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59화 (359/653)

대북방전쟁

[지금 당장 진행되고 있는 전쟁을 멈추어야 합니다!]

창양의 러시아 대사관으로 돌아온 러시아의 대사는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것을 보다 못한 부하 외교관 하나가 도수 높은 술을 가져오자 단숨에 소주를 들이켠 대사는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는지 빠르게 만년필을 놀렸다.

허겁지겁 자신이 본 내용과 느낀 내용들을 적은 그는 촛농으로 봉인을 한 뒤에 인장을 찍었고, 꼼꼼히 편지의 상태를 확인한 뒤 외교관에게 건넸다.

“최대한 빠르게 이 편지를 전달하라!”

타국에 외교 공관을 설치하는 관습은 먼 옛날 13세기,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아 수많은 지방 세력들이 난립하던 이탈리아반도에서 기원했지만, 제대로 된 상설 공관의 존재는 오르베텔로 조약 이후에서 시작되었다.

오르베텔로 조약 후에는 일부 서유럽 국가들은 가까운 국가들끼리 대사관을 두었고, 혹은 너무 중요한 비유럽 나라들, 예를 들면 고려와 오스만 같은 나라들에도 대사관을 설치했다.

오스만의 경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사정을 모르나, 고려는 친한 외교를 맺고 있는 나라들에는 일찍이 외교 공관을 두고 있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동유럽의 낙후된(외교적으로) 국가들도 외교 공관을 설치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러시아와 같은 유럽의 변방에도 현대 외교의 요소가 퍼지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고려와 수교 관계를 맺고 공관을 둔 때가 드미트리 섭정기였으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행정과 외국어, 정치와 역사에 대해 아는 관료, 그것도 시험을 쳐서 임명하는 고려와는 달리, 각국의 대사들은 대체로 외교 업무에 문외한이었던 귀족들이 임명되었기에 그를 보좌할 전문적인 직원들을 같이 두었다.

대사관의 역할은 많았다.

해당국의 군주나 정부 수반과 의견을 나누어 양국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일은 오직 명목에 불과할 뿐.

해당국에 자국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타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어떻게 가장 보호할 수 있는지 자국 정부에 보고하는 것도 그들의 임무였다.

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었다.

해당국에 대해 뭘 알아야 정책을 결정하고 이익을 보호하지 않는가.

따라서 대사관은 해당국의 주요한 정치 및 경제 상황에 대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훗날 이민이나 여행이 활발한 시대가 온다면 주목표가 바뀌겠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대사관의 주목표는 사실상의 정보 수집이라는 소리였다.

고려에선 이렇게 외교관 등으로 신분을 드러낸 채로 정보를 수집하는 자들을 백색 요원이라 불렀다.

물론 이런 백색 요원들은 한계가 뚜렷했다.

신분이 밝혀진 상황이니 거동에 한계가 있었고, 그렇기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될 수밖에.

얻기 힘든 정보는 목숨을 걸고 잠입하는 흑색 요원(검은 요원)들이 행하니, 정보전이라 하면 암약하는 적국의 첩자들을 잡아내고, 자신들의 첩자들을 보내 정보를 수집하는 어둠 속의 전쟁이었던 셈이다.

다만, 아직은 러시아의 오흐라나와 같은 정보 조직이 고려의 정보총국에 감히 첩보력으로 대항할 수는 없었다.

간신히 방첩을 하는 것으로도 숨 막힐 정도였으니.

그것도 적지 않게 뚫려대는 것을 보면, 고려의 요원들은 실력만큼이나 끔찍할 정도의 규율과 복종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 대사가 본국에 보낼 정보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직접 석정에 그를 초청해 위압스러운 광경을 보여준 것은 대놓고 정보를 자국에 전달하라는 무언의 권고와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대사로서는 그것이 고려의 의도라도 무조건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충격적인 광경은 한창 대북방전쟁에서 승천하고 있는 러시아마저도 적당히 성과를 거둔 채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차르께서 어찌하실지….”

* * *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발발을 대북방전쟁의 시작으로 봐야 하는지, 혹은 러시아가 폴란드를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봐야 하는지는 역사학자마다 그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이 전쟁이 과거의 전쟁들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띠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이전의 전쟁들과는 달리, 국민개병제로 인해 각국의 전투 병력이 크게 증가하였으며, 철도와 같은 운송 수단이 생김으로써 물자의 동원력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반면 아직 화기는 과도기의 단계로 이전과 크게 발전한 점이 없었다.

무기 개선에 그토록 많이 노력했음에도 대부분의 국가는 여전히 전장식 소총의 최종 단계, 즉 뇌홍뚜껑식 소총(퍼거션 캡)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일부 낙후된 군대에서는 수석식 소총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으니.

하지만 전열보병의 시대는 분명히 몰락하고 있었다.

원형탄에서 작렬탄으로 넘어가는 포탄의 시대변화는 목조 군함뿐만 아니라 전열을 이룬 보병들에게도 충격적인 피해를 입혔다.

폭발하는 포탄에 몸이 찢어지기 싫다면 전열보병들도 억지로 산개하여 산병들처럼 싸워대야 했다.

이 불균형한 기술의 진보는 전쟁의 양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처음, 차르 블라디미르와 표트르 로마노프의 러시아군은 순식간에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 얀 소비에스키의 항전을 짓밟고 바르샤바를 함락한 뒤, 무시무시한 속도로 포즈난까지 다가갔다.

그 기세는 몰락한 폴리투로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폴리투의 마지막 왕, 얀 소비에스키의 죽음은 그 고귀한 희생에 어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얀 소비에스키가 벌어놓은 시간 덕에 스웨덴과 프로이센이 개입한 것.

포즈난을 앞에 두고 조직적인 반격을 받은 러시아는 기어코 패배하고야 말았다.

당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미르의 열정적인 공세를 방어해내고 심지어 그들을 다시금 밀어내기도 했다.

“다혈포라니, 정말 짜증 나는 무기를 가지고 있군.”

대북방전쟁에서 가장 거대했던 전투, 포즈난 전투에서 포병의 작렬탄 사격과 프로이센이 고려에게 수입한 ‘다혈포’의 끔찍함을 알게 된 러시아는 후퇴를 결정했다.

이후, 러시아는 먹어놓은 서폴란드의 땅을 다시금 토해내며 바르샤바까지 후퇴해야 했다.

힘차게 전진한 것치고는 다소 모양새가 빠지는 셈이었다.

따라서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멸망했지만, 폴란드의 서쪽 영토는 폴란드 대공국으로 이름이 바뀌어 살아남았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노령으로 사망하여 프로이센의 공세가 끊긴 것은 러시아에겐 실로 다행스러운 일일 터였다.

그러나, 어찌 보면 전쟁은 실수의 반복이었다.

뛰어난 지휘관이지만 오만했던 블라디미르가 프로이센의 저력, 아니 고려의 신식 무기 지원을 다소 과소평가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만 실수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더 자주 저질렀으니, 블라디미르는 그때를 틈타 다시 만회하면 그만이었다.

사실, 폴리투의 절반을 집어삼키는 것으로도 그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리고 그가 만족스럽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는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프로이센 출신이자 폴란드 공국의 군주로 선출된 아우구스트 2세는 정작 작센에서 귀족으로 살던 시절에는 스스로를 프로이센인이라 생각했지만, 폴란드 대공위에 오른 이후엔 생각이 바뀐 모양이었다.

그는 형편없이 줄어든 폴란드의 영토에 만족하지 못했다.

‘내 국가가 이렇게 작을 순 없다!’

게다가 꽁지를 말고 후퇴하는 러시아의 군대를 보고 다소 건방져진 것인지.

거듭된 프로이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트 2세는 스웨덴과 연합하여 억지로 공격을 진행하고야 말았다.

방어를 해도 모자랄 판에, 공세에 나선 상황.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폴란드는 이미 전쟁으로 크게 황폐화된 상황이었고, 러시아는 그동안 나름대로 꾸준하게 전쟁 준비를 해 온 상황이었으니, 두 국가의 잠재력은 비교할 수 없었다.

또한 지휘관의 차이도 현격했으니 블라디미르가 이전의 수치를 되갚아주기에는 충분했다.

아우구스트 2세의 공세를 쉽게 물리친 러시아는 욕을 잔뜩 내뱉으며 폴란드를 수호하기 위해 달려온 프로이센을 대치만 한 채로 내버려 두고는 리보니아에서의 스웨덴 공세마저 격퇴했다.

“굳이 저 게르만 놈들과 싸울 필요는 없지.”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프로이센은 바르샤바 밖으로 진격해 나올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전선은 삽시간에 넓어질 것이고, 전선이 넓게 형성되면 병력이 더 많은 러시아에게 명백하게 유리할 테니까.

프로이센은 그들의 핵심 도시 중 하나인 쾨니히스베르크의 안위까지 살펴야 하는 입장이었다.

또한 밑에서는 러시아와 동맹을 맺은 오스트리아가 여전히 위협하고 있었고.

러시아는 그때를 이용해야 했다.

마침내 리보니아에서 구스타프 5세가 이끄는 스웨덴을 패배시킨 블라디미르는 그의 동맹을 하나 더 만들기로 작정했다.

덴마크―노르웨이의 왕 프레데리크 4세는 스웨덴 왕 구구스타프 5세와는 철천지원수였고 국민감정도 심히 나빴으니, 다시금 칼마르 동맹의 위세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러시아의 약속을 믿고 전쟁에 참전했다.

졸지에 프로이센은 삼면전선, 스웨덴은 양면전선이 되어버린 것.

제아무리 북방의 사자가 스웨덴을 강력한 군사열강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하더라도,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는 분명히 존재했다.

스웨덴은 카렐렌은 물론이고 헬싱키와 투크루까지 밀려나 사실상 동부의 영토를 죄다 상실했으며 이제는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인 서쪽의 예테보리까지 위협받게 된 것이다.

* * *

이는 좌시할 수 없었다.

고려와 네덜란드, 에이레는 긴급히 회의를 소집했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네덜란드 왕국은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과 현 시간부로 전쟁에 돌입했음을 선포한다.”

몇 달 뒤 스웨덴의 위기를 좌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네덜란드 왕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면서 북해와 발트해에서는 격렬한 해전이 일어났다.

에이레와 고려는 전쟁을 선포하지는 않았으나 물자지원과 기타 지원을 늘렸고 스웨덴은 겨우겨우 군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블라디미르는 헬싱키에 서서 고민했다.

어쩌면 한 발짝만 더 내밀면 스톡홀름도 점령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는 때마침 고려에 파견한 자국의 대사로부터 횡설수설한 편지를 받았다.

이 병신이 술을 마시고 보고서를 쓴 것은 명백했으나, 도리어 그 덕에 여과 없는 두려움을 보고서에서 표출하고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스웨덴은 무섭지 않다.’

현 스웨덴 왕 구스타프 5세는 그의 선조인 북방의 사자왕,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후손이라고는 영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허나 고려는 지금 이 이상으로 자극한다면 위험할지 모르겠구나.’

십 년 이상 진행된 북방전쟁으로, 이제는 블라디미르도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는 사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기에, 사촌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해야 했다.

“열정을 불태울 곳은 이곳 말고도 또 다른 곳이 있지 않느냐?”

“예, 차르.”

“이미 막대한 이득을 보았으니, 휴전 협정에 서명하는 것도 좋겠지. 전쟁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니, 또 다른 기회가 올 것이다.”

그 순간 헬싱키의 앞바다 멀리 거대한 형체의 괴물이 보였다.

“…….”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 철갑선의 호위를 받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철제 군함이 보였다.

수많은 암초와 섬들로 해안선이 극히 복잡한 투르쿠 대신 헬싱키를 군항으로 이용하고 있는 러시아에게 압력을 선사하기 위해서인지 포가 닿지 않을 범위에서 기동하고 있는 저 증기 군함은 이전까지 보았던 다른 철갑선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저 위에는 스웨덴의 왕실 깃발과 해군기가 달려 있는 것이 보였지만.

어떤 바보 멍청이가 저 전함이 스웨덴에서 건조한 것이라 생각할까.

아직도 이곳에선 철갑선이 최신식의 함정이고 목조선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지금 저 괴물은 아마 철갑선조차도 충분히 박살 낼 수 있는 거포를 지닌 거함일 것이다.

바다에 나갈 수 있는 항구를 원하던 러시아도, 저런 광경에는 공포를 느꼈다.

프랑스에 부유 포대를 구매하겠다는 연락을 하긴 했지만, 언제 그것들이 도착할지 몰랐다.

그리고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이제 저것을 부유 포대 같은 것으로 막을 수 있는지도 의문일 것이고.

보고서에는 저 전함을 ‘위엄’급 전함이라고 하던데.

“아직도 이조라(잉그리아)에 대한 집착을 하고 있는가? 표트르.”

이조라는 무슨.

표트르는 이조라 지역의 늪지대를 매립해 발트해와 북해, 유럽으로 뻗어갈 수 있는 거대한 항구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이내 단념했다.

이 정도 해군 격차면, 답도 없었다.

“…아닙니다.”

* * *

철갑선(Ironclad)과 현대적(근대적) 전함의 차이는 몹시 컸다.

후자는 흔히 후대에 프리―드레드노트로 뭉뚱그려 취급당하곤 했지만, 확실히 이전의 철갑선들과는 차별화되는 점이 있었다.

주포와 부포의 분리, 회전할 수 있는 포좌나 포대의 설치.

조익현급 방호순양함도 그러했고, 그보다 큰 전함들도 그러했다.

순양함보다 훨씬 큰 전함은 탑재한 주포도 그보다 더 컸다.

고려는 큰 것을 좋아했다.

영토도 큰 걸 좋아했고, 사람도 큰 사람을 좋아했으며, 배와 대포도 큰 것을 좋아했다.

더군다나 대포는 거거익선이니, 작렬탄이든 새롭게 만들어진 철갑탄(AP)과 철갑유탄(APHE)이든 대포가 크면 그 위력도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큰 대포는 그 설치의 제한이 있었다.

지금으로선 단 두 개.

배의 앞과 뒤에 한 개씩 250mm의 쌍열 주포 포좌를 장착했을 뿐이었다.

나머지 중간포와 부포들은 양 현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러나 주포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으니. 이제는 부유 포대와 같은 것들도 건방진 행동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고려는 이 위엄급 전함을 모두 일곱 척 제작하기로 했다.

다섯 척은 그들이 썼으며, 두 척은 해외에 판매했다.

그 이상은 만들지 않았다.

[작가의 말]

지금 나온 전함은 어드미럴 클래스나 로열 소버린(Royal Sovereign)에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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