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사충의군 운동
자신들이 하북군에 저지른 것들이 있었기에 3개국군은 군수품에 대해 꽤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이들은 같은 열강들끼리도 온전히 믿고 있지도 않았다.
특히나 동아시아의 열강들은 더더욱.
한 발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라오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군대가 무슨 일을 꾸밀지 몰랐기에 그들은 심혈을 기울여 보급선을 무장시키고 자체적으로도 군수품을 많이 가지고 다녔다.
어찌 보면 민간에 대한 약탈도 그런 명목하에 벌어졌을 것이다.
“명인들은 고려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한낱 야만인들이니 우리가 필히 승리할 것이다.”
그런 철저한 대비 아래, 3개국군은 그들의 마지막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당시 3개국연합군의 사령관이자, 포르투갈군의 사령관이기도 한 두아르테 드 알부케르크 후작이 그렇게 직접 말할 정도로 이들은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다소 좋지 않은 소식이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호남성의 순무(巡撫)가 남쪽에서 올라와 먼저 장사를 노린다 합니다.”
한동안 묵묵히 있던 명 조정이 드디어 움직임을 시작한 모양.
하북군의 패퇴 이후에도, 명 조정은 나름대로 쓸 패를 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장사를 쳐 관수경을 취하겠다 그 말이로군.”
“틀림없을 것입니다.”
“고생은 우리가 하고, 열매는 그들이 먹는다? 아니 될 말이다. 어서 속도를 높여라!”
3개국군은 그날을 기점으로 놀랄 정도로 빠르게 진격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명의 호남군은 3개국군보다도 빨리 장사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이 먼저 공성전 준비를 하고 있는 광경에 난입한 3개국군은, 양 측의 지휘부가 마주한 자리에서 도리어 그들에게 핀잔을 주었다.
“명 중 최고 정예라는 하북군이 그렇게 패배했는데, 한낱 호남성의 군대가 어찌 이길 수 있겠소? 우리의 화력이 그대들보다 훨씬 우월하니 방해하지 마시고 그냥 뒤로 물러나 우리가 하는 것을 지켜나 보시오.”
명의 장수들은 모두 분기탱천해 있었다.
사실 지금의 모욕은 귀에 잘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도 무창에서 그랬던 것만큼 대학살을 저지를 셈이오?”
“태평천국은 명 조정에 반기를 든 불량한 자들 아닙니까? 수고로운 일을 해 주었으면 감사하다 표현해야지 도리어 성을 내면 어쩌오?”
뻔뻔한 3개국군의 말에, 호남순무와 그 휘하의 장수들은 뿌드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명군은 3개국군의 말마따나 진형을 그들의 후미에 두고 공성에서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3개국군은 이 모습을 보고 비웃고 있었다.
“멍청한 자식들.”
“저들이 이탈리아의 뒤통수를 친 전적을 생각해보면, 마냥 믿을 수 있는 놈들은 또 아닙니다.”
“그럼 오스트리아군이 행여 저들이 흉계를 꾸미는 것을 막아내도록 합시다.”
장사의 저항은 격렬했다.
대포가 성곽을 무너뜨려도, 태평천국군은 그 잔해 속에서도 최후의 저항을 이어나갔다.
장사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셈이라, 병사 하나하나의 눈에서도 독기가 엿보였다.
심지어 관수경과 그 측근의 서왕과 동왕같은 이들도 나와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나 이들도 열강군을 당해낼 수 없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군의 주전력은 예비대로 돌렸음에도.
사실 군의 훈련도는 남왕군이 제일 높았었기에 무창이 함락된 시점에서 장사의 안위는 이미 끝장나 있었던 것과도 같았던 것이다.
더군더나 한 포르투갈의 병사가 자신이 가진 소총으로 서왕을 저격하는 것에 성공하자, 분위기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멍청한 지나 놈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전쟁터에서 칼을 들고 어설픈 힘자랑을 하고 있나?”
일신의 용력만으로는 천하에 당할 자가 거의 없어, 악래의 재림이라는 석개수가 총탄 한 발에 절명하자 관수경은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목놓아 외쳤다.
“지금이다!”
적장 중 하나가 죽고 무너진 전선 사이로 착검하여 약진하는 공성군이 마침내 성곽의 돌무더기를 헤치며 나아갈 때, 뜬금없이 명의 호남군이 태평천국군의 신호에 응답했다.
목표는 3개국군의 포병대.
훤히 노출된 그들의 등에 대고, 명군들이 총칼을 꺼내들었다.
“명이 우릴 배신했다!”
“이 새끼들, 이럴 줄 알았다!”
예비대로 빼놓은 오스트리아군이 빠르게 대응했다.
강화인들 만큼이나 명인들도 믿을 수 없는 부류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군은 자기 발밑에 있는 것들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이것들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기 전까지.
“설마…!”
그들의 공성용 진지는, 명나라가 먼저 지어놓은 곳을 반쯤 뺏어서 쓰고 있었다.
설마하니 자신의 발밑에 함정을 파고 기다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터라 오스트리아군은 어찌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명군들은 철 지난 불화살을 쏘아대었다.
하지만 지금 오스트리아군은 저들이 쏘는 총탄보다도 그것이 훨씬 더 무서웠다.
― 치이익
화승을 이용한 이 원시적인 지뢰는 남왕이 자주 쓰는 무기였고, 지금은 태평천국의 다른 이들도 사용법을 알았다.
무엇으로 칠했는지는 몰라도 위장을 위해 검게 물든 화승이 이곳저곳에서 불길에 타들어가자 한 오스트리아의 장교가 성호를 그었다.
“오 주여.”
― 콰앙
사실, 몹시 원시적인 무기라 이 지뢰라는 것은 가끔은 터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조악한 제조법으로 화승이나 화약이 습기를 머금어 터지지 않을 때가 많았고, 터지더라도 화약이 불량해 원하는 만큼의 폭발력을 내보이지 못했던 것도 많았다.
열강들은 뇌홍이라는 물건을 쓴다지만, 명에서는 그 정도의 기술력조차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심리적인 위축감은 대단했다.
발밑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감정은 꽤나 잘 훈련된 오스트리아군조차도 겁에 질려 제대로 싸우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들은 빠르게 기존의 전장을 이탈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람이 가는 것과 별개로, 그들의 물자들은 그렇게 손쉽게 이동할 수는 없었다.
단번에 3개국군의 대포와 제사총등을 탈취한 명군은 그것을 도리어 장사를 공격하는 원 주인들에게로 퍼부었다.
― 타타타타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것 같은 양이들이 대포에 몸뚱아리가 터져나가거나 제사총에 픽픽 쓰러지고 피거품을 뱉어내었다.
“모조리 죽여라!”
무창대학살의 복수.
그것이야말로 지금 명의 관군들과 태평천국군들 모두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목적이 분명했다.
장사공방전은 완벽한 명―태평천국의 승리로 끝났다.
빠르게 퇴각을 결정한 오스트리아군조차 절반 이상의 병력을 잃고 도주해야 했고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군대는 거의 전멸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그들의 목을 한 개 한 개 손수 잘라 장대에 올려놓고 경사로 행진하니, 비로소 태평천국군은 동황비의 제안에 따라 부명멸양의 기치를 들며 스스로를 '척사충의군(斥邪忠義軍)'으로 칭하기에 이르렀다.
* * *
“뭐라고?”
명에서 벌어지는 것과는 달리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대사관 거리엔 갑자기 큰 바람이 휘몰아쳤다.
어느 날 갑자기 경사에 있던 군중들이 대사관 거리를 둘러싸고 큰 소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나둘 모이던 군중의 숫자는 이제는 정말 무시 못 할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대사관 거리를 둘러싼 담은 도둑이나 불량한 사람을 잡기 위한 시설이었지 수성을 하는 설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은 명실공히 경사의 한가운데라, 빠져나갈 틈도 없었다.
제아무리 이성적 대화를 요구해봐도, 저들 무리가 들어먹을 리가 만무했다.
― 양이를 찢어죽이고, 동이를 쳐죽이자!
그들의 신나는 구호는, 당사자들에게는 더없이 소름 끼치게 들렸다.
저 군중무리가 폭력을 수반한 폭도무리로 돌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명 조정의 답장은 언제 옵니까? 그들은 국제외교적 관례에 따라 대사관에 대한 마땅한 호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고려 대사가 관자놀이를 거칠게 주무르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는 동황비가 이끄는 척화파 중심의 명 조정이 외세에 적대적으로 돌변했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명 조정의 침묵.
그리고 함부로 행동하는 군중들.
이 모든 상황들 명이 정말로 최악의 수, 즉 태평천국군과 손을 잡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제아무리 폭도라 하더라도, 명 조정이 지네 나라 수도의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저들은 지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3개국군이 패배했을까?’
예측하지 못할 경우라 그럴 수도 있었다.
전선도 안 깔린 이곳에는 소식이 실로 늦게 도착해 기다려야 하겠지만.
“명 조정이 침묵하고 있으니, 일단 우리끼리 최선을 다해 막아내 봅시다. 이윤진 사령관이 이끄는 4개국군을 비롯한 다른 군대가 경사로 귀환할 것이 분명하니 조금만 버티면 될 것입니다. 주재무관들은 어서 대사관에 주둔한 병사들의 규모를 알려주세요.”
“저희 조선 대사관은 기껏 서른 명이 전부입니다.”
“저희 알비온 대사관도 주둔군이 겨우 스물다섯이니….”
“저희도….”
그러나 대사관에 병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이들을 다 모아봤자, 몇백이 전부였다.
“일단 경사 외국인거리에 있는 사람을 이곳으로 대피시킵시다.”
여러 나라의 대사들이 한 곳에 뭉쳐 대응책을 논의하는 와중, 이번 일의 원흉이라고 볼 수 있는 3개국 대사들이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그들에게 달려왔다.
“우…우리도 살려주시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알비온 대사이자, 에이레의 대사가 벌컥 화를 내었다.
“빌어먹을 인간들, 무창에서 그딴 짓을 일으켜서 지금 이 지경이 된 게 아니오! 염치가 없으니라고!”
밖에 있는 명인들의 눈깔이 뒤집혀 있는 것은, 그들이 팔아댄 아편도, 뭐도 아니라, 그들이 자행한 무창대학살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행동해?
하지만 3개국의 대사들은 눈물 콧물을 흘려대며 고려 대사의 두루마기를 잡고 매달렸다.
이들도 귀족이거나 귀족에 준할 텐데, 꼴이 말이 아니었다.
“윤 대사님, 우리 그간 정이 있지 않습니까? 예?”
― 후우
고려 대사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귀국들이 저지른 행동과는 별개로, 외교적 관례에 따라 대사관과 이곳 주민들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소. 이는 사실이니 우리는 그대들을 내치진 않을게요.”
“고맙소. 고맙습니다. 내 이 일을 절대 죽어서도 잊지 않을….”
“허나 그대는 앞으로 고려에서 사절인으로 고려될 것이니 명심하길 바라오.”
“…….”
어찌 되었던 대사관들은 지금의 몰상식한 사태에 대해 전부 뭉치기로 협의했다.
함께 연대하여 공동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마침내 명의 조정에서 답신이 왔다.
“대명제국은 현 시간부로, 대명의 땅을 침략한 오랑캐들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바다! 오늘 안에 명의 땅을 떠나지 않으면 그대들도 안위를 장담할 수 없다!”
모두의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전쟁 운운은 몰라도, 지금 그들의 목숨이 경각에 처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
냉큼 저 관리의 말대로 달아나려 했다간, 아마 폭도들에게 맞아 죽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하루 만에 명을 벗어날 수 있소이까?”
“호위는 있습니까?”
명의 관리가 코웃음 쳤다.
“그대들은 침략자인데, 우리가 그 이상의 사정을 봐줄 이유가 있는가?”
“이건 국제법 위반이오!”
“국제법? 그대들끼리 체결한 국제법이 이 대명천지에 효력이 있겠는가?”
고려 대사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기존 고려의 방침이 명의 국체 유지고 뭐고, 지금 상황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고려인들은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람들.
또한 이런 모욕은 감내하기 힘들었다.
국가에 대한 모독이다.
대사는 국익을 수호하는 관리.
그 국익에는 분명히 국가의 위신 또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전쟁? 그대가 방금 전쟁을 입에 담았는가? 정녕 명은 대고려와 전쟁을 벌이겠다는 말인가!”
쩌렁쩌렁한 고려 대사의 고함에, 이번에는 명의 사절이 흠칫 놀랐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말에 대한 무게감을 자각한 모양.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좌중을 감싸고 돌았다.
그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였는지, 그래도 그동안 산동반도에서의 이권으로 인해 동황비와 꽤 많은 교류가 있었던 백제의 대사가 앞으로 나와 명의 관리에게 물었다.
“정녕 동황비 전하의 뜻입니까? 다시 한번 여쭈어보시지요.”
명의 관리도 마냥 멍청한 자는 아니었다.
일단 한 번 크게 을러놓고, 나머지는 다시금 뒷거래를 할 생각이었겠지.
특히나, 동황비와 우호적이었던 나라들은 더더욱.
본래는 이런 뒷거래는 비밀로 할 생각이었지만, 명의 관리는 고려 대사의 진노를 본 뒤로, 이 자리에서 어영부영 끝맺다가는 정말로 동쪽의 천조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대놓고 말했다.
“귀하에겐 관에서 영파로 가는 배를 마련해 줄 테니, 그 선박을 타고 떠나시오. 명 조정은 백제의 일행에 대해서는 마땅한 호위병력을 붙여줄 것이오.”
백제 대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다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고려 대사를 흘깃 바라보았다.
명의 관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려와 조선의 대사도 마찬가지오.”
옥저의 대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본래는 그렇지 않아, 아마도 저들의 제의가 그들에게도 해당되었을 것이었겠지만 서황비의 저관파천 사태 이후, 지금 동황비 조정과 옥저는 아마 무창대학살을 저지른 열강정도에 달할 정도로 미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떠날 수 없었다.
직접적인 목숨의 위협이 느껴진 백제와 조선의 대사가 그 제안을 승낙하려 할 때, 고려의 대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오.”
“…….”
“명 조정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라에게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할 것이오. 또한 지금 외교적 결례는 물론이고 심신의 안정에 위협을 가하는 폭도 무리들을 당장 진압하시오.”
다시금 불타오르는 명의 관리와, 서늘한 눈빛의 고려 대사의 눈길이 충돌했다.
“그렇게는 못 한다면?”
“그렇다면 귀국은 그대가 입에 올린 단어의 책임을 져야 하겠지.”
[작가의 말]
사절인(謝絕人) : Persona non gr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