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2)
후푸프의 대패가 일어나기 전.
상민은 두바이를 비우기로 결심했다.
새벽호를 호출했으니, 상민은 빠르게 아이샤만을 대동한 채 창양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고려에 다녀와야 하겠소. 이곳을 믿고 맡겨도 되겠지요?”
수많은 세월 동안 수없이 건조되고 폐기되었다가 다시금 만들어지기를 반복한 상민의 기함 새벽호는 당대 최신 함선건조기술을 반영한 함선이다.
선박의 일대 혁신을 일으킬 증기분사기관이 처음으로 적용된 함선이기도 했다.
그래도 두바이와 창양은 상당히 먼 거리가 틀림없었다.
이스파한에서 몸을 일으켜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려오는 페르시아의 군대를 생각해본다면 다소 위험하거나 안일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민도 이유가 있었다.
“안심하십시오. 영공 전하. 페르시아 놈들은 두바이에 절대 도달하지 못할 겁니다.”
해군과 해병대 사령관은 상민의 정체를 해원이 보낸 방계 황족 및 고려―아라비아 석유 회사의 간부 정도로 알 터. 상민은 더 이상의 자세한 당부나 기타 간섭은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군사적인 부분에서는 많은 교육을 받은 고위 장교들이었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할 것이다.
물론 병력은 상당히 차이가 났다.
이곳에 주둔한 고려군 방어 병력, 해군과 해병대의 숫자는 다 합쳐도 삼천이 안 되었다.
그조차도 해군들은 함선에 올라야 할 테니, 육상에서 싸울 수 있는 병력은 일개 연대급에 불과했다.
고려가 이곳을 조차지로 만든 이후에 부랴부랴 군대를 파견하기 시작했으니 병력의 규모가 아직은 당연히 작을 터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기도 했다.
이것이 상민이 고려에 가야만 하는 이유였기도 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지의 베두인 부족, 바니 야스(Bani Yas)라는 부족이 고려를 돕는다는 점이었다.
고려가 오기 전까지 이들은 샴마르에도, 사우드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부족이었다.
해안의 이곳저곳에 흩어져서 살고 있어 정확한 수는 집계되기 힘들었지만 가장 큰 씨족의 가호 수도 수백을 넘지 못했으며 이 척박한 땅을 고려해보면 앞으로도 그 이상으로 번성할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포함한 조약해안을 개발하고자 하는 고려의 수혜를 톡톡히 보았다.
도시의 기반이 될 현지 노동력이 필요했던 고려는 부족을 이끄는 알 나얀 씨족을 필두로 바니 야스 부족을 회유하여 도시로 끌어들였으니 그 이후부터 바니 야스 부족은 고려가 조약해안에 있을 때 한배를 탄 입장이나 다름없었다.
이들도 아랍 에미르 연방국에 속하나 그 먼 곳에 있는 대에미르며 샤리프의 눈치보다는 고려의 눈치를 더 많이 보았기에 지금 고려의 만류에 후푸프로 진군하는 연방군과 합류하지 않고 아부다비에서 고려와 함께 싸우려 하고 있었다.
가호도 적으니 병력의 숫자는 적었지만, 그래도 같이 옆에서 총을 들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만에도 서신을 보냈으니, 증원군이 올 게요. 장군들께선 최대한 버티시구려. 본국에서 좋은 소식을 들고 오겠소.”
“버티다마다요. 꼭 승리해 보이겠습니다.”
‘후우,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민은 배에 올라 다소 불안한 눈길로 두바이를 바라보며 귀국했다.
* * *
그로부터 두 달 뒤, 진격해 내려온 페르시아는 후푸프의 대승을 거두었다.
엄청난 대승이었다.
베두인족은 사막의 전술에 뛰어난 민족이 분명했다.
하지만 페르시아도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민족들이었으니, 지형의 유리함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나머지 이점들, 즉 병력의 수나 지휘관의 현격한 차이는 결국 페르시아군의 대승으로 귀결되었고 나디르 샤는 휘하의 병사들이 한군데 모아놓은 아랍 잡것들의 무구를 뜯어보고 있는 참이었다.
“…….”
휘하의 병사들과 장수들이 하나같이 웃음기를 띤 채 샤에게 경배하고 승리를 축하하고 있는 와중에도 샤는 가만히 총기를 들여다보았다.
‘총기 한 정, 한 정의 품질이 이토록 뛰어나단 말인가.’
마치 러시아가 한 철 지난 무기들을 나디르에게 선심 부리듯 팔아넘기는 것처럼 고려군 또한 아라비아인들에게 자신들이 쓰는 최신형의 총기를 건네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는 이 무구들의 품질에 상당히 감명을 받았다.
“속전속결이 필요하다.”
고려의 무구로 무언가를 깨달은 나디르는 병사들을 최소한으로 휴식시킨 이후, 곧바로 카타르반도를 지나 ‘아부다비’라 불리는 지역으로 진입했다.
고려가 둥지를 튼 두바이와 달리 이곳은 아직 거의 개발이 되지 않은 한적한 동네였지만, 페르시아의 진군로상 서쪽에서부터 두바이로 향하는 거의 유일한 길목임을 고려해본다면 고려군은 이곳에서 방어작전을 펼칠 가능성이 농후했다.
또한 페르시아에 협력하는 시아파 베두인 부족들은 고려의 점령지에서 두바이를 제외하고는 식수를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안거점이 바로 이곳이라고 했었다.
고려가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두바이가 철통같은 요새로 바뀌었겠는가.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는 도시에 부가적인 피해를 입히느니 고려는 차라리 나가서 싸우는 것을 택할 것이 분명했다.
나디르가 보낸 척후들도 그의 생각과 일치하는 말을 했다.
“해안가에 고려군과 토착 베두인 놈들이 미리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들의 배들은 보이느냐?”
“일곱 척이 보입니다.”
“그 크기는?”
페르시아는 위대한 국가의 명성과는 반대로 배와 썩 친숙하지 않은 나라였다.
고대 그리스와의 전투에서부터 증명된 이 사실은 지금에도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도리어 훨씬 악화되었으면 되었을 것이다.
페르시아가 시리아 지역을 정벌하고 그곳을 손에 넣는다 하더라도, 지중해에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과거의 적, 유럽이 이미 증기선을 뽑아대고 있었으니 하물며 고려는 말해서 무엇할까.
아직도 목제 함선을 건조하고 있는 국가의 특성상 샤는 척후로 보낸 장수의 횡설수설한 보고를 분석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두 척은 몹시 큽니다! 다른 다섯 척은 그보다 확연히 작았습니다!”
실로 불확실한 보고에 샤가 척후를 다그쳤다.
“몹시 크다? 말을 자세히 하라! 엄청나게 크더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네놈이 오줌을 지릴 만큼?”
“그… 그 정도는 아닌….”
부하 장수의 멱살을 푼 나디르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있는 흑인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나? 간니발 대위.”
진중까지 따라온 이 러시아인은 분명히 러시아인이면서도 상당히 이국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페르시아에서는 흑인이 딱히 보기 힘든 것은 아니었다.
예로부터 이슬람권은 유럽이 본격적으로 서아프리카에 손을 담그기도 전에 진작부터 동아프리카 해안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오가는 노예선들이 많았고 따라서 아프리카 노예무역도 활발했다.
이후 이슬람의 영향으로 동아프리카 일부는 무슬림화되었고, 무슬림은 율법상 같은 무슬림을 노예로 팔지 못했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동아프리카에서 마침내 무타파와 메리나, 그리고 부간다와 같은 왕국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 외세의 횡포에 저항하기 전까지 이슬람도 기독교권만큼은 아니더라도 노예무역에 꽤나 열성적이었다.
그렇기에 나디르조차도 흑인은 대체로 노예다, 하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샤의 시선을 받은 흑인은 당당히 앞으로 한 발짝 나와 척후 장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묘사로 미루어보건대 아마 고려의 전함은 두 척이라 보여집니다. 다른 다섯 척은 저들의 순양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총명한 흑인 젊은이는 콘스탄티니예의 전투를 자신의 눈으로 지켜본 자였다.
직접 저들의 전함을 보았다니 그 말에 신뢰성이 있었다.
“표준단위계상 저들의 전함에 탑재된 해399―250 함포의 사정거리는 대략적으로 20km라 볼 수 있겠지요. 순양함의 포는 그보다 덜합니다.”
블라디미르의 찬란한 업적 중 하나는, 고려와 프랑스가 주도로 만들었던 국제 표준단위계를 받아들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전까지 유럽 및 고려와 교류가 거의 없었던 페르시아는 그 단위에 익숙하지가 않아 골치를 썩였다.
간니발의 말에 그 거리를 환산하여 가늠해보던 나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함포라는 것이 정말로 엄청나군.”
일반적인 야포와는 차원이 다른 구경의 거포는 엄청난 장약량으로 실로 멀리 떨어진 곳에 지옥을 선사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디르는 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도리어 너희들이 두바이에 웅크려 있었다면 골치가 아팠겠지. 허나 도시를 아낀다고 아부다비로 나와 있는 것은 분명한 너희들의 패착이다.’
생각을 정리한 샤는 간니발에게도 그의 계획을 말했다.
“그대는 그대들이 준비한 것들을 지금 써야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샤.”
러시아는 지금을 고대해왔다.
지금의 전쟁은 대외적으로는 아랍 연방과 페르시아의 전쟁이 분명했지만, 사실상으론 고려와 러시아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런 전쟁을 치르는데, 러시아의 희생은 거의 없다?
이 얼마나 괜찮은 교환인가.
러시아는 단지 이 전쟁광에게 무기를 지급해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
게다가 개발한 무기의 효능이 얼마나 뛰어날지 실험해보는 기회도 되는 셈이니 그마저도 만족스러웠다.
‘주군의 은혜에 보답할 때가 왔다.’
아브람 페트로비치 간니발은 입술을 꽉 깨물고 결의를 다졌다.
본래 그는 차드 지역 토호의 후손이었으나, 당시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베네치아에 의해 노예로 팔려 갔다.
당시 베네치아는 세계에서 가장 악질적이며 대단한 성황을 누리는 키레나이카 노예무역에 한발을 걸치고 있었다.
크림 칸국이 망하며 쇠락한 흑해 노예무역 대신 떠오른 키레나이카 노예무역은 지중해의 거의 모든 노예들이 이곳을 거쳐간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규모가 거대했다.
심지어 베네치아의 적국 오스만조차도 이곳에서 노예를 사 가곤 했으니 그 유명세는 말해서 무엇하랴.
하지만 고향에서 강제로 떠나 키레나이카로, 키레나이카에서 콘스탄티니예와 에디르네로 비참한 삶을 이어가던 간니발은 마침내 그의 구원자를 마주했다.
블라디미르는 물론이고 러시아의 재상 표트르는 정치적으로 혈통주의보다는 실력주의를 더 우선시했다.
피부의 색깔이 아닌 일신의 능력을 먼저 보는 그들은 간니발 같은 이들도 중요한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이 또한 범슬라브주의를 보강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긴 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던 슬라브인들도 위대했던 라틴인, 프랑크인, 게르만인들과 위대한 예맥인들 못지않게 위대한 문명을 일굴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계몽되지 않은 아랍인, 그것도 흑인은 상당히 쓸모가 있었다.
표트르는 에디르네를 함락한 후 술탄이 버리고 간 그의 시종들 중에서 유달리 영특해 보이는 간니발을 직접 거두었고 그 후에는 자신의 밑에서 군무와 병기에 관한 일들을 맡아보게 시켰다.
매사에 필사적이었던 이 어린 흑인 노예 출신 러시아인은 금세 그의 영특함을 뽐내었으니 어느덧 이십 대 초반에 대러시아제국의 대위까지 진급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표트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그의 충정을 높게 사 계급보다도 더욱 막중한 임무들을 여러 차례 맡겼으니, 그가 나이가 조금 더 든다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그리고 이번의 일은 아마 그의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 * *
새벽.
밤에서 낮으로 바뀌는 어슴푸레한 시간대.
나디르 샤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아부다비에 공격을 감행했다.
포병대와 기마, 그리고 보병의 진격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그의 역량은 실로 놀라워, 간니발의 주군이었던 표트르와 차르 블라디미르마저도 가끔은 경계할 정도였다.
사정거리가 우월한 고려군의 대포가 먼저 불을 뿜는 소리가 멀리 떨어진 지휘부까지 들렸지만, 나디르는 그 정도의 희생엔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것들을 먼저 전진시켜라!”
나디르의 대포가 먼저 요란하게 앞으로 나섰다.
끄는 말도, 사람도 필사적이었지만, 결국은 예정된 운명이 그들에게 떨어져 내렸다.
저 멀리 이미 이곳을 망원경으로 관측하고 있었던 고려군의 포병대는 나디르의 포병대가 전진하기가 무섭게 대포병사격을 준비했다.
― 콰앙
발포된 고려군의 포탄은 그 대응의 기민함만큼 무시무시한 정확성으로 나디르의 포병대를 박살 내었고, 나디르의 오만함을 징계하듯 사방에 나무와 피가 튀겼다.
페르시아의 무장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랍 연방에게 거둔 대승으로 한동안 페르시아 군대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지만, 이들은 적병들의 숫자만 많은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던 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방금의 대포 사격은 서로의 군사적인 간극을 가장 제대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참담한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본래라면 크게 경을 칠 노릇이지만, 웃음소리의 주인이 그들의 샤였다면 아무래도 괜찮았다.
“으하하! 대단하구나, 대단해! 저자들을 보아라! 실로 예술과 같은 포술이로다!”
자신의 부하들이 피곤죽이 되어 터져나가는 와중에도, 나디르는 순수히 고려의 강함에 기뻐했다.
하지만 쾌락과도 같은 즐거움을 즐기고 난 나디르는 금세 표정을 바꾸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망원경으로 고려의 주둔지를 살펴보던 그는 길게 뻗은 야포의 개수를 대충 헤아렸다.
고려인들은 야포를 가린다고 해놨지만, 방금 그 혼란 속에서도 착탄된 고려의 포탄들을 떠올려보던 나디르는 고려의 대포 문수가 그렇게까지는 많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넓게 산개하여 다시금 진군하라!”
그의 말에 이번에도 똑같이 대포들이 앞으로 나섰다.
고려의 반격이 매섭게 따라 나왔다.
하지만 작렬포탄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나 산개였고, 이번에 입은 페르시아 포병대의 피해는 분명히 그 전보다는 적었다.
물론 포병대가 제구실을 못 하게 된다는 것은 변함없지만.
애초에 진짜 포병대도 아니지 않는가?
바퀴가 달린 포수레 위, 회색빛으로 칠해진 원형 나무토막을 올려두고 포로로 잡아둔 반란군 놈들에게 들려 보낸 가짜 포병대는 고려의 대포병사격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으로 충분히 제 몫을 다했다.
아마 고려 놈들도 이를 눈치챘을 것이다.
허나 어찌할 것이냐.
‘물론 네놈들은 화약이 풍부하겠지.’
그러나 이러한 기만전술에 전부 다 대응한다면, 포병들도, 포신 자체도 피로함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대응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가짜에 섞여 오는 진짜 포병대는 제아무리 구식이라도 작렬탄을 고려의 진지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일단 그렇게만 된다면, 고려인이나 페르시아인이나 육신은 포탄 앞에서 나약하다는 사실을 고깃덩어리가 된 시신으로 증명하는 결과만 도출될 뿐이었다.
이를 갈고 있는 고려군 지휘관의 표정을 생각해본 나디르가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대포병사격 말고 포병대를 상대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총기병대를 운용해 급습하는 것이겠지만, 저들은 지금 그런 기병이 없었다.
이후, 몇 번이고 기만전술을 통해 고려의 신경을 돋운 나디르는 저녁노을이 저무는 무렵에 비로소 정말로 그의 군대를 진군시켰다.
고려는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성실하게 포격을 가해왔지만, 가짜 화포와 진짜 화포를 섞은 기만전술과 포병 간의 대열을 최대한 듬성듬성 포진시켜 적 포탄의 피해를 최소화한 나디르는 마침내 본대의 일부가 목표했던 거대한 해안사구의 뒤편으로 이동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전형적인 사막의 해안지형은 다른 해안지형과 마찬가지로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해풍이 불었고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육풍이 불었다.
하지만 차이점이라 한다면 낮 동안 내륙이 조금 더 빨리 달아올랐고 덕분에 해풍이 육풍보다 월등히 강했다.
이런 이유로 아부다비에는 사빈의 모래가 내륙지로 이동하여 형성된 파랑과도 같은 모래사구가 있었고, 이들은 고려의 화력을 다소나마 막아줄 수 있는 엄폐물로 작용하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술상으로 나디르가 제대로 당할 차례였다.
고려는 페르시아의 진군을 직사포와 적은 기울기의 곡사포로는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내 박격포를 동원해 사구 너머의 적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기병 견인형 박격포는 전통적인 대구경의 공성용 박격포와는 달리, 보병대에게 효과적인 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 파편이 든 포탄을 발사하는 소구경의 박격포였다.
작은 크기 덕에 이동성이 간편하여 고려의 육군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박격포병들에겐 좀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이러다 정말 나중엔 사람이 들고 다니는 박격포가 나올지도 몰랐다.
견인형 박격포의 효과는 대단했다.
해안사구 너머에서 숨을 돌리고 있던 페르시아인들은 제대로 착탄되는 공격에 계속 두들겨 맞았다.
이미 도착한 보병대들은 엎드리게 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사구까지는 가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포탄의 파편에 피범벅이 되어 구슬픈 신음을 흘려대었다.
그리고 역시나, 결국은 불벼락이 떨어졌다.
― 콰아앙
박격포의 폭음도 요란했지만, 함포사격은 정말이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땅이 울리고 모두가 귀를 감싸 쥐었다.
움푹 파인 모래 주변엔 시신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으며 폭발의 여파를 피해간 자들도 벌벌 떨며 온몸이 굳어버린 채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나디르 샤에게도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간니발의 설명으로 이미 들었긴 했지만, 실제로 겪는 함포사격은 그의 호승심마저도 일시지간 무력화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결의를 다졌다.
어차피 저것들을 처리하기 위해선 그의 활약이 필요했다.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선 완전히 맹수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으니.
하지만 사냥꾼은 나디르 자신이 아니었다.
그는 진군하기 전부터 자신의 옆에서 자리를 비운 간니발을 떠올렸다.
‘재밌는 제의였다, 러시아인. 모욕적이나 대범하며 효과적이었지.’
사실, 평상시 같으면 아무리 승리에 목말라 있는 나디르조차도 자신을 미끼로 삼아 다른 이의 영광을 높이는 일은 사양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는 분명히 그 공에 대해 지분을 주장할 수 없었다.
‘네놈들은 결국 저 바다 괴물을 사냥하려 하면서도, 그 존재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우리에게 전가하려는 것이 아니더냐?’
어찌 생각해보면 비참한 처지건만, 그는 잇몸을 드러내며 다시금 웃어대었다.
허나 그렇기에 그는 러시아가 취하지 못하는 영광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고려가 자랑하는 전함, 상승이 불길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