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36화 (436/653)

Sacco di Venezia

전함 두 척.

소수의 구축함.

마칸토니오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새로운 함대가 출현한 남서쪽과 그들이 왔던 방향인 동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동쪽에도 여전히 7함대 전력이 다가오고 있었다.

“허언이… 아니었구나.”

저것이 지브롤터를 막고 있는 3함대의 함선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외견상으로 저 함선은 3함대의 함선이 절대 아니었다.

저 함선은 흘수선 하부의 붉은 방오도료를 제외한다면, 아예 도색이 안 된 것마냥 철 특유의 거무튀튀하고 지저분한 모습을 한 채로 항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고려는 불공급 다섯 척을 건조한 뒤, 다시금 곧바로 다섯 척 건조에 착수했다지.

허풍일 줄 알았건만 사실인 모양이다.

베네치아는 전함 한 척이 아까워 반쯤 동맹과 우호국의 경계선에 걸쳐 있던 포르투갈을 배반하는 결단을 내렸었다.

그리고 고려가 보기에 이는 더없이 우스워 보이는 일이었을 터.

그제서야 마칸토니오는 고개를 떨구었다.

10인위원회의 판단은 맞았다.

불공과 위엄이 세대교체를 하는 지금이 어쩌면 고려의 해군력이 가장 약할 과도기적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그 과도기적 상황조차,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애초에 시작부터 진 전쟁이었다.

“간수의 교대 기간을 노려 죄수가 감방에서 나와 새로운 간수를 후려치고 탈출하려 했지만, 이미 밖에는 간수가 아니라 잘 훈련된 군대가 있었던가.”

마칸토니오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새로운 전함의 포격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아덴 해전은 끝났다.

보통의 해전은 배의 특성상 승리한 함대가 다른 한 함대를 완벽히 격멸하기란 쉽지 않았다.

망망대해에서 넓게 퍼져서 도망간다면 대체 어떤 자들이 그들을 추격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곳 소코트라의 서쪽, 아덴만은 명백히 북쪽이 막혀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남서쪽 소말리아와 소코트라의 사이에서는 마칸토니오의 이해 밖에 있었던 전력까지 올라와 베네치아 함대들의 후미를 틀어막았다.

바다 위엔 그야말로 넓게 그물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그물은 안에 들어있는 물고기보다 더 속력이 높은 관계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이리저리 스스로 요동치며 사냥감을 가두었다.

베네치아 함대는 옥쇄를 각오했는지 후퇴하는 와중에도 장렬히 싸웠다.

베네치아 소속 전함들과 순양함들은 모두 집중사격을 받았지만 도주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침몰하기까지 시간이 마냥 짧진 않았다.

심지어 시간이 조금 지체되자 해도 저물었기에 함대는 야간전까지 수행해야 했을 정도였다.

해수면 구분이 어려운 야간전엔 고려도 조심해서 싸워야 했다.

저들의 기개 하나는 인정할 수 있었다.

저 투혼이야말로 존중받을 해군 전통이니.

허나 결과는 기개와는 별 상관 없었다.

어쩌면 저들은 소수의 함대나마 수에즈에 도달할 수 있을 기적을 꿈꾸었겠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12일 오전 여덟 시.

베네치아의 마지막 전함이자 순양함이 홍해 중부, 메디나의 항구 얀부의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속력이 빠른 파괴함 한 대가 헤엄치는 베네치아의 수병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조금 더 빨리 침몰하거나 항복이라도 했으면 수병들을 더 많이 살렸을 텐데.”

거의 이틀 동안 이어진 격렬한 해전에 피곤하다는 듯, 7함대 제독 이정경이 눈꺼풀을 비비며 말했다.

함장석에서 앉아서 망원경을 바라보던 전승호 함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함선도 모두 잃었고, 수병도 거의 대부분 전사했으니 저 나라의 해군전통은 다시금 세워지지 못할 겁니다.”

“비록 극악무도한 적이지만, 같은 해군으로선 안타까운 일이야.”

제독이 짧게 혀를 찼다.

이후 7함대는 아랍 연방의 육상 호위를 받으며 얀부에 잠시 기항해 수병들을 휴식시키도록 했다.

“이 제독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남쪽에서 새롭게 등장한 함대.

낯익은 후배 제독의 모습에 이정경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불굴급이 이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요, 신 제독. 적어도 삼사 개월은 더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해군부에서는 불공을 믿고 있었지만 객관적 전력의 열세가 우려스러웠는지 아직 내부가 단장되지도 않은 우리 전함들을 보냈습니다. 뭐, 기관이랑 포탑만 잘 작동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정경이 정박해있는 불굴급을 바라보며 웃었다.

함선의 도색도, 내부의 편의시설도 아예 없는 이 함선은 고려의 정보국이 베네치아의 함대결전 정보를 수집한 뒤에 부랴부랴 건선거에서 끄집어내진 티가 가득했다.

“함장실도, 제독실도, 사관실도 텅텅 비었습니다. 침대도 없어 모두가 딱딱한 바닥에 담요를 깔고 지냈습니다. 배가 파도칠 때마다 누군가는 벽에 머리를 박았을 겁니다.”

자신이 실제로 그랬다는 듯, 신 제독은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그 광경을 보고 실소한 정경이 문득 웃음을 거두고 진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큰 성과를 올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제독께서 다 이루셨지요. 우리는 적의 퇴로를 끊은 것에 불과합니다. 다행히 시간과 장소를 잘 맞출 수 있었던 것도 태조께서 보우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덴 해전의 결과는 직접 발로 뛴 해군의 노력도 있지만, 정보국과 본국의 해군부, 조선소의 인원들의 노력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 그럼 우리 함대는 다시금 석정으로 되돌아가 내부치레를 좀 끝내려 합니다. 지금이야 우리 수병들이 급박한 처지에 놓인 아군을 구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며 왔지만, 이후부터는 아닐 테니까요.”

“그럼 나중에 봅시다. 평온한 항해 되길.”

신 제독을 배웅한 이 제독은 경계당직을 제외한 병사와 간부들에게 얀부 내 항구의 술집에서 승전을 기념할 수 있는 작은 자리를 허락했다.

다만 그는 그곳에 참석하기보다는, 질 좋은 소주 한 병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님.”

“…제독님.”

너털웃음을 터트린 태인과 정경은 서로 가볍게 끌어안았다.

남들이 뭐라 하건, 그들은 숭무감 해군부의 절친한 선배와 후배 관계였다.

정경은 자신이 장성을 달고 머리 위에 단 별들의 개수가 하나둘씩 늘어날 때마다 진급길이 막힌 선배이자 하급자를 안타깝게 여겼다.

하지만 이번 일로, 태인은 어쩌면 다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미 나이가 있어 고속승진은 못 하겠지만, 장성은 달 수 있지 않을까.

고려는 불공급을 건조했지만, 정작 그 힘을 아직 완전히 파악하고 있지는 못했다.

하지만 김태인 함장의 상승호는 기동성을 이용한 초기의 동항전(同航戰)을 탁월하게 수행해 적 선박이 우자전법의 미끼가 될 수 있는 지점까지 유도했으며, 그 후로도 우자전법에서 화력전을 훌륭히 수행했다.

과거, 상승이라는 이름에 어떠한 오명이 있었다 한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아닐 것이다.

홍해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둘은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는 어찌하실 겁니까?”

“포로들은 아랍 연방에 협조를 구해야겠지요. 우리 함대에 전부 수용할 순 없으니.”

“나포하거나 항복한 적 함대도 마찬가집니까?”

“흐음….”

베네치아 함대가 모두 침몰했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함선들도 있었다.

대부분 오스트리아 함대였다.

특히나 바다 한가운데에서 석탄고가 전소한 카이저 막시밀리안은 애초에 전투불능이었으며 고려의 함대가 접근하자마자 필사적으로 백기를 올려 투항했다.

“항복했으니 조금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권리는 있겠지요. 탄약과 장약을 전부 무장해제시키고 직접 두바이로 함선을 이동시키도록 할 계획이었습니다.”

“제독, 제가 생각이 있습니다. 카이저 막시밀리안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음? 말씀해보세요.”

“어차피 우리 7함대가 당장 수에즈를 통과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홍해는 아직 베네치아령 앞마당이기도 하니. 저들도 이 소식을 접할 거고, 우린 여전히 기뢰를 조심해야 합니다.”

어뢰파괴함은 대양에서의 기뢰나 활대기뢰를 효과적으로 탐지하고 부술 수 있었다.

하지만 운하는 그 특성상 폭이 상당히 좁아, 위험이 언제든지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려는 자신들이 이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이 수에즈를 이용하는 꼴은 보지 못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하긴 했다.

다만 그 방도가 생각이 나지 않았을 뿐.

만약 수에즈 운하가 니카라오 운하와 비슷했다면 단지 갑문을 박살 내는 것으로 사태가 반쯤 해결되었을 것이다.

니카라오 운하는 갑문을 운용하지 못하면 배의 통행이 불가하기에.

반면 수에즈 운하는 평지에 땅을 파낸 것에 불과했고, 그런 거추장스러운 설비는 필요 없는 간단한 운하였다.

정말 땅에 포격을 하지 않는 이상 막기 힘들었다.

하지만 김태인 정령은 꽤 간단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카이저 막시밀리안을 운하에 좌초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어차피 쓰지도 못할 만큼 시대에 도태된 군함, 게다가 적성국에서 압류한 물건이니 경제적 부담은 아예 없었다.

심지어 화재로 선박의 내구성이 크게 의심되는 상황.

“좌초시킨다면, 카이저 막시밀리안의 포좌는 아군의 포대가 되기도 하니, 만약 아랍 연방이 시나이로 진군하면 든든한 포대가 수에즈에 생기는 셈이지요.”

잠시 머리를 굴려보던 이정경 제독이 갑자기 손바닥을 쳤다.

“하하, 이거 참. 기가 막힌 생각입니다. 선배님.”

* * *

3월 26일.

아랍 에미르 연방이 공식적으로 베네치아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육상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압제자로부터 이집트의 해방을 천명한 것이다.

아랍 연방은 이라크와 오스만에 약간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둘은 지금 러시아에 대한 공동대응을 천명했고, 그 정당성으로 아랍 세계의 정치적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었으니까.

아련 군사부 와지르 하팀은 주도권 같은 것은 지금 상황에 별 의미가 없다고 했으나, 현 아랍 연방의 대통령(대에미르)는 메카의 에미르 하심 가문의 사람이었다.

내전으로 한 번, 나디르 샤에게 한 번 크게 대패하며 군사를 다 잃었지만, 그래도 하팀의 역량으로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춘 아련의 군대가 시나이를 공격하자 아프리카 전선은 고려와 조약국에 크게 웃어주기 시작했다.

베네치아는 이집트 북부와 시나이, 수에즈를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베네치아 육군 지휘관 안드레아 피사니는 방어가 어려운 시나이반도를 아예 포기하고 수에즈에서 적을 막았으나, 뜬금없이 생겨난 카이저 막시밀리안이 운하의 가운데에서 포격을 시작하자 크게 당황했다.

심지어 카이저 막시밀리안은 육군의 입장에선 불침함과 다름없었다.

당연한 소리였다.

이미 좌초되어 침몰할 수도 없었으니까.

안드레아 피사니는 꽤 훌륭한 장수였다.

전쟁 전, 이탈리아군을 이집트에서 몰아낸 업적만 따지고 봐도 그랬다.

하지만 베네치아 이집트 방위군은 결국 패배하여 카이로에서 도망쳤다.

사 개월.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중해의 패자나 다름없는 이들은 다시 그 위세를 떨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카이로에서 눈을 감은 피사니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 * *

베네치아 대함대가 튀니스를 빠져나간 이후.

고려 3함대는 지브롤터 안쪽의 지중해가 텅 비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우리를 우습게 봐? 정신이 단단히 나갔군. 이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3함대 제독은 대동양에서 프랑스를 압박하는 행동을 알비온과 네덜란드 함대에게 위임하고는 3함대 전력을 이용해 지브롤터를 뚫었다.

구식 전함이라도 수상함과 기뢰정의 조합은 경계할 만했다.

하지만 수상함 전력이 빠지니 나머지 자잘자잘한 기뢰정 전력은 어뢰파괴함의 밥과도 같았다.

안 그래도 지브롤터를 가진 두 나라는 카스티야와 마라케시.

마라케시야 그 지리적, 기후적 특성상 영토에 비해 여전히 강대국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려의 봉신국으로 충실했다.

아랍 연방의 일화와 이라크의 일화를 들은 이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들은 나중에 북대동양 조약을 본뜬 범아랍조약을 출범시키면 어떻냐고 문의를 넣었고, 상국의 주도하에 이슬람 세계의 평화를 논의하자는 여론까지 모으고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베리아였다.

본래 이베리아의 삼국은 베네치아와 친밀했다.

동맹은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의 우호도는 챙겨놓았던 것이다.

베네치아도 이베리아가 대동양에서 고려의 위협을 막기 위한 방파제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려도 지중해에 멋대로 진입했다 뒤통수를 맞으면 꽤 얼얼할 것이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전쟁 전후로 대이베리아 외교가 파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쟁 직전 우에스카호 사건으로 인해 아라곤과 외교단절 수준으로 사이가 나빠졌다.

그 후에도 베네치아는 프랑스―나바르 전쟁의 여파로 덩달아 카스티야와 사이가 나빠졌다.

심지어 제일 친했던 포르투갈도 어느 순간부터 오히려 바락바락 악을 쓰며 베네치아를 죽여버리겠다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 모두가 업보였다.

고려는 이베리아가 완전히 베네치아에게 등을 돌린 것을 확인했다.

창양에 있는 삼국의 대사들은 기존과는 달리 이미 활발하게 정녕당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려에 대한 어떠한 적대적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했으며, 전후의 국제 질서에서도 북대동양 조약의 이익과 안보를 해치지 않겠다는 서명도 했다.

그 이면에는,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조약국에 가입할 수 있다는 기회를 파악한 것일지도 몰랐다.

지브롤터와 서지중해의 안위에 대한 확신이 생긴 셈이다.

꺼릴 것이 없어진 3함대는 지중해로 빠르게 나아갔다.

남아 있는 베네치아의 해군은 이를 악물고 기습을 시도했지만, 소형선과 활대기뢰정으로 대세를 바꿀 순 없었다.

전함이 나설 필요도 없이 이들은 순양함과 파괴함 전대의 방어망에 허망하게 스러졌다.

알보란해, 발레아레스해, 티레니아해가 조약국의 질서하에 들어왔다.

이탈리아는 해상봉쇄가 풀려났고, 비로소 제 잠재력을 떨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직도 공동체적으로는 도시국가적 지역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는 음식을 좋아하며 여자를 밝히는 이탈리아인들이다.

하지만 원래 국가 경제 자체가 탄탄하니 삼국의 포위망에서 풀려난 이후에는 제 밥값을 다할 것이다.

아마도.

3함대는 7함대가 베네치아에게 맞서 패배하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설령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 복수는 자신들이 할 수 있게끔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았다.

해안포로 철저히 요새화된 수도 튀니스는 육군 없이는 상대하기 힘들어 포기했지만, 상대적으로 방위가 덜한 안나바와 트리폴리, 스팍스 등의 다른 주요 항구들에 대한 포격을 실시했다.

― 니들만 기뢰 쓰나.

애초에 고려도 기뢰의 원조 생산국이었던 만큼 그 기술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고려는 베네치아의 주요 항구에 대한 기뢰부설을 허용했고 이 항구들은 불탄 것도 모자라 만 내에 둥둥 떠 있는 공포의 물체들을 껴안고 살아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7함대의 승전소식이 들려오자 3함대는 모든 시름을 잊었다.

이제 지중해는 어떠한 위험 요소 없이, 고려의 바다가 되었다.

3함대 제독은 창양에 전보를 보냈다.

이 희대의 명언은 전보를 받은 다음 날 신문들의 머리기사로 쓰일 정도였다.

[황상 폐하.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이 진정한 주인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이후 3함대는 누구보다 빠르게 이오니아와 아드리아해로 진입했다.

한동안 숨죽여 지냈던 그리스 해군과 이탈리아 해군이 졸래졸래 그 뒤를 따라왔다.

오스트리아는 혹시 자신들의 차롄가 싶어 지레 질겁했지만 3함대가 노리는 곳은 크로아티아의 해안가가 아닌 베네치아의 본토이자, ‘도시 베네치아’였다.

정부기능을 이전한 튀니스와는 다르게 베네치아엔 이제 알량한 규모의 해안포밖에 없었으니, 그들은 금방 무력화되었다.

안에 거주하던 베네치아인들은 전부 이탈리아군이 제압했다.

처리는 알아서 할 것이다. 언어적, 민족적, 종교적 이질성이 그리 큰 것도 아니니까.

다만 도시의 운명은 시민의 운명보다는 훨씬 더 잔혹할 터.

3함대 제독은 베네치아 석호 앞에 함대를 띄워놓고 여유롭게 차를 홀짝였다.

“동맹국들이 도시는 어떻게 하느냐 물었습니다.”

보통은 무난히 이탈리아의 영토에 수복되는 운명을 맞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고려는 이 도시에 쌓인 감정이 너무 많았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는 신호기를 통해 동맹국들과 3함대 장병들에게 일렀다.

그가 전보를 보낸 이후, 창양에서 받은 답신 그대로.

[Sacco di Venezia]

이례적으로 답신은 알파벳 기반의 이탈리아어로 보내졌다.

허나 이탈리아인이건, 그리스인이건 이를 해석하는 덴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제독이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살폈다.

오후 한 시. 시간은 적절했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무제한 약탈을 허한다.”

그리고 그 약탈 이후, 베네치아는 사라지리라.

저 죄악의 도시는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바닷속으로 들어가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는 바벨탑처럼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시를 받은 연락병이 서둘러 밖으로 뛰어나갔다.

― 번쩍 번쩍.

발광신호가 번쩍였고 신호기도 올라갔다.

빠르게 이를 해석해낸 그리스 제독 요안네스가 마침내 고조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주름진 노안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오, 우리의 바실렙스여. 소신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나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