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72화 (472/653)

박람회(3)

황제가 들어간 뒤, 먼저 관람을 끝내자 이윽고 수정궁의 정문이 열렸다.

고려의 시민들도 이제 들어갈 수 있었다.

굉장히 북적였지만 박람회까지 와 보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고려의 중산층 이상이었다. 이들은 체면을 차리기 좋아했고 그렇기에 예절에 맞추어 줄을 잘 섰다. 기마경관들도 주변에서 인파를 통제하고 있어 큰 혼란은 없었다.

산업박람회는 기술의 경연장이자 거대한 잔치였다.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들어간 해청은 정원까지 관람할 시간이 별로 없어 대충 넘겼지만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정원에도 볼거리가 있었다.

유리 조각상 등이 있었고, 분수대도 있었다. 초록 빛깔의 잔디도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줄을 길게 선 사람들은 더운 여름에 갑자기 물이 튀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게 뭐지?”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잔디밭을 가리켰다.

― 칙칙칙

그곳에는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작은 장치가 있었다. 기다란 수관이랑 이어진 그것은 사방에 물을 뿌렸다. 물방울은 하늘로 올라갔다가 마치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잔디가 푸른 것엔 이유가 있었다.

물뿌리개.

몇몇 사람들에겐 신기하게 보였지만 창양과 청해, 혹은 다른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겐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저런 농업용 물뿌리개는 이미 창천궁의 정원은 물론이고 유명한 축구 구단의 잔디 배양을 위해 쓰이고 있었다.

아직 그 단계까지는 멀었지만 더 개발된다면 농업용으로 쓰는 것도 고려해볼 만했다.

박람회 이후로는 민간에서도 허가만 나면 쓸 수 있을 예정이었다.

수요는 충분해 보였다.

번듯하고 이상적인 고려 중산층의 집이라 하면 벽돌이나 강회로 단단하게 지어진 이 층 려옥의 툇마루에서 잔디가 깔린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가옥을 뜻했다.

물론 기화요초의 옛날식 정원도 굉장히 아름답고 선망의 대상이긴 했다. 연못과 정자, 버드나무 등의 정원은 꿈과 같았다. 하지만 그런 정원은 유지비용이 많았기 때문에 최상류층이나 향유할 수 있었다. 고려 정부에서도 관리하지 않는 정원에 들끓는 장구벌레 등을 지극히 경계하고 있었기에 일반적인 중산층과 서민은 잔디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잔디 정원이 나쁘진 않았다. 상대적으로 관리하기 쉬웠고 아이랑 공놀이하거나 개와 산책을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저 정원용 물뿌리개는 지방의 법률을 먼저 봐야 할 것이다. 택주나 중려, 애리조나와 유타주와 같은 극도로 건조한 주에서는 금지할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반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물뿌리개도 있었다. 정원용이 아닌 소방용 물뿌리개였다.

화재 시, 내장되어 있는 작은 유리병과 그 안에 들어있는 액체가 일정 끓는 점 이상으로 올라가 깨지면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는 원리의 소방용 물뿌리개는 화재안전에 대한 대응책으로 내무부와 국토부의 큰 관심을 받았다. 수정궁에도 있었지만 따로 전시하지는 않았다.

이것들은 이제 곧 일상 안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곧 있으면 소방법 개정안이 중서성 본회의에 상정될 터였다. 그 소방법 개정안은 앞으로 건축할 일정 규모의 건물에는 죄다 소방용 물뿌리개를 내장하라는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화재는 고려도 막기 힘들었다. 매년 많은 곳에서 크고 작은 화재가 일어났다.

사고는 언제나 존재하며 그 원인을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본디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랬으며, 또한 사람이 아무리 조심을 해도 천재지변까지 막긴 어려웠다.

심지어 고려에는 벼락 맞은 나무에 불이 번져 큰 화재가 일어난 지역도 있었다. 고층 건물에야 피뢰침이 있었지만, 마당의 나무에 떨어지는 번개는 막을 도리가 없었다.

다만 사고가 일어난 뒤에 뒷수습을 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었다.

고려는 소방에서도 진작 세계 최고의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사실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개천 415년(CE 1690년)의 런던 대화재와 개천 422년 길천 화재였다.

개천 415년 런던 대화재는 시티 오브 런던에 위치한 밀가루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시작되었다.

공장이 민영 소방체계에 가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소방업자가 출발하지 않아 초기대응이 아예 없었던 이 화재는 결국 재앙적인 결과를 낳았었다. 무려 7일 동안 불길이 번져 도시를 태워 먹었으며, 만 팔천 채의 집이 불타고 십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사망자는 서른 명이었다는데,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양양신보 기자의 말에 따르면 잉글랜드 정부는 당시 극빈층의 인구집계를 하지 않았고, 대화재로 시체가 비동도 기준 천이백 도가 넘는 고온 속에서 형체도 남기지도 못할 정도로 타버렸기 때문에 사망자 수가 그 정도로 적었을 거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길천시 화재는 그로부터 7년 뒤에 일어났다. 길천시의 화재도 굉장히 컸다. 목재 가공 공장에서 일어난 이 화재는 도시를 뒤덮을 기세를 자랑했다.

다만 런던 대화재처럼 재앙적인 결과를 가지고 오진 않았다. 일단 고려는 건물을 지을 때도 건물과 건물 사이, 건물과 도로의 이격거리를 철저하게 지켰다. 또한 민간이 아니라 국가에서 소방청을 운영했으며 그 지원도 엄청났다. 심지어 지금 고려 공군이 비행선을 전력화하지 않았음에도 소방청만큼은 예외로 했을 정도였다.

길천시 화재는 결국 이틀 만에 진압당했으며 목재 가공 공장과 주변 이백여 채의 집이 불타는 것으로 그쳤다.

너무나 비교되는 이 결과에 고려로의 잉글랜드 출신 지식인 유출이 더 심화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물론 고려에겐 썩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다. 고려가 런던 대화재와 자국의 사건을 비교할 나라도 아니었다. 제국 기준에선 이백여 채의 손실도 대단히 큰 규모였다.

소방용 물뿌리개는 이런 화재에서 아주 중요한 초기 화재 진압을 담당할 수 있었다. 이제 들어서고 있는 마천루 같은 고층 건물에는 더더욱 중요할 것이다.

관람객들은 회전문을 통해 질서 정연히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시원한 공기가 그들을 반기자 모두의 입에선 탄성이 일어났다. 과장 좀 섞어 다른 세계에 온 듯했다.

“허어어….”

사람들은 갓을 살짝 들어 올리고 그 밑에 찬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었다. 더 이상 땀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 안의 날씨는 이미 늦가을 초겨울인 4~5월은 되어 보였다.

공조기는 아직 대형인 물건이라 가정집엔 들여놓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대형 건물에는 충분히 가능했다.

명칭은 냉방기가 아니었다. 비록 주목적이 냉방이긴 했지만, 사실 냉방이라는 자체는 이 기계의 본질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일정 이슬점 강하 법칙에 따라 공조기는 냉방을 하는 과정에서 습도까지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으며, 비단 사람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습도가 높으면 안 되는 인쇄소 같은 여러 산업환경에서 필수적인 여건을 제공할 수 있었다.

공조기의 개발자, 최석암은 영실상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 * *

박람회장 1층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다.

유수원은 관람객들 사이에 껴 있었다.

다만 일반적인 관람객들과 유수원 같은 신사들은 달랐다. 관람객들은 약간 떨어져서 마치 전시회를 구경하는 듯 재미를 즐기고 있었지만 신사들은 이곳도 업무의 현장이었다.

마찬가지로 수원도 작은 수첩과 연필을 들고 다니며 유심히 필기했다.

산업박람회는 신기한 것을 전시하는 발명박람회가 아니었고, 몇 개는 기존에 이미 존재를 알고 있는 것들도 보였지만 투자자의 입장에서 이것들의 효용성과 앞으로의 전망을 평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허, 이건 정말 필요하겠군.”

[경화사]

수원은 한 곳에서 멈춰 섰다.

이곳엔 일반인보다도 딱 봐도 나 신사요, 혹은 나 기자요 하는 자들이 많았다. 공통적으로 서류 더미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파묻힌 서류만큼이나 많은 서류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들을 위해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 하나가 나와 설명을 시작했다.

황경화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했다. 그녀는 이 먹물 먹는 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본래 관에서 사자관(寫字官), 민간에서는 필경사로 불리는 일을 해 왔던 그녀는 당연히 공문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다.

사자관과 필경사의 업무는 대량으로 책이나 신문을 찍어내는 데 적합한 금속활자와는 분야가 아예 달랐다. 수요가 굉장히 한정된 공문서, 내부 보고서 등을 그렇게 만들 이유는 없었으니 사람이 손으로 수기하는 것이 제일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이에 예쁜 손글씨와 빠른 작업속도를 가진 자들이 선호받았다. 다만 어디까지나 요구 조건이 낮은 편이었기에 일을 할 사람은 많았고 봉급은 높지 않았다.

이것은 실로 불편했다.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고 기록하라 하는 것은 왜곡의 요소가 있었고 비밀 엄수에도 좋지 않았다.

이에 경화는 현직의 기억을 바탕으로, 당시 사별한 남편의 뒤를 이어 공장에서 금속공으로 일하던 맏아들, 조승필과 함께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고 특허를 확보했다.

타자기는 굉장히 대단하고 인상 깊은 발명이었다.

여기 모여 있는 인파의 눈에 모두 이채가 감돌고, 설명을 유심히 듣고 있는 것도 그랬다.

“이 타자기라는 것은 12글쇠씩 7열로, 총 84글쇠로 종이에 글을 기록하지요. 글쇠를 누르면 해당하는 활자에 유먹을 찍은 뒤 그 활자를 종이에 누르는 셈이에요.”

― 타타탁

신사들은 젊은 승필이 직접 시범해주는 것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정말 개인용 활자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개인마다 손글씨가 달랐다.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필체가 괴이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고 그것을 해석하려 하면 가끔 짜증이 솟구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발명이 대중화된다면 그럴 걱정도 없어 보였다.

특히나 고려글은 활자나 타자기로 만들기 굉장히 어려운 발명이었다. 수만 가지 글자가 있는 한자보다야 낫겠지만, 따로 글자를 ‘조립’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는 알파벳 기반의 글이 훨씬 기록하기 쉬웠다.

다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이란 수요가 있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발명을 해냈다. 더군다나 세계의 국제 표준글과 표준어가 고려의 것이라, 세상의 만인이 요구한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수원은 그 자리에서 경화사의 5벌식 타자기 1형을 회사 사람들의 것들까지 포함하여 스무 개 구매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빠르게 계약을 끝냈다. 써보고 마음에 들면 더 구매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지분 투자에 관한 상담도 나누었다. 그의 눈에는 이 타자기도 발전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나중에는 훨씬 더 깔끔하고 부드럽고 글쇠가 적은 방식의 타자기도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수원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다시 걸음을 거닐었다. 온갖 곳에 금덩이가 있는 광산에 온 것 같았다. 그는 최신형 역직기와 조면기, 초지기 등의 회사를 들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다.

새로운 기관을 발명한 자들도 있었다. 각기 발명가들의 이름을 딴 이 기관들은 보여주려고 만든 건지, 혹은 정말 대단한 건지 공학적으로 체감이 되진 않았다. 다만 수원은 이들의 이름도 꼼꼼히 적어 두었다.

너무 유명한 것들도 있었다.

“전화기라, 고려 통신이 반쯤 황실기업, 반쯤 공기업이 아니라면 넘볼 수 있었겠지. 뭐 특허가 만료된다면 민간 기업이 들어올 테니 그때를 노려볼까.”

물론 그때에도 전화기는 시장이 커질 대로 커진 시장일 것이다. 신사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붉은 바다’가 예정되어 있었다. 강력한 경쟁과 전투가 일어난 까닭에 피처럼 붉어진 시장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반대말은 ‘푸른 바다’였다.

발명품은 처음 들어보지만, 애초에 회사가 투자은행이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일전과 종동사가 그랬다.

세계 최대의 기업이자 인간 문명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받는 일전은 아예 거대한 하나의 회랑을 자신들의 전시관으로 꾸며놓고 있었다.

그 광오한 위용에 신사들도 감탄을 내질렀다. 수정궁 자체가 별세계였지만 이곳은 차원이 달랐다. 조명이나 배치 등이 마치 혼자서만 한 세기가 앞선 곳에서 등장한 듯했다.

사람들은 역시나 많았다. 일전이 위치한 회랑에는 일반인 관람객들도 가장 많았다. 수원은 억지로 그곳으로 진입해 전시된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일반인들이 관심 있어 하는 새로운 축음기부터 수많은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전동기까지 종류는 실로 다양했다.

전기적 힘을 직선이나 회전운동으로 바꾸어주는 전동기의 원리는 이제 널리 알려졌지만 그 파생기구는 실로 다양했다. 공기조화기 이전에 나온 것들이 그랬다. 선풍기, 원심분리기, 교반기, 세탁기 등이 그랬다.

선풍기는 말 그대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 공조기가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도 모습을 드러낸 바가 있었다. 풍차와 바람개비의 개념은 한참 전부터 있었고, 어찌 보면 비행기의 앞에 달린 것도 그 원리였다.

반면 다른 것들은 한 차례 진보된 것들이었다. 비슷하게 회전력을 가해주는 물건들이었지만 각기 다른 산업 현장, 혹은 일반 생활에서도 쓰일 법했다. 원심분리기와 교반기는 제각기 의료용과 산업용으로 쓰였다. 혈액의 성분을 나눈다거나 반대로 물체를 뒤섞어줄 수 있었다,

또한 그 둘을 합쳐 세탁기라는 혁명적인 물건을 만들 수 있었다.

아직 덩치가 컸고 비쌌기 때문에 아무나 이것을 쓰긴 힘들어 보였지만, 대규모의 빨래를 한 번에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실로 대단했다. 가사일의 부담을 줄여주는 개발은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을 열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떤 건 좀 충격적이었다.

― 위이이이잉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구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원체 시끄러워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 철제관의 입구에 손을 대보려 했다.

그 모습에 근처에 있던 일전 관계자가 화들짝 놀라 제지하러 달려왔다. 손이 빨려 들어갈까 봐 우려한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까지 위력이 강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수원도 저게 뭔지 감을 잡지 못했다.

“저게 뭐요?”

“진공청소기라 합니다. 말 그대로 진공의 원리를 이용해 청소를 하는 것이지요.”

공기 흡입구와 전동기, 회전날개, 배기구로 이루어져 진공의 원리를 다루는 이 기구는 일전이 정말로 과학과 공학을 손에 넣고 주무르고 있다는 아주 적나라한 예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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