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30화 (430/653)

기관총

동맹국에 대항해 속칭 ‘조약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의 결집이 시작되었다.

조약의 이름 자체는 북대동양 조약이었지만, 꼭 대동양에 접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실 유럽국 일부와 고려의 조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직은 유럽의 국가들 중 미가입국이 많았다.

하지만 한번 이렇게 세력화가 된 이상, 조약국의 주변국들은 이 조약국의 구성원들과 도달할 수 없는 군비 격차에 암담해하며 가입을 진지하게 논의할 터였다.

물론, 가입한 구성원들도 생각이 제각각일 수도 있었다.

어떤 자들은 이번에 동맹국이 초래한 위기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약기구는 비단 동맹국에 대한 임시방편이 아니었다.

고려는 이 조약을 통해, 유럽국가들에 자신과 같이 나란히 서든가 혹은 반대편에 서든가 결정하라고 무언으로 강요하는 셈이었다.

이번의 거대한 전쟁이 끝나도 이 조약은 앞으로 항구적인 조약으로 발돋움할 예정이었고 그렇기에 조약에서 탈퇴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해당국에 심각한 안보적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 당장, 고려의 이 같은 대계를 눈치채는 자는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았다.

진주 왕가의 주최로, 테르샤로마에서 조약을 기념하는 소소한 행사가 열렸다.

전시라서 아무래도 좀 그랬기에 밖으로 보일 만큼 요란한 행사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객원 내부에서 이 현장을 자축하고 각 군주들과 실무자들이 얼굴을 익히고 친분을 나누는 자리 정도야 필요한 법이었다.

각국의 최중요 인사들이 전부 모인 탓에 테르샤로마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상당한 수의 경비와 경호 병력이 깔려 있었다.

시민들은 별로 위협을 느끼진 않았다.

다만 위대한 이름을 가진 이 도시가 마침내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현장이 되었다는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진주 왕가가 머무는 자그마한 궁전엔 부속 귀빈실이 있었다.

하지만 아센가의 궁전은 창천궁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고, 고궁 연경궁이나 혹은 심지어 가면시중과 민선시중의 집무실로 이어져 내려오는 정녕당보다도 작았던 터라 이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니 이레니아 테르샤로마에서 행사가 주최되었다.

이 전통 있는 객원회사는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터라 각국 군주들은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고, 도리어 자국 내 수도에 있는 이레니아 지점이 아니라 진주에 있는 본원에 오게 된 이 상황을 반겼다.

왕족과 외국 대사들, 대신들은 거대한 객원을 통째로 빌려 보안 걱정 없이 소소한 회포를 풀었다.

“유럽이, 아니 세계가 이렇게까지 크게 편을 갈라 싸운 적이 없었는데, 이번의 전쟁은 과거와는 무언가 많이 다를 것 같은 느낌이야.”

“동의하네.”

빌럼과 해원은 시중이나 수상에게 조약의 세부적인 내용을 맡기고 간단히 포도주와 안주를 들며 담소를 나누었다.

현 상황에 대한 우려스러움, 그리고 악랄한 동맹국 지도자들에 대한 험담들을 한참 이어가던 그들은 마침내 그들 내부의 문제로 들어왔다.

“나는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네.”

눈앞이 좁은 자들은 정말로 이 질서가 이번에 뒤집힐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고려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사람들보다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빌럼은 실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본 사람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의 전쟁 이후에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네.”

그러니 전쟁 후의 일도 지금부터 생각해 놓아야 했다.

시기상조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때가 되면 너무 늦어버릴지도 몰랐다.

해원도 빌럼의 생각에 공감했다.

그는 잠시간의 침묵 속에서 문득 해청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아버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한계에 달했습니다. 이 근본적인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런 전쟁은 계속 발생할 겁니다.

해청의 생각은 현상유지적인 해원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아들은 지금 전 세계의 체제를 뒤엎어버리자는 과격하기도 한 주장을 하고 있었으며, 오직 그것만이 앞으로 다가올 다툼에서 고려가 버티어낼 유일한 방법이라 주장했다.

― 지금까지의 분쟁이 어떤 봉건 왕조가 영토를 얼마나 더 많이 획득하냐의 싸움이었다면, 이다음의 분쟁은 그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한 다툼이 될 것입니다.

이념의 싸움이라.

해원은 몰랐다.

젊은 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시선을 빌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마 살짝 아들에게 양위를 하는 것을 불안해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뇌전증이 태자의 판단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합리적인 의심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부자간의 입장, 견해 차이에 대한 미미한 갈등은 처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자라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거대하게 피어난 곰팡이처럼 마음을 좀먹기 마련.

그리고 그 곰팡이는 필연적으로 가족 간의 큰 비극을 낳았다.

다른 나라처럼.

인류 문명상 국왕과 그 후계가 다툼을 벌였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 황상, 태자의 말을 귀담아들으시오. 그 아이는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아이보다도 국제 정세에 관해선 영특하니.

허나, 선조께서 보우하사, 해원은 그 판단을 혼자 내릴 필요가 없었다.

그분께서 전쟁을 위해 자신을 황위에 올리셨다면, 그분께서 후대를 위해 태자를 도와줄 것이다.

이는 황가의 축복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아들을 지원해 주어야 하겠지.’

그는 후대를 위해 지금부터 우호국에게 출구전략을 제시해야 했다.

만약 태자가 구상하고 있는 전후 체제, 즉 ‘민족자결주의’가 주창된다면 모든 지배국들은 자신들의 본토가 아닌 식민지들을 해방해야 할 테니까.

우호국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을 추진했다간 반발 맞을 수도 있었다.

어제의 친우가 내일의 적이 되지 않게 하는 것도 외교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해원은 자신의 친우가 앞서서 걱정하는 성격을 가진 것을 반겼다.

“빌럼. 파푸아 문제에 대해 논의할 사항이 있네.”

* * *

징병법이 통과되었더라도 신병들은 훈련기간이 필요했다.

조약 이전부터 동맹이었던 네덜란드에 일차적인 파병을 제외하고는, 군사적 지원은 아직 시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징병법과 같이 통과된 군비 증가안은 고려의 무기지원법에 선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무기는 훈련이 필요 없고, 단지 생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니 군수산업에 연관된 공장들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철소 같은 기본적인 공장도 바쁠 테고 견인기 같은 것을 생산하는 공장도 바빠지겠지만, 가장 바쁜 곳은 역시나 병기를 생산하는 공장들이었다.

고려엔 삼척동자도 아는 아주 유명한 총기회사가 몇 군데 있었다.

정윤 화기 회사와 홍강기공은 고려 내의 소총 대부분을 생산했다.

역사로 따지면 정윤사가 더 길지만, 요즘은 홍강의 사세가 더욱 강했다.

물론 옛날 옛적의 총들은 기원을 거슬러보면 거의 태조 시절부터 존재했었던 황립 조병창에서 만들었지만 군수산업에서도 경쟁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중요하다 말할 수 있었다.

이에 황립 조병창도 자체적으로 개발을 하기보단 민간과 협력하여 생산면허를 사 온 뒤 일정한 품질 이상으로 생산하여 군무부에 납품했다.

민간개발을 주도하는 홍강과 정윤, 이 두 회사의 이름값은 만만치 않았다.

둘 모두 이제는 대단히 큰 기업이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에 도전장을 내민 회사들이 있었다.

고려 태생은 아니었고, 외국에서 보다 큰 시장인 고려로 넘어온 회사들이었다.

그 이름은 베레타(Beretta), 그리고 자우어(Sauer)였다.

베레타는 처음 시작할 땐 가족 중심의 총기 제조업자들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빠르게 성장하는 총기 기업이었다.

이 이탈리아 회사는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안정적인 환경과 대규모의 생산시설을 원해 기회의 땅, 고려에 왔다.

노동자 임금과 대우는 상당히 부담스럽겠지만, 그만큼 기본적인 기술력과 군수 시장의 규모가 다른 나라와는 차원이 달랐기에, 대계를 꿈꾸며 이민 온 가족에 속할 것이다.

이 정도 명성과 재력 및 기술력을 가진 회사가 귀화를 신청했다면, 바늘구멍이라는 이민도 낙타를 통과시키기에 무리 없이 넓어질 수 있었다.

사실 베레타 가문은 원래부터 명성이 높았다.

무려 1526년에 바르톨로메오 베레타에 의해 만들어진 이 회사는 공교롭게도 지금 고려의 적대국인 베네치아의 조병창에 조달하는 군수품을 생산하면서 일약 도약한 가문이기도 했다.

물론 그 일은 거의 이백 년 전의 일이었고 군수회사가 군수품 파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그 누구도 딱히 상관하진 않았지만, 그 후손이 이번에는 고려로 본사를 옮기는 것은 상당히 묘했다.

이전까지 이탈리아에서도 상당히 잘나가는 회사라, 사실상 현시점 사바티(Sabatti)사와 함께 이탈리아에서는 제일 유명한 총기회사라 볼 수 있었다.

이들의 고려 입성기는 꽤 인상적이었다.

홍강기공과 정윤화기사는 그전까지 개와 고양이마냥 으르렁거리던 사이가 무색하게 서로 연합하여 외국계 총기회사의 고려 이주를 반대했다.

총기 분야의 특수성을 운운하는 그들의 행동력은 꽤 대단해, 군무부에서는 거의 반대 직전까지 말이 나왔던 터였다.

하지만 베레타는 고려의 핵심 총기인 소총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견고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두 회사를 상대로 경쟁하지는 않겠다고 운을 뗀 뒤, 반대로 권총 사업에 뛰어들겠다 천명했다.

당시 군무부도 주력 소총 말고도 장교용 권총이나 경관이나 요원에게 납품할 차세대 권총이 필요했다.

지금 이 시점, 다혈포가 권총의 대세로 자리 잡은 이후 홍강과 정윤도 다혈권총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주력은 아니었다.

두 회사 모두 권총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권총은 이미 다혈포가 주름잡고 있었고, 두 회사 말고도 자잘한 회사들이 경쟁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현시점 베레타 가주인 조반니 베레타는 지금껏 베레타 가주가 그래왔듯 그 자신도 총기 제조의 마에스트로였기에 스무 자루의 아름다운 다혈포를 직접 조각하듯 생산하곤 전시회를 열었다.

고려인들은 기능미를 우선으로 여겼다.

하지만 권총이라는 것은 때때로 기능비보다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적강목 손잡이와 총열 전체에 걸쳐 아름다운 조각을 해놓은 베레타의 솜씨는 관람객들의 찬탄에 더해 경쟁자들의 인정마저 이끌어내었다.

물론 이후 고려 군무부는 베레타에게 다혈포 말고 그 이후의 권총에 대해 만들어보라는 난제를 주었긴 했지만.

기존의 가족 단위 회사였던 베레타가 가문 대대로 물려 내려온 예술적 아름다움에 호소하여 고려의 시장에 진출했다면, 자우어는 혁신을 토대로 사업을 시작한 신흥 가문이었다.

가문의 가주, 젊은 로렌츠 자우어는 본디 어릴 적엔 다소 궁핍한 가정에서 자라나 이후 튀링겐의 줄(Suhl)에서 총기제조회사를 운영하는 마이스터의 견습생이자 노동자로 들어갔다.

모든 이가 그러하듯 어린 시절의 삶은 꽤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천재적인 감각을 타고난 자우어는 스승에게서 상당히 많은 총애를 사, 수많은 견습생 사이에서 빠르게 입지를 확보했고 수제자가 되었다.

그 이후에는 심지어 스승의 딸과 결혼했고 나중엔 스승의 공장과 작업장, 집까지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한 세월은 어느 날 공장을 휩쓴 화마에 사라졌다.

스승은 작업장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쓰다 유독성 기체를 마시고 사망했고, 뉘른베르크에 물품을 납품하러 갔다가 헐레벌떡 돌아온 제자는 먼지만 남은 잿더미에서 울고 있는 아내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이후 도이치를 뜨기로 결심했다.

흔적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실화가 아니라 방화였다.

화재의 배후에는 누군가 있었을 것이다.

경쟁업체의 농간이건, 혹은 아직도 도이치 남부에 존재하는 간악한 빨갱이건, 아니면 남부 놈들이건.

주도인 에르푸르트에서는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의지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떠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조국과 이웃에 대한 실망과 불안한 환경, 언제든지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기운 속에서 자우어는 남은 가산을 전부 처분하고 가족과 함께 고려로 건너왔다.

도이치는 루이제 이후 예맥한계 삼국이나 에이레, 네덜란드급은 아니지만 그 밖의 다른 나라들 중에서는 고려로의 이민이 꽤 관대한 축에 속했고, 게다가 자우어의 아내는 외가가 네덜란드와 이어져 있어 어찌 암스테르담의 직행선을 탈 수 있었다.

기술직에 대한 이민을 심사하는 자리에서 자우어는 날카로운 눈빛을 한 심사관에게 그가 틈틈이 그려온 종이를 건넸었다.

“알아보긴 힘드실 테지만….”

도이치어엔 정통하지만 상대방의 글씨체가 실로 악필이라 한참 동안이나 구불거리는 글자와 눈 아플 듯 세밀한 구조도를 바라보던 심사관은 서서히 날카로운 눈빛을 지우고 대신 그 자리에 흔히 내비치지 않았던 감탄의 감정을 드러내었다.

“저는 군사무기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그런 저로서도 이 정도로 정교한 물품은 본 적이 없군요. 귀하께서는 아마 고려로 가셔도 크게 성공하실 것 같습니다.”

― 쾅

“Willkommen in Korea, Herr Sauer.”

심사관의 도장이 크게 찍혔다.

수많은 사람들을 심사하는 그는 아마 본능적으로 사람의 재주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자우어는 이제는 땅값이 비싸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청해 중심부 시가지 대신 구 제포시이자 현 청해시 제포구의 외곽에 자그마한 총기 회사를 하나 차렸다.

이곳에는 저 멀리 마치 거대한 성곽처럼 본사의 사세를 자랑하고 있는 일전의 본사도 보이는 곳.

언젠가 그의 회사도 저렇게 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자우어는 열심히 노력했다.

도이치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세상이 그를 도와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인지 청해시경은 자우어의 집 주변을 너무나 많이 순찰했다.

이토록 좋은 치안도 좋은 치안이지만, 자우어를 매료시킨 것은 다른 것들이었다.

“이곳은 정말 대단해. 내가 구상만 한 것들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직원들도, 정밀하게 측정하고 가공할 기구들도 널려 있다고!”

침대에 드러누워 머릿속으로 생각만 한다면, 로렌츠 자우어는 자신의 천재적인 상상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상상을 실제적인 물품으로 구현하는 것은 실로 어려웠다.

기본적인 제철기술과 가공기술, 합금 기술.

물품의 내구성, 견고함, 만듦새.

이 하나하나가 전부 다 충족되어야지 비로소 제대로 된 총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물적 자원이 아닌 인적 자원도 중요했다.

어느 한 생각에 매몰된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봐주면서 조언해줄 입체적인 생각을 가진 직원들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려와 도이치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고려의 기술이 실로 세계 제일이라더니…!”

자우어는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창립하고 몇 번의 소소한 납품사업을 통해 사세를 키우다가 마침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자우어 450식 기관총.

이 반동식 수랭 기관총은 개발되어 시연되자마자 보수적인 군부에서조차 모두가 기립하여 박수를 칠 만큼 엄청난 호응을 이끌었다.

마침내 그동안 고려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던 다혈포의 시대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작가의 말]

베레타는 다들 아실 것 같네요.

다만 자우어는 현 지그 자우어의 자우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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