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르 샤(3)
나디르의 귀순 및 항복 이후, 페르시아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중앙의 가혹한 통치에 학을 뗀 지방의 군소부족들은 자기만의 국가들을 세우느라 난리였다.
공작 왕좌를 고려에게 팔아넘긴 아프간은 대가로 막대한 재물을 얻어, 발루치스탄의 북부에 아프가니스탄을 건국했다.
페르시아가 없다면 그 건국을 견제할 세력은 무굴일 텐데, 무굴은 지금 나라 자체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지가 없었다.
이란의 서부에서는 잔드 왕조가 흥기했다.
이들은 케르만샤를 중심으로 왕조를 세웠으며, 이라크를 안정화하는 고려와의 불가침조약 덕인지 남서부에 대한 근심을 덜어내어 카라지와 이스파한까지 점령하여 가장 유력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남쪽의 시라즈와 북쪽의 마슈하드에서 각기 다른 세력이 떠오르니, 지금 당장의 이란 일통은 고려의 근심거리가 아니었다.
러시아도 뒤늦게 마슈하드의 세력을 후원하고 있었으나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들로서도 또 다른 나디르를 찾긴 힘들 것이다.
천재적인 전술가가 그렇게 쉽게 보인다면 세상은 조금 더 흉측할 터,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교롭게도 명이 흔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페르시아와 무굴이 같이 흔들리니, 제국들의 시대가 그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나디르는 창양에 도착했다.
그를 맞이하는 창양의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꽤나 격렬한 전쟁을 치르긴 했지만, 군주 스스로 항복해 고려에 조아렸다는 소식은 고려가 가진 페르시아에 대한 적대감을 희석시키기엔 충분했다.
고려의 장군이 되는 것은 무리수라도 적당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게끔 하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고려의 제안과는 별개로, 대외적으로 나디르는 그저 범인으로 살아갈 터였다.
그래도 신분이 신분이었던 만큼, 나디르는 황제 해원을 마주할 기회를 얻었다.
창천궁에 도착한 나디르는 붉은 융단(카펫)이 깔린 태성전의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그는 자세한 사항을 몰랐지만, 고려가 황제와의 접견에 융단을 깔아 대우하는 것은 대체로 타국의 군주나 재상급의 상당한 귀빈의 예우에 해당되었다.
해원은 나라를 잃은 나디르에게 나름대로 신경을 써 주고 있던 셈이었다.
그러나 나디르는 붉은 융단이 다른 색깔들로 이루어진 융단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잠깐 멈춰서야 했다.
붉은색과 황금색, 보라색의 삼색 모직물로 이루어진 융단을 밟고 고려 황제 해원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 삼색융단은 각각의 색깔마다 상징하는 군주권이 있었다.
황금색은 고려 전통의 군주권을, 보라색은 헬레나 이후의 핏줄과 그리스, 로마의 군주권을, 붉은색은 단색 융단과 같은 의미인 범세계적으로 두루 쓰이는 고귀함을.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디르가 문득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하, 수없이 오래전부터 세상의 패권을 놓고 다투어 왔지만, 결코 승부가 나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내 대에 결판이 나는구나. 페르시아의 샤가 로마의 임페라토르에게 굴종하니 이 치욕을 어찌 감내하리오.’
나디르는 자신이 이 치욕스러운 사건의 당사자라는 것을 끔찍하게 여겼으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심지어 자결조차 금지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디르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긍지 높은 미치광이가 어찌 이리 변화가 심했느냐 물어본다면, 나디르는 첫째로 뼛속까지 공포심을 불어넣어 준, 저 이라크에서 자신을 취조한 고려인을 먼저 꼽을 것이다.
심신을 회복하고 수도로 보내지기 전 군벌 출신답게 나름대로 상당한 무예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나디르는 그 정체불명의 고려인과도 대결해야 했다.
그들은 아마 한 여덟 번 정도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려인이 행한 여덟 번의 대련을 빙자한 구타는 나디르의 육신에 형언할 수 없는 공포심을 불어넣었다.
사람이 어찌 그렇게 강할 수 있는가?
나디르가 대적했던 것은 신화나 전설 속에 나오는 영웅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사람이 아주 원시적인 시절 때 자연스럽게 공포를 느끼는 상상 속의 대괴수와 비슷했다.
그마저도 손에 힘을 많이 풀었다는데, 과장인지 아닌지 차마 묻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디르가 지금 고개를 숙이고 있게 된 것은, 도리어 두 번째 이유가 더 강했다.
그는 이 짧지 않은 여정을 통해 고려를 본 뒤부터 약간의 절망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스파한, 마슈하드, 쉬라즈 같은 페르시아의 대도시들이 마치 태양 앞의 반딧불과 같이 여겨질 수밖에 없는 제도의 위용이 아닌가.
그는 여전히 그의 여정 속에서 보았던 충격을 기억하고 있었다.
페르시아에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철제 증기선들이 빼곡히 늘어져 있는 이 항구에서는, 공교롭게도 그가 도착할 즈음에 사고가 났었다.
항구의 창고에서 일어난 실화(失火)가 하필이면 옆에 적재되어 있던 옷감과 곡물 등의 타기 쉬운 것들과 만나 큰불로 번졌던 것.
해문시 당국은 소방인력과 경찰인력을 총동원해 소방을 진두지휘했지만 불길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이 불길은 때마침 건양에 있었던 비행선 몇 척이 소방장비를 싣고 계류탑에서 물을 충전한 뒤 하늘에서 뿌려댄 뒤에나 진정이 되었다.
당시 나디르를 데리고 가던 사람들은 이 꼴에 혀를 차고 해문시장과 시 당국을 욕했지만, 도리어 나디르는 이것에 놀라고 있었다.
‘한낱 불을 끄는 데 곧바로 비행선이 날아온단 말인가?’
또한 다른 일화도 있었다.
고려는 한창 자전거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밤중에 청해의 담벼락을 부숴 먹은 자전거 괴인이 등장한 이후부터 유행한 이 자전거는 고려의 거의 모든 사회 계급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동 수단이었다.
부유층에겐 여흥과 유행, 그리고 운동 도구로 다가갔고, 고급스러운 제품이 팔렸다.
반면 그렇게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도 마차나 말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관리하기 쉬우나 기동성은 그에 못지않은 자전거를 생업 도구로 쓰게 된 것이다.
그 유명한 아이작 겹빵이나 김밥왕국의 음식도 자전거가 없었다면 배달 시도조차 못 했을 것이다.
이런 자전거의 인기는 당연히 대회로 이어졌다.
하지만 자전거 대회를 열기 위해선,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만한 도로가 먼저 있어야 했다.
고려는 그 넓은 영토만큼이나 세상에서 도로가 가장 길게 깔린 나라였지만, 지금 이 수준의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는 심히 울퉁불퉁하여 신체에 큰 불편을 초래했다.
때문에 고려 조정이나 주 정부는 서민 친화적 정책을 행사할 이유 때문이라도 지금까지의 쇄석도로 말고, 새로운 도로법을 빠르게 도입했고 짧고 왕래가 많은 구간이나마 ‘역청도로’를 깔기 시작했다.
초기의 역청도로는 장단점이 확연히 있었지만, 승차감만큼은 기존까지의 어떠한 도로보다도 좋은 편에 속했기 때문에 이런 도로를 중심으로 자전거 대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토역청(아스팔트)이야, 예전에는 선박의 방수재로 쓰였던 그 수요를 공급이 충족시키지 못해 목청(목타르)이나 석탄청(콜타르)을 써야 했지만, 철선이 목선을 대체하고 석유의 시대가 밝아온 지금은 그 상황이 반전되어 희소성이 많이 떨어지게 되니 도로에 깐다는 선택을 내려도 무방할 정도였다.
나디르는 도로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고려가 이 비싼 타르를 이렇게 펑펑 써댄 모습에 놀랐다.
타르야 시리아나 카스피해 연안에서도 나오는 특산물이니 페르시아의 샤였던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타르는 고대부터 몹시 귀한 물건, 저렇게 바닥에 치덕치덕 바르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더더욱 놀란 것은, 고려의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이 도로를 거닐고 있는 것이었다.
마차가 오가는 쇄석도로와 자전거가 오가는 역청도로, 그리고 안전용으로 설치된 낮은 담을 두고 만들어진 철로에서 기차와 자전거가 나란히 오가는 풍경 속에 나디르는 탄식했다.
‘실로 끔찍하구나!’
나디르는 자전거를 지금 처음 보기만 했을 뿐, 타지는 못했기에 자세한 고충을 알지는 못했다.
다만 일인기마라고 할 수 있는 전력이 수없이 많으니, 이 나라는 마음만 먹는다면 저 쇠로 된 군마에 올라탄 수많은 병사들을 단번에 징집할 수 있어 보였다.
바다와 접하곤 있지만, 산맥 덕에 내륙지방이라고 할 수 있는 페르시아인들은 해적들을 그저 방치했을 만큼 바다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그렇기에 나디르 또한 고려의 위세 등등한 전함을 보더라도 함포를 탐내었을 뿐 배 자체에 큰 절망감을 느끼진 않았다.
반면, 비로소 육지에 내달리는 자전거를 보니 이 무시무시한 국가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이다.
* * *
해원도 나디르와 만나 기분이 굉장히 좋은 듯했다.
타국에 나간 할아버지가 사막 모래바람을 쐬며 고생할 동안, 그 자손은 창천궁에서 선물을 꼬박꼬박 받는 처지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여정이 힘들지는 않으셨소?”
제아무리 패자이더라도, 환하게 웃음 지으며 손을 내미는 승자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이다.
나디르는 도리어 당당하게 나섰다.
“썩 괜찮았소이다.”
다만, 나디르는 그래도 해원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어 주었다.
절대로 그 근육 괴물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대의 배려 덕분이 아니겠소?”
나디르는 잠시 침묵하더니, 한 단어를 더 내뱉었다.
“…고려의 샤한샤여.”
해원은 옆에서 자신에게 통역을 해주는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말한 마지막 단어는 이해하고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샤한샤.
왕들 중의 왕(shâhân shâh).
왕들의 주인이라는 파디샤(Padişah)와는 동격의 호칭이며, 지고한 존재를 칭하기에는 황제나 임페라토르와 비교해서 전혀 모자람 없었다.
“그 말을 들으니 참으로 보람차구려. 자, 귀빈을 이렇게 세워 두는 것도 실례이니 어서 안으로 듭시다.”
나디르는 태성전에서 고려 시중 및 중서령과 몇 가지 짧은 이야기를 나누어 그의 처우에 대해 합의한 뒤, 다시금 해원과 신료들의 안내를 받아 다른 전각에 도달했다.
“이번에 새로 지은 전각이오. 회경전(回慶殿)이라 하지.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소.”
해원이 문득 입을 열었다.
“지금 보이는 저 서쪽의 아름다운 전각은 함녕전이라 하오. 원래라면 그대와 같은 지고한 귀빈을 모실 때 그곳으로 가야 하겠지만 귀하께선 이번에 새로 지은 곳을 더 좋아하실 것 같구려.”
함녕전의 천장화나 파나기아상 등을 만든 미켈란젤로는 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지웠으나, 애초에 수많은 벽화들과 석상들 자체가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인에게는 썩 달갑지 않은 장소일 수도 있었다.
나디르가 종교적 열성이 그리 크지 않더라도, 해원은 그런 점까지 고려하는 세심한 사람이었다.
혹은 그저 전각을 하나 더 지어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고.
물론 회경전은 나디르를 접견하려는 목적 때문에 지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귀순은 급작스럽게 발생한 상황이었고, 건물은 칠 년 전부터 착공을 시작해 최근에서야 완성을 한 상태였다.
아라비아에서의 상민의 행적을 유심히 관찰하던 후손은, 갑작스럽게 치밀어오르는 경외심을 못 이겨 새로운 기법으로 전각을 짓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원이 사비를 들여 함녕전의 반대편에 새로 지은 전각은 거의 완벽하게 이슬람 제국― 특히 아바스 후기와 셀주크 왕조의 건축구조를 모방하고 있었다.
미나렛(첨탑)은 부지와 종교적 이유상으로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꿉바(돔)는 동로마의 펜던티브식과는 비슷하면서도 고유의 독창성을 강조하여 강회로 견고하게 만들어졌으며, 지붕은 전부 황금으로 덮여 있었다.
나디르는 헛웃음을 흘렸다.
고려인들이 이슬람인들의 건축 양식을 따라 하면 얼마나 따라 할 수 있겠느냐고 든 내면의 생각은 거대한 전각에 들어서자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 이들은 이라크나 헤자즈의 땅에서 저명한 건축가들을 초빙해 지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완벽하게 페르시아식 이완(iwan)을 전각 내부 사면에 완벽히 적용하고, 그 위를 거대한 황금의 돔으로 올린 것은 수많은 사치를 부린 망국의 황제들도 감히 엄두가 나지 않은 짓이었다.
그렇다고 건물의 장식에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천장화와 동상, 혹은 어떠한 종교적 문양이 없었지만, 대신 이곳의 내부는 몹시 정교한 당초와 기하학무늬―아라베스크―가 사방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돔의 천장 중심에서 뻗어 나가듯 시작되어 이완의 각 면과 건축물을 지탱하는 기둥을 흘러내리듯 새겨진 기하학적, 식물적 문양은 마침내 바닥의 타일과 어울려 다시금 돔 천장 중심의 바로 아래 바닥의 점으로 정확히 회귀했다.
덩굴과 꽃무늬, 마름모와 직사각형, 원과 타원 그리고 그것들에서 파생된 수만 가지 도형과 기호들은 새겨진 곳에 따라 중복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독창적이었으나 거시적으로 볼 땐 모두 어울리게 장식되어 있었다.
분명 이 문양들의 설계자들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수학적 미에 대한 이해, 혹은 집착이 뚜렷해 보였다.
주변에는 십자뿐만 아니라 초승달 문양 등 전통적인 이슬람 문양조차 하나도 없었지만 신실한 이슬람교도라면 이곳을 굉장히 신성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려인들은 그저 조국이 위대하다는 생각만을 가지겠지만.
이 거대한 전각의 한가운데에 깔린 양탄자에 앉아, 해원과 나디르는 수많은 음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환경 덕인지, 혹은 군대라는 공통의 관심사 덕인지 둘은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서로의 나이 차이가 스무 살이 넘게 나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색적인 일이었다.
“하하, 그렇소이까?”
“고려 황제라 하니 이 드넓고 찬란한 궁정에서 일평생 살아왔다고 짐작만 할 뿐이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지만, 고려 황제들은 자신들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는 않지요.”
해원이 술을 따라주며 웃었다.
나디르가 술을 들이켜고 소고기로 된 육전을 주워 먹었다.
음식을 즐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디르의 종교와 취향을 고려하여 대접하는 음식들은, 이 머나먼 땅에 와서도 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
섬세하게 신경 쓴 음식과 익숙하고 장엄한 전각의 분위기 덕에 나디르의 기분도 꽤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괴팍한 성격은 어디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 패장이 해야 할 것은 뭡니까?”
해원이 슬쩍 웃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이자는 술과 고기보다 다른 무언가에 빠져든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는 목을 축이고 입을 열었다.
“아마 샤께선 새롭게 신설되는 교육사령부 휘하의 부대, 통합전투훈련단의 명예 단장으로 임명되실 겁니다. 물론 샤의 입장상 고려군 계급을 따로 수여하지는 않을 게지요. 다만 그곳의 간부들은 모두 샤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겠지요.”
병사들은 페르시아 포로를 주축으로 만든다 하나, 간부들은 고려인들이 맡아 주어야 대항군에서도 배워나갈 것들이 있었다.
“부대의 이름은… 음, 전갈 부대가 어떨까요?”
순전히 해원의 생각 속에서 나온 단어에, 나디르도 딱히 반대는 하지 않았다.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나.
만티코어의 신화가 만들어진 페르시아에서도 전갈은 무시무시한 존재라 취급되었으니 어쩐지 어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거, 그럼 이 사람도 그… 비행선이라는 것을 써볼 수 있는 겁니까?”
해원이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이건 샤께서 고려에 귀순하셨으니 알려드리는 특급 비밀이지만, 고려는 더 이상 군용 비행선에 대한 생산을 이어나갈 의지가 없습니다. 소방용이나 다른 용도면 모르겠지만….”
나디르가 충격적인 선언에 크게 놀랐다.
“아니, 대체 왜요? 그 중요하고 귀한 것을…!”
“그야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나디르의 동공이 커지는 것을 감상하며 해원은 술을 달게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