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89화 (389/653)

살기 좋은 시대, 살기 나쁜 시대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나요?”

바스라.

아주 잠깐 이곳을 그네들의 수도로 삼았던 옛 잘라이르 왕조 시기 궁성 하나를 자신의 처소로 삼은 상민은 잠에 들지 못하고 전전반측하고 있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영웅만큼이나 강건한 신체를 가진 그마저도 딱 하나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걸 꼽으라면 분명히 숙면일 것이다.

삼별초 시절부터 불면증은 간간이 있었는데, 한 몇백 년간 잠잠해지다가 요즘 들어선 조금씩 다시 생기려는 모양이다.

다음 날 피곤에 절여져 행동을 둔하게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 한 곳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의 옆에 누운 아이샤가 걱정스레 물었을 정도였다.

상민의 특성상 그 둘을 일반적인 부부라고 보기엔 다소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아이샤는 최대한 그를 내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상민도 그러한 그녀의 노력을 높이 사, 아주 천천히 그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

나중에 준비가 충분히 된다면, 그녀도 예전 상민의 다른 아내들과 같이 그의 가장 깊숙한 비밀까지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와 그대의 동생은 나를 대단하고 고결한 사람으로 생각하겠지만, 나도 내 스스로의 행동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오.”

잠이 완전히 깬 아이샤가 얇은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리곤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회의 때문에 그러시나요? 제가 듣기로는 아주 잘 끝났다고 들었는데.”

이라크 남쪽, 즉 아랍 연방과 접경지에 있는 알 타이 부족 일파와 기타 수니 토후들을 다독이는 일은 상당한 진척을 보였다.

분명히 그들도 사막의 소문을 통해 밑 동네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들었을 것이다.

이라크 북부와 자지라의 토후들, 그리고 시아를 믿는 자들은 아직 반신반의하며 경계하고 있다지만 현지 협력자들이 생기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었다.

상민은 자신의 대의를 따르는 협력자들에게 아랍 연방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왕국’을 제시했다.

페르시아나 튀르크로부터 독립한 그들만의 왕국을.

베두인들은 뭉치기 힘들어서 느슨한 형태의 에미르 연방국이 들어섰지만 수천 년 전부터 중앙집권이 존재했던 이곳은 연방국보다는 과거의 전통적 왕정―혹은 입헌왕정―이 더 어울렸다.

아라비아에서의 행적으로 고려의 약속이 그저 허언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지만, 상민은 이들에게 또 다른 것들을 약속했다.

특히나,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있는 가장 큰 토착 세력에게도.

― 그대들이 나디르가 아닌 고려와 손을 잡고 옛 사파비의 폭정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한다면, 고려는 그 답례로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을 다시금 세워 이곳에 중흥기를 불러일으키겠다.

지혜의 집(Bayt al―Hikma).

고대에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이 있고, 현대엔 창양의 연서궁(지혜의 궁전)이 있다면 중세에는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이 있었다.

후대의 학자들 중 몇몇은 그 존재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지혜의 집이 이슬람권 전역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아바스 왕조의 황금기와 번영을 상징한 이 건축물은 안타깝게도 훌라구 칸이 이끄는 야만스러운 몽골의 침입으로 철저하게 파괴되고 불타 사라졌지만, 상민은 이곳에 다시금 그 건축물을 세울 계획이었다.

공교롭게도, 또 그놈의 몽골이 관련된 문제였다.

덕분에 모양새는 좀 보기가 괜찮았지만.

― 약탈과 파괴만을 불러일으키는 몽골의 군대와는 다르게, 우리는 그대들에게 번영을 가져올 것이다.

꽤 좋은 선전 문구가 아닌가.

물론 이 중세 유적지의 부활은 많은 돈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 세상에 도래한 기업들의 시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앉아 홀로 천하의 삼분지 일의 금권을 쥐고 있는 자에겐 이것은 그저 단순히 아주 전통 있는 ‘바그다드 국립 도서관’을 되살리는 프로젝트 정도에 불과했다.

허나 그로 얻을 무형의 이득이란 어떠한가.

이슬람권을 존중한다는 고려의 상징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곳의 역사를 보다 전면적으로 공부할 수 있으며, 아직까지 여러 변란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지만 나중에는 어찌 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한 자료를 확보하여 후대에 보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의의가 있었다.

이는 곧 사우드가 몰락하며 사실상 가장 큰 후원자를 잃은 카디자델리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흐름에 완벽히 치명타를 가해 무너뜨릴 비수라는 점이었다.

당장 무슬림들은 그 먼 곳까지 바라보고 있진 못했지만, 상민의 생각은 그러했다.

알 마문이 세운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은 아시아와 인도, 이집트와 이슬람 세계권의 서적은 물론이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심지어 멀리 한나라에서 건너온 서적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거의 모든 세계의 지식을 번역해 보관하고 있었던 셈.

이 지식에 대해 관대하고 자유로운 학풍으로 압바스 왕조는 인류 역사상 가장 관대한 무슬림 문파 중 하나인 무타질라(Muʿtazila)의 학풍이 탄생할 수 있게 했다.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것을 금하라.]

무타질라의 중도적 입장에 대한 원칙은 이슬람 세계의 극단적 분열을 완화하고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꾀했다.

또한 그들은 신학적으로는 신의 신성과 정의를 좇았으나, 인간의 자유 의지도 몹시 중요시하여 헬레니즘 사조처럼 논리적인 합리성을 추구했다.

알라의 영원성과 달리, 이들은 코란과 하디스의 영원성은 부정했다.

상민의 생각으론 이들의 학풍은 이슬람 세계에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유산 중 하나였다.

비록 이들은 압바스의 쇠락기와 함께 사멸했지만 이 땅에서 그 흔적들을 다시금 발굴한다면 신(新)무타질라파의 부흥도 어찌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덩치 큰 도서관 하나 짓는 셈치고는 너무나도 많은 이득이 아닌가?

하지만 상민은 아이샤에게 말했듯, 그저 씁쓸하게 웃고 있기만 했다.

그가 이슬람권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를 보아라.

사도들은 이를 용의 관용이니 하며 칭송하고 있다지만, 이를 본 뒤에 다시금 눈을 돌려 지나의 일을 보라.

상민은 이슬람에게 평화와 통합의 씨앗을 뿌려준 것과 완벽히 대조되는 행동을 해 왔던 것이다.

그래, 그는 그곳에서 분열이라는 곰팡이의 포자를 실어날랐다.

“그대가 말했지, 내가 고려의 황족뿐만이 아니라 아랍 연방과 이슬람 수니 세계의 대부, 아니 셰이크나 마찬가지라고.”

당연한 소릴.

아이샤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께서 우리의 땅과 이 땅에 한 행동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말하겠지요?”

“하지만 지구 반대편을 본다면 분명 그대의 생각은 달라질 거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의 흐름을 바라보기만 할 뿐 비껴가는 터라 대체로는 시간이 많다고 느끼곤 했지만, 정작 몸은 하나였다.

머나먼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해결하는 것은 그도 힘들었다.

두 땅을 두고 선택을 하라면, 상민도 어떤 곳의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고려의 국익은 물론이고 세계의 평화(혹은 비슷한 것이라도)에 더 기여하는 일인지 완전히 확신하지 못했다.

그가 아라비아와 메소포타미아의 땅에 머무는 것은 차기 에너지 패권에 관한 것들과 이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했다.

반면 동아시아로 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영토 및 유구한 역사를 가지며 고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지나의 땅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한 일일 터다.

하지만 그는 결정을 내렸다.

이라크에 머무르겠다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법. 지금 난 이곳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그는 아라비아에 꽤 많은 것들을 투자했고, 지금 어설프게 발을 뺐다간 지금까지 일구어 놓은 많은 것들이 다른 세력들에 의해서 위협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공교로웠다.

‘고려 주도의 국제 질서와 도덕적 외교를 운운하며 이슬람의 과격화를 막으려는 네가 저 한(漢)족들의 땅의 분란은 그냥 방치하다니 이 무슨 모순이냐.’

분명히 지금 명의 일은 그들 스스로의 모순에서 기인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상민의 행동도 그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지금 행동에는 아마 전통적 중화 질서의 분열과 해체가 한몫을 차지하고 있었을 테니까.

물론 지금 이 순간도 상민은 명에 대한 자신의 외교관이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았다.

통일 중원은 통일 아랍 연방과는 완전히 다르다.

석유가 나온다고 해서 21세기의 사우디아라비아를 강대국이라 평할 수 있었는가.

물론 아랍 연방은 분명히 사우디보다 훨씬 더 나은 결말을 얻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막기후를 다스릴 수 있지 않은 이상에야 단번에 열강이 될 순 없었다.

반면, 중국은 달랐다.

이유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니 상민이 지금까지 추진해오던 중화다분지계의 작전은 아랍 통일과는 다르게 지나가 언어적, 민족적으로 완전히 이질적인 다민족, 다국의 땅으로 만들려는 최종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잊혀진 동양 문화의 재발견이니 하는 명목으로 학자들의 연구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던 것이다.

그 이후 양응룡이 백족과 묘족, 장족 등을 책동해 한족에 반기를 들며 생겨난 대리국, 한족이긴 하지만 회족과 할하 등의 소수 민족 문화가 자리 잡은 이자성의 순나라, 그리고 대만의 주가 처음 명의 질서에서 떨어져 나올 때만 해도 이 작전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후엔 별 성과가 없었다.

상민조차도 앞으로의 가능성을 이전만큼 확신하진 못했다.

‘차라리 청의 지배가 있었다면 한족 중심주의의 중국이 이렇게 견고하다고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부터 시작하여 수, 당, 송, 그리고 명으로 이어지는 한족 왕조는 이미 이전부터 상당히 견고해져 있던 한족 중심주의를 계속 유지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수와 당은 선비족이었고 송과 명 사이에는 원이 껴있었던 것은 사실.

하지만 정작 한화된 선비족 황조는 그들 스스로를 한족 황조라 인식했었다.

또한 원의 지배는 그 고려의 시조와 그들 무리마저도 나라를 버리고 머나먼 여정을 떠날 정도로 어쩔 수 없는 일로 간주되었으니 자긍심에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지금의 몽골은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예전의 성세를 되찾지는 못할 것이 분명했고.

한족의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청은 지금 그 건국자들이 죄다 옥저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장족 정도.

그러나 그들은 이미 한화된 지 오래였고 도리어 서양(중원의 기준에서)과 동이의 침탈에 진절머리가 나 척화를 지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접근방식을 바꾸어야 했다.

‘차라리 명을 오래 존속시키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다.’

이미 조선과 옥저는 명을 견제하고도 충분한 정도의 국가가 되었고, 백제와 강화의 유구한 분쟁도 덕천씨가 들어선 이후에는 끝을 맺었다.

이미 지금 동아시아의 정세는 예전처럼 통일 중원 황조 하나만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과는 거리가 먼 입장.

상민은 분열할 수 없다면 차라리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 차선이라 판단했다.

명은 이미 썩었고 부패했으나 그 말인즉슨 돈으로 여러 가지 정책에 간섭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조용히 천천하게, 숨을 붙여 놓은 상태에서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명을 지방정권들의 느슨한 연합체 같은 국가로 만들어버린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사방이 할거하여 지방정권이 그들만의 이득을 논할 수 있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지나인들의 번영 또한 보장될 것이다.

‘미래의 지식은 이용하되, 미래의 증오까지 나 자신을 잠식하게 두진 말자.’

사막과 광야에서 자신이 이 땅에 오게 된 숙명에 관해 묻고 답한 것들을 기억하며 상민은 눈을 감았다.

― 부스럭

아이샤가 문득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상민의 고민은 잠시나마 끝난 듯했지만, 그의 배우자의 생각은 아닌 듯했다.

아이샤의 목소리가 어딘가 조금 애절했다.

“왜 저와… 함께해 주시지 않는 거죠?”

상민은 당혹감을 느끼며 태평양만큼 널찍한 자신의 가슴을 완전히 두르지도 못한 그녀의 팔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여기 같이 있지 않소?”

아이샤도 그녀가 투정을 부린다는 것을 생각했는지,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상민은 아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기에 가볍게 웃었다.

고려의 제도도, 미래의 가치관도 그를 옭아매진 못했다.

다만 다른 것을 생각해야 했다.

상민은 그래도 샴마르 부족에서 금지옥엽으로 곱게 자란 그녀의 손등을 매만지고는 답했다.

“내일 점심쯤에 같이 운동이나 합시다. 정구라고, 그대도 해보면 좋아할지 몰라요.”

곰과 어깨동무를 하고, 재난 현장에서 그의 몸집보다 큰 돌을 들어 올리고, 심지어 아랍제일인이라는 적장의 팔을 쥐어뜯는 자와 함께하기엔 지금의 아이샤는 너무나 어리고 연약해 보이지 않는가.

* * *

옥저.

솔빈부.

바다와 접한 옥저의 수도 솔빈은 놀랍게도 동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번영한 항구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경쟁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개성엔 고려가 세운 개성항이, 조선에는 인천항과 부산항(옛 동래항)이, 백제와 강화에는 솔빈과 비슷하게 수도에 있는 능도항과 도쿄항이 있었다.

국가체급으로 비교하자면, 분명히 인구수가 적은 옥저의 솔빈은 이들과 경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은 일만 관의 은혜와 더불어 시작된 유구한 옥저―고려 무역의 전통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던 한적한 이 땅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도시를 세우기에 충분했다.

끊임없이 오가는 배는 솔빈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소빙기가 도래한 지금, 이곳의 겨울 날씨는 상당히 혹독하여 가끔 항구의 일부가 살짝 얼어붙기도 하지만, 옥저는 상국과 합작하여 쇄빙선을 도입해서라도 항구 앞바다에 낀 살얼음을 최대한 부수고 다니며 솔빈항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이곳은 옥저 철도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솔빈에서 시작하여 옥저의 주요한 곳에 뻗어있는 열차들은 석탄 연기를 뿜어내며 사방을 질주했다.

인구에 비해 원체 넓은 땅덩어리라 철도가 없으면 옥저는 국가 운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정도였다.

내치에 들어간 러시아도 그들의 땅과 시베리아에 철도를 놓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지만, 그보다 확실히 옥저의 철도화가 더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엔 심지어 경흥과 경성, 길주와 북청, 화령과 원산을 거쳐 조선의 한성으로 가는 철도노선도 부설되어 있었을 정도였다.

아주 가끔 옥저와 조선의 관계가 경색될 때에는 철도가 운용되지 않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고려가 철부지 두 아이를 불러다 놓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러지 말라 하면 언제든 다시 풀리곤 했다.

아아, 황상의 은혜여.

옥저의 상국 예찬은 조선의 그것보다도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

누가 감히 그 지엄한 말을 거역하겠는가?

저기 저 커다란 신식 건물, 솔빈증권거래소 건물이 그것을 증명한다.

미약한 모피 무역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창대해진 동아시아 최대의 솔빈증권거래소는 세계 최대의 증권거래소인 청해거래소나 그다음 위치의 정앙거래소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들 스스로는 저기 멀리 있는 암스테르담이나 튀니스 증권거래소와 비교할 만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옥저의 영락(榮樂), 현재의 살기 좋은 시대에는 황은이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말]

지혜의 집에 대해서는 드미트리 구타스의 견해와 다른 일반적인 학계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무타질라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관용적인 학파로 꼽힐 수 있는 정도의 학파입니다.

압바스와 아글라브의 치세에 코란과 하디스의 권위를 부정하고 그리스 철학을 옹호하며 심심치 않게 이신론(deism)과 불가지론(agnosticism)적으로 느껴질 만한 말들도 토론하고 다녔던 것은 당시의 시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지금은 살라피즘이나 와하비즘에게 완전히 사도로 낙인찍혔지만, 아마 이들이 지금까지 있었다면 이슬람의 중흥도 거짓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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