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37화 (437/653)

개입

을씨년스러운 도시.

한창 약탈이 끝난 이후의 베네치아는 거리에 그 아무도 거니는 자가 없었다.

더러운 도시의 바닥엔 쥐와 오물들만이 남아 이곳에 사람이 살았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람들은 내륙으로 갔다.

재화와 보물들, 미술품들은 바다로 떠났다.

물론 고려가 자신의 동맹국들을 끌고 오기도 전에, 이미 베네치아가 행정수도를 튀니스로 천도할 때 대부분의 값진 재화와 유물들은 모두 챙기고 떠났겠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마치 이 도시에 종말이라도 온 듯 싹싹 긁어모은 흔적이 사방에 가득했다.

남아있는 것은 오직 사람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들뿐.

그리고 그곳에 전함들이 포를 겨누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았다.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성당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산타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또한 그들의 웅장한 건축물들.

역대 베네치아의 도제가 집무를 했던 두칼레 궁전, 페사로 가문의 저택, 델피노 가문의 저택 등이 남아 있었다.

이것을 파괴하는 것은 잔혹한 짓일까.

인류 문명에 대한 모독일까.

지금 당장 그만두어야 할 것인가?

아주 잠시간 3함대의 제독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 정도였다.

반면, 그와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것이 그토록 소중한데, 그들은 왜 다른 이들을 그렇게 모질게 대했는가?

수많은 자들을 착취하고, 죽이고, 약탈했으면서 왜 그들의 것은 그러지 않으리라고 호언장담을 했는가.

아름답고 우아해보이는 이 도시가 희생자들의 유골과 피, 죄악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 자랑스레 여겼단 말인가?

저것도 결국 인간이 만들었던 것인데 그를 파괴하지 못할 이유가 또 있겠는가.

고려는 자비롭지 않았다.

다른 나라가 그들이 자비롭다고 생각하길 딱히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법이란 질서가, 고려를 포함한 모든 이의 행복과 평화, 이득을 담보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수호자를 자청해왔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패권국으로서의 품위와 긍지를 잃지 않았고, 또한 의무까지 짊어진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도록 이어져 내려왔기도 했지만.

분명히 조금 더 쉬운 길이 있음에도 고려는 정도를 추구했다.

그러니 어떤 자가 감히 무도하게 모든 법과 질서, 도덕과 규율을 어기고, 옆에서 같이 나란히 달리는 사람들의 옆구리와 허벅지, 허파에 비수를 찌르며 앞서 나아가려 한다면.

고려는 결승점 바로 직전에 그 비겁한 자의 다리를 잘라낼 것이다.

그들이 두 다리를 잃고 버둥거리며, 정직한 자들이 앞서나가는 광경을 핏발 서린 눈으로 볼 수 있게끔.

그리하여 행여나 다른 자들도 비겁한 술수를 쓰지 못하게끔.

악명?

기꺼이 자청하겠다.

오히려 간절히 원한다.

그러니 우리를 두려워하라.

[짐의 진노와, 우리의 분노를 알려라. 약속과 도덕은 지켜야 하는 것이며, 그러지 않았을 때의 대가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주어라.]

경외(敬畏)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위엄은 공경과 두려움 모두를 충족해야 얻을 수 있다.

단순한 공경으로는 언젠가 배신을 당할 것이고, 단순한 두려움만으론 신뢰를 얻을 순 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흉악하고 끔찍한 아즈텍이 그러했던 것처럼.

천박하고 잔인한 몽골이 그러했던 것처럼.

너희들도 우리의 분노를 직면할 것이다.

함포들은 진작 포각을 재어 놓고 있었다.

도시에는 오랑캐를 태우는 물질, 즉 소이제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그 수량은 가히 엄청나니, 어디를 쏘아도 이 도시는 파멸할 것이다.

― 콰아앙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쏘아진 포탄의 비가, 마침내 바다 위의 도시에 착탄했을 때.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높이로 치솟는 화염 불길을 볼 수 있었다.

영향받지 않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관측자들은 후끈하고 매캐한 공기와 기름과 나무가 타는 냄새를 오랫동안 맡을 수 있었다.

저 현세의 용암 지옥이 가시고 난다면.

베네치아령 아프리카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이름으로 부르지 못하리라.

* * *

사코 디 베네치아.

사실 이것은 약탈(Sacco)이라기보다는 파괴(Distruzione)에 가까웠다.

고려가 유지성 소이제 수십 통 수백 통을 통째로 가져다 놓은 덕에, 도시가 몇 날 며칠을 불탔는지 정확히 센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나고 보았을 때, 도시는 흉측한 흔적 몇 개만을 남기고 아예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확실했다.

물 위에 떠 있는 도시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수많은 말뚝들과 돌들에도 고온의 열팽창이 가해져 박살이 났으리라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이제 이곳은 사람들의 똥오줌과 공장으로 인한 오폐수가 사라졌으니,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다시금 해양 생물들의 터전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코 디 베네치아는 문명이 현대(근대)화되고 있는 18세기에 벌어진 일이라곤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고려를 증오하거나 싫어하는 나라들은 제각기 입을 다물었다.

고려를 좋아하는 이들도 고려의 행동에 겁을 먹었다.

유럽인들에게 있어 고려가 단단히 화가 나 눈이 뒤집힌 듯한 모습은 거의 처음이었다.

물론 바투뭉케 시절, 북원이 패망할 때 한차례 이 소동을 보았던 동아시아의 번국들은 그저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힐끔거리며 유럽의 나라들의 표정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랬지, 고려는 지난 몇 년 동안 돌아가는 사태를 보며 상당히 분노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페르시아만 해전부터, 게토, 대학살, 조약 파기, 민간 선박 침몰, 암살.

사실 저지른 것이 많은 이들은 입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저지른 놈들은 다만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기보다는 고려의 극악무도한 행동을 헐뜯었다.

그 울음소리는 처량하기 그지없어, 사람 물 힘 없는 비루한 개가 곧 닥쳐올 범의 일격을 알면서도 애처롭게 낑낑대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범의 앞발이 그들의 코앞에 당도했다.

* * *

전쟁이 발발한 지 거의 1년이 되는 시점, 북대동양 조약의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참전했다.

알비온 해군은 3함대와 네덜란드의 해군과 함께 이용해 프랑스의 해안가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도 본격적인 훈련이 완료되었는지 알비온 연합의회는 네덜란드로 연합육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연합체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결속은 느슨했었던 삼국은 자신들의 앞마당에서 요란하게 전쟁을 벌이는 프랑스 등 4국동맹 국가들의 행태에 결집했다.

대륙 국가들의 만행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바다로 진출하기 어려워 국력에 제한이 걸렸다 하나, 여전히 잉글랜드는 철과 석탄 등과 같은 필수 산업화 원재료들이 풍부한 축복받은 대지였고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땅도 비옥했다.

고려의 대동양 무역 동반자 중 하나인 에이레의 경제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단지 금융만 따지고 놓으면 리머릭은 암스테르담의 바로 밑까지 올 수 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둘 모두에 비하면 존재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위스키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으니 그걸로 족했다.

알비온 연합은 상당히 담대한 상륙작전을 했다.

프랑스 영토 내로 곧바로 들어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했다.

노르망디가 참으로 먹음직스러워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스도 바보는 아니기에 도이치로 향하는 군단을 제외한 예비 병력은 낭트나 루앙, 보르도와 캉 등의 대동양 해안가의 주요 도시에 주둔시키고 있었고, 상륙 시도를 거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알비온도 해군의 노선을 변경하여 전함이나 수상함들을 건조할 군비를 절약하는 대신 해안가에 활대기뢰정과 해안포, 기뢰를 촘촘히 깔아놓은 프랑스를 단독으로 돌파해 상륙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다.

대동양과 접하는 길이는 무척이나 길어 모든 방면을 다 방어할 순 없을 터다.

그러나 일단 그 정도의 상륙작전은 대체로 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애초에 적진에 상륙작전을 하는 것이 워낙 위험하다 보니 제대로 걸리면 어마어마한 피해를 감내해야 할지도 몰랐다.

현시점, 육상병력의 상륙을 위해선 나룻배로 그 해안가까지 노를 저어 가는 것밖에 없었다.

반면 방어군은 다혈포와 철조망, 소총과 대포로 응수했고.

또한 일단 공격자들이 상륙을 한다면, 방어자들 입장에서도 그들을 포위할 수 있는 차례가 돌아오기 마련이니 역공에도 취약했다.

알비온도 이를 잘 알았다.

그러니 반대로 그들이 상륙할 곳은 프랑스 영토가 아니면 되지 않겠는가?

다윙케르커(Duinkerke, 됭케르크)는 네덜란드의 플란데런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네덜란드―고려군이 프랑스와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이었다.

알비온은 해군의 수적 우위를 이용해, 무력 시위를 하듯 이곳에 이십만 육군을 상륙시켰다.

이 대담한 행동엔 지금껏 해양봉쇄와는 별 상관 없이 계속 도이치를 밀어붙이고 있는 외젠마저도 크게 놀랐을 정도였다.

안 그래도 지지부진한 도이치 전선은 프랑스의 군대 일부가 빠져나가자 더더욱 진전이 없게 되었다.

* * *

개천력 453년 5월 6일.

북아프리카.

마라케시.

탄자.

대동양에서 접근 가능한 마라케시의 항구도시, 지브롤터 밑의 탄자에는 엄청난 수의 고려 선박이 떠 있었다.

전함은 아니었다.

도시 베네치아를 불태운 3함대는 북아프리카를 견제하기 위해 지중해 안쪽에 있었으니 분명히 수송함들일 것이다.

수송함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대형 선박이 이십여 척이 넘었다.

한 번 오갈 때마다 만 단위의 병사들을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이 대형 선박은 몇 번이고 다시금 대동양을 넘어야 할 터.

알비온에 뒤이어 고려도 본격적으로 파병을 시작한 것이다.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훈련을 받은 고려의 육군은 마침내 출정 준비를 마치고는 처음 전선이 열릴 북아프리카로 파병되었다.

고려는 베네치아에게 아덴 해전으로 한 번, 도시 베네치아 파괴로 또 한 번 이미 큰 상처를 입힌 상태였다.

사냥감이 가장 약할 때 시간을 주지 않고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 현명했다.

탄자는 지중해가 아니라서 적의 해상 위협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아군 근위함대나 3함대 파괴함 전대의 호위를 받기도 무척이나 쉬웠다.

항구의 규모도 작지 않아 물자를 하역하기도 괜찮았다.

사실 육군만 상륙한다면 보급은 바다로 할 예정이라 별 상관은 없었지만.

발맞추어 탄자 시내를 걸어 다니는 고려인들 위로 마라케시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고려가 북아프리카를 해방하러 왔다!”

마라케시는 정말 열성적으로 고려를 지원했다.

국력이 모자라 참전은 불가했지만, 유럽에서 일어나는 세계대전에서 언제든지 희생당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의 위치였다.

남쪽과 오른쪽은 열강의 식민지.

서쪽은 대양.

북쪽은 열강.

고려의 개입이 없었으면 이 땅은 언제라도 카스티야나 포르투갈, 혹은 베네치아나 프랑스의 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애초에 태생부터 친려가 아니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붕어한 지 좀 된 태황태후 나디야를 보낼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베리아가 고려에게 비우호적 중립을 지킬 때에도 마라케시는 항상 그들을 견제하며 친려적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차피 길만 빌려주면 보급은 고려가 알아서 할 것이다.

게다가 고려는 이라크에 철도를 깐 것도 모자라, 마라케시에도 라바트와 탄자, 탄자와 멜리야를 잇는 철도를 깔아놓은 상태.

그리 오래 머물지도 않을 것이고 곧바로 카스티야령 오랑으로 넘어갈 터.

카스티야나 포르투갈도 고려에 숙이는 모양새니, 마라케시는 ‘전통적 고려 동맹국’적 입지를 이용해 북쪽의 이웃들에게 자신의 외교적 위치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가득해 보였다.

이후 고려군은 보무가 당당하게 동쪽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혈기 왕성하지만 순박했던 청년들은 이제 정병이라 불릴 만큼의 훈련을 수행해 놓은 상태였다.

이들은 이제 겉으로 보이는 제식은 물론이고 각개전투나 집단돌격, 참호전에 대한 개념을 숙지하고 있었다.

고려의 제식무구들도 충분히 받았으니 능히 제 몫을 해낼 수 있으리라.

훈련기간 일 년은 사실 짧았다.

그러니 이들을 이렇게 만들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좋은 장교와 사관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징집병들의 교관이었던 근위여단은 이미 코가 한번 납작하게 뭉개진 상태였다.

신체적 건강함은 전술적 우위의 한 요소일지는 모르나, 그것만이 온전히 전투의 승패를 가르진 못했다.

‘페르시아의 전갈왕’은 훈련장으로 지정된 넓은 구역에서 온갖 수를 동원해 근위여단을 물 먹였다.

그 인간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성국의 군주였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자신이 고려에게 그렇게 압도적으로 패배했던 것은 오로지 좁힐 수 없는 기술의 격차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나디르는 자신이 고려의 군대에 속하게 되자 오히려 가장 최신식의 전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초창기의 훈련은 조금 어색하고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모의전 땐 실탄을 쏘진 못한다.

공포탄이나, 혹은 좀 빡세게 훈련을 하기 위해선 장약을 최소화한 고무탄밖에 쏘지 못했고, 그마저도 근거리에선 위험성을 이유로 금지당했다.

일반 병사들은 그 성질이 위기의 상황에서도 대응하거나 극도의 실전경험이 있어야 하는 정보총국의 요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당연히 훈련에 멀쩡한 사람들을 죽여댈 수는 없었기에 나디르를 제외한 모든 이가 이에 공감했다.

“반쪽짜리 훈련이 아니오?”

“반쪽짜리 훈련이라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샤, 아니 명예부대장께선 제발 총을 맞았으면 맞았다고 하세요. 안 아프다고 안 맞은 게 아닙니다.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겁니다.”

“그럼 대포탄은 어쩔 거요? 그건 고무탄으로 쏘지도 못하니 반경에 대충 착탄되면 감독관이 대충 이만큼 전부 죽었다 하고 치는 거요?”

“참호 안에 있지 않은 이상 그래야지요. 그것이 규칙이니.”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피와 함성, 비명이 흘러야 진정한 전장이지!”

“하다못해 어린애 장난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나디르가 ‘어린애 장난’이라 불평했던 훈련은 오히려 불평불만이 가장 많은 나디르에 의해 날이 갈수록 창의적이고 구체적으로 진보했다.

입으론 아니라고 했지만, 스스로는 지금의 상황을 몹시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린애 장난을 어른애 훈련으로 바꾼 것은 나디르의 공로가 컸다.

전술을 펼치는 데 필요한 소소한 사항들, 예를 들면 전령의 이용 같은 것은 실제 전쟁을 겪지 않는다면 체득하지 못했다.

지휘부를 암습하여 타격하는 요소도,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다면 인지하기 어려웠다.

근위여단은 지형을 이용하는 훈련과 기동성의 우위(자전거를 탄)에 선 적들에게 맞서 대항하는 법을 맞아가며 깨달았다.

개인 화력이 강해짐에 따라 여단 이하의 작은 편제들 개별의 화력도 강해졌고 그 중요성도 올랐다.

이제 여단 밑의 연대나 대대, 심지어 중대 하나하나의 지휘와 전투력이 중요시되는 시기에 이런 대항군을 통한 모의훈련은 굉장히 중요했다.

사실 근위여단도 매일 뜀걸음으로 산에 오르거나 사격훈련과 이론적 전술훈련이 전부였던 일상에서 전문적 대항군을 상대해보니 느끼는 바가 많았다.

이렇게 깨져가며 배운 근위여단은 자신들의 경험을 징집병들에게 전수했고, 군의 훈련도를 일정하게 보장했다.

육군 징집병들도 그 규모상 모두가 극악무도한 전갈부대에 의해 훈련받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서로가 서로와 모의전을 치르며 경험을 쌓았다.

공교육의 쾌거도 있었다.

징집병들은 말 그대로 군의 질을 보장하지 못했다.

유럽의 징집군들은 하층민이 대다수였고, 자기 이름 빼곤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장교들조차도 일부는 그랬다.

하지만 고려는 숭무감이나 기타 사관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장교진이 굉장히 대우받았으며 지식이 풍부했고, 그들에 의해 통제받는 징집병들도 글자나 숫자 덧셈 뺄셈, 심지어 곱셈과 나눗셈 정도는 능히 해내었다.

현대의 군대는 보이는 전투력으로만 평가받지 않았다.

이전의 냉병기 군대는 과장 섞어 말하면 군인들의 식수와 열량, 기본적인 위생만 충족한다면 뭐가 어찌 돌아가든 상관없었다.

칼과 창, 기껏 화살로 싸웠으니까.

하지만 다채로운 화기가 발달하는 지금 이 순간, 개별 부대의 화력과 전선 유지를 위한 보급은 이전에 비할 바 없을 만큼 중요해졌다.

남들보다 세 배가 강해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남들이 포 한 발을 쏠 때, 우리는 포 세 발을 쏘면 되니까.

그러니 우리는 포탄을 두 개 더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에 보급을 포함한 행정병과의 중요성은 근래에 두드러지기 시작했으며, 일선 중대나 대대 실무자들의 빠르고 능숙한 일 처리가 필요했다.

기본적인 산수는 행정의 기본을 충족시키기 쉬웠고, 고려는 대대 및 중대 전술에 대해서도 다른 이들보다 우위를 점했다.

악랄한 참호전에선 이런 장점들도 질척질척한 늪에 빠질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북아프리카는 기후와 지리적으로 그런 참호의 효능이 굉장히 떨어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베네치아의 전선과 국력상 지긋지긋한 참호전을 유지할 역량도 없었고.

모스크의 첨탑 위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마라케시 시인이 충만한 영감으로 서둘러 시를 지었다.

“보아라. 칸들의 학살자, 거짓된 천명을 무너뜨린 자, 죄악의 도시를 불태운 자들이 이곳에 왔다. 이에 자그마치 이천 년의 세월을 격해 카르타고는 다시 한번 무너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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