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68화 (468/653)

국제 연합

한 남자가 황궁의 집무실 안에서 긴장한 듯 서 있었다.

그 뒤에는 집무실의 주인인 황제와 상서령, 내무상서, 우정국장 등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흥미가 잔뜩 동한 얼굴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작은 물건을 집어 들었다. 독특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것이 나무 막대기의 위아래에 달려 있었다.

그것엔 후추 통마냥 작은 구멍도 숭숭 뚫려 있었다.

고려 통신의 사장인 이 남자는 들고 있는 고풍스러운 수화기 안에 발명가 박상운과 김재덕을 비롯해 이것들을 만든 사람들의 노고가 대단히 많이 들어가 있다고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 실험은 성공해야만 했다.

* * *

사실 전화기는 지금 황상의 집무실에 설치하기 이전부터 개발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를 얻으면, 그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것을 바랐다. 당연히 발명가들도 예전부터 쓰던 전신 같은 정보전달체계에 기존에 쓰이던 표준전보부호, 즉 활자뿐만 아니라 음성까지도 오고 갈 수 있길 원했다.

전기적 신호의 전달 체계 자체는 이제 학계에 꽤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음성을 전기신호로 보내고 받는 일련의 이론들이 주요한 문제였다.

당시 전신 산업을 주도하고 있던 고려 통신은 전화기의 사업에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회사 내부의 발명가들은 물론이고 회사 밖의 발명가들도 언제든지 데리고 와 임원으로 삼은 뒤 공동개발을 할 생각도 있었다.

그만큼 전화기의 송수신기는 대단히 어려운 발명이었다.

음성 파동을 전자 신호로 바꾸어 전달시키는 원리는 단순해 보여도 심각하게 복잡했다.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감히 생각조차 하지 않은 개념이었다.

많은 발명가들이 이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세 명의 사람이 발명 경쟁에서 돋보였다. 진주왕립대학교의 조교수인 박상운, 고려 통신에 근무하던 발명가 이홍도와 재야 과학자 겸 발명가인 김재덕 등이 연구를 주도했다.

최초로 특허를 등록한 것은 김재덕이었다. 다만 김재덕의 특허는 이론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등록된 것이라 후발주자들이 충분히 극복할 여지가 있었다.

다만 그 이후의 전개가 굉장히 복잡했다. 발명가들은 시대의 천재들이라 모두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어느덧 연서궁에 수학하는 문인들도 이 결과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영실상에는 공학상이 있었다. 장영실 자신이 공학자였고 발명가였기도 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음성을 전달하는 기구가 발명된다면 영실상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화기가 탄생했다.

수화기를 최초로 만들어낸 이가 박상운이라는 증거는 꽤 많이 있었다. 하지만 특허를 먼저 등록한 것은 이홍도였다.

특허청은 창양에 있었다. 특허를 등록하려는 사람은 이곳에 와서 자신의 문서를 넘겨주어야 했다. 상운이 자신의 발명에 기뻐하며 서류를 주섬주섬 챙기고 배를 타는 동안, 이홍도가 먼저 선수를 쳤다.

심지어 이홍도는 한 달 동안 두 차례나 특허를 수정했다. 첫 번째는 핵심 이론이 완전히 빠져 있었고 두 번째도 모호했으며 세 번째에 들어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립된 이론이 되었다.

당시 젊은 나이에 연서궁에 들어간 것도 모자라 특허심사위원으로까지 임명되었던 젊은 과학자인 벤야민 프랭클린은 이홍도의 두 번째 특허 수정을 보며 이런 말까지 했다.

―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학자나 발명가라는 자가 어떻게 자신이 만든 이론에 이렇게 모호하고 자신감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어쨌든 당시 특허청은 이홍도의 손을 들어주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먼저 제출한 것은 그가 분명했다. 세 번째 수정에선 액체 기반 송신기에 관한 가변 저항 이론이 완벽히 담겨져 있었다.

“한 달 동안 배 타고 왔는데, 그 사이에 이 지경이 되었다고요? 그 인간은 자신이 고려 통신에 이미 근무한다고 고압적으로 절 찍어 내리려다가 이내 비굴한 태도로 제 연구실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굽실대었던 놈이란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 예전 담당 교수에게도 뇌물을 준 놈이구요!”

참을 수 없었던 박상운은 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법정 싸움은 길고 모호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그랬다. 이홍도도 마냥 자격 없는 이가 아니었다. 음흉하고 탐욕이 잔뜩 있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능력만큼은 출중해 고려 통신에서 전신 개량에 굉장한 공이 있었던 자였다.

상운은 길어지는 싸움에서 의욕을 잃어갔다.

하지만 정작 이상한 곳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고려 통신에서 직접 이 문제에 대해 해결하길 원한다는 의사를 보냈다. 처음 상운은 콧방귀를 뀌며 들은 척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특허심사위원이었던 벤야민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특허청과 고려 통신이 공동 주최한 전화기 특허 해결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사회에서 사내의 도덕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현 상황에 대해 명료하고 객관적으로 해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소.”

대체 어느 이사회가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상운은 의아해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단체다. 한없이 포악해질 수 있었다. 과학자나 공학자는 그 앞에서 약자에 불과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곳엔 심지어 중앙수사국의 경관도 나와 있었다.

중수국, 세 글자만 봐도 범법자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는 자들이다. 정보총국 같은 첩보기관은 드러나지 않는 권력이니 일반 사람들에겐 중수국이 가장 위압감 넘치는 단체였다.

“세 분은 모든 수사 과정에 원활히 협조하실 것을 약속합니까?”

“네.”

상운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러지요.”

나이가 많은 노과학자인 김재덕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홍도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딱히 사람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수사는 진행되었다. 이미 상운이 소를 제기한 것도 있었고, 만약 홍도가 정말로 그러했다면 이는 지적 재산권에 대한 절도였다.

고려는 이에 굉장히 엄격했다.

과학과 공학에 대한 특허는 국가의 근본 자산이다. 이 체계를 어지럽힌다는 것은 경제나 체제를 위협하는 것만큼이나 엄중하게 다루어졌다. 국가 기밀을 외부로 유출하려는 자도 어마어마한 벌이 내려졌다. 막중한 사항이라면 심지어 즉결 처분도 가능했다.

이미 불러놓고 말을 하기 전에도 세 명의 집엔 경관이 파견되어 있었다. 솔직한 말로 아직도 고려의 관권은 굉장히 강했다. 중앙수사국은 집법성의 영장 없이도 먼저 선조치를 할 권한이 있었다. 이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아직은 그랬다.

중수국은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특허청은 객관적 시선으로 이들이 제출한 자료뿐만 아니라 연구 자료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최초의 전화기의 발명에 대한 공은 김재덕에게 돌아갔다.

이 재야 공학자는 정말이지 굉장히 순수한 자였다. 가난하기도 했다. 세속의 욕심에 큰 뜻도 별로 없었다. 그저 아내와 농장 일을 하면서 헛간에서 발명을 뚝딱뚝딱하는 자였다. 중학교까지 교육을 받긴 했지만 대학에 간 적도 없었기에 제대로 된 논문을 발표할 역량도 있지 않았다.

다만 직관 자체는 정말로 천재적이라, 사실상 생각 하나만으로 전화기의 발명에 대한 기본 토대를 세웠다고 볼 수 있었다.

액체기반 송신기에 대한 특허권 분쟁의 승리는 박상운에게 돌아갔다.

그 말인즉슨 이홍도의 비위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다는 뜻이었다.

그가 박상운에게 ‘작업’을 걸려던 흔적들은 충분했다. 중수국은 곧바로 이홍도를 체포했고 법정에 넘길 예정이었다.

‘일이 이렇게 끝난다고?’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특허청 회의실에 멀뚱히 서 있는 그를 향해 고려 통신 사장이 다가왔다.

“부디 우리 회사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럴 리가요.”

물론 지금 이 상황은 온전히 사장의 결단이 아니었다. 사실 그도 경영인일 뿐 바지사장이라 위에서 까라면 까야 했다. 대주주의 뜻은 명확했다.

사장은 옅게 웃음을 짓더니 이윽고 박상운은 물론이고 김재덕까지 불러 모아 특허에 대한 비용과 사내이사 자리를 제안하며 추후의 개발까지 모두 얻어냈다. 김재덕은 별 욕심이 없었고 회사에 소속되는 것도 싫어하여 현금화할 수 있는 약간의 지분만 받아 갔고 박상운은 단번에 고려 통신의 이사가 되었다.

이후에도 박상운은 김재덕과 협력했다. 그들은 액체 가변저항 송신기의 한계를 알아차렸고 이를 개선했다.

개천 458년, 전쟁이 끝난 직후 발명된 진동막―전자석 송신기는 액체 가변저항 송신기를 완전히 대체하며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드디어 전화기가 제법 쓸 만해진 것이다.

* * *

온갖 회상이 머리를 떠돌았다. 고려 통신의 사장이 정신을 가까스로 차렸다. 다행히 황상의 대명을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았다.

“정녕당과 연결해 주게.”

― 알겠습니다.

사장의 귀가 닿은 수화기 너머에서 교환원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도 굉장히 긴장한 듯했다.

이윽고 교환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연결되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폐하.”

사장이 해청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수화기를 건넸다.

“오, 이리 줘 보게.”

크흠, 해청은 목을 가다듬었다.

“들리시오?”

― 폐, 폐하! 용음이 선명하고 잘 들립니다!

정녕당의 수화기 앞에서 준비하고 있던 시중의 목소리가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렸다.

해청이 수화기를 들고 있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황제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대단하군. 대체 이런 기물을 어찌 발명했는가. 이것으로 먼 거리의 정보가 더욱 잘 오갈 수 있겠어. 그대와 개발자들에게 상을 내리겠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만 폐하, 이미 저희들은 충분히 보답을 받았사옵고 앞으로도 그러할 텐데….”

“그래도 대주주로서 가만있을 순 없지. 여봐라!”

“예, 폐하!”

“이번 전화기 개발 명장들에게 일천 원씩 하사하도록 하라.”

사실 가장 많이 지분을 가진 자는 따로 있었지만, 황실도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하사한 금액은 엄청나게 많진 않아도 상당한 돈이었다. 모두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좋아, 시중은 내무상서와 우정국장과 회의하여 이 체계가 황성과 조정뿐만 아니라 전 고려에 널리 퍼질 수 있게 해보시오. 하하 이거 참 편리하구만. 아니 그렇습니까, 시중?”

― 예 실로 그렇습니다. 실로 상서들을 먼 거리에서도 빨리빨리 독촉할 수 있는 기물이 틀림없사옵니다.

내무상서의 얼굴이 방금 전까지 좋다가 갑자기 파랗게 변했다. 현 시중은 대단히 악랄한 자였다. 성품은 좋았지만, 워낙 완벽주의자라 상서들을 들들 볶는 악덕 고용주라는 뜻이었다.

누군가 불쑥 말했다. 입에 기름이라도 칠했는지 혀가 매끄러웠다.

“실로 천고일제의 존명이 어울리는 치세의 상징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이 참.”

* * *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 뒤, 고려 통신의 2대 주주는 최대 주주를 만났다.

“천고일제라니 정말 부끄럽습니다.”

“사실이 그런데 부끄러워할 일이 뭐 있소.”

소손이 천고일제면 당신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만고일제? 십만고일제? 억고일제?

해청은 질문을 참았다. 말을 꺼내봤자 좋아하지 않으실 것이 분명했다. 만 년 동안 계속 네놈들 뒤치다꺼리하란 말이냐. 이런 불호령을 듣는다면 아직 해원에 비해 이 선조에 대한 적응이 끝나지 않은 해청은 지레 겁을 먹을 것이 분명했다. 선조의 용음은 신하들이 자신에게 하는 예법적 말이 아니라 정말 용의 목소리와 같을 정도였다. 진노한다면 기세(혹은 고막)가 감당키 어려웠다.

상민은 해청이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황제의 집무실에 있는 전화기를 한 번 들었다 놓았다.

사실 상민은 전화기 자체야 해청보다도 먼저 접했다. 특허권 분쟁의 해결 지시를 내린 것도 그였다.

다만 황제의 방에 있는 전화기는 예전 생의 표현으로 하자면 굉장히 앤티크한 디자인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것이 모던함, 즉 현대적이라고 불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전화기 말고도 갈 것들이 많다. 해청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는 그것들을 보러 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언제 만들 거요? 밑바탕은 다 구상한 듯하던데.”

상민은 솔직히 국제 정세를 논하는 것에선 해원보다 해청이 더 말이 통했다. 둘은 대체로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아마 이전에 이 용상에 앉았던 아이들이나 나중에 앉을 아이들을 전부 꼽아봐도 그럴 것이었다. 이전에 앉은 아이들은 ‘세계화’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은 어색한 중근세의 인물들이었다. 반면, 이후 용상에 앉을 아이들은 앞으로 더더욱 커질 내각의 권한에 밀려날 것이 분명했다.

해청은 그 중간의 아주 미묘한 시기에 있는 황제였다. 내정뿐만 아니라 외교권에서도 내각과 시중의 권한이 강해지고 황제의 권한은 차츰 약해질 것이지만. 그럼에도 당장의 세계 외교는 군주들의 손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만큼 해청의 입김은 가장 강력했다.

별다른 능력이 없다면 쉬이 내려놓겠지만 해청은 그의 이전 발언과 행동들에게서 알 수 있듯 매우 확고한 인물이었다.

해청은 일어나 집무실 옆에 걸린 거대한 대형 지도 앞에 섰다. 전 세계의 지형이 가장 잘 표현된 고풍스러운 지도였다. 아프리카와 다른 곳들의 최신 정보도 수집되는 즉시 내관들이 교체하곤 했다.

아프리카 문제는 이전에 이미 논했었다.

둑과 항구, 철도를 깔자는 의견은 해청의 제안 이전에 상민이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상민과 해청 모두 이런 문제에 대한 항구적 해결책은 딱히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 나라가 잘살고 평화롭기 위해서는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 제일 컸다. 그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된 위정자와 검증된 제도 아래서 제대로 살아간다면 문제는 발생할 이유가 없다.

다만 반대로 악랄하고 잔혹한 지도자와 불안정한 제도 아래에서 살아간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고려가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해주겠지만, 그들은 그들 스스로 내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지.”

“옳습니다.”

세계의 문제는 아프리카에만 있지 않았다. 갓 독립한 중앙아시아와 누더기들을 억지로 기워 놓은 누산타라의 문제도 있었고, 군벌 세계가 열린 지나의 문제도 있었다. 옥저의 문제도 있었다.

이런 문제들에서 고려의 책임은 분산하고, 권한은 더 키워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한 가지뿐이었다.

“국제 연합을 만들어야지요.”

국제 연합, 혹은 연합국(United Nation).

이전 삶, 2차대전의 연합국 회의기구가 그대로 유엔의 전신이 되었던 것과는 반대였다. 2차대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고려 주도로 먼저 연합국을 만들려는 셈이었다.

해청은 테르샤로마 조약국의 구성원을 그대로 국제 연합으로 만들길 원했다.

물론 이젠 유럽만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과 백제, 옥저, 강화, 주, 유구, 루밀 키치파닐 등 그야말로 모든 나라가 참가할 수 있었다.

물론 참가도 자유긴 했지만, 고려는 그들의 영향력을 총동원해서 될 수 있는 거의 모든 나라를 가입시킬 생각이었다.

굳이 패권을 쥔 고려가 이런 것을 만들 이유가 있는가?

누가 그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내무상서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패권을 쥐었기에 이런 것을 만드는 것이었다. 패권국 고려가 독박으로 쓸 온갖 책임도 국제 연합이 있다면 그 구성원들이 일부 나누어 쓸 것이다. 이것만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국제 연합으로 실시되는 온갖 일들의 도덕성과 객관성도 담보될 수 있었다. 전후 태어난 신생아 국가들에 대한 선거나 왕조에 대한 관리감독, 대규모 학살이나 기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간섭, 경제적 원조에 대한 것도 내정간섭이라는 오명을 최대한 덜 쓰면서 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상민도 유엔이 마냥 평등하게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고 인지하고 있지 않던가. 상임이사국 체제는 물론 없겠지만 비슷한 것은 만들 생각이었다. 사실 국력에 대한 고려가 없이 형평만 논하는 세계 기구는 실로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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