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55화 (455/653)

전쟁 기계(3)

454식 1호 전차의 전술적 의미는 굳이 따지자면 중기병에 가까웠다.

무겁고 느리지만, 한 번의 전투에서 적의 진형을 깨트릴 수 있는 사실로 볼 땐 비유가 나름대로 괜찮았다.

적에게 충격적인 공포심을 심어 줄 수 있는 것도 그랬다.

하지만 전장에서 경기병의 활약도 무시하지 못하듯, 경전차 또한 필요했다.

보병의 바로 옆에서 같이 나아가며 화력지원을 해 줄 존재도 있어야 했고, 혹은 1호 전차가 뚫어놓은 길을 달려 나가 새로운 공세를 가할 수도 있어야 했다.

참호 하나 뚫어놨다고 마냥 느긋하게 가다간, 후방 참호를 또 건설한 덕에 진군이 막힐 수도 있었다.

상민도 알고 있었다.

영국의 마크 전차가 한 시대를 풍미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후에는 르노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지금 당장 완벽한 르노를 만들기에 기술적 한계가 있다면, 포기할 건 포기하고 조금 더 가볍게 만들면 될 터였다.

그렇게 454년 중반에 만들어진 2호 전차는 1호 전차보다 차체 자체가 훨씬 더 작고 가벼웠으며 기동성이 넘쳤다.

그만큼 방호력은 많이 약해졌지만, 가끔은 기동성이 방호력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운용 인원도 고작 두 명에 불과해, 전차장과 조종수만 탑승했다.

1호 전차처럼 사방에 달린 무장도 과감하게 삭제했다.

다만 다시금 주포탑을 달아 기존에 비해 구경이 커진 기관총인 자우어 453 중기관총 두 정만 올렸다.

기관총 르노 FT나 혹은 그보다 더 작은 탱캣급의 경전차인 셈이다.

움직이는 기관총 진지의 목적에 가장 어울렸다.

육군부는 1호 전차를 보고받았을 때, 굉장히 감명 깊었던 모양이다.

강철의 괴물은 남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반면 이들이 2호 전차를 보았을 땐, 회의실에 실망감이 감돌았다 한다.

“주포와 함선도 크면 클수록 좋은데, 굳이 이렇게 작은 것을 만들어 배치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일부는 그렇게까지 질문을 했더랬다.

하지만 훈련장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보고는 자신들보다 일찌감치 앞서서 달려 나가는 1호 전차보다는 오히려 같이 옆에서 엄폐물을 제공해주는 2호 전차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했다.

육군부는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는 기존에 고작 오백 대의 생산만 계획했던 규모를 세 배로 늘려 455년에 예정된 대규모 공세 때까지 1호 전차와 2호 전차의 적절한 수량을 요구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둘 중 더 잘 만든 전차를 따지고 보면 2호가 더 맞았다.

작고 가볍더라도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었으니까.

‘작정하려면 아예 2호 자체를 숨길 수도 있겠지만.’

상민도 고민한 적이 있었다.

너무 많은 단서를 후대에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찾아오더라도 다른 이들은 이 육상병기에 관심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한 번 건조하는 데 엄청난 부담이 되는 전함과는 달리 전차는 그래도 해볼 만한 범위 내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국의 병기에 교란작전을 실시하는 것을 넘어 자국의 병사들이 운용하는 기체에 진심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주객전도가 아니고 뭘까.

언제까지나 혁신을 끌어안고 있을 순 없다. 먼저 선도하기 위해선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했다.

차라리 지금 제대로 만들어 놓은 뒤 전차전의 전훈을 확보하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난 지금 군 개혁을 진행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고려는 전차부대를 편성하기 위해 기존의 군 체계를 바꾸기 시작했다.

현시점 고려의 군대에서 제일 쓸모 없다 여겨지는 부대는 단연코 장다름과 과트라체였다.

아주 먼 옛날, 아즈텍이나 원주민들을 상대로 한 전쟁부터 시작해 몽골 전쟁, 그리고 기타 여러 번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기병 병종은, 이제는 상당히 애물단지가 되어 있었다.

흉갑기병? 이 철 지난 병종은 이제는 동맹국도 쓰지 않는다.

후장식 소총은 이제 일격에 두꺼운 흉갑을 뚫어 기병을 저세상으로 보내줄 수 있었다.

물론 기병총과 검으로 무장한 경기병은 지금의 전쟁에서도 널리 쓰였다.

패잔병을 일방적으로 학살할 수 있는 병종은 아직 대체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얼마간은 쓰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들도 잘 짜인 방어선에 들이박는다면 단번에 몰살당하기 일쑤였다.

기병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을 아는 고려는 아예 이 기병대를 전부 다른 병종으로 교체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기술력과 산업력이 일정 수준에 오른 나라만이 할 수 있는 불평등한 선택이었다.

새롭게 편성된 중전차와 경전차 부대들은 예전의 장다름과 과트라체가 쓰던 부대의 연혁과 이름을 물려받았다.

인원도 마찬가지라, 기병대에 속한 일정 계급 이하의 장교와 사관들, 병들은 이제 전차훈련을 받아야 했다.

* * *

그리고 마침내 455년의 대공세가 시작되었다.

조약국은 전방위적인 전선에서 공세를 벌였다.

하지만 이 모든 공세는 사실 고려의 주공을 숨기고 적들을 기만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거짓 공세로 프랑스 전선이 혼란에 빠진 것을 확인한 고려는 저지대에서 공세를 펼쳤다.

그동안 충분히 비축하고 있던 전차들이 드디어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주 공세의 진격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그동안 네덜란드와 프랑스와의 접경지치고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적이 없었던 릴은 이제 전면적인 공세를 받았다.

네덜란드 헨트에서 출발한 전차부대는 전투 개시 일주일 하고 하루 만에 릴과 랑스, 아라스를 돌파하여 솜강 유역까지 진격했다.

1호 전차는 참호파괴자라는 말이 어울리게 적 참호를 짓뭉개고 있었고, 2호 전차는 병력들 옆에서 직접 화력지원에 열중하고 있었다.

전차의 첫 등장과 활약은 조약국과 동맹국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전함도 이에 비교하지 못했다.

사실 이전까지 충격과 공포의 무기의 대명사였던 전함은 이제 시대가 지나 그 공포심이 조금은 희석되었다.

다른 나라들도 제각기 전함을 건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니까.

물론 아덴 해전 이후 ‘불공급 충격’이라는 말이 각국의 해군부에 떠돌아다녔지만, 이와 같은 일은 군문에 밝은 자들만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먼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고려의 해상패권을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함이 육지로 나오지 않는 이상,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후에는 비행선과 전투기라는 것들이 충격을 안겼다.

땅과 바다, 그리고 이제는 하늘까지 전장의 영역을 확대한 고려는 정말로 추격자들에게 암담한 신음만을 내뱉도록 강요했다.

― 이해가 안 되는 놈들이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따라가야 하냐!

당장 과거의 기술을 따라잡는 것도 무리일진대, 고려는 터르노보의 상공에서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그 기술을 추격했던 러시아를 무참하게 손봐주기까지 했다.

끔찍한 치욕을 당한 블라디미르 2세와 그의 러시아는 안 그래도 불가리아에게 한 대 맞은 뒤에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상태였는데, 이제는 한낱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비행선과 전투기는 의외로 전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다.

비행선은 위압감 하나는 엄청났지만 제발 한 대만 맞아라 기도하며 항공폭탄을 높은 하늘에서 떨어뜨려야 했다.

전투기는 기총소사가 가능해 매처럼 전장의 토끼들을 사냥할 순 있었지만, 대단한 명중률과 지속성을 가지고 있진 못했다.

한 번 쏘면 다시 날아올라 선회해야 했다.

판플루트가 나온 이후엔 그들도 꽤 조심해야 했고.

그러니 보병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전함과 전투기보다도 훨씬 더 큰 충격을 준 것이 바로 이 전차라는 것들이었다.

직접 피부로 맞대는 병기는 실로 무자비했다.

전투가 끝난 이후, 도이치군은 핏물과 살점 등의 오물과 방호된 소총탄의 탄흔이 가득한 전차들을 보며 애써 떨리는 손을 숨겨야 했다.

“판처(Panzer)…!”

대체 무슨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냈느냐고.

도이치뿐만 아니라 다른 조약국 병사들조차 전차의 모습을 보고 덜덜 떨기 일쑤였다.

참호와 철조망, 그리고 이젠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는 적병의 시신을 공평하게 짓뭉개는 이 전차는 상식 밖에 있었다. 입장을 바꾸어 본다면 도무지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러니 프랑스가 받은 충격이 오죽하겠는가.

참호전의 악명이 쌓인 이후, 이렇게 단시간 내에 거의 수십 킬로미터를 후퇴한 적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참호전은 불과 1~2킬로미터를 돌파하는 데 몇 날 며칠을 소모하는 전쟁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상식이 다시금 깨졌다.

전쟁의 초중반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가혹한 참호전은 전쟁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마침내 그 파훼법이 생겨난 것이다.

프랑스도 혼신의 힘을 다해 솜강 북부에서의 일전을 준비했다.

솜강과 솜강 유역에 있는 주요 도시, 아미앵이 뚫린다면 프랑스에게도 미래는 없다.

참호선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병대가 땅을 파내야 했고, 철조망을 설치해야 했으며 포병대가 자리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적의 전차부대는 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어떤 나라가 전 국토를 참호로 만들겠는가.

프랑스로서도 이곳이 뚫리면 그야말로 파리까지 허허벌판이었다.

프랑스가 국운을 건 것처럼, 고려도 이번 전투에 프랑스 동부전선의 거의 모든 병력을 집중한 상태였다.

그러니 솜강 전투는 역대 전쟁 중 가장 큰 규모의 전투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했다.

“직사포를 배치해!”

프랑스는 전투를 준비하며 곡사포로 쓰던 야포들을 내려 직사포로 만든 뒤 전차에게 겨누라 지시했다.

물론 곡사포를 내려 쓰다 보니 정확성은 좋지 않을 것이다.

“여기 화약을 다 파묻어라. 이곳으로 오면 전차의 밑부분을 날려버리자.”

원시적인 대전차지뢰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반쯤은 체념한 상태에서 쥐어짜 낸 작전이었지만 의외로 이 두 방안은 1호 전차의 약점을 공략하기엔 효과적이었다.

1호 전차는 기관과 변속기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느렸다.

그러니 형편없는 대포에도 명중타가 나긴 했다.

아무리 강력한 1호 전차라도 야포를 정확하게 맞으면 파손되었다.

대전차포가 아니더라도, 대구경의 포탄은 아직 대전차전을 상정하지 않은 1호 전차에겐 확실한 위협이 되었다.

제조 방법상의 한계로 충격을 받으면 장갑의 대갈못이 빠져 내부의 승무원을 다치게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또한 하부장갑은 사실상 장갑의 의미가 없었다.

― 쾅

“비바 라 프랑스!”

사흘 동안 그들을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저 괴물 중 몇몇이 마침내 처음으로 휘청거리자, 프랑스군이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이 상대하는 것은 1호 전차만이 아니다.

고려군 그 자체였다.

그리고 고려군도 이미 엿새 동안의 혈전에서 전차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법을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전차는 만능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 취약점을 보조할 병력들이 있어야 했다.

1호 전차가 특유의 방호력을 자랑하며 적의 이목을 끌 동안, 고려군은 2호 전차의 보호를 받는 보병들로 참호를 돌파해 빠르게 진격시켰다.

야포를 대전차포로 운용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이상, 프랑스군은 고려군 보병의 진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했다.

보병을 주시하고 있던 다혈포탄이 그들을 노렸지만, 오히려 2호 전차가 자랑하는 두 정의 대구경 자우어가 화력 면에서 그들보다 우월했다.

― 투다다다

그 와중에도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전투기가 울부짖었다.

대전차포를 사용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끊임없이 하늘을 맴도는 그들은 기총소사로 대지를 긁어대었다.

판플루트가 전투기를 노리고 쏘려다, 오히려 1호 전차의 주포에 박살 나곤 했다.

“맙소사.”

이 모습을 보던 프랑스 지휘관, 페르디낭 드 마르생은 전율했다.

저들은 정말이지 아득히 강했다.

객관적 강함도 강함이지만, 이제는 약점조차 없었다.

모든 면에서 저들의 군대는 서로를 상호보완했다.

한 줌 땅을 얻기 위해 그렇게 많은 프랑스인의 피가 흘렀건만, 저들은 그렇지도 않은 채 우월한 무기와 강철의 벽을 앞세워 진군하고 있었다.

“졌다.”

페르디낭은 사령관이라는 그의 신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화를 내거나 반문하는 이는 없었다.

“늙었군, 나도 늙었어.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겠다.”

쓸쓸한 말이 지휘부를 감돌았다.

전쟁은 어차피 졌다.

이번 전투와는 상관없이 프랑스는 몰락할 것이다.

장교도 병사도 모두가 이를 알았다.

통령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전투에서는 한 번쯤 고려를 꺾어 볼 만도 했을 텐데.

그것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라는 솜 전투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터였다.

공화국의 패배를 몇 개월 저지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지금 유례없는 규모의 전투에서 유례없이 일방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전열보병의 관습이 충분히 남아있는 유럽은 참호전에서도 포격 공세와 보병돌격을 시전하곤 했다.

병사들이 몇 명이나 갈려 나가든 눈 깜짝하지 않는 것이 지휘관이란 작자들이었다.

특히나 혁명군 장교들은 여전히 귀족 출신이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페르디낭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조차도 이 정도로 참담하게 벌어진 격차를 받아들여야 했다.

* * *

솜강 전선에서만 고려군과 조약국은 오십일만, 프랑스군은 사십사만이 격돌했다.

조약국이 병사의 우위를 지니고 있지만, 프랑스는 방어의 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방어의 이점을 살려 적의 공세를 물리쳐 대승을 거두겠다는 프랑스의 자신감은 완벽히 파훼되었다.

손규호는 휘하의 참모들과 아주 치밀하게 저지대 공세와 솜 전투를 계획했다.

전선 가까운 곳에 미리 비행장을 건설해놓았고 전차마다 미리 기름과 탄약, 정비부대를 분배해 놓는 등 전 병과가 고루 전장에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덕분에 위대한 승리를 쟁취했으니, 이제 그의 전술은 세계 최초의 제병합동(諸兵合同)전술로 기록될 것이 분명했다.

전차와 보병, 비행기를 이용한 복합적 군대는 그렇지 않은 군대를 마치 화약 병기와 냉병기를 이용하는 군대들의 격차만큼이나 압도할 수 있었다.

사기가 끝없이 떨어진 프랑스군은 마침내 솜강 유역에서 완전히 후퇴했다.

하지만 고려가 이 후퇴를 가만히 두고 볼 리가 만무했다.

내버려 두면 또 땅을 팔 것이 분명했다.

― 지긋지긋한 참호전은 이제 끝내자.

전열을 이루지 못하고 와해되는 이들의 퇴로를 끊고 재정비를 막기 위해, 고려는 자전거 부대를 보냈다.

나디르 샤가 직접 육성한 부대였다.

어찌 보면 기병대라 할 수 있겠지만, 전투 시에는 자전거는 잘 보관해 두고 총으로 싸우니만큼 기마보병대라고 봐야 하는 것이 옳았다.

기동성 높은 자전거 부대가 후방을 교란하며 저들의 후방 참호 건설을 막았다.

적 기병대가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화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물론 프랑스 본대가 제대로 대응해 온다면 한 줌의 자전거 부대는 패퇴하고 말겠지만, 그들은 오로지 지연전의 목적만 수행하면 되었다.

고려는 자전거 부대가 벌어준 찰나의 시간을 이용해 곧바로 솜강을 도하했다.

그 짧은 시간에 제대로 된 다리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고려는 장갑이 부서진 1호 전차 수 대를 비교적 얕은 부분으로 돌진시켜 임시 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괴상망측한 다리를 통해 비교적 가볍고 속도가 빠른 2호 전차를 도하시켰다.

두 부대가 측면을 완전히 잘라 들어갔다.

확보해놓은 돌파로 사이로 보병대가 진군해 전선을 확고히 다졌다.

프랑스군은 아예 확실히 퇴각하든가 혹은 포위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455년 5월이 되자, 고려는 살아서 도망친 프랑스군 삼십만 중 거의 절반 이상을 계획한 대로 ‘주머니’에 넣었다.

나머지 십오만의 병력이 도망쳤지만, 어차피 솜강으로 조약국을 막지 못했으니 조약국 군대는 이제 보베와 끌레몽, 콩피에뉴 같은 파리의 근교 소도시들을 직접 노릴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말]

원역사 세계 최초의 제병합동전술은 아마 라 말메종 전투를 꼽긴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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