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41화 (441/653)

불가리아

“이 인간들이 여길 대체 뭐라고 아는 거야.”

결국 도이치군도 랄프가 수상하게 잘 먹고 다니는 것을 눈치챘다.

남의 나라 병사들이 참호와 참호의 경계선에서 어물쩍거리는 것을 본 고려군 장교가 마침내 화를 내며 도이치 장교를 불렀다.

“댁네 병사들 좀 이끌고 돌아가쇼. 도이치 보급도 많이 풀렸는데 우리 애들 거 뺏어 먹지 말고.”

전방의 규율이 이토록 해이해져서야 되겠는가?

배가 고픈 심정은 알지만, 지금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줘야 했다.

“…알겠소.”

도이치 장교는 꽤 중후한 콧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고려군 장교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도이치 병사들을 다시금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시무룩해진 도이치 병사들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장교는 정작 자신은 헛기침을 하며 제복의 매무새를 가다듬었을 뿐,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일 있소?”

“거 혹시 남는 커피나 뭐 있으십니까?”

― 후우

고려군 장교는 서투른 고려어로 말하는 도이치 장교에게 자신이 배급받은 약간의 커피 원두와 설탕을, 녹찻잎을 떼어 주었다.

“귀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고려군 장교는 이 자가 도이치의 귀족, 융커 출신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도이치와 네덜란드, 알비온과 고려가 만든 참호선과 프랑스―오스트리아의 참호선은 이제 거의 고착화되었다.

이제는 뚫으려 시도할수록 아군에만 피해가 누적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도 되었다.

프랑스 통령 외젠이나 오스트리아의 오토 페르디난트도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이는 조약국도 마찬가지였다.

고려가 더 우수한 무기와 장구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총알과 포탄을 맞으면 골로 간다는 것은 여전했다.

인적 자원의 귀중함이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려로서도 엄청난 손해가 강제되는 돌격전을 전방위적으로 할 수는 없었다.

국가의 군대가 싸웠던 전쟁은 이제 군대뿐만 아니라 산업과 경제, 농업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자웅을 겨루는 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싸움은 고려가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조금의 시간이 지난다면, 고려는 이 참호전에 대한 해답을 누구보다 빠르게 찾아낼 것이었다.

혹은, 이미 찾아내었고 그 답들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반면 여전히 3국동맹의 일원인 러시아와 혈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 있었다.

* * *

러시아를 상징하는 색깔, 초록색 군복을 입은 이반이 소총을 들고 전방으로 달려나갔다.

“후욱 훅.”

숨은 턱 밑까지 차고, 정신은 혼미했지만 그는 다리를 재개 놀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 타타타타타

그들을 발견한 적의 톱날에 완전히 썰려 나갈 테니까.

저 도살자들의 톱은 반응속도와 총알의 연사속도가 기존의 제사총이나 다혈포와 비교할 수 없었다.

러시아가 수적 우위를 가지고 이들에게 진격한다면, 저 괴물 같은 총은 화력적 우위를 점하고 그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

겨우겨우 엄폐물을 찾아 등을 기댄 이반은 뒤따라오던 다른 병사들이 피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세상에 대해 욕을 하던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이제는 말해도 대답하지 못하는 고깃덩어리가 되어, 이 차디찬 얀트라강 전선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이들은 대체 뭘 위해 싸우는가?

고향에서 연인이나 부모와 함께 안온한 삶을 살아가던 청년들은 대체 왜 여기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가고 있는가?

빌어먹을 차르, 빌어먹을 귀족들!

시간이 좀 지났다.

총성은 어느새 멎어있었다.

이반은 슬쩍 고개를 돌려 엄폐물 바깥을 바라보았다.

― 파바박

하지만 이반은 그와 동시에 자신이 엄폐물로 삼은 돌의 측면에 총탄이 요란하게 날아드는 것을 느꼈다.

적은 분명히 살아남은 자신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은 이 돌 밖으로 나갈 순 없었다.

돌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행여 다리나 다른 신체 부위가 빠져나갈까, 그는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마냥 몸을 말고 웅크렸다.

눈물이 다 나왔다.

죽음을 마주한 인간은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건 대체로 나약했다.

이반도 딱히 비범하지는 않아 지금의 감정을 극복하지 못했다.

저들은 왜 저렇게 악귀처럼 싸울까.

대체 왜 러시아인들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렇게 맹렬히 싸울까.

저들도 결국, 그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 자애공이라는 자에게 현혹되어 어리석게 투쟁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들도 포격으로 죽을 운명인데도.

탐욕스러운 귀족들 때문에!

하지만 이반도 알았다.

바르나에서 슈멘, 루세를 거쳐 마침내 얀트라강의 전선에 오기까지 러시아가 자행한 짓들을.

차르의 이름을 받드는 군대는 불가리아인들을 약탈했고 강간했으며 학살해 들판에 파묻었다.

러시아는 이들을 도구로 보았을 뿐,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노하실 끔찍하고 잔혹한 장면들은 이반의 뇌리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불가리아의 병사가 총탄이 박혀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이 가진 날카로운 쇠붙이로 어떻게든 한 명의 러시아군이라도 더 저승길 동무로 삼고야 마는 그 악귀 같은 모습을 침략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객관적 전황은 러시아가 우세했다.

러시아는 바르나에서 공격하여 슈멘과 루세를 거쳐 이제는 스트라지차까지 도달했었다.

얀트라강의 지류만 도하할 수 있다면, 터르노보는 지척이었다.

실제로 몇몇 부대는 터르노보의 코앞까지 도달해 그들의 수도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불가리아는 맹렬히 싸웠다.

수도 터르노보는 정말로 총력으로 서쪽의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요새화되어 있었다.

교회도, 대성당도, 궁전도 모두가 요새화되어 정찰 진지가 배치되어 있었다.

기관총과 참호 철조망도 도시의 중심부를 휘감고 도는 얀트라강을 따라 촘촘히 깔려 있었다.

언덕 위에 위치한 도시의 고저 차를 이용해 저지대에 효과적으로 포격을 퍼붓기 위해 만들어진 포진지는 도무지 마땅한 해결방법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터르노보, 혹은 터르노보그라드.

도시의 이름이 유래한 트라노브(тръновъ)의 의미는 ‘뾰족한 가시’였다.

고대부터 난공불락이라 손꼽혔던 이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는 시대가 흘러 흘러 마침내 자애공의 시대에 다시금 예전의 그 흉악한 명성을 자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라.

우리가 피 흘릴 만큼 너희들도 우리들의 가시에 찔려 피 흘리리라.]

이곳에서 러시아는 정말이지 몇 번이고 좌절했다.

이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총탄에 반쯤 터져나가 사방으로 피를 흩뿌린 전우들의 시신을 보고 있자면, 그 명성이 과거의 망령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마련이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전우의 시체 그 너머 러시아군의 진지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추가적인 부대가 더 오지는 않았다.

공세의 규모로 볼 때 이번에 보낸 병사들은 단지 터르노보의 준비태세를 실험해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반은 울먹이는 채로 웃음을 터트렸다.

고요해진 전장에 꺼억꺼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그는 서럽게 울었다.

* * *

극도의 정신적 긴장은 체념과 절망 앞에 사그라들었다.

대신 그동안 누적되었던 육체적 피로가 엄습했다.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서조차, 사람은 잠을 자야 했다.

이걸 잠이라 불러야 할까, 혹은 실신이라 불러야 할까.

이반은 의식을 잃었다.

다시 깨어났을 땐, 그는 둔중한 고통을 머리에서 느끼며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었다.

“□□□□!”

불가리아어를 잘 모르지만, 이반은 자신에게 들이미는 총구는 이해했다.

그는 저항하지 않겠다고 납작 엎드렸다.

어차피 손도 포박되어 있어 뭘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저항할 의지도 없었다.

그저 이 고통스러운 삶이 될 수 있으면 빠르고 간결하게 끝맺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는 러시아군의 포격에 반쯤 파손된 터르노보의 정문을 들어갔다.

러시아군의 입장에선 그토록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 포로의 입장이 되니 너무 들어가기 쉬웠다.

그는 고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어느 순간에 사라져 있었다.

“…….”

터르노보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밖에선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불가리아가 대포를 쏘는 만큼이나 러시아도 포격을 실시했다.

도시는 덩치 크고 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러시아군의 포탄은 불가리아의 유적이나 건물을 가리지 않고 날아들었으니, 아마 살고 있는 사람은 진작 도망을 갔을 것이다.

적어도 러시아군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터르노보의 시민들은 그대로 있었다.

여인들과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남자들은 젊고 늙음에 관계없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총을 들고 있다.

누구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누구는 음식과 총탄이 든 상자를 나르고 있었다.

절망이 감돌아야 할 황폐해진 거리에는 침묵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피어나 있었다.

총을 든 한 노인이 물끄러미 끌려가는 이반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이반에 대한 적의도 뭐도 담겨있지 않았다.

다만 세월의 풍파 속에서 단단히 다져진 결의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이반은 침략자의 오만과 방어자의 결의를 이해했다.

그는 그제서야 이들이 자신처럼 끌려온 것이 아니라, 제 발로 이곳에 남아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 * *

― 똑똑똑

“으…음?”

“송구하오나 전하. 한 시간 뒤에 깨워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알겠다. 후우, 알겠어.”

몸에 천근을 달아놓은 듯, 한없이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일리안 아센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차별적인 포격에 그가 쓰던 궁전도 위험해져 그는 보다 안전하지만 불편한 곳에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그의 옆에서 그를 다독여 줄 옐레나의 포근한 품도 이곳엔 없었다.

물론 그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인 사실이지만.

비명을 지르는 몸을 억지로 끌고 밖으로 나온 일리안에게 불가리아 장군들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장군들 대부분이 귀족 출신이다.

고등 교육을 받은 인물들 대부분이 귀족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였다.

손짓으로 그들의 예를 받아준 일리안이 작전회의실 책상에 앉았다.

그제서야 장군들도 공손히 자리에 앉았다.

지금 그는 귀족들에게서 더할 나위 없는 존경을 받고 있었다.

물론 일리안은 옐레나의 재지로 한 차례 친러파 앞잡이들을 숙청했기에 공포심을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귀족들은 대개 오스만 치하에서 불가리아 민족운동을 이끌던 세력들이기도 했기에 지금 이렇게 단결된 채, 외부의 압제자에게 저항하는 자애공을 심신으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에 대한 존경은 귀족뿐만이 아니었다.

온 나라의 신민이 러시아와 맞서 싸우기 위해 결집했다.

놀라울 정도의 저력이었다.

인구수가 이백만이 되지 않는 이 작은 나라는, 무려 징병률이 칠 할 오 푼이 넘었다.

남자들 열 명 중 일곱 명 이상이 군인이거나 전시근로자인 것이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나머지 남자들 중 절대다수는 불가리아의 미래인 어린아이들이었다.

이는 자애공의 업적은 아니었다.

자애공은 불가리아의 경제와 농업을 조금 살폈을 뿐, 군사체계까지 확실하게 다듬은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나 도이치,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의 국민개병제를 완전히 정착시킨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현상은 온전히 불가리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저항정신 덕에 일어난 것이 틀림없었다.

나라가 그들을 징집하기 전에 그들은 도리어 무기를 달라며 몸을 일으켜 거리로 뛰어나왔던 것이다.

일리안도, 터르노보도, 불가리아도 이들 덕에 버틸 수 있었다.

“작전 회의를 시작합시다.”

“예, 전하. 먼저 획득한 적의 정보를 토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가리아가 획득한 포로와 파견한 정찰병의 관측에 따르면, 러시아는 끝까지 터르노보 대공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였다.

자꾸만 정찰병을 보내 경계태세를 확인하는 것도 그랬다.

“이토록 미련하게 공세를 지속한다고?”

누군가 그렇게 반문했을 정도였다.

터르노보는 포격을 맞아 힘들고 위태롭지만, 그래도 버티고 있었다.

워낙 좋은 요충지에 요새화된 곳이다 보니, 뚫기 위해선 정말로 많은 피가 흘러야만 할 것이 분명했다.

다행스럽게도 불가리아는 개전 직후부터 지금까지 군수품이 심각하게 모자라지는 않았다.

초창기 열차를 통해 오는 보급은 오스만과 군수품을 나누어 써야 했기에 약간 부족했지만, 고려가 아덴 해전 이후 지중해의 제해권을 가져간 뒤부터는 확실히 풀렸다.

고려는 그리스의 항구에서 불가리아 남부를 통하는 보급로로 불가리아에 탄약과 총기를 제공했다.

그리스도 협조적이었다.

불가리아와 그리스는 여러 역사적 관계가 얽혀 있었다.

친밀하기도 하고, 가끔은 적대적이기도 했다.

동로마 제국 때는 그리스 중심의 동로마와 1차 불가리아 제국이 서로 전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반면 1차 불가리아 제국이 동로마에 흡수된 이후에는 서로 친하게 교류했고 동로마가 멸망한 뒤 들어선 오스만 시절에는 같은 정교회 형제로서 동병상련을 공유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최근의 기억이 많이 남아 있기에 서로 꽤나 우호적이었다.

그리스로서는 러시아를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정교회의 나라, 게다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력하기도 했으니.

그리고 그리스는 오스트리아와 맞대고 있는 나라였다.

오스트리아는 전쟁이 일어나기 한참 전, 그리스가 독립할 당시 조약에 따라 그리스와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둘 모두 지금도 이를 지키고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면 그런 조약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

실제로 그리스는 베네치아와 크레타 독립운동에 대해 다투면서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와의 관계도 나름대로 신경 썼다.

하지만 아덴 해전 이후 고려가 지중해를 장악하자 그리스의 태도도 갑자기 바뀌었다.

“우리는 본토와 마찬가지로 악의 제국에 맞서 싸우겠다!”

눈치 하나는 정말 빨랐다.

오스트리아와의 불가침조약은 서로 득보다 실이 더 많기에 깨진 않았고 당시 보증을 서준 고려도 이를 묵인했지만, 그리스는 자신들의 노후화된 군수품도 열심히 불가리아에 보내 러시아와 척지는 것을 선택했다.

보낸 군수품은 추후 본토에 ‘지방군’ 개선을 요구하며 받아낼 생각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터르노보는 외부의 조력자들 덕에 징병된 군사들에게 적절한 무구와 탄약을 보급할 정도를 유지했고, 자신들보다 수배, 수십 배, 어쩌면 수백 배까지 더 큰 나라를 상대로 버티고 있었다.

일리안은 혀를 찼다.

“저들의 꿍꿍이를 알지 못하니 원론적인 대응밖에 없는가. 경계를 철저히 하고, 병사들에게 항시 전투할 수 있는 역량을 유지하라 전하게.”

“알겠습니다 대공.”

“난 오늘 주교께서 하시는 예배 이후 장병들 병문안을 가야 하니 먼저 일어나보지.”

장군들도 제각기 할 일이 많기에, 그들은 정례 작전 회의가 끝난 이후 서둘러 자신들의 전선으로 복귀했다.

일리안이 터르노보 시내에 있는 성 40명 순교자 교회(Св. Четиридесет мъченици)에 가려던 찰나, 누군가 급하게 들어왔다.

“전하.”

“오, 유 부령.”

고려 해군정보국 소속의 이 장교는 고려가 일리안을 위해 보내 준 인원이었다.

지금은 일리안과 불가리아의 미약한 정보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적의 상황이 수상합니다.”

“언제고 그러지 않았던 때가 있었나?”

“하오나 이번에는 조짐이 많습니다. 깊게 투입한 정보원들에게서도 일관된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 부령이 숨을 들이켜고 내쉬며 말했다.

“적의 비행선 공세가 예상됩니다.”

비행선.

일리안도 고려 출신이니 그 모습을 잘 알았다.

“비행선? 비행선이야 자우어 기관총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겠소?”

“꾸준하게 지적된 단점이었지요. 하지만 러시아도 이를 알았을 겁니다. 그들의 신형 비행선은 총탄 정도를 방어할 수 있는 장갑을 아랫부분에 달아놓았다고도 합니다.”

일리안도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쿵 하고 무거운 것이 자신의 마음에 떨어진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입술을 깨물었다.

“…뭐가 되었든 난 이곳에 있을 것이네. 회유할 생각 마시게.”

“아닙니다. 이미 저희는 전하의 결의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퇴각을 간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건 중대한 기밀이므로 제가 직접 가서 처리해야 할 문제일 듯합니다. 제가 테살로니키로 떠날 수 있게 해주소서.”

“내 어찌 그대의 길을 막겠소.”

일리안은 그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어차피 이자는 그의 신하도, 불가리아인도 아니었다.

물론 그가 도망을 간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고려인이 이곳에서 허망하게 죽을 필요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유 부령은 나가기 전,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는 다시금 돌아올 겁니다, 전하. 보름 뒤, 남쪽의 하늘을 보십시오.”

“…남쪽?”

유 부령은 일리안의 습관적인 반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물러났다.

“부디 희망을 버리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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