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결권
고려 황태자 해청은 굉장히 꼼꼼하고 까탈스러워 보이는 그의 외모와는 달리 언론을 이용하는 것을 즐겼다.
병을 얻은 이후 대인관계에 두려움을 느끼고 의기소침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해청의 위대한 선조께서도 말씀하셨듯, 두려움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그것을 직시하는 것이었다.
해청은 방구석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자신의 심신 상태를 함부로 입에 담으려는 그 모든 언론과 대면하는 것을 택했다.
제국신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언론과 교류가 없었던 아버지와는 대조적이었다.
이런 황태자의 행동에 언론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를 차기 황제에 어울리지 못하는 뇌전병 장애인으로 몰아붙이는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일시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황실과 지식인들, 다른 신민들을 적대하든가, 혹은 그의 호의를 받아 친밀히 지내든가.
거의 대부분의 언론은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는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지만, 자유가 아닌 방종까지 봐주진 않았다.
그는 적법한 제국의 후계자고, 이를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으려는 자는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었다.
더군다나 해청은 제각기 일정 이상의 교육을 받았던 황실의 후계자 중에서도 정치외교학, 사회학적으로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한 축에 속했다.
신체가 불편하다면 정신이 뛰어나야 한다는 그의 지론 덕에 해청은 쉴 때도 책을 놓지 않았고, 틈만 나면 직접 연서궁이나 창양대학을 들러 여러 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덕분에 그의 논리는 너무나도 유연했고 선구적이었으며 또한 헤아림의 영역이 넓었다.
그와 몇 분이고 토론을 한 지식인들은 제각기 깊은 인상을 받았다.
― 실로 세종 대제의 재림이 아닌가?
누구는 그를 학문으로 경지에 오른 해권과 비교하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는 해권과 해청은 물론이고 정치외교학에서 이름을 높였던 로크 교수 같은 위인들을 많이 지켜보았던 상민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런 지경이니 사실상의 황실 업무를 대리청정한 뒤로, 해청은 언론을 손에 넣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전쟁 직전 중서성에서 꽤나 지지율 높았던 교당의 현 시중도 황태자의 정치적 존재감에 잔뜩 긴장해야 했을 정도였다.
입헌왕정이든 절대왕정이든 아직까지 군주의 역할은 막대했고 외교권에 관해선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창천궁 동궁.
기자접견실.
“그럼 지금 같은 상황에 대해 전하께서는 어떤 영지를 내리시겠습니까?”
신뢰성과 객관성이 엄선된 일곱 명의 기자들이 해청의 앞에서 만년필과 공책을 펼쳐놓고 질문을 했다.
해청은 편한 분위기 속에서 토론을 주도했다.
황태자와의 대담에 어중이떠중이들을 보낼 수는 없는 법. 각지의 주필, 주간이나 편집장 이상급에 해당하는 기자들도 자신의 호기심과 예의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했다.
“이 사람은 그대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요. 영지란 뜻은 과하니 다시 질문을 하시구려. 편하게. 그래 그대들 사장에게 보고하는 투로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사장에게 말하는 것도 딱히 편하진 않지만 복잡한 궁중 용어를 쓸 필요까진 없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했다.
한차례 목을 가다듬은 주간이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해청은 그의 정치 구상에 따라 전후의 질서를 개편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황태자는 다시금 이러한 대전쟁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전후 항구적인 평화체계를 정착시키고 기존의 구시대적인 체제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쟁은 아직도 한창이다.
이 비극이 내일 당장 끝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 언급을 해 놓아야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터였다.
‘인간은 망각을 하기 마련. 모두가 전쟁을 겪어 괴로워서 할 지금 차라리 언급을 해놓아야 한다.’
해청은 어찌 되었든 제국이 승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다섯 가지 조항을 내세웠다.
아주 구체적인 말에 기자들의 만년필 끝이 바쁘게 움직였다.
“첫째로 각국은 더 이상 밀약을 맺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외교는 공개적으로, 솔직한 태도로 해야 합니다.”
4개국 동맹은 그들 사이의 거의 모든 외교를 비밀에 부쳤다.
계획된 대전쟁마저도 사실상 밀실의 결과물이었다.
설마 설마 하며 바라보던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 전쟁 초기 일방적으로 당했던 이유도 이러했다.
징조는 있었더라도, 동맹국들은 그만큼 거짓 외교를 했으니까.
“이는 외교가 아니라 협잡질이지요. 그들의 민의를 대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의회의 반대 의견조차 수렴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자정작용도 기대할 수 없으니 오로지 그릇되고 자격 없는 지도자들의 밀실 야합에 불과하외다.”
기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맹국과는 달리 조약국은 모든 외교활동을 공개적으로 실행했다.
국민들은 자신의 나라 정치인들이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신문에서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영해법을 제대로 제정하고, 영해 바깥에서의 항해자유의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바다는 주인이 없다.
경계를 나눌 수도 없다.
그러니 아주 먼 예전부터 인류는 사실상의 공해자유의 원칙을 알고 사용해왔다는 소리였다.
언뜻 보면 고려는 사실상 태평양 전역이나 대동양 남쪽과 서쪽을 사실상의 자신의 바다로 삼고 있었다.
그런 고려가 굳이 항해자유를 들먹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해양패권을 가진 입장에서, 이전과 같이 베네치아가 수에즈나 지브롤터를 통제하여 앞마당을 확보하려는 행위도 못마땅했던 것이다.
민간 여객선에 대한 공격도 불법으로 지정해야 동맹국들이 행여 어뢰 같은 무기로 기습적, 무차별적 공격을 하는 것을 억제하거나 응징할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해양패권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세 번째는 자유로운 무역을 지향하고 경제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현시점 가장 거대한 공장이자 농장인 고려는 추후 어떤 상황이 되었든 간에 동맹국에게도 물건을 팔길 원했다.
무역은 상호 간의 경제적 이득도 그러하지만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예속할 수 있는, 그리하여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네 번째로 우리는 평화를 위해 서로 군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를 위해 우리는 서로 모여 평화를 논의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하겠지요. 예컨대, 국제 연맹 같은 것을 말입니다.”
이건 그냥 형식적인 말일 것이다.
해청이 어떠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아직 당장 떠오르는 게 없었다.
국제기구라, 실로 모호한 개념이다.
고려가 프랑스의 외젠 통령에게 제시한 구제금융기금의 선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때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써 아직 ‘국제기구’의 개념은 존재치 않았다.
그나마 북대동양 조약기구의 설립이 가장 비슷할 것이었다.
주필들은 받아 적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해청은 잠시 뜸을 들였다.
기자들은 이젠 황태자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그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해청은 그들의 기대대로 폭탄을 꺼냈다.
“지금 이 시대 천하의 비극은 온전히 한 인종의, 한 나라의, 한 민족의 욕망과 탐욕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에서 유래되지요. 모든 민족의 자결권이 각자 스스로에게 주어진다면 어찌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씀이시라면….”
“이 세상의 모든 식민지들은 결과적으로 해체되어야 할 것입니다.”
“……!”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기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서로 표정을 둘러보았다.
“송구하오나 모든… 식민지라 하셨습니까?”
해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 민족은 그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쪽의 식민지도, 패배한 쪽의 식민지도 가리지 말아야 하겠지요.”
기자들이 익숙지 않은 단어를 입에 굴려보았다.
“……자결권, 자결권이라….”
해청은 이들의 이해를 위해, 또한 반발할 수 있는 외신들을 위해 그 자리에서 아예 구체적인 언급을 했다.
“고려 제국 또한 전후 마긴다나오 보호국과 누산타라 보호국 등의 보호를 끝내고, 그들이 자주적으로 정부를 건설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다소 민망한 주장을 벌이고 있는 그리스 또한 그들의 군주를 새롭게 세워야 할 테지요.”
만년필이 맹렬히 춤을 추었다.
주필들은 황태자의 말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필촉 끝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아프리카, 누산타라, 인도를 포함한 고려가 군정을 실시하고 있는 동맹국의 식민지, 그리고 베네치아가 다스렸던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의 전역도 마찬가집니다.”
사실상 동맹국의 식민지 전역을 손에 쥘 수 있는 입장에서, 고려의 행동은 스스로의 재물을 내려놓는 것과 같았다.
앞서 말한 식민지들은 고려의 주권이 명백한 남중북려대륙 본토 및 태평양과 대동양의 섬들을 제외하곤, 유의미한 토착 인구가 거주하여 충분히 이득을 볼 수도 있는 곳들이었다.
허나 해청은 고려가 그곳을 지배하지 않을 거라는 약속을 했다.
해청은 식민지라는 것이 전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체제가 다르고 믿는 신념이 다르다면 착취하여 이윤을 강제적으로 뽑아낼 수 있다.
농장에 일하는 원주민들의 손목을 잘라내며 하루의 작업량을 독촉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고려가 가는 길이 그렇게까지 위험하고 잔혹할 필요가 없다.
거대한 유지비, 민족 갈등, 불화의 씨앗.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끔찍해지는 곳이 이곳들이다.
참으로 친절하지 않은가, 이것을 직접 알려주는 것이.
물론 해청은 가장 인본적인 말을 하면서도 지극히 정치논리적으로 따지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지금 이 말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닐지.
고려의 적들은 물론이고, 고려의 동맹국들도, 심지어 고려의 번국들도 자신의 발언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인들에게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준다?
열의 아홉은 독립을 원할 것이다. 독립이 아니더라도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자치를 원할 것이다.
시간이 지난다면 사실상의 독립 정부가 탄생할 것이 분명했다.
누산타라, 인도, 아프리카.
예맥인들, 유럽인들은 그동안 식민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땅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그래도 우방국과의 관계를 통해 몇몇 나라들에는 귀띔을 해주신 것 같았다.
네덜란드의 빌럼 5세는 사실상 네덜란드 연방국을 만들려는 행보를 보였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파푸아는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부를 구성하겠지만, 여전히 빌럼 5세의 군주권을 인정할 것이다.
네덜란드 왕국의 왕이면서도, 파푸아 왕국의 왕이 되는 셈.
이 낌새는 조선과 백제도 알았다.
조선 왕 이혁은 조선의 유일한 식민지이자 자존심인 루손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매년 마니항에 방문하여 현지 여론을 조선 왕실에 우호적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왕실의 결혼에 그토록 보수적이었던 조선 왕실에서 루손 후궁을 들인 것도 조선의 그러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반면 백제는 면적만큼은 본토보다도 큰 보르네오섬 동북부 지역을 다스리는 것에 크게 힘들어하고 있었다.
거리도 거리인 만큼 그들의 식민지는 전후에 썩 백제에 우호적인 여론은 아닐 것 같았다.
물론 그들의 운명은 그들이 알아서 할 문제다.
허나 그러면 질문이 하나 생겼다.
기자들의 얼굴에도 그 의문이 역력했다.
대체 왜 황태자 해청이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가?
고려가 왜 손해를 보아야 하는가?
사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되었다.
승전국은 가만히 있고, 패전국들의 식민지만 날름 삼킬 수 있었다.
하지만 해청은 선조의 말을 기억했다.
― 모든 식민지의 해방이야말로 항구불변한 고려의 패권을 가장 담보할 수 있다.
지금껏 해왔던 모든 동화정책들.
인종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의회를 설립해 의원들을 중앙에 뽑아놓은 행동들.
기차를 연결하고 전보를 깐 것들.
하나의 나라, 하나의 연방, 하나의 제국으로 확연히 소속감을 가지게 되기까지, 실로 유구한 세월이 흘렀었다.
‘선조께서 피를 원하셨다면 마땅히 취하실 수 있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아니하기에, 개천이라는 연호를 쓴 지 사백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고려는 과거 수많은 부족과 원주민들이 있었던 것과 별개로 견고한 공통분모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이 세상의 모든 나라가 식민지를 가질 수 없게 되어 마침내 본토의 역량으로만 국력을 겨루어야 할 때, 어떠한 자가 감히 고려의 패권에 도전하겠는가?
해청은 문득 고소를 삼켰다.
자신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는 거인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는 셈이었다.
‘도대체 왜 그리 걸으셨는진 한참을 뒤따라가 보고 나서야 진의를 파악할 수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