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58화 (458/653)

시베리아 전쟁

머나먼 서쪽에서 한 대공이 차르에 맞서 끝까지 그들의 신념과 자유를 수호하던 시기.

동방의 대지에서도 엄청난 수의 기마가 이동했다.

광활한 초원과 초원만큼이나 거대한 침엽수림을 넘어 그들은 북쪽과 서쪽으로 달려 나갔다.

― 두두두두

기병총과 권총 그리고 칼을 든 사내들이 물결치듯 대지를 박찼다.

그 수는 정말로 수만에 육박했다.

세상의 반대편에선 처절한 지옥이 강림해, 사람들이 땅을 파고 들어가 숨어서 총을 쏜다고 하나, 아직 이곳은 아니었다.

사람은 귀했고, 날씨는 혹독했으며 대지는 너무나 광활하니 오로지 사내 중의 사내들만이 말을 타고 총부리를 겨눌 수 있는 것이다.

“이랴, 이럇!”

언제고 팔기의 전부가 이렇게 나선 적이 있었는가.

언제부터 옥저가 저 서쪽의 강대국과 운명을 건 일전을 벌일 수 있었던가.

그토록 별 동요 없던 사내들마저도 이제는 흥분과 쾌감에 취해 있었다.

“멍청한 루스 놈들과 야만스러운 카자크 놈들을 모조리 도륙하라!”

옥저 조정에서 공식적인 허가가 떨어졌다.

군인들은 매번 정치인들을 욕했다.

솔빈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비겁자라느니, 사태를 제대로 모르는 멍청이들이라느니.

허나 조정의 인물들은 그저 나아가 싸우면 되는 팔기들과는 다르게 고려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동안 옥저의 급격한 팽창을 알게 모르게 구속하고 있던 고려의 입에서 승낙의 소리가 나오고, 더불어 러시아가 오스만과 불가리아에서 고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야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이제 옥저는 그동안 그들이 그토록 경계해 왔던 자들과 전면적으로 전투를 치를 것이다.

저 더럽고 비겁하며 거짓된 제국의 사지를 잘라가며 숨통을 끊어낼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불합리한 야쿠츠크 조약을 파기하고 서쪽의 국경으로 인식해왔던 바이칼 호수를 넘어 광활한 시베리아의 대지를 박차고 서진할 것이다.

동아시아의 나라들은 이번 전쟁을 완전히 관망하고 있었다.

참전할 동기와 여력이 모두 없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대국으로 꼽히는 조선은 애초에 북방 영토엔 관심이 없었다. 충분히 산업화의 후발주자라고 불릴 수 있는 조선의 기준에서도 좋은 땅은 여전히 쌀이 재배되는 땅이었다. 얼어 죽을 만큼 추운 땅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북방 진출로가 사실상 옥저에 의해 막힌 이상에는 더더욱.

조선은 루손섬에 불어닥친 전염병을 수습한 뒤에는 루손섬과의 연결을 공고히 하라는 상국의 귀띔에 부랴부랴 내치에 집중했다.

백제는 태풍에 한바탕 몸살을 앓았고 조선과 비슷한 일을 보르네오에 시행했다.

강화는 태풍 피해 말고도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해남도의 문제 등으로 다른 사정에 관여할 기색이 없었다.

지나는 그런 강화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혼란 속에 있었다. 제자리를 잡은 군벌들은 수없이 분열과 통일을 반복했던 지나의 모습을 답습하듯, 이미 썩어버린 명의 껍질 위에서 자신이 다음 천하의 주인이 되리라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러시아와 접한 것은 옥저가 유일, 그리고 북방 영토에 관심과 욕망을 품은 것도 옥저가 유일했다.

지금은 그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그들 산업의 한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모피 산업은 광활한 땅을 필요로 하니까.

이렇기에, 옥저와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땅을 두고 그동안 서로 갈등을 빚었다.

몇 번의 도발, 몇 번의 전쟁, 몇 번의 화친이 이루어졌었다.

옥저는 그동안 류리크조의 러시아를 상대하기 부담스러워했다.

솔직히 강했다. 블라디미르 1세 시절의 러시아는 정말 고려에 뒤이은 세계 제이의 제국을 칭해도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가 부리는 돈 카자크는 흉폭함과 잔인하면서도 천부적인 기병대들이었다.

기어코 이르쿠츠크까지 철도를 이어낸 차르는 동방 영토에 대한 관심을 절대 놓지 않았다.

반면 러시아도 옥저를 상대하기 부담스러워했다.

이 작은 나라는 그동안 어마어마한 성장세를 보였다.

애초에 처음 솔빈에 정착할 땐 제대로 된 나라라고 보기에도 힘들었던 이 작은 나라는 북방 조선계를 주축으로 여진을 규합하고 몽골을 복속한 뒤에는 군사적으로도, 영토적으로도 강국의 자리에 올랐다.

돈 카자크의 흉폭함과 잔인함 못지않게 옥저의 팔기도 잔혹하고 냉정했다.

비슷한 체급의 스웨덴은 모스크바와 가까이 있어 대응하기 수월했지만 옥저는 그렇지도 않았다.

이러니, 시베리아에서만큼은 러시아의 대적자라 칭해도 무방했다.

“공격! 공격하라!”

돈 카자크의 만행들은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

이들은 옥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원주민들을 학살하며, 무고한 옥저의 신민들도 해했다.

옥저가 이를 따지고 들 때마다 그들은 ‘소수의 일개 범법자’의 일탈에 유감을 표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을 뿐, 제대로 된 개선은 없었다.

물론, 옥저의 모피 사냥꾼들이나 도적 떼들도 반대로 저들의 신민들을 해했지만 원래 국가의 입장에선 저지른 짓보다 당한 짓이 머리에 더 남는 법이다.

― 이제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

팔기는 카자크의 극동 요새인 야쿠츠크를 맹렬히 공격했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였다.

돈 카자크들도 옥저의 공격을 듣고 사방에서 모였지만, 그 수는 만도 되지 않았다.

반면 팔기의 병력은 일만 팔천이 넘었다.

이것도 주공이 아니었다.

목재 성벽에 총탄 방어를 위해 사대를 쌓아놓은 것이 전부인 야쿠츠크가 이 맹렬한 공격을 막아낼 순 없었다.

이곳에선 다혈포는 물론이고 예전 전쟁에서나 쓰던 구식 제사총도 귀했다.

야쿠츠크는 금방 함락되었다.

테르샤로마 선언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레나강은 둥둥 떠다니는 돈 카자크의 시신으로 가득했다. 정말 강물이 분홍빛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시는 다음 날 완전히 불탔다. 살아남은 정착민들은 옥저에 의해 남부로 강제 이주해야 했다.

* * *

야쿠츠크는 물론이고 레나강 유역의 중요 정착지인 욜로크민스크와 키렌스크도 옥저의 손에 떨어졌다.

하지만 옥저가 다음으로 노리는 이르쿠츠크는 다른 곳과 달리 이제 예전처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해방제도 옥저를 경계했다.

블라디미르 1세는 이르쿠츠크 참변 이후 극동 군관구들을 설치했다.

아크몰린스크와 크라스니야르, 이르쿠츠크 중심으로 만들어진 극동 군관구들은 행여나 다른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극동의 러시아 패권을 자체적으로 수호할 수 있었다.

아크몰린스크는 카자흐의 땅에 중앙아시아의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였고, 크라스니야르는 예니세이강 유역과 그 너머의 땅들 즉 이르쿠츠크 등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르쿠츠크 군관구는 이러한 두 군관구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자체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

해방제는 옥저를 견제하기 위해 기존의 요새를 더더욱 확충했고 보병 병력과 야포, 제사총을 충분히 배치해 놓았다.

병력도 많았으며, 병력을 지원할 신민들(유배자들)도 서쪽에서 계속 충원되었다.

차르 블라디미르 2세의 치하에선 이미 이들에 대한 지원을 할 여력이 없어 상당히 등한시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긴 했다.

옥저는 멈추지 않았다.

조공을 보내 다른 자잘한 요새를 전부 정리한 팔기의 본대는 본격적으로 이르쿠츠크를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옥저를 상징하는 팔기는 총기병대였다.

하지만 이미 시대는 보병과 포병의 화력이 중요시되는 시대였다.

총기병이 다혈포를 쓰진 못했으니.

그러니 보병대와 포병대의 숫자도 팔기에 육박했다.

이를 총합하면, 무려 십이만 오천에 달하는 대병력.

러시아의 방어군은 합산하여 고작 오만 팔천이니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다만 러시아는 방어와 요새, 요새를 둘러싼 참호의 우위를 지녔다.

이 한적한 땅에서는 엄청난 혈전이 일어났다.

옥저군 총사령관 동가융은 무난한 인물이었다.

그는 수적 우위를 잘 살려 여러 방면에서 요새를 압박했다.

하지만 의외로 러시아의 저항은 강했다.

팔기가 서서히 도태되어가는 병종이라 하더라도, 장비는 러시아 못지않았다. 어쩌면 더 좋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러시아는 지휘관적 능력에선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얄궂게도 이르쿠츠크에는 구제동맹 사건으로 인해 유배를 온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 무리들은 거진 대부분이 장교, 고급 군사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게다가 그 지도자는 무려 선대 차르의 차남, 드미트리였다.

처음 이 깡촌으로 오게 된 드미트리는 크게 절망했다.

당시 이르쿠츠크는 강력한 군사요새로 바뀌고 있었지만 물질적으로는 상당히 형편없었다.

이런 곳에서 가족과 함께 직접 감자나 호밀밭을 일구는 것은 황자에게 정말로 치욕스러운 대접이었을 것이다.

그의 유배가 러시아의 안정에 도움이 되었다면, 드미트리는 그래도 조금은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게 여실히 증명되었다.

제위를 찬탈한 형은 아버지보다도 더욱 미쳐 날뛰고 있었다.

허나 드미트리는 한 번 좌절했을지언정 끝까지 절망하진 않았다.

그는 무덤덤하게 밭을 갈았고, 자신의 유배일기를 써 내려갔다.

가문의 비극을 잇지 않으려 아들과 딸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이러니, 처음에는 차르의 제위 위협 세력이자 유배된 황자를 마뜩잖게 보았던 자들마저도 그를 인정하고 공경하기 시작했다.

옥저의 준동이 확실시되자, 이곳의 총독과 장군들은 냅다 드미트리에게 달려갔다.

이들도 말이 관료와 장군이지 한직으로 내몰린 자들이었기에 옥저의 전면적 침공을 막아낼 담력과 베포가 그리 크지는 않아 보였다.

차르가 알면 대경하겠지만, 지금 차르는 멀고 그들을 향해 내질러지는 칼날은 가까웠다.

드미트리는 자신들을 이끌어달라는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같이 유배 온 장교들을 기용하며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주변 촌락에서 식량을 수확하고 무기와 탄약을 점검하여 방어 태세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니 지금 이르쿠츠크는 드미트리를 중심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방어전을 치르고 있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숲과 언덕, 강줄기에서 무려 열 번의 크고 작은 전투가 일어났다.

기세등등하게 이르쿠츠크를 공격했던 옥저는 처음 몇 번의 전투를 자존심이 구겨진 채로 내리 패배해야 했다.

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러시아였다.

옥저는 지금 러시아 하나만 바라보고 싸우면 되었고, 때문에 계속 지원과 병력을 보낼 역량이 충분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지금 수많은 나라들과 수많은 전쟁에서 싸우고 있었다.

비교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드미트리와 러시아군은 옥저의 공세를 버티지 못해 이르쿠츠크를 버리고 크라스니야르로 후퇴했다.

정홍기가 그들을 맹렬히 추격했지만 큰 피해를 주진 못했다.

이르쿠츠크를 점령한 이후 큰 관문을 하나 넘은 옥저는 천천히 숨을 돌리며 서진할 준비를 마쳤다.

* * *

옥저는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르쿠츠크를 손에 넣었다.

러시아는 덩칫값을 못 한다는 것이 이번에도 증명되었다.

실제로 차르의 동생만 아니었으면 이 전투는 훨씬 더 쉽게 끝났을지도 모른다.

고전하긴 했더라도 엄연한 승전이기에, 솔빈은 축제 분위기였다.

현 상황에 고무된 옥저는 이제 서진하는 군대에 더 많은 전력을 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광대한 시베리아의 영토가 자신들의 손에 들어올 수 있다고 믿으면서.

― 예니세이를 넘어 오비로! 오비를 넘어 우랄까지!

심지어 누구는 저렇게 주장하기까지 했다.

일과가 끝난 솔빈부의 대사관, 유리창 너머 열기에 찬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소주 한잔을 마시고 있던 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우려되는구나.”

대사와 술 동무를 하고 있던 참사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우려되시는지요.”

“옥저의 기풍이 말이다. 전통이라고 해야 할까.”

참사관은 아무 말 없이 비어버린 대사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당하와 정부의 입장은 이해됩니다.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시는 것이 당연하시겠죠.”

“그렇지. 허나 이렇게 옥저의 고삐를 풀어 주는 것이 옳은지 난 아직 잘 납득이 되질 않아.”

“우리의 충성스러운 번국이잖습니까.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양산 이씨는 상황 폐하의 외가, 충정을 의심하진 못합니다.”

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나라 간의 어떠한 관계도 불변할 순 없는 법이야. 게다가 잊었나? 옥저는 우리처럼 입헌군주국일세. 양산 이씨가 해씨에 충성을 바친다 하더라도 왕실의 충정과 국가의 충정은 엄연히 별개야.”

대사는 빈 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하나씩 이야기해 볼까? 난 애초에 옥저와 다른 번국에서 주장하는 범예맥한계라는 말 자체가 거부감이 드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내가 오타와 출신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 허나 범예맥한계의 분류는 너무 우생학적 근거에 뿌리를 두고 있어. 범고려계의 분류가 문화적, 언어적 동질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말일세. 여진과 조선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긴 하지요.”

실제로 고려는 예맥한계 번국들과는 달리 공식적으로 범예맥한계라는 분류를 쓰지 않았다. 범려와 범예맥한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민간에서는 쓰긴 썼다. 신문사의 이름도 예맥한신보가 있는 마당이었으니까.

허나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은 예맥한계 이민자 1세대에 불과했고 2세대가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거의 쓰지 않았다.

“또한 옥저는 너무 군국주의적 기풍이 강하네. 의회가 정착되었지만, 애초에 사람의 기질이 그래. 그들의 태조부터 무장이었고, 정계와 군부를 좌지우지하는 유력한 가문도 전부 그렇지. 차라리 이런 면에선 문적 기풍이 강한 조선이 안심이 돼. 게다가 조선인들은 아직까지도 만동묘에 가 선제 폐하와 주상을 기리곤 하잖나?”

“옥저 태조 또한 황실의 은혜를 입고 건국하지 않았습니까?”

“너무 먼 과거의 이야기에 체감조차 잘 되지 않는 일이니까.”

대사는 일어서서 세계 전도를 살폈다.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세계에도 아직 자세한 측량이 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저들이 어디까지 갈 것 같나?”

“누가 알겠습니까? 정말로 우랄까지 갈지도 모르지요. 보급과 병력 사정을 고려해보면 희박하지만 말입니다.”

“지도에 색칠 좀 한다고, 소국이 단번에 대국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할 텐데.”

대사는 말꼬리를 흐렸다.

참사관이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을 겁니다.”

[작가의 말]

아크몰린스크 : 지금의 누르술탄

크라스니야르 : 지금의 크라스노야르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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