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2)
내연기관의 발전은 고려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운명이었다.
비단 비행선의 기관부가 작아졌다는 것 정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도리어 비행선은 이제 상관이 없어질 정도로 다른 분야들이 주목을 받고 있었다.
물론 혁신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탄생하지는 않았다.
그저 관심과 상상으로만 그칠 분야에 선뜻 거금을 들여 대범한 투자를 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뻔히 알고 미래를 선점하고자 하는 자에겐, 이런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투자라기보다는 그저 돈 놓고 돈 먹는 일에 불과했다.
이라크에서도 본국의 일과 회사의 일을 보고받고 있던 상민은 개천 443년, 항공기 회사를 세웠다.
회사의 이름은 부익(浮翼)이라 했다.
떠다니는 날개라는 뜻이 분명했다.
항공기라 하면, 기존의 비행선 말고도 달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든 물체를 포함하는 말.
그렇다면, 이 단어가 생긴 이유가 있었으리라.
비행기는 기체의 가벼움을 통해 하늘에 체공하는 비행선과는 달리, 마치 새처럼 바람을 이용하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항공기였다.
이런 생각 자체가 상민에 의해 단번에 딱 제시된 것은 아니었다.
거의 구백 년도 전의 아랍인 발명가에서부터,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인 발명가들도 글라이더를 이용해 하늘을 날려고 시도했다.
물론 절대적 다수는 실패했지만.
고려인 발명가들 또한 앞선 이들의 실패에도 주저하지 않고 활강기와 같은 무동력 항공기를 계속 만들려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북령에 거주하는 이장완은 태동산맥의 자락에서 활강기에 탑승해 짧은 거리나마 비행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장완의 비행은 꽤 큰 의미를 가졌다.
당시엔 뉴턴의 공기역학이니 하는 것들이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으니 순전히 자신의 생각만으로 세분화된 활강기의 날개들, 착륙 장치와 방향타 등을 설계한 것이다.
비록 이장완은 그 이후 계속 실험을 이어나가다 목숨을 잃고 말았지만, 비행을 꿈꾸는 발명가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먼저 걸어간 사람의 발자취와 뉴턴을 비롯한 학자들의 학문적 접근을 같이 결부시켜 비행기의 틀을 얼추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무동력 활강기의 범주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새처럼 자유롭게 비행을 하기 위해선, 새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처럼 자체적인 동력이 필요했다.
이족보행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 활강기의 날갯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이 맞았다.
당연히 자체적으로 힘을 내는 동력기관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
기존까지 증기기관의 기술력으로는 비행선은 몰라도 비행기에는 적합한 동력을 제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익사가 야심 차게 등장한 이후, 동력 비행기 산업의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일반전기회사는 440년식 전(용주)―백(창욱) 내연기관의 특허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부익사에 제공했다.
부익사는 이 내연기관을 개량해 마침내 비행기의 추진기관에 대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던 것이다.
고려 공군은 부익사를 협력사로 낙점하고 공동으로 군용 비행기에 대한 개발에 착수했다.
민간에 의해서만 개발되었다면 다소 지지부진했을 비행기의 연구는 기업과 관의 막대한 자금을 받자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 * *
남려.
염평.
― 똑똑
“폐하,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래?”
황실열차에 타고 있던 해원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다 문득 자신의 앞에서 책을 읽고 있던 딸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외모는 어미를 쏙 빼닮았지만 검은 머리와 특유의 고집스러운 눈매는 해원이 거울을 볼 때마다 보는 것과 같았다.
해원은 슬쩍 그녀가 보고 있던 책의 제목을 살폈다.
― 수당전쟁
여전한 아이였다.
이 나이대의 여느 딸아이는 자기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데, 기어코 아비의 책들이 있는 서재 칸에 와서 책을 읽는 것을 보면 실로 특이한 성격이다.
해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특이하진 않지….’
어쨌든 책을 인질로 삼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딸을 가까이 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세희야. 가서 청이를 깨우거라.”
이렇게 부려 먹을 수도 있었고.
“알아서 일어나겠죠.”
해원이 미간을 좁혔다.
“세희야.”
“하, 알았어요.”
딸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은 저렇게 툭툭 던지는 성격이지만, 이 귀여운 막내딸은 큰오라버니와 정말 친하니 내심 그의 안위가 우려되어 여기까지 온 것일 테다.
차림새를 정돈해 마침내 목적지에서 내린 황제 일가는 휑한 남려 황무지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군사 기지를 볼 수 있었다.
해원이야 이전에 이 비행장에 자주 왔었지만, 태자와 공주는 그렇지 않았기에 둘은 쌀쌀한 바람에 휘날리는 옷가지를 여미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군 기지에 있는 인원들 중 경계근무를 서는 자를 제외하고는 전부 집합했는지, 공군의 병사들이 삼색 융단의 좌우로 각지게 도열해 있었고, 잔뜩 긴장했는지 식은땀을 흘리는 부대장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우렁차게 경례를 지시했다.
“황제 폐하께 받들어 총!”
해원은 경례를 받아 준 뒤, 부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 넓고 황량한 평야에 세워진 비밀군사시설은 여전히 사방의 넓은 구역이 다혈포와 철조망으로 삼엄하게 감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하늘 높이 뾰족하게 세워진 계류탑이나 그곳에 매달린 비행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군부대가 숙식하거나 근무하는 건물을 제외하고는 벽돌로 지은 아치형의 큰 동굴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가운데에는 역청도로가 깔려 있었다.
이것이 미래의 비행장의 풍경일 것이다.
그는 다른 건물에 향하지 않고, 태자와 공주를 이끌고 제일 먼저 공군기지 외곽에 지어진 충혼탑에 가 참배를 했다.
그때를 틈타 군무상서가 먼저 와 있던 병기개발단장에게 물었다.
부대장은 의전을 하느라 바쁘니 자신이 이곳에 파견한 단장이 대답해주어야 했다.
“저번에 볼 때는 비행기가 비행기가 아니라 메뚜기마냥 바닥을 펄떡펄떡 뛰어다니는 것이 전부였는데, 어찌 큰 진전이 있는가?”
상부의 확고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재를 살아가며 일을 하는 실무자들은 느려터진 기술개발과 산적한 난관들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보단 확연히 나아졌습니다.”
군무부에서 야근 많이 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병기개발단장은 거무스름한 눈 주변을 문질렀지만 이내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니 성과가 있다고 보고를 했던 것이 아닌가.
“…자네만 믿겠네.”
그리고 병기개발단장은 다시금 조종사에게 다가가 자신이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그대만 믿겠네.”
“맡겨만 주십쇼.”
젊은 장교 하나가 시원한 웃음을 머금고 화답했다.
“이번 기회에 기존 기록을 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는 하지 말게. 안전이 최우선이야! 황상께서도 당부하신 부분이시다.”
“예, 예.”
어찌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간 것은 다르크 가문의 전통인 모양이다.
그래도 이곳의 부대장과 병기개발단장은 이 이십 대 초반의 장교만큼이나 대단한 조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확신할 수 있었다.
특히나 비행기의 측면에선 공군 전통이라는 것이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 조종사가 연륜이 쌓일 환경이 아니었으니, 숭무감을 갓 졸업한 이런 젊다 못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들이 한창때의 민첩한 상황판단을 이용해 공군의 으뜸(에이스)이 되어 있었다.
황제 일가가 견고하게 보호된 참관석으로 향하자, 이윽고 병사들이 아치형의 굴에서 비행기를 질질 끌고 나왔다.
목재와 빳빳한 천으로 만든 이 비행기는 날개가 상하 두 개였고, 꼬리에도 자그마한 날개들이 달려 있었다.
날개에 그려진 관모수리의 야심 찬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앉을 좁은 좌석의 앞에는 추진기관과 연결된 바람개비 추진기가 달려 있었다.
밑에는 착륙과 평상시의 이동을 위해 달아놓은 두 고무바퀴가 앙증맞았다.
젊은 장교는 큼지막한 유리와 고무, 가죽으로 만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보안경과 가죽 모자를 썼다.
높은 고도와 빠른 속도에서는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웠기에 이런 물건은 필수와 다름없었다.
“비행하겠습니다!”
장교가 힘차게 기관을 작동시키자, 비행기의 앞에 단 바람개비도 덜덜거리며 돌아갔다.
처음의 힘은 시원치 않은지, 비행기는 굼벵이가 기어가듯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번 앞으로 움직이자 비행기는 천천히 가속을 시작하더니, 이내 맹렬히 돌아가는 바람개비의 힘을 받아 활주로의 끝부분에서 둥실 떠오를 수 있었다.
바람이 강한 남려 황무지의 특성을 이용해 지은 이 활주로는 이륙하는 데 그 힘을 최소한으로 쓸 수 있었다.
이론적으론.
청년의 비행기는 능숙하게 활주로를 이륙했다.
― 와아!
공주가 탄성을 질러 젊은 사내들의 마음을 동요케 했지만, 병기개발단장은 손의 식은땀을 훔쳤다.
‘제발!’
사실 군무상서로서는 떠오른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제대로 활공을 해야 성공이다.
다행히 과거와 달리 이번의 비행기는 바람 때문인지 다소 불안하게 흔들거리긴 했지만 용케 하늘에 떠 있었다.
“오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탄성은 더해만 갔다.
놀랍게도 지금 비행기는 새로운 신기록에 도전하고 있었다.
비행은 몹시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라, 마치 새에 빙의된 것처럼 좌우 날개를 움직여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타고 있는 장교는 이를 꼭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라 비유했지만, 다른 공군 장교들은 무슨 자전거 따위를 비교하냐며 재능을 가진 자의 못된 심술로만 여겼다.
그리고 그 재능은 마침 황제의 참관에 더더욱 빛을 발하는 모양이었다.
졸지에 마의 한 시간이 깨지자, 사방에선 환성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빌어먹을 바람개비의 풍력 효율을 조정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병기개발단 소속 기술자가 기쁨의 눈물을 뚝뚝 흘리는 와중, 갑자기 일이 일어났다.
“저, 저 미친놈이!”
스스로 기쁨에 못이긴 젊은 장교는 비행 조종간을 당겨 고도를 가파르게 올렸다.
― 웨에엥
출력을 거세게 내느라 기관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직 비행기라는 것 자체가 걸음마를 떼고 있는 와중에 정말로 날아다니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는 불안불안하게나마 그의 통제에 따라 하늘로 크게 올라갔고 마침내 원을 그렸다.
“대단합니다!”
― 짝짝짝
태자와 공주를 비롯한 비관계자들이 모두 일어나 탄성을 내뱉고 박수를 쳤다.
오직 해원만이 병기개발단장과 부대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것을 알아채 지금의 광경이 장교의 독단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원도 내색하지 않으며 박수를 쳤다.
신기록을 깨고, 최초의 곡예비행까지 해버린 청년은 이후 무사히 착륙해 그 질긴 명줄을 황제 앞에서 자랑까지 하는 것에 성공했다.
황제에게 직접 칭찬을 받는 와중에, 젊은 장교는 공주와 통성명을 하는 천재일우의 기회까지 얻었다.
“이토록 대단한 비행을 한 당신의 이름이 궁금하네요.”
청년은 자랑스럽게 경례를 해 보였다.
“다르크 상현입니다.”
세희가 오, 하며 감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그럼 앙왕가인가요?”
오므린 그녀의 입술이 참으로 아름답게 반짝인다고 생각하던 상현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왕실 종통과는 좀 많이 떨어져 있는 방계입니다.”
“그렇군요.”
그녀는 품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손수건을 하나 건네주었다.
상현이 넙죽 그 손수건을 받았다.
“오늘의 기억, 아마 쉽게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상현의 입가가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이리저리 씰룩였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는지 평소 상현과 친하게 지내던 비행 전우들조차 그 순간에는 활활 타오르는 눈길로 그를 노려보았을 정도였다.
“실로 소신의 영광일 따름입니다.”
이후의 시연과 뒤풀이가 끝난 뒤, 황제는 고생한 관계자들에게 금일봉을 하사하고 떠났다.
그 금액이 거의 한 해의 봉급과 맞먹어 사람들은 기쁨의 환호를 내질렀다.
하지만 허종욱 비행장의 부대장은 유일하게 상현에게는 금일봉을 주지 않았다.
“자네, 제정신인가?”
“정신은 맑은 하늘처럼 또렷합니다.”
하지만 부대장은 농담 따먹기를 할 기분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내 그렇게 당부했는데, 사전에 허락하지 않은 짓거리를 해? 폐하 앞에서?”
“어쨌든 성공했지 않습니까?”
“그게 말이 되는 변명이냐! 귀관이 폐하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황제는 비행선 사고 이후 안전에 상당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비록 다른 장병들에겐 내색하진 않으셨지만, 부대장을 불러 상현의 행동에 대해 기특함보다는 우려를 나타내신 것은 당연했다.
장교의 목숨을 염려하는 행동이겠지만, 부대장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꾸지람과 같았다.
‘폐하께서도 젊으신 시절에 위험한 비행선에 직접 오르신 분이 아닙니까?’
젊은 장교는 무어라 항명하려다, 이윽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처벌은 금일봉 압수만이 아니었다.
“귀관은 이 비행장에 있을 자격이 없다. 오늘부로 전출이야. 짐 싸.”
“예?”
이거 생각보다 큰일이 분명했다.
공주에게 손수건을 얻었을 때는 하늘로 치솟았던 그의 기분은 이제 땅으로 완전히 추락하고 있었다.
“잘 못 들었나? 짐 싸라고. 공식적 징계는 없겠지만 귀관은 다른 곳으로 재배치될 것이야. 되도록 그 못된 성질머리를 고치기 위해 책상 앞으로 갔으면 좋겠군.”
부대장의 엄한 말에, 상현은 힘없이 물러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