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카호 사건
러시아.
모스크바.
서기 1726년 1월 7일.
“하하, 옐레나, 고향에 무사히 잘 왔구나. 불가리아 대공께서도 잘 오셨소.”
일리안 아센과 옐레나 아사니나 부부는 모스크바의 궁전에 도착했다.
불가리아 대공은 정교회의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기 위해 크레믈로 오라는 차르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열차라도 없었으면 몸이 아프다고 거부했겠지만, 이미 러시아는 어떻게든 모스크바에서 부르가스까지의 열차 노선을 이어 놓은 상태였다.
그래도 블라디미르 2세는 나와서 그들을 환대하기까지 하는 성의를 보였다.
별로 고맙진 않았다.
대공 부부의 얼굴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블라디미르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혹은, 나 같은 떨거지의 불만은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다행히도 그들 말고도 러시아의 영향을 받는 다른 나라들도 왕‧귀족들을 보내 놓은 상태였다.
그들만 초청되었다면, 일리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리에 오는 것을 거부했을 것이었다.
우호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귀족들끼리의 인연이 있는지 스웨덴과 네덜란드, 잉글랜드의 왕족들도 몇몇이 참가해 염탐의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기도 했다.
“…….”
일리안도 고개를 돌려 궁전을 바라보았다.
블라디미르 2세가 즉위한 이후 벌어졌던 크레믈의 혼란은 이미 완벽히 수습된 듯했다.
제정 러시아는 다시금 이전의 사치스럽고 고압적이며 못된 심술과 흉계로 가득한 곳이 되었다.
봐라. 만찬 자리에서조차, 일리안은 자신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옭아매려는 블라디미르 2세의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리 오시오. 매부의 자리가 거기가 아니니까. 매부께선 우리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야겠지.”
만찬장은 크게 둘로 쪼개져 있었다.
블라디미르 2세는 서쪽과 동쪽으로 넓게 양분된 만찬장으로 귀족들을 안내했고, 마치 기 싸움을 벌이듯 자신과 자신을 지지하는(종속된) 국가들을 동쪽에, 나머지 유럽의 국가들은 서쪽에 놓았다.
일리안은 자연스럽게 아까 대화를 나누었던 스웨덴 귀족이 있는 서쪽에 앉으려 했지만, 블라디미르가 이를 방해했다.
연회장의 구조와 자리 배석에 당혹해하는 일리안은 도움의 눈초리를 서쪽으로 보냈지만, 서쪽에 있는 자들이 뭘 해줄 수 있겠는가.
유치한 신경전이 끝나고 비로소 일리안은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순간을 맞았다.
긴 연회 끝에 사람들이 잠을 자기 위해 숙소로 돌아간 시간, 의외로 많은 음주를 하지 않은 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블라디미르 2세는 마찬가지로 입에 술을 대지 않았던 일리안을 불러 독대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술을 실컷 마시고 뻗어버릴걸.
일리안이 잠깐 후회했다.
호랑이 굴에 끌려간 느낌이라, 제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그를 도리어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런 대면은 언젠가 찾아왔을 것이니.
“그래서 매부. 불가리아의 대공, 신민들로부터 자애공이라는 위명까지 얻으셨더군.”
“과분할 따름입니다.”
“고려의 예법엔 몸을 낮추는 것이 좋지만, 이곳에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소. 드러나지 못하면 결국 일어나지 못하는 곳이니까.”
블라디미르는 차를 홀짝였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온 통풍을 경계하는지 북방제국의 폭군은 상당히 검소한 식단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아, 허나 귀공은 그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갑자기 웃음 짓던 블라디미르가 내밀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 손깍지를 끼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대공에게 헌신적인 협조를 원하오.”
“무슨 협조 말입니까?”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대는 고려인이었으나, 지금은 불가리아의 대공이지, 또한 내 여동생과 결혼했으니, 그대의 자손에겐 류리크의 피가 흐를 것이오. 이렇게 된 이상, 같이 승리하여 함께 영광을 누려도 되지 않겠소?”
“…….”
“대공, 그대의 나라 불가리아는 옛날 불가르인에 의해 건국되었다지만, 이미 혈통적으로는 우리 민족, 범슬라브계 국가요. 오스만의 점령에 있었다 하나 종교도 정교회를 믿으니 더없이 동질적이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는 한 형제라 볼 수 있지 않겠소?”
그놈의 범슬라브주의.
민족이 같다면 다른 나라의 땅을 점유해야 한다는 미치광이식 논리는 너무나 많은 침략을 정당화하려 들었다.
이는 실제로 불가리아의 땅에서 살아가는 불가리아인들의 생각과는 하등 관련이 없었다.
그저 하나의 목표일 뿐.
오스만의 전성기가 짧았다지만 이곳에는 그 영향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어, 튀르크인들도, 그리스인들도, 세르비아인들과 크로아티아인들, 알바니아인들도 살아가는 터전이었다.
남슬라브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기엔, 이들의 폭은 너무 광범위했다.
그런데도 이놈은.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1세 때 불가리아를 해방하여 해방제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이제 그 아들의 대에 들어서는 해방이 아니라 다시금 굴종을 원하는 것인가.
종교?
모스크바 대주교를 제외한 사방의 정교회에선 도리어 이자를 파문했다.
“군비를 지원하시오. 병력을 모으시오. 러시아가 남진하여 마땅한 우리의 도시를 다시금 되찾는다면, 그대들은 그리스의 땅과 항구를 점령해 새로운 불가리아 왕국, 혹은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미르의 눈은 이글거렸다.
일리안은 겁쟁이라 그의 말 앞에서 거절의 의사를 표명하기도 힘들었다.
주먹도 이 정도로 가까우면 항거할 의욕이 사라지는 것이다.
불가리아는 너무나도 영향을 받기 쉬운 곳에 있으며, 한 번의 군세를 휘몰아친다면 순식간에 스러질 정도로 나약했다.
독립을 얻은 지가 불과 몇 년, 몇십 년에 불과할진대 이런 거대한 제국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쏘냐.
일리안은 고개를 떨구었고, 블라디미르 2세는 의기양양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 전쟁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연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생각이었다.
전쟁과 약탈, 학살과 파괴로 벌어 먹고사는 유목민들을 제외한다면 정주민들은 대체로 항구적인 평화를 좋아했다.
일리안은 덜덜 떨리는 손길을 애써 부여잡았다.
크레믈에서 말 한마디 못 하고 나온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그에게 닥쳐올 시련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궁금했고 궁금한 만큼 두려웠기에.
옆에 앉아 있는 옐레나가 남편의 손을 어루만졌지만, 여전히 남편의 손은 겨울 한복판에 내어놓은 쇠막대기마냥 시리고 차가웠다.
대공이 탄 귀빈 열차의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러시아의 풍경은 황량했다.
아직 한겨울이라 그렇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열차는 키예프를 지났다.
예전에 그가 살던 진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토지도 비옥하며 기후도 적절해 농사도 잘되는, 어쩌면 창양과 고려라는 압도적인 존재가 없었다면 당대 세계를 호령할 나라의 수도로 기능하기 적절했다.
물산으로 따지자면, 이곳 초르노젬(흑토 지대) 또한 비옥하기 그지없어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북부의 곡창으로 불릴 정도의 소출을 자랑했다 한다.
하지만 지금 키예프에는 광대한 면적의 대지에서 산출되는 풍요로운 밀의 혜택은커녕 음울함만이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루스의 어머니 도시라는 위명은 오로지 과거의 것, 키예프 공국의 번영은 짧았고 이 도시는 몽골의 파괴적 행각에 한번 시달려 파괴되었다.
그 이후에는 폴리투의 치세를 겪다 대홍수 시절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이끄는 자포리자 카자크 봉기의 주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이후 여러 혼란기를 빠져나와 지금은 다시 예전의 군주, 류리크의 땅으로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과거의 번영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참된 군주란 대체 무엇이냐.’
질문이 일리안을 괴롭혔다.
블라디미르 2세의 통치는 신민을 좀먹고 있었으며, 그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허망하게 스러지게 만들 것이었다.
만약 불가리아가 그에 굴종한다면, 불가리아의 신민들도 마찬가지로 사지로 내몰릴 것이다.
혹은 루스의 신민들보다도 더욱 좋지 않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었고.
가뜩이나 좋지 않은 형편에 사는 신민들은 가혹한 전시세금에 허리가 꺾여 구부정하게 다녀야 할 것이고, 이제는 빵과 우유, 요구르트조차 마음대로 먹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그의 신민들만큼은 배를 곯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터르노보로 갈아타기 위해 바르나 간이역에서 내린 일리안은 미리 와 있던 자신의 열차가 고정대와 분리되는 것을 기다릴 동안 이제는 역 밖에 서서히 쌓이고 있는 러시아 제국군의 군사 물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이제 야욕을 숨기지도 않았다.
오스만 술탄과 했던 약속은 이미 파기되어버린 셈이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억지가 아니라, 실제로 술탄의 지위는 끊겼고 오스만은 카디(관료)와 예니체리(군부)라는 두 거대한 집단으로 나뉜 상태였다.
콘스탄티노플 자유시에 있는 고려인 해상헌이 이를 최대한 막으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이런 것이 막아 보겠다고 막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왕조의 종말.
그리고 그 이후에 들어설 혼란.
러시아는 이를 이용해 다시금 새로운 국제질서를 강제할 테고, 흑해를 그들의 내해로 만들 야욕을 실행으로 옮길 것이다.
짧으면 몇 년 내로 불가리아도 선택을 내릴 때가 올 것이다.
불가리아의 땅이나, 러시아가 뺏어 점유하고 있는 바르나의 항구를 원망의 눈초리로 쏘아본 일리안은 터르노보까지 가는 열차로 갈아탔다.
* * *
하지만 일리안의 시기에 대한 예상은 너무나 낙관적이었다.
세상의 일은 가끔은 너무나 급진적이고 즉흥적으로 흘러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개천 451년(CE 1726) 3월 10일.
아라곤 소속 민간 선박, 우에스카호가 콘스탄티노플 항구에서 출발했다.
우에스카호는 혼란한 지중해에서도 별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국가, 아라곤의 선박이었으며 또한 나름대로 상태와 시설이 좋은 기범여객선이기도 했다.
고려와 리머릭, 고려와 암스테르담 등 대양을 오가는 대형 여객선에 비할 바는 아니라지만 크기도 지중해를 오가는 함선치고는 꽤나 컸다.
여객선도 크면 클수록 화려하고 좋은 경향이 있었다.
고려는 예전부터 특수한 나라를 제외하면 외국행 여객선을 운용하지 않고 있었다.
타국으로의 여행을 권유하기엔 실로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고, 자국 내의 여객선만으로도 충분히 시장이 컸다.
사람들도 굳이 미개한 외국에 나가 관광을 하려는 의욕도 없었다.
고려 내부를 둘러보는 것도 평생 동안 가능할 목표인지 확실치 않았다.
게다가 동지중해는 애초에 고려의 정책상 군사적 무관심지역이었으니 안전도 확보하지 못했다.
공무 등의 여러 이유로 이곳을 오가는 고려인들은 되도록 아라곤이나 카스티야 같은 나라에 소속된 선박을 이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해상헌 같은 고위직은 공적 함선이 있었지만, 모두에게 일인 일척을 줄 순 없는 노릇이다.
우에스카호는 콘스탄티노플을 빠져나와 마르마라해를 거쳐 에게해에 진입했다.
그리고는 예정된 경로, 미르토아해를 통과하여 키티라섬을 돌아 이오니아에 진입하려 했다.
그 뒤엔 메시나에 정박했다가 로마와 피사로 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섬이 많아 복잡한 미르토아해에 진입한 순간 우에스카호는 자신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오는 괴선박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젠장, 활대기뢰정이다!”
이제는 꽤 유명해진 무기.
아라곤인 함장은 욕설을 내뱉으며 조타륜을 있는 힘껏 돌렸지만, 뒤따라오는 활대기뢰정을 피할 방법은 전무했다.
지금의 활대기뢰정은 초창기의 활대기뢰정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빨랐다.
포라도 있었으면 대응사격이라도 실시하겠지만, 여객선의 무장은 수석식 소총 몇 자루뿐,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군함들이 방호력을 챙기기 위해 더 두꺼운 장갑을 탑재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민간 여객선은 그런 경향조차 없었으니 이를 맞는 순간 지옥이 펼쳐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활대기뢰정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 알리야를 위해!
“민간 여객선을 공격하다니, 지옥에나 떨어질 놈들!”
선장의 비명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한 번 들썩인 우에스카호는 물기둥이 솟아오른 뒤 두 쪽으로 갈라져 천천히 가라앉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주 소수의 생존자들은 서둘러 여객선 갑판에 있었던 자그마한 나무 소선들을 띄우거나 잔해에 매달렸다.
제아무리 잔잔한 지중해라 하더라도, 이들이 무사히 육지로 갈 수 있을 확률은 희박했다.
하지만 공격자들은 그것도 모자라 마치 확인사살이라도 하려는 듯 그들에게 다가왔다.
하나하나 정확히 소총으로 사격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들에겐 활대기뢰정 말고도 제대로 된 군함 두 척이 더 있었다.
그 군함 두 척에는 생전 처음 보는 깃발이 있었는데, 푸른 바탕에 다윗의 별과 칼 두 개가 교차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지금 저 깃발은 별 의미가 없었다.
살아나야 배후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죽음 앞에 두려워하거나 자포자기한 상황, 동쪽에서 다른 배 세 척이 나타났다.
누군가 외쳤다.
“그리스 해군기다!”
그들에게 다가오던 코르벳도 그제서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곤 함포를 쏘아대었다.
소형 함포라지만, 어차피 양측의 군함도 모두 중소형 함선에 불과했기에 서로 무시 못 할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본래라면 그리스 해군은 주변국들에겐 그냥 비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제아무리 고려의 지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해군전통이 하루아침에 생기는가.
하지만 그런 암담한 상황에서도 걸출한 인물들은 존재했는지 백발의 그리스 제독, 요안네스 테오도시우 보시스(Ioannis Theodosiou Botsis)가 지휘하는 초계함 전단은 동급의 적 코르벳의 포격을 현란한 기동으로 피하며 자신의 포탄을 적 근처에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흉적들의 함대는 수적 열세였고, 그리스 함대의 지휘관의 역량도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코르벳은 후퇴를 결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으로 함포를 영 엉뚱한 방향으로 돌렸다.
불리한 전투에서 도주하기 직전, 구명정을 포격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바다로 빠져요, 얼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로 빠졌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공격은 명중률이 낮아 빈 구명정 하나를 박살 내는 것으로 그쳤고, 끝내는 물러나 서쪽으로 달아났다.
그리스 해군은 적을 뒤쫓기보다는 얼마 되지 않은 생존자들을 구출하기로 결심했고 생존자들은 그제서야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커흑!”
“전하, 괜찮으십니까?”
“이 빌어먹을 새끼들, 또다시….”
질기게도 살아남은 무자파르 왕자가 초계함 갑판 위에서 바닷물을 뱉어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가 뱉어낸 바닷물은 몹시 붉었다.
“왕자라고?”
생존자들을 보기 위해 나타난 요안네스 그리스 제독이 갑판에 나와 무자파르를 찾았다.
하지만 한 번 목숨을 피했던 무자파르는 이번에는 영 운이 좋지 않았는지 활대기뢰 공격 때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번에는 베두인 호위들도 그를 구해주지 못했다.
호위들도 겨우 두 명만 살아남은 상태였으니.
도시에 남아 있어야 했다고, 무자파르는 그제서야 해상헌의 말을 들을걸 하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집트의 왕자답게 그는 겉으론 실실 웃어 보였다.
“시… 시신이라도 건지는 것이 행… 행운이 아니겠나?”
출혈로 인해 추위를 느끼는지 덜덜 떨던 무자파르가 요안네스 제독에게 말했다.
“저… 저들은 베네치아 해군이오. 장…담할 수 있소.”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뱃밥을 먹어온 요안네스가 적의 함선과 기동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제아무리 깃발을 바꿔 달았다 하더라도, 저들은 베네치아 함대가 분명했다.
“이… 이번 일에 꼭…… 복수를….”
무자파르가 마지막 말을 뱉어내고는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부릅뜨고 하늘을 노려보았다.
자신을 향한 세 번의 암살에서 두 번 살아남은 그는 결국 그리스 해군 함정의 갑판 위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 * *
베네치아는 목적을 달성했다.
과감한 작전으로 이들은 무자파르라는 이집트의 화근덩어리를 제거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뒤처리가 문제였다.
깔끔하게 생존자가 모두 죽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몇몇이 살아남는 바람에 골치가 아팠다.
그리스 놈들이 뜬금없이 나타난 것은 더 그랬고.
물론, 에게해와 미르토아해는 그리스의 앞마당이니 그들의 함대가 나타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기가 실로 교묘했다.
그리스 해군은 공식적으로 이번 일을 베네치아의 민간 선박 공격으로 규정했다.
그리스 최고의 신문사, 헬라스신보는 호외를 있는 힘껏 뿌려대었다.
[이집트 왕자 암살을 위해 민간 여객선을 공격해 침몰시키다!]
[베네치아의 악랄한 행동이 극한에 달했다!]
민간선박에 대한 어뢰 공격은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시대가 바뀌고, 산업화가 되며 단가가 무척 비싼 증기선이나 기범선을 함부로 뽑지 못하는 시대가 되자, 지중해나 대동양, 북태평양 등의 문명화된 바다들에선 더 이상 해적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무배 시절에나 해적들이 배를 만들어 활개 쳤지, 지금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나라들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여객선에 탑승하는 승객들의 국적도 다양해졌다.
모두가 평화를 누리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그 평화를 깨트린다?
그 즉시 모두의 공적으로 몰리기에는 충분했다.
다만 베네치아는 이를 부인하며, 무자파르 왕자는 이미 한 번 야파항에서 암살시도를 경험한 적이 있고 증언자들이 일관적으로 주장한 활대기뢰정에 탄 사람의 고함과 깃발의 문양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 급진주의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이 이번 공격을 계획하고 베네치아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라 주장했다.
베네치아의 억지 주장은 꽤나 설득력 있었다.
만물 유대인 배후설은 지식인들이 볼 때는 정말 어이가 없어 코웃음이 흘러나오는 말이었지만 당시 유럽의 평균 지식수준을 고려해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말이기도 했다.
서민들은 자신들이 잘살지 못하는 이유를 유대인 이웃에게 돌리곤 했고, 이에 죄 없는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는 것도 몹시 자연스럽고 흔하게 나타났다.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의 유대인 탄압은 지나칠 정도였다.
우에스카호 사건 이후, 유럽은 화려한 문명의 이면에 가장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만 고려는 그나마 우에스카호 사건의 당사자인 아라곤 왕국과 대면하는 자리에서 일반적인 여론을 확답했다.
“알겠습니다. 우리 왕국은 고려의 베네치아 제재를 지지합니다.”
확실한 명분으로, 고려는 7함대를 동원해 아덴만에서의 작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와 동시에 베네치아령 인도, 뭄바이의 아편 시장에 대한 철저한 해체가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며 아덴만을 오가는 베네치아 상선들도 이에 협조해야 할 것이었다.
이런 상태가 되었으니 베네치아에게 남은 방법은 오로지 하나였다.
[작가의 말]
내일 3/9는 휴재입니다.
모두들 소중한 한 표 행사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