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91화 (391/653)

태평천국

― 덜컹

큰 파도를 만났는지 증기선이 다소 요동쳤다.

솔빈에서 출항한 지 좀 되었으니 지금쯤이면 울릉도와 그 옆의 자그마한 돌섬 우산도 부근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울릉도도 예전에는 갈등의 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비록 조선은 이 일대에 대한 확실한 영유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울릉도에 대한 조선의 공도정책은 꽤 먼 과거, 조선 초부터 시행되고 있었다.

실효지배적 측면에서 이는 조선에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옥저가 나라를 세운 뒤 얼씨구나 하며 이곳에 수작질을 부린 것도 그러했다.

여진구(여진족 해적)들이 예맥해를 들쑤시고 다닌 일은 유명했으며, 울릉도도 그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심지어 우산국은 옛 왕씨 고려의 봉신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해씨 고려에게도 명분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중에는 백제는 물론이고, 이 섬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강화마저도 눈치 없이 끼어들려 하자, 조선은 부랴부랴 공도정책을 폐기하고 마침내 다시 내륙의 주민들을 이주시키며 사건을 일단락지었다.

고려도 조선령 울릉을 지지했는데, 명실공히 가장 가까운 국가는 조선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놓고 탐라와 개성까지 먹어 치운 상국의 입장에선 이 불쌍한 조선의 영토 한 자락을 더 뜯어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이곳은 조선이 옛 합종국 소속(고려, 백제, 옥저)의 함대를 위해 저탄장을 지은 곳 중 하나이니, 옛 합종국 소속이었다면 이곳에서 외상을 달아놓고 석탄을 채우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항할 것 같지가 않았다.

짐칸에 타고 있는 정황기 선봉대들은 제각기 널찍한 바닥에 자리 잡고 늘어앉아 잡담하고 있었다.

“살다 살다 명 놈들을 위해 싸울 줄은 몰랐는데.”

“대체 뭐가 어찌 돌아가는 거야? 명 왕이랑 명 조정은 뭘 하고 있는 거고?”

“넌 들은 거 있냐?”

기병총을 점검해보고 있는 나라동훈뿐만 아니라 다른 장교와 병사들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드물었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눌 시간도 적게 주어졌던 터라, 이들은 살짝 불만까지 가지고 있었다.

“부대, 차렷!”

정황기들 앞에 그들의 지휘관이자, 옥저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이윤진 부장이 들어왔다.

눈빛이 형형한 것이 역시나 명문가 출신이라는 소문이 헛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옥저도 팔기와 같은 부대 편제는 아니더라도, 고려의 군 계급체계를 비슷하게 들여와 이식한 만큼 장성이니 영관이니 정부참이니 하는 것들이 거의 동일했다.

이번 작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한 계급씩 특진되었는데, 그들의 기장(旗長)은 장성이라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쉬어. 할 거 하면서 들어라.”

졸지에 정위가 된 나라동훈이 익숙지 않은 계급장을 매만졌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명에서 우리 옥저에게 협조를 구했다.”

지금 옥저가 명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침공이나 전쟁 같은 국가 간의 전면적인 분쟁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딸랑 이 병력을 상륙시킨다고 호위선도 몇 척 없이 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도리어 그 반대에 가까웠다.

명 조정의 긴급한 구원요청으로, 옥저가 비로소 정황기를 파견하게 된 것.

명은 지금 조선도, 백제도, 강화도, 그리고 기타 서양에서 온 오랑캐도 아닌 옥저에게만 손을 벌린 상황이었다.

정황기 장교들은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국가들은 참여치 않습니까?”

“그래, 오직 우리 옥저만 이곳에 와 있다.”

이윤진은 위생적 면에서 모범을 보인답시고 자주 면도했는데 그새 또 자란 꺼끌꺼끌한 턱수염을 매만졌다.

양이들은 물론이고, 조선도, 백제도, 강화도 명 조정의 제대로 된 초청을 받진 못했다.

명의 현재 큰 근심거리는 단연코 대리와 순이었다.

다만 대리는 독립해 떨어져 나간 이후에는 도리어 명과 적대하지 않겠다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 기울여 마침내 경사에 앉아있는 명의 황제에게 운남왕이라는 공식적인 칭호를 하사받기도 했다.

명도 대월과 신 토번을 견제하고, 심지어 순이 사천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측면에서 대리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한족 정권임에도 명에게 반기를 든 순은 명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자들이었다.

때문에 명은 매번 여유가 있을 때마다 순을 공격하여 재통일을 하려 애썼고, 순도 그를 필사적으로 막아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다음의 근심거리는 해안가의 조차지를 통해 명의 경제를 사정없이 착취하고 있는 거머리 같은 양이였다.

이들은 실제적 위협은 가하지 못했지만 아편이라는 실로 흉악한 마약을 팔아 명의 경제와 사회에 크나큰 재앙을 불러들였다.

무굴과 벵골, 비자야나가르 등에서 생산되는 어마어마한 양귀비는 유럽인들의 손에 가공되어 명에 흩뿌려졌으며, 금은으로 교환되어 유럽으로 건너갔다.

동이들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도 없었다.

이들은 경제적 이권 침탈뿐만 아니라 실제적 위협까지 가할 수 있는 오랑캐들이었다.

해안가의 조차지는 없지만, 정말로 명과 대판 싸워 승리를 거둔 조선은 명의 가장 큰 잠재적 적국이고 백제는 산동의 조차지를 통해 화북의 부를 빼먹는 중이었다. 강화는 명 조정의 뒤통수를 거하게 때리고 해남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들은 상해의 맹 이후 엄연히 명의 봉신국으로 여겨졌던 대만의 주가 명에게 대놓고 반기를 드는 때에도, 주의 입장을 지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을 믿는 것은, 이리 떼를 믿는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옥저도 그 동이의 범주에 속하긴 했다.

심지어 옥저는 조명전쟁에서 조선 측으로 참전해 명에 대해 맞서고 심지어 연경을 약탈하기까지 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간 옥저인들은 중원과 그 해안가의 땅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명과 옥저의 육지 국경선은 열하 부근 아주 살짝 맞대고 있긴 했지만, 그 험준한 지리적 한계상 조선―명 국경의 봉명관과 비교할 수 없는 그저 명목상의 국경일 뿐이었다.

그런 고로, 명과 옥저의 관계는 딱히 악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후대에 들어서 약간은 개선되었다.

심지어 명은 가끔 몽골의 부락들이 난리를 치거나, 옛 준가르의 위협이 있을 때마다 옥저에게 ‘보호비’라는 명목의 금전적 재화를 건네고 북방의 위협을 제거한 적도 있었다.

길게 보면 지금의 행동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몽골 부락이 아니라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군사작전이었다는 것이 다르겠지만.

“반란군들은 현재 무창과 장사, 남창 등의 도시를 기점으로 세력을 급속하게 확산 중이다. 명은 조정군이 무창을 공격하여 탈환할 동안 행여 남경을 남쪽에서 위협할 반란군에 대해 우리가 좀 나서서 방어를 해 주길 원한다고 했다.”

“…….”

“알고 있다. 우리는 총기병대이니 방어 특화 병력은 아니지. 하지만 신식군이니 뭐니 하며 겉모습만 군대를 개편한 명은 심각한 기병 부족을 겪어 기동성에서조차 반란군을 압도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특별히 우리를 부른 것이다. 기동방어라 봐야 할 게다.”

이윤진은 여전히 의문을 품은 부하들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질문할 거면 해라.”

“정위 구왈경수, 질문 있습니다. 명에선 그들을 반란군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윤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에선 이들을 보고 반란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공문에도 그리 적혀 있어.”

“반란군의 무장 상태는 어떠합니까?”

“대부분 도적 떼와 다름없을 것이라는 게 명의 입장이다. 물론, 명이 그 도적 떼에 쥐어 터진 건 감안해야 하겠지. 방심하진 마라. 대체로 규율과 기강이 문란하겠지만 어떤 부대는 총기와 화포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

“…….”

질답이 얼추 끝나자, 이윤진은 부하들에게 마지막으로 푹 쉬라는 말을 남기곤 자리를 떠났다.

“푹 쉬고 있어라. 자세한 사항은 경사에 도착해서 한번 보자꾸나.”

지휘관이 자리를 비우자, 다시금 정황기는 왁자지껄 떠들었다.

“아니 명은 도적 떼들 하나 제대로 진압하지 못해서 우리를 부른 거야?”

명의 역사에 대해 꽤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정황기 장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듣기론 그들의 종교가 이곳저곳의 교리를 잡탕으로 혼합한 덕에 꽤나 중독성 있다 들었다. 덕분에 교세가 미친 듯이 확장하고 있다지. 애초부터 명은 백련교도에서 일어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지금 그들은 똥줄이 타들어 가는 기분일지도 몰라.”

누군가 투덜거렸다.

그자의 목에 달린 용 모양의 목걸이는 제국교의 신자를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보았자 근본에는 비할 바 없는 사이비에 불과할 텐데, 저자들은 그것을 대체 왜 믿는 거지?”

“모르지.”

하지만 평범하게 사는 이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희망의 지푸라기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있어야지만 보이는 법이었다.

* * *

아편.

유럽 세력들이 점령한 곳에는, 항상 이 죄악이 따라붙었다.

대표적으로 인도와 중원이 그랬다.

아편의 위해성은 고려의 강도 높은 반마약정책 덕분에 고려는 물론이고 그와 교류하는 국가들, 심지어 원산지인 유럽국가들의 지식인 사이에서도 이미 퍼지고 있었지만, 그 밖의 지역에서는 규제 자체가 없었다.

도리어 이것들은 부도덕한 열강들에 의해서 주요한 무역품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인도 지방은 그들의 특산품인 초석과 향신료 이외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편 생산국으로 발돋움한 지 오래였다.

무굴의 황제들은 아내의 무덤을 짓거나 끊임없는 정복전쟁을 치르는 등 여러 이유로 돈을 헤프게 쓰기로 유명했고 그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아편에 손을 대었다.

무굴이라는 강대한 적에 맞서 버티고 있는 벵골 술탄국 또한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강대한 서양 세력인 베네치아에게 매월 할당량만큼의 아편을 공급해야 했다.

비자야나가르 또한 마찬가지로, 그들의 침략자이자 구세주인 프랑스와 포르투갈, 카스티야 등에게 아편을 많이 팔아 전쟁 자금을 마련해야만 했다.

무굴의 옛 황제 아우랑제브는 인간성과 내정으로는 최악의 인간에 가까웠지만, 군사적으로는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데칸고원을 넘지 못했던 한 가지 이유는, 아편의 원산지를 사수하려는 서양 세력들의 간섭이었을 것이다.

인도가 단일한 패권국(특히 이슬람) 아래로 뭉치는 것을 싫어한 서양인들은 힌두교도들을 지원하고 있었으니 비자야나가르는 그들의 무기와 대포를 사들여 거세게 저항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도에서 열심히 생산된 아편은 현지에서 소비되기보다는 바다를 거쳐 중원으로 도달했다.

포르투갈이 제일 먼저 아편의 상로를 개척한 후 떼돈을 벌었고 이를 목도한 다른 나라들도 앞다투어 아편 팔아먹기에 열중했다

중원은 이를 팔아먹기 최고의 조건을 가진 지역이었다.

일단 인구수가 많았고 구매력이 높았다.

게다가 명인들은 예전부터 다른 약물성 기호품에 크게 중독된 지 오래였다.

명 황제 주익상의 명령으로 외세의 담배에 대항하기 위해 재배된 대마는 이미 중원 내에서 피지 않는 사람을 보기 힘들 정도로 널리 퍼져 있었고 이제는 단속조차 어려웠다.

경사의 대소신료들도 정무를 볼 때 뻑뻑 피워대기 일쑤였으니 백성들 단속이 가능하겠는가.

그 와중에 대마보다도 더욱 중독성 있고 효과 좋은 아편이 등장하니 확산세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불과 몇십 년이 지났을 뿐인데 해안가의 명인들은 아편이 없으면 못 사는 몸이 되어버렸고, 관리란 사람들도 아편에 절어 정무에서 손을 떼는 바람에 탄핵당하는 자들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 아편의 위해는 심대하니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고려가 먼저 제의를 하는 일도 있었다.

냉엄한 제국주의적 외교 속에서 이례적으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미는 손길이었다.

고려인들도 정도라는 것을 안다.

탐욕으로 눈이 시뻘게진 유럽인들을 말리진 못해도, 반마약정책을 지원해줄 수는 있었다.

게다가 명이 아편의 온상이 된다면 옆 나라들도 딱히 좋은 것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명이 고려를 어찌 믿겠는가.

시가를 팔아대고, 명 내의 소수민족에게 온갖 협잡질을 해대어 한족에게 반항하게 만들고, 심지어 동이를 지원해 명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을 선사한 나라가 그들인데.

그 제안은 명 조정에 의해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리고 18세기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들은 아편에 의해 신음하고 있었다.

이런 끔찍한 환경은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마련.

후한말의 황건적도 그러했고, 원말의 백련교도들도 그러했으니 사람들은 분명 지푸라기라도 원하고 있었다.

광동 사람 관수경이 그 부름에 응답했다.

그는 본래 객가인 출신으로 과거를 준비하던 유생이었다.

하지만 본래 실력이 좋지 못했는지, 혹은 출셋길이라는 것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돈이 없으면 급제도 못 하는 것인지 그는 향시에만 세 번이나 떨어졌다.

그의 집안도 썩 좋지는 못해 가세는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수경은 이에 절망하여 하루하루 술로 지새우는 날이 많아졌는데, 하루는 그가 독주를 마시고 한 건물에서 쓰러져 자다 꿈을 꾸게 되었다.

들어갈 때는 몰랐지만, 그 건물은 허름한 관제묘였다.

그리고 그는 꿈속에서 백염의 노인이 그에게 호통을 치는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 너는 내 자손인데, 어찌 그렇게 못나게 살고 있느냐!

관씨라는 성은 중원에서 그리 희귀한 성은 아니었지만, 흔하다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씨가 그러했듯 실제 사실과는 무관하게 관씨들은 자신들을 관공의 후손으로 여기고 있었다.

― 저는 당신과 같은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처음 꿈속에서도 관수경의 깊은 자괴감은 여전했었다.

― 고얀 놈! 너는 이 학정에 고통받는 백성들의 신음 소리가 들리지 않더냐?

하지만 그의 먼 조상은 일갈하여 그를 일으켜 세우고는 직접 그에게 새파란 검을 주며 말했다.

― 이것은 파사(破邪)검이니라. 너는 이 검으로 백성의 정신을 좀먹는 아편과 같은 사특한 기운을 잘라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거라.

과거에 계속 낙제하여 곪아버린 무의식의 발현이 꿈에 나온 것이 분명했다.

깨어나 보니 파사검도 없었고, 뭐도 없었다.

단지 낡은 관제묘 안의 위패들이 전부.

하지만 관수경은 그 꿈을 꾼 뒤부터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까지의 무기력한 삶을 단번에 청산한 그는 자신이 꾼 꿈을 계기로 자신만의 종교를 창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관성제군(關聖帝君)의 후손으로 직접 그의 계시를 받았다!”

평소의 술자리에서 그리고 노름판에서 사귄 지인들에게 그는 자신의 꿈을 실감 나게 말했다.

유학자적 면모보다는 훨씬 탁월한 그의 언변은 금방 추종자들을 만들어냈고, 그는 단번에 광동에서 꽤나 큰 세력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러한 그의 성세에는 교묘한 관수경의 솜씨가 있었다.

평소 광동은 수많은 외세의 상인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조차지였으며, 이탈리아나 베네치아, 네덜란드와 같은 서양인들과 동이들도 자주 와 교역하곤 했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기독교의 공공연한 포교가 이루어졌으며, 선교사들이 이리저리 교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비록 반외세적 감정으로 인해 그 수가 그리 크게 번지진 않았지만, 특유의 평등적인 교리는 하층민들에게 분명히 크게 다가가는 점이 있었다.

이들 종파에 대한 책도 구하기 쉬웠던 터라, 관수경은 가톨릭과 개신교, 이슬람과 심지어 저 고려의 제국교에 대한 서책까지 받아볼 수 있었다.

그는 그러한 전 세계 유구한 종교들의 교리를 짜깁기했다.

중독성 있는 아브라함계적 일신론주의를 바탕으로 만든 그의 종교는 특히나 고려의 제국교에 엄청난 영감을 받았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최후의 선지자요, 중원의 구원자이다!”

야훼, 혹은 알라는 천부상주황상제(天父上主皇上帝)로, 그의 조상인 관성제군은 이전의 선지자로 여기는 그의 교리는 제국교의 태조처럼 그 자신의 신성성을 부각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처음 광동에서의 그의 행적은 외세에 큰 관심을 받았다.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제국교는 제국교대로 이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하며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후에 이들의 교리와 실체를 알게 되자 정통 종교들은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펄쩍 뛰었고 광동성의 관리들을 부추겨 서둘러 진압하도록 했다.

관수경의 세력도 작지는 않았지만, 광동성에는 외세가 강했다.

심지어 그런 외세를 경계하느라고 명군도 화포를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 관수경으로서는 항거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었다.

이 때문에 관수경은 고향을 떠나 외세의 입김이 닿지 않는 내륙으로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도리어 그가 형주에 자리 잡았을 때부터 그의 세력은 더욱 성장했다.

이런저런 경험을 겪은 관수경은 이전의 풋내기 티를 벗고 종교적으로 꽤 능수능란해졌다.

그는 그가 외세에 의해 박해받는 것을, 지금까지의 선지자들이 박해를 받는 고행과 동일시하여 사람들의 동정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정말로 그 스스로도 종교에 심취하여 가르침을 설파하고 다녔다.

그가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제국교도 그 근본이 고려 성공회에서 파생되었던 터라, 기독교 특유의 평등주의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런고로 관수경의 상제교(上帝敎) 또한 기존 유학적 질서를 신봉하는 명의 허점을 잘 파고들 수 있었다.

사실 그의 교리는 어떤 면에선 정설에 닿아있기도 했다.

아편을 사악한 악마의 짓으로 여기고 물리쳐야 한다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또한 그들은 몹시 솔깃한 제도를 차용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공동농장적 천조전무제도(天朝田畝制度)는, 어딘가 바이에른 혁명 공화국의 사상과 상당히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관수경이 형주에 도착하여 교세를 확장한 지 오 년이 되는 시점, 상제교는 이제 형주는 물론이고 장사와 상덕, 무창과 남창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관수경은 단번에 새로 벼린 파사검을 뽑아 들며 천명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이 옛 고려 태조 해민과 같은 존재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새로운 천하를 열 것이다. 그리고 그 천하에선 모두가 태평하게 잘살 수 있으리라!”

바야흐로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세우자는 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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