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전쟁,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러시아가 페르시아와 이슬람에 본격적으로 손을 뻗기 전, 고려는 이미 한발 더 나아가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상민은 해원과 고려 조정이 오스만과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발칸에 대해 결정하는 것엔 별 간섭을 하지 않았다.
조정도 그렇고 해원도 그렇고 이미 성숙할 대로 성숙했으니 국익을 위해 어련히 알아서 잘할 것이다.
그동안 상민은 직접 서아시아로 갔다.
아무리 명석한 자라도 지구 반대편에서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현지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면 대부분의 정책은 탁상공론과 같았다.
상민도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바뀌어 이미 변해버릴 대로 변해버린 서아시아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배를 타고 이 아라비아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땅에 직접 와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었다.
벌써 4년이 지나서 해와 모래를 가리는 터번과 의복을 입고 가락신(샌달)을 신는 것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이 땅은 특이한 곳이다.
상민이 사막을 처음 겪어 본 것은 아니었다.
남려대륙에는 그 유명한 아타카마 사막과 유우니 같은 소금 사막들이 있었다.
둘 모두 사막임에도 고려의 문명을 일구는 데 엄청난 공헌을 했었지.
또한 중려대륙 북부와 북려대륙 중서부에는 모하비 사막과 같은 황량한 사막이 많았고, 그 사막은 지난 몇백 년간 연방의 동쪽과 서쪽을 오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과 같았다.
또한 악질적인 범죄자들의 도피처이기도 했으며 그들을 처단하고자 추격하는 보안관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말 위에서 이름 모를 풀잎을 입에 물고, 석양을 바라보며 검은 피립을 고쳐 쓰는 그런 모습은, 아마도 맨 처음 영화가 나온다면 상민이 반드시 촬영기에 담아낼 종류의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아라비아의 사막은 다른 사막들과는 달랐다.
풍경에서의 우열을 꼽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니, 감히 자연의 장엄함을 비교하랴.
하지만 분명히 인류 문명에서의 중요성으로 한정하여 비중을 따져본다면 아라비아의 사막과 그 근방이 더 높을 것이다.
제아무리 고려 대륙의 사막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넓은 제국을 태어나게 했더라도, 아라비아 사막과 그 북부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인류 역사 자체의 시작을 가장 먼저 겪은 곳이지 않은가.
그러나 당연한 소리겠지만 아라비아 사막 자체는 작물을 기르기에 상당히 부적절했다.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이 비옥한 레반트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와 아나톨리아를 두고 싸울 때까지 아라비아반도의 중부와 남부는 오만과 예멘을 제외한다면 발전하지 못한 사막 유목민 토후들의 느슨한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곳에서 이슬람 문명이 찬란하게 빛날 때도, 이 아라비아반도는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서부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문명의 변방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수 있었다.
대추야자를 빼면 어떠한 작물도 기르기 힘든 이 황량한 땅이 비로소 그들이 품고 있었던 가장 잠재력 높은 자원을 드러낼 테니까.
상민과 그의 회사에 의해서 말이다.
상민은 지금까지 해가 떠 있는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주로 석유 회사의 업무를 했다.
오만 술탄국과 주변 토후들의 협조로, 이 사막 땅에는 이제 아랍인도 페르시아인도 아닌 외지인들이 원유채굴을 하고 있었다.
이 고려인들은 고려석유와 황립석유회사의 인물들로 상민의 뜻에 따라 머나먼 서아시아까지 오게 된 사람들이었다.
이역만리 사막 생활은 실로 고된 생활이지만, 엄청난 돈을 받는다는데 자원자가 적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중요한 기술자요 인력이라, 상민도 이들의 안전과 복지를 신경 쓰기 위해 직접 배를 타고, 심지어 발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마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기업 관련 업무 중 아마 가장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능력 좋은 이에게 위임하면 되는 업무와는 달리, 이곳의 일들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돌발상황이 자주 발생했고 아직 자그마한 석유 회사에서 그것을 바로바로 해결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이는 상민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 고생의 결과물이 저번 주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잘 추출되고 있나?”
상민은 그와 비슷하게 터번을 쓰고 스카프로 입을 가린 고려인 책임자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예, 상당히 여건이 좋습니다!”
고려가 전주에서 처음 석유 시추를 시도한 것도 이제는 꽤 시간이 흘렀다.
관련 기술의 꾸준한 투자로 이제는 석유 회사의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도 발전해서, 다양한 형태의 지형에 맞는 다양한 천공기관 고정 기술, 시추하는 기구의 기계화 등이 나오고 있었다.
석유의 수요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으니, 비교적 이른 시간에 많은 지출을 감수하며 만들어진 석유 회사들도 이제는 서서히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전기가 깔리지 않은 곳은 많았고 그곳에서 쓰던 전통적인 기름등은 이제 석유등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었다.
그래, 아무리 식물성 기름이 싸다 해도, 땅에서 뽑아내면 그만인 석유보다는 저렴할 수가 없지.
“시추 난이도는 정말이지 이례적으로 난이도가 낮습니다.”
특히나 이 페르시아만 주변의 땅은 그리 길지 않은 시추관으로 대충 찔러넣어도 그야말로 콸콸 쏟아져 나오는 축복받은 곳이었다.
맨 처음에 회사의 회장이라는 작자가 아무런 검증과 사전 조사 없이 뜬금없이 서아시아로 가자는 소리를 했을 때,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회사의 간부진들은 마침내 회장의 선견지명을 칭송했다.
근로자들도 이곳에 와서 마침내 그 결실을 손에 쥐자 그동안의 고생이 보답받는지 눈물겨워하고 있었다.
한편 상민은 당연하다는 듯 시추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석유가 있을 법한 매장지를 아는 것이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알기만 한다면 그 뒤에는 보증된 수표와 다름이 없었다.
“원유의 질은?”
“품질은 택주 서부 경질유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전주의 초중질유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2등급에 해당될 겁니다.”
“그건 정말 다행이군.”
시추 난이도는 무척이나 좋고, 품질도 썩 봐줄 만하다.
경제성은 상당히 괜찮다는 소리.
석유 산업을 시작하며 고려는 원유의 질을 대략적으로 세 단계로 구분했다.
경(輕)질유와 중(中)질유, 그리고 중(重)질유.
이 석유 등급은 경질유부터 1부터 3등급으로 놓고 계산했는데, 황의 비중이 가장 적은 경질유가 제일 품질이 좋았고 황의 비중이 가장 높은 3등급 중(重)질유는 가장 품질이 좋지 않게 여겨졌다.
안타깝게도 고려가 처음 석유 산업을 시작하며 추출을 시도한 주요 석유는 전주의 석유였고, 심지어 3등급이었다.
후대에는 초중질유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황이 많은 이 기름은 기술이 훨씬 더 발달할 훗날에는 단가의 제약에 불과하겠지만 지금은 아예 증류하기조차 힘들었다.
이에 상민은 전주 석유는 시추 과정에서 노하우를 쌓는 정도로 여기고 많이 개발하진 않았다.
품질이 좋기로는 으뜸인 택주 경질유가 있었지만, 택주 경질유가 나오는 지역은 비행정 개발 이후에 핵심 전략물자로 부상한 부소와 관련 있는 곳이 많아 엄연히 자원보호법의 대상이었고 그렇기에 오로지 소량만 뽑아낼 수 있었다.
외국으로 진출할 명분은 충분했다.
사업적인 면 말고도, 정치적인 이유도 많았다.
타 대륙의 자원은 경쟁자가 없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이, 독점적으로 뽑아먹을 수 있을 때 뽑아먹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고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특히 러시아)이 손을 뻗어 내려오기 전에 이곳을 먼저 선점하는 것이기도 했다.
원유를 옮기기 위해 특별히 포항 제철소에서 주문제작한 강철원통(드럼통)이 시추기에서 철도에 실려 항구로 수송되는 과정을 바라보던 상민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유조선을 건조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조선소 사람들이 들으면 경악할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놀렸다.
* * *
밤이 되어도 상민은 쉬지 않았다.
중동의 미녀들과 뜨거운 밤을 보내는 것도 개인적으로 썩 나쁘진 않았지만, 그보다는 이곳에 온 또 다른 목적, 조금 더 근본적인 목적을 이행하기 위해 공부하는 날이 더 많았다.
“지금까지는 우마이야와 압바스의 찬란한 치세에 대해 들으셨지요. 오랜 이야기가 끝났으니, 귀빈께서는 이제 무엇을 듣고 싶으십니까?”
상민의 거처에 있던 나이 지긋한 학자가 어제까지 읽었던 두꺼운 책을 덮고는 물어보았다.
고려어가 국제 공용어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더라도, 아직은 오만 술탄국까지 영향력을 펼치진 않은 모양이다.
반면 상민은 사백 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살아오면서 언어는 정말로 대단히 열심히 공부해왔기에 인구 비율상 주요 언어로 꼽히는 아랍어도 이제는 충분히 학술적인 분야까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언어란 것이 신기하여 계속 배워나간다면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에도 그 시행착오가 상당히 줄어들기 마련이다.
모국어만 하는 사람이 제1외국어를 배울 때보다, 5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 6개째를 배우는 경우가 더 쉽다.
그렇기에 이곳에 오기 전에 받은 몇 년간 집중교육으로 충분한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더군다나 상민은 이미 옛날 마라케시의 인물들을 통해 아랍어를 조금은 알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여러 마드하브(이슬람의 학파)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소.”
상민의 유창하고 적극적인 말에, 학자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귀빈께서는 먼 이국에서 오셨으나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종교에 대해 실로 적극적으로 배우려 드니, 그 자세가 몹시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오만의 학자는 외부인에 비무슬림이라도 이 정도로 학구열을 지닌 자는 충분히 존경받을만하다 생각하고 있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세상의 분란 중 절반 이상은 서로에 대한 무지에서 오니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배움이 필요한 법이 아니겠소이까.”
학자는 경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나이와 그 건장한 덩치와 체격 덕에 방에 앉아 마냥 지식을 탐구하는 학자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언행과 행동 하나하나에 끝없이 서린 지혜는 실로 대단했다.
“귀빈께서 하신 말씀이 실로 맞습니다. 앞으로 양국이 평화롭게 교류할 수 있으려면 오만의 학자들도 고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듯합니다.”
“바람직한 말이오. 그것은 내가 지원해 줄 수 있소.”
지금에야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다소 분위기가 외부인에 대해 적대적이라 고려도 통교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고려인들도 오만인들의 적대감이 유럽인들, 즉 기독교인들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를 이용하고, 오만인들도 세계적으로 모를 수가 없는 이 거대한 강대국이 지금까지 해왔던 다소 온화한 외교적 노력들을 서서히 파악하게 되어 그 뒤부터는 대화 및 교류가 충분히 가능했다.
오만의 지배자, 사이프 빈 술탄(سيف بن سلطان )은 꽤 명석한 군주였고 원교근공의 원리에 따라 주변국들과 유럽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고려를 끌어들이는 것이 이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고려 황통에 흐르는 아슈라프의 혈통도 조금은 영향을 끼쳤지만 대체로는 실리적인 이유였다.
오만은 주변국들과 사이가 심각하게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원체 페르시아와 오스만의 내부사정이 혼란하니 페르시아만은 온갖 이슬람 해적으로 들끓어 반도 끝자락에 있는 오만에게도 큰 피해를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에즈를 통과하여 아라비아해에 진입하는 유럽인들은 그들의 본래 목적인 인도 말고도 자꾸만 중동에도 간섭하며 흉악하게 굴었다.
이제는 꽤나 먼 이야기가 되었지만, 포르투갈이 세계의 해양 열강으로 손꼽힐 때 포르투갈은 오만을 침략했고 이 지역을 다스리는 나바니 왕조를 무릎 꿇려 반쯤 속국으로 전락시키기까지 했다.
비록 그들의 짧은 전성기는 고려에 대적한 이후 끝나버렸고 이후의 야루바 왕조가 오만 술탄국을 세워 국가를 수습해 해양 대국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으나, 이번에는 다른 국가들이 시비를 걸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후엔 베네치아와 이탈리아의 주도로 수에즈 운하까지 뚫려버리니, 이후 물밀듯이 아라비아해를 휘젓고 다니게 된 지중해 해양 세력들의 간섭은 오만을 더없이 힘들게 만들었다.
사막기후에 대단한 물산이 산출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러므로 돈을 벌기 위해선 무역이 필수 불가결한데 무역 주도권은 유럽인들에게 있으니 나라가 약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이들은 수도인 무스카트가 다섯 번이나 유럽인들, 그리고 심지어 해적들에게 외침을 당하는 굴욕을 겪는 중이었다.
이 와중 인도양과 아라비아해에 등장한 고려는 사프 빈 술탄에게 수교 후 선물하려는 의도 반, 위력 과시의 의도 반으로 한동안 순양함들을 동원해 주변의 해적들을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영향력을 행사해 주요 유럽 열강들의 페르시아만 진입과 오만 개입을 저지했다.
이 혼란한 지역에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니, 오만도 이제는 고려의 넉넉한 품이 그리운 것처럼 바지를 부여잡고 매달리게 된 것이다.
심지어 사이프 빈 술탄은 상민이 요구한 저명한 학자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미녀와 땅까지 내주기도 했다.
오만의 실질적 영토라 보기는 힘들었지만 어쨌든 술탄은 그의 명목상 봉역하에 놓인 작은 어촌마을 하나를 상민과 고려인들에게 내주었다.
해적들을 토벌해 주는 대가치곤 몹시 저렴했지만, 해적들을 성공적으로 박살 내고 나면 이 어촌마을에서는 예전에 유명했던 페르시아만의 진주도 다시금 산출될 것이라 했었다.
어차피 거점은 필요했고, 지역 특산물이라는 진주도 솔깃하니 고려인들은 마침내 어촌에 상당히 커다란 항구를 지었다.
그리고는 주변의 이슬람 토후들 중 고려와 협력하는 자들을 불러 도시를 형성하도록 했다.
이슬람 토후들은 이 고려인, 즉 ‘돈이 많은 자들’을 칭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도시를 불렀으니 이를 두바이(دبي)라 했다.
[작가의 말]
택주 경질유는 WTI, 즉 서부 텍사스 중질유입니다.
대표적인 번역 오류 사건 덕에 단어는 중질유라 번역되어 있는데, 정작 석유는 경질유인 이상한 기름이죠,
베네수엘라, 전주 석유는 초중질유라 합니다.
두바이유는 중(中)질유입니다.
중동 석유의 내륙지방 시추 난이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쉬운 곳 중 하나로 꼽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몸이 조금 좋지가 않고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해서, 아마 내년 1월 3일까지 연말 며칠 정도 휴재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는 최대한 연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