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 감도는 전운
그래. 준비는 얼추 끝났다.
상민은 책상 위에 걸터앉아 깍지를 끼고 목을 주물렀다.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다. 피하기도 힘들다.’
사실 준비는 완벽하게 되지 않았다.
비행기는 이제 양산기체를 뽑기 시작했으며, 군용견인기는 양산과정도 밟지 못했다.
고립주의는 여전하고, 거대한 대양 너머의 혼란한 상황에 발도 디밀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 또한 여전했다.
하지만 역사에서 완벽한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시간을 소비할수록, 다른 자들도 그만큼의 시간을 소유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결단의 순간이 다가왔다.
상민은 문서를 작성해 해원에게 보냈다.
이라크에 있는 덕에, 상민은 서아시아 지역 자체에 상당한 수준의 정보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빠르게 판단하여 이 정보를 본국에 보낼 수도 있었다.
명이 무너지고, 페르시아가 무너지고, 무굴이 흔들리는 이 시기에, 오스만마저도 그 명운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 틈을 타, 흑해의 패권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러시아는 또다시 남하하려는 속셈을 보이고 있었다.
한동안 휘둘렸던 것은 페르시아만으로 족했다.
물론 지금 상황은 잔드 왕조가 들어선 이후엔 러시아의 야욕이 또 한 번 좌절되었고 고려에게 웃어주는 상황이지만, 애초에 이들은 아니면 말고, 하며 페르시아를 통해 고려의 아라비아 지배권을 흔들려는 속셈 정도였지 여전히 눈은 콘스탄티노플에 있었다.
만약 러시아가 이번에도 주제를 모르고 오스만의 혼란을 틈타 기존의 셀림브리아 조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릴 생각이라면, 이번에 고려는 예전처럼 유하게 넘어가진 않을 것이었다.
상민은 한동안 폐허가 되어 있었다가 근래에 다시금 복원되어 외인부대의 지휘소 겸 이라크 임시정부의 행정부, 그리고 사실상 상민의 거처가 되어버린 아바스조 바그다드 궁전의 중정에 나가 오랜만에 아들 만수르 알 박과 함께 공을 차며 부자간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 * *
러시아.
모스크바.
끄례믈, 발음이 괴악하여 고려인들은 크레믈이라 불리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궁전이었다가 이제는 러시아 제국의 차르가 기거하는 궁전은 전 세계에 위명을 떨치는 제국의 심장답게 무척이나 웅장했다.
기거하는 사람도 수많아, 과연 현 러시아의 역량이 고려의 바로 아래라는 것을 단번에 인지할 수 있게 했다.
물론, 궁전과 국가의 위세가 신민들의 삶을 대변해주지는 않지만, 귀족들과 외교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보기에 찬란하면 좋지 아니하느냐?
어쨌든 이 춥고 광활한 북방의 제국의 심장에 기거하는 위대한 전 러시아의 차르, 블라디미르는 최근 들어 답답한 것을 느껴 옥좌 위에서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러시아의 급진적인 산업화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러시아는 블라디미르의 주도하에 과격할 정도로 빠른 산업화를 외치고 있었지만, 그 도시는 볼가강을 낀 노브고로드와 구리 및 강철 제련소로 유명한 페름 등지가 중심이었지 모스크바의 핵심부까지 공장 일대가 많지는 않았다.
전쟁광, 피에 미친 살인귀, 폭정왕, 숙청왕.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부르는 그의 별명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블라디미르는 자신의 진가가 인생의 전반기에 있었던 거대한 정복 전쟁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도리어 그는 만족할 정도로 싸운 뒤에는 그동안 꽤나 평화롭게 내정을 이어왔던 것이다.
위대한 이반 4세의 업적도 있었지만 바야흐로 그의 치세에서 러시아는 보야르들의 봉건적 소유물에서 완전히 벗어나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정으로서 새롭게 도약했다.
그의 국제적 전략도 무척이나 잘 맞아떨어졌다.
고려의 대항마를 자처한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모스크바는 경제나 기타 다른 사항을 고려하지 않은 순수히 정치적인 면에선 라이벌이었던 로마나 콘스탄티노플, 파리나 베를린, 암스테르담 같은 도시를 단번에 뛰어넘어 창양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도시로 급부상했다.
또한 고려에 약간이라도 불만을 가지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러시아와 너무 가까워 그 주먹이 두려운 사방의 나라들은 매년 크레믈에 사신을 보내야만 했다.
해원도 이 같은 블라디미르의 행동을 묵인했다.
블라디미르는 고려 또한 자신의 행동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얻었으니 득이 되었으면 득이 되었지, 실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진정한 정의로운 자, 국제법의 수호자니, 위대한 문명의 선구자니 하는 온갖 좋은 미사여구는 죄다 고려와 그 황실이 가로채 가고 있지 않은가?
셀림브리아 조약을 체결할 때 만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서로 얼굴을 조우한 적이 없었지만, 이 두 사내는 자신들의 두고 있는 체스판의 너머에서 그 얼굴을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블라디미르는 자신과 해원이 두는 이 대국을 자신의 승리로 장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모든 말이 온전히 갖추어진 고려와는 달리 그는 기사도, 탑도, 주교도 하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승리를 논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가?
그가 체크메이트를 꿈꾸려 해도, 그런 확률은 지극히 희박했다.
세월이 지날수록 블라디미르는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그는 더 이상 야망에 넘쳐 제 분수를 몰랐던 청년이 아니었다.
그동안 그가 치러왔던 전쟁은 단순했었다.
그저 승자와 패자만 갈렸을 뿐.
하지만 내정과 양병이라는 목표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확실한지도 모른 채 그저 하염없이 배를 몰아야 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해원이 가진 고급 시계도, 육분의도 없었다.
어찌 그가 해원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국가의 일에 대해 매번 논할 때마다, 그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간극을 느꼈다.
러시아는 고려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국책사업 중 그저 한 가지, 즉 철도에 투자하는 것에도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질 좋은 철이니, 빠르고 힘 좋은 기차니, 그걸 광대한 러시아 국토에 까는 것까지.
하나하나가 난관이었다.
그는 노역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서야, 결국 야쿠츠크까지의 노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시점, 이미 고려는 북려와 남려 전역의 깡촌까지 기차를 연결하고 있었으니.
육지가 이 모양 이 꼴인데, 바다는 어떠한가.
러시아도 바다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유일하게 접근 가능한 발트해와 흑해의 패권을 위해 어찌 전함을 만들려고 시도해 봐도, 이는 정말 아득히 깜깜했다.
그는 표트르를 시켜 테오도로의 항구에서 상대적으로 해상권에 우위를 가진 흑해에 위엄급에 견줄 수 있는 전함 두 척과 그를 호위하는 부수 함대를 건조하도록 시켰다.
제아무리 블라디미르의 러시아라도, 전함을 제작하는 것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철도가 쉬웠다.
블라디미르는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군주였다.
그는 교회와 귀족의 재산을 압류하고, 그것도 모자라 노동자들의 다리가 바닷물에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밀어 넣고, 각 가정의 쓸모없는 쇠를 징발하여 재료를 충당한 뒤에야 흑해의 함대를 만들어냈지만, 그동안 러시아는 명의 혼란에도, 페르시아의 혼란에도 개입할 여력이 전혀 없이 그저 헐떡이고만 있었다.
하지만 함대가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흑해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러시아의 해군전력이 증가하자, 고려의 대동양함대도 그 전력을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심지어 고려는 새롭게 건조했다는 신형 전함까지 배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로 뚫기 힘든 기밀이라 그 정체는 아직도 알지 못했다.
파견한 오흐라나의 정보원들도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끊겼다.
블라디미르는 스스로 조소했다.
내가 저 명나라 황제였다는 주동휘와 다른 게 무어냐?
그놈도 호수에 황금배를 띄웠다지.
이는 자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결국 고려는 흑해를 호수로,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전함과 그 함대를 이곳에 있는 모형 배로 만들 속셈이었다.
마치 해원이 그의 앞에 앉은 채 진지하지만 아주 득의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것 같았다.
― 사촌이여, 어디 감히 바다에 나오려느냐. 그저 북방에 처박혀 있어라.
물론 러시아는 베네치아가 만든 활대기뢰, 어뢰를 잘 써먹어 페르시아만에서 한 번의 자그마한 승리를 거두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와 베네치아의 도제, 심지어 그 냉철한 외젠까지 어뢰의 가능성에 눈을 떴는지 희망 섞인 미소를 짓고 있는 상황.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드디어 고려의 바다 패권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 크게 웃으며 기뻐하기도 했다.
오직 블라디미르만이 이 군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 해룡의 후손을 칭하고, 수백 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바다를 지배했던 저들이 어뢰에 대한 대응책 없이 멍청히 자리에 앉아 있겠는가?
‘외젠이여, 외젠이여. 다른 자들은 몰라도 너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 루이가 어찌 죽었는지를.’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고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해서 경쟁자라고 조금은 인정받을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에야 뛰어넘으려는 목표의 실체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순 없었다.
비단 전함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군사무기도 그랬다.
러시아도 질소화합물, 즉 무연화약 기반의 무기를 알았다.
고려가 종이탄피에서 해방되어 마침내 그 귀한 구리까지 펑펑 쓰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블라디미르도 이제 고려가 왜 아라비아에, 이라크에 집착하는지 알게 되었다.
석유라는 것이 얼마나 효용성 있는지, 이것이 결국엔 석탄을 대체할 수 있는 운명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내연기관이라는 것의 존재도 알았다.
심지어, 최근엔 또 괴상한 비행물체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간첩을 파견해 특허를 뚫고 이 설계도를 구하려는 그 모든 시도가 물거품이 되었더라도 존재 자체는 알았다.
당연한 소리였다. 고려에 거니는 사람들이 몇 명인데, 이것의 존재까지 모를까.
하지만 기술은 다른 의미였다.
지금 그들로선 이해할 수 없고, 구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물론 나중에 특허가 만료되어 고려의 다른 회사들에게 기술이 풀린다면 상대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지긴 할 테다.
그리고 러시아와 그 동맹국들의 학자들도 멍청한 것은 아니라서 온전히 첩보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지성을 통해 고려가 대놓고 내보이는 행동들의 의미를 뒤늦게서나마 따라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이냐.
저들은 천재를 밭에서 뽑아낸다.
유럽 대개의 나라들이 그러하듯, 러시아의 지성은 상대적으로 삶이 여유로운 귀족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
하지만 고려는 그저 김 아무개가 번뜩이는 재치를 이용해 이름을 날리는 경우가 터무니없이 많았다.
바다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이, 저기 북려의 한적한 깡촌에서 농사나 짓는 집안의 아이가 혁신을 불러오는 사회였다.
이건 블라디미르로서는 정말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미지의 공포심이었다.
어쩌면 고려의 광대한 영토보다도 더욱 무서운.
반면, 러시아의 이반들은 살기 힘들다며 도망가거나, 혹은 낫을 들고 반항하기 일쑤였으니.
그는 더욱 침잠했다.
개인적인 문제도 그의 생각 속에서 부상했다.
블라디미르의 가정사도 해원에 비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지독한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해원과 루이제가 수십 년 동안 살아오는 와중에 여전히 금슬이 좋아 서로 떨어질 바에 그냥 죽어버릴 정도라 한다면, 블라디미르와 마리아 안나의 사이는 그와는 완전 반대였다.
블라디미르의 아내인 마리아 안나는 아름답고 명석했다.
그러나 정교회나 가톨릭 모두에서 일컫는 미덕들을 전부 가졌다고 볼 수는 없었다.
당연히 가정사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블라디미르도 충실한 배우자와는 거리가 아득히 멀었다.
신혼 기간에도 전쟁으로 대부분 떨어져 있었으니, 모스크바에 돌아왔을 땐 그녀에게 이미 정부가 있었던 것이다.
유럽의 일반적인 문화라, 블라디미르는 불쾌감을 느꼈을지언정 그걸 빌미로 아내를 내치진 않았다.
오스트리아는 여전히 중요했으며, 합스부르크의 딸은 내치기엔 너무 귀중했으니 그는 겉보기에는 다정한 부부관계를 연기했다.
그러나 부부의 실제적인 결혼 생활은 완전히 형식적이게 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같은 궁전에 살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얼굴도 잘 보지 않았다.
둘의 사이에서 후계를 이을 아들 둘이 태어난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
블라디미르는 첫째에게 자신의 이름을, 둘째에겐 그의 형 드미트리의 이름을 주었다.
아내 문제 이후에는 아들들의 문제가 생겨났다.
아들 둘은 잘 커갔다.
이번에는 블라디미르가 해원보다 살짝 좋은 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해원의 장남 해청의 질환은 그런 종류의 소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유럽 궁중에서도 몰래몰래 회자되곤 하는 사실.
고려의 동맹국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앓았던 제왕지병 정도는 절대로 고려 황제의 자질에 흠결이 될 수 없다 말했지만, 고려에 척진 나라들은 이를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 아들은 그의 기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버리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2세는 너무나 급진적이었고, 심지어 그 아버지보다도 더욱 잔혹했다.
“너는 전쟁에 대해 모른다! 이 아비가 정말로 고려와 전쟁을 하려는 줄 아느냐? 국제 외교란 칼날 위를 춤추는 것인데, 네놈이 말하는 춤사위는 네놈의 발을 잘라버릴 정도로 위험하지 않느냐!”
그들은 자주 다투었고, 부자간의 사이는 좋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드미트리를 아꼈다.
마리아 안나의 정부를 처리하기 전에 태어난 블라디미르 2세에겐 시기상 어쩌면 자신의 아이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가졌던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드미트리의 성품을 더욱 아꼈던 것도 있었다.
이 얼마나 묘한 모순이냐.
그가 죽인 형의 이름을 붙인 것도 모자라, 그 이름이 붙은 자식을 사랑하다니.
어쩌면 그는 나이가 들어서야, 형에게 하고 싶었던 사과의 말 대신 형의 이름을 자식에게 붙였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드미트리도 그를 배신했다.
이것은 도리어 블라디미르 2세의 배신보다도 더욱 컸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게 하진 않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두 아들을 모두 빈과 암스테르담으로 유학을 보내었는데, 암스테르담으로 간 드미트리는 고려의 문물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던 것이 틀림없었다.
귀국한 그는 젊은 러시아 장교들과 어울렸는데, 어찌 불온한 운동을 후원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제동맹(Союз спасения)이라 했다.
블라디미르의 정책들은 러시아 농민들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드미트리는 아버지의 이 억지스러운 산업화의 노력이 도리어 러시아 황실을 끝장내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블라디미르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와 장교들을 저 머나먼 시베리아로 유배 보내는 것 외에는.
고려마냥 의회를 열어 여론을 수습하고 민생을 돌봐야 한다는 아들의 말은 그에겐 용납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자식을 유배 보낸다는 말에 냉랭했던 마리아 안나가 밤에 찾아와 울며불며 간청했지만, 블라디미르는 자신이, 혹은 형제간에 가족을 살해하는 비극을 또다시 겪기 전에 드미트리를 이르쿠츠크로 떠나보냈다.
[작가의 말]
사실 카이사르의 간질설은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가 더 많지만, 작중 시점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블라디미르 2세는 즉위하고 나서야 2세가 붙겠지만, 편의를 위해 2세를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