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전쟁, 갈망의 도시
프랑스 온건파와 왕당파들은 나바르에 모인 뒤 루이 13세의 조카인 루이 필리프를 명목상의 프랑스 왕에 올렸다.
온건 공화파도 공화파다.
아무리 입헌군주를 못 박았다지만 왕정이 다시 들어서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들이 나바르에 발을 붙이기 위해선 프랑스 왕이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랑스 왕이 가진 나바르 왕관이 필요한 것이 현실.
결국 그들은 왕당파들에게 완벽한 삼권분립과 완벽한 총리통치제를 보장받고는 루이 필리프의 즉위를 허락했다.
삼권분립과 입헌군주정에 대해 일부 극도의 보수 복벽파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클로드는 그런 꼴통들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이에, 프랑스와 나바르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루이 필리프가 루이 13세 이후의 프랑스 왕이 되니, 주변국들은 물론이고 교황마저도 그를 인정했다.
당연히 1공화국에선 격렬하게 반발했고, 자국민들을 숙청하는 공포정치의 근거가 되었다.
물론, 루이 필리프가 없었더라도 그 숙청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보기는 힘들었지만.
고려는 클로드에게 훗날 개입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명분’을 충분히 구매한 뒤에 잠시 신경을 껐다.
어차피 이 명분이 유효할 시기는 프랑스 1공화국이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거나 채권효력을 정지할 순간이었고 지금은 아직 아니었다.
하지만 근시일 내로 저 체계는 붕괴할 것이다.
상퀼로트의 만행에 부르주아들의 분노는 다시 쌓이고 있었으며, 돈을 가장 많이 벌어오는 계급들이 정부에 대해 실망하여 징세를 여러 방법으로 거부하게 된다면 그 여파는 빠르게 확산될 것이었다.
그리고 프랑스가 사방의 나라들에게 전쟁을 선포해도, 만약 첩보를 통해 얻어낸 정보, 삼국동맹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그렇게까지 위험스럽게 여길 일도 아니었다.
프랑스는 안타깝게도 대동양과 접해있지 않는가.
* * *
고려는 지금 외젠과 프랑스 1공화국의 일보단 당장 집중해야 할 것이 있었다.
오스만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동유럽에 대한 패권야욕이 협상국과 고려에 의해 좌절된 러시아는 그 눈을 남쪽으로 돌려 맹렬히 오스만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그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취리히 조약으로 대북방전쟁이 끝난 이후, 불과 사 년 만에 러시아는 폴란드에게서 몰다비아를, 오스트리아에게서 왈라키아를, 오스만에게서 불가리아라는 세 공국을 정교회의 수호자라는 명목으로 얻어낸 것도 모자라, 이제는 콘스탄티니예의 코앞까지 진군해 있었다.
그리고 서기 1711년 에디르네, 즉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일이 벌어졌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는 수많은 침략과 내란에 시달린 곳이었다.
지리상으로 몹시 중요한 관문 도시였고 따라서 거의 평지와 다름없는 동트라키아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요새가 자리하고 있었으니 군사적 의미가 실로 컸다.
오스만도 이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곳이 뚫리면, 나머지 방어시설은 콘스탄티니예의 삼중성벽뿐이었으니까.
그러니, 오스만 또한 과거에 외국의 요새 기술자들을 이곳에 초청하여 오스만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손꼽힐 만큼 가장 견고하고 철저한 방어를 자랑하는 성형요새를 지어 놓았던 것이다.
최근에도 오스만은 프랑스의 유명한 요새 설계사인 세바스티앙 드 보방을 초대해 그 요새를 다시금 재정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에디르네 요새는 과거에는 실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을지언정, 지금은 아니었다.
전쟁은 기술력을 촉진한다.
그동안 많은 곳에서 싸운 러시아도 상당한 수준의 포병대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대북방전쟁에서 러시아 제국포병대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조련해 키워놓은 그 유명한 스웨덴 포병대와, 그보다 역사는 짧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2세가 키워놓은 프로이센 정예 포병대들과 맞서 싸웠다.
가진 경험치가 오스만의 포병대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달랐던 것.
게다가 고각사격이 가능한 박격포와 고사포가 성형요새를 공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임이 알려지고 그 기술과 교리가 발전함에 따라 성형요새의 위명은 예전 같지가 않아졌다.
성안에 웅크려보았자 고각으로 작렬탄을 쏘아내면 결국은 고깃덩어리로 변하게 될 운명이었으니.
지키는 데 급급하던 오스만은 트라키아 전쟁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패배해 있었다.
* * *
오스만 술탄 아흐메트 3세는 자신의 선조들의 일화를 떠올리며 깊이 고뇌하고 있었다.
지도자로서 마냥 형편없지는 않았으니만큼 그 나름대로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러시아 차르 블라디미르와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의 신하들 또한 자신의 신하들보다 더욱 유능해 보였다.
‘아, 선조들이시여. 당신들이라면 이 위기의 시대에 또다시 제국을 수호해 내셨겠지요.’
그리고 아흐메트 3세는 자신이 선조들 중에서도 위기의 시대에 오스만을 기어코 사수해낸 셀림 1세, 그리고 쉴레이만 1세와도 비교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게다가 현시점 오스만은 떠오르고 있는 러시아와는 다르게 이미 자국의 영토와 체제의 현상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존재였으며 여러 가지 기술과 공학상으로도 유럽 지역에 비해 상당히 낙오되어 있었다.
아랍의 문명은 한때는 세계에서 으뜸으로 꼽혔으나 어느 순간부터 정체되어 있었고 그 시기 동안 고려와 고려의 영향을 받는 유럽, 동아시아는 한 치도 쉴 틈 없이 내달렸으니 격차가 이미 현격해진 것이다.
국가산업의 척도라 볼 수 있는 제철소만 해도 조선과 백제,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같은 세계구급 열강들은 고려보다 그 방식과 효율이 뒤떨어졌을지언정 자체적으로 철들을 대량으로 뽑아내고 있었으며, 근대 문명의 기준이라 볼 수 있는 철도도 국가에 이리저리 건설하고 있는 차였다.
하지만 오스만은 주철과 강철을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에서 사와야 할 만큼 낙후되어 있었으며, 철도도 최근에서야 부랴부랴 콘스탄티니예와 에디르네를 연결한 한 개의 노선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에는 전혀 깔리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총기 또한 아직도 수석식 소총이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대포의 효율도 크게 뒤떨어졌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4년을 버틴 것은 의외로 선전했다고 봐야 했다.
이는 트라키아를 사수하고자 하는 오스만인들의 결의가 실로 대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리다. 오스만은 양면으로 러시아를 상대해야 한다.’
캅카스산맥 이남의 이메레티 왕국은 조지아 왕국의 후예였다.
이들은 처음 설립 당시에는 정교회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딱히 러시아와는 관계가 없었고, 도리어 옛 보호자 동로마를 멸망시킨 오스만의 눈치를 더욱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루스 차르국에 경외제와 정복제가 나타나 쟁쟁한 북방의 칸국들을 죄다 정복하자 이메레티는 그들에게 납작 엎드려 봉신국을 청했었다.
이후 이들도 옛 조지아 왕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앞장서서 반오스만 행보를 걸어 나가고 있었으니, 러시아와 오스만의 싸움이 시작된 이후 이곳도 주요한 격전지가 될 것이 자명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메레티를 통과해 오는 러시아군은 정교회의 비중이 높은 트라페준타를 통과할 것이고, 지방의 저항세력도 거의 받지 않은 채로 흑해에 접한 아나톨리아 북쪽을 성큼성큼 걸어 나갈 터.
설령 오스만이 그 후방을 잘라내는 데 성공해도 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보급은 바다로 받으면 그만이었다.
오스만은 보스포루스 해협만 근근이 사수하고 있을 뿐 흑해의 제해권도 상실한 지 오래였다.
테오도로(세바스토폴)에서 출격하는 러시아 흑해 함대는 서유럽 기준으로는 낙후되었더라도 엄연히 증기선이었으니, 베네치아에게 해상 우위를 잃어버린 뒤로 기범선조차 부담스러워 끙끙거리던 오스만에게는 너무나 벅찬 상대였던 것이다.
가장 결정적으로, 오스만은 동맹을 잃었다.
오스만의 전통적인 동맹은 의외로 기독교 국가인 프랑스였다.
과거 오스만과 오스트리아가 심각한 적대관계에 있을 때, 프랑스는 이들을 위해 지원을 해주었었다.
함선도, 원자재도,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기술뿐만 아니라 군사적 지원까지도.
오로지 합스부르크를 엿먹이기 위한다는 단 한 가지 명목으로도 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였던 셈.
하지만 발루아와 부르봉 시절에는 친밀하게 지냈던 나라가 이제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고 대외적 관계도 뒤죽박죽이 되다 보니 어떠한 도움도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던 것이다.
북쪽에선 러시아, 서쪽에선 오스트리아.
남쪽에서는 이집트와 이집트를 사실상 조종하는 베네치아.
동쪽에서는 같은 이슬람이지만 기독교―이슬람 관계보다도 더욱 좁혀지기 힘든 시아파 왕조인 사파비 페르시아.
오스만은 어쩌면 카자크 대반란 이후 하루아침에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 전락한 폴란드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치욕스럽고 자손만대로 욕을 먹겠지만, 그래도 국체를 보존할 수 있는 결단을.
아흐메트 3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서쪽으로 사절을 보냈다.
지중해의 바다는 이미 베네치아와 이탈리아가 양분하고 있었으니 오스만의 깃발이 달린 배는 그 안위가 심대하게 위협받고 있었다.
그래서 오스만 사절들은 오스만의 영향권인 마르마라해와 에게해를 빠져나가는 순간부터 서지중해를 탈출할 때까지 목숨을 도외시해야 했다.
술탄은 총 일곱 번의 사절을 보냈고, 그중 오직 한 사절만이 무사히 카나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에디르네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릴 때, 마침내 고려가 그들의 청에 응답했다.
두 곰의 전쟁, 고려와 러시아의 패권전쟁(The Great Game)은 그 전부터 은연중에 기미를 보였으나, 고려의 트라키아 전쟁 간섭으로 인해 완벽히 그 실체를 드러내었다.
― 너의 존재는 나를 완성시켜. 하지만 좀 나대진 말았으면 좋겠어.
훗날 청해신보에서 주인공(동물)들의 말풍선을 통해 고려와 러시아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해주었던 정치풍자 만화대로, 고려는 러시아를 유용하게 잘 써먹고 있었다.
공러증을 이용해 유럽 많은 국가들이 고려를 의지하게 만들었으며, 동아시아의 번국들도 규합했다.
독주체제는 노골적인 견제와 시기, 질투를 받았으니 악역을 자처할 인물이 필요했다.
블라디미르가 드미트리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것도 결과적으로 보면 호재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지나치게 팽창하는 것은 묵인하기 어려웠다.
이미 러시아는 한 세기 전보다 훨씬 커졌다.
다른 나라들에 의해 제대로 견제받기는커녕 도리어 자멸하기까지 했으니 혼란기도 없었고, 황실의 권위도 높았던 러시아는 정복일로를 무사히 완수했다.
비록 시베리아를 동진하는 것은 옥저의 견제로 인해 야쿠츠크에서 멈추었으나, 사실 러시아가 시베리아 동진으로 얻는 것은 엄청나게 크지가 않았다.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너무 먼 지역의 영토는 계륵과도 같았으니, 도리어 그 역량으로 보다 가깝고 보다 괜찮은 땅인 트란스옥시아나를 손에 쥔 것이 더욱 클 것이다.
그 러시아가, 이제는 아나톨리아까지 손을 뻗는 것을 고려가 묵인해야 하는가?
다른 당들이 연루된 몇 가지 비리 사건과 여러 가지 국제적 정치 상황 덕에 꽤 오랜만에 정권을 잡은 교당은 제1야당인 귀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당과 의견의 일치를 이루어냈고, 마침내 고려는 트라키아 전쟁에서 오스만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갈 때는 죽음을 무릅쓰고 도착했지만, 올 때는 고려의 대동양함대와 같이 오게 된 오스만의 사절은 거대한 철제 군함의 갑판 위에서 그동안 지중해를 제집마냥 돌아다니던 베네치아 군함들이 눈을 깔며 조용히 물러나는 광경을 바라보며 기가 막힌 한숨을 쉬었다.
위엄급 전함이라는 명칭이 기원한 제국전함 위엄과 장엄뿐만 아니라 본국에서 급파한 ‘상승’까지 세 척의 전함들과 그 호위함과 기타 지원함들이 있는 이 함대는, 몇 년 전 세계를 일주한 순방함대와 완벽히 동일한 구성은 아니었지만 거의 그때의 위용과 맞먹었다.
그리고 그 함대에는 특별한 동승자도 껴 있었다.
* * *
마침내 에디르네를 함락시키고 보무도 당당하게 콘스탄티니예까지 진군한 블라디미르는 감격에 젖어 테오도시우스 삼중성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르뿐만 아니라 그가 이끄는 병사들도 제각기 감개가 무량한 듯 개인화기를 들고 몸을 떨고 있었다.
그동안 차르의 폭압적인 권위와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칼날에 몸을 숙이고 있었지만, 당연히 불만이 없지 않았던 보야르들도 지금 이 순간은 그들의 정복군주를 경외하며 저 멀리 세워진 고도(古都)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마침내 이곳이 정교회와 적법한 군주의 손에 다시금 쥐어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블라디미르는 정복전쟁 하나만으로 벨리키의 칭호를 얻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 도시를 얻는다면 블라디미르는 선대의 대제들, 경외제 이반 4세와 정복제 이반 5세의 지위를 능가하는 군주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것이었다.
러시아, 아니 루스 역사상 최고의 군주.
또한 이곳을 얻는다는 것은, 러시아가 정말로 고려에 버금갈 만한 세계의 양대 패권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블라디미르와 표트르,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러시아군 모두는 이곳을 함락시키는 것에 아무런 의심도 없었다.
중세시대 성벽의 황제라 불렸던 그 위명 높은 테오도시우스 삼중성벽도 발달한 대포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차라리 에디르네의 성형요새가 군사적으로 까다로우면 까다로웠지, 이 성벽은 폭탄을 줄창 맞아대면 결국 무너질 예전 시대의 성벽이었다.
그러나 그래야 하는가?
지금 블라디미르가 공성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이 아름다운 성벽과 그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도시를 해할까 두려워하는 것이 컸다.
모든 러시아인들과 모든 정교회인들이 갈망하고 있는 콘스탄티노플이 손상될까 두려워 머뭇거리는 것이지, 공성이 어려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블라디미르는 약간의 시간을 두고 친절하게 아흐메트 3세에게 편지를 보냈다.
승자의 여유였다.
[옛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며 많은 피를 보았다.
선량한 그리스인들과 기독교인들은 피바다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갔고, 아낙들은 강간당했으며 아이들은 바다에 던져졌다.
그러나 짐, 전러시아의 차르는 그와 같은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이 제때에 선대의 과거를 뉘우치고 스스로 병력을 거두어 이 찬란한 로마의 도시에서 물러난다면 그대들의 안위는 보장해 주겠다.
이는 주님이 내린 적법한 도시의 지배자이자, 동로마의 혈통을 이은 짐의 권위로 지켜질 것이니.
그대, 튀르크의 술탄은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라.]
허나, 그 여유는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실로 뼈아팠을지도 몰랐다.
아흐메트 2세는 잠시간의 시간 뒤에 답장을 보냈다.
사실 신중하게 썼다기엔 아흐메트 2세는 단 한 글자도 적은 적이 없었다.
아흐메트 2세의 사절이 아흐메트 2세가 아닌 다른 누구로부터 쓰인 편지를 블라디미르에게 가져다주었다.
휘황찬란한 수식어로 거대한 야망을 드러내 마침내 그 편지를 받는 자에게 큰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준 블라디미르의 편지와는 다르게, 오스만 측에서 보낸 답신은 간결했다.
그러나 그 편지의 내용이 그 간결한 문구보다 가벼우냐?
“……!”
그 섬뜩한 문장 속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은 블라디미르가 황급히 막사에서 나갔다.
콘스탄티노플 삼중성벽에는 새로운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성벽에 걸려있던 붉은 바탕에 흰 초승달과 별이 있는 오스만의 깃발은 그 의미가 어쨌든 이교도 패배자들의 나약함을 상징하고 있었을 터.
지금은 완전히 다른 국기가 걸려있지 않은가.
또한 어제까지만 해도 푸르고 고요하기만 했던 마르마라해에는 실로 거대한 규모의 함대가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오스만의 잔존함대는 보스포루스와 금각만을 방어하기 위해 전부 다 동원되어 있을 터.
또한 고작 오스만 따위가 저런 함대를 운용할 수 있는가?
“황금…함대.”
어마어마한 수의 황금 함대 위에는 괴상한 물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함대도 함대인데, 그 광경이 심히 비현실적이라, 블라디미르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고려에 파견한 러시아 대사, 안드레이가 술을 마시고 쓴 것 같은 보고서에는 관함식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한 횡설수설한 문구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블라디미르는 그 보고서를 간략히 읽었고 어차피 공세가 지지부진한 것을 알았기에 대북방전쟁의 종전을 논의하는 근거로 썼다.
그러나 그중에서 도통 이해하지 못한 문구들이 있었다.
고려인들은 하늘을 날아다닌다 했었지.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블라디미르는 유쾌하고 충성심 강하며 능력도 괜찮지만 술을 너무나 좋아하는 안드레이를 파면할까 잠시 생각도 했었다.
허나,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붉은 비행선에는, 노골적으로 팔레올로고스 황조가 즐겨 사용하던 금색의 쌍두독수리 문양이 있었으니.
[사촌이여, 그대가 감히 짐의 앞에서 로마의 정당성을 찾고자 하는가?]
블라디미르의 손에서 고려의 황제, 해원이 보낸 편지가 참담히 구겨졌다.
[작가의 말]
작중 고려 함선 명명 방법입니다.
고려의 전함은 영국처럼 있어 보이는 형용사를 따릅니다.
영국례) HMS Majesty
고려례) 위엄(威嚴, Majesty), 장엄(莊嚴, Mighty), 상승(常勝, Invincible)
이 전함 명명법은 훗날에도 계속 계승됩니다.
즉 장엄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함을 퇴역처리했다면, 다른 신형 함정에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죠.
반면 고려의 순양함, 혹은 나중의 구축함은 미국처럼 고려 군인(해군), 혹은 해군 관련 종사자를 따릅니다.
미국례) 스프루언스급, 키드급, 알레이 버크급, 줌왈트급 구축함
고려례) 변흠규급 순양함, 조익현급 방호순양함.
이 전함 명명법은 계승되지 않습니다.
해군 위인들은 계속 나올 것이고, 후대의 해군들을 위해 같은 이름을 쓰지 않겠죠.
훗날 나올 함선 급들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