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29화 (429/653)

북대동양 조약

프랑스―나바르 전쟁으로 시작된 지금의 전쟁들은 각기 따로 진행되고 있었다.

각자 나름의 의미에서 어떤 나라들은 국경을 접한 다른 나라들과 굳이 싸우진 않으려 했다.

프랑스―이탈리아의 관계도 험악했지만 그 국경에서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으며, 베네치아에 맞서 예전부터 싸우던 그리스도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선 총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았다.

하지만 거대한 틀은 필사적으로 중립을 지키려는 소수의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전쟁을 벌이는 나라들을 두 편으로 가르기 시작했다.

개전 초기부터 엄청난 굴욕을 당한 이탈리아는 이를 아득바득 갈며 반동맹국의 질서에 빠르게 편입했다.

지리상, 문화적 동질성 같은 이유로 동맹국들을 마냥 적대시하기는 힘들어 이리저리 중립 외교의 노선을 탔던 그들이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상대방들의 결속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그들이 낄 자리는 없었다.

게다가 레기나 마리아가 박살 난 이상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고려와 같은 세력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고려는 이런 소리를 들었을 때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했다.

내심 이탈리아의 분전을 기대했는데, 고려는 이들의 전투력이 예상 밖으로 심하게 저조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해신용평가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유럽 내에서 산업강국으로 분류되었다.

산업이 융성했다는 말은, 군대를 양과 질적으로 우수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았을 때, 이탈리아는 정말로 허무하게 함대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자국 방위를 하기 바쁘니 의아스러울 뿐이다.

레기아 마리나는 적어도 비장하게 전사했다.

하지만 그 육군들은 그저 오스트리아인들, 심지어 도이치를 동시에 공격하는 이들의 군세를 막아내기 바빴다.

로마 이후 느슨한 도시들을 모아 처음 통일된 것이 보르자 왕조에 들어서였으니 남북갈등, 그리고 도시마다의 지역갈등이 그 원인으로 뒤늦게 꼽혔지만 그렇게 따져도 이탈리아의 통일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두 세기 전의 일이었다.

그냥 다른 이유 말고 이탈리아인이 이전의 라틴과 로마의 시절처럼 혹독하고 규율 있는 자들이 아니라, 그저 전쟁터에서도 올리브 오일과 파스타를 찾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일 테다.

실제로 전쟁이 나기 바로 직전까지도 이탈리아인들은 고려산 무기보다는 고려산 토마토 통조림―면 양념용―을 수입하는 데 열중했으니까.

“조금 기다리세요. 추진되고 있는 계획들이 있으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동안 차라리 베네치아를 괴롭힐 방법을 하나라도 더 강구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물론 현재 상황에서 지중해에 포위되다시피 한 이탈리아가 고려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긴 지리상 힘들었다.

다만, 이탈리아도 엄연히 식민지에 군대가 있었으니, 이들은 조국을 위해서 싸우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현 이탈리아 식민지는 스리랑카나 남부 보르네오섬,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해 있었다.

이중 가장 군세가 강력한 곳은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지역에 있는 군대였다.

지정학적으로 이곳은 무역의 중심지였고 소말리아 해안가를 점유한 이탈리아인들은 지중해로, 혹은 남아프리카로 내려가는 상인들에게서 부가적인 이윤을 달달하게 취하고 있었다.

이곳은 베네치아도 프랑스도 탐을 내는 지역이라, 아마 이탈리아를 적대시했던 것에는 이곳의 영유권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이탈리아령 아프리카는 남서쪽으로는 아주란, 북서쪽으로는 에티오피아를 맞대고 있었다.

일반적인 열강과 식민지의 관계가 그러하듯, 둘 모두 썩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대부분 일방적으로 열강이 식민지를 괴롭히는 것에서 기원했지만.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되니, 이탈리아는 어떻게 협상할 기회와 동기가 생겼다.

특히 에티오피아와는 더 크게 협력할 수 있어 보였다.

아주란도 물론 동맹국 중 하나인 프랑스와 빈번한 마찰을 벌이고 있었지만 그 성세가 약했고 대부분이 이슬람이라 기독교인들을 다 싫어했다.

반면 에티오피아는 악숨 왕국에서부터 기원한 비칼케돈파 콥트 정교회가 지금까지도 주류였으며 기독교인이 무슬림 인구수보다 많았다.

게다가 베네치아와 직접적으로 맞닿고 있는 자들이기에 베네치아의 악랄한 팽창정책의 피해자였기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아프리카에선 강한 축에 속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한 짓들은 기억이 안 나세요?”

“…….”

이탈리아인들과 에티오피아인들이 마주 보는 자리에서, 이탈리아인들은 이 흑인들이 유럽 열강에 대해 가지는 분노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아주 폭넓은 인종분류상으론 흑인이라 하나, 남아프리카의 흑인에 비해 에티오피아인들은 기독교를 믿는 등 지중해 문화권에 가까웠고, 다른 인종들 간의 혼혈도 많았으며 몇몇 인물들은 과거에 십자군에 참전하기까지도 했었다.

심지어 먼 옛날, 악숨 왕국의 찬란한 시절에는 이들과 로마는 서로 동맹이었으며 같이 번영을 추구했었다.

그렇게 살아온 이들이 식민제국 시절에 와서 도리어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핍박을 받으니 에티오피아인과 이들의 왕조, 솔로몬 가(家)가 가진 유럽에 대한 불신은 꽤 깊었다.

“지금의 회담은 오로지 고려가 우리에게 이 상황을 권했기 때문이에요. 그대들에게서 무언가 희망을 본 것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왕실은 현왕 바카파가 몸져눕고 태자 또한 아직 네 살배기 어린아이라 왕비 멘테밥의 섭정기였다.

이 여인은 상당한 외교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 유럽이 혼란한 틈을 타 에티오피아의 자주와 식민제국들의 쇠퇴를 꾀하고 있었다.

멘테밥은 남으로는 피해자적 가치와 아프리카 해방주의를 공유할 수 있는 무타파와 메리나의 왕조들과 연계해 솔로몬 왕가의 딸들을 시집보내거나 역으로 그들 왕조의 딸을 아들의 아내로 삼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서쪽으로는 무타파와 메리나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는 고려에게도 같은 수준의 독립보장을 받길 원했다.

그녀는 자신의 맏아들이 조금만 나이가 들면, 아마 곧바로 고려 황제에게 주청을 올려 자제감에서 수학할 수 있도록 할 계획도 있었다.

이를 위해선 확실한 외교 노선이 필요했다.

에티오피아는 고려와 베네치아가 사실상의 전쟁상태에 돌입한 이후에는 곧바로 고려의 편에 붙었고, 지금도 수단의 술탄국들을 멸망시키고 식민지로 삼은 베네치아의 야욕을 활발히 저지하고 있었다.

군사적 비교는 불가할 정도로 열세였지만, 에티오피아는 국토의 핵심부가 고원에 위치한 나라였으니 도리어 해상공화국인 베네치아가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다.

‘이런 천박한 흑인 놈들이…!’

에티오피아인들의 협상 태도에, 몇몇 이탈리아인들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은 교황의 명에 따라 노예무역을 안 하고 있지만, 베네치아의 노예무역은 익히 알려져 있었기에 아프리카 중남부의 흑인들은 가장 열등한 인종이라는 생각이 지난 대항해시대 이후부터 자리 잡혀 있었다.

유구한 기독교 왕국 악숨이고 나발이고, 당장 그렇게 보이는 걸 어쩌란 말인가.

“협상을 하려면 진정성을 보이시오.”

하지만 지금 이 협상에 임하지 않으면 이탈리아는 고려가 주는 ‘선물꾸러미’를 받을 자격조차 없었다.

협상은 여러 이유로 에티오피아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조약들은 대체로 서로 공정했다.

이탈리아는 울며 겨자 먹기로 에티오피아와 동맹을 맺고,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지금은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를 위해 싸워준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이 전쟁이 어찌 끝난 이후로는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위해 싸워주어야 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탈리아는 현 교황을 설득해, 전쟁이 끝난 이후 에티오피아의 정교회 대주교와 접선을 해야 했다.

반면 에티오피아는 지금 이후로 이탈리아의 군대와 같이 수단과 이집트에 대한 공세를 해나가기로 했다.

이탈리아 대사와 에티오피아의 외무관료가 서로 뚱한 표정을 지으며 악수를 하는 사진을 찍은 고려는 선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탈리아 식민군에게 베네치아와 싸울 수 있는 무기와 식량을 제공했다.

“자 받으시오.”

아프리카에서도 이집트와 수에즈를 노리는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일정한 목표를 달성한다면, 아랍 연방이 마침내 참전하여 시나이와 수에즈를 공격할 것이다.

* * *

진주

테르샤 로마.

4국동맹에 의해 전쟁을 하는 중인, 혹은 전쟁에 아직 뛰어들지 않은 각국의 수뇌부들과 실무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려도 직접 이곳까지 온 해원이 참석했다.

본래는 창양으로 오라 하겠지만, 군주나 지도자의 수가 워낙 많아서 그들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비교적 가까운 테르샤로마가 회의의 무대로 개최되었다.

그 이면에는 제3의 로마가 여기 있다는 것을 통해 로마 황제의 권위를 보여주고 싶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 친구, 여태 안 죽고 살아 있었구만.”

“하하하, 이 노인네 보게. 아직 정정해?”

서신교류나 전보 교류는 자주 했지만 신분상으로는 잘 만날 수 없는 지위였던 해원과 빌럼은 남들의 이목이 어떻건 서로 포옹까지 하며 친분을 과시했다.

고려는 심지어 십만 정도에 불과한 그들의 중앙군 중에서 보병과 기병을 적절하게 혼합한 세 여단을 프랑스―나바르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네덜란드로 급파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딱히 걱정하는 여론은 없었다.

여단 셋이 빠져나간다고 고려의 안위가 위태로울 린 없었다.

징병법 통과 이후엔 이미 오십만 징병군이 훈련 중이었고, 그들이 없더라도 고려는 남북려 통틀어서 경관과 보안관의 규모가 상당히 거대했다.

군대가 없는 대신, 이 광대한 국토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선 도시의 경찰과 시골의 보안관들이 충분한 수로 유지되어야 했다.

하다못해 중앙수사국과 정보총국의 하급요원들도 그 수가 심상치 않았으니.

또한 고려, 특히 북려엔 총기 허가를 받아 곰과 호랑이 등의 맹수에게 총을 쏠 수 있는 사냥꾼들도 상당히 많았고, 이들은 별다른 훈련 없이도 산악병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다른 군주들은 네덜란드의 군주를 은근히 질투하며 자리에 앉았다.

방명록에는 호화스러운 이름이 쓰여 있었다.

[고려 황제 해원]

[네덜란드의 빌럼 5세]

[에이레의 브리안 3세]

[잉글랜드의 헨리 9세]

[스코틀랜드의 앤 1세]

[스웨덴의 에리크 15세]

[이탈리아 국왕 대리, 왕자 살바토레]

[그리스 외무대신 파나지오티스]

[‘적법한’ 프랑스―나바르 왕국 외무대신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본래라면, 온갖 요란한 수식어를 다 붙여놓는 것이 유럽의 풍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 아니 확실친 않지만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황제가 그저 몇 글자 끄적이고 자리에 돌아가 앉았는데, 그 밑에다 대고 어디의 공작이며 백작이며 수호자라는 구차한 명칭을 주절주절 적을 수는 없었기에 다른 군주들도 만년필로 그저 그들의 최상위 작위만을 적은 채 둘러앉았다.

이곳에는 여왕도 있었고, 거동이 불편한 왕 대신 참석한 왕자도 있었고, 실무자긴 하지만 격이 좀 낮은 외무대신도 있었다.

마지막은 좀 그랬다.

해원은 은근히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성정으로 미루어보아 그리스나 나바르가 총리급을 보내지 않아 그렇게 노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위태로운 자국을 못 떠나는 군주도 있었고, 총리를 보낼 형편도 되지 않은 약소국도 있었다.

하지만 도이치와 그리스는 조금 거슬렸다.

도이치는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명색이 최상위 열강이면서 자신에게 꿍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후계자를 멋대로 빼돌린 것은 분명 분쟁의 사유가 될 만한 일이니 그에 대한 항의 표시겠지만, 군주로서 실리는 챙겨야 할 것이 아닌가.

해원은 확 그냥 중학교에 있는 빌헬름 2세의 장남 프리드리히를 이 자리에 대리 참석 시킬까 하고 고민했지만, 어차피 도이치 국왕의 권위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리인은 의미가 없었다.

‘좀생이 같은 놈.’

그리고 저 그리스 놈들은 반대로 아주 웃기는 놈들이다.

저들의 행동은 왜 우리가 군주까지 파견해야 하느냐는 역질문과도 같았다.

― 어차피 테르샤로마의 회담에는 폐하께서 자리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현지 실무자만 보내야지요, 하하하!

해원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건 다른 이들도 알았지만, 누구도 그 속내를 제대로 짐작하진 못했다.

어차피 지금 상황상 회담의 탁상 위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각자의 자국은 전쟁상황이거나, 전쟁이 아니라도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군대를 결집해 놓은 상태였다.

어째서인지 이런 자리가 있으면 사회자의 역할은 항상 에이레의 국왕이 하곤 했다.

사전에 계획되어 있었는지 젊은 에이레 지고왕 브리안 3세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청을 가다듬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귀빈들께선 한가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원치 않은 전쟁에 휘말렸다는 거지요. 이 전쟁은 이전까지와의 전쟁과 다르며, 앞으로의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며 군주들 및 대신들과 시선을 맞추었다.

“소위 말하는 동맹국들에 의해, 우리의 신민들은 불법적이고 악의적인 군사적 행동으로 피해를 보았습니다. 허나 저 동맹국들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넷이 연합하여 공세를 주도하니 이 구도는 하나의 나라들에는 벅차지요.”

베네치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는 각 지역에서 주변국들보다 확연히 강력한 국가들이었다.

본래라면 힘의 균형에 따라 뭉치지도 않을 이들이 이렇게 갑자기 힘을 합쳤으니, 주변국들은 이 행보를 막기 힘들어 헉헉대는 것이 당연했다.

당연히 이들도 뭉쳐야 했다.

그리고, 강국들의 균형이 깨진 이유를 선사한 고려 또한 뭉쳐야 했다.

“따라서 본인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들의 무력 행위에 대항하는 우리의 의지를 공유하고, 더 나아가 행동을 공유할 수 있는 약속을 맺길 원합니다.”

모두가 사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브리안 3세가 해원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 공동의 적에 대해 대항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길 원하니.”

그는 말끝을 매듭지었다.

“이는 북대동양 조약이라 불릴 것입니다.”

북대동양 조약.

그리고 이 조약에 창설되는 국제군사기구는 북대동양 조약기구라 불릴 것이다.

대동양이라는 말 자체는 고려의 영토 기준이 분명했다.

다만 대동양의 이름은 라틴어로는 아틀란티쿰이라 불리기에 고려어 명칭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이는 없었다.

너무나 손쉽게, 이 자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합류를 표명했다.

사실 이들은 지금까지 고려의 본격적인 개입을 원하는 처지였지, 간을 보고 자시고 하는 단계를 이미 지나 있었다.

이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기존의 고려와 에이레, 고려와 네덜란드의 군사적 동맹급의 약속을 체결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고려뿐만이 아닌 각 구성원끼리도.

조약에서의 이탈이야 해당국의 의지에 달려 있지만, 한번 이렇게 거대한 집단으로 묶인다면 그 구속력은 상당했다.

갈등과 갈등이 혼재되어 있었던 유럽에, 처음으로 상호의 안위를 논하는 체제가 선포되었다.

[작가의 말]

북대동양 조약기구는 아마 고려 내에선 줄여 부를 것 같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알파벳권에선 Tractatus Atlanticus Septentrionalis Unitarum, 줄여서 TASU라 부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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