뒤 단장하고 그의 옆에 가는 시간도 그 무렵이었다.

“국제계획 612―다에 관련해서 결재한 서류들 3번 상자에 넣어놨으니 가져가.”

“네.”

상민 자신이 서류에 파묻혀 있고, 상민의 다른 비서 또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안토니아는 느긋하게 만년필을 놀렸다.

[용의 그림자]

그녀가 쓰고 있는 책의 이름이었다.

사실 이 소녀가 대체 뭘 안다고 그의 그림자를 샅샅히 저술하겠느냐마는, 상민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녀의 관찰일기에 직접 첨삭을 해주는 식으로 교정했다.

테레지아가 교육을 탁월하게 시켰는지, 안토니아는 고려글과 고려어를 굉장히 잘 알았다. 이 시대의 여성상은 누구 말마따나 예쁘고 멍청하면 딱 좋다는 한탄 비슷한 말이 시중에 떠돌았는데, 상민 자신은 정략결혼이 아닌 이상 어딘가에 재능이 있는 여자들을 좋아했다. 겉보기에는 가장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이라도 어딘가에는 뛰어났다.

테레지아는 궁중 언어교사를 거금을 주고 초빙했다 하던데, 언어예절과 관련해서는 거의 고등교육을 받은 제국인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오탈자와 비문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딘가 맹한 구석이 있어서 뭘 서술하는지 자신도 몰랐다. 멍청하다는 뜻이 아니라, 뭔가 둔하고 순수한 느낌이었다.

“내 외모나 눈을 비비고 관자놀이를 주무르는 습관 같은 것이 아니라, 내 일에 대해서 쓰란 말이야.”

“그런데 저는 당신의 일을 잘 모르는데요.”

상민은 기어코 그녀를 일으켜 세워, 서류 더미 앞으로 보냈다.

“봐 이 사람들, 이렇게 막 사람들의 뒤에서 함부로 비밀을 캐고 다니잖아. 비밀뿐인가? 협박도, 심지어 제거도 하지. 이런 것을 보고 쓰란 말이야. 최대한 사람들에게 혐오감과 거부감이 들도록.”

상민은 서류를 펄럭였다. 이곳에는 외국인도 있었고 고려인도 있었다. 전형적인 민간인 사찰이다. 물론 이 시대상으론 아무도 그것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왜 이러세요?”

안토니아는 수많은 서류 더미에 질려 눈이 핑핑 돌아가 그렇게 하소연했지만, 상민은 다른 뜻으로 이해했다.

“그래야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상민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전쟁을 유발할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은 유부녀에 환장하는 조조가 아닌 것처럼 빌헬름 2세도, 히틀러도 아니었다.

기어코 승리할 것이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전쟁유발자나 호전광들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다만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그의 의사와는 별개로 1차대전과 같이 대전쟁이 한 번 더 일어날 것은 분명했다.

식민제국주의가 해체되었지만, 여전히 잔존 위협은 남아있었고, 전 세계적으로 커져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념의 무서움을 잘 몰랐다.

파리 코뮌에서 시작된 세계 공산주의의 이념은 소비에트로 현실화되었고, 러시아에서 부흥하여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대전쟁은 아마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전투일지도 몰랐다. 상민은 지금은 그렇게 생각했다. 냉전이 아니라, 열전으로.

그렇기에 일어난다면, 고려는 지금껏 그래왔듯 정의의 편에서 승리해야 했다. 양차대전의 승리는 인류의 수호자라는 명칭을 제국에게 부여할 것이었다.

그러나 필연적이라 하더라도 상민은 여전히 방관자적 죄가 적용될 것이었다. 당연히 방관죄는 죄가 아니지만, 그 정도의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은 도덕적 지탄을 피해 가기 어려운 법이었다.

그는 소비에트를 견제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다. 대신 통제 가능한 땅에 여왕을 올려 나라를 반으로 갈라두었을 뿐이다. 이 음험한 계략을 보라. 정녕 사악하지 않은가.

“자, 여기, 여기부터 보자고.”

“여기가 어딘데요.”

“키이우(Київ), 우크라… 아니, 루테니아의 수도지.”

소비에트 연방

이 사달이 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러시아의 상황을 설명해야 할 터였다.

“너도 러시아에서 난 혁명을 들어보았느냐?”

“네.”

왕귀족들이라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등줄기가 서늘한 경우였다.

프랑스 혁명은 이제 과거의 일이었다. 그때에도 왕귀족들은 간담이 서늘했겠지만, 혁명은 그래도 결론적으론 타협적으로 끝났다.

프랑스에는 더 이상 귀족이 없었고, 다른 나라도 그렇게 되길 희망하는 지식인들이 지금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다른 나라 왕정들은 프랑스 시민들이 천명한 자유와 인권에 대한 주장을 제대로 인지했다.

제대로 정신머리가 박힌(혹은 누군가에 의해 박혀진) 왕정들은 프랑스 혁명을 교훈 삼아, 신민들을 탄압하는 대신 그들의 참정권을 늘리고 절대왕정의 권한을 의회에 대폭 양도하는 식으로 줄여나갔다.

그들로서 가장 배우기 쉬운 모델은 이미 진작부터 그런 식으로 행정과 입법, 사법의 체계를 분리해놓았던 고려였다.

하지만 공화혁명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이것들은 2공화국의 타협적, 부르주아적 민주혁명과 사회, 공산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껑땅의 제자이자 현 세계공산주의의 아버지, 모렐리의 이념은 도저히 멈출 것 같지가 않았다.

프랑스에서 쫓겨난 모렐리와 전 파리 코뮌의 급진파들은 러시아에 도착한 뒤, 그곳에서 비밀리에 세력을 확산했다.

막심 예시포프가 이끄는 구제동맹도 이제는 그들의 휘하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이에 불안감을 내비쳤다.

귀족원, 즉 젬스키 소보르는 평의회인 소비에트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당연히 그 행동이 평화적일 리가 없었으므로 그 와중에 엄청난 피가 흘렀다.

귀족들이 부리는 부하들은 소비에트를 해산시킨다는 명목으로 애꿎은 민간에 분풀이를 했다. 약탈과 방화, 강간과 살인이 일어났다. 러시아의 큰 도시들마다 비명 소리와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았다. 차리차의 공백이 여실히 느껴지는 모스크바에는 가장 혹독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차리차의 후계를 제대로 정하지도 못하고 있는 우유부단한 행태와는 달리, 귀족원은 이런 것에선 무척이나 기민했다.

러시아 최후의 차리차, 나탈리아가 애써 만든 모든 것들이 단 한 번의 반동적 흐름에 의해 갈가리 찢겨나갔다.

많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나탈리아 차리차를 조약국과의 굴욕적인 평화협상에 임한 천하의 나쁜 년이라고 욕을 했지만, 소수의 지식인들은 그녀만이 정말 러시아 최후의 희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노력조차 사라지니 이제 러시아의 일반적 사람들은 이 반동과 구태에 대한 울분을 해소할 수단을 완전히 빼앗긴 것이다. 이 울분은 서서히 분노와 증오가 되었다.

귀족들, 보야르들은 강했다.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그들은 블라디미르 시기의 대전쟁에 의도적으로 거진 총동원되어 물적, 인적 자산이 이미 형편없이 쪼그라들어 있는 상태였다.

이반들을 착취하자니, 이미 러시아의 경제는 박살이 난 상태였다. 몇 번이고 거듭해서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을 진압하는 것도 다 돈이었다.

이런 틈을 타, 해산된 소비에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 저들은 우리를 다 죽일 계획입니다.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저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소비에트만을 위한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모렐리는 위기감 조성에 아주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강제로 해산되어 있다가 목숨의 위협을 받아 지하로 피신한 소비에트의 구성원들은 이 프랑스 혁명가의 리더십을 받아들였다.

물론 혼란한 러시아엔 온갖 이념이 다 태동하기 시작해 있어 모렐리의 혁명노선에 대해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코앞으로 다가온 귀족의 위협에 대해선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그렇게 6월 봉기가 시작되었다.

처절한 전투가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

귀족들은 이미 한 번 소비에트를 먼저 쳤기에 처음엔 전력상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소비에트로 대세가 기울어져 갔다. 민간의 지지가 제일 컸다. 그다음은 아마 모렐리가 신임하는 청년장교, 수보로프의 지휘가 큰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었다.

장교 출신이 좀 많은 구제동맹은 그를 약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드미트리 시대부터 존재해 온 구제동맹의 첫 기수들은 이미 나이가 많았으니, 이 젊은 장교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이들마저도 모두 수보르프의 군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귀족과 싸우는 그 소소한 전투에서, 적어도 수보로프가 직접 이끄는 민병대만큼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이 엉성한 민병대는 조금씩 조금씩 단단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 붉은 군대, 즉 적군(赤軍)은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를 손아귀에 넣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니 6월 봉기, 이를 러시아 혁명이라 했다.

* * *

“이후 내전이 벌어졌지만, 그 봉기를 소비에트 연방의 설립 시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칠판만 없을 뿐 교수님 앞에서 역사 이야기를 듣는 학생의 처지지만, 안토니아는 묵묵히 그 말을 다 들었다. 그리고는 불쑥 물어보았다.

“귀족들은 왜 귀족답게 행동하지 않았을까요?”

상민은 괜히 안토니아에게 골탕을 먹이고 싶었다.

“공감 능력의 결여겠지. 사람은 선천적으로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특히나 귀족들은 더더욱. 그중에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있지.”

그는 몸을 쭉 뻗어 그녀의 얼굴 앞에서 속삭였다.

“굶주린 사람들 앞에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말한다든지.”

“세상에, 어떤 나쁜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할까요?”

상민은 피식 웃으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안토니아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정을 보면 알았다. 이 아이는 맹했지만, 그 정도로 바보나 혹은 다혈질이 아니었다.

아마 그 일화는 악의에 찬 프랑스인들이 만들어낸 선동과 날조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건 러시아잖아요. 루테니아가 아니라.”

상민은 턱을 긁었다.

“정말로 역사에 대해 흥미가 있는 건가?”

“그냥 듣고 싶어요.”

“올가에 대해 듣고 싶은 거지? 네 친척.”

“…네.”

루테니아(Ruthenia).

러시아 남부에 새로 들어설 나라의 국호를 루테니아로 정하기까진 다사다난한 과정이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그 어원이 적절치 않기도 했고, 지금 역사에서는 약간 어울리지 않았다.

상민은 모스크바에 괴뢰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 정통성을 깎아내리길 원했다. 우크라이나는 대략적으로 국호를 해석해본다면 러시아의 변방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쓰고 싶지 않았다. 도리어 기원을 따지고 본다면, 모스크바보다는 키이우가 더 근본이 있었다.

그렇다고 키이우 루스니 하고 지역 이름을 국호로 붙일 수는 없었다. 영역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새 국가 또한 전 루스의 대변자여야 했다.

그러니 루테니아라는 이름이 채택되었다. 러시아가 루스인들의 땅이라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단어였다면, 루테니아는 완전히 같은 뜻이지만 라틴어에서 파생된 단어였다.

루테니아는 이미 존재한 적이 있었다.

첫 번째 루테니아 왕국, 즉 갈리치아―볼히니아 왕국은 실패로 끝났다.

그땐 몽골이 한창 루스 공국들에게 타타르의 멍에를 씌우고 있었던 시기였다. 갈리치아―볼히니아의 건국조(혹은 중시조)인 다닐로는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라틴어 국호 루테니아라는 명칭을 내린 교황의 지원을 바랐으나, 교황은 의욕적인 말과는 달리 실제적인 지원을 주지 못했다. 정교회 사람들의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고려는 신(新)루테니아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예전엔 러시아에게 임명권이 있었지만 블라디미르 2세의 패륜 이후엔 완전히 고려의 간섭을 받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루테니아의 정교회 신자들을 위해 키이우 대주교직을 신설했다.

종교적 지원 외에도, 고려는 혁명 이후의 적백내전이 한창이던 러시아의 턱밑에서 온갖 협잡질을 통해 루테니아의 건국을 도왔다.

볼히니아 공후였던 다닐로는 기반이라도 있었지, 올가는 아무것도 없다가 고려의 강권에 맨몸으로 가는 처지였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어야 했다. 고려는 전후 괴뢰국으로 만들어둔 크림 공국(공작조차 없었다)을 기반으로 하여 루테니아 영역에 있는 러시아인들과 자포르자 카자크들을 규합했다. 외부적으로도 폴란드와 몰다비아를 설득해 ‘완충국가’의 개념을 만들자고 설득했다.

물론 반쯤 설득이었고 반쯤은 협박이었다. 두 나라가 신생 국가를 영토적으로나 다른 측면으로 등쳐 먹으려 한다면 국제사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엄포도 놓았다.

그렇게 해서 루테니아가 설립되었다. 역사서엔 신 혹은 후루테니아라고 불리겠지만, 당대인들은 그냥 루테니아라고 불렀다. 이곳은 모스크바의 지배를 싫어하는 원주민들, 그리고 혼란한 북부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이 모두 있었다. 교통정리가 끔찍할 정도로 힘들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하지만 이때 적백내전이 도리어 도움이 되었다.

적군과 백군의 싸움은 서로의 주적에게만 칼을 겨누지 않았다. 양측 모두가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니 민간의 피해는 당연했다. 러시아 남부의 사람들은 이에 학을 떼며 아예 새로운 국가의 통제력에 기대를 걸었다.

올가는 그런 막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루테니아의 차리차가 되었다.

그녀도 이젠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오히려 예전부터 이것을 원했을 것이다.

고려가 가지고 온 이홍력의 목을 축구공마냥 발로 몇 번이나 차며 한참 목놓아 울던 올가는 남편 해대헌이 차린 드미트리의 제사상에 마침내 원수의 썩어버린 목을 올려놓고 절을 한 뒤, 키이우로 돌아가 껍데기뿐인 왕국의 대관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그녀가 류리크의 정당한 후손임을 천명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백군들 중 몇 명은 루테니아로 도망쳐 왔다. 전황은 적군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올가는 귀족들 중 몇 명은 선별해 받았지만, 도움이 되지 않거나 명망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루테니아와 백군 간의 전투도 소소하게 일어났을 정도였다.

루테니아와 적군 간의 전투도 일어날 뻔했다. 크레믈에 입성하여 사방의 귀족 백군들이 패퇴하는 것을 환희에 찬 얼굴로 바라보던 모렐리는 루테니아라는 큰 걸림돌이 남쪽에서 생겨나자 경악하며 수보로프에게 토벌을 지시했지만, 수보로프는 거절했다. 그조차도 지금 당장 루테니아를 이길 방도가 없었다.

내전 이후 곧바로 밑을 평정할 만큼 모스크바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실제로 그때 당시 키이우에는 수많은 국가의 군대들이 방어를 위해 와 있었다. 적군이 이곳을 공격했다면, 소비에트 연방은 시작부터 박살이 났을 것이었다.

러시아를 싫어하는 두 나라, 도이치와 불가리아는 남의 나라 전쟁임에도 루테니아를 전심전력으로 도울 것이 분명했으니까.

물론 그 두 나라의 배후에는 상민이 있었다.

그는 진정한 러시아는 모스크바 루스가 아니라, 키이우 루스이길 원했다. 양(兩) 블라디미르의 치세에 다소 삽질을 했고 고려와의 관계가 아주 좋지 않아 전쟁까지 치렀으나, 국제외교란 원래부터 손바닥 뒤집히듯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상민은 그가 손에 쥔 올가라는 패를 적절히 잘 써먹길 원했다. 그가 바라는 세상에서는 러시아, 아니 루테니아 또한 고려의 범세계패권 치하의 국가였다.

어쩌면 올가의 아버지인 드미트리도, 그리고 그 이름이 기원한 큰할아버지도 그것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 귀찮아 알아보진 않았지만, 어쨌든 올가는 안토니아의 친척이었다. 올가는 드미트리의 딸이었고, 드미트리는 마리아 안나와 블라디미르 1세의 아들이고, 마리아 안나는 합스부르크 가문이니까.

유럽의 왕통, 로열블러드는 대체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이는 고려계 성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 올가와 그 자식들에게는 해씨 핏줄이 흘렀다. 랭커스터 가문에도 여전히 해씨 피가 조금은 흘렀고, 부르고뉴김이나 아센재웅의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결혼에 결혼을 거듭하니, 어찌 되었든 이리저리 혈연으로 엮여 있는 것이 당금 유럽의 황실 족보였다.

“…그 전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죠?”

“올가 말이냐?”

“네.”

“없지. 왜 그러느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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