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급 전함(2)
불공급 전함.
상승(常勝)함.
불공급 함에 타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제각기 탄성 비스무리한 것을 내뱉었다.
“세상에 배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고려 해군의 배 사랑이야 아주 유명하다.
불운한 가정사를 가진 한 함장은, 바람도 피지 않으며 그저 묵묵하게 조종하면 조종하는 대로 이끄는 아름다운 전함이야말로 모든 수병의 아내와 같다고 이야기를 했던 적도 있었다.
선원들은 그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 불공급 전함이라는 것이 이전의 함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아름다운, 정말로 심미적인 기능성까지 충족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전폭과 전장의 비율은 늘씬하게 뻗어 있다.
300미리 대포가 설치된 2연장포탑 4기는 보기만 해도 위엄찼다.
전투함교와 굴뚝마저도 우아하니, 군함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 선원 가족들의 아이들마저도 한번 타 보고 싶어 아버지에 칭얼대곤 했다.
해군이라고 다를 바가 없어, 모두가 앞서서 이 전함에 타고 싶어 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은 것도 아닐 정도였다.
게다가 군함은 크면 클수록 멀미가 덜하고 많은 장병을 수용하는 만큼 북적북적거렸지만 그만큼 장병복지구역도 존재했다.
하지만 상승함의 장병들은 약간 달랐다.
지휘관 문제가 좀 있긴 있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이런 최신형 함선에는 무난히 성공 가도를 달리는 지휘관이 배치되었을 것이다.
숭무감을 정석적으로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영관에 오르고, 현장과 사무직을 번갈아 경험한 무난한 함장이.
아마 불공급의 나머지 네 함은 그런 고급장교가 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승함에는 그렇지 않았다.
상승함에는 그보다 더 유명한 함장이 타 있었다.
김태인 정령이라고.
아부다비에서의 굴욕을 맛본 당사자이자, 고려 해군사에서 참사 아닌 참사로 기록된 해전의 주인공이었다.
이렇게 다시금 불공급 전함의 한 함선의 함정으로 배정받은 것을 보면, 그의 군생활이 끝나지는 않았다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 위로 올라갈 진급길은 거진 막혔을 것이다.
장교라면 누구나 그리는 장성 진급은 물론이고, 함대를 지휘할 제독의 자리는 탐낼 수 없어 보였다.
그 참사로부터 세월이 좀 지났고, 이제 김태인 정령은 숭무감 해군부 동기 기수들이 능히 별을 달 때에도 여전히 정령으로 남아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태인은 지금 이 상황을 몹시 감사하게 여기고 있었다.
장성이 되지 않은 장교들은 거진 정령에서 군생활을 마무리했지만, 정령 자체가 낮은 계급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오욕을 씻을 수 있는 한 번 더 기회를 얻은 것 자체가 소중했다.
‘이번엔, 절대로… 절대로….’
상부에서는 아덴만에서 작전을 할 예정인 7함대 소속 전함들 중 하나에는 비록 패전했더라도 그곳의 기후와 지형을 잘 알았던 사람을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이번에는 이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무사히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리라 다짐했다.
반면 그의 각오와는 별개로 상승함의 장병들은 함장을 불안한 눈길, 혹은 불만 섞인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부정 타는 거 아냐?”
“우리도 페르시아만에 처박히면 어쩌려고 대체 저런 양반을 함장으로 임명했지?”
“그러게, 본국에는 쨍쨍한 장교들 많은데 왜 하필 저런 퇴물을.”
바람의 영향을 받는 범선의 시대에서 이제는 바람은 별 상관이 없는 철선의 시대로 넘어왔다 하더라도, 바다란 곳은 여전히 위험천만하고 변화무쌍했다.
뱃사람들은 여전히 온갖 미신에 매달리곤 했고, 불길함이나 기타 흉조에 대해선 민감하게 반응했다.
계급이 깡패고 함장의 권위란 대단하기에 불복종을 할 수는 없지만 태인조차도 그들의 불만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 정도였다.
“진짜로 말입니까?”
보아라, 함장이 오르기 전 함교의 분위기가 이토록 뒤숭숭한 것을.
함장 바로 옆에서 근무를 보는 장교와 사관들도 이럴진대 다른 장병들은 어떨까.
하지만 군인은, 함장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래. 함대장님보다도 선배라지? 군생활 꼬인 거지 뭐….”
― 땡땡 땡땡
“함장님 함교에 드십니다!”
태인과 그 뒤를 따라 들어온 부함장이 함교에 들어서자, 누군가 재빨리 종을 쳤다.
잡담하던 인원들이 기겁하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총원 차렷!”
“쉬어.”
태인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자네가 함정장교인가?”
“그렇습니다!”
그가 오기 전까지 떠든 두 명 중 한 명이었는지, 함정장교의 얼굴은 그야말로 새빨개져 있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한다.”
태인은 별달리 이를 책망하지 않고 흘려보냈지만 여전히 장교들과 사관들, 병들 사이에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당사자는 별 상관없다는 듯, 도리어 함교에 대기하고 있던 직별장들에게 먼저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한 차례 통성명을 끝낸 태인은 함내에 비치된 작은 나무판을 열어 그 안에 붙어있는 지도를 손에 들고 말했다.
“우리 7함대는 두바이로 향한다. 전승호를 따라 항해하라. 출항 십 분 전.”
“예, 함장. 출항 십 분 전!”
십 분은 출항하기엔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승함의 선원들은 이미 진작부터 함내에서 출항 대기 중이었기에 때문에 혼선은 거의 없었다.
― 함총원 출항 십 분 전. 현 시간부로 정박당직을 항해당직으로 전환.
다만 장교들은 어색함을 해소시킬 절호의 기회라는 듯 전성관에 대고 명령을 전파하거나 홋줄을 풀거나 출항 지시를 하겠다며 함교를 빠져나갔다.
고려제국 함대의 편제는 대표적으로 태평양사령부와 대동양사령부라는 양양(兩洋)사령부의 형식을 띠었다.
몇 차례 개편이 있었지만, 양양사령부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해군부의 위치는 석정으로, 석정시가 세워진 직후 곧바로 해문에서 이전했다.
하지만 태평양함대사령부가 하와이에 위치한 것과는 조금 다르게 대동양함대사령부는 둘로 쪼개져 있었다.
사령부 기지 자체는 석정에 있었다.
하지만 해문을 떠나지 않는 근위함대를 제외한 대동양함대 전력은 둘로 나누어져, 절반은 제2모항인 마나하탄(맨해튼)에 주둔하여 북대동양의 작전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해안경비대 사령부의 위치는 기주에 있었으니, 대동양의 고려 함대 전력은 북중남려 전부 고르게 분포해 있던 것과 같았다.
대동양사령부에는 또 함대들이 위치해 있었다.
함대들의 명칭은 최근의 함대 개편 및 증강에 맞추어 바뀌었지만 여전히 대동양함대는 홀수 번의 함대 번호를, 태평양함대는 짝수 번의 함대 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1함대는 근위함대로, 사실 제국 해군이 자리 잡은 이후로 변동이 없었다.
3함대는 북대동양함대로, 가장 강한 잠재적 열강들을 상대하기 위해 사실상 함대들 중에서 가장 강한 전력이 포진했다.
5함대는 남대동양, 혹은 아프리카함대로, 3함대에 비하면 초라했다.
태인이 속한 함대는 이 모두에 편제되지 않았다.
새로운 7함대는 언제까지 가동될지는 미지수였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인도양의 해상 장악을 목적으로 만든 전력이었다.
지중해국가들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수많은 물류를 오가고 있는 것을 고려해보면, 7함대는 3함대보다야 살짝 덜 중요하겠지만, 5함대보다는 더 강해야 할 것은 자명했다.
그렇기에 함대 기함이자 제독이 타고 있는 전승함과 태인의 상승함이라는 불공급 전함이 두 척이나 편제된 것일 터다.
물론 전함이 두 척이라는 의미지, 함대의 규모는 실로 무시무시해 방호순양함들은 물론이고 어뢰파괴함과 군수지원함들까지 전함을 호위하고 이동하고 있었다.
마침내 닻을 올린 7함대가 움직이며 함대기함 전승호를 따라 항구에서 대동양으로 향했다.
* * *
원래 해군의 밥은 맛없기로 유명했다.
여건이 안되던 아주 먼 옛날, 범선시대에는 느끼한 건육괴나 질겨서 먹다가 이빨 빠질 수 있는 육포, 딱딱해서 망치 대신 들고 내리치면 박힐 것만 같은 건량이니, 쉬다 못해 산성으로 변한 김치 같은 것을 먹어야 했다.
선원들은 함선에서 내리면 괴혈병 예방을 위해 싱싱한 야채나 과일들을 의무적으로 먹어야 했지만 모든 해안에서 거북열매 같은 것들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의 선배 수병들은 대체 무슨 환경에서 근무하셨는지, 수업 시간에 괴담을 이어서 배우는 후대의 수병들은 그저 경악했을 뿐이다.
쌀바구미가 꿈틀거리는 건량이라니.
하지만, 창고시설 및 보관 방법의 향상과 통조림 산업으로 대표되는 식료품 가공 산업이 발달하며 이런 군 복지는 가장 빠르게 변화했다.
제아무리 과거에 비해서 함선의 크기가 커지고 있다 하나, 여전히 함선은 밀폐되고 답답한 공간이다.
언제 죽거나 다칠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환경에 근무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군인으로서 이는 감내할 환경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노고를 당연시하는 것은 적절치 못했다.
해군으로서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개선책 중 하나는 당연히 식사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맛있는 밥은 건강은 물론이고 사기에 직결되니.
수햄이니 하는 것들을 넣어 만든 부대찌개는 황상의 은혜를 통해 경신대기근을 극복하던 조선의 민간에서 유래된 음식이었지만 의외로 고려군 내에서도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일약 고려군과 조선군을 대표하는 군음식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통조림은 수햄만 있는 것도 아니다.
비린 것을 못 먹는 사람들은 못 먹겠다지만 그래도 간장에 졸여 먹으면 맛있는 생선 통조림도 있었고 바닷가재 통조림도 존재했다.
야채로 만든 통조림도 있었다.
깻잎 통조림은 세계에서 아마 고려군만 볼 수 있는 음식일 것이고 그 밖에도 연근이나 우엉, 콩과 마늘쫑, 당근 등의 통조림도 있었다.
의외로 인기가 있었다.
고려인들이 고기를 사랑하는 건 변함없으나, 매끼 고기만으로 먹다 보면 야채도 그리워지는 것이다.
심지어 모든 통조림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통조림은, 고기 통조림이 아니라 과일 통조림이었다.
거북열매는 통조림으로 만들기 가장 선호되는 통조림이었고 맛도 좋아 장병들은 이것이 배급된다면 국물까지 많이 달라고 성화를 내기 일쑤였다.
물론 통조림은 열을 가해 살균을 하는 과정에서 몸에 꼭 필요한 활생소가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괴혈병은 무서운 질병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도 이제는 해결 가능했다.
이는 조선에 주둔하고 있었던 고려 해군 전단의 수병들에게서 유래된 것인데, 잘 씻은 매실을 설탕에 재어 만든 매실청은 적절한 온도에서 밀봉해 보관한다면 매실에 들어있는 풍부한 활생소를 유지하면서도 상당히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오히려 숙성할수록 맛이 좋으니 해군으로선 딱 적절했다.
이렇게 설탕에 절이는 건 매실뿐만 아니라 귤이나 신귤 등의 다른 과일에도 적용할 수 있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설탕의 가격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탕수수 농장이 많아지며 설탕의 공급은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탕 자체의 수요는 상승하면 상승했지 적어질 수는 없어 여전히 설탕은 비쌌다.
커피에도 넣어 마시고, 마카론 같은 과자에 넣고, 파라콜라에도 들어가는 게 설탕이다.
하지만, 고려군 최고 통수권자인 해원은 시중이고 상서령이고 나발이고 예산을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배의 장병들에게 매실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하라는 황명을 내렸다.
― 식량 보관은 어찌하냐고? 함대마다 급양함을 한 척 더 건조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한 척으로 모자라면 두 척을 건조하면 되는 것이고. 말 잘했다. 이번에 냉동고함을 한번 건조해보자.
이 명에 선원들도 차 문화가 발달한 제국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점심과 석식 사이에 휴식 시간 겸 매실차와 같은 것들을 드는 다과 시간을 가졌다.
또한 달달하고 새콤하고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과일차의 맛에 중독된 일부 수병들이 틈만 나면 입맛을 다시며 주방에 기웃거려 조리병을 짜증 나게 하는 것도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함정장교도 매실차를 몹시 좋아했다.
사관실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간단한 책이나 신문을 보며 남아있는 차를 음미하는 것이 하루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는 다과 시간이 되었어도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꼬인 건 내 군생활이었구요.’
김태인 함장은 시간이 될 때마다 상승함의 전투태세를 점검했다.
물론 운용회수가 적은 다른 함도 비슷하게 훈련을 하겠지만, 상승함은 그 빈도가 더 많아 보였다.
이에 같은 자리에 있었던 다른 간부들은 이거 함장한테 잘못 찍히는 바람에 그런 거 아니냐고 수군대었고, 그들의 성난 눈초리는 경솔하게 말실수를 했던 함정장교에게 돌아가곤 했다.
함장과의 첫 대면을 최악으로 장식한 함정장교가 울상을 짓고 우현 난간에 기대 있자, 나이 많은 주임특교가 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병과 부사관들의 생활을 챙기는 그로서는, 제아무리 장교라도 저 바다에 뛰어들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임특교님.”
“설마 바다로 뛰어들어 가진 않으시겠죠?”
“하하,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살짝 생각이 드네요.”
불공급 전함이 전부 다 최근에 건조된 만큼, 함장뿐만 아니라 배정된 인원들끼리도 아직 친해지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첫 만남은 중요하지요.”
“그걸 제가 망쳐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커피라도 한 잔 타셔서 함장실에 방문하시죠?”
방금 들어가셨는데 말입니다.
주임특교가 항해는 길지만, 수습하기 위해선 지금밖에 없다는 말을 넌지시 띄우자 함정장교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게 맞겠군요. 감사합니다.”
함정장교는 사관실에서 주임특교가 일러준 대로 커피를 탔다.
‘검은 커피에 설탕을 반 스푼만… 대체 이런 건 어떻게 아시는 거야?’
부사관은 부사관 나름대로의 세심한 면이 있다.
물론 주임특교가 함장 당번병을 불러 그새 함장의 다과 취향을 수집한 것이기도 했지만 영문을 모르는 함정장교는 그저 다행스러웠다.
지독한 커피 애호가들은 우유라도 잘못 타면 찻잔을 던져버리기 일쑤였으니.
“정위 권한수입니다.”
― 들어와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함장실 안으로 들어간 함정장교는 이내 근무복 차림으로 앉아있는 함장을 발견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함선의 구조도를 보고 있었는데, 함정이 처음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틈만 나면 함선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는 제보에 신빙성을 더했다.
한수가 머뭇거리며 커피를 내려놓자, 태인은 그 모습을 보더니 구조도를 치웠다.
그 사이에서 빈 잔이 모습을 드러냈고, 한수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일이 안 되려니 참.
“그건 자네가 들게.”
대신 함장은 할 말이 있다는 듯 그에게 맞은편의 자리를 권했다.
한수가 주춤거리며 자리에 앉자, 태인이 입을 열었다.
“함은 충분히 적응이 되었나? 귀관들은 나보다 한두 달 먼저 함에 배속되었다고 들었다.”
“예, 함내 구조는 어느 정도 파악했습니다.”
“그대는 어디서 복무했지?”
“상승에 타기 전까진, 조익현급 방호순양함 경문호에 있었습니다. 2함대 소속 탐라전단입니다.”
2함대는 북태평양(동아시아) 함대를 지칭했다.
“장강돌파작전을 했던 그 전단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실전경험은 풍부하겠어. 좋아. 그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커.”
“그, 명나라 나무배를 불태웠을 뿐인데….”
한수가 지금 보니, 태인은 한수의 뒷담이든 뭐든 전혀 신경을 쓰고 있던 것 같지가 않았다.
한동안 사담을 나눈 이후, 태인은 한수가 이상스럽게 구는 것을 그제야 눈치챈 듯 흘러가듯 말했다.
“뭐라도 논의할 것이 있나? 건의 사항이라든지?”
“저… 그게 사실은….”
한수도 융통성이라곤 크게 없어, 마침내 상관에게 자신의 죄목을 낱낱이 고해바치기에 이르렀다.
자신이 뒷담 같은 것을 했고, 그걸 들으셔서 훈련을 빡세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
어조는 더없이 공손했지만, 상관의 입장에선 어찌 보면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날 수도 있는 말이 분명했다.
“뭐? 하하. 자네도 참.”
태인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의 그 자세한 설명을 듣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나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그런 것으로 장병을 힘들게 하지는 않아.”
“그… 그렇다면?”
“지금의 훈련은 필요에 의해서다.”
태인은 서늘한 눈으로 한수를 바라보았다.
“제국 해군은 더없이 경험이 풍부하지만, 더없이 경험이 모자라기도 하다. 특히나 불공급은 건조되자마자 실전배치에 들어가는 함선이니 이 현상은 더 많이 드러날게야.
게다가 이곳에 타고 있는 장교들도 해군부에서 내려보낸 교리에 얽매여 있는 것이 현실. 탁상에 있는 자들도, 현장에 있는 자들도 많은 전투를 해본 적이 없다. 아무리 명의 함대가 허섭스레기라 하더라도 탐라전단에 있었던 그대는 차라리 나은 편이야.”
“…….”
“나는 내 함의 사람들이 상승함을 완전히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장은 가변적이며, 우리가 모르는 위협이 항상 존재하곤 해.
제아무리 불공급 함선이라도, 전능한 태조께서 조종하시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다루는 병기인 만큼 허점이 있고 적은 이런 허점을 파고들 수 있다. 그러니 교범이 아닌 상상과 임기응변이야말로 해군 장교의 가장 큰 자질이다. 허나 이를 밑받침해주려면 일단 기본적인 사항들은 완전히 숙달되어야 하겠지.”
앞으로 훈련량은 전혀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한수는 적잖이 마음이 놓였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아침 다섯 시 십오 분에 훈련상황을 만들 터이니, 그대는 알고 있게.”
“예….”
[작가의 말]
불공급 이후의 제국 해군 편제입니다.
1함대: 근위함대(남려함대)
2함대: 북태평양함대
3함대: 북대동양함대
4함대: 남태평양함대
5함대: 남대동양함대
6함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음.
7함대: 인도양 함대
신귤 : 레몬
활생소 : 비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