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12화 (412/653)

견인기

북려와 중려를 나누는 기준은 택주와 피마주였다.

두 주를 포함해서 파주까지는 중려로, 북쪽은 북려로 취급되었다.

이 북려에는 무려 28개의 주가 있었다.

이들의 이름은 꽤 이질적이었다.

초창기 고려와 유럽에 의해 개척된 앙주, 미주, 진주, 화주 등의 일부 주들은 전형적인 고려식 명명법을 하고 있었다.

초창기의 원주민 합병 당시엔 우세한 문화가 그렇지 않은 문화를 찍어누르며 대우했던 것을 상징할 것이다.

하지만 원주민 합병이 반환점을 돌아 끝을 향해 나아갈 때는 그 작명법도 달라졌다.

더 이상 지구의 ‘문명국’ 중에서 고려의 대륙패권에 이의를 제기하는 곳은 존재치 않았다.

명백한 운명이 필연적인 성공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예측한 고려 조정은 보다 여유롭고 유하게 합병을 추진할 수 있었다.

― 이제는 중려와 북려의 원주민 역사도 우리들의 것, 우리의 문화로 포용해야 한다.

중서성 의원들도 그런 현지의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거의 과반수 이상, 사실상 거의 모든 중서성 의원들조차도 자신들에게 원주민들의 피가 어떤 경로로든 섞여 있었기에 그렇게 믿지 아니할 도리가 없었다.

자신들의 가문이 유럽계나 조선계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사정은 같았다.

이처럼 북려 원주민도 북려의 역사라는 인식은 지리적 명칭에서도 드러났고, 아파치니 다코다니 쇼쇼니니, 미주리니 이로쿼이니 하는 것처럼 주의 이름도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들 중 몇 개의 주들은 예전에 쓰던 한자식 명칭을 바꾸고 순수 ‘우리말’ 려글표시로 갈아탄 경우도 있었다.

이와는 비슷한 맥락이 아니라 원주민 부족들의 이름이 아니라 원주민들의 언어에서 붙여진 주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작은 샘이라는 말에서 기원한 애리조나주와 하늘빛 물이라는 말에서 기원한 미네소타강과 주가 그랬다.

조정에서도 이런 움직임에 별 상관하진 않았다.

도리어 이질적인 이름이 구분이 가기 쉬웠고 그 지역의 사람들이 애향심 가진다는데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중북부 지역의 원주민들의 숫자는 아랫동네 원주민들보다도 훨씬, 정말로 적어 이런 애향심이 분리독립 같은 것으로 비화된다는 것은 중앙조정의 피해망상에 가까웠다.

같은 토착민이라도 서로서로 싸우다 못해 심지어 가끔은 상대 부족을 노예로 팔던 원주민 출신들끼리 단합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남쪽의 고려 본국인들은 물론이고 서쪽에서 배를 타고 미주를 거쳐 야금야금 이주해오는 조선계 사람들의 물결은 북려에도 어느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조선 이주민들이 교육에 신경 써서 많이 남려로 향했다지만, 그래도 자기 땅을 넓게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으니, 이들은 북려 이곳저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갔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민자들과 원주민들이 싸움박질을 하지 않았을 리는 없겠지만, 문명이란 흔히 그러하듯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서로가 서로에게 동화되어 마침내 그런 것들은 별 상관이 없어지게 되는 시절이 찾아오게 된 것이 아닌가.

* * *

북려 거대 호수의 이름들도 원주민들의 언어에서 파생되었다.

아름다운 호수라든가 큰 호수라든가 그 뜻은 제각각이었지만, 그것까지 알아듣는 사람은 정말로 원주민 전통을 잘 이어받는 집안의 사람이거나 혹은 원주민 문화사를 전공한 사람일 것이 분명했다.

북려에는 호수가 많았다.

이 같은 호수들 중엔 단순히 가장 측정하기 쉬운 면적과 지형으로 나누어서 팔대호라는 명칭이 붙은 곳이 있었다.

그중에서 북려의 중앙부에 위치한 다섯 개의 호수는 서로 자연적으로 붙어있었기에 특별히 오대호라 불렸다.

미네소타 사람들의 자랑거리, 기치가미 호수도 이 오대호의 일원이었다.

이 호수는 정말로 대호라는 명칭에 걸맞게 면적이 엄청나게 넓었다.

그 기준은 비단 북려뿐만 아니라 전 고려대륙은 물론이고, 전 세계로 확장할 수도 있었다.

카스피해를 내륙해라 규정한다면, 기치가미호가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가 되는 셈이다.

미네소타 사람들은 이 기치가미 호수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넓고 시원한, 너무 시원해서 겨울에는 정말 얼어 죽도록 추운 자연 환경이지만, 대동양에서 이곳까지 수운을 통해 물류가 오갈 수 있다는 점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점이었다.

주도인 임니자스카시가 미네소타강을 통해 미시시피의 거대 수운 지역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호수와 강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미네소타 사람들은 꽤 좋은 환경에서 개척을 하던 사람이 분명했다.

진짜로 개척 조건이 열악한 도시는, 저 북려 최고위도에 위치한 도시이자 수운도 변변치 않아 오직 철도에만 의지해야 하는 오마코이시시(市) 정도를 꼽아야 할 터.

임니자스카시도 원주민 이름 존중의 관습에 따라 기존의 백벽(白壁)이라는 이름 대신 임니자스카라는 이름이 더 자주 쓰이고 있었다.

시의 이름은 말 그대로 미네소타강의 강둑에 있는 하얀 사암 절벽에서 기원했다.

물론 북려 대다수의 주가 그러하듯, 주마다의 격차도 상당한 터라 이곳의 주는 아랫동네, 즉 앙주와 진주, 화주 등이 거의 유럽의 이, 삼류 국가의 힘을 능가하기 시작할 동안 아직도 한적하다 못해 깡촌에 가까웠지만 임니자스카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운 도시와 평온한 주를 한결같이 사랑했다.

이곳에는 미네소타 주정부 청사와 주의회 건물, 임니자스카 시청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편의시설, 예를 들면 지역 인재를 활성화하기 위해 주마다 하나씩 보조금을 지원해 주어 만든 미네소타 주립대학도 존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의 외곽에는 많은 중학교들도 들어서 있었다.

고려 조정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는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한적한 시골까지 많이 지어놓았지만, 아직 중학교까지 그러할 수는 없었다.

보다 높은 수준의 학업을 위해 선택하는 중학교부터는 학비를 일부 지원해 줄지언정, 학교 자체를 전국에 고르게 짓기는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다만 학교들은 자체적으로 먼 거리에서 오는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지어 기숙을 장려했다.

이곳에 다니는 학생들은 짧은 주말 대신 명절이나 방학 때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최근 낙선한 야당 시중 후보가 내세운 공약으로 중(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으로, 그리고 그 위에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심화 과정을 배우도록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가 낙선한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국민 전체적인 호응을 얻진 못했다.

지금 북려 광대한 곳에 살고 있는 학생들은 초등학생들마저 상당히 먼 거리에서의 통학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고, 학교 때문에 친지네 집이나 친우네 집에서 사는 경우도 많았는데, 중학교까지 의무로 규정한다면 상당히 골치가 아팠다.

여전히 개척우선주의를 표명하는 고려 조정도 이 사안을 섣부르게 해결할 수는 없었다.

국가의 혈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철로가 깔렸고, 지금도 깔리고 있지만 여전히 북려는 아득히 광활했으며 철로의 수혜를 입지 못하는 곳이 입는 곳보다 많았다.

이와 같은 사항은 크고 기다란 혈관이 아닌 모세혈관과 같은 촘촘한 도로가 깔려야 비로소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중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말이나 자전거를 탈 수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방학 때마다 바쁘신 부모님에게 데리고 와달라 부탁을 해야 하는데, 어찌 다 큰 중학생이 그런 것에 부모의 손을 빌린단 말인가?

사내 나이 열여섯이면, 이미 성인과 다름없었다.

겨울방학의 시작을 알리는 어느 날 아침, 학생들은 이제 머지않아 겨울의 한파가 휩쓸 도시를 빠져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대부분 미네소타주 안에 살기에 집에 돌아가도 겨울이 되면 엉덩이가 얼어붙을 만큼 추운 것은 여전할 것이다.

“그럼 내년에 보자.”

“그래. 안녕.”

방학 동안 학생들이 퍼질러 쉬는 꼴을 보지 못하는 선생들이 내준 숙제로 가득 담긴 두꺼운 가죽 가방을 메고 있던 한 소년은 한창 비슷한 처지에 놓인 많은 또래들로 붐비는 임니자스카 시청역에서 기차에 타는 친구들을 배웅해주었다.

하지만 자신은 가지 않았다.

다만 시청역에서 잠자코 기다릴 뿐.

가끔씩 열차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하는 광경을 연거푸 멍하니 바라봐야 하던 소년은 해가 중천에 떠서야 마침내 저 멀리 역으로 말을 타고 오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삼촌!”

“그래. 오래 기다렸느냐? 내 시의 거리가 아직도 익숙지가 않다.”

“아뇨. 괜찮아요.”

소년은 삼촌이 한 필 더 끌고 온 말에 올라 등에 걸고 있던 피립을 쓰고 갓끈을 고정했다.

“자, 가자꾸나!”

자신의 집은 객관적 거리는 친구의 집보다 가까웠지만, 기차가 통행하지 않아 체감적 거리는 훨씬 멀었다.

최근에 황철이 그의 집 근처로 가는 노선을 만든다고 했는데, 언제 될지는 미지수였다.

자신이 중학교를 졸업한 다음에야 만들 수도.

소년은 미네소타강의 지류를 따라 무려 백이십오 킬로미터나 가야 비로소 그의 집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삼촌이 와주지 않았다면, 돌아갈 엄두도 없어 그저 기숙사에서 방학 내내 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삼촌이 같이 가준다 하더라도, 가는 길에 행여나 늑대나 야수 무리, 혹은 이 광대한 땅 어딘가에 숨어있을 수도 있는 무법자나 강도, 혹은 아직도 동화를 거부하고 있는 극소수의 원주민들에게 위험을 당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었다.

삼촌도 가는 길 내내 그가 가진 엽총을 그의 옆에서 한 시도 떼어놓지 않았다.

“궁금하냐?”

“예.”

삼촌은 피식 웃었다.

“원칙적으로는 이 총은 내 소지권에 귀속되어 있으니 너에게 줄 수는 없지.”

소지권은 조정이나 주정부가 확실히 신경 쓰는 것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사내라면 이 대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총을 쏠 줄은 알아야 하는 법이다.

마침내 삼촌에게 총을 만져볼 기회를 얻은 소년은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몇 발을 쏴보고는 반동에 얼얼해진 어깨를 문질렀다.

“소리가 생각보다 크네요.”

“그래. 야생동물들이 겁먹기엔 충분하지. 자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어서 가자꾸나. 숙박을 많이 하면 그만큼 자주 위험해진다.”

빈 약실에 다시금 총탄을 장전한 삼촌이 다시금 길을 재촉했다.

* * *

미네소타주는 유난히 자잘한 호수와 못, 습지들이 많았다.

그래도 이곳은 농사를 짓기엔 모자람 없는 땅이었기에 농부들은 이곳까지 와서 농사를 짓곤 했다.

소년의 아버지도 농부였다.

하지만, 자영농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는 북려에 있는 기업식 농업회사에 속해있었는데, 회사가 소유한 땅을 일궈 그만큼의 월급을 분배받으며 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소작이랑 비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기업은 기업대로 회사법에 묶여 소속된 노동자들을 관리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그 대우는 소작을 하는 것과는 비할 수 없었다.

또한, 비교가 불가능한 탁월한 장점도 있었다.

“저 왔어요!”

마침내 소년은 넓은 마당과 그 가운데 심어진 아름드리나무가 인상 깊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열여섯 사내가 아니라 어린애처럼 두 팔을 벌려 펄쩍펄쩍 뛰어다니자 집 안에 있던 소년의 어머니가 반색하며 뛰어나왔다.

“잘 갔다 왔니? 다친 데는 없고? 공부는 열심히 했고?”

타지에 나가 있으면 어머니를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따라오는 잔소리도 여전했기에 소년은 갑자기 헐레벌떡 아버지를 찾으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던 어미가 남편의 동생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서방님 고마워요.”

“아닙니다. 형수님. 저도 이만….”

“오랜만에 가족끼리 다 같이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시지 그래요? 동서도 불러서요.”

“그럼 이나칼라사도 데리고 저녁때 다시 들르겠습니다.”

소년은 마침내 자신의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집 안이 아니라 집 옆의 헛간에 계셨다.

방방 뛰며 찾아다니는 아들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인 모양이다.

“아버지!”

“어, 그래 주항이 왔느냐.”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아버지가 반색을 했다.

“마침 잘되었다. 여기 와봐라.”

“예?”

인사말 대신, 이리 오라는 말씀부터 하시는 게 여전히 감정표현에 서투른 아버지다.

하지만 소년도 궁금증에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뭔지 알겠니?”

“아뇨, 뭔데요?”

부자의 시선 끝에 놓인 것은 상당히 덩치가 큰 기계였다.

소년은 나름대로 주의 중심에서 공부했고 심지어 공장 견학까지 해 봤지만, 도저히 이 바퀴 달린 기계의 목적을 알진 못했다.

다만, 바퀴가 달려 있으니 이 용도를 짐작해볼 뿐이었다.

검은 고무 테가 둘러진 큰 철제 바퀴가 네 개 달린 이 기계 수레는 위에 거대한 철제 상자와 원통이 달려 있었다.

“이건 견인기라고 부른다. 이번에 회사가 소속된 농부들에게 한 대씩 사서 써보라고 나누어주고 있지. 요 녀석이 이 휘발유를 마시고 낼 수 있는 힘은 마소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하더구나.”

“와, 정말요?”

농부의 아들이 말과 소가 낼 수 있는 힘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동물들의 성질을 자칫 자극했다간, 뒷발길질에 가슴뼈가 함몰되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성 말고도 소가 농경에 끼치는 영향력은 몹시 컸다.

순수히 사람의 힘으로만 농사를 하려고 한다면, 아마 소년은 학교에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동물들보다도 더 많은 힘을 낸다고?

“너야 공부하느라 바쁘고 별 관심이 없어 모르겠지만 사실 증기 견인기야 진작 다른 곳에선 드문드문 쓰고 있었다. 하지만 덩치만 컸지 너무 둔해서 쓸모가 없고 유지 보수비는 굉장히 가혹해 꺼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비슷하거나 더 힘이 세면서도 그보다 작은 덩치를 가지고 있는 이 내연 견인기는 정말 쓸 만할 테다.”

“…….”

“회사에 불려가서 안전교육과 운행 기초 교육을 몇 번이나 받긴 했지만 이 아비도 이 새로운 견인기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구나. 젊고 똑똑한 네가 나를 좀 도와줘야 쓰겠다.”

주항은 불현듯 엄습하는 불길한 예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방학 동안 저 옆 동네 황씨 아저씨네 딸이자 소꿉친구와 뭐라도 심대한 진전을 이루어 내어 방학이 끝난 뒤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을 했는데, 자칫 잘못하면 방학 내내 아버지와 함께 이 기름 냄새나는 정체불명의 기계를 다룰 것만 같았다.

부모를 도와달라고 했는데 장남이란 놈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광경을 마뜩잖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마침내 용돈 인상의 협상을 제시했다.

그 금액이면 선물이나 기타 유용한 것들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주항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으니, 소년은 마침내 그의 인생에서 견인기라는 기계를 처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말]

미네소타 주 : 미네소타 일부 + 위스콘신주

미네소타강 : 동일

백벽 / 임니자스카 시 : 세인트폴(미니애폴리스)

식시카 족 : 블랙풋

오마코이시 시 : 에드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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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호

기치가미 호(슈페리어 호)

미시간 호 : 동일

웬다트 호(휴런 호)

이리 호 : 동일

온타리오 호 : 동일

오늘 자에서 등장한 견인기(트랙터)는 Waterloo Boy Model N을 떠올리셔도 되긴 하지만, 아직 그 정도까진 도달하지는 못한 극초창기 버전의 견인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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