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60화 (360/653)

대북방전쟁(2)

진정한 의미의 포함외교였다.

러시아가 휴전 의사를 보인 이후에도 고려의 위세 자랑은 멈추지 않았다.

상민은 이왕 모인 김에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대백색함대에게 명령을 내렸듯, 제국 함대도 세계를 순방하는 것이 어떠냐 제시했다.

오지 못한 이들도 봐야 하지 않겠는가.

관함식이 끝난 이후, 고려는 경계를 담당할 해안경비대는 돌려보내고 제국 함대가 보유하고 있는 위엄급 전함 세 척과 장갑순양함 열두 척, 방호순양함 스물한 척, 소형함과 기타 지원함들 마흔세 척을 대동해 유럽 각국을 순방했다.

여든 척에 달하는 대함대는 단 한 척의 목조선도 없었고 죄다 철제 증기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 대단하여, 제국 함대는 기존의 무적함대라는 명칭 말고도 돈을 퍼부어 만들었다고 황금함대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였다.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의 해안을 따라 프랑스,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프로이센과 덴마크, 노르웨이와 스웨덴, 그리고 마침내 발트해에 접해있는 러시아까지.

유럽의 바다는 떠다니는 거선들의 위협에 숨죽여야 했다.

“안심하시오, 우리는 이 혼란한 유럽에 평화를 논하기 위해 왔소이다.”

“…….”

기항 자체는 로테르담이나 포츠머스, 더블린 등 검증된 항구에 정박하고 보급을 받을 뿐이었지만, 고려는 굳이 항구에서 열렬하게 손수건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는 우방국과, 해안가에서 불안한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는 나라들을 가리지 않고 방문했다.

한 차례 순방을 마친 함대들은 이제는 다른 곳들을 방문하기 위해 지중해,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프리카로 돌아갔지만 황금함대가 선사한 충격은 여전히 남아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평화회담을 하기 위해 스위스의 취리히에 모인 각국의 인사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했다.

제국 함대는 유럽 일주를 한 뒤 지중해를 둘러보았다.

이탈리아도, 베네치아도 숨죽였으며, 아라곤과 이집트, 오스만을 들르기도 했다.

지중해 이후에는 아프리카를 보았다.

수에즈를 통과하진 않은 채로 함대는 콩고와 앙골라로 향했고, 이후에는 희망곶을 돌아 무타파에 정박했다.

이후에는 페르시아만의 이슬람 국가들과 무굴, 비자야나가르를 들렸다.

마지막에는 누산타라를 지나 번국들이 있는 동북아시아로 향했고, 그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며 미주로 귀환했다.

고려는 건조된 일곱 척의 전함 중 두 척을 전통적인 동맹국들과 번국들이 아닌 프로이센과 스웨덴에 판매했다.

대북방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기도 했으니 이들은 가장 절박하게 즉시 전력화가 가능한 군함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그다음 차례를 두고 군침을 흘렸으나, 위엄급 전함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고려에 계속 문의를 넣었다.

산업과 기술의 결정체인 전함을 건조하는 것은 아직까진 웬만한 열강도 헉헉거리는 일이었고, 제철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는 꿈도 꾸지 못하는 힘든 일이었다.

그냥 거금을 들여서라도 구매하는 것이 더 좋았기에 여러 나라들은 서운함을 표했다.

“이게 다 귀국들을 위한 것이라니까?”

이렇게 말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는 힘들 터.

잠시의 시간을 두고 다른 나라들이 충분히 국력을 소비했을 때 비로소 전함 혁신을 일으킬 생각이었던 고려는 서운한 표정을 내비치는 국가들에게 비교적 저렴한 장갑순양함을 판매하는 것에 그쳤다.

그 와중에 세계사적으로 놀라운 사실도 일어났다.

고려의 보석 회사들과 함께 금강석 광산의 이윤을 나누어 얻고 있던 무타파 왕국이 북아프리카를 제외한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에서 처음으로 장갑순양함을 두 척이나 사게 된 것.

일시적이겠지만, 지금 당장 보유한 군함의 전력으로만 보았을 때 무타파가 세계에서 몇 손가락에 꼽힐 수 있을 만큼 강해진 것이다.

그렇게 장갑순양함으로 만족한 나라도 있었지만, 그걸로 만족할 수 없는 나라들도 있었다.

백제와 조선 같은 몇몇 나라들은 자체적으로 고려가 보여준 250밀리 거포를 탑재한 전함 개발을 시작했다.

주포도, 기관부도, 그밖에 모든 것들도 전부 다 기술력인 만큼 사실상 자주 개발이라는 것은 허상이라 고려에서 각 부품을 수입해야 했고 수입한 것들도 한 단계는 구세대의 부품들이겠지만.

물론 무기 개발을 시도하는 고려의 번국과 동맹국들은 적어도 부품을 수입 가능하다는 처지였으니 고려산 부품 수출이 허락되지 않는 다른 나라들보다는 여건이 좋았다.

직접 전함들을 보유한 나라는 그 유지비에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러한 함대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에게는 그놈의 ‘대양해군’이라는 말이 얼마나 매혹적으로 들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 *

제국력 432년, 서기 1707년.

대북방전쟁의 끝을 고하기 위해 사절단들이 스위스 취리히에 모였다.

맨날 싸우고 다시 조약을 맺어 종전하는 것이 유럽의 관습.

그러나 지금 이 분위기는 이전과는 달리 실로 냉담했다.

모두가 전쟁의 끝에는 동의하고 있었지만,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과거의 전쟁이 왕조와 왕조 간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국가와 국가, 신민과 신민들의 싸움.

이제는 귀족 출신의 외교관들에게까지 그 감정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다음번에는….’

‘네놈들이 무릎 꿇겠지.’

프로이센이 쳐다보면, 러시아가 콧김을 뿜었다.

‘이 치욕을 잊지 않겠다.’

오스트리아와 스웨덴은 주먹을 꽉 쥐거나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종전을 기념하는 연회장에서부터 사람들은 미소를 짓고 있으나 웃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결렬되고 다시금 전쟁이 일어났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이 자리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하지만, 때마침 적절하게 이루어진 황금함대의 순방은 다른 나라들에게 다소 적절한 명분을 부여해주기도 했다.

그들은 회복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 더 발전할 시간이.

제도적으로, 사상적으로, 기술적으로 낙후된 자신들의 나라를 끌어올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발전된 이후에 벌어질 전쟁에서는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

그래서, 지금의 종전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전쟁을 위한 웅크림과 같지 않은가.

심란한 표정으로 각국의 대사들은 도출된 최종합의안에 서명했다.

[취리히 조약]

― 조약에 서명한 각국은 스위스의 영세중립국 지위에 동의한다.

― 조약에 서명한 각국 중 외교 공관을 서로에게 파견하지 않은 자는 서둘러 파견한다.

―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은 인(Inn)강과 알프스로 정한다.

― 러시아가 점령한 리보니아와 전(前)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땅은 러시아에게 귀속된다.

― 러시아는 폴란드 대공국의 존속을 인정한다.

― 폴란드와 몰다비아의 과거 종속관계를 청산한다.

― 러시아가 점령한 올란드 제도를 기준으로 하여 동스웨덴의 땅은 자체적인 핀족의 나라가 새롭게 들어설 것이며, 추후 이는 핀란드(Finland) 대공국으로 명명한다.

― 핀란드의 대공은 핀란드 입헌의회에 의해 독자적으로 선출된다. 입헌의회의 선거감독국은 고려와 러시아로 정한다.

― 덴마크―노르웨이는 분할되어, 노르웨이는 독립한다.

― 덴마크는 플렌스보리(플렌스부르크)까지의 슐레스비히의 땅을 프로이센에게 할양한다.

― 덴마크는 말뫼와 헬싱보리, 할름스타드 및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속한 땅을 스웨덴에게 할양한다.

― 덴마크는 아이슬란드의 독립을 보장한다.

― 덴마크는 고려령 빙주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모략을 중단한다.

* * *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서명하시오!”

이 조약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단연코 덴마크―노르웨이였다.

아니 이제는 덴마크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덴마크―노르웨이는 그들의 지리적 위치를 망각하고 있었다.

다소 까다로운 위치에 있는 오스트리아나 러시아와는 다르게 해양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개입한다면 그들은 제일 먼저 노려질 목표였으니까.

네덜란드가 참전하고 고려가 최신의 전함을 판 이후, 덴마크는 그들의 근시안적 외교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노르웨이는 이제 독립했고 자체적인 군주를 섬기게 되었다.

동군연합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스웨덴 왕 구스타프 5세의 차남, 바사 가문의 오스카르가 노르웨이의 왕위에 올랐다.

다만 노르웨이의 국정 권한은 의회가 쥘 것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거의 같은 나라로 취급될 만큼 오래 지배했던 노르웨이를 찢겨 보낸 것도 모자라, 덴마크는 유틀란트반도의 남쪽과 스칸디나비아에 걸친 영토마저 잃어버리고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게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당신들이 그랬잖소! 칼마르 동맹의 영광을 재현해 주겠다고!”

“그랬나?”

[군사적으로는 강하나, 외교적으로는 신뢰할 수 없다]라는 국제외교가에서의 러시아에 대한 평가는 아마 이 시점 이후 반러시아 감정이 폭발한 덴마크의 외교관들에 의해서 퍼졌을 것이 분명했다.

스웨덴은 엄청난 영토를 상실했다.

리보니아를 빼앗기고 핀란드의 독립을 인정해야 했으니, 어쩌면 덴마크 못지않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들은 노르웨이를 숙적에게서 떼 내었고 왕의 차남을 국왕위에 올려 위협을 없앤 것으로 쓰린 속을 달랬다.

때문에 그들은 앞으로도 반러시아의 외교적 기조를 확실하게 표명하며 이번에 그들과 함께 싸운 나라들에게 의욕적으로 연락을 돌렸다.

“제대로 된 조약이나 협상을 만듭시다.”

프로이센은 가장 많은 인적 피해를 보았지만, 그 결과물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바이에른 혁명 공화국이 있던 자리는 거의 고스란히 그들에게 흡수되었으며, 그 빨갱이 잔당들도 오스트리아 쪽으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대독일주의를 주장한 사람들은 전부 사라졌으며, 프로이센은 이제 프로이센이라는 국호로 스스로를 규정하기에는 모자라다 생각했는지, ‘도이체스라이히(독일국)’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국호는 보통 자국민의 온전한 권한이다.

하지만, 가끔은 아닐 때도 있었다.

[황상께선 그 앞에 카이저(독일 제국)나 그로스(대독일국)는 붙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그의 꿈인 거함에 올라 마냥 싱글벙글 웃고 있는 프로이센 군인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 고모의 편지에 답장을 보냈다.

어쨌든 루이제 고모 덕에 꽤 많은 혜택을 보았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누누이 말했듯, 좋은 외교란 고려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었다.

―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알겠습니다.

프로이센은 고려가 이놈(러시아)이고 저놈(오스트리아)이고 그놈(이탈리아)이고, 심지어 자격조차 없는 놈(오스만)까지 죄다 로마의 후계를 참칭하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한 짜증을 느껴 그리 말을 하나 생각했지만, 해원의 입을 빌려 표출한 상민의 속내를 짐작하진 못했다.

[아 그리고, 불교 문양에 관련된 것도 절대 들이지 마시구요.]

“그건 또 왜….”

관심도 없었던 불교의 괴상한 문양(卍)에 크게 Nein이라고 적은 고모의 편지에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미간을 찡그렸으나, 뭐 상관은 없었다.

폴란드는 이제 바다에 갈 수 없었다.

카자크 대반란 시기, 프로이센에게 단치히를 넘겨주고 그 회랑까지 주었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흑해와 발트해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리투아니아가 찢겨져 나가고 이제 폴란드로만 불리게 된 이 나라는, 심지어 왕국이라고 불릴 수도 없게 되었다.

물론 폴란드 대공 아우구스트 2세는 저지른 죄과가 있기에, 전후 협상에서는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폴란드는 믿을 곳이 프로이센밖에 없었다.

프로이센은 러시아와의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라였으며, 폴란드를 러시아로부터 방어해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였다.

고려도 있긴 하겠지만, 항구가 없는데 어떻게 도와주겠는가.

아우구스트 2세는 자신의 출신으로도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호엔촐레른과 결혼동맹을 맺었고 반러시아의 숙명을 받아들였다.

“만족스럽군.”

그리고 단연코, 이번 전쟁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나라는 러시아였다.

비록 중반에는 스웨덴―프로이센에게 살짝 고전한 적이 있었지만, 러시아의 역량은 이미 유럽국가들로는 혼자서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올라가 있었다.

고려의 다혈포와 전함이 아니었다면, 유럽은 공러증(Russophobia)이 생각이 아닌 현실화가 되는 광경을 목도했을 것이다.

고려 대륙 이외의 땅에는 관심이 없는, 그래서 식민지 대신 보호국이라는 명칭을 즐겨 쓰는 바다 건너의 덩치와는 다르게 내륙의 덩치는 유럽을 포함한 모든 영토에 집요한 탐욕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탐욕은 성과를 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였지만 블라디미르의 대전략도 훌륭하여 러시아는 상당히 광대한 땅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리보니아를 점령해 그토록 원했던 서쪽의 부동항, 리가와 레발을 얻은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또한 그들은 흑토지대를 정말 완전히 손에 넣었고, 숙적 폴리투를 더 이상 대들 수 없는 처지로 전락시켰으며 그 옛 영토들을 삼켜 자신의 살로 만들었다.

폴리투의 유명한 도시들, 키예프와 민스크는 다시금 적법한 루스인들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약이 확약되기가 무섭게, 블라디미르는 군세를 돌렸다.

조금은 쉴 법도 했지만 블라디미르나 표트르나 딱히 민생을 신경 쓰지는 않는 지도자들에 속했다.

유럽을 한창 휘감았던 전쟁을 남의 일이라 보고 있던 나라, 오스만이 화들짝 놀랐으나 이미 러시아의 군대는 이번에 폴리투에서 독립되어 사실상 러시아의 봉신국이 되어버린 몰다비아를 지나 트라키아로 향하고 있었다.

“이놈들!”

오스만의 술탄은 어쩌면 이 러시아라는 미치광이가 대북방전쟁에서 국가의 명운을 걸고 전심전력을 다하진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고려의 개입으로 종전이 성사되자마자, 그 고약한 성격에 기다렸다는 듯 싸움박질을 멈춘 것도 그랬다.

어쩌면, 러시아는 원래부터 폴리투나 핀란드 따위가 아닌 그들 최고의 목표―콘스탄티노플―만을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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