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75화 (375/653)

패권 전쟁, 페르시아와 아라비아(5)

전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는 부족장이 전투 도중 죽고 나머지 병력들이 뿔뿔이 사방으로 도망가는 것을 바라보던 상민은 추격하여 뒤쫓는 사우드 병사들과 달리 천천히 오아시스로 다가오는 무리들을 바라보았다.

그 선두에서는 능선에서부터 계속 그와 눈이 마주쳤던 인물이 있었다.

곧바로 이곳으로 오는 걸 보니, 그도 그가 펼친 지옥도에도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의 정체가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다.

“외지인이로군. 넌 누구냐?”

“난 고려 청해에 사는 박성민이다.”

오만에서부터 성씨와 이름을 살짝 바꾼 가명을 사용하고 있던 상민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청해의 박성민? 기억해두지.”

무하마드는 놀란 눈으로 그의 아랍어를 들었다. 그리고는 피식 웃더니 어느샌가 하인들이 가져온 가죽 수통의 물을 들이켰다.

오아시스와 오아시스 옆의 우물물은 사람이 웬만해선 직접 마시고 싶지는 않게 생겼다.

보기만 해도 혼탁하니 수인성 전염병 문제도 있고, 기생충 문제도 있을 법해 보였다.

역시나 높으신 분은 저렇게 미리 끓여놓은 물을 마시니 직접 오아시스 물에 입을 대고 마시는 자들은 썩 존귀하지는 않은 신분이겠지.

혹은 목말라 죽기 직전의 사람이거나.

“고려인들이 진주가 많이 나는 해안가에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지. 그래서, 그대들은 우리의 땅을 착취하러 온 건가?”

“그곳은 그대들의 땅이라고 보기엔 좀 멀 텐데.”

“우리가 해안가에 위치한 타락한 자들을 몰아내고 있듯, 그곳도 머잖아 그렇게 될 거야.”

지역 강국으로 군림하는 오만의 세력권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에, 상민은 그가 전형적인 정복군주와 같다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조금 지저분하니, 우리의 오아시스로 같이 가지. 물어볼 것도 있고 하니 말이야.”

* * *

바니 칼리드의 족장과는 다르게, 무하마드는 상민을 순순히 보내주진 않았다.

상민은 어느 순간 반쯤 강제로 리야드로 개선하는 그의 군대의 행렬에 껴들어 있었다.

대우는 그냥 일반적인 포로는 아니었다.

상민은 짐도, 낙타도 빼앗기지 않은 채 무하마드와 나란히 갈 수 있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아마도 그는 고려의 힘을 빌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반면 상민은 부하들이 알면 기함하겠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리야드조차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들의 진정한 실체를.

그래도 가는 길이 썩 즐겁진 않았다.

“그대들의 나라엔, 끊임없이 발사되는 총이 있다던데?”

“어디서 들었는가?”

콘스탄티노플의 전투는 관람객이 참으로 많았으니, 아마 널리 퍼져 있었을 것이다.

“다마스커스에서. 알제에서 온 상인이 그렇게 말했다.”

이 대답은 좀 의외로군.

무하마드는 반쯤 포로로 잡혔음에도 기이하리만큼 여유로운 사내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것을 구입하고자 하네.”

상민은 이어진 무하마드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판다는 건 둘째치고, 그대들이 지불하기에는 상당히 비쌀 텐데?”

중동 왕족들의 호화로운 생활은 오직 석유에 기원한다.

석유가 없다면 이 땅은 정말로 다른 건조하지 않은 땅의 생산량을 절대로 따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석유는 지금 전 세계에서 거의 고려에 의해서만 추출되고 있는 입장이니.

팔 생각은 전혀 없지만, 상민은 떠보기 위해 그런 질문을 내밀었다.

무하마드 빈 사우드는 다소 자존심이 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역정을 내진 않았다.

“우리는 돈이 많아. 좋은 친구들을 두어서 그렇지.”

‘좋은 친구? 누구지?’

상민은 머리를 굴리다 이윽고 의심쩍은 후보 하나를 추려보았다.

‘설마.’

무하마드는 상민의 생각을 끊고 답변을 재촉했다.

“유럽인들은 무기를 열심히 팔아대는데, 고려는 아닌가?”

“우리는 친구에게만 무기를 판다.”

그리고 나와 당신은 아직 친구라 보기엔 좀 애매하지 않을까.

“좋은 술과 좋은 음식을 대접해주지.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 * *

한동안 모래바람을 뒤집어쓰는 여행을 치른 뒤에 도착한 리야드는 ‘정원들’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마냥 허황된 것은 아닌지 오아시스 도시들 중에서도 특출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완전히 이 부근을 일통한 사우드 가문의 위세는 확실히 대단해 보였다.

이들에게 힘이 있으니, 이들이 이곳을 통합하는 게 역사의 순리겠지.

썩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물이 뒤따라오더라도.

리야드 서쪽의 디리야 요새로 가는 길에 상민의 눈에 어떤 광경이 보였다.

여자 하나가 나무에 묶여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침을 뱉고, 손찌검을 하고 있었다.

그 행위에 동참하지 않은 다른 이들도 손에 돌을 들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는 뻔해 보였지만, 상민은 그녀의 죄가 대체 무엇일까 궁금했다.

“저 여자의 죄는 뭔가?”

“음탕함.”

대답은 무하마드 대신, 그의 옆의 낙타에 타 있는 나이 많은 노인이 말했다.

저치도 율법학자라 하던데.

비슷한 나이로 보였던 아킬과 달리, 그는 아킬처럼 현명해 보이지도, 혹은 외지인에 대해 관용적으로 보이지 않았었다.

지금까지도 아주 약간의 적대감을 숨기지 않은 채 상민을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이다.

“음란하고 타락한 계집이니, 마땅한 처벌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

저렇게? 대놓고 돌 던져 죽인다고?

라이브리크에서나 볼 법한 장면.

지금 고려도 사형수에 대해 형을 집행하고 프랑스는 비교적 ‘우아한’ 단두대를 사용하고 있는 시대에 상민은 사람이 처형당하는 사실에 대해선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돌을 던져 죽이는 투석형은 확실히 조금 야만적이라 더 놀랄만했다.

교수형과 참형은 사형집행인이 따로 있다.

그리고 그 사형집행인은 PTSD를 홀로 온전히 짊어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정적 이미지로 낙인이 찍히는 희생양이 되어 공동체의 윤리의식을 책임지는 역할까지 맡았다.

반면, 이렇게 공동체 전체가 돌을 던져 죽이는 것은 이 집단에 횡행하는 특유의 광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형을 집행하기에 충분한 한 명의 사형집행인 대신, 주민들을 여러 명의 살인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이 살인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그와 같은 공포를 새겨주며 근본주의적 이슬람의 교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일 터.

관용과 다양성 대신 엄격함과 순수함이라는 미덕으로 포장된 교리는 이미 형장 주변에 모여 있는 주민들의 눈에 서린 광기로 뿜어져 나오니 이 행동이 정녕 사악할 정도로 효과적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간음이라도 저질렀소?”

상민의 물음에도 학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민은 아킬에 의해 일취월장해진 아랍어 실력뿐만 아니라 기가 막힌 청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을 바로 찾아내었다.

― 내 아내는 죄가 없습니다!

남편으로 보이는 자가 아내에게 던져지는 돌을 몇 차례 맞으면서도 비통 섞인 울음을 내뱉었다.

금방 그는 옆의 병사들에 의해 끌어내려졌지만, 그의 절규는 상민의 생각 속에서 상식적으로 간음이라는 선택지를 제거하기엔 충분했다.

아니, 설령 간음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이지 ‘죽을죄’는 아니지 않겠는가.

고려도 성별을 불문하고 간음은 명백한 죄였지만 목숨을 빼앗지는 않고 다만 죄를 저지른 자가 자신의 배우자에게 두고두고 여러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었다.

상민의 눈길을 받은 무하마드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우드 가문의 세속 권력자인 무하마드 빈 사우드는 카디자델리의 학자들이 이끄는 저런 운동을 막을 권력이 충분히 있었지만, 그는 전혀 그럴 의지가 없어 보였다.

아마 그는 도리어 이를 요긴하게 잘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상민은 무하마드가 초대한 저녁 만찬의 시간까지 기다리며 이곳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디리야의 요새 안, 사우드 가문의 거처는 확실히 지금까지 봐 왔던 몇몇 베두인들의 거처보다도 확실히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비교하자면, 무스카트의 오만 술탄과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모양이다.

반면, 이곳의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도덕적으로는 훌륭한 삶이겠지.

하지만 행복한 삶일까.

나라 자체를 사우드 가문이 소유하게 되는 훗날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정말로 자유롭다 칭해질 수 있는 자들은 사우드 부족, 그중에서도 오직 소수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규율과 율법이라는 족쇄 아래 발이 묶인 노예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을 누릴 것이다.

그토록 귀중한 자원인 석유를 산출하는데도, 이 중동의 사람들이 그 혜택을 온연히 누리는가?

아니, 낙수효과로 포장된 오직 조그만 물방울만을 애처롭게 받아 마실 뿐이다.

자원의 저주를 운운하기 이전에도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회모순은 예견되어 있었다.

구운 양고기(자브르)를 비롯해 이름 모를 음식들.

확실히 맛있고 향기로운 음식들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렇게 맛있음에도, 상민은 커피 세 잔만 대접하는 것으로 그쳤던 바니 칼리드 족장의 환대가 더욱 깊게 느껴졌다.

지금 그는 사막에 묻혀 있겠지만.

저녁 식사에 참여한 상민이 다소 안색이 굳어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무하마드는 반 잔 정도 채워진 커피를 내밀며 부드러운 어조로 그를 달랬다.

“나도 베두인이지만, 이곳의 베두인들은 어리석다. 코란과 하디스, 이즈마와 끼야스를 읽을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나와 내 스승들이 이곳에 참된 율법과 신앙을 가져오기 전까지, 이곳의 베두인들도 나무에 괴상한 문양을 조각하고 그것을 숭배하기까지 하는 추태를 부리고 있었지.”

그게 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지?

“사람은 실수하며, 실수하는 것은 용서받을 때도 있다. 저 여자가 단도를 품고 누군가를 살해하려 한 것도 아닐 테고.”

상민도 난폭하다.

바닷속에 수장시킨 그의 자식들이 대체 몇 명이고, 암살하고 처형한 자들이 대체 몇 명일까.

완전한 망각은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기에 해당 인물들에 대한 자료는 여의국 지하에 빼곡하게 보관되어 있겠지만, 숫자 자체는 어느 순간부터는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가끔은 석면을 입에 처넣고, 목을 매달고, 아주 약하게는 뉴턴을 괴롭힌 청소년들을 육체적으로 몹시 고된 곳에 집어넣어 사회봉사를 하도록 시킨 적도 있다.

그러나, 상민은 적어도 자신이 무언가를 집행할 때 사람들이 처음 품었던 악의와 의도를 근거로 하지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 혹은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은 사람을 저토록 잔혹하게 죽여버리진 않았다.

믿지 않는 것이 죄라니.

상민이 그를 따르는 제국교와 쿠쿨칸교를 자꾸만 멀리하는 것도 이런 종교의 본질 때문일 터.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만 자신이 믿는 말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

그토록 긴 세월을 살아온 상민조차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백여 년, 이백여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고 뉘우치는데, 대체 과거의 선지자들의 말이 훗날의 사람들에게 족쇄로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 뭐 그리 바람직스러운 일이라고.

그는 지금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심히 불경스러운 말이겠지만, 다른 ‘선배’들도 분명히 그러했을 것이다.

심지어 신조차도.

무하마드는 불쾌한 얼굴을 했다.

“이방인, 우리의 문화를 존중하라.”

상민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오, 에미르. 그대도 알다시피 이것은 원래부터 그대들의 문화가 아니었다. 카디자드의 유산이 아니던가?”

“…….”

이번에도 반만 따라 내온 두 번째 잔. 베두인 특유의 황금색 커피를 천천히 마실 때까지 침묵을 지킨 상민은 잔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하마드가 입을 열었다.

“내 먼저 제안 하나 하지.”

“말해 보게.”

“고려가 오만과 손을 잡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대들은 그런 멍청하며 순나에 따르지도 않는 자들을 버리고 차라리 우리와 함께 손을 잡아라. 그대들은 비록 이교도지만, 우리와 이해관계가 없으니 서로 통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오만이면 충분한 것인데.”

“오만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사막에서는 우리를, 해안가에서는 사파비 해적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야. 그리고 둘 모두에게서 어떠한 도움을 받지 못하겠지.”

무하마드는 눈에 거슬리는 이바디파를 치워버릴 생각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룹알할리 사막을 돌파하기보다는, 아마 두바이를 통해 오만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그는 고려가 거처로 삼았다는 두바이의 명운을 인질로 고려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모양이다.

기가 찼다.

정자지와가 따로 없으리라.

상민이 그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었다.

“자넨 바다를 본 적이 있지?”

다마스커스에 갔다 왔으면 베이루트를 통해서라도 지중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정해. 고려는 사막에 발을 디딜 생각이 전혀 없네. 그대들 베두인들을 어찌 사막에서 이긴단 말인가?”

총이고 나발이고, 아마 대부분의 군대는 이들을 토벌하기 전에 먼저 목말라 죽을 것이 뻔했다.

“반면 그대도, 적어도 바다에서는 우리를 대적할 생각하지 말라. 환대에 대한 보답이야.”

무하마드는 상민의 고요한 말에 눈을 치켜떴다.

대부분의 오만 지역은 바다와 접해 있으니, 방금의 말은 고려가 베두인들의 공격으로부터 오만을 지키겠다는 의사 표명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눈앞의 고려인이 고려 내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무하마드는 다소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살아보면 안다.

바니 칼리드의 족장이 살아온 세월과 연륜으로 상민을 읽어냈다면, 무하마드 빈 사우드는 전사와 장군으로서 상민의 위험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대는 어디로 향하는가?”

위험하면, 무하마드 같은 사람은 결국 가장 정통적 해결책을 생각해내곤 했다.

그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상민은 무하마드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저자는 경로상 이미 알고 있을 수 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을.

믿건 안 믿건, 베두인들은 외지인이 사막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그를 인식한다고 한다.

고려보다도 먼저 최첨단 드론이라도 띄운 모양이다.

‘바니 칼리드 부족을 전부 죽이진 않았을 테니, 고문하면 눈치챌 수도 있겠지.’

반면, 이 사막 네트워크는 두바이의 부족들에게까지 이어져 있을 것이다.

이들이 그를 해한다면, 그 사실을 오만과 오만에 있는 고려 또한 알게 되겠지.

그러니 무하마드는 눈앞의 고려인을 해할 수 없다.

얻게 될 것보다 잃을 게 많아질 것이 분명하거늘.

더구나 해하려 한다고 순순히 당해줄 상민도 아니었다.

자리를 박차 치고 일어난다면, 상민은 곧바로 무하마드 빈 사우드의 목을 꺾고 디리야 요새 내부에 주둔한 사우드 병사 중 절반 이상을 그들이 경애하는 알라의 곁으로 보내줄 자신이 있었다.

품속에는 미리 분해해 놓아 압수당하지도 않은 권총이 있긴 하지만, 그 총기가 없어도 말이지.

이들에겐 대포도, 다혈포도 없다.

그냥 예전, 구닥다리 수석식 소총이 전부인데 좁은 요새는 기다란 수석식 소총으로 사격하기엔 영 좋지 않은 지점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칼?

상민은 이젠 예전의 그 삼별초 무장이 아니다.

그 시절에도 실로 대단한 무용을 자랑하긴 했지만, 이제는 지근거리에서는 정말 순수한 육신만의 힘으로 범의 머리를 돌려버렸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그는 사자심왕 리처드의 전설 이상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요새를 벗어난 그 이후의 일은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상민은 갑자기 다가온 전투에 미치도록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부신수질에서 나온 호르몬에 동공이 확장되며 근육이 꿈틀대었고 심박수가 증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상민은 분명히 스릴에 미쳐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오지 탐험도, 심지어 빙주를 여행하며 느꼈던 그 힘든 고난도 직접적인 생사를 오가는 전투만큼 그를 흥분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극도의 흥분 상태는, 상민의 입에서 아주 올곧은 대답을 내뱉도록 강요했다.

“하일 오아시스.”

내 이런 정직한 대답에 너는 뭐라 대답할 테냐.

어차피 너희들을 제거하러 왔으니, 내 친히 너희들을 제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한번 뒤질 때까지 서로 어울려 보자꾸나.

무하마드는 순간적으로 달라진 눈앞의 고려인에게 압도당했다.

얌전히 있던 이 거구의 손님은, 무하마드의 생각이 조금씩 급진적인 방향으로 바뀌자 마치 가벼운 미풍에서 사막 전체를 뒤덮는 하붑(Haboob)처럼 바뀌어 가고 있었다.

“…….”

숨이 막혔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무하마드는 떨리는 손길로 천천히 세 번째 커피를 잔이 가득 넘치도록 따라 내주었다.

축객령.

이 도시에서 썩 꺼지라는 의미였다.

“정직은 지고한 미덕이지. 우리는 그대를 해할 생각이 없다.”

상민은 그 커피를 단번에 들이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커피건만, 순식간에 그의 목구멍 속으로 넘어갔다.

그런 와중에, 상민은 단 한 순간도 찌푸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하마드가 입을 열었다.

“다만 고려인 그대는 내일 아침 떠나라. 또한 그대는 디리야와 리야드의 오아시스의 물을 취할 권리가 없을 것이다.”

이미 마지막에 준 커피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던 상민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래폭풍은 거짓말처럼 한순간 가라앉았다.

“환대 감사하오, 에미르. 그대는 참으로 현명하군.”

그리고 조금은 아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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