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전쟁, 페르시아와 아라비아(6)
* * *
베두인들에게는 암묵적 관습이 있다.
상민도 외지인이니 이들의 관습을 전부 해석하지는 못했지만 아킬에게서 배운 것들이 조금 있었다.
손님이 방문하면 베두인들이 존중과 환대, 보호를 의미하는 세 잔의 술 혹은 커피를 내주었다.
이슬람에서 술은 금기라지만, 극성 카디자델리 율법학자들이나 그렇지 대부분의 베두인 사회에서는 알아서 잘 술을 마시곤 했었지.
음료를 잔의 반만 채워 주면 더 있다 가라는 의미였고, 가득 채워 주면 그것을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의미였다.
또한, 베두인들은 한번 손님으로 받아들인 자는 3일간 절대 해하지 않는다 한다.
꽤나 엄격하며 전통 있는 관습이라니 믿을 수밖에.
상민이 사우드 가문의 영토를 떠나도 3일간은 그를 추격하지 않을 것이었다.
평판이라는 것은 중요하게 작용하여, 제아무리 사우드 가문 같은 과격한 자들이라 해도 이를 어길 순 없었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이 닿기 힘든 사막 한가운데서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법이겠지만.
사우드를 섬기고 카디자델리를 믿겠느냐, 아니면 죽음을 받아들이겠느냐 세 번 전령을 보내 물어보는 의식도 그런 평판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그런 것일 터.
생각해보니 숫자 삼에 대한 것들이 많구나.
동양의 세 번 거절하는 문화, 삼고초려와도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사람 사는 문화라는 게 어찌 좀 비슷하다.
과연 상민이 떠날 때까지 그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심지어 가지고 온 짐과 재물도 빼앗기지 않았다.
반면, 외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호기심에서 분명한 적대감으로 바뀌었다.
애초부터 그를 노려보던 이슬람 학자들부터, 카디자드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부족민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마지막으로 마신 커피를 끝으로 상민은 무하마드의 말대로 물 한 방울 얻지 못했다.
비어버린 가죽 수통을 채울 기회도 없었다.
‘자연이 대신 나를 죽일 수 있다, 그리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자신을 지금 당장 살려둔 것도 어차피 그가 물 없이 북쪽으로 향하다 보면 금방 죽으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상민은 자신의 낙타를 풀었다.
이곳에 장난질을 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손님의 낙타를 돌보던 한 베두인족 소년이 그에게 다가와 쭈뼛거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얘야, 내 곁에 있으면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란다.”
상민의 아랍어가 유창한 것을 알자, 소년이 안도한 듯 빠르게 입을 열었다.
“조심하세요!”
뜬금없는 경고였다.
“나… 낙타에겐 물과 풀을 잘 먹여 놨어요. 하지만 가문의 어른들이 손님을 해칠 거예요.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 소년도 사우드 가문의 아이일 텐데.
“대체 왜 나에게 그런 것을 알려주는 거니?”
소년은 두려움 반, 분기탱천한 얼굴 반으로 힐끔 상민이 걸어서 나온 디리야 요새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질문엔 자세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상민은 다른 것을 질문해보았다.
“네 이름은 뭐니?”
“파르한이에요. 파르한 빈 투나얀 알 무크린.”
소년은 그 말을 대답한 뒤 서둘러 도망갔다.
‘스스로 사우드의 이름을 쓰길 거부하는군.’
소년이 사라진 광경을 바라본 상민이 낙타의 등 위에 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요새의 성곽 위에 나타난 무하마드가 펄럭이는 녹색의 깃발 옆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한 작별의 제스처도 하지 않은 채, 상민은 낙타 머리를 돌렸다.
* * *
광야(曠野).
이육사의 시에 나오는 그 단어가 맞다.
상민이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시 중 하나지만 시적인 의미 말고 고려에서 쓰는 학문적, 지리적인 의미를 따져보면 광야는 건조 기후의 널따란 평야를 의미했다.
사막과 광야의 다른 점이라면, 사막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식물이 자생하기 불가능한 지역이겠지만, 광야는 몹시 건조하나 가끔 비가 내리면 곧바로 식생이 싹틀 수 있는 지역이었다.
상민이 지금까지 보았던 아드 다나의 웅장한 모래사막이며 극한의 기후와 달리, 네지드 고원의 중부는 분명히 광야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식생이 드문드문 보였다.
관목과 선인장, 푸른 빛을 뽐내는 풀들.
작은 나무들까지.
베두인들은 유목민이다.
유목민이니 가축을 길러야 하는데, 가축이 완전한 사막에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니 네지드 고원은 베두인 목동의 가축들에게 먹을 풀들을 제공해주는 귀중한 지역이겠지.
허나 이곳에서도 물 자체는 귀했다.
작은 오아시스는 존재하겠지만, 현지인들이 아닌 이상에야 그곳을 직접 찾아갈 순 없었다.
원래의 계획은 후푸프쯤에서 베두인 길잡이를 고용하거나 할 생각이었지만, 중간에 일정이 한 번 꼬인 덕분에 이 또한 불가능하게 되었다.
비상으로 마실 물도 없구나.
그래도 뭐 상관없었다.
선인장이라도 우걱우걱 씹으면 되겠지 뭐.
그리고 솔직히 목이 그렇게까진 마르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살아오며 상민은 자신의 몸을 다루는 법을 누구보다도 깊이 깨달았다.
수의근에 대한 완벽한 이해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너머의 영역까지.
물론 디리야 요새에서 보인 추태처럼 아직까지 호르몬에 대해서는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경험이란 아마 잊을 수 없는 종류의 일일 터다.
커피의 이뇨 작용이건 나발이건, 그는 배출하는 수분량을 의도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낙타가 상민보다 먼저 고꾸라지지 않으면, 무하마드가 기대한 것과는 달리 이번 여정은 상민에게 썩 괜찮은 경험이 될 것이었다.
상민은 천천히 고독을 즐겼다.
하지만 정확히 디리야에서 출발한 지 삼 일째 되는 날, 낙타에 기대 잠을 청하고 있던 상민은 지평선에서부터 다가오는 적의를 느꼈다.
눈은 곧바로 떠졌다.
하지만 저들은 대놓고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기에 빠른 상황판단이 필요했다.
적들이 다가오는 방향을 파악한 상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쌍하지만 주변에는 암석도, 큰 나무도 뭐도 없었기에 오직 총탄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은 낙타가 전부였다.
적은 열넷.
모두가 총을 들고 있다.
후푸프 오아시스에서 보았듯, 저들은 말 위에서 총을 꺼내 사격하고 곡도―킬리지나 샴쉬르―를 꺼내 돌진해 베어버리는 것을 주 전략으로 삼았다.
총과 검을 가진 경기병이라 봐야 하겠지.
― 타타탕
일제사격에 상민과 낙타 주변의 흙이 튀었다.
낙타가 괴성을 지르며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말 위에서 쏴 명중률이 썩 좋지 않을 수석식 소총이라도 열네 발씩이나 날아오니 그중 몇 발은 적중한 듯싶었다.
그리고 그 적중한 총알들은 낙타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는지 불쌍한 그의 낙타는 곧바로 절명해버렸다.
그의 탈것에 대한 애도조차 하지 못한 채 상민은 낙타의 주머니에 매달린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냈다.
일제사격이 끝난 이후, 총기를 쓸 수 있는 자는 지금 이곳에 있는 열다섯 명의 사람 중 오직 상민이 유일했다.
말 위에서의 재장전은, 가장 강력한 총기병대를 가지고 있는 고려조차도 힘들어하는 것이니.
상민이 꺼낸 권총은 일견 수수해 보이는 검은색 일색이었다.
하지만 손잡이에는 화려한 금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고 그 만듦새가 실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좋아 보였다.
홍강소총을 발명하여 군 계약을 따내었고, 이내 정윤 화기 회사와 함께 고려 최고의 총기 제조 명가로 발돋움한 홍강기공에 특별히 주문 제작을 넣은 작품 중 하나였다.
화기의 내구성은 중석(텅스텐) 합금을 이용해서 신뢰도를 끌어올렸다.
덕분에 권총에 들어가는 꽤나 큰 구경의 탄환, 즉 여섯 발의 10미리 고속탄을 쏘아대도 무리가 없었다.
백미는, 상민 개인의 주문에 따라 총열을 교환할 수도 있게끔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휴대성이 좋지만 명중률과 유효 사거리가 짧은 권총 특유의 단점은, 상민이 가지고 다니는 연장총열로 해소될 수 있었다.
소년의 경고도 있었고 특유의 감으로 이미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상민은 기존의 총열 대신 연장총열로 미리 교체해 놓았다.
상민은 곧바로 장전된 총을 들어 낙타의 시체 뒤에 앉아 사격을 실시했다.
베두인들은 아직 이런 무기를 모를 터, 최대한의 전술적 이득을 보는 것이 나았다.
― 타앙
초탄은 빗나갔다.
그나마 다행인지 그의 예리한 눈에 적의 거의 바로 앞에 탄이 떨어져 땅을 헤집는 것이 보였다.
곧바로 낙차와 적의 이동속도를 고려해낸 상민이 다시금 총을 쏘았다.
두 번째 총성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우드 척살조 하나가 말 위에서 낙마했다.
이제 열셋.
그는 서둘러 공이를 뒤로 젖혀 다음 사격을 준비했다.
이후 그에게 허락된 네 발을 다 쏘자, 주인이 없는 말은 세 필이 더 생겼다.
상민은 탄피를 빼내고 다혈권총용 전술삽탄기(스피드로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약실 안에 끼워 넣는 행동만으로 순식간에 여섯 발을 더 장전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며 침착한 행동.
한 명의 사람이 한 발을 장전하는 것도 어려운데 이미 여섯 발을 장전해 놓은 이 사수의 행동에 베두인들은 아마 욕이라도 내뱉고 싶은 기분이 들 것이다.
허나 그것이 세계 제일이라는 고려의 기술력.
그래도 사격하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 터라, 사우드 기병들은 미친 듯이 말을 몰아 상민에게 최대한 근접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짧은 거리에서의 전투는 오히려 상민에게 바라 마지않은 종류의 전투 중 하나였다.
― 탕
가장 가까이 있는 적의 머리를 겨누고 쏜 상민은, 이윽고 좌로 굴러 그의 머리를 노리고 내려치는 샴쉬르를 피해냈다.
곧바로 일어나 다음 검격을 피했다.
동시에, 먼저 떨어진 척살대의 샴쉬르의 손잡이를 왼손으로 집어 들어 세 번째로 다가오는 기마의 다리를 잘라냈다.
다리를 잃은 말은 요란하게 거꾸러졌고, 제아무리 유목민이라도 제때 하마하지 못하면 큰일이 날 수 있다는 듯, 낙마한 세 번째 기병의 목이 처참하게 꺾였다.
상민의 행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샴쉬르를 휘둘렀던 반동으로 몸을 틀어 네 번째 기병의 검격을 피함과 동시에 오른손의 총으로 다시금 다섯 번째 기병의 상체를 곧바로 사격했다.
제대로 조준할 시간도 없는데 왼쪽 폐를 정확히 관통당한 다섯 번째 베두인이 피거품을 뱉어냈다.
그는 낙마하면서 상민을 끝까지 덮쳤지만, 상민은 이미 자리를 박차 그 옆으로 피해 있는 상태였다.
실로 짐승 같은 전투 실력.
사우드 가문의 아래에서 수많은 궂은일과 잔혹한 일들을 해 왔던 척살대조차, 눈 깜빡할 사이에 사격으로 네 명의 전사를 죽이고 근접전투로 다시금 세 명을 더 죽이는 괴물은 생전 처음이었다.
무하마드 빈 사우드가 일을 믿고 맡길 만큼 강력한 이 가문의 ‘척살대’는 정말 한 명 한 명이 다른 일반적인 베두인 병사 열 명과 능히 겨룰 정도의 무용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무용과 강력함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
이들은 전투에서는 처음으로 자신들의 위치가 중간 포식자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과연 지금 이 시대에 얼마나 쓸모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상민은 지근거리에서의 호위나 시가전을 대비하여 종합근접전투(CQC)라는 특수한 무예를 만들어 내었고, 무예를 연구하기 충분할 정도로 시간이 남아도는 선인원의 인물들로 하여금 앞으로도 제대로 승계, 발전시키도록 해 놓았던 적이 있었다.
아직 이런 분야 자체가 미개척지였으며, 제대로 된 종합근접전투를 위해선 자동권총이나 돌격소총, 그리고 여러 군장과 같은 것들이 더욱 발전해야겠지만 상민은 그 한계마저도 괴물 같은 신체적 능력으로 커버할 수 있었다.
극도로 전술적인 움직임은 상대방이 보기에도 가끔은 치명적일 정도로 아름답게, 위압감 있게 느껴지곤 한다.
서로 간의 충돌 거리를 피하기 위해 한 박자 늦게 짓쳐들어가던 나머지 다섯 기병과 돌진하는 와중에도 살아남았었던 두 명의 기병이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도저히 답이 없었다.
이자를 상식선에서 판단하면 안 되었다.
처음에는 한 놈을 죽이기 위해서 열네 명이나 왔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지만, 지금은 마흔, 아니 쉰 명이 더 와주어도 그와 같은 오만한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아까 처음 낙타의 시체를 방벽으로 썼던 상민처럼 차라리 말의 덩치에 엄폐할 수 있도록 하마하자는 선택을 내렸다.
최고의 전사라도 총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그들도 하마하여 재장전을 한 뒤 그들의 총을 쏘아야 했다.
저 괴물이 그들을 전부 죽여버리기 전에.
― 타앙
그 생각과 동시에 한 전사의 머리에서 피 분수가 터지는 광경이 보였다.
척살대들의 생각이 뭐가 되었든, 다시금 장전을 완료한 상민은 충실하게 상대방의 주요한 장기에 바람구멍을 내 주기 시작했다.
모골이 송연해진 채 뛰어내리다시피 하마한 척살대들은 재빨리 총을 장전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죽은 낙타보다는 말이 조금 더 왜소했다.
숨긴다고 해도 주요한 부위가 삐죽 튀어나온단 말이지.
특히나 철 지난 전장식 소총을 장전하려 할 때는 더더욱
게다가 화약을 구하기 힘든 베두인족의 사격 실력보다 시간 날 때마다 사격을 연습하는 괴물의 사격 실력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생각했다.
제아무리 명사수라도 남은 여섯 명을 한 번에….
― 탕
처리할 수는 없을….
― 탕
텐데!
― 탕
“끄흑!”
알라께서 보우하시길, 드디어 빌어먹을 사격 소리가 멈추었다.
“!اللعنة”
하지만 살아남아 총을 장전하고 발사하기 위해 고개를 든 척살대 두 명 중 하나는 그에게 날아오는 샴쉬르의 칼날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는 것으로 이승의 마지막 광경을 눈에 담아야 했다.
결론적으로, 끝까지 살아남아 저 괴물에게 총을 발사한 것은 오로지 한 명에 불과했다.
‘죽어라 이 괴물!’
― 탕
하지만 그는 이윽고 거대한 의문과 절망의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가슴팍을 맞추었는데?
괴물은 저 이상한 총에서 황동 같은 것으로 된 작은 금속들을 바닥에 쏟아버리고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기병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화약낭에서 탄환과 화약을 꺼냈지만, 납탄조차 총구에 넣지 못한 채 그의 접근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귀찮게 구는군.”
상민은 성큼성큼 다가가, 나자빠진 자들에게서 주워 올린 샴쉬르를 들었다.
그리고는 적이 내뻗은 검을 하늘로 쳐올리고는 자신은 힘과 속력을 전혀 잃지 않은 채로 미끄러지듯 칼날로 검면을 휘감듯 내려와 손목을 베어내었다.
한 번의 일격에 무구와 손을 모두 잃은 병사가 한 박자 늦게 고통 섞인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상민은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두 번째 검격에서는 목을 완벽히 잘랐다.
정예병들처럼 보여 기대했었는데 정말 검만큼은 쓸만했다.
― 툭
상민은 목이 달아난 자의 옷에 대충 핏물을 슥슥 문질러 닦고는 허탈한 기분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열네 명이라, 꽤나 얕보이고 있었군.”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가문의 정예병 열넷을 보내는 것은 극히 과도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상민은 애꿎은 무하마드를 탓할 뿐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한 대 맞긴 맞았는데.
― 툭
상민이 앞가슴을 툭툭 털자, 어디선가 찌그러진 납탄이 떨어져 내렸다.
견고하게 제작된 이 방탄복은, 예전 그가 조선국 장수 이윤신에게 선물해준 것보다는 훨씬 더 진화해 있었다.
메리나의 거미들이 또 고생을 했겠지.
이제는 거기도 노하우가 생겨 여러 가지 방법을 쓴다던데, 무식하게 수많은 거미들을 착취했던 예전과는 달리 비단과 면 등을 이용해 혼용하는 방법으로 생산성과 기능성을 끌어올렸다.
그래도 여전히 그 가격은 어마어마했다.
또한 방탄복이 총알을 막아주긴 하나, 유명한 영화에서 나왔듯 그 충격까진 해소해주지 않았다.
꽤 아프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상민은 일반인이라면 갈비뼈를 부여잡고 한동안 끙끙거렸어야 할 충격을 전혀 느끼지 못한 듯 먼지 터는 것마냥 털어내고는 그간 그의 여정과 함께했던 낙타에게 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하구나.”
사람 열네 명을 죽여댄 인간은 낙타의 죽음만 잠시 슬퍼했을 뿐이다.
상민은 대충 짐을 수습하고 베두인이 타고 온 말 중 총소리에 놀라 도망가지 않은 유일한 말을 타고 빠르게 북상했다.
그리고는 금방 부라이다에 도착했다.
갈아탄 말은 이미 상민을 추적해 오느라 기력을 조금 소비했었는지, 부라이다에 도착하기도 전에 골골거리다 픽 쓰러졌다.
어차피 낙타보다 갈증에 약하니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곳 부라이다는 리야드와 하일의 정확히 가운데 위치한 오아시스.
카라반들의 교역로로 유명하며, 몹시 번성하여 탈것을 사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아라비아의 말과 낙타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거래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지.
금전은 좀 가지고 있었기에, 평상시 같았으면 낙타 한두 마리는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상민은 조금은 쉴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곳의 도시 성벽에도 이미 리야드마냥 낯익은 깃발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영이 도드라지게 느껴질까, 작은 관목 옆에 엎어져서 망원경으로 도시를 염탐하던 상민은 오아시스 요새 성벽에 걸린 깃발을 파악했다.
정말로 쥐꼬리만큼 작게 보였지만, 녹색 바탕에 적혀진 샤하다 비스무리한 글자로 볼 때 사우드 가문의 깃발이 분명했다.
‘이미 점령해 놓았군.’
돌파할까 생각해보던 상민은 이내 단념했다.
디리야 요새에서의 상황과는 달리 그는 곧바로 무하마드 빈 사우드를 죽여 적병들의 사기와 조직력을 꺾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요새의 지형을 이용하지도 못했다.
도리어 휑한 광야에 대놓고 걸어가야 하는 입장.
눈이 좋기로 소문난 베두인들의 초병에 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용맹과 만용은 구분해야 했다.
‘이렇게 된다면, 차라리 아드 다나 사막을 경유해서 하일까지 올라가는 것이 낫겠다.’
그는 천천히 물러난 다음 동쪽으로 크게 빠져 다시금 정다운 사막과 광야의 경계선을 타고 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