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65화 (465/653)

부마도위

창양에서 개선식이 열렸다.

다른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신민의 돈과 인력으로 치른 전쟁에 승리했다는 권위와, 이에 황실과 정부의 지지율 모두를 끌어 올리기 위한 행사였다.

전쟁의 규모도 규모였으니만큼 역대 최고로 화려하고 압도적인 규모로 개최되었다.

심지어 축하비행도 있었다.

비행기 등장 이후, 곡예비행의 탄생도 동시에 이루어졌었다.

부익사는 항공 기술력을 과시하고 군뿐만 아니라 관과 민간 같은 곳에서의 판매처를 확보하기 위해 소속 비행사들의 곡예비행을 준비했다.

복엽비행기는 시간이 더 지나면 모르겠지만 아직 최신식의 기술력이라 신원이 입증되지 않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살 수는 없었다.

다만 농무부나 정부의 다른 부처들이나 남려의 농업협동조합, 북려의 기업농과 같은 곳에서는 여건만 되면 충분히 구입할 수 있었다. 부익사는 이러한 곳에 비행기라는 물건의 매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비행기라는 것 자체가 발전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곡예비행은 대단히 복잡하지 않았다. 복잡한 비행은 위험했으며 아직은 그 정도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전에도 비행선이 등장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으니 하늘을 그보다 빨리 나는 편대 비행기들은 충분한 볼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상현은 세희와 함께 근위비행단의 소속으로 사상 처음으로 공군의 축하비행을 실시했다.

그 뒤에는 비행기에서 내려 행사에 참여해야 했다.

엄선된 자들이 연단에 모였다. 열일곱 남짓 되는 것 같았다.

참전 용사에 대한 훈장 수여식이었다.

고려는 이번 대전의 서훈을 놓고 그간 다소 모호하고 난잡했던 서훈 체계를 완전히 가다듬었다.

훈장에 계급과 출신은 아예 상관이 없었다.

솜강 유역의 전투에서 한 치의 실수도 없는 전술적, 전략적 능력을 보여준 손규호 장군.

아덴 해전에서 탁월한 기동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김태인 참장.

소속 자전거 부대가 적진을 포위하기 위해 나아가다 고립되자 총알과 포탄이 오가는 무시무시한 전장에서 상급부대와의 연락을 위해 사선을 뚫고 긴 거리를 세 차례나 왕복했던 데이비스 부위.

심지에 불이 붙은 채 참호로 날아온 적 수류탄을 무려 세 차례나 집어서 되던지고, 그것도 모자라 착검돌격을 해오는 프랑스군에 맞서 그 무거운 자우어 기관총을 한 손에 들고 적의 선봉을 꺾으며 신화적 무공을 세운 김홍태 상병까지 직무에 어울리는 기대 행동 이상으로 업적을 이루어 낸 자들에게 훈장이 돌아갔다.

과거의 전쟁에도 군인에 대한 포상은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훈장을 주며 기리는 것은 고려가 최초였다.

이번에 고려의 서훈 관습과 체계를 보면서 스웨덴과 도이치 등의 조약국이 비슷하게 따라 할지도 모르지만.

훈장의 종류도 적지 않았다.

다만 민간인에 대한 훈장은 지금 이곳에서 주지 않을 테니, 개선식에서 줄 훈장은 전부 다 무공훈장에 관한 것들이었다.

모든 훈장 수훈자들은 존경받아 마땅한 자였고 자격도 군공만 충족한다면 상관이 없지만, 훈장의 위계는 엄연히 존재했다.

무공훈장도 그러했다.

가장 밑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금은동의 분류에 따른 별 모양의 훈장이 있었다. 제각기 재질에 따라 금성인지 은성인지 동성인지 구별했다.

이를 삼성훈장이라 했다. 육군과 해군, 공군이 모두 동일했다.

그 위 등급의 훈위이자 차상위 훈위는 군대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 유구한 옛 전통에 따라 사방의 신수 이름을 붙였다.

백호, 현무, 주작은 제각기 육군과 해군, 공군의 차상위 훈위를 상징했다. 원래는 청룡을 더해 네 마리 영수들을 사상(四象)이라 불렀지만 용이 제외되는 까닭에 세 훈장을 통틀어 삼상훈장이라 불렀다. 물론 삼상훈장은 위계의 서열을 논할 수 없었다.

삼성훈장과 삼상훈장도 대단했다. 모두가 존경했으니 제아무리 지역유지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선 이와 같은 훈장 수훈자들을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 분명했다.

다만 그 삼상훈장보다도 위에 있는 훈위가 있었다.

황실을 상징하는 까닭에 사상에서 홀로 떨어져 나온 용은 최상위 훈위로 명명되었다.

이름은 쌍룡대훈장(雙龍大勳章). 군의 구별 없이 고려 제국의 군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다.

화려한 훈장의 가운데에는 두 마리 용이 서로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쌍룡대훈장의 수훈자는 그 권위를 몹시 존중받았다. 황제와 황후, 황태자를 제외하고 시중을 포함한 모든 관리와 의원들에게 먼저 경례를 받았고 특별한 자리에서는 황제마저도 먼저 예우를 다했다. 어떤 사람이 표현한 말마따나 그야말로 쌍룡지손이 된 듯한 기분을 누릴 수 있었다.

다른 훈장도 마찬가지지만 일평생 가족이 살기에는 절대 부족함 없는 넉넉한 연금을 받았으며, 죽은 다음이나 사후 추서되었을 때도 그 직계 유가족에게 마땅한 의전이 행사되었다.

연단에 나온 열일곱 명은 모두 쌍룡훈장의 대상자였다.

희생과 전공 모두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대상이니만큼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아마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전쟁이 으레 그렇듯 죽은 사람도 많았고 명확한 전과를 가리는 과정에서 소실된 증거자료가 많으니만큼 나중에 추서되거나 사후 추서가 될 수 있었다.

“수훈을 받을 분들께서는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황제 해청은 자신에 이어 앞으로 제위에 오를 황제들에게 쌍룡대훈장만큼은 직접 수여하라 명을 남길 생각이었다. 그 밑의 훈장들은 사람이 많으니만큼 시중이 수여하겠지만 그 자신도 이 자리에서 첫 번째 쌍룡대훈장의 수여를 담당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제독.”

“감사하옵니다.”

김태인 참장이 훈장을 패용하고 물러났다.

“귀관은 정말이지 엄청난 전과를 세웠습니다. 참 대단하고 고맙습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김홍태 상병이 물러났다.

하지만 해청은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본 뒤에는 어색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훈장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순서는 가나다순이었다. 저놈이 저기 서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참령 다르크 상현.”

“크흠, 고생이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대는 나중에 보지요.”

이후로도 손규호나 표창진, 다른 서훈자들이 받고 물러나자 연단 위에는 오직 한 명만 남아 있었다.

그동안 나이와 계급에 상관없이 존대를 해온 해청도 마지막 인물의 앞에선 표정을 편안히 풀었다.

“고생이 많았다.”

“감사합니다.”

세희는 사적 인사 대신 경례를 했다.

지금은 정복이 더없이 어울렸다.

전쟁에 나가기 전의 소녀와 지금의 황녀는 완전히 달랐다.

세희의 눈동자는 예전처럼 망아지 같지 않았다.

어떠한 경험을 한 것일까, 해청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함께 싸운 자들을 생각하는지, 참전한 전투의 참혹함을 되새기는지 모르겠지만 세희의 눈은 해청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직접 훈장을 걸어주는데도 깊이 침잠해 있었다. 오랜만에 오라버니를 보면서도 즐거이 웃지 않았다.

해청은 그래서 자신의 여동생에게 미안했다. 대신 나가서 싸워준 덕에 고맙기도 했다.

“너는 이 상에 충분히 어울린다.”

세희가 쌍룡훈장을 받는 것을 두고 다른 말이 있었다. 일부 참전하지 않은 배불뚝이 정치인들은 가끔 다른 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입 밖으로 제대로 꺼내지는 못할 말이었으니 아마 사적 술자리에서 지껄였을 것이다.

종통에게 그냥 수여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럴 거면 무공훈장의 수여자 평등성을 선전하지 말고 따로 종친용 훈장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반쯤 빈정거린 발칙한 자도 있었더랬다.

하지만 대전에 참가한 병사들은 오히려 달랐다. 그들은 ‘붉은 공주’가 받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받겠느냐고 반문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기체당 단독출격 횟수가 가장 높은 조종사는 세희였다. 이 등이었던 상현은 헝가리에 떨어진 기간이 있어 출격 시간은 다소 밀렸다.

전공을 가장 많이 보인 것도 그녀였다. 손규호와의 면담 이후 주로 정찰 임무에 주로 배속되었지만, 그녀가 정찰 도중 아군의 근접전투지원을 외면한 적은 없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아군의 사기 진작 효과에서 그녀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문제를 제기하긴 했었다. 그녀의 전과가 역사에 남을 정도긴 하지만, 외부의 시선을 생각해 주작무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어떠냐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해청은 시선을 생각하지 않았다. 훈장에는 오로지 객관적 지표가 우선시되어야 했다. 명예와 긍지와 같은 감정의 훈장은, 감정으로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으로 수여되어야 했다. 그녀가 자격이 없다고 하면 공군에서 수여자는 나오지 못했다.

해청이 올린 결과가 아니었다. 군무부와 중서성에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

이후엔 다른 예식의 순서가 진행되었다.

훈장의 총 수여자들은 쌍룡대훈장을 받은 열일곱 명보다 훨씬 더 많겠지만, 개선식 이후에 따로 큰 시상식을 열어 시중과 상서령이 분담해 수여할 것이다.

지금은 축제가 열렸다.

* * *

축하비행과 개선식을 준비하랴 한동안 고생을 많이 했기에 개선식 당일 상현은 숙소에 귀환하자마자 실신하듯 쓰러져 잤다.

다음 날에도 모든 것을 잊고 푹 쉬고 싶었지만, 저녁을 들 시간이 되자 온몸이 몸살이 난 와중에 억지로 황궁으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밖에선 폭죽 소리가 요란했다. 삼박 사일의 불꽃놀이는 앞으로도 이틀간 이어질 것이다.

화약 기술이 발전되며 폭죽도 어마어마하게 발전한 모양이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밤에 꽃봉오리가 피어났다.

그는 내관이 따라오라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지는 황실 내부의 접견실이었다. 본 적이 있었다.

“참령 다르크 상현은 무릎을 꿇으라.”

그 안에서 이미 대기하여 있던 해청이 상현이 들어오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예?”

“꿇으라면 꿇어.”

“아, 알겠습니다.”

옆에는 세희도 있었고, 아주 예전에 뵈었던 상황 폐하와 태후께서도 계셨다.

본능적으로 사태를 직감한 상현이 넙죽 꿇었다.

내관이 고풍스러운 두루마리를 펼치고 미리 준비된 글을 읽었다.

궁정 예법이 으레 그러하듯 길고 지루했지만 상현은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전부 다 들었다.

― 그대를 사곡후, 부마도위에 임명한다.

황실은 여전히 옛 풍습 중 지킬 것은 지키고 있었다. 지엄한 종통인 공주의 부마도위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았다. 공후의 지위가 유명무실해진 것은 아득한 옛날이었고 사곡후라고 해서 사곡을 봉지로 삼는 것은 아니지만 뭐 어떻겠는가, 그냥 받아들이면 되었다.

결국 정식으로 결혼을 허락한다는 말이었으니 상현은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힐끗 고개를 들어 보니 장인께서는 화가 잔뜩 나신 것 같았다. 이유는 뻔했다. 만약 그가 쌍룡훈장 수여자가 아니었다면 딸 가진 아버지는 분명히 몽둥이를 들고 저 밉살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사위를 어떻게 해보려 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상현은 주제를 알았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부마도위에 대한 임명식은 지금이지만, 결혼식은 나중일 것이었다. 아직은 ‘예비’ 사위였다.

이후의 저녁 식사는 가족끼리 하기로 했다. 다만 해원과 태후는 다른 약속이 있어 물러났다. 황제 부부와 그 남매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부마도위만 세 명이라, 상현은 그들과 열심히 어울렸다.

부마 중에는 특이한 사람도 있었다.

한낱 재봉사 출신의 부마는 외모와 키 어느 한 군데도 잘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세희의 언니, 연희와 결혼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었다.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재봉사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장담하건대, 동서는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 적게 놀란 축에 속하네.”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할 게 뭐 있겠는가. 나도 아직 연희에게 어울리느냐 생각해보면 확신이 들지 않는데.”

“나중에 술 한잔하실까요?”

“술은 사양하지. 그것만 먹으면 한 이틀간 손이 떨려서 말이야. 다만 차 한잔은 받아들이겠네.”

“알겠습니다.”

해청은 세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좋은 자리를 기념하려 한 모양이지만,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 있었다. 특히나 화자가 황제고 다른 화자가 군의 장교라면 더더욱.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지금은 가족으로서 하는 말이지만, 이후엔 정식으로 명령이 내려갈 거야.”

해청은 더 이상 막내를 이전처럼 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는 동생이지만, 이미 한 사람의 몫을 충분히 한 군사영웅이었다. 오히려 지위에 걸맞은 취급을 해주는 것이 존중이었다.

“이번의 조약으로 꽤 많은 나라가 독립했단다. 너도 알겠지?”

“알고 있어.”

“몇 군데 지역은 이미 아버지가 갔다 오셨다. 또한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갈 필요가 없어. 너무 멀기도 하고 다른 분… 사람이 처리할 것은 처리했으니까. 다만 이번 기회에 아프리카에 있는 우리 우방국들에 대한 순방을 너에게 맡기고 싶다. 군사영웅으로서, 그리고 황실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왕실과 종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과연 그들이 우리의 대우에 걸맞은 품위를 지녔는지 알아보고 오거라. 외무부에서 너의 의전을 담당할 것이다.”

“좋아. 다만 배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가게 해줘. 복귀할 때도 대동양을 타고 오진 않을 거야.”

“…아직도 그 소리냐? 세계 일주?”

“나 혼자만의 명예도 있지만 공군의 명예가 달린 일이야. 제국 공군 소속이 아닌 사람, 혹은 다른 나라의 사람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 내가 능력이 된다면 더더욱.”

해청은 상현을 보았다. 상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알았다. 허락하마. 다만 기러기의 항속거리와 신뢰도를 상향한 기체가 있다니 그것을 타본 뒤에 가거라.”

* * *

다음 날 겨우 시간이 난 상현은 창양의 한 오래된 주점에서 오래된 친구를 드디어 마주했다.

주점은 여전히 어둑어둑하고 분위기 있었다. 이제는 축음기까지 틀어져 나직한 찰현금 소리도 들렸다.

좌석 간의 구분이 잘 되어 대화 소리도 그렇게 잘 새어 나가지 않았다. 허심탄회한 말을 하기엔 좋은 곳이 분명했다.

“이야, 전쟁 영웅 납시었네. 못 보던 사이에 아주 훤칠해졌어?”

“말도 마라. 이번 개선식에 훈장 받는다고 얼마나 들들 볶아대던지…….”

다르크 상현은 선형의 등을 두들겨주고는 자리에 앉아 두루마기를 벗었다. 공군 정복이 있었다.

“그게 받은 훈장이냐? 한번 보여줘라.”

선형이 애가 달았다.

훈장을 받았단 소식을 들은 상현의 친구는 대부분 저랬다.

“여기.”

상현은 가지고 온 쌍룡훈장을 보여주었다. 원래라면 약장을 패용하는 것으로 그쳤겠지만 하도 졸라대서 가지고 나왔다.

“대단하구만. 정말 고생이 많았다.”

선형은 훈장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몇 번 쓰다듬어 보더니 이윽고 부러운 듯 그에게 다시 되돌려주었다.

좋은 친구는 막역한 사이에도 존중이라는 개념을 지키는 친구였다.

나이가 지날수록 그러했다. 게다가 선형은 전쟁에 참여치 않았던 만큼 그 존중은 깊이가 더 있었다.

“별말씀을.”

상현은 품속에 훈장을 넣고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정말로 부마가 된 거냐?”

“그래, 항상 훈장 다음엔 그 소리를 하더라.”

“넌 진짜 미친놈이야. 제국 최고의 부러운 놈이라고. 알아?”

“알아, 아니까 그만해. 벌써 몇 번 그 소리를 들었더니 지겹다.”

“임마, 가장 친한 친구한테 그 소리 몇 번 더 듣는다고 귀가 닳냐.”

“황실의 이야기를 밖으로 자세히 꺼낼 순 없어. 이해하지?”

“에휴. 진짜. 그래. 알았다. 그럼 전선에서 어땠는지 말해줘. 한 번도 그곳에 가보지 못한 미련한 중생을 위해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한동안 상현은 전쟁에 대해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전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비행이라는 것이 어떤지.

선형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선형은 아주 많은 전쟁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읽은 보고서만 하더라도 오히려 상현보다 많을지도 몰랐다.

한동안 묵묵히 듣던 선형이 불쑥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아쉽네.”

“네 작품이 어떻게 굴러갔는지 보지 못해서?”

“그래.”

상현은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솔직한 말로, 나는 네놈도 훈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전차의 아버지. 그리 불리지?”

그 이상 말하는 것은 기밀, 허나 선형은 그 정도의 칭찬으로 족했다.

“수많은 땅개… 아니 전우들이 너에게 감사할 거야. 그 철괴물은 내가 봐도 정말… 대단했거든. 엄청났다. 내가 그랬으니 프랑스 놈들은 똥오줌을 가리지 못했을 거야.”

상현의 칭찬에 선형의 얼굴에서는 숨길 수 없는 뿌듯한 감정이 보였다. 다른 친구들이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무슨 지나 땅에 사는 눈탱이곰(판다)마냥 거무죽죽한 안구흑륜이 있냐고 놀려대었지만 그 피로의 대가는 보람찼다.

오랫동안 껄껄대며 이야기를 나눈 그들이 일어날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선형이 지갑을 열었다.

“내가 내도록 하지.”

“야, 나 부마도위야. 내가 낸다고.”

하지만 선형은 그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송구하오나 부마도위 겸 사곡후 영공 저하, 저하와 공주 전하의 재산을 다 합쳐도 저보단 못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상현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선형의 집안은 평범한 이들 중에선 좋지 않은 축에 속했다. 오래 사귀었으니 집안 형편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정도라고? 세희를 언급할 정도로?

공주가 황실의 엄청난 자금에 관여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결혼할 때 일시로 챙겨주는 금액이 절대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도 군 봉급을 받았고 쌍룡대훈장에 의한 연금도 받았다. 그녀의 말로는 연금을 전부 군인복지기금에 기부한다고 하던데, 어쨌든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니었다.

“대체 어디서 근무하길래? 병기개발단 아니었냐?”

선형이 아주 조그마한 소리로 속삭이며 대답했다. 과장이 잔뜩 섞인 투였다.

“기밀이야. 못 말해줘.”

“내 비취인가도 그리 낮지는 않을 텐데?”

선형은 어딘가 조금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부심과 오만함 그리고 피로감과 후회, 우울 등이 혼재한 표정은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난 그보다 훨씬 더 높으니까.”

상현은 그 말을 듣고 한 차례 웃어 보이다가 선형의 얼굴을 보고는 이윽고 입을 다물었다. 친구가 허언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뭘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 주제에 대해 대화가 더 이어지면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괜찮아. 나보다 더한 놈도 있으니까. 난 그나마 땅에서 굴러다니는 전차였지, 그놈은 배라고. 배에서 비행기를 띄워야 한다고.”

속삭임 이후에는 마치 천둥 같은 웃음소리가 선형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 으하하!

상현은 광인처럼 웃어젖히는 친구를 한 차례 다독였다. 친구의 눈에선 기쁨인지 슬픔인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작가의 말]

단독출격횟수 : Sortie

훈장 체계를 미국으로 따지면 다음과 같습니다.

명예훈장 = 쌍룡훈장

수훈십자상(해군십자상, 공군십자상, 해안경비십자상) = 삼상(三象)훈장

삼성훈장 : 은성 동성 무공훈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