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64화 (364/653)

연합과 조약, 협상과 동맹(4)

파리에서 일어난, 자국의 군주를 참수해버린 전례 없는 사건에 전 세계가 들썩였다.

카스티야와 아라곤, 포르투갈, 이탈리아는 극도의 적대감을 표시했다.

에이레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프로이센 또한 분노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의 나라들도 불쾌감을 표시했다.

백제와 조선, 옥저와 북왜 등도 그 끔찍함에 치를 떨었으며 이 세상에서 그나마 제일 자유로운 정치와 경제, 학문 활동을 할 수 있는 고려에서조차 이 일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맙소사!”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고….”

고려는 대외적으로 ‘내정간섭의 여지가 있으니 상관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암중으로는 프랑스 대사를 불러 이 사태에 우려를 표명하려 했다.

그러나 안 그래도 심란한 왕당파계 인물을 불러 뭘 하겠는가.

오히려 프랑스 대사는 우울한 얼굴로 해원에게 망명 신청을 하며 말했더랬다.

“동쪽 나라들이 불타고 있길래 좋아했더니, 이제는 제 나라가 불타고 있더군요.”

대신 고려는 외젠이 새로 임명한 프랑스 대사를 관함식 직전까지 한동안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 감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외젠이 집권한 후 프랑스는 한동안 외교적으로 저자세를 보였다.

외젠은 알고 있었다.

클로드는 반역자이나, 그 주장이 헛되지는 않다는 것을.

낭떠러지 외교를 구사하기엔 프랑스는 혼란을 재정비하고 박살 난 국내경제를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때마침 고려가 관함식을 하며 대외에 무력을 과시하고 심지어 그 함대를 순방토록 하자, 극도의 혁명 과격파들마저도 일시지간 침묵해야만 했다.

― 우리의 해군은 도저히 저들의 침입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걸 지켜본 외젠은 심지어 루이 13세의 아내이자, 전 프랑스의 왕비인 에스테파니아 데 카스티야를 풀어주었다.

실로 놀라운 유연성이었다.

루이 사후 극악무도한 행태에 이를 갈고 있던 사방의 나라들이 놀란 눈길로 쳐다보았을 만큼.

도리어 같이 역모를 꾸민 왕비를 그냥 석방하여 돌려보낸 일로 프랑스 내부에서 외젠의 행태를 비판하는 일이 일어났을 정도였다.

하지만, 카스티야의 지난 공격을 방어해 낸 당사자가 그리한다는데, 그 목소리가 커질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미 욕은 몽테스팡 후작 부인이 대부분 뒤집어썼기에 그녀는 급진파를 제외한 대중들에게선 동정적인 시선을 받았던 것도 컸다.

그녀가 루이와의 사이에서 남아를 출산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부르봉의 직계는 끊겼으니 외젠으로서는 그녀를 기어코 죽여 또다시 국제적인 공분 및 명분을 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번 일로 표면화된 갈등이 단번에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지금 당장은 프랑스와 주변국들은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외젠은 낭트와 방데에 처박힌 클로드 파벌의 잔당들을 먼저 처리해야 했고, 다른 나라들도 전쟁의 후유증을 다스려야 했다.

* * *

상민도 이번 상황을 듣고는 고심했다.

국민의회의 정상적인 표결에 따르면, 루이 13세는 죽지 않을 운명이었다.

한 표 차이로 처형된 원역사의 프랑스 혁명과는 달리, 한 표 차이로 처형되지 않을 운명에 처한 것도 얄궂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그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외젠이 정권을 잡기 전까진.

그래서 각국은 국민의회에 대한 불쾌감보다는 외젠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프린츠 오이겐… 대체 어떻게 된 모양이길래.’

본래라면 귀족 출신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명장으로 활약해야 할 프린츠 오이겐이 프랑스의 종신 통령, 외젠 드 사부아카리냥이 되어 혁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동안 많은 것을 보았던 그로서도 머리가 복잡했다.

‘생각을 좀 해보자.’

외젠의 생애를 전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파견한 첩보 요원들로부터 프랑스 혁명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외젠의 정보도 수집해놓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상민은 밤새도록 그를 기록한 자료들을 탐독했다.

방대한 분량, 날것 그대로의 자료들이었지만 요약된 자료들보다는 더욱 생각해볼 거리가 많았다.

나흘에 걸쳐 자료들을 읽어낸 상민은 두 눈을 감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외젠의 군사적 능력은 역시나 출중했다.

역사 그대로 그의 천부적인 자질이 사라진 것은 아닌 모양.

하지만 그의 성격은 원래와는 아주 판이하게 바뀌었다.

귀족적인 성격이 강했던 원역사에서 외젠은 아마 사보이아 가문의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탈리아의 통일 이후 사보이아 가문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양측에 껴서 박살이 났고.

귀족 혈통을 가지고 있었던 원역사와는 달리 지금 그 가문이 오래전에 몰락한 탓에 외젠은 지금 자신이 귀족이라는 생각보다는 혁명군의 장교라고 인식하고 있는 모양.

그러니 그의 생애에서 터진 프랑스의 혁명은 그에게 있어서 입신양명할 수 있는 큰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끔찍하게 증오하는 루이 13세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을 것이고.

하긴, 프랑스의 귀족으로 태어나 원역사의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복수하기 위해 적국으로 건너가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범상치 않았긴 했다.

마침내 외젠은 그 혁명의 기운이 가득한 파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다져나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제 로베스피에르면서, 나폴레옹이 되어버렸다.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혼종인가.’

상민이 제일 경계하는 건 프랑스에 나폴레옹과 같은 존재가 태어나는 일이었다.

진짜가 태어나기엔 족히 육십 년은 더 있어야 하겠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태어나도 이전과 같은 삶을 걸어갈지는 미지수였지만.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불세출의 명장이 유럽을 하나로 통일하는 일이 눈앞에 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탐구해 보니 외젠은 완전히 전쟁에 미친 나폴레옹과는 또 달랐다.

두 사람을 비교하자면 후대의 사람들은 대체로 유명한 나폴레옹을 주로 기억하기에 그를 위로 칠 것이다.

정작 나폴레옹 당사자는 그 이전 세대 중 어마어마한 명장이었던 외젠을 동경하여 그의 전쟁기록을 탐독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나폴레옹이 전략과 전술에서 강점을 가진다면 외젠은 외교와 정치에서도 상당한 유연성을 가졌다.

이는 절대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가 편집증적으로 증오하던 루이 13세가 제대로 처형된 이후, 외젠은 혁명의 화신이 되어 공화국 전통을 새로 다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전쟁하길 꺼려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로.

그래, ‘아직은’이라는 표현을 썼다지.

때가 되면 프랑스는 일어설 것이다.

“이걸 어찌한다.”

상민이 침음성을 흘렸다.

여의국 수하들은 물론이고 고려 조정의 신하들과 심지어 황제 해원마저도 고려가 이미 진작 쥐어팬 프랑스를 이토록 경계하는 이유를 모르겠지.

하지만 루이 13세 치하의 왕정 프랑스와 외젠 치하의 혁명 프랑스는 무게감이 완전 달랐다.

솔직한 말로 후자는 상민조차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앞서 생각한 외젠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과는 또 달랐다.

같은 혁명공화국이라 해도 바이에른과 프랑스는 다르다.

바이에른 혁명공화국은 공화국을 표명했으나, 사실은 지방의 반란군일 뿐 합법적인 정부라 인식되진 않았다.

또한 필요 이상으로 과격했기에, 그 대의의 정당성에 대해 제대로 공감받지도 못했다.

사방이 막힌 내륙이라 많은 사상이 전파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공화국은 영향은 좀 받았겠지만 바이에른 혁명공화국와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이들은 수도 파리와 다른 주요 지방을 대부분 통제하고 있기에 프랑스 그 자체였으며 스스로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삼면이 바다며, 빼앗기지 않은 해외의 식민지도 있었다.

또한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세력 중엔 꽤 많은 귀족과 성직자들도 있었을 만큼 전 범위의 공감을 샀다.

이들의 대의는 분명히 공감 가능한 것 중 하나였다.

이전과는 달리 고려의 지식인들과 일반적인 신민들도 아주 살짝은 영향을 받을지도 몰랐다.

입헌군주정과 민주정, 그리고 왕정과 독재정, 그리고 이념투쟁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는 상민이야 체제의 겉모습에는 크게 사로잡히진 않을 테지만 동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우리도 내부의 개혁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고려의 해씨 황조는 그의 탄탄한 계획하에 엄청난 인기를 가지고 있었고 조정 또한 적절한 삼권분립이 이루어진 상황이니 아마 제국의 신민들은 이번 프랑스의 일이 적힌 신문에 불경스럽다며 침을 뱉겠지.

그러나 라 트리콜로르, 삼색기가 치켜진 순간, 세상은 이전과는 달리 격변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격변은 어찌 막을 부류의 변화도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

상민도 그 흐름을 파악하고 대처해야 했다.

지금까지 사람이 원하는 자유와 권리, 평등에 대한 욕구가 20에서 30 사이에 있다면, 다른 일반적인 왕정들은 그보다 훨씬 적은 10만큼을 제공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려는 그 상한선, 30에 맞추는 것으로 다른 국가들과 차별화를 꾀했었지.

그리고 지금까지의 고려의 개혁은 대체로 ‘하향식 개혁’이 많았다.

죽지 않는 태조라는 존재가 자신의 설계에 따라 신민들에게 자유를 베풀어 준 것이다.

그가 황제의 자리에 내려온 것도 그랬고, 금헌칙서도 그랬으며, 가면시중들의 치세를 자신 스스로 그만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혁명 이후부터는 사람들의 욕구는 점차 강해질 것이다.

현대사회의 기준인 100에 도달할 때까지 40이며 50이며 차츰차츰 그 이상으로 상승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사람들이 주도하여 개혁을 원하고 사회가 바뀌길 원하는 ‘상향식 개혁’이 시작되는 셈이다.

그만큼 신민들은 똑똑해졌으며 자신들의 역량을 차츰차츰 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비록 지금의 혁명프랑스는 여건상 고려보다도 시민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않을 테지만 혁명정신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로 나아갈 것이고 종교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과 언론의 자유 등의 네 가지 대표적인 자유에 대해 요구할 것이다.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었다.

상민이 원하는 고려 또한 자유가 있는 나라였으니.

게다가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에 대적하려다 나라 자체가 박살이 난 경우도 많이 보았으니까.

그러니 제국의 존속을 위해선 제국과 제국헌법과 제국헌장도 변화해야 했다.

상민도 변화해야 했다.

물론, 오십 년 혹은 백 년 정도만 지나도 공화정과 자유주의는 널리 퍼져서 딱히 공화정 자체에 반감을 가지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쯤 되면 이제 민족주의적 요소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테니.

게다가 정작 프랑스도 몇 번을 왕정이 복고되었다가 아니었다가를 반복했으니, 앞으로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는 몰랐다.

나폴레옹의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e)을 외젠의 사보이즘(Savoism)이 대체한 순간부터 결말이 도저히 짐작이 어려웠다.

그러나 외젠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개혁은 개혁이고, 혁명은 혁명이고.

일단 그 야욕을 분쇄해 놔야 뭘 하지 않겠는가.

그 와중에 상민은 또 하나의 첩보를 더 받았다.

* * *

베네치아령 북아프리카.

튀니스.

“자, 이 통로에 들어가시지요.”

어두컴컴한 통로가 보였다.

가면을 쓰고 있는 프랑스 특사는 본능적으로 약간 흠칫했지만, 그 안에 들어가길 주저하지는 않았다.

혁명정신으로 무장한 사내는 두려움이 없어야 하는 법이다.

그건 그렇고.

특사는 고개를 돌려 일단 과거의 일에 감사를 표했다.

“아,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베네치아가 우리에게 데 콩데의 유산을 전부 줄 것이라곤 생각지도 않았는데.”

“하하, 같은 ‘공화국’끼리 잘 지내야지요.”

프랑스 특사는 베네치아의 외교를 담당하는 도제 보좌관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가, 이내 침묵했다.

사실 그토록 오랫동안 공화국 전통을 이어온 나라의 면전에 대놓고 아니라고 하기도 뭐하지 않은가.

“…….”

특사와 보좌관이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 마침내 그 끝에 자리한 밀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밀실에는 그들과 비슷하게 동물 가면을 쓴 사람 두 명이 먼저 자리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크흠.”

“안 그래도 언제 오시나 했는데, 늑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늑대가 등장하기 마련이군요.”

밀실에 들어온 프랑스 대사는 얼굴을 굳혔다.

베네치아 외교보좌관이 만남을 주선할 땐 ‘이번 만남이 프랑스의 국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말만 해주었을 뿐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밀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특사는 저 가면 사내 두 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이미 주최 측이 꽂아 놓은 작은 테이블용 깃발이 있었으니까.

“이제 벗어주셔도 됩니다. 요즘 우리 튀니스에 말레볼제와 본토 놈들이 암약하고 있는 관계로 이렇게 보안이 철저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가면을 벗은 뒤에는 더더욱 확실해졌다.

슬라브인과 게르만인.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특사가 분명했다.

프랑스의 특사가 경계하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자, 베네치아 보좌관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경계하실 건 없습니다. 단순히 이곳에 있는 세 국가가 보다 발전적인 미래를 토론해보는 자리라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지랄도 이 정도로 대단하게 하면, 어쩐지 들어보고 싶은 느낌이다.

그러나 프랑스 특사는 프랑스인 특유의 반항심을 감추지 않았다.

혹은 떠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봉건적이며 폭군적 제정의 대리자들과 무슨 할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

“…….”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특사 모두 부들거리는 턱과 입술을 애써 매만졌다.

특히나 오스트리아는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엉덩이를 떼고 방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 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실로 철천지원수가 아니던가.

민족적으로도 그랬고 왕가적으로도 그랬고.

게다가 합스부르크가 부르봉을 미워한다고 하더라도, 저 왕의 목을 자른 잔인무도한 폭도들은 더더욱 증오할지언정 더 좋게 보지는 못했다.

블라디미르가 다스리는 제정 러시아도 마찬가지.

유럽에서 가장 봉건적이며 가장 권위적인 나라를 꼽으라면 러시아는 자랑스럽게 그들의 빳빳한 목을 치켜들 것이다.

공화국, 혁명 폭도들?

그들로선 악마의 속삭임보다도 더욱 끔찍한 소리였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외교보좌관은 밀실 안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심 조소를 흘렸다.

‘그러나 당신들 모두 자리를 박차고 나서진 못하겠지?’

세 나라의 대사들은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져 있지만, 그 누구도 이 자리를 먼저 떠나지 않았다.

외교보좌관은 느낄 수 있었다.

불쾌감, 그리고 그와 공존하는 기대감을.

이 밀실에 들어서자마자, 혹은 제의를 받자마자 모두는 느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지만, 서로는 서로에게 너무나 이용 가치가 있었다.

프로이센과 그 세력인 협상국들이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과거의 원수지간에게도 ‘동맹의 역전’이라는 것은 가능할지도 몰랐다.

[작가의 말]

원역사에서는 필니츠 선언으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전쟁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지만, 지금은 마침 독일계 두 나라가 서로를 적대국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고, 우르르 가서 쥐어팰 상황은 아니지요.

물론 카스티야가 있었긴 했지만….

놀라운 일이지만 로베스피에르는 유럽과 싸우는 일에 반대했었습니다.

【인구표】

1700년도 인구표입니다.

지난 표에 들어있던 필요 없는 지역은 좀 뺐습니다.

1600년도부터 소빙하기를 맞아 전 세계적으로 인구증가율이 주춤하는 추세입니다.

기술발전과 의료, 위생의 발전이 있지만 그 반대로 땅이 좁은 곳은 멜서스 트랩도 어쩌면 적용될 수 있겠죠.

아직 질소성분 비료에 대한 대량생산이 불가하다 보니….

화산과 메뚜기에 직격타를 맞은 고려는 17세기가 시작하자마자 약간 휘청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멜서스 트랩에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보니 이내 회복하는 모양입니다.

1650년과 1700년대 사이의 고려는 남려의 인구증가도 증가했지만, 중려대륙 합병으로 연방의 총인구수까지 뻥튀기된 모습입니다.

프로이센은 처음엔 북독일 지방과 나중에는 남쪽 바이에른까지 규합해 크게 성장했습니다.

폴란드는….

러시아는 기후변동에도 불구하고 정복 전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습니다.

원역사에서도 동진한 이후 엄청나게 성장하기 시작했었죠.

명나라는 솔직히 저도 모르겠습니다.

원역사의 자료를 봐도 청말 그 혼란기에도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던 게 대체 뭐 하는 동네인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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