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 해전
러시아는 당황했다.
보낸 사람들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기간 내에 운송되어야 할 곡물과 자금도 도착하지 않았다.
차르는 새로운 사신을 보내 전말을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보낸 사신은 터르노보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났다.
또한 그 사신은 예전에 징수하라 보냈던 관료가 대공비를 추행하여 감옥에 있고, 불가리아인들이 러시아와 맞선다는 선택을 내렸다는 믿기 힘든 보고만을 가지고 왔다.
“감히… 짐에게 반기를 들어?”
이유야 갖다 붙이면 그만, 당연히 대공과 여동생이 만들어낸 것이 틀림없다.
확실한 것은 불가리아가 제 주제를 모르고 러시아와 맞서겠다는 선택을 내린 것이다.
차르는 곧바로 터르노보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그의 명령을 받고 가던 군대들도 매복을 받고 궤멸했다.
불가리아군은 마치 그들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었던 것마냥 사방에서 매복해 십자포화를 갈겨대었다.
이 패배는 뼈아팠다.
러시아는 병사들을 계속 징집하여 예비대로 투입하고 있지만, 이제는 흑해 서부 전선의 병사들을 뒤로 빼서 공격해야 할 상황까지 놓인 것이다.
이후에도 블라디미르 2세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첫 번째 러시아의 공격을 손쉽게 물리친 불가리아는 본격적으로 러시아와 맞서기 위해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인구도 별로 없는 저 자그마한 나라는 벌써 거의 칠만에서 팔만, 그리고 그 뒤의 예비대로 수십만을 모으고 있었다.
해방제로부터 해방된 지 불과 몇십 년이 흐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나라의 저력이 실로 놀라웠다.
‘이놈들이 은혜도 모르고…….’
자신이 한 패륜적 행동을 잊고 그리 생각하는 블라디미르였지만 그리 욕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이제 명백히 불가리아라는 산을 넘어야 했다.
한때는 언덕 정도로, 아니 그것도 아니라 단지 발밑에 디딜 발판 정도로 생각했던 나라였는데.
블라디미르 2세는 격노했다.
불가리아가 본격적으로 대계에 지장을 주는 이유는 뻔했다.
무기가 없으면 약소국은 강대국에 대항할 수 없다.
그러니, 고려 이놈들이 또다시!
“고려, 고려 그놈의 고려! 어딜 가나 그놈들의 무기가 있지, 어딜 가나 그놈들의 탄약이 있지. 빌어먹을 놈들은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일 년이라는 시간에 바그다드에서 카이세리까지 철도를 깔았던가?”
지중해고 나발이고, 고려는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에서 러시아의 적대국들에게 보급을 해주고 있었다.
바스라에서 바그다드, 바그다드에서 모술, 모술에서 디야르바키르, 디야르바키르에서 카이세리까지.
거기까지 이어 놓으면, 카이세리, 앙카라와 콘스탄티노플까진 오스만이 그 혼란기에도 어찌어찌 놓은 철도가 존재했다.
그러니 고려는 지금 페르시아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 철도를 통해 물품들을 실어나르고 있는 셈이다.
시베리아보다는 짧고 덜 가혹하다지만, 그럼에도 고려는 저 긴 거리에 불가해한 속도로 궤도를 깔았다.
블라디미르 2세는 전령을 불렀다.
지금 이 상황을 막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 했다.
“베네치아 대사를 불러라!”
* * *
제해권 장악은 해군의 가장 큰 존재 목적이다.
고려 해군도 그 임무를 아주 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불공급 전함 3척이 편제된 3함대는 지브롤터를 봉쇄하여 적성국 함선이 한 척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면서도, 따로 나바르의 전쟁 때 아군에게 포격지원을 했다.
비록 외젠이 내륙으로 돌아 솜포트 고개를 넘으며 나바르를 멸망시켰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 비스케이만의 해상우위를 살렸다.
이후 그들은 알비온 해군과 함께 라 로셸, 생나제르, 브레스트(브르타뉴반도의) 르아브르 등의 주요한 항구의 배들을 박살 냈다.
물론 병력 자체는 부족했기에 상륙전은 못 했지만, 해양봉쇄로 대서양 어업과 무역을 하지 못하게 된 프랑스는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지중해는 뚫려 있었지만 북해의 청어와 대구는 그들로서도 절실히 필요했으니까.
지금 당장은 한 척도 없지만 곧 있으면 전함 한 척을 받을 아프리카함대, 즉 5함대는 순양함들을 동원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와 프랑스령 남아프리카를 공격해 식민정부를 박살 내었다.
의외로 싸움은 격렬하지 않았다.
식민정부들은 몇 번의 싸움 끝에 청백적의 깃발 대신 흰 깃발을 올렸다.
“거, 예전 추심전쟁이 떠오르는구려.”
“…….”
어떤 프랑스 상인은 항복 깃발을 들고 농담 따먹기를 하는 자들도 있었다.
불공급은 아직 배치되지 않았지만 퇴역하기 전의 위엄급은 있는 2함대와 4함대도 그들의 영역인 태평양 내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셀림브리야 조약 이후 잠깐 동안 오스트리아령이 된 누산타라섬도 다시금 고려에 의해 임시로 통치를 받았다.
누산타라섬에선 누산타라의 군도들을 간악한 식민제국들에게서 완전히 해방시켜 달라는 청탁과 시위도 일어났다.
하지만 가장 바쁜 것은 7함대였다.
해군의 존재 목적이 제해권 장악이라면, 제해권 장악은 아군 배의 보호, 즉 수송선단의 보호를 의미했다.
고려는 실로 엄청난 물량의 무기 지원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 무기들은 크게 두 군데로 보내졌다.
북대동양을 통해 유럽으로 가는 경로는 거리도 짧고 너무 방어하기 쉬웠다.
고려의 영역 내에선 해안경비대의 호위도 받았으니까.
하지만 남대동양을 거쳐 인도양을 통과해 페르시아만으로 가는 것은 거리도 멀고 위험했다.
4국 동맹들의 배가 전부 다 박살 난 것은 아니다.
식민지에 있다가 식민지를 두드리러 온 고려에게서 도망친 순양함들은 유령선마냥 여기저기에서 출몰하곤 했다.
그 숫자는 그렇게 많진 않았고 고려와 제대로 싸우면 질 것이 뻔했기에 그 떨거지들은 저 아득한 수평선에 함선이 보이자마자 꽁무니를 말곤 했지만.
그래도 순양함은 수송선 수 척은 그냥 박살 낼 수 있었다.
7함대도 고려가 본격적으로 개입할 때까지 고려의 전략적 목표가 동맹국에 대한 지원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함대를 넓게 분산시켜 함대의 영역이 되는 희망곶에서부터 인도양 전역에서 수송선을 호위하고 이들의 물자가 차질 없이 이라크에 도달하는 것을 보장했다.
이렇게만 해도 전쟁은 이겼다.
그 와중 전함들은 파괴함 몇 대의 호위를 받으며 베네치아령 아프리카에 번갈아 포격을 가했다.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연합군이 밀어내고 있는 베네치아령 아프리카는 빠르게 세력을 잃어버렸고 어느덧 내륙으로는 이집트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아랍연방까지 군대를 모아 시나이를 공격하려 드니 베네치아는 조금씩 조금씩 선택권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결정적으로, 차르도 독촉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서신을 받은 도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블라디미르 2세는 베네치아의 도제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페르시아만의 물류가 원활히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달라 부탁했다.
말이 부탁이지, 사실상의 명령이었다.
사국동맹의 중재자가 베네치아라면, 사실상 핵심은 러시아였다.
도제는 아랫사람 다루는 듯한 차르의 태도에 심히 불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의 입장이야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기 위해선 베네치아가 지중해의 전략적 우위를 버리고 밖으로 나가 함대결전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함대결전.
현 상황에서 베네치아는 이를 바라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싸운다면, 기뢰와 기뢰정은 효과가 반감된다.
반감이 아니라 한 팔분의 일로 줄어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바라지 않는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지금껏 현존함대의 교리로 지중해 방어 전략을 짜던 이들은, 현존함대의 교리가 필연적으론 함대결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인식했다.
마치 마리나 레기아가 베네치아 함대와 싸워야만 했던 것처럼 고려도 베네치아에게 그들이 인도양으로 나와서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강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피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응하기로 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지경에 몰리자, 베네치아의 해군부는 이번 작전의 타당성을 검토했다.
“할 만하다.”
의외로 베네치아 해군부는 작전의 성사 가능성을 높게 쳤다.
당연히 고려의 해군 함정의 전체 수는 베네치아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고려는 방어해야 하는 바다가 사실상 전 대양이었고 제국해군은 필연적으로 그 많은 전력을 분산배치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7함대조차도 넓게 퍼져서 운용하고 있었다.
베네치아가 전 함대를 동원한다면, 한 지역에서 수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터.
한 번의 거센 공격으로 7함대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다면 그들의 전력을 깎아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 * *
동맹 함대의 전력은 많았다.
베네치아가 가진 3척의 산 카를로 보로메오급 전함이나 베네치아 해군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는 한 척의 오스트리아 카이저 막시밀리안급 전함은 여전히 건재했고, 거기에 더해 추가적인 증원도 있었다.
베네치아는 전쟁을 치르면서 두 척의 전함, 산 안드레아급 전함을 더 건조했다.
산 안드레아급 전함은 산 카를로 보로메오급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으며, 단지 조금 더 전폭과 전장이 길었다.
이 두 척의 배 중 한 척은 베네치아가 사용하고 한 척은 포르투갈에게 판매할 예정이었다.
포르투갈은 대금까지 지불해 놓고 전함이 언제 만들어지나 목이 빠져라 튀니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함뿐만 아니라 두 척의 순양함과 열 척의 작은 초계함까지.
기존의 함대 전력과 합치면 포르투갈도 나름대로 든든한 해군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베네치아는 한 척의 배도 아까웠다.
포르투갈에게 전함을 주느니 자신들이 사용한다면 더 값지게 쓰는 것이 아닐까.
함대결전에선 함선의 수적 우위가 거의 모든 경우의 가능성을 판가름했다.
다섯 척 대 다섯 척의 결전과 여섯 척과 다섯 척의 결전을 비교해본다면, 후자의 승리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니 베네치아가 포르투갈의 함선을 빌려 고려와 싸운 뒤 승리를 거둔 다음 돌려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대부분의 베네치아 사람들이 이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건조된 전함을 인수인계하기 위해 싱글벙글 웃으며 달려온 포르투갈인들 앞에서 그들의 전함을 주지 않겠다 선언했다.
사실상 인수인계 직전에 압류한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포르투갈인들은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다가, 드디어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채고는 화를 내었다.
마땅한 분노였다.
“저 전함은 우리 거요. 우리가 주문했지 않소! 대금까지 지불해 놓고 언제 완성되나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뭐?”
베네치아 사람들은 그들을 달랬다.
아니, 달랬다기보다는 도리어 적반하장 격으로 말했다.
“전함의 존재 목적은 해전인데, 그대들이 그 해군으로 어디서 어느 나라와 해전을 하겠습니까? 대동양에서? 고려와? 진작 우리와 손을 잡겠다고 하셨다면 같이 행동할 수 있었겠지요. 허나 당신들은 우리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도 너무나 비겁하게 간만 보고 있잖습니까.”
“…아니 그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요. 우리의 외교고 나발이고, 우리가 전함 건조 주문을 했고 대금까지 지불했으면, 당신들은 전함을 우리에게 주어야지.”
“이 아름다운 전함은 당신들에게 주긴 너무 아깝습니다.”
“네놈들은 미쳤어. 미쳤다고! 우리 전함 내놓으란 말이야, 어서 내놔!”
“저분들을 다른 곳으로 뫼시거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귀빈들께선 평온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좀 쉬다 가시지요.”
“이 쓰레기 같은 인간들! 네놈들은 패배할 테고, 고려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총기를 든 병사들이 비명과 같은 저주를 흘리는 포르투갈 사절의 옆구리에 손을 찔러 넣고 그들을 들어 올려 사라졌다.
그들은 베네치아의 저택에 감금될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생각 있는 위원 하나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포르투갈이 분노할 거요. 우리가 한 짓은 전례 없는 외교적 폭거니까.”
“이빨 빠진 놈들입니다. 애초에 가장 먼저 바다로 나간 자들이 아직도 그렇게 나약한 해군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요. 저들은 주제를 알아야 합니다.”
베네치아 대제독 다니엘레 델피노가 그렇게 확언했다.
“승리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우리가 한 번의 결정적 승리를 거둔다면 포르투갈에게 이번 일에 대해 보상을 할 수 있겠지요.”
“…무운을 빌겠소.”
“공화국에 마땅한 승리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가장 고귀한 공화국을 위해.”
* * *
1728년 3월 9일 오후.
행여 베네치아의 결단이 새어 나갈까 봐 튀니스에서 여러 번의 교란작전을 행한 이후, 베네치아 함대는 지중해에 남아있는 모든 함대 전력을 전부 규합시킨 뒤 빠르게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남하했다.
목표는 홍해, 혹은 아덴만.
7함대가 활동하고 있는 곳이었다.
베네치아의 입장에서도 국운을 건 한판이었다.
이 전투가 행여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베네치아는 전쟁에서 곧바로 백기를 들어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 이들에게 이를 갈고 있는 이탈리아는 필사적으로 레기나 마리아를 다시금 재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들은 해상의 주도권을 조금만 더 확보한다면 북아프리카에 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가 비록 프랑스―오스트리아에 비해 육군전력이 좋지 않지만 지금 해군에 과투자를 한 베네치아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동맹국 해군은 정석적으로 본함대와 정찰함대를 나누어 꾸렸다.
다니엘레가 산 안드레아급의 기함 산 안드레아에 올라 본함대이자 동맹총함대의 지휘관을 맡았다.
오스트리아 함대는 레오폴드 필립 다렌버그의 지휘 아래, 본함대에 속해 있었다.
본함대의 전력은 전함 5척, 순양함 8척, 초계함 30척에 달했다.
로도비코 팔랑기니 제독이 산 안드레아급의 기함이자 원래는 포르투갈의 전함이 되었어야 할 콘타리니 함에 탑승하여 동맹함대의 정찰함대를 맡았다.
전함 한 척에 순양함 네 척, 초계함 열세 척에 달했다.
정찰함대는 다소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는 본함대에 앞서 홍해를 훑어나가며 정찰을 했다.
예전에야 홍해가 그들의 세력권이었지만, 지금 아라비아반도 쪽은 적대적으로 돌변한 지 오래였다.
게다가 이제는 베네치아령 동아프리카도 이탈리아―에티오피아군에 의해 야금야금 세력이 빼앗기고 있었다.
정찰함대는 수아킨 부근의 해상에 도달했다.
이곳은 본래 베네치아령 아프리카의 핵심 항구도시였지만 지금은 이탈리아의 깃발이 올라가 있었다.
이탈리아 깃발을 올린 수송선 몇 척이 호위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찰함대는 식민지방위군을 도와줄 겸 수송선들을 몇 척 사냥했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남쪽으로 향했지만,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바브엘만데브(Bab―el―Mandeb) 해협을 통과하지도 못하고 침몰했다.
“이제부터는 극히 위험하다. 고려군은 아덴만에서 활발히 작전하고 있으니, 이제부턴 언제든지 그들과 마주할 수 있다.”
로도비코의 말대로 고려의 분함대는 바브엘만데브 해협 너머 에티오피아의 외항 역할을 하고 있는 지부티 앞에 있었다.
11일 새벽 여섯 시, 아직 해가 떠오르기도 전의 어슴푸레한 새벽에 처음으로 지부티의 앞바다에서 두 함대가 서로를 식별했다.
북동쪽에서 관측된 적 함대에 항구는 비상사태에 들어갔고 수송선들도 허둥지둥 달아나기 시작했다.
고려의 분함대는 정찰함대를 보자 빠르게 남동쪽으로 변침하며 기동했다.
이미 속력에서 앞서 있는 로도비코의 정찰함대도 고려의 분함대와 나란히 진행하며 횡진을 형성했다.
“적의 전력은 우리보다 적다. 공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